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6. 7. 7. 얼굴 없는 살인자

아~ 네모네! 2016. 11. 19. 14:07

얼굴 없는 살인자

   “집에 가서 하룻밤 재우고 내일 선산에 묻어야죠.”

동생 남편이 외아들의 유골함을 들고 한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동생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은 스물여덟 살에 자기 집 지하실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그걸 모르고 밖에 나가 왜 안 들어올까 기다리며 이틀이나 기다렸다. 12월 엄동설한에 차디찬 시신이 되어 얼음장 같은 지하실에 이틀 동안이나 매달려 있었을 조카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리다. 입관하기 전 조카의 얼굴은 한 없이 밝고 편안해 보였다. 살았을 때보다 더 편안해 보이는 것은 왜 일까? 저 세상이 이 세상보다 더 편한 곳인가?

조카의 유골을 화장장의 전기 소각로에서 꺼냈을 때 눈 같이 하얀 뼈가 눈부셨다. 옆의 할아버지 유골은 칙칙한 누런색을 띠었는데 조카는 나이가 어린 한창 때라 그런지 너무도 깨끗했다.

   화장터 직원은 유골을 그냥 그대로 유골함에 넣어주랴 아니면 갈아서 넣어주랴 물었다. 동생 남편은 갈아서 넣어달라고 했다. 기계로 드르륵 가니 순식간에 한 줌의 재가 되어 항아리 안으로 들어간다.

   이미 늦은 오후가 되어 산에 가기는 어렵고 어찌할 건가 물으니 집에 가서 하룻밤 재우고 내일 종중산에 유골함을 묻겠다고 한다. 이미 죽어서 영원한 잠에 들어간 아이가 무슨 잠을 또 자겠는가? 아직도 살아있는 자식처럼 생각하는 제부가 너무도 안쓰러워 또 눈물이 난다.

   인간은 흙에서 나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빈 말은 아닌 듯하다. 우리 인간은 정말 한 줌 흙덩이에 불과한 존재인가? 바람에 흩어지는 한 줌의 재란 말인가?

   왜 조카는 그 길로 갈 수 밖에 없었을까? 이 세상이라는 링 위에서 서로 안 떨어지려고 밀치며 싸우다가 힘이 없어 밖으로 밀려 떨어진 건 아닐까? 지금 죽어도 아까울 것이 없는 나 같은 늙은이가 가운데 턱 버티고 앉아있는 바람에 내 조카가 밀려 떨어졌나보다. 내가 조카를 죽인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내가 살인자인지도 모른다.

   TV에서 뉴스를 보다 원영이가 살던 화장실을 보았다. 한 평도 안 되는 화장실에 매트리스 하나 달랑 깔려있고 빈 밥 그릇 하나에 숟가락 하나가 들어있다. 7살 된 원영이는 친부와 계모에게 학대 받으며 화장실에 갇혀 지냈다고 한다. 밥과 반찬을 한 그릇에 담아 차가운 바닥에서 하루 한 끼의 식사를 했다. 마치 개 밥그릇을 보는 느낌이다. 아니 개도 이보다는 나은 대접을 받고 산다.

   한 겨울 추위에 화장실 벽 환풍기 구멍으로 술 술 들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혼자 먹고 혼자 잤다. 원영이가 죽던 날도 영하 8가 되는 날이었다. 계모는 2리터나 되는 유한락스를 원영이 몸에 끼얹었다. 나는 화장실 청소하다가 락스 한 방울만 다리에 튀어도 어찌나 따가운지 견디기 힘든데 락스를 병째 들이 부었으니 온 몸이 얼마나 아프고 쓰렸을까? 얼음 같이 차가운 바닥에서 혼자 잠들 때마다 얼마나 슬펐을까? 어찌 보면 죽음이 그 아이의 피난처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계모와 친부는 죽은 원영이를 산에 암매장했다. 죽은 원영이의 온 몸은 락스로 화상을 입었고, 뼈는 여기저기 골절 되었다고 한다. 수시로 폭행을 당한 증거다.

   친부와 계모가 검찰에 끌려가는 모습이 화면에 나온다. 아무리 친 엄마가 아니라고 해도 어떻게 그 어린 아이에게 독한 화공약품을 부을 수 있을까? 온몸이 타는 고통에 아이가 울며 펄 펄 뛰었을 텐데 자기들은 거실에서 게임이나 하며 즐겼다니 정말 인면수심(人面獸心)이란 이런 것인가? 아니 동물도 이런 동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사냥을 한다. 오히려 동물들이 수면인심(獸面人心)을 가진 존재다.

   왜 우리 인간이 동물만도 못한 존재가 되었을까? 원영이 부모 같은 사람이 생긴 것은 이런 사회를 만든 우리 모두의 잘못이 아닐까? 원영이 부모가 얼굴 있는 살인자라면 우리 모두는 얼굴 없는 살인자인지도 모른다. 인간성을 상실한 잔인하고 삭막한 사람들이 이 사회에 넘쳐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이런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랑과 정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었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회는 영원히 올 수 없는 우리의 이상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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