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6. 10. 8. 공공의 적

아~ 네모네! 2016. 11. 19. 14:12

공공의 적

아 네모네 이현숙

   혼잡한 지하철에 오른다. 경로석 앞에 서서 눈을 감고 있다. 앞에는 나보다 조금 젊은 여자와 두 노인이 졸고 앉아있다. 얼마가지 않아서 갑자기 누가 내 손을 잡으며 죄송합니다. 여기 앉으세요.” 한다. 앞에 앉아있던 여자다. 두 눈에는 졸음이 가득하다.

   나는 놀라서 아니에요. 다 왔어요.” 하면서 문가로 나간다. 아직 내릴 때는 안 됐지만 그냥 거절하기가 미안해서 자리를 피했다. 머리 염색을 하기 귀찮아서 허연 머리를 하고 다니니 이만 저만한 민폐가 아니다.

   지난주에는 지인들과 대천 항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외연도에 갔다. 섬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신나게 놀다가 다음 날 아침 일행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 부녀회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식당이다. 서빙 하는 아저씨가 가시리 국을 내 뒤로 가져왔다. 내가 국그릇을 들어 앞 사람에게 전해주려는 순간 아저씨가 당황하며 노인네는 가만히 있으세요.” 한다. 노친네가 뜨거운 국그릇을 들다 둘러 엎을까봐 걱정이 됐나보다. 나도 모르게 손이 움츠러들었다. 이거 오나가나 남들에게 걸리적거리는 존재가 되었다. 이건 민폐 수준이 아니라 공공의 적이 된 것 같다.

   새벽에 교회 갔다 오다 집 근처 사가정공원에 오면 항상 손을 오그린 채로 뒤뚱뒤뚱 걸으며 나타나는 할아버지가 있다. 풍을 맞았는지 걸음이 온전치 못하다. 아마도 노숙자인 듯하다. 그 할아버지가 얼마나 살지 의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공원 벤치에 시체가 되어 누워있을까봐 걱정된다.

   요즘은 거리 곳곳에 노인이 넘쳐난다. 젊은 사람은 보기 힘들고 보행기나 지팡이를 짚고 절뚝절뚝 걷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나도 구부정한 자세로 어기적어기적 걷고 있으니 이 노인들과 거의 닮은꼴이다. 이런 모습을 대할 때마다 혹시 여기가 좀비 세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영화에서 본 좀비들의 모습과 걸음걸이가 우리와 거의 똑 같다. 이 사회가 변비에 걸린 것 같기도 하고 순환기 장애를 앓고 있는 듯도 하다.

   우리 사회에 젊은 피는 줄어들고 아이들 웃음소리는 사라져간다. 이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랬다고 억지로 죽을 수도 없다. 아니 죽어가는 병자도 수혈을 하고 영양 주사를 놓으며 자꾸 살려내니 이게 더 큰 문제다. 나부터도 몸에 좋다는 건 이것저것 자꾸 주워 먹게 되니 어쩌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린란드에 갔을 때 유빙으로 가득찬 바닷가를 걸었다. 아주 높은 절벽 앞에서 가이드가 한 말이 생각난다. 여기가 자살 바위란다. 추운 겨울에 식량이 떨어져 가면 남자 노인들은 카약을 타고 바다로 가서 죽고 할머니들은 여기서 떨어져 자살을 했단다. 자신들의 후손을 살리기 위해 그야말로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얼음이 가득한 바다로 뛰어 들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좋은 것을 젊은 세대에 양보하는 마음이라도 갖고 싶다. 묵은 가지를 잘라야 새 가지가 더 잘 자라는 법인데 묵은 가지가 자꾸 영양분을 뺏으니 어린 가지가 어떻게 자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늙고 병들면 더 살고 싶어서 병원 침대에 누워 온갖 좋다는 영양제는 다 맞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세월을 어찌 장담할 수 있을까? 그저 손 쓸 틈도 없이 갑자기 가버리면 좋을 텐데…….

   어떤 광고에서 갱년기 약을 광고하면서 젊지 않다는 게 아름답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는 둥, ‘아직도 여자인 당신, 끝까지 여자일 당신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웃음이 절로 난다. 늙으면 추한 것은 누가 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도 아니 앞으로도 여자이고 싶지 않은데 웬 여자 타령이란 말인가? 늙으면 아무리 색안경을 끼고 봐도 추한 게 사실이다. 혹 내면의 아름다움이 있을 수는 있지만 말이다. 추한 꼴 보이기 싫으면 젊은 나이에 빨리 죽는 수밖에 없다. 나는 이미 늙었으니 이건 불가능하다.

   나무는 죽어서도 아름답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을 보면 고사목이 되어서 더 아름답다. 상고대를 가득 달고 고고하게 서 있는 주목을 보면 경외심이 절로 난다. 나무는 죽어도 이토록 아름다운데 인간은 어찌하여 죽으면 그토록 추하고 악취가 날까? 마음 가득 욕심을 품고 있기 때문일까?

   예전에는 늙은이의 지혜가 혹 젊은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지식과 지혜가 인터넷 속에 들어있으니 시집 간 딸들도 별로 친정 엄마에게 묻지 않는다. 요리하는 법이며 육아 방법이 모두 인터넷에 들어있다. 노인보다 젊은이가 훨씬 잘 알고 잘 한다. 갈수록 노인들의 입지가 줄어드는 이유다.

   이러다가 축 사망이 부고장의 제목이 될 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노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