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6. 12. 30. 개썰매 끌며 개고생

아~ 네모네! 2016. 12. 30. 13:02

개썰매 끌며 개고생

아 네모네 이현숙

   알래스카에 있는 매킨리산에 갔다. 매킨리는 6천 미터가 넘는 북아메리카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고상돈이 하산하다가 추락하여 죽은 산이기도 하다.

   알래스카 데날리 국립공원에 있는 매킨리는 원주민들이 데날리(태양의 안식처)라 부르며 신성시 하던 산이다. 데날리를 매킨리라 이름 지은 것은 1897년 윌리엄 딕키라는 사람이다. 그는 맥킨리 빙하에 처음 접근한 사람인데 당시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맥킨리라 이름 지었다.

   메킨리는 포터와 셀파를 고용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자신의 힘으로 모든 짐을 지고 산에 오를 전문 산악인만 입산을 허용한다는 뜻이다.

   앵커리지에서 버스로 경비행기장이 있는 탈키트나까지 간다. 거기서 입산 신고를 하고 사전 교육을 받는다. 안전에 대한 교육과 쓰레기 처리 방법 등을 알려준다. 모든 쓰레기는 하산 시 도로 가져와야하고 대변은 플라스틱으로 된 통에 비닐 주머니를 넣고 변을 본 후 비닐만 꺼내어 크래바스에 버린다.

   교육이 끝난 후 경비행기를 타고 메킨리산 골짜기에 있는 빙하에 내린다. 빙하 위에는 텐트가 쳐 있고 관리인 두 명이 상주하고 있다. 여기서 썰매와 설피를 빌리고 18일 동안 사용할 석유를 산다.

육중한 플라스틱 3중화를 신고 설피까지 신으니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1인당 40kg의 짐을 배낭과 썰매에 싣고 간다. 배낭 밑에 긴 줄을 매고 여기에 썰매를 묶어 끌고 가는데 이건 장난이 아니다. 맨몸으로 가기도 힘든데 무거운 짐이 어깨를 짓누르고 썰매는 뒤에서 잡아당기니 제 자리에 서 있기도 힘들다.

   6시간의 사투 끝에 첫 번째 캠프 C1에 도착하니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하다. 대장님은 오늘 소가 된 기분이라고 하고 같이 간 연희씨는 말이 된 것 같다고 한다. 나는 개가 된 기분이다. 알래스카에서는 개가 썰매를 끄는 줄 알았는데 하루 종일 개썰매 끌며 개고생 했다.

   날진통에 뜨거운 물을 넣어 침낭 속에 넣고 차디찬 빙하 위에서 잠을 잔다. 물은 한 방울도 없으니 눈을 퍼다 녹여서 밥도 하고 이도 닦아야한다. 세수는 생각할 수도 없다. 물 티슈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자리에 누웠다.

   아침에 일어나 똥통에 비닐봉지를 넣고 깔고 앉으니 모서리에 엉덩이가 눌려 뚫어질 지경이다. 네 명이 볼 일을 본 후 잘 묶어 썰매에 싣고 가다가 크레바스에 버렸다. 이 날도 여덟 시간 동안 풀 한 포기 없는 빙하 위를 걸었다. 조금만 경사가 나타나도 썰매가 뒤에서 잡아끄니 앞으로 안간 힘을 써야한다. C2에 텐트를 치고 똑 같은 일을 반복한다.

   다음 날도 11시간의 악전고투 끝에 C3에 도착하니 허리와 무릎이 아우성을 친다. 여기서 부터는 경사가 급해 썰매는 끌고 갈 수가 없어 하산 할 때 쓸 식량과 설피, 썰매를 모두 눈 속에 파묻고 긴 막대에 빨간 리본을 달아 위치를 표시한 후 배낭만 지고 간다.

   아침 일찍 출발해 날이 어두워지도록 걸어도 메킨리시티가 보이지 않는다. 여름철 알래스카의 밤은 백야라서 해가 져도 어슴푸레한 빛이 남아있다. 한 밤중에 텐트에 도착하니 다들 저녁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걸음이 늦은 나는 늦게 도착하여 기진맥진 텐트 속에 쓰러졌다. 4200미터 고지에 있는 메킨리시티는 정상에 오르는 사람들의 베이스캠프다.

