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7. 1. 1. 보이지 않는 끈

아~ 네모네! 2017. 1. 8. 14:05

보이지 않는 끈

아 네모네 이현숙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함께 해외여행 다니는 의사 부부가 문상을 왔다. 남편에게 함께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며칠 후 의사의 부인을 만났다. 문상을 마치고 집에 가며 남편이 말하더란다.

이현숙씨 남편은 키도 크고 잘 생기고 교장까지 할 정도로 능력 있는 사람인데 왜 그런 여자하고 결혼했을까?

얼굴이 예쁜 것도 아니고 요리를 잘 하는 것도 아닌데

혹시 밤일을 잘 하나?”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배꼽 잡고 웃었다. 낮일도 못하는 내가 무슨 밤일인들 잘 하겠느냐 말이다. 의사 부인은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예쁘고 요리도 엄청 잘 해서 해외여행 갈 때면 밑반찬도 잘 해온다. 그런 부인 데리고 사는 사람 입장에서 나 같은 사람하고 사는 남자가 불쌍해 보였나보다.

   사실 남편이 나보다 잘 난 건 사실이지만 객관적으로 미남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마음이 착한 것 하나는 인정한다. 어찌 보면 남편은 순간의 선택을 잘못해서 평생 고생하는지도 모른다. 요리는커녕 하루 세끼 챙기는 것도 거의 사료 수준이니 맛있는 음식은 외식이 아니면 생각할 수도 없다. 맛도 없는 엉성한 밥상을 차릴 때면 좀 미안하기는 하다. 가구를 살 때는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하지만 배우자는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나는 얼굴이 사각형이라 내 별명은 ~ 네모네!’ . 얼굴이 박색이니 외출용 마누라 하나 따로 두어야할 판이다. 그래도 자신이 선택한 길이니 어쩌겠는가? 남편은 예쁜 여자들은 술집에 가면 많다고 자신을 위로하며 살고 있다.

   지금까지 사십 년이 넘게 같이 살아오며 가끔 생각한다. 남편이 재수를 하지 않았으면 사범대에 오지 않았을 것이고 나를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경암회라는 동아리에 들지 않았다면 남편을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산에 다니는 걸 좋아해서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사대 산악회에 내 발로 찾아갔다. 한참 산에 다니는 재미에 빠져 지내는데 같은 과의 친구가 경암회라는 동아리에 같이 들어가자고 한다. 그게 뭐하는 데냐고 물으니 농촌활동도 다니고 이런 저런 활동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 나는 산악회 들었으니 거긴 관심 없다고 해도 두 개 들어도 된다고 굳이 함께 가자는 바람에 얼결에 경암회에 들어갔다.

   거기서 남편을 만났으니 이게 다 인연인가 싶다. 보이지 않는 끈이 우리를 잡아 당겨 서로를 만나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 초에는 술에 취해 쓰러져 자는 남편을 보면 내가 눈깔이 삐었지 어쩌다 이런 인간과 결혼을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도 다 짝을 찾아 떠나고 둘 만 남게 되니 의지할 데라고는 남편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허리가 삐끗해서 일어나지도 못할 때 나를 잡아 일으켜줄 사람은 곁에 있는 남편뿐이다.

   세면대에 뻘건 틀이 빼놓은 것을 볼 때나, 변기에 누런 오줌을 여기 저기 묻혀 놓을 때, 화장실 바닥에 똥 찌꺼기를 흘려 놓을 때나, 콧물이 코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을 보면 오만정이 떨어지다가도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낫지 하며 참는다. 사실 살다보면 내가 똥오줌 싸대고 누워서 남편의 간호를 받을지 누가 아느냐 말이다. 그저 저금하는 셈 치고 꾹 참고 사는 게 상수다.

   내가 해외여행 자주 간다고 싫은 소리를 하면 뒷집 아줌마 얘기를 하며 은근히 협박을 한다. 먼저 살던 곳 뒷집 아줌마는 3년 동안 병상에 누워 남편이 대소변을 받아냈다. 해소도 있어서 산소통을 수시로 갈아가며 호흡을 해야 했다. 나는 툭하면

  “뒷집 아줌마 봤지? 저렇게 누어서 꼼짝 못하고 있는 거보다는 해외여행 다니는 마누라가 낫지 않아?” 하며 공갈협박을 한다.

   사실 누가 먼저 갈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먼저 가는 사람이 복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둘 중 누가 복이 많은지는 두고 봐야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이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왔는데 저 세상으로 가는 날까지 이 끈을 놓지 말고 무사히 잘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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