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 5. 8. 갈참나무 충영

아~ 네모네! 2020. 5. 11. 13:38

갈참나무 충영

 

이현숙

 

   코로나로 모든 스케줄이 중지된 요즘은 거의 매일 망우산에 간다. 매일 가도 새로운 것이 계속 나타난다. 능선 길을 걷는데 길가에 빨간 열매 같은 것이 보인다. 잎은 참나무 같은데 이런 열매도 있나 싶어 사진을 찍었다. 집에 와서 모까에 물어보니 갈참나무 충영이란다.

 

 

 

   충영(蟲癭)은 벌레가 나무에 알을 낳았을 때 혹처럼 생기는 벌레집이다. 벌레들이 나무에 알을 낳으면 그 애벌레가 나와서 나뭇잎을 갉아먹고 자란다. 어떤 경우에는 나뭇잎이 다 먹히고 잎맥만 앙상하게 남기도 한다. 이런 걸 보면 알이 깨어 나오기 전에 알집을 떼어 박살을 내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다. 이 벌레들이 자라서 나비가 되어 식물들의 수정을 도와주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마도 나무들은 자기의 다음 세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헌신하는 건지도 모른다.

   파리나 모기, 뱀 같은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이런 동물은 왜 만들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크고 길게 보면 이들도 분명히 어딘가에 기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꼭 필요한 곳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단지 내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보면 저런 사람들은 하루 빨리 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도 분명히 존재 이유가 있고 이 사회에, 이 우주에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일 것이다.

   새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어버이날이다. 작년 까지만 해도 어머니를 모시고 동생들과 식사도 하고 카네이션도 드리고 했다. 갑자기 어버이날 행사가 없어지니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게 찬바람이 부는 듯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그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새어머니도 어머니였구나 싶다. 매년 어버이날, 생신날, 명절 때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모이게 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셨다. 난생 처음으로 어버이가 없는 어버이날을 보내려니 뭔지 모를 허전함이 가슴 가득 차오른다.

 

   남편과 나는 연금으로 생활한다. 퇴직한지 16년이 넘었는데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연금을 보면 젊은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런 연금족들 때문에 아이들이 기를 못 펴는 게 아닌가 싶다. 아들이 아직도 공부를 하고 있으니 우리가 연금을 받아야 도와줄 수가 있다. 이것도 젊은이를 위한 일일까? 아마도 우리의 존재이유는 그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모든 존재에게는 존재 이유가 있고 그 맡은 역할을 다 마치면 하늘나라에서 초대장이 올 것이다. 초대장이 올 때까지 가슴 펴고 당당하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