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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16. 2. 14.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by 아~ 네모네! 2016. 7. 9.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아 네모네 이현숙

   기형도 시인의 빈집이란 시를 읽었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라는 구절이 내 가슴을 찌른다.

  지난달에 백내장 수술을 했다. 아직 보는 것이 부자연스럽고 눈이 부시다.

수술 후 주의사항에 한 달간은 금주하고 두 달까지는 과음하지 말라고 쓰여 있다. 구정 때 이제 한 달 지났으니 괜찮겠지 하고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 어째 눈이 뻑뻑한 듯하여 집에 와서 눈꺼풀을 내려 보니 출혈이 되어 선명한 빨간색으로 변했다.

   수술할 때 각막을 째고 수정체를 꺼낸 후 인공렌즈를 넣었는데 그 곳이 다시 터졌나보다. 막걸리 한 잔은 과음이 아니겠지 하고 방심했더니 나에게는 그것도 과음인가보다. 코가 비뚤어지거나 인사불성이 되도록 마시는 게 과음이라 생각했더니 사람마다 다른 모양이다. 알코올이 들어가자 혈액순환이 왕성해지면서 붙었던 곳이 다시 벌어진 것 같다.

   나날이 몸이 망가진다. 한 곳이 무너지면 도미노 현상처럼 줄줄이 무너진다. 여기저기 세상구경 하고 싶은 열망은 아직 식지 않았는데 몸은 삭을 대로 삭아빠져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다.

   11월 말에 시멘트 바닥에서 넘어져 무릎 인대가 늘어나는 바람에 12월에는 산에 별로 가지 못했다. 1월에는 백내장 수술 때문에 못 가고 구정이 지나 오랜만에 롯데 화요트레킹에 나가려고 했는데 또 브레이크가 걸린다.

   월요일마다 대장님한테서 내일 산행지에 대한 문자 메시지가 온다. 내일은 소백산에 간다고 한다. 마침 전국적으로 눈이 온다는 예보도 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배낭을 챙기고 간식으로 사과도 네 개 까서 랩으로 잘 씌워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설국으로 변했을 비로봉을 상상하며 한껏 마음이 부풀었다.

   모든 준비를 끝냈는데 저녁에 눈이 또 이상하다. 다시 거울을 보니 먼저 보다 더 많이 출혈이 되었다. 가슴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도무지 살맛이 안 난다. 화요일에 산으로 가지 못하고 안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지금쯤 휴게소에서 쉬겠구나. 지금쯤은 어의 계곡으로 한참 오르고 있겠구나. 마음만은 나도 소백산을 걷고 있다.

   산행 후 카톡방에 줄줄이 올라오는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쓰리다 못해 아리다. 상고대와 눈꽃으로 범벅이 된 속을 걷는 회원들의 모습이 겨울왕국의 소피아 공주 같다. 그 속에 들어가지 못한 내가 한 없이 초라하다.

   미국 서부에 있는 존뮤어트레일도 걸어보고 싶고 뉴질랜드 남섬의 루트번 트레일도 걷고 싶다. 하지만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존뮤어트레일은 400키로 가까이 되는 긴 거리다. 중간에 하산할 수 있는 곳도 한 군데 밖에 없다. 근 한 달 가까이 걸린다고 한다. 중간에 산장도 없으니 텐트와 먹을 것을 지고 다녀야한다. 열망은 하늘을 찌를 듯 높은데 두 발은 땅에 붙어 꼼짝을 못한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정신 분열증이 아니고 몸 분열증이 생길 것 같다. 마음만은 아직도 청춘인데 이걸 따라가지 못하는 내 몸이 밉다. 아무래도 이 놈의 열망 때문에 제 명에 못 죽을 것 같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욕심이 지나치다. 환갑 진갑 다 지나고 내일 모레면 칠순이 다가오는데 어딜 가겠다고 이렇게 설쳐대는지? 옛날 같으면 벌써 고려장을 당해 백골이 되어 숲 속에 누워있을 텐데 말이다.

   사람은 가진 것은 못보고 가지고 싶은 것만 보이는 반쪽짜리 애꾸눈을 가졌나보다. 해마다 봄에 온갖 꽃이 흐드러질 때면 꽃으로 차린 잔칫상을 받는 기분이다. 그럴 때마다 이런 잔칫상을 육십 번이 넘게 받은 내가 참 복이 많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더 달라고 하면 내가 칼만 안 들었지 날강도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오만가지 욕심이 생긴다. 여기도 가보고 싶고 저기도 가보고 싶고,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고. 끝없는 열망이 나를 사로잡아 노예로 만든다. 가보고 싶은 데가 하도 많아 이백년을 살아도 부족할 지경이다. 우리 인간은 평생토록 열망의 노예가 되어 질질 끌려가다가 결국에는 무덤으로 들어가는 가여운 존재인 지도 모른다. 이제 내 몸을 보고 또 들여다보며 열망의 불을 끌 때가 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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