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4. 4. 17. 성북동 문화탐방 (기행문)

아~ 네모네! 2014. 4. 19. 17:40

 

길이 피는 길상화

 

아 네모네 이현숙

 

                                                                                                                        기간 : 2014417

                                                                                                                        장소 : 성북동 일대

 

  한국수필가협회에서 성북동으로 문화탐방을 떠났다. 솔직히 말하면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성북동에 무슨 볼거리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내 예상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8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동하려니 네 팀으로 나누어 이동하였다. 우리 C팀은 심우장-이종석별장-수연산방-한양도성-마전터-최순우옛집-선잠단지-길상사 순으로 탐방했다. 매 팀마다 성북동에서 나온 해설사가 두 명씩 인솔하며 친절하게 안내해주니 개인적으로는 도저히 누릴 수 없는 호사를 누렸다.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 선생이 지은 집이다. 심우(尋牛)는 불교에서 쓰는 용어로 자신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뜻이다. 보통 남향으로 집을 짓는데 이 집은 북향집이다. 남향으로 지으면 조선총독부 건물이 보여 북향으로 지었다한다. 소처럼 우직한 그의 성품과 활활 타는 애국심이 느껴진다.

  이종석 별장은 마포나루에서 젓갈장사를 하여 큰 부자가 된 이종석의 별장이다. 넓은 잔디밭과 귀티가 줄줄 흐르는 건물이 누구나 머물고 싶은 집이다. 여기 살면 다 귀족이 될 듯하다. 마침 마당에는 스프링클러가 빙빙 돌며 물을 뿌리고 있다. 정원에는 흰 매화, 라일락, 금낭화 등 온갖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수연산방은 소설가 이태준 선생이 십 여 년 간 머물면서 집필 활동을 하던 곳이다. 항아리 받침의 탁자가 놓인 아름다운 정원과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이 정겹다.

  한양도성은 조선시대의 성으로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석성이다. 크고 작은 돌들로 이루어졌는데 축성되거나 보수된 시대에 따라 돌의 크기와 모양이 다르다. 마침 성벽 옆에는 철쭉이 만발하여 아름다움을 더한다.

  마전터는 성북천 가에 있었는데 지금은 개천이 복개되어 큰길가에 표지석만 남아있다. 성북동은 물이 맑고 경치가 좋지만 땅에 돌이 많아 농사짓기가 힘들어서 사람이 거주하기 곤란한 땅이었다. 영조는 서울 각 시장에서 파는 포목의 마전하는 권리를 이곳 사람들에게 주어 사람들이 정착하도록 하였다. 마전이란 포목을 물에 빨고 개울가 돌에 널어 햇빛에 표백시키는 작업이다. 지역 특성을 잘 살려 민초들의 삶을 도와준 영조의 깊은 사랑이 느껴진다.

  최순우 옛집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 선생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던 집이다. 그는 여기서 그의 명저인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집필하였다. 자 형으로 된 건물 중앙에는 모란 꽃봉오리가 입을 잔뜩 오므리고 만개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선잠단지는 누에를 처음 쳤다는 서릉씨를 누에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성종 때부터 뽕나무가 잘 자라는 이곳에 제단을 세우고 누에 농사가 잘 되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원래의 선잠단은 사직단 쪽으로 옮겼지만 지금도 매년 5월 이곳에서 선잠제를 지내고 있다. 홍살문 안으로 들어서면 선잠단지 앞에 많은 뽕나무가 싹을 틔우고 꽃망울을 달고 있다.

  길상사로 들어서니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운지라 오색찬란한 연등이 빼곡히 걸렸다. 길상사는 최고급 요정이던 대원각이 있던 곳이다. 이 요정의 주인이던 김영한 여사가 7천 평이 넘는 이 대지와 건물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였다. 지금 싯가로 치면 천억 원이 넘는다고 하니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법정스님은 이 자리에 길상사라는 이름으로 절을 만들었고 김영한에게는 길상화라는 법명을 내렸다. 천억은커녕 천원도 아까와 하는 내 손이 부끄럽다. 그녀는 얼마나 불심이 깊었으면 이런 엄청난 재산을 기부할 수 있었을까? 그녀의 이 선행으로 지금 무수한 내국인과 외국인들이 이곳을 찾으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있다. 길상화의 따뜻한 마음이 이 땅에 길이길이 피어났으면 좋겠다. 요즘 세월호 전복사고로 온 국민이 비탄에 빠졌는데 여기 와서 큰 위로를 받았으면 좋으련만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스님들이 줄줄이 내려온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사진을 찍어대니 한 분이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다. 얼른 카메라를 내리고 보니 신위를 든 사람들이 뒤따르고 있다. 아마 신위를 모시는 행사중인가보다. 경건하고 엄숙한 의식에 무슨 구경거리라도 난 듯 카메라를 들이댄 나의 행태가 부끄럽다.

  길상사는 하나 밖에 없는 내 올케가 다니는 절이다. 친정 엄마는 절에 열심히 다녔는데 여섯 명이나 되는 딸은 모두 교회에 다닌다. 그래도 엄마의 염원이 이루어졌는지 엄마의 사후에 들어온 며느리가 불심이 돈독하다. 올케는 처음 결혼했을 때는 불교를 믿지 않았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열심히 절에 다니게 되었다. 돌아가신 엄마의 기원이 있었나보다. 그녀는 매일 길상사에 다니며 봉사를 한다. 법정스님 장례를 치를 때는 손님들이 엄청나게 몰려와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하늘나라에 있는 엄마가 흐뭇하게 미소 지을 것 같다. 그런데 극락에서 서로 만나면 얼굴이나 알아보려나 모르겠다.

  위쪽으로 올라가니 법정스님이 거처하던 집이 나오고 화단 한편에 법정스님 유골 모신 곳이라는 작은 팻말이 보인다. 고래 등 같은 부도 탑을 세워도 아깝지 않을 스님이 이렇게 작은 화단에 흔적도 없이 묻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무소유를 인생 최고의 미덕으로 알고 살아가신 스님의 마음이 엿보인다.

  스님이 계시던 집을 내려오니 계곡 건너편에 시주 길상화 공덕비가 보인다. 비석 위쪽에는 비행접시 모양의 돌조각이 얹혀져있다. 그녀의 마음을 닮은 조촐한 비석이다.

  성북동 기행을 마치고 옹기종기라는 음식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환담을 나눴다. 오늘의 성북동 기행은 생각지도 않은 횡재를 한 기분이다. 우리나라 곳곳에 숨어있는 이런 보물들을 더 아끼고 사랑하며 자주 찾아 후손에게 우리 민족의 깊고 아름다운 문화를 이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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