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6. 11. 13. 그 남자는 어땠을까?

아~ 네모네! 2016. 11. 19. 14:14

그 남자는 어땠을까?

아 네모네 이현숙

   라디오에서 냇킹콜의 투영(too young)이 흘러나오네요.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강림리 산골짜기 어둑한 사랑방이 생각나는군요.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강림리로 학교 동아리에서 농촌 봉사활동을 갔어요. 겨울이라 농사일은 할 게 없고, 그곳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쳤죠. 밤마다 모여서 하루 일을 돌아보고 내일 일을 계획했어요. 마지막 날 밤 그동안의 성과도 알아보고 소감도 얘기한 후 돌아가면서 노래를 하라고 했어요.

   저는 그 때 이 노래를 불렀고요. 냇킹콜의 투영은 사랑하기엔 너무 어리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어리지 않다고 주장하는 노래죠. 사실 가사엔 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곡조가 좋아서 불렀던 것 같아요.

강원도 산골의 밤은 기이하도록 고요하고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죠. 하얀 보름달이 외나무다리를 비칠 때면 4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듯 몽롱하게 정신이 아득했어요.

   봉사활동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그곳 일은 까맣게 잊었어요. 하루는 동아리 방으로 편지가 한 통 날아왔어요. 그 때 우리가 묵었던 집의 아들이 보낸 거였죠.

   열어본 순간 가슴이 뛰었어요. 우리가 간 후 그 방문을 열 때마다 그리움과 아쉬움에 가슴 저리다는 내용이었죠. 내 생전에 그토록 절절한 고백은 들어본 적이 없었죠. 여기서 학교 때려치우고 그곳으로 내려가 그의 아내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저는 그토록 순수하지 못했나봐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학교생활에 젖어들었죠. 그 때 함께 봉사활동 갔던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고요.

   남편과의 관계가 삐걱거릴 때면 그 사람 생각이 났어요. 티걱 태걱 싸우다가 옆에서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의 얼굴을 볼 때면 내가 눈깔이 삐었지 어쩌다가 이런 인간과 결혼했나 싶고, 그 남자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남자의 얼굴은 전혀 떠오르지 않지만 성은 심 씨였던 것 같고, 이름에는 자가 들어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일평생 끊임없이 흔들리며 방황하면서 살아가죠. 마치 팽팽 도는 팽이에 달라붙은 개미처럼 빙빙 도는 지구 위에서 살아가니 흔들리지 않는 불혹의 나이란 있을 수가 없어요.

   얼마 전 노트북이란 영화를 보았어요. 주인공 앨리는 부잣집 딸로 부모님과 여름휴가를 떠났어요. 거기서 노아라는 시골 청년을 만나게 되었죠. 앨리의 엄마는 시골 제재소에서 일하는 노아가 맘에 들지 않았어요. 엄마의 강력한 반대와 끈질긴 방해로 앨리는 다른 사람과 약혼을 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앨리는 신문에서 노아의 사진을 보고 그를 찾아갔어요. 자신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노아가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고 노아와 결혼하죠.

   오랜 세월이 흘러 앨리는 치매가 걸려 병원에서 살게 되고 노아는 앨리를 위해 책 읽어주는 할아버지가 되었어요. 앨리는 노아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앨리가 노트북에 적어놓은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몇 번씩 읽어주었어요. 끈질긴 노력 끝에 앨리의 기억이 돌아오지만 5분도 가지 못했어요.

   기억이 돌아올 때면 노아의 이름을 부르며 같이 춤을 추다가도 순식간에 소리를 지르고 발작을 일으키면서 소리를 질렀어요. 노아는 다시 책 읽어주는 할아버지로 돌아가죠.

   하루는 자식들이 병원에 찾아왔어요. 앨리는 자신의 자식인 줄도 모르고 병실로 들어가고, 자식들은 노아에게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니 아버지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고 졸랐어요. 하지만 노아는 네 엄마가 있는 이곳이 내 집이라고 하며 그곳에 계속 머물러요. 결국에는 노아와 함께 한 침대에서 두 손을 꼭 잡고 최후를 맞게 되죠.

   이런 사랑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책이나 영화에서만 가능할 것 같아요. 잉꼬부부라는 말도 우리의 희망사항일 지 모르죠. 아니 잉꼬도 우리가 안 볼 때면 치고 박고 얼굴 쥐어뜯으며 살지 않을까요?

   막연히 내가 선택하지 않은 그 길에는 더 나은 삶이 있지 않을까 착각하며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