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3년 5월 발틱여행

아~ 네모네! 2013. 6. 9. 18:37

누가 가자 그랬어?

 

아 네모네 이현숙

 

기간 : 2013515~ 529

장소 :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폴란드,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큰일 났네. 2주 후에 해외여행 가야하는데.”

중부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후 처음 떠오른 생각이다. 남편 차로 대전 조카 결혼식에 다녀오다가 큰 사고를 냈다. 차선을 바꾸는 순간 뒤차가 와서 쾅하고 박았다. 오른쪽 앞 범퍼가 박살나며 우리 차가 왼쪽으로 튕겨나갔다. 중앙 분리대를 박는 순간 에어백이 터지며 가슴을 때렸다. 그 순간은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 정신이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 왼손과 오른발에 피멍이 들고, 가슴이 아팠다. 숨을 크게 쉴 수도 없고 트림만 해도 갈비뼈가 아팠다.

  다음 날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뼈는 부러지지 않았으니 약을 먹으며 물리치료를 받으라고 한다. 2주일 동안 열심히 치료 받고 지네닭을 해먹으며 빨리 낫기를 빌었다.

  손과 발의 멍은 거의 없어졌는데 여전히 가슴이 아프다. 이거 여행을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걱정이다. 가슴이 아프니 움직이기도 힘들고 물건을 들기도 힘들다.

  하지만 나에게 이번 여행 코스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생각으로 따라 나섰다.

 

나보다 한 술 더 뜨네! ( 515)

  인천공항에서 일행을 기다리는데 상윤씨가 어깨에 팔걸이를 하고 나타난다. 며칠 전 넘어져 팔이 빠졌다고 여행을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이라고 전화가 왔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니 무조건 가자고 했더니 기어이 팔걸이를 하고 나타났다. 나도 못 말리는 인간이지만 상윤씨는 한 술 더 뜬다.

  비행기에 올라 가만히 앉아있자니 어린 아기가 통로에서 아장아장 걸어 다닌다. 이 아기를 보고 있자니 돌이 지난 손자 생각이 떠오른다. 그저 할머니 머릿속에는 손자 밖에 없나보다.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말을 걸어온다. 자기는 67년에 영국으로 유학 가서 지금 영국에 산단다. 분당에도 89평짜리 아파트가 있고 영국에도 집이 있다고 한다. 자기 누나는 외도 주인이라고 하는 걸 보니 엄청 부잣집인가보다. 사위는 영국 사람이고 기업체를 운영한다고 딸 자랑 사위자랑이 이어진다. 그저 늙으면 자식이 잘돼야 어깨에 힘이 들어가나 보다.

  할 일이 없어 멍하니 모니터를 보니 현재 기온이 화씨로 얼마이고 섭씨로 얼마라고 나온다. 계속 쳐다보다가 문득 화씨와 섭씨가 같은 숫자인 것은 몇도 일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심심풀이 땅콩으로 방정식이나 풀어보기로 했다.

C=(F-32)×5/9니까 CF가 같은 온도를 찾으려면 F대신 C를 넣어 방정식을 세웠다. C=(C-32)×5/9, C=5C/9-160/9, C-5C/9=-160/9, 양변에 9를 곱하면 9C-5C=-160, 4C=-160, C=-40이 된다. 즉 섭씨와 화씨가 똑같은 숫자가 되는 온도는 영하 40도가 된다.

  이렇게 시간을 죽이다가 암스테르담에서 내려 작은 비행기로 갈아타고 에스토니아의 탈린으로 향했다. 비행기가 작아 이거 제대로 뜨기나 하려나 했지만 그래도 날렵하게 이륙하여 잘도 날아간다. 가는 도중 창밖을 내다보니 저녁노을이 환상이다. 이럴 때는 인간이 가진 언어의 한계성을 실감한다. 도저히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다. 단지 가슴이 먹먹하도록 벅찰 뿐이다.

저녁노을은 2시간이 넘도록 시시각각 색깔이 변하며 계속된다. 왜 이렇게 오래 계속될까 생각해보니 위도가 높아서 그런 것 같다. 이곳이 북위 59도나 된다고 하니 해가 뜰 때도 지평선에 비스듬히 뜨고 질 때도 비스듬히 진다. 자연히 지평선에서 서서히 가라앉게 되고 노을도 오래 계속될 것이다.

  탈린 공항에 내려 짐을 찾는데 다른 짐이 다 나와도 명수씨 가방이 안 나온다. 사무실에 신고를 하고 공항을 나서니 김정곤 가이드가 우리를 맞이한다.

  6시간이나 길어진 긴 하루를 보내고 호텔 침대에 누워 다리를 펴니 온 몸이 뻐근하다.

 

영주 골병들겠네. ( 516)

  아침 330분에 눈이 떠진다. 벌써 해가 뜨려는지 아침노을이 곱다. 잠도 안 오니 룸메이트 미숙씨와 아침 산책을 나갔다. 바닷가로 향하는 길을 대충 잡아 골목길로 접어드니 공원을 지나 둥근 모양의 요새가 나타난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적막한 항구에서 둘이서 맘대로 휘젓고 다니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오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탈린의 구 시가지를 보았다. 탈린은 덴마크인의 도시라는 뜻인데 13세기에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다고 한다. 탈린 시민은 대중교통이 무료라고 한다. 탈린에서는 남녀노소 모두 경로우대를 받나보다.

