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6. 12. 9. 윈난에서 티베트까지 (독후감)

아~ 네모네! 2016. 12. 9. 14:59

지상 최고의 결혼 선물

아 네모네 이현숙


   중국사람 다펑이 쓴 자전거로 윈난에서 티베트까지를 읽었다. 윈난성과 티베트에 가 본 적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본 이곳은 어땠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다펑은 중국 대도시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한 달 동안 윈난에서 티베트까지 달리며 약혼녀에게 쓴 편지와 그림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번역한 사람은 경희대 기초한의학대학원에서 수학중인 의사 전호상이다.

   책 표지에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힘든 사랑의 프러포즈라고 쓰여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결혼 선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윈난성 다리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거기서부터 티베트 라싸까지 자전거로 여행했다

 


   머리말을 보면 그는 약혼녀 샤오민에게 결혼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라싸까지 자전거 여행을 하겠다고 했다. 샤오민은 처음에 반대했지만 고원을 자전거로 달리며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그의 말에 절대 다치지 말고 돌아와야 한다고 다짐하며 보내준다.

   결혼을 앞두고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 것일까? 나도 결혼 전에 많은 두려움과 망설임이 있었다. 과연 내가 결혼 생활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결혼하면 아기가 생길 텐데 한 인간을 이 세상에 내보내서 수십 년간 고생시키는 것이 과연 잘 하는 일일까? 별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쨌든 다펑은 혼자서 용감하게 길을 나섰고 훌륭하게 모든 난관을 다 헤치고 한 남자로서 성숙한 인간이 되어 돌아왔다. 윈난성의 성도 쿤밍까지 기차로 가서 다시 다리행 열차를 타려는 승강장에서 우연히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있는 야오씨를 만났고 목적지가 같아 함께 여행하게 되었다.


   2012823일 다리행 기차 안에서 시작된 그의 편지는 926일 라싸에서 끝난다. 거의 매일 샤오민에게 편지를 썼고, 여행 중에 만난 경치나 사람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글 솜씨도 훌륭하지만 그림도 수준급이다.

   매 편지마다 제목을 쓰고 그 편지를 쓴 장소와 소인이 찍힌 우표를 첨부했다. 색다른 편집이 눈길을 끈다. 톡톡 튀는 젊은이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그는 아름다운 곳을 볼 때마다 샤오민을 생각하고 나중에 같이 오자고 한다. 달릴 때나 먹을 때나 잠 잘 때나 항상 샤오민을 떠올리는 듯하다. 먹고 난 빈 그릇까지 그림으로 남겼으니 말이다.


   얼하이 호수를 달릴 때는 호수에 비친 햇살을 그리고 왜 얼후(귀 호수)라고 하지 않고 얼하이 (귀 바다)라고 했을까 의아해한다. 얼은 귀라는 뜻인데 호수 모양이 귀를 닮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호수 자를 쓰지 않고 바다 자를 썼을까 생각하며 내륙 고원 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크고 넓은 호수를 바라보며 바다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나도 구채구 갔을 때 호수에 모두 라고 이름이 붙어있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TV를 보니 고대어에는 호수라는 글자가 없었다고 한다.

   얼하이 호수의 일몰을 보며 그는 이 세상의 어떤 수식도 쓸모가 없다고 토로한다. 자연의 기막힌 광경을 볼 때면 가슴이 먹먹하고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인간의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다.


   그는 아름다운 정경을 마주칠 때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달리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자신에게 질문한다.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다르겠지만 나는 산에 올랐을 때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다. 기막힌 경치를 바라볼 때면 내가 이 세상에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올 수 있게 길을 내준 부모님께 감사한다.

   다펑의 그림을 볼 때마다 그의 정감이 가슴까지 밀려온다. 사진으로 찍었으면 좀 삭막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림에는 그리는 사람의 감정이 붓끝으로 전달되어 보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그는 함께 여행하는 동료들이나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그들의 결혼을 축복하는 글을 지도에 써달라고 했다. 한 번은 리족 아저씨를 만났는데 그 아저씨는 글을 몰랐다. 하지만 다펑에게 영원히 행복하기를이란 말을 자신의 손바닥에 써달라고 했고 그걸 보며 지도에다 그림을 그리듯 써 주었다. 얼마나 감동이었을까?


   요구르트를 팔던 소년도 그렸는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고 10위안 달라는 바람에 돈 없다고 소리를 치고 줄행랑을 쳤다고 하면서 언제 그리도 자세히 보고 그렸는지 그의 눈썰미가 감탄스럽다.


