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 5. 17. 멧새의 모정

아~ 네모네! 2020. 5. 18. 09:30

멧새의 모정

 

이현숙

 

  베란다 창문을 연다. 달착지근한 아카시아 꽃향기가 물씬물씬 밀고 들어온다. 앞에 있는 용마산에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피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있으면 용마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연분홍 진달래가 지고, 화사한 벚꽃도 지고나면 산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5월의 신부로 변신한다. 아카시아 꽃이 피면 뻐꾸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다닐 때 부르던 고향땅이란 동요가 떠오른다.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

  정말 희한하게도 매년 아카시아 꽃이 피기지기 시작하면 뻐꾸기가 울어댄다. 뻐꾹 뻐꾹 우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정겹다. 어떤 때는 검은등뻐꾸기까지 듀엣으로 울어댄다. 뻐꾸기는 여름 철새라 남쪽나라에서 겨울을 보내고 5월이면 우리나라에 온다. 검은등뻐꾸기의 별명은 홀딱벗고 새다. 보통 뻐꾸기는 두 음절로 뻐꾹~ 뻐꾹~”우는데 검은등뻐꾸기는 네 음절로 운다. 그게 꼭 홀딱벗고~ 홀딱벗고~”라고 하는 것 같다.

  언젠가 산행할 때 홀딱벗고 새가 울었다. 한 사람이

재는 맨날 홀딱벗고 살면서 여태 시집을 못 갔나?” 하니까 다른 사람이

홀딱 벗고 사니까 시집을 못가지. 반쯤 가려야 매력이 넘치지.” 해서 다들 웃었던 기억이 난다.

  비 오는 날이면 데크가 깔린 용마산자락길을 걷는다. 비가 오면 어쩐지 뻐꾸기 소리가 처량하게 들린다. 자기 새끼가 비에 젖을까봐 걱정이 돼서 그런가?

  뻐꾸기는 자기 둥지가 없는지, 게을러서 그런지 개개비멧새나 노랑때까치 같은 다른 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는다. 좀 유식하게 말하자면 탁란을 하는 새다. 그것도 십여 개의 둥지에 한 개씩 낳는다. 하긴 두 마리 새끼가 살기는 둥지가 너무 좁다. 새끼가 자라면 둥지보다 훨씬 커서 꼭 방석을 깔고 앉은 것처럼 보인다. 좀 큰 새의 둥지에 낳으면 좋으련만 작고 연약한 새의 둥지에 낳는 심보는 무엇일까? 자신의 새끼보다 약한 다른 새끼들을 없애고 잘 살아남게 하려는 것인가? 실제로 빨리 부화한 뻐꾸기 새끼는 멧새의 작은 알들을 모조리 둥지 밖으로 떨어뜨려버리고 둥지를 독차지 한다.

  멧새는 이것이 자신의 새끼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벌레를 잡아다 먹인다. TV에서 그 모습을 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자신의 몸집보다 몇 배나 큰 뻐꾸기 새끼를 먹이려면 얼마나 뼈골 빠지도록 먹이를 구해 와야 할까? 아마도 생모인 뻐꾸기는 이 둥지 근처에 머물면서 자기가 친엄마임을 알리려고 뻐꾹 뻐꾹 울어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위탁모인 멧새는 이것이 자신의 새끼가 아님을 알면서도 열심히 키우는지도 모른다. 사람도 업둥이가 들어오면 복둥이로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 키운다. 그렇게 복을 쌓다보면 애기를 못 낳던 여인이 아기를 낳은 경우도 있다. 멧새도 그렇게 생각하고 복을 쌓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복이 돌고 돌아 언젠가는 자기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

  치악산에 가면 상원사라는 절이 있다. 거기에는 커다란 종루가 있다. 옛날 어느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산에 갔다가 안타까운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꿩을 잡아먹으려 하는 것이었다. 살아나려고 필사적으로 날개를 푸덕거리는 꿩의 애처로운 모습을 본 나무꾼은 지개 작대기로 구렁이를 때려잡고 꿩을 구해주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꿩은 나무꾼에게 고맙다는 시늉을 해보이며 날아갔다.

  날이 저무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나무를 하던 나무꾼은 주위가 어두워진 다음에야 그것을 알았으나 이미 산을 내려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래서 하룻밤 지낼 장소를 찾아 헤매던 중 어느 어스름한 집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피곤한 나무꾼은 자리에 눕자마자 금방 잠이 들었다.

  잠결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눈을 뜬 나무꾼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자신의 몸을 감아 조이며 혀를 낼름거리는 것이었다. 어쩔 줄 모르는 나무꾼에게 구렁이가 "오늘 낮에 네놈이 작대기로 때려죽인 구렁이가 바로 내 남편이다. 네가 내 남편을 죽였으니 나는 내 남편의 원수를 갚아야겠다." 하면서 더욱 더 몸을 조여 오는 것이었다.

  나무꾼은 죽어가는 목소리로 "내가 처음부터 네 남편을 죽이려 한 것이 아니고 약한 꿩을 구해 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니 제발 나를 용서해다오." 구렁이는 한참 생각하는 듯하더니 "좋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이 밤이 새기 전에 저 건너편에 있는 임자 없는 절에서 종소리가 세 번 울리면 너를 살려주겠다." 그러더니 구렁이는 조이고 있던 몸을 약간 풀어주었다.

  그 말을 들은 나무꾼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임자 없는 절에서 종소리가 날 리 만무하지 않은가? 나무꾼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죽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 ~ ~" 하는 종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나무꾼은 물론 구렁이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구렁이는 "음 억울한 일이지만 약속한 일이니 어쩔 수가 없구나." 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나무꾼은 긴 숨을 몰아쉬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날이 밝자마자 종소리가 난 절간으로 달려가 보았더니 그곳에는 놀랍게도 꿩 세 마리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전날 살려준 꿩의 가족들이 은혜를 갚기 위해 머리로 종을 치고 죽은 것이었다. 이후부터 이 고장 사람들은 적악산赤岳山이란 산 이름을 꿩이 보은한 산이라 하여 꿩 치()자를 써서 치악산雉嶽山으로고 바꾸었다고 한다.

  이런 설화를 볼 때 덕을 쌓으면 반드시 그 덕을 되돌려 받게 되어있다. 누가 멍청하고 깜빡 깜빡 잊는 사람을 새대가리라고 했던가? 새가 들으면 엄청 기분 나쁠 것이다. 이토록 은혜를 잊지 않고 목숨 바쳐 보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아마도 마음씨 착한 멧새도 반드시 그 보답을 받을 것이다. 단지 뻐꾸기가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내년에는 똑 같은 둥지에는 알을 낳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멧새의 모정은 한 마디로 극도의 이타적 사랑이다. 요즘 같이 이기적 사랑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우리 인간이 이 미물에게 한 수 배워야할 것 같다. 아마 멧새는 내세에라도 복을 받을 것이다.

 

1.뻐꾸기 소리

 

 

2. 검은등뻐꾸기 소리

 

3. 듀엣으로 부르는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