  탈린의 구시가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고지대에는 지배자들이 정치와 행정 목적으로 사용하던 건물이 남아있고, 저지대에는 무역상들의 건물이 밀집해 있다. 고지대는 최고봉이란 뜻의 툼페어라고 불린다. 고지대와 저지대를 이어주는 길은 두 개가 있는데 짧은 다리라는 뜻의 뤼히케 얄그와 긴 다리라는 뜻의 픽 얄그다. 무슨 다리가 놓여있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고 한 건물의 벽에 긴 장화 모양의 홈통이 달려 있었다. 누구 다리인지는 몰라도 장화의 길이로 보아 구척장신의 거인이 살았나보다.  

 

 

  탈린 근교에 여름휴양지인 카트리오그궁전이 있다. 이 궁전은 러시아의 표트르대제가 그의 후처인 예카테리나를 위해 지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벽돌 3장을 쌓았는데 그 벽돌이 CCTV 옆에 지금도 박혀있다. 그는 예카테리나를 위해 최고품만을 사용해 만들고 이름도 예카테리나의 계곡이라 이름 붙였는데 그 명칭이 에스토니아어로 변해 카드리오그로 되었다. 애인이 아프면 가슴이 아프고 마누라가 아프면 골치가 아프다더니 애인을 끔찍이 아끼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다.

  오후에는 라헤미아로 이동하여 사가디 마노 영주저택에 짐을 풀었다. 라헤미아는 Land of Bays 즉 네 개의 큰 만 사이에 있는 땅이란 뜻이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정원이 내다보이는 방이 아늑하다. 짐을 푼 후 팔릉세 영주 주택을 보러갔다. 파란 잔디밭 위에 놓인 붉은 지붕이 동화 속 집 같다.

  안으로 들어가니 영주가 쓰던 물건과 의상이 진열되어 있는데 영주 부인이 입던 옷에 얼굴을 대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놓았다. 다들 너도 나도 얼굴을 들이밀고 사진을 찍는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연출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영주 부인 옷에 얼굴 대고 찍으면 영주 부인이라도 되는 듯 난리가 났다.

 

 

 

  가이드가 이것저것 설명하다가 이 시대의 영주는 모든 신부와 첫날밤을 지냈다고 하니 다들 기가 막혀 입을 다물지 못한다. 기껏 결혼식 하고 첫날밤을 쓸쓸히 보냈을 신랑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아무리 영주의 땅에 사는 농노일망정 모든 처녀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한 처사가 이해하기 어렵다. 매번 첫날밤을 치러주려면 보통 일이 아닐 텐데 하루에 여러 명 결혼하면 그 일 치르다가 골병들게 생겼다. 힘센 수컷이 무리의 모든 암컷을 독차지하는 동물들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해야 하나?

  팔릉세 영주 저택에서 나와 라헤미아 국립공원으로 갔다. 이곳은 7000년 된 습지로 유명한 공원이다. 소나무, 자작나무가 쭉쭉 빵빵 늘씬하게 뻗어있고 곳곳에 작은 호수가 산재해 있다. 습지에 발이 빠지지 않게 나무 데크로 깔려있어 걷기 편하다. 한 호수 옆에는 넓은 데크와 의자까지 설치해 놓아 발도 담그고 수영도 할 수 있게 해 놓았는데 우리는 발만 담갔다. 나무 그림자가 잠긴 푸른 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자니 세상에 부러운 놈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너무 좋아 탄성을 지를 때마다 원장님은 여기 누가 가자고 그랬어?”하며 얼굴에 희색이 만면하다. 사실 여행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몇 년씩 걸려서 자료조사하고 가는 사람들의 취향과 여행 경비 등 모든 것을 맞추려면 피가 마를 지경일 것이다. 부인 정연씨 말을 듣자면 밤잠도 안자고 준비한단다. 우리는 그저 원장님과 김 사장님이 준비한 잔칫상에 숟가락만 들고 달려들면 되니 한 마디로 복 터진 거다.

  두 시간 정도 트래킹을 하고 호텔로 돌아와 사우나를 하였다. 우리 방에는 핀란드식 사우나 실이 있었지만 공동 사우나 실은 어떤가 하고 가보니 우리 방만도 못하다. 미숙 씨와 나는 사우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샤워만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옷 벗고 자빠지면 어쩌라고? ( 517)

  미숙씨와 아침 산책을 나가니 원장님이 지금 해가 뜨고 있으니 빨리 보라고 한다. 호텔 옆 큰길로 나가니 붉은 물감으로 칠한 수채화 같은 하늘에 막 해가 떠오르고 있다.

  호텔 뒤편으로 돌아가니 아담한 호숫가로 산책길이 나있다. 잔잔한 호수 물에는 나무 그림자가 잠겨 있고, 길 가에는 온갖 야생화가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웃음으로 반긴다. 수선화, 바람꽃, 괭이밥, 괭이눈, 동의나물, 장구채, 조개나물 등이 지천으로 깔렸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미숙씨와 옆의 오솔길로 들어가 보니 물가에 동의나물이 가득 피었다. 어떤 마을 입구까지 가다보니 웬 짐승이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자세히 보니 암사슴이다. 우리가 다가가자 숲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사실 이 사슴이 숲의 주인인데 우리를 보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또 우리를 바라보는 동물이 보인다. 이번에는 다가가지 않고 자세히 바라보니 산토끼다. 이 녀석도 우리 쪽으로 깡충깡충 오는 듯하더니 풀숲으로 숨어버린다.

