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6. 4. 10. 생로병사의 불안

아~ 네모네! 2016. 7. 9. 14:59

생로병사의 불안

아 네모네 이현숙

   生: 엄마의 자궁 양수 속에서 신나게 헤엄치며 논다. 갑자기 자궁이 수축되며 조여 오는데 온몸이 으스러지는 것 같다. 뼈가 부서지기 직전 갑자기 밝아지며 넓은 세상으로 내동댕이쳐진다. 탯줄이 잘린다. 갑자기 숨이 막힌다. 질식하여 죽을 지경이다. 너무 무서워 으앙 하며 우는 순간 내 허파 속으로 공기가 들어온다. 하지만 아무 기억도 없다.

   老: 성장기가 지나니 노화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잘 모르겠더니 얼굴은 갈수록 쭈그러지고 머리는 흰색으로 변한다. 마사지도 받아보고 염색도 해보지만 속수무책이다. 허리는 구부정해지고 걸음걸이도 엉거주춤해서 앞태를 보나 뒤태를 보나 완연한 노인이다.

점을 빼고 수술로 눈 가의 주름도 없애고, 턱뼈도 깎아내며 안간 힘을 쓰는 사람도 있다. 흰 머리를 뽑다 뽑다 안 되면 염색을 하고 머리숱이 적어지면 가발을 쓴다. 나는 성형도, 보톡스도 용기가 안 난다. 흰 머리를 염색하려면 머릿속이 가려워 견디기 힘들다. 그냥 포기한다. 젊음이 사라지는 게 불안하다.

   病: 요즘 평평한 길은 한 눈을 감고 다닌다. 서 있거나 앉아있을 때는 두 눈 다 감는다. 경사진 길이나 계단에서는 거리감이 없어져 넘어질까봐 어쩔 수 없이 두 눈 뜨고 다닌다. 화장할 때도 눈이 따가워 한 눈만 뜨고 한다. 한 눈으로 보아도 이렇게 힘든데 두 눈 다 안 보이는 사람은 얼마나 불편할까 상상하기 힘들다.

백내장 수술 후 한 달 정도 지나서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세 달이 지나도록 눈의 혈흔이 없어지지 않고 자꾸 터진다. 어쩌다 컴퓨터라도 좀 보려면 한 쪽 눈을 가리고 자판을 두드린다. 불편하다. 이러다 아주 실명되는 거 아닌가 겁이 더럭 난다. 눈을 쉬려고 소파에 누웠다. 갑자기 눈이 이상해 방에 가 거울을 보니 왼쪽 눈에 검은 눈동자가 없다. 온통 허옇다. 깜짝 놀라 응급실에 가려고 서두르다가 눈을 번쩍 뜬다. 꿈이다. 더 망가지기 전에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혈액순환을 하지 않으면 실핏줄도 터지지 않을 텐데 말이다. 언제 무슨 병이 걸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산다.

   死: 죽음의 문턱은 또 얼마나 높을까? 누구나 잠자듯 스르르 저 세상으로 가고 싶어 한다. 사고로 죽는 건 너무 참혹하고 병들어 죽는 건 너무 괴롭다. 잠자듯 편안하게 가면 얼마나 좋을까? 이건 천복을 타고 난 사람만 가능할 것이다. 이런 복을 누리고 싶다. 너무 큰 욕심인가? 결국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불안 속에 태어나 불안 속에 가는 불쌍한 존재가 아닐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가 아니라 불안에 떠는 사형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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