   상그릴라를 지날 때는 그 신비로운 모습에 감탄하며 그 뜻이 장족 말로 마음속의 해와 달임을 상기한다. 나도 상그릴라에 갔지만 그런 뜻인지는 모르고 그냥 이상향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상그릴라는 제임스 힐튼이 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가공의 장소다. 그 곳은 인간이 늙지 않고 영원히 사는 신비한 곳이다. 소설 전체의 분위기가 신비롭고 환상적이어서 실제로 상그릴라에 갔을 때는 많이 실망했다. 그 어원은 티베트 불교에 전승되어오는 신비의 도시 상바라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영혼의 자유 함을 느끼며 몸은 지옥에, 영혼은 천국에라는 말을 떠올린다. 상그릴라 대협곡 입구 커다란 벽화에 샤오민, 돌아가면 바로 결혼하자.”라고 써 넣는다. 이런 프러포즈를 받고 결혼하는 여자가 세상 천지에 샤오민 말고 단 한 명이라도 더 있을까?

   메리설산은 운이 좋은 사람에게만 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며 샤오민을 만난 것만 봐도 자기는 하늘의 축복을 타고 났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런 말을 못했는데 이제야 입이 트인다고 샤오민, 정말 사랑해라고 말한다.

   깨어있을 때나 잠 들 때나, 달을 보나 별을 보나 그는 샤오민 생각밖에 없다. 별빛에 앉아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그림자도 샤오민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라우산 입구 끝없이 펼쳐진 초원을 바라보며 만약 나에게 엄청난 점프력이 있었다면 하늘까지 뛰어올라 맑은 구름 한 점을 집어 샤오민에게 보내줬을 거라고 되뇌인다. 이 그림이 책 표지의 그림이다. 그는 조금만 더 높이 뛸 수 있다면 구름 한 점을 네게 가져다 줬을 텐데 하며 아쉬워한다.

 

   해발 5008미터 동다산에 올랐을 때는 정상에 오르자마자 자전거를 팽개치고 땅에 누웠다. 두 볼에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이런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고 나서야 진심으로 원하는 바를 알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도 티베트 여행에서 짚차를 타고 5200미터 고개를 넘을 때 죽다 살았다. 고산증이 심해 하루 종일 수 십번 토하고 설사를 했다. 손끝은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팠고 머리는 깨질 것 같았다. 이러다 죽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왈칵 토하려는 순간 아래로도 쏟아져 팬티를 다 버렸다. 벗어 버리고 바지만 입고 나와 패드를 대고 차를 탔다.

   기저귀까지 차고 여행을 하다니 이게 무슨 짓인가 생각했다. 시가체라는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으로 실려 갔다. 거기서 이런 저런 검사도 하고 약도 지어먹고 다음 날 겨우 일어나 또 여행을 계속했다. 하지만 그 때 본 푸른 하늘은 내 눈 속으로 파고드는 듯했고, 황량한 벌판은 내 마음 속의 모든 것을 비워냈다.

   그는 티베트 길을 달리며 오체투지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깃든 평화를 읽고 그들의 엄청난 정신력과 맑고 투명한 영혼을 바라보았다. 나도 티베트 길가에서 오체투지하며 라싸의 포탈라 궁까지 가는 사람들을 여러 번 보았는데 가슴이 먹먹해졌다. 도대체 어떤 힘이 저들을 저렇게 만든 것일까? 손에는 게다짝 같은 것을 끼고 앞에는 두꺼운 가죽으로 덧대었다. 저 게다짝과 가죽이 다 닳아빠질 정도로 수백 킬로 아니 수천 킬로를 기어오는 동안 그는 무엇을 얻었을까?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벌 줄 수 있을까? 아니 그들이 가는 길 끝에서 그들이 만나는 신도 하나님이 아닐까? 산에 오르는 길은 많아도 정상은 하나이듯 세상의 모든 종교는 한 정점에서 만날 지도 모른다.


   그는 마침내 라싸의 포탈라 궁에 이르렀고 라싸는 자신에게 있어 여행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라고 고백한다.


   거의 죽다 살아난 나도 눈부신 흰 색과 붉은 색의 포탈라 궁을 바라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고 압도적인 그 모습에 뭐라 할 말을 잃었었다.


   그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기차역에서 샤오민을 만나 민정국으로 달려가 혼인 신고를 했다. 피로연 자리에서 그녀에게 각 지역에서 찍은 도장과 편지,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의 축복이 적힌 지도를 선물한다.

   이런 순애보 적인 사랑이 부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멋진 결혼 선물을 한 번 받아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세상 모든 여자들 마음은 다 같지 않을까?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 12. 2. 껌팔이 할머니  (0) 2016.12.30
2016. 12. 1. 여기는 중환자실  (0) 2016.12.30
2016. 11. 13. 그 남자는 어땠을까?  (0) 2016.11.19
2016. 10. 8. 공공의 적  (0) 2016.11.19
2016. 7. 10. 후비다 칼로  (0) 2016.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