  뻬르노까지 세 시간을 달려 발트해 해수욕장에서 잠시 자유 시간을 가졌다. 모처럼 바다를 바라보자 너도나도 발 벗고 물로 뛰어들었다. 고삐 풀린 망아지 모양 달려들어 팔 들고 찍고, 다리 들고 찍고 생 쇼를 부리며 사진을 찍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정연씨다. 그렇지 않아도 섹시하게 생긴 몸매를 옷을 반은 벗고 어깨를 드러낸 채 뒤로 나자빠지듯 포즈를 취한다. 남자들 앞에서 옷 벗고 자빠지면 어쩌라는 말인가?

 

 

  깜짝 쇼를 끝내고 남동쪽으로 이동하여 출입국 사무소를 지나 라트비아의 시굴다로 이동하였다. 유럽연합으로 통합되면서 에스토니아 출입국 사무소는 휴게소로 변하고 그냥 무사통과하였다.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로 가는 길에 시굴다라는 시골마을에서 구트만 동굴에 들렀다. 이 동굴은 발틱에서 가장 큰 동굴인데 붉은 사암층에 깊게 파인 동굴이다. 이 동굴에는 슬픈 사랑의 전설이 깃들어있다.

  시굴다의 투라이다성 정원사 빅토르와 마이야라는 처녀가 사랑에 빠졌다. 빅토르는 사암층을 파내어 동굴을 만들고 여기에 움막을 지었다. 마이야를 짝사랑한 폴란드 장교가 마이야에게 빅토르가 움막에서 기다린다고 거짓 편지를 보냈다. 동굴로 찾아온 마이야를 장교가 겁탈하려하자 마이야는 수건을 펼쳐들며 이것이 마법의 수건이라 칼로 절대 벨 수 없다고 했다. 장교는 칼로 수건을 베었고 마이야는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 이런 슬픈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굴 앞에는 무심한 야생화만 바람에 흩날린다.

 

 

 

  투라이다 성으로 이동하여 정원 안으로 들어서니 붉은 벽돌의 웅장한 건물이 나타난다. 탑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한 쌍의 남녀가 한창 입맞춤 삼매경에 빠져있고 밖으로는 평화로이 흐르는 가우야 강이 보인다. 탑에서 내려와 박물관을 보고 조각공원으로 향했다. 푸른 풀밭에 군데군데 놓여있는 조각들이 기기묘묘하다.

 

 

 

  여기서 온갖 조각품에 기대어 찍고, 껴안고 찍고, 입 맞추며 찍고, 밀고 찍고, 당기고 찍고 완전 영화를 찍었다. 아무도 없었기 망정이지 외국인들이 보면 제네들이 왜 저러나 의아해할 꺼다.

  조각공원을 지나 일부 회원은 출구로 되돌아가고 일부는 더 길게 숲을 돌아나가기로 했다. 숲길을 지나니 길을 잘못 들었는지 웬 마을이 나타난다. 미숙씨는 길도 모르면서 용감무쌍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원장님은 다른 사람들이 기다린다고 돌아가자고 한다. 김사장님이 마을 청년에게 물어보니 좀 더 가면 투라이다성 입구가 된다고 하여 계속 걸었다. 그 와중에 길가에 있는 고사리를 꺾어들고, 날이 더우니 정연씨는 웃통을 벗어젖히고 보무도 당당하게 열심히 걸어간다. 얇은 속옷만 걸치고 있으니 안의 검은 색 브레이지어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입구까지 오니 다른 회원들도 막 성에서 나오는 중이다. 리가로 향하는 버스에서 김정곤 가이드가 이런 팀은 처음 본다고 한다. 보통 사진이나 찍고 가자고 하는데 우리 팀은 가는데 마다 끝까지 올라가고 야생화만 나타나면 이게 무슨 꽃이다 저게 무슨 풀이다 하며 토론을 벌이니 한 번 풀어놓으면 다시 주워 담기 힘들다.

  저녁 식사 때 정연씨가 한국에서 담가온 파김치를 먹으니 파김치가 되었던 몸과 마음이 파릇파릇 살아난다. 정연씨는 여행 갈 때마다 이렇게 별미를 만들어 우리 입을 즐겁게 해준다. 얼굴도 예쁜데 요리 솜씨까지 좋으니 원장님은 한 마디로 호박이 덩굴째 떨어진 것이다.

  써빙하는 총각이 애란씨에게 다 먹었느냐고 묻자 애란씨가 라고 하며 ‘FINISH’라고 하자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본다. 내가 는 한국말로 예스라고 했더니 자기나라 말에서 No라고 하며 웃는다.

  우리 숙소인 오페라 호텔 앞에는 운하공원이 펼쳐져 있는데 공원을 따라가니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다. 두 손을 높이 쳐든 손 안에 세 개의 별이 있다. 이 별은 자유와 국가의 통합을 의미하는데 시민들의 모금으로 만들어졌다.

