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7. 1. 5. 천불나는 눈

아~ 네모네! 2017. 1. 8. 14:13

천불나는 눈

아 네모네 이현숙


   엄마가 방문을 확 열어 제킨다. 두 눈에서 퍼런 불이 번쩍 튄다. 사람의 눈에서 불이 나는 걸 처음 보았다. 천불은 하늘이 내리는 불이라더니 정말 번갯불처럼 스파크가 튄다. 엄마는 성격이 불 같아서 자신의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 천불나는 친정 엄마 -


   나는 아버지를 닮아 냉냉한 성격에 표현도 잘 하지 않는다. 엄마가 뭐라고 하면 대답도 안 하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와 버린다. 딸이 이 지경이니 엄마 속에서 천불이 나는 건 당연하다.

언니는 엄마가 야단을 치면 잘못했다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빌고 매라도 들면 기겁을 하고 도망을 친다. 나는 빌지도 않고 엄마가 매를 때리면 죽어도 도망을 안 간다. 죽일 테면 죽여라 하는 태도로 끝까지 제 자리에 앉아서 찍소리도 안 내고 맞는다. 언젠가는 엄마가 때리다 때리다

이 쇠심줄데기보다 질긴 년~” 하면서 울어버렸다.

- 싹싹 빌던 언니 -


   언니는 이름이 연숙이라 그런지 연하기가 새순 같고 싹싹하기 그지없다. 동생은 이름이 재숙이라 그런지 재 재 재 재 말도 잘한다. 그런데 나는 이름이 잘못 됐는지 소띠라서 그런지 왜 그렇게 고집이 센지 모르겠다.

무엇을 해달라고 한 번 말했다가 안 된다고 하면

싫으면 관둬!” 하고 다시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동생은

엄마 이거 사줘~ 저거 사줘~” 하며 끊임없이 조른다. 엄마는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조르는 성화에 견디지 못해 기어이 사주고 만다.

- 끊임없이 졸라대던 동생 재숙이 -


   지금 생각하면 나는 정말 나쁜 딸이다. 그저 그때는 엄마를 이겨먹으려고 했던 것 같다. 엄마를 속으로 무시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항상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불같은 성격의 엄마가 환갑도 못 살고 하루아침에 가실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지 몇 시간 만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허무하게 가셨다. 내가 너무 속을 썩여서 그렇게 됐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마도 눈에서는 천불이 나고 머리에서는 피가 역류했을 것이다.

   내가 결혼 한 후에는 남편 생일 때마다 엄마가 왔다. 집에 일하는 할머니가 있어 이것저것 만들어주면 맛있다고 잘 드셨다. 그런데 집에 가서 동생에게 말하더란다. 그게 너무 맛있어서 아버지 갖다드리고 싶은데 싸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그냥 왔다는 것이다. 나는 참 까칠하고 어려운 딸이었나 보다.

   한 번은 우리 아이 돌 때 옷을 사가지고 오셨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옆으로 밀어놓고 음식 차리기에 급급했다. 엄마는 집에 가서 동생에게 그 옷이 잘 맞는지 입혀보고 싶은데 말을 못 했다고 한다. 아니 그런 걸 그 자리에서 말하지 왜 말을 못하나? 나는 평소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의아해했다. 엄마도 알고 보면 약한 여자였나 보다.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친구들과 올 나잇을 한다고 밤에 나갔다. 엄마는 어두운 골목까지 따라 나오며 조심하라고 했다. 나는 평소와 다른 엄마 모습에 왜 저러나 했다. 나중에 생각하니 딸이 밤 새워 놀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무척 걱정 되었나보다. 엄마의 여린 마음을 그 때는 왜 몰랐을까? 엄마는 그저 우리들에게 욕하고 때리는 씩씩한 장군인 줄 알았다.

   대학교때 우등상을 받았는데 엄마에게 보여주지도 않고 서랍에 쳐 박아 두었다. 나중에 엄마가 그걸 보고 또 울었다. 내가 엄마라도 이건 정말 섭섭했을 것 같다. 내 아이가 학교에서 상 받아다가 보여주지도 않고 서랍에 넣어두면 얼마나 서운할까? 이건 한 마디로 부모를 무시하는 처사다. 난 정말 불효자 아니 불효녀다.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연극도 있다. 불효자는 운다는데 불효녀는 울지도 않는다.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절대 큰 소리 치거나 욕하는 법이 없었다. 엄마는 이런 아버지에게 아이들한테 인기 끌려고 욕도 안 한다고 비아냥거렸다. 엄마 말대로 엄마는 악역을 도맡아 했던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속을 썩이지 않을 것 같은 내가 알고 보면 가장 엄마 맘을 아프게 해 준 딸이다. 지금이라도 땅 속에 있는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도 딸을 키워보니 대답도 안 하고 쾅! 하고 문 닫으며 제 방으로 들어갈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

   사람은 자신이 당해보지 않으면 전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책을 읽고 이야기를 들으며 간접 경험을 해도 그건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손주 며느리한테까지 배우며 살라는 옛말이 있지만 그건 세상일을 배우라는 의미일 뿐이다. 아무리 배워도 남의 입장을 알 수는 없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는 전무후무하고 내가 차지한 공간은 아무도 차지할 수 없으니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는 말은 불가능한 말인지도 모른다. 내가 남의 위치에 설 수 없는데 어떻게 그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까?

   서로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니 근본적인 고독감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 사람 속에 들어갈 수 없는데 어떻게 그 사람의 입장을 알 수 있겠냐 말이다. 인간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외로운 존재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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