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7. 1. 16. 보이지 않는 별

아~ 네모네! 2017. 1. 16. 15:09

보이지 않는 별

아 네모네 이현숙

   요즘 초저녁에 서쪽 하늘을 보면 눈부신 금성이 초승달과 어우러져 기막힌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금성은 지구보다 안쪽에서 태양 주위를 도는 관계로 한 밤중에는 볼 수가 없다. 해가 진 후 서쪽 하늘에서 빛나다가 점점 해와 가까워지면 햇빛 때문에 한동안 볼 수가 없다.

   한참 동안 안보이다가 태양보다 서쪽으로 이동하면 새벽 해 뜨기 전 동쪽하늘에 나타난다. 동쪽하늘에서 몇 달 보이다가 또 태양 쪽으로 가면 보이지 않는다.

   금성은 분명히 하늘에 떠 있지만 강한 햇빛 때문에 우리는 볼 수가 없다. 무수히 많은 별이 하늘에 있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특히 도회지에서는 밝은 조명 때문에 하늘이 한없이 공허하게 보인다. 아니 밤하늘은 거의 쳐다보지도 않고 산다.

   고등학교 때 전남 장흥에 사는 친구 집에 갔었다. 그 친구네는 장흥 읍내에서 영화관도 하고 운수업도 하며 부유하게 살았다. 자식들을 서울에 유학시켜 언니 오빠와 함께 용두동에서 살고 있었다. 방학 때 자기 집에 같이 가자고 하여 한 달 간 장흥에서 지냈다.

   대흥사 구경을 가자고 하여 그 집 택시를 타고 갔다. 오는 길에 택시가 고장 났다. 불빛 하나 없는 허허 벌판에서 하늘을 본 순간 깜짝 놀랐다. 하늘 가득 별이 들어찼는데 기가 막혔다. 서울서만 살았던 나는 하늘에 그렇게 많은 별이 있는 줄 상상도 못했다. 하늘에는 거의 빈틈없이 별이 꽉 들어차서 찬란하기 그지없었다. 이곳저곳에서 반짝이는 별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많은 별들은 태곳적부터 항상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동안 서울의 밝은 전등불 때문에 전혀 볼 수가 없었던 거다.

   인도에 있는 가르왈 히말라야에 갔다. 우리 대원이 8, 정부연락관 1, 1, 포터 53, 모두 합쳐 63명이 몇 날 며칠 동안 걷고 또 걸어 4300m 고지에 있는 사토판스 호수 옆에 베이스캠프를 쳤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고소로 어찌나 힘들었는지 텐트 속에 누워 전태춘의 떠나가는 배를 듣는데 가슴이 벅차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포터는 모두 내려가고 정부연락관이랑 쿡과 함께 여기서 3주간 머물렀다. 차우캄바봉에 오르려고 텐트 속에서 살며 근처 여기 저기 트레킹도 하고 빙하 위를 걸어 다녔다. 텐트 속에서 자다가 한밤중에 나와 하늘을 보면 별이 어찌나 찬란하고 가깝게 보이는지 금방 떨어질 것 같았다. 꼭 손으로 받아야할 것 같았다.

   하루는 초저녁에 아직도 황혼이 선명한데 서쪽하늘에 금성이 보였다. 이글이글 타는 금성이 어찌나 강렬한지 종이를 갖다 대면 꼭 불이 붙을 것만 같았다. 내가 본 금성중에 가장 밝은 금성이다. 하늘은 환하게 밝은데 오직 하나 금성만이 찬란한 빛을 발했다. 그 후로도 금성이 보일 때면 히말라야 산속에서 지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금성에 유난히 애착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금성에서 지구를 보면 지구도 이런 모습일 것이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주위에 나보다 눈부신 사람이 있으면 내 존재는 희미해진다. 그 사람의 빛이 강할수록 나는 빛을 잃고 전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시대를 잘 타고 나야한다는 말이 생겼나보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찬란한 위인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같은 형제들도 한 사람이 너무 똑똑하고 잘 나면 다른 형제들이 위축되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항상 비교 당하기 때문에 점점 더 빛을 잃는다.

   하늘의 별도 밝기가 모두 다른데 인간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주위에 나보다 더 밝은 빛이 없기만 바랄 뿐이다. 잘난 형이 없었으면 더 잘 나 보일 동생도 있고, 예쁜 언니가 없었으면 더 예뻐 보일 동생도 있을 것이다.

   수능시험이 끝나면 자살하는 학생들이 종종 나타난다. 다른 학생보다 시험을 잘 못 보았다는 좌절감 때문이다. 사람은 다 각각 서로 다른 존재 가치가 있고 자기 자신은 이 세상에 오직 하나 밖에 없는 전무후무한 존재인데 말이다. 이상한 기준에 매여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 이상한 기준을 만든 사람들이 문제다. 나도 이 기준을 만든 사람 중 하나다. 문제 하나 더 맞추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우리는 모두 몇 백만 년의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기막힌 작품이다. 오늘도 별을 보며 무한한 우주를 생각한다. 온 천하보다 귀한 사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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