 

라트비아에도 한강이 있었네 ( 518)

  리가의 중심을 관통하는 다우가바라는 강이 있다. 리가에 가면 다~ 가봐라~고 하고 싶다. 꼭 한강을 닮았다. 한강철교와 올림픽대교도 있고, 밤섬도 있다. 63빌딩이 있는가 하면 한강 유람선도 떠 있다.

  아침 산책을 나가 다리를 건너는데 웬 청년이 맨발로 걷고 있다. 행색을 보니 옷은 엉망으로 풀어져 있고 남자 배낭과 여자 가방을 메고 있다. 미숙씨와 나는 이 청년을 보고 속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분명 밤새 술 먹고 패싸움을 벌이다가 여자는 도망가고 신발도 잃어버리고 혼자 집으로 가는 것이라고 상상을 했다. 믿거나 말거나다. 다리 끝까지 건너갔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리가는 바그너가 2년간 거주했던 곳이고, 백만 송이 장미라는 노래도 라트비아 작곡가 라이몬즈 파울스가 작곡한 것이다. 어떤 청년이 여가수를 짝사랑하여 자기 집을 팔아 그가 묵는 호텔 앞에 100만 송이의 장미를 깔고 청혼을 했다. 하지만 거절당하고 집도 절도 없는 그 청년은 비참한 여생을 보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전에는 본격적으로 리가 시내 관광을 하였다. 우선 운하를 다시 건너 자유의 여신상으로 갔다. 운하에 걸린 다리에는 사랑의 자물쇠가 잔뜩 채워져 있다. 누군가 나중에 살다가 헤어지고 싶으면 어쩌지?” 한다. 사실 사랑은 잠깐인데 굳이 저렇게 자물쇠를 채운다고 영원히 계속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구시가지 성벽을 따라가면 스웨덴 문이 나오는데 스웨덴이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라트비아를 지배할 때 만든 것이다. 문 양쪽에는 커다란 대포알이 거꾸로 세워져 있는데 이것은 전쟁은 이제 그만이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시가지 안에는 성 베드로 성당이 있는데 첨탑 위에는 커다란 수탉이 풍향계 노릇을 하며 올라 앉아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히기 전 날 밤 자기는 절대로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장담했지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예언대로 세 번 부인하고는 성 밖에 나가 심히 통곡했다고 한다. 이 교회는 라트비아 국도의 도로 기점이 되기도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오르면 리가 시내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베드로 성당에서 나와 조금 가니 그림형제의 유명한 동화 브레멘의 음악대에 나오는 네 동물의 동상이 있다. 이것은 브레멘 시가 리가 시에게 기증한 것이다.

  제일 아래가 소, 그 위에 개, 고양이, 닭이 순서대로 조각되어있다. 코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사람들이 하도 만져 밑에 있는 소와 개의 코는 만질 만질 닳아 있다. 우리도 주둥이를 붙잡고 한 바탕 사진을 찍었다.

  검은 머리 전당은 입구 왼쪽에 마리아상이 조각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검은 얼굴의 흑인이 십자가 깃발을 들고 서있는데 이 흑인은 길드 상인들의 수호신인 아프리카 무어인 성 모리셔스를 나타낸다. 흑인의 검은 머리를 보고 이 건물이름도 검은 머리 전당이라고 하였다. 검은 머리 길드의 회원이 되려면 외국인이어야 하고 꼭 총각이라야 한다. 회원이었다가도 결혼하면 자동으로 탈퇴가 된다.

  여기서 자유 시간을 주었는데 상윤씨가 한 턱 쏴서 아이스커피와 맥주를 마셨다. 다 마신 후 광장을 돌다보니 웬 목마가 서 있다. 연옥씨는 날렵하게 말 등에 올라탔는데 애란씨는 계속 미끄러진다. 팔과 가슴이 아픈 나는 아예 도전을 포기하고 애란씨는 앞발로 올라가다 꼬리로 올라가다 별 짓을 다 해봐도 올라가지지 않는다. 결국 연옥씨가 내려와 받쳐주어 겨우 올라가 사진을 찍고는 내려왔다.

 

 

  오후에는 리투아니아로 넘어가 샤울라이에 있는 십자가의 언덕으로 갔다. 십자가의 언덕은 TV에서 여러 번 보았기 때문에 기대가 컸다. 언덕이라고 해 봐야 계단 몇 십 개 올라가는 정도다. 과연 십자가가 어찌나 많은지 십자가의 숲을 이루고 있다.

  처음에는 폭동에 가담했다가 처형된 이들의 친척이 두고 간 것이었는데 19세기말 이곳에 아기 예수와 성녀 마리아의 환영이 보인 후로 많은 십자가들이 세워졌다. 결혼식을 치룬 신랑 신부들도 이곳에 와 십자가를 세운다고 하더니 과연 주차장에는 예쁜 리본으로 장식한 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십자가 언덕 앞에 있는 커다란 예수상 아래에도 작은 돌맹이로 십자가를 만들어 놓았는데 누가 그랬는지 새우깡 두 개를 십자 형태로 놓았다. 우리도 입구에 있는 상점에서 십자가를 하나 사서 세우고 이득실님이 기도를 하였다. 그 내용이 감명 깊고 소리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마치 한 편의 시를 낭독하는 듯하다. 출구로 나오는 길옆에는 민들레와 광대수염이 가득 피어 천상의 낙원을 연상케 한다.

