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6. 6. 12. 청구회 추억

아~ 네모네! 2016. 7. 9. 15:12

칼날 위를 걷는 인생

아 네모네 이현숙

   신영복 교수의 청구회 추억을 읽었다. 신 교수는 올해 173세의 나이에 피부암으로 사망했다. 1944년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를 하였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사형언도를 받았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감옥에서 2020일을 복역하였다. 그의 죄명은 청구회 노래의 가사가 국가 반란을 노리는 폭력과 파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내용인즉 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처럼 우리는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라는 것이다. ‘주먹 쥐고가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폭력의 준비를 암시한다는 것이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신영복은 강사 시절 서울대 문학회 동아리 회원들과 서오릉으로 소풍을 간다. 가는 길에 청구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그들과 한 달에 한 번씩 장충체육관 앞에서 만나 책도 빌려주고 독후감도 나누며 그야말로 아름답고 순수한 모임을 가졌다.

   19681월 청구회 회원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고 장충체육관 앞에서 1시간 40분 동안 기다렸지만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해 8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심문을 받았고 사형 언도를 받았다. 이 글은 사형 언도를 받은 상태의 감옥에서 매일 두 장씩 지급되는 재생종이 휴지에 기록한 것이다.

   교도소에서는 글 쓰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 그는 이 종이들을 공책처럼 묶어 몰래 감추어 두었다. 19719월 갑자기 이송 통보를 받고는 소지품 검사에서 압수될 것이 뻔~ 하여 근무 헌병에게 부탁했다. 집에 전달해 주거나 아니면 당신이 가져도 좋다고 하였다.

   긴 옥중 생활 동안 모든 것을 잊고 지내다가 출소 이듬 해 이사할 때 아버지의 방에서 이 묶음을 발견했다. 어느 청년이 전해 주었다고 하였다. 아마도 아버지는 아들의 안전을 염려하여 긴 세월 장롱 깊숙이 숨겨 놓았을 것이다.

   출소 3년 후 청구회 회원 한 명에게서 전화를 받았고, 학교에서 만났다. 중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그들 중 한 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어떤 친구는 의정부에서 헬스클럽을 운영한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이 청구회 어린이들을 만난 것은 고등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의 작품 전장의 아이들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미술실에 걸려 있던 그 작품은 여섯 명의 아이들이 전쟁의 비극과 공포에 질려 서로 엉켜있는 모습이다.

   그는 출소 후 다시 미술실에 가서 그 그림을 보고는 서오릉에서 만난 여섯 명의 아이들이 바로 이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운명의 힘이 작용했음을 느낀다.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생각지도 못한 상황으로 내몰릴 때가 종종 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강사로 취직까지 했을 때, 승승장구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가 사형 언도를 받고 다시 무기 징역수가 되어 20년 이상 숨 막히는 감옥에서 지낼 줄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 꼴을 봐야하는 그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칼로 도려내듯이 아팠을까? 말 한 마디 까딱 잘못 하다가는 용공으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세상에서 그 부모들은 숨소리 한 번 크게 내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이런 세상에 태어난 것을 한탄했을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세균과의 싸움, 자연과의 싸움, 온갖 사고와의 싸움을 겪게 된다. 이 모든 걸 이기고 천신만고 끝에 그 때까지 살아오는 것도 힘든데 여기에 이념과의 싸움까지 겪은 세대는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을까?

   모든 싸움 중에 가장 길고, 가장 치열한 싸움은 이념과의 싸움이 아닌가 싶다. 십자군 전쟁도 그렇고 요즘 IS와의 전쟁도 그렇다. 어찌 보면 너무도 하찮은 일로 싸우는 게 아닐까? 다른 동물들이 보면 정말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이념을 지킨다고 떡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인간들은 왜 아무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저리도 죽이고 때려 부수고 난리를 치나 할 것이다.

   우리 윗세대는 이념의 희생양이 되어 산 세대다. 6.25를 겪으며 무수한 생명이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뭔 지도 모르면서 그 급류에 휘말려 죽어갔다. 신영복 교수도 대표적인 예다. 그는 순수하고 창조적인 일을 하다가 아까운 청춘을 감옥에서 다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상을 주어도 대통령 표창을 주어야할 텐데 정말 너무도 안타까울 뿐이다. 그는, 그리고 그 세대의 사람들은 한 마디로 칼날 위를 걸어온 사람들이다. 어느 누가 그의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우리 모두의 아픔이다.

   중간 중간 들어간 삽화도 너무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이런 책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 영문 번역도 곁들여 맛을 더한다. 우리의 문학도 이렇게 외국어로 번역되어 세계인들에게 두루 읽혔으면 좋겠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 7. 7. 얼굴 없는 살인자  (0) 2016.11.19
2016. 6. 19. 존재의 불안  (0) 2016.07.09
2016. 6. 2. 스마트한 스마트폰  (0) 2016.07.09
2016. 5. 20. 완전 악기  (0) 2016.07.09
2016. 5. 19. 나는 아수라  (0) 2016.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