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6. 4. 21. 등산화의 일생

아~ 네모네! 2016. 7. 9. 15:02

등산화의 일생

아 네모네 이현숙

   우리 가족의 이름은 마인들이예요. 독일에서 태어났죠. 한국 사람들이 저희를 각별히 사랑하는 관계로 우리들은 형님 동생 모두 함께 비행기 타고~ 배 타고~ 한국으로 왔답니다. 저는 삼성동에 있는 파타고니아 매장에 앉아 있었어요.

   하루는 웬 늙수그레한 할머니가 들어왔어요. 설마 저런 할머니가 나를 데려가지는 않겠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나를 번쩍 집어 드는 거예요. 에고~ 내 팔자야~ 하는 내 소리를 들었는지 말았는지 내 주인은 나를 신고는 신고 왔던 신발은 버리고 거리로 나갔죠. 신발 들고 가기 귀찮다고 아예 버릴 신발을 신고 왔더군요.

   비는 억수로 쏟아지는데 첫 나들이부터 이게 웬 고생이람. 내 몸값이 50만원이나 되는데 이래도 되느냐고 불평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첫 날부터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어요. 귀티 나는 내 스타일 확 구겼죠.

   할망구니까 살 살 다니며 아껴주겠지 했더니 착각이었어요. 일주일에도 몇 번씩 나를 신고는 뺑뺑이를 돌리는데 아주 죽을 맛이었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도대체 아스팔트길이건 엉망진창 진흙탕이건 가리지를 않아요. 이렇게 심하게 부려먹으니 견딜 수가 있어야죠. 2년도 못 되어 밑창이 다 닳아 버렸어요. 주인은 저를 수리하겠다고 매장으로 들고 왔죠. 점원이 어째 이렇게 빨리 닳았느냐고 나를 꼼꼼히 살피더니 두고 가라고 하더군요. 저는 다시 다른 부상자들과 함께 비행기 타고~ 배 타고~ 고향인 독일로 갔어요.

   제 고향에서는 제 밑창을 떼어내고 새 것으로 깨끗이 고쳐주었어요. 대수술을 마친 저는 몇 달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저는 주인에게 돌아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주인 품으로 왔죠. 이게 제 운명인 걸 어쩌겠어요. 주인에게 돌아오자 또 혹독한 노동이 시작 됐어요. 제가 착용감이 좋다고 저만 부려먹는 거예요. 신장에는 다른 아이들도 많은데 그 애들은 놀고먹는 게 일이더라고요. 이래서 무재주가 상팔자라는 속담이 생겼나봐요.

   몇 년 지나니 또 밑창이 다 닳아 병원으로 가게 생겼어요. 삼성동에 있던 매장이 없어진 관계로 택배 차에 실려 다른 매장으로 갔죠. 거기서 다른 부상자들과 함께 또 제 고향인 독일로 갔어요. 고향에 돌아오자 의사는 만신창이가 된 저를 해부했어요. 그러자 내장에 든 뼈까지 부러져 도저히 고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의사는 한국으로 연락해 수리가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한국 매장에서 제 주인에게 연락하자 그럼 그냥 폐기처분하라고 하더군요. 배신감과 깊은 절망감이 밀려오더라고요. “해도 해도 너무 한 거 아닌가요?” 항의 하고 싶지만 아무 말도 안 나왔어요. 제 수명이 거기까진 걸 어쩌겠어요. 이제 화장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어요.

   하지만 행복한 날도 많았어요. 저를 신고 일본 북 알프스로, 미국으로, 또 캐나다와 남미 대륙까지 쏘다닐 때는 정말 신났어요. 제 주인이 아니면 제가 어떻게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캄차카와 아프리카 우간다까지 구경했겠어요. 이제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이 순간에도 저는 그 시절의 황홀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이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어요. 어쩌면 이제 영원한 안식이 나를 기다릴 거예요. 나는 이런 주인을 만나 참 행복한 시절을 보냈어요. 다시 태어나도 내 주인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