 

 

 

  십자가의 언덕에서 나와 클라이페다로 가다가 휴게소에 들렀다. 웬 아저씨가 우리를 보더니 말을 걸어온다. 중국이냐 일본이냐 하다가 코리아라고 하니 두 개의 코리아 중 어디냐고 한다. 남쪽 코리아라고 하니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계속 떠들어댄다. 같이 가던 일행이 와서 버스 떠난다고 빨리 오라고 해도 일 분만 일 분만 하면서 수다가 이어진다. 참 재미있는 아저씨다.

  클라이페다까지 가는 동안 사라장이 연주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를 들려준다. 사라장이 리투아니아에서 베를린교향악단과 협연한 것이란다. 사라장의 연주를 감상한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크게 감명 받아 10분 동안 기립 박수를 쳤다고 한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인사가 되어 찬사를 받는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깨가 으쓱으쓱 올라간다.

  클라이페다는 잃어버린 발자국이란 뜻이다. 누가 무슨 발자국을 잃어버렸나 모르겠다. 아무튼 시내를 다니다 보면 사람 발자국을 찍어놓은 것도 있고 용의 발자국도 있고 발자국이 많기는 많다. 어떤 골목으로 가보니 쌍쌍파티가 벌어졌다. 아이들은 짐 곁에서 멍하니 앉아있고 쌍쌍이 돌아가며 신이 났다. 클라이페다 사람들은 춤을 엄청 좋아하나보다.

  조금 더 가니 고양이상이 있었는데 이것은 고양이를 엄청 좋아하는 노신사가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를 조각상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고양이 얼굴이 노신사를 닮았다고 한다. 부부도 오래 같이 살면 닮는다더니 고양이도 주인과 오래 살면 서로 닮나보다.

 

 

 

  길모퉁이에는 생쥐상도 있었는데 생쥐 귀를 잡고 소원을 말하면 들어준다고 하여 너도 나도 생쥐 귀를 붙잡고 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원을 빌라고 하면 무엇을 빌어야할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오페라하우스 앞 광장에는 정선 아우라지에 있는 처녀상 같은 조각상이 서 있다. 이 극장에서 공연하던 여배우라고 한다.

  암버튼호텔로 돌아와 방으로 들어와 보니 침대에서 욕실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유리에는 섹시한 여자가 그려져 있다. 리투아니아에도 러브호텔이 있나? 하지만 추한 느낌은 없고 예술 감각이 뛰어나다. 욕실 벽타일에도 여자 얼굴을 그린 타일이 세 개 박혀 있는데 피카소 그림처럼 약간 추상적인 모양을 가미한 묘한 표정의 얼굴들이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뭔가 뻥뻥 터지는 소리가 난다. 창밖을 보니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무슨 축제일인가보다. 그래서 골목길에서 쌍쌍파티가 벌어졌었나?

  이 호텔은 희한한 것이 방문에서 안으로 들어가려면 계단을 몇 개 올라가고 침대 쪽으로 가려면 또 계단 몇 개 내려간다. 무거운 짐을 운반하려면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야한다. 가슴팍이 아파서 무거운 걸 들지 못하는 나는 매번 미숙씨에게 신세를 지는데 이럴 땐 더 미안하다. 천성이 명랑한 미숙씨 왈 이 나라에는 산이 없어서 여기서라도 올라가라고 이렇게 해 놓았단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

 

우리 같으면 당장 다리 놓을 텐데 ( 519)

  호텔 뒤에 있는 공원에 아침 산책을 나가보니 마로니에 꽃이 한창이다. 운하에는 오리가 한가로이 노닐고 낚시에 열중인 사람도 보인다. 어촌 마을답게 어부 상도 서있다.

  크로니안 모래톱에 가기 위해 아침 8시에 출발하여 배를 타기위해 부두로 갔다. 버스에 탄 채로 배에 오른다. 모래톱까지는 배로 10분밖에 안 걸린다. 우리나라 같으면 당장 다리로 연결했을 텐데. 아마도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는 깊은 뜻이 있는지도 모른다.

  모래톱이라고 해서 모래가 조금 쌓여있는 건 줄 알았더니 완전 육지처럼 나무도 많고 마을도 있다. 총 길이가 98km인데 52km는 리투아니나 땅이고 47km는 러시아 땅이다. 폭은 4m에서 3800m로 다양하다. 리투아니아에 해당하는 땅을 네링가라고 한다. 네링가는 발트해 신화에 나오는 장사 소녀다. 그녀는 헤라클레스 만큼 힘이 센 아이인데 해변에서 모래장난을 하다가 이 모래톱을 만들었다고 한다.

  네링가에서 1시간 20분 정도 달리면 니다라는 어촌에 도착한다. 여기가 리투아니아와 러시아의 경계다. 이곳에는 커다란 모래시계가 있다. 모래시계 앞에서 트래킹을 시작하기 전에 스트레칭을 하였다. 원장님의 시범을 따라 20명이 함께 스트레칭 하는 모습이 재미있는지 지나던 서양여자가 사진을 찍으며 따라한다.

