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 6. 28. 눈물총이라도 쏠 걸

아~ 네모네! 2020. 7. 3. 16:40

눈물총이라도 쏠 걸

 

이현숙

 

  네델란드의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반 졸업식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졸업생이 자신을 괴롭혔던 한 교수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을까? 알고 보니 이 총은 눈물을 탄환으로 사용한 총이었다.

  총을 쏜 학생은 대만 출신의 천이페이였다. 그가 눈물로 탄환을 만들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디자인 석사과정을 이수하는 동안 그가 겪은 심한 좌절감과 모멸감이 이런 일을 하게했다. 동양 문화권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천에게 교수는 권위 그 자체였다. 교수가 과제를 과도하게 요구하거나 심한 비난을 퍼부어도 천은 속만 끓일 뿐 일언반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문화적 장벽과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한 채 마음속으로 끙끙 앓기만 했다. 급기야 동료학생들이 그를 위해 교수에게 항의를 할 정도였다. 그는 결국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고, 우는 것이 창피해서 교실 밖으로 나왔다.

  그는 과제의 하나로 눈물총을 만들었다. 자신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실리콘 호스로 받아 드라이아이스로 급속 냉동하여 총알을 만들었다. 그가 졸업식장에서 그 총을 발사한 것은 물론 허용된 예술행위였다. 하지만 그것은 억눌렸던 좌절감의 표현이자 권위에 대한 도전행위였다.

  나도 32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무수한 학생들에게 모멸감과 좌절감을 주었다. 그들이 이 학생처럼 눈물총을 만들 줄 알았다면 나는 졸업식 때마다 그 총을 맞아 온몸이 만신창이 아니 넝마조각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그런 총을 만들 줄 몰라서 참 다행이다.

  총에는 무수히 많은 총이 있다. 권총도 있고 사냥총도 있다. 말로 하는 말총도 있고 댓글로 하는 댓글총도 있다. 이 총을 맞아 많은 연예인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아기들이 가장 선호하는 총은 눈물총과 웃음총이다. 배가 고파도, 기저귀가 젖어도 눈물로 호소한다. 하긴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니 누워서 울 수밖에 없다. 많은 부모들은 이 총을 맞으면 한 걸음에 달려가 그 요구를 들어준다. 눈물총보다 더 강력한 것은 웃음총이다. 아기가 방끗방끗 웃거나 까르르하고 하고 웃어대면 그 총을 맞아 일시에 고꾸라진다.

  나도 눈물총을 쏘아댄 적이 있던가? 나는 남 앞에서는 잘 울지 않는다. 철부지 시절에도 엄마가 마구 회초리를 치면 두 손을 싹싹 빌면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거나 꽁무니를 빼고 달아났으면 좋으련만. 울지도 않고 끝까지 제 자리에 앉아서 맞았다. 결국은 때리던 엄마가 울었다. 엄마가 나에게 눈물총을 발사한 것이다. 이게 내가 저지른 가장 큰 불효인 것 같다. 눈물총이라도 날렸으면 동정심이라도 생겼을 텐데.

  여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눈물이라고 하던데 나는 남편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이 무기를 사용할 줄 모른다. 내가 사용하는 가장 큰 무기는 침묵총이다. 누군가가, 아니면 무슨 일이 마음에 걸리면 말을 안 한다. 그러다보니 부부싸움을 하면 몇 날 며칠이 가도 해결이 나지 않는다. 남편도 어찌할 수가 없으니 그저 냉전만 계속된다.

  지금은 체력이 달리고 서로가 피곤하니 웬만해서는 싸우지 않는다. 아마도 모든 체력과 감정이 고갈되면 영원한 평화가 찾아올 지도 모른다. 그래서 천국은 싸움도 없고 눈물도 없는 세상이라고 했나보다.

친정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