나의 이야기

2020. 8. 3 착한 바이러스

아~ 네모네! 2020. 8. 5. 13:59

착한 바이러스

이현숙

 

  옛날에 한 고승이 어떤 마을의 제일 큰 부잣집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할아버지 죽고, 아들 죽고, 손자 죽으시오~.” 하였다.

집안 식구들이 깜짝 놀라 시주도 안 하고 욕을 하며 내쫓으려하자 노승이

이런 축복이 어디 있다고 이러시오?” 하며

할아버지, 아들, 손자의 순서대로 죽어야하지 반대로 손자, 아들, 할아버지 순으로 죽으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했다. 그 말을 들어본 즉 정말 가장 큰 축복이었다. 그래서 노승에게 시주를 푸짐하게 하고 융숭하게 대접을 하여 보냈다고 한다.

  작년 말부터 코로나19가 번지기 시작하여 열 달 가까이 되었다. 모든 모임이 사라지고 해외여행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한 번 나가면 그 나라에서 받아준다고 해도 2주간 격리, 여행 후 한국에 돌아오면 또 2주간 격리해야하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미국에 유학 갔던 아들이 11년 만에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 와서 2주간 세 식구가 격리하려면 350만원을 내야한단다. 그것도 아들과 며느리가 따로 떨어져있어야 한다니 보통 불편한 일이 아니다. 350만원 보내 줄 테니 그렇게 하라고 했더니 에어비엔비에 알아보겠다고 한다. 석촌호수 근처의 오피스텔이 있는데 하루에 12만원 정도 한단다. 그래도 세 식구가 같이 있을 수 있으니 그리로 가겠다고 한다. 그저 아무 탈 없이 귀국하기만 바랄 뿐이다.

  어찌 생각하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 없이 미운데 다시 생각하니 착한 바이러스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나 청소년들은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치명적이지 않고 주로 늙은이들만 데려가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묵은 가지를 잘라내야 새 가지가 잘 자라고 열매도 잘 맺는 것처럼 이 사회도 묵은 가지를 쳐내야할 것이다. 인위적으로 쳐내지 못하니 자연이 알아서 쳐내는 모양이다.

  65세 이상이고 지병이 있으면 고위험군이라고 하는데 나도 70이 넘었고 당뇨와 고지혈증이 있으니 고위험군이다. 코로나에 코 끼워서 끌려가면 그저 이 세상을 위해 좋은 일한다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가야할 모양이다. 사람이 어찌 자연을 거스를 수 있겠는가? 그저 자연에 순응하여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겠다. 하늘나라에서 초대장이 오면 뿌리치지 말고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들고 가야겠다. 부디 그 시간이 되었을 때도 이런 마음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끌려가지 않으려고 악을 쓰며 발버둥 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건 입에 붙은 말뿐이고 어쩌다 외출이라도 하려면 마스크 쓰고 장갑 끼고 중무장을 한다. 이럴 때마다 번거롭고 짜증이 난다. 어찌 보면 이런 내 모습이 가소롭고 이율배반적이다. 입만 나불댔지 마음 속 깊은 데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 지구상에 더 오래 머물러 있으려고 안간 힘을 쓴다.

  매일 매일 신규 코로나19 확진자가 몇 명 나왔나 뉴스에 귀를 기울인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를 소멸시키려고 많은 의료인과 과학자들이 백신과 치료제를 만드느라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모습이 고맙기는 한데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우는 우리의 모습이 허공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것처럼 공허하게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어디로 펀치를 날려야할지 알 수 없다. 어찌 생각하면 이건 너무나 불공평한 경기인 것 같다. 코로나는 두 눈 뻔히 뜨고 우리를 공격하는데 우리는 눈가리개를 하고 사방으로 펀치를 날리고 있다. 마구 휘두르는 이 펀치에 요행이 바이러스가 치명타를 맞아 사라졌으면 좋겠다. 아니면 코로나가 계속 강펀치를 날리다가 스스로 지쳐 쓰러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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