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3. 10. 17~18. 문학기행

아~ 네모네! 2013. 10. 19. 16:48

잔 대보지.

 

아 네모네 이현숙

 

  미래수필문학회에서 산정호수로 문학기행을 떠났다. 오전에 수필교실 수업을 마치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을 향기 물씬 풍기는 시골길을 달렸다.

  내촌에 있는 참나무쟁이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누런 황소인지 암소인지 암튼 누렁이 한 마리가 마당 한 구석에서 우리를 반긴다. 강아지는 사람이 오면 짖던지 꼬리를 치던지 하면서 아는 체를 하는데 소는 올 테면 와라 갈 테면 가라 도통 반응이 없다.

  소의 눈은 한 없이 선량하고 착하게 생겼다. 속눈썹도 길고 쌍꺼풀도 있는 게 거금(巨金) 주고 수술한 눈보다 백배 낫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도 마음이 평온해 지는 게 소가 되어간다.

  비빔밥과 조랭이 떡국으로 맛깔난 식사를 하고 뒤꼍으로 나가니 시냇물에서 오리들이 놀고 있다. 다들 따뜻한 햇볕을 쬐며 털 고르기가 한창이다. 새들도 신방을 차리기 전에 몸단장을 한다던데 재내들이 오늘밤 합방을 하려고 그러나?

  식사 후 고석정으로 향했다. 고석정은 여러 번 가봤지만 언제 봐도 절경이다. 한탄강에 우뚝 선 바위는 말 그대로 외로운 바위다. 임꺽정은 바위 꼭대기 굴에 숨어살며 의적이 되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위해 관아를 털어 빈민에게 나누어주는 등 활약을 하다가 결국은 관군에게 잡혀 처형되었다. 명종 때 사람이니 이미 오백 년의 세월이 흘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힘없는 백성을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이런 의인이 있어 세상은 여전히 균형 있게 굴러가는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바위 꼭대기까지 올라가 굴도 구경하곤 했는데 지금은 출입금지 팻말을 곳곳에 붙여놓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대신 유람선을 타고 곳곳을 바라볼 수 있다. 한탄강을 따라 내려가며 거북바위, 잉어바위, 선녀탕 등을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고석정에서 나와 한화콘도로 달렸다. 산정호수 아랫자락에 있는 아담한 콘도다.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세미나 준비를 한다. 간식이 푸짐하다. 회장인 유영희씨가 보낸 빵과 과자, 부회장인 이남수샘이 해온 시루떡, 김치까지 한 상 가득하다.

  초대회장인 원명재님이 권남희 선생님의 글을 읽은 후 각자 자신의 글을 낭독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마디 글이 그 사람을 더 잘 나타낸다. 우리는 글로 교제하는 사람이라 오장육부까지 넘나들며 사귄다. 그게 수필교실의 최대 강점이다.

  세미나를 마치고 근처에 있는 두메산골 식당으로 갔다. 매운탕에 더덕정식, 해물파전, 도토리묵 등 각자의 취향대로 주문한 후 막걸리를 따랐다. 건배제의를 하는데

얘들아 한잔 하자. ! 형님.”

시발조통 (시국의 발전과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개나발”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등 여러 가지 제의가 시들해질 쯤 한 회원이

잔대보지?” 한다. 잔을 대보자는데 다들 요절복통을 한다. 그 후로는 봇물 터진 듯 줄줄이 사탕으로 딸려 나온다.

마셔보지?” “ 또대보지?” “달래보지?” “먹어보지?” “취해보지?” 원 세상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보지가 있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보지로 시작해서 보지로 끝나는 식사를 마치고 노래방으로 향했다. 직장 다닐 때부터 노래방만 간다고 하면 가는 도중 적당히 사라져 공공의 적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나는 아직도 그 버릇을 못 버렸다. 제일 뒤에서 따라가는 척하다가 냇물의 징검다리를 건너 방으로 돌아왔다. 노래도 못 하지만 술 한 잔 먹으면 온몸이 노곤한 게 그 자리에 그냥 드러눕고 싶다.

  로비의 직원에게 말해 방문은 열었는데 열쇠가 없으니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열쇠꽂이에 나무젓가락 세 개를 꽂으니 불이 들어온다. 이런 놈 속이기는 누워서 식은 죽 먹기다.

  방에 와 씻고 누우니 하루의 피로가 몰려온다. 강순씨와 순영씨도 곧 돌아온다. 내가 없어서 찾는다는 핑계를 대고 빠져 나왔단다. 사실 끝까지 협조를 해야 하는데 미꾸라지처럼 도망 다니는 게 미안하기는 하다. 셋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가 잠이 들려는데 다들 돌아오는지 시끌벅적하다.

 

  다음 날 침대에서 어렴풋이 눈을 뜨니 호수 쪽에 안개가 자욱하다. 물안개가 멋질 것 같아 옷을 입고 나서려는데 강순씨도 따라 나선다. 혜영씨는 벌써 일어나 회원들에게 나누어 줄 떡을 일일이 포장하고 있다. 도와줘야 하는데 안개가 사라지기 전에 보고 싶은 욕심에 그냥 방을 나섰다.