 

 

  모래시계라고 해서 정동진의 모래시계 같은 줄 알았더니 수 십 미터 높이의 기둥이 서 있고 바닥에는 시간이 쓰여 있는 일종의 해시계다. 그림자가 비추는 곳을 보면 현재시각을 알 수 있게 해놓았다.

  러시아쪽 모래톱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끝이 안 보이는 모래톱을 바라보고 모래 언덕을 내려와 해변 길을 걸었다. 마치 제주 올레길을 걷는 기분이다.

  모래톱과 육지 사이에 끼어있는 호수를 크로니안 석호라고 하는데 이곳의 어부들은 가마우지를 이용해서 물고기를 잡는다. 가마우지를 훈련시켜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잡아 배로 올라오면 빼앗는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의문이 생긴다. 가마우지가 뭐가 부족해서 인간에게 물고기를 잡아다 바칠까? 개나 소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소는 사람보다 힘이 몇 십 배나 센데 왜 사람에게 코를 뚫리고 멍에를 메고 밭을 갈며 사는지 모르겠다. 참 인간이란 알다가도 모를 존재다.

  석호 안에는 백조가 물속에 머리를 처박고 있다. 식사중인가보다. 백조는 먹지도 않고 싸지도 않고 대가리 쳐들고 우아하게 헤엄만 치는 줄 알았더니 백조도 먹어야 사나보다. 백조도 어쩔 수 없는 짐승이다.

  우리들이 우겨서 버스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겠다고 하니 가이드 김종곤씨도 따라온다. 이렇게 걸어가는 팀은 처음이란다. 길을 몰라 현지인에게 연방 묻는데 스마트폰으로 우리의 궤적을 알고 있는 김사장님이 길을 더 잘 찾는다. 사실 트래킹 없는 여행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나글리아이라는 곳에서 모래언덕을 올랐다. 이 마을은 모래에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땅에 발을 딛자마자 또 언덕을 향해 기어오른다. 발이 모래에 빠지지 않게 나무로 데크를 깔아 걷기 쉽게 해놓았다. 데크가 끝나는 곳부터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었다. 언덕의 정상 부근에서 우리는 길을 버리고 옆의 봉우리로 올랐다. 산을 보면 무조건 기어오르는 것이 우리의 오래된 습성이다.

 

 

 

  봉우리 위에서 발트해를 배경으로 한껏 폼을 잡으며 사진을 찍었다. 정연씨는 이번에도 모래에 누워 섹시 포즈를 과시한다. 물 만난 고기마냥 마구 뛰어놀다가 모래언덕 길로 나오려니 나무로 얼기설기 얽어 놓고 그 안에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다. 우리는 봉우리 위로 올라가서 내려왔기 때문에 이걸 못 보았는데 현지인들이 우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모르고 한 일이긴 하지만 무척 미안하다. 그들이 아끼며 보존하는 것을 우리가 마구 짓밟았으니 말이다.

  주차장으로 내려와 다시 부두로 달렸다. 1230분 배를 타려고 부두에 도착하니 12시 밖에 안 됐다. 30분 동안 버스에 있으려니 갑갑해서 밖으로 나가 해수욕장 가는 숲길로 들어갔다.   

  김종곤씨에게 물으니 1220분까지 오라고 해서 맘 놓고 걸어가는데 뒤에서 순희씨가 따라오며 뒤에서 우릴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한다. 가만히 들어보니 김사장님 소리 같기도 하고 현지인 소리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불안하여 버스로 달리는데 달리면 가슴이 흔들려 아프니 손으로 가슴을 누르고 달렸다. 부두에 도착하니 우리 버스는 벌써 배에 오르고 배가 떠나려고 한다. 아슬아슬하게 배에 오르니 곧 내렸던 판이 올려지고 배가 출발한다. 30분에 출발한다던 배가 왜 1212분에 출발하는지 모르겠다. 사람 잡을 일 있나 하마터면 넷이서 다음 배 기다리느라 한 시간은 모래톱에 머물 뻔 했다.

  클라이페다에 도착하니 오늘이 무슨 날인가 거리를 막은 채 자전거 경주를 하는지 수많은 자전거들이 달리고 공원에서는 쿵작쿵작 난리가 났다.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선수들이 지나갈 때마다 환호성을 지른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즐거워진다. 기쁨도 슬픔도 전염성이 있나보다. 우리 TNT 회원들은 서로서로 기쁨과 행복을 전염시키며 여행하고 있다.

  클라이페다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카우나스로 이동하였다. 버스에서 심심해할까 봐 김종곤씨가 우스갯소리를 한다.

식당에서 아빠와 딸이 식사를 하는데 바흐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딸이 아빠 이게 무슨 곡이예요?” 하자

아빠가 돼지고기란다.”

