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6. 12. 1. 여기는 중환자실

아~ 네모네! 2016. 12. 30. 12:54

여기는 중환자실

아 네모네 이현숙


   저녁상을 차리려고 조기를 굽는데 갑자기 삑~~ 경고음이 울린다. 깜짝 놀라 무슨 소리인가 살펴보니 가스 누출 경보기가 울린다. 가스 누출이란 글자가 뜨고 가스 차단기가 내려가 불이 꺼져 버렸다.

   조기는 반 밖에 안 익었는데 이거 낭패다. 관리실에 전화번호를 물어 가스경보기 회사에 전화를 하니 내일이나 오겠단다. 전자레인지로 조기는 마저 굽고 찌개도 전자레인지로 덥혀 겨우 저녁밥을 먹었다. 더운 물이 안 나오니 찬물로 설거지를 하고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데 점점 발이 시려온다. 가스가 차단되니 보일러도 멈춰 버렸다. 옷을 있는 대로 껴입고 피난민 수용소 같이 앉아있다.

   양치질을 하려니 이가 시려 헹구기도 힘들다. 세수는 고양이 세수로 끝내고 발도 젖은 수건으로 대충 닦았다. 자기 전에 아래를 닦으려니 아랫도리가 마비되어 얼얼하다. 겉옷까지 다 껴입고 이불 속에 들어가 새우잠을 잤다.

   도시가스 하나 안 들어와도 이 지경이니 전기 수도 다 끊어지면 어찌 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냉장고 세탁기는 물론이고 TV, 전등까지 안 들어올 테니 그야말로 깜깜 절벽 암흑세계가 될 것이다.

수도 물이 안 나오면 식수는 물론이고 화장실도 못 쓰니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샤워는 물론이고 세탁도 못 할 테니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자연재해나 전쟁이 발발하면 전기 수도 가스 모두 끊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산속이나 오지에서 사는 사람은 이런 것 없이 사는 것이 생활화 되어 별 일이 없겠지만 대도시에 사는 사람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굶어 죽고, 얼어 죽는 사람이 무수히 발생할 것이다.

   집으로 들어오는 숱한 전선과 수도관, 가스관을 바라보니 바로 여기가 중환자실이구나 싶다. 중환자실에서 콧줄 끼고 숨 쉬고 목구멍 뚫어서 식사하며 링게르 꽂고 사는 중환자와 무엇이 다르냐 말이다.

   지하철 속에서 전기가 나가면 암흑세상이 되는 것은 순간이고 환풍기도 안 돌아갈 테니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몇 분 못 되어 질식사 할 것이다. 이 도시 전체가 모두 병들어 중환자가 되었다.

도시를 지탱시켜주는 무수한 전선과 수도관 하수도관, 가스관이 파괴되면 도시는 순식간에 마비되어 아비규환이 될 것이다.

   무선과 유선으로 연결되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한 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우리는 중독 중에서도 아주 심각한 중독에 걸린 중환자다. 모든 문명의 이기가 우리의 적응력을 다 소멸시켰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본능을 잃어버렸다. 아마도 우리 인류는 서서히 모든 능력을 잃고 소멸할 것이다. 혹시 심심 산 속 부시맨 같은 사람들이 남아서 인류의 맥을 이어갈지도 모르겠다.

   모든 동물은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잊지 않고 있으니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인류가 가장 빨리 멸종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