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6. 5. 19. 나는 아수라

아~ 네모네! 2016. 7. 9. 15:05

나는 아수라

아 네모네 이현숙

   소파에 앉아 TV를 보다가 문득 남편이 거실에 놓인 화분을 바라보며 한 마디 한다.

시클라멘이 다 죽어 가는데 갖다 버릴까? 그래도 아직 생명이 붙어있는데 버릴 수는 없겠지?” 한다. 순간 시클라멘이 죽음의 공포에 떠는 모습이 보인다.

   낮에 읽었던 백석 시인의 시 수라가 떠오른다. 백석은 차례차례 나타난 거미 세 마리를 창밖으로 내 던지며 어미와 형과 동생으로 생각한다. 서로 만나서 잘 살기를 빌며 자신의 마음을 위로한다. 그의 섬세한 더듬이가 가슴으로 와 닿는다. 거미 한 마리 죽인 것도 아니고 창밖으로 던졌을 뿐인데 그는 자신을 수라로 생각한 것 같다.

   수라는 아수라의 약자다. 불교의 팔부중 하나인데 악귀의 세계에서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이다. 그는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인 악질 귀신이다. 엉망진창으로 난장판이 되었을 때 아수라장이라고 한다.

   거실에는 별 볼 일 없이 죽어가는 화분이 여섯 개 놓여있다. 사위가 승진했을 때 들어온 화분이라고 준 서양 란도 꽃은 다 지고 잎만 몇 개 남아있다. 수필교실 윤선생님이 몇 년 전 회원들에게 나누어준 호접란도 두 개가 있고, 5년 전 딸이 캄보디아로 이사 갈 때 주고 간 바이올렛도 입이 몇 개 안 남았다.

   모두 죽음을 앞 둔 것이라 꼭 우리 집 두 노친네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남편도 보기가 힘들었나보다. 말은 이렇게 해도 남편은 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한다. 언젠가도 시들어가는 화초가 불쌍한지 망우산 자락에 가져가 땅에 심어주고 왔다. 하지만 나중에 가보니 결국 죽고 대궁만 남았다.

나는 집 안에서 모기나 벌레가 나타나면 무조건 반사적으로 때려잡는다. 남편은 종이로 싸서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내보낸다. 어찌 보면 좀스럽기도 하고 어찌 보면 나보다 착한 심성을 가진 것 같기도 하다.

   아들이 고 3 때 모기 한 마리가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두 손을 펴고 때려잡으려다 나도 모르게 멈칫 하고 멈췄다.

이 놈이 한을 품고 죽으면서 그 한을 내 아들에게 갚으면 어쩌지?’

모기보다 더 나약해지는 게 자식을 둔 부모 마음인가보다. 자식을 위해 물불을 안 가리고 달려드는 아줌마의 근성이 있는가 하면 때론 한 없이 나약해지는 게 부모다. 나는 같은 나인데 아수라가 되었다 부처님이 되었다한다. 자식은 나의 든든한 울타리도 되지만 나의 한 없이 약한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이곳을 잡히면 맥이 빠져 꼼짝을 못한다.

   우리 인간은 무수한 생물에게 아수라인지도 모른다. 지나다니는 개미나 지렁이는 인간이 다가오면 얼마나 공포에 떨까? 우리는 무심코 밟겠지만 그들은 생사가 왔다 갔다 하는 순간이다. 길 가에 핀 야생화도 등산객들의 무지막지한 등산화에 짓밟혀 목숨을 잃는 일이 허다하다. 산행하다 보면 껍질이 없는 민달팽이가 밟혀서 터져 죽은 것도 종종 볼 수 있다.

   칠십 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살해했을까? 매일 먹는 것도 알고 보면 모두 남의 몸이요 남의 생명이다. 인간은 생명을 가진 생물이니 남의 생명을 먹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1365일 하루 세끼씩 68년을 먹었으니 가히 천문학적 살생을 한 것이다. 거기에 간식까지 먹었으니 그야말로 무한대에 가까운 생명체를 먹어치운 것이다.

   식물처럼 물과 공기와 햇볕만 먹으며 살 수는 없을까? 어찌 보면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어야만 하는 이 세상이 지옥이요 아수라장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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