심심치 않게 해주려는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카우나스는 리투아니나 제 2의 도시로서 네무나스강과 네리스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있다. 카우나스는 싸운다는 뜻이다. 카우나스에는 일본판 쉰들러리스트 이야기가 있다. 일본인 스기아라치우네씨는 1939년 군사정보를 입수하여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카우나스에 영사로 왔다. 1940년에 소련이 이곳을 점령하고 모든 외교관을 추방하였을 때 그는 한 달만 연장해 달라고 하였다. 그는 나치로부터 도망쳐오는 유대인들에게 일본 비자를 주어 탈출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일본서 이 일을 반대하자 하루에 300명씩 친필로 비자를 만들었다. 나중에 팔이 저려 쓸 수 없게 되자 부인이 쓰고 서명만 하였다. 이렇게 하여 4주 동안 6000명의 유대인을 탈출시켰다.

  1945년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퇴출되었고 연금도 못 받는 신세가 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그에게 최고 훈장을 수여했고 몸이 불편한 그를 대신해 부인이 가서 상을 받았다.

  카우나스에 도착하여 비타오타스라는 다리를 건넜다. 김종곤씨가 이 다리는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라고 한다. 별로 길지도 않은데 무슨 소린가 하고 쳐다보니 강 이쪽에서는 그레고리 달력을 쓰고 강 저쪽에서는 카톨릭 달력을 썼는데 그게 13일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다리를 건너 전망대에 오르니 이곳 네무나스 강변에서도 쿵작 쿵작 음악소리가 들린다. 김종곤 가이드에게 오늘이 무슨 축제일이냐고 물으니 여름 축제가 시작되는 날이란다.

  카우나스성은 두 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데 십자군으로부터 리투아니아를 방어하기위한 첫 번째 방어벽으로 세워졌다. 푸른 잔디 위에 세워진 붉은 성채와 고깔모양의 지붕이 무척 인상적이다.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도착하니 저녁때가 다 되었다. 우리가 묵을 나루티스 호텔에 도착하니 로비에서부터 실내장식이 장난이 아니게 멋지다. 그런데 방을 찾아가는 통로가 여러 개라 내 방 찾아 삼만 리다.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창밖의 전망이 기막히다. 이렇게 전망 좋은 화장실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고 싶다. 화장실 안에 멋진 의자도 있고 아무튼 환상이다. 탁자에는 이 방을 정리한 사람은 안나이고 자기네 호텔을 선택해주어서 고맙다는 말과 잘 자라는 인사까지 쓰인 예쁜 쪽지가 놓여있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갑자기 왕비 대접 받는 듯 기분이 좋다.

  모처럼 멋진 화장실을 만난 우리는 빨래부터 했다. 미숙씨는 아예 화장실에 빨랫줄까지 매고 본격적으로 빨래를 널었다. 궁전 같던 화장실이 졸지에 피난민 수용소로 변했다.

 

 

난민 탈출 작전? ( 520)

  나루티스 호텔은 건물 전체가 갤러리다. 코너마다 멋진 유화가 걸려 있어 하루 종일 감상해도 될 정도다. 이 구석 저 구석 그림을 감상하다가 밖으로 나가니 건물 벽에 그려진 낙서도 예술이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기본이 되어있나보다.

  오전에 트라카이 성으로 갔다. 호수 가운데 있는 그림 같은 성이다.

 

 

 

  내부로 들어가니 옛날 성주들이 쓰던 물건과 문서 등이 보인다. 이런 성채를 보면 옛날에 태어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십중팔구는 농노로 태어났을 텐데 그 일생이 얼마나 고달팠을까? 어찌 생각하면 지금도 마찬가지다. 농노를 착취하는 영주가 있다면 농노를 먹여 살리는 영주도 있었을 것이고, 노동자를 착취하는 재벌이 있는가 하면 노동자를 먹여 살리는 재벌도 있다.

  성 밖으로 나와 호수를 한 바퀴 돌려고 하는데 김사장님이 부른다. 보트를 타자는 것이다. 우리야 말하면 잔소리지 하며 얼른 선착장으로 갔다. 원래는 보트 하나에 여섯 명 밖에 못 타지만 우리는 체중이 적으니 8명씩 타도된다고 하여 두 대에 나눠 타고 호수로 나아갔다. 보트는 기름에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물속에 비치는 돛의 그림자가 예술이다.

 

 

 

  빌뉴스 시내로 돌아와 새벽의 문으로 들어가니 성문 누각위에 성모마리아 상이 보인다. 이 상에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나면서 무수한 사람들이 기도하러 모였고 병이 나으면 은으로 만든 하트모양의 성물을 바쳤다. 성모마리아의 몸과 머리는 온통 금으로 덮여 있고 그 옆에는 무수한 하트가 덮여있다.

  문학거리에 있는 건물 벽에는 많은 작가들의 초상화나 상징물들이 붙어있다. 앞으로 나타날 작가를 위해 빈 칸도 만들어 놓았다. 빈 칸에 얼굴을 넣고 사진을 찍어 보니 나도 작가가 된 기분이다.

  빌뉴스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성 오나 성당과 버나딘 교회를 보고 게디미나스 성으로 갔다. 이 성은 산봉우리에 있어 푸니클라를 타고 올라갔다. 성에 오르니 빌뉴스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빌뉴스 구시가지 관광을 마치고 점심식사 후 리투아니아 국경으로 향했다. 벨라루스는 유럽연합에 들어있지 않아 입국 수속을 해야 하고 버스도 갈아타야한다.

  벨라루스는 어찌나 벨난지 비자 받는 것도 벨나다. 남편이름을 쓰라는 것이다. 비자 신청서에 아버지 이름 쓰는 나라는 있어도 남편이름 쓰라는 나라는 처음이다.