  주차장 건너 계단 길을 가파르게 오르니 호수가 나타난다. 물안개가 자욱이 피어오른다. 더운 물에서 김이 솟아오르는 듯하다. 안개 속에서 오리들이 줄을 지어 헤엄친다. 그야말로 한 폭의 동양화다. 호숫가로 나무데크를 만들어 놓아 사진 찍기 안성맞춤이다.

  물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를 보려니 외손녀 송희 생각이 난다. 엄마에게 안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2년 넘게 살다보니 안개를 못 보았나보다. 지난 여름방학 때 우리 집에 다니러 왔다. 그림책을 보다가 사람 수를 한 마리 두 마리 하며 세는 걸 보았다. 순간 이거 큰일 났구나 싶다. 외국인 학교 유치원에 다니며 영어로 공부하다보니 한국말이 서툴다. 나중에 한국 오면 어리버리해서 왕따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안개를 찍어 송희에게 보내줘야겠다.

  강순씨도 멋지다고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어대다가 아차 윤중일 선생님께 빨리 나오라고 해야겠다고 전화를 한다. 나는 그 선생님은 허구한 날 새벽같이 사진 찍으러 다니시는데 벌써 나오셨겠지 했더니 그래도 해보자고 한다. 전화를 하니 그렇지 않아도 어제 저녁 식당에 카메라를 두고 와 지금 찾아오는 중이란다.

  주차장 앞 폭포 왼쪽 계단 길로 올라오라고 알려드리고는 데크를 따라 끝까지 가며 명성산에 걸린 구름과 안개를 찍었다. 주위가 서서히 밝아오며 색깔이 시시각각으로 변해간다.

  8시에 아침식사를 하기로 해 일출을 본 후 바로 콘도 지하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아욱국을 시켰는데 맛이 환상이다. 아침 운동을 해서 그런지 된장국물이 입에 착 감긴다.

  식사 후 방에 돌아와 커피 타임을 가진 후 일부 회원은 호수를 한 바퀴 돌기로 하고 일부 회원은 명성산에 오르기로 했다. 윤중일, 김경수, 허해순, 나 이렇게 네 명만 산에 가기로 했다. 주차장에 나와 산으로 가려다 보니 저 아래쪽에 김경수 선생님이 보인다.

  빨리 오라고 김경수쌤~ 하고 불러도, 경수쌤~ 하고 불러도 듣지를 못한다. 답답하여 경수야~ 하고 부르니 얼른 뒤돌아본다. 아무래도 어려서부터 듣던 호칭이 얼른 귀에 들어오나 보다. 앞으로도 쭈~욱 이렇게 불러야하려나?

  12시까지 로비로 오라고 하여 부지런히 상가들이 늘어선 골목을 지나 산책길로 올랐다. 호수를 옆에 끼고 한참 가니 위의 주차장이 나타난다. 상부 주차장을 보는 순간 아차 싶다. 기사가 두 명이나 있는데 차를 타고 여기까지 왔으면 왕복 40분은 절약하는 건데 하며 후회막급이다. 새대가리를 한탄하며 등산로 입구로 들어섰다.

  시간이 일러서 사람이 별로 없다. 계곡에는 여기 저기 단풍이 들어 눈요기를 시켜준다. 등룡폭포에 이르니 시원한 물줄기가 힘차게 쏟아진다. 밑의 웅덩이는 과연 용이 살았을 듯 시퍼런 물이 소용돌이친다.

  더 올라가니 억새 축제장 30분이라고 쓰여 있고 노점상이 있다. 아이스크림 통을 보더니 해순씨가 달려가 두 개를 사들고 온다. 막 땀이 나려고 하다가 꽁꽁 언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으니 땀이 싹 들어간다.

  시간이 부족하여 억새밭은 포기하고 다시 내려왔다. 콘도 앞에 오니 안혜영씨가 기다리고 있다. 차를 타고 점심 식사 장소인 산비탈 식당으로 갔다. 순두부 백반으로 요기를 한 후 서울로 향했다.

이번 기행은 날씨 좋고, 작품 좋고, 음식 좋고, 숙소 좋고, 경치 좋고, 다 좋은데 몸이 아파 회장과 부회장이 불참한 것이 못내 아쉽다. 차를 타고 오며 회장 부회장에게 잘 마치고 점심 먹고 서울 가는 중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성숙씨에게서는 오랜만에 일어나서 머리 감으니 넘 행복하다는 답장이 왔다. 다행이다. 하지만 영희씨에게서는 자동답장이 왔는데 지금은 답장 드리기 어려우니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온다. 얼마나 힘들면 답장도 못할까 싶어 마음 한 구석이 짠하다. 빨리 회복되어 함께 웃고 함께 글 쓰며 지냈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회원 모두 다함께 더 보람 있고 더 즐거운 문학기행을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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