   무거운 짐을 지고 며칠 동안 걸었더니 간에 있는 주먹만 한 혹이 더 커졌는지 숨 쉴 때마다 옆구리가 결려서 숨 쉬기도 힘들다. 너무 아프고 힘들어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이도 못 닦고 그대로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텐트 속에서 하루를 쉬고 다음 날 안전벨트를 매고 비너와 하강기, 주마 등을 줄줄이 달고 데포 시킬 물건을 지고 윈드월로 향했다. 마치 전투에 나가는 병사들 같다.

   안자일렌으로 줄줄이 사탕 같이 엮었는데 다섯 명이 한 줄에 묶었다. 윈드 월은 말 그대로 눈과 얼음이 벽 같이 서 있는 곳이다. 고정된 로프가 십 여개 설치되어 있어 줄을 잡고 주마로 밀며 올라간다. 내가 느리니 우리 팀 전체가 느려진다.

   도대체 몇 개를 올라가야하는지 끝이 없을 것 같더니 드디어 윈드월 위 조금 평평한 곳에 올라섰다. 여기에 일부 짐을 또 묻어 놓고 다시 매킨리 시티로 내려오려는데 구조대원이 들것에 한 사람을 싣고 내려온다. 설벽과 빙벽으로 들것을 내리려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윈드월 위에는 이름대로 바람이 어찌나 센지 1시간 정도 서서 기다리는데 그대로 동태가 되는 듯하다.

   들것을 다 내린 후 다시 밧줄로 다섯 명이 줄줄이 묶고 내려온다. 내가 너무 느려 세 명은 먼저 내려가고 대장님과 둘이서 밤이 깊도록 내려왔다. 새벽 두 시도 넘은 것 같다. 저녁밥은 차디차게 식어서 얼음덩이를 먹는 듯하다.

   다음 날 하루 쉬고 다시 윈드월을 오르는데 나는 그냥 매킨리 시티 베이스캠프에 머물기로 했다. 체력도 달리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까지 속도가 느려지니 텐트에서 그냥 쉬기로 했다.

   고소 때문에 힘든 몇 명은 그냥 텐트에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시 윈드월을 지나 하이 캠프에 도착했다고 무전이 왔다. 매킨리 시티에도 고정 텐트와 관리인이 상주하고 있다. 관리인 텐트 근처에는 헬기가 내릴 수 있는 공간도 있어 응급환자를 이송한다.

   여기는 매킨리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베이스캠프가 많아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러시아에서 온 아저씨도 있고, 아프리카에서 온 산악인도 있다. 이름이 시티인 만큼 합판으로 반쯤 가린 엉성한 화장실도 있다. 화장실은 엉성하지만 양변기도 있어 여기 앉아서 바라보는 포레이커 봉은 환상 그 자체다. 벽이 하도 낮아 변기에 앉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밖에서도 다 보인다. 이렇게 전망 좋은 화장실은 세상 천지에 없을 것이다.

   결국 하이캠프에 간 사람들도 날씨 관계로 정상은 오르지 못하고 다시 철수하여 하산했는데 랜딩 포인트까지 또 며칠을 내려와 경비행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안개가 심하여 비행기가 오지 못하는 바람에 다시 또 이틀을 텐트에서 잤다.

   개고생은 했지만 1718일 동안 빙하 위에서 생활한 이 여행은 내 생애 최고의 여행이고 평생 잊지 못할 여행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지만 환갑, 진갑 다 지난 내가 이거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골짜기 사이로 굽이굽이 굽이치던 빙하는 환상 그 자체다. 빙하가 왜 빙하(氷河)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말 그대로 얼음 강이다. 거대한 얼음이 강을 이루어 오랜 세월 서서히 흘러내려가는 모양이 가슴이 먹먹하도록 아름답다. 지금도 꿈인지 생시인지 아련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