  리투아니아 출국 심사하는 곳에서 벨라루스 입국 심사 하는 곳까지 큰 짐을 끌고 냅다 달렸다. 검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천둥 번개까지 치니 곧 소나기가 쏟아질 판이다. 1km 되는 거리를 달리는데 팔 병신이 된 상윤씨가 선두에서 달린다. 윈드 자켓을 제대로 입지 못해서 어깨에 걸치고 바람같이 달리는데 그야말로 배트맨 아니 배트우먼 같다.

 

 

 

  20명이 요란한 바퀴 소리를 내며 필사적으로 달리는 모습은 마치 007작전을 수행하는 것 같기도 하고 북한을 탈출하는 난민 같기도 하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버스까지 오는데 두 시간이 걸렸다.

벨라루스로 입국하여 주차장에 오니 가이드 쓰베틀라나가 나와서 기다린다. 이름이 잘못 발음하면 씹어 뱉을라나 같다. 2층 버스를 타고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로 달린다. 샛노란 유채 꽃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몇 시간을 달려도 노란 들판이 환상적이다. 유채는 기름도 짜고 가축의 사료로도 쓰인다고 한다.

  벨라루스는 하얀 러시아 즉 백러시아라고도 하는데 하얀색은 자유를 뜻한다. 벨라루스는 물이 특히 좋고 식물에 좋은 칼륨염이 많아 50개국에 수출한다고 한다. 민스크에 도착하여 독립광장에 있는 민스크 호텔에 들었다.

 

갑옷에 웬 거시기 보호대? ( 521)

  아침 산책을 나가니 거리 곳곳에 놓인 조각상이 기막히다. 호텔 옆 광장에는 세상 죄를 홀로 진 것 같은 할아버지 상이 오른팔을 들고 있다. 공원으로 가니 모자를 쓴 청년이 오른 손을 내밀며 프러포즈 하듯 서있다. 누군가 청년의 손에 꽃을 한 송이 올려놓았다. 마음씨가 예쁜 사람의 행동이 분명하다. 손이 하얗게 벗겨지고 맨질맨질 한 걸 보면 뭇 사람들이 만졌나보다. 미숙씨도 이 청년상의 손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

 

 

 

  공원 옆의 길가에는 양산을 쓴 아가씨 조각상도 있는데 맨땅에 받침대도 없이 그냥 서 있는 것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아가씨와 함께 양산을 쓰고 또 사진을 찍었다. 이 아가씨 밤낮으로 철로 된 양산 들고 있으려면 엄청 팔 아프겠다.

  공원 가운데는 벤치에 앉은 여인상도 있다. 어찌나 늘씬하고 멋진지 같은 여자가 봐도 가슴 설렌다. 여기는 여인의 무릎에 앉아서 사진들을 찍었는지 허벅지가 허옇게 벗겨졌다. 미숙씨는 여기서도 또 포즈를 취한다. 여인의 입술이 삐쭉 나왔다고 거기에 입 맞추는 모양을 연출한다. 미숙씨는 한 마디로 감각이 있다.   

 

 

  이렇게 한 바탕 촬영을 하고 호텔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고 다 같이 민스크 시내 관광을 시작하였다. 호텔 옆에 두 개의 십자가를 세운 100년 된 성당이 있다. 12살 된 아들과 9살 된 딸을 잃은 부모가 두 아이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그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니 내 마음도 저리다.

  성당을 지나 더 가니 레닌 동상이 서 있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대부분의 레닌 동상은 다 철거 되었는데 여기에는 아직도 남아있다. 철거하지 않은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 뒤에 있는 건물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고, 둘째는 이 조각상이 가진 예술적 가치, 셋째는 이것도 역사의 한 장면이므로 그냥 두었다는 것이다. 민스크 시민의 높은 역사의식이 돋보인다. 예전에 이 도시의 강둑에 메니아스크라는 남자가 한 아가씨와 살고 있었는데 이 남자의 이름을 따서 이 도시의 이름이 민스크가 되었다고 한다.

  다음은 눈물의 섬으로 갔다. 이 섬은 스바슬로치 강변에 있는 인공 섬이다. 왜 눈물의 섬인가 궁금했는데 이곳에는 아프가니스탄 참전 전사자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탑이 있다. 이것은 전사자들의 어머니들이 추진하여 세운 것이다. 3만 명을 파병하였는데 800명이 실종되었다. 탑 주위에는 참전 용사들의 어머니 상이 있는데 그 표정이 너무도 슬퍼 보여 보는 이의 눈물을 자아낸다.

  어머니의 손에는 향로가 쥐어있기도 하고 사진을 들고 있는 어머니도 있다. 엄마 등에 기댄 어린 소녀상도 있고, 어린 아들을 안고 있는 여인상도 있다. 순희씨는 이것을 보고 저 여인은 남편을 잃은 것이고 저 아기는 유복자였을 것이라고 가슴 아파한다.

  기념탑 중앙에는 둥근 구멍이 있고 긴 철끈이 천장까지 연결되어 있다. 천장의 종을 치면 그 진동이 땅을 통해 아프가니스탄까지 전해지길 원하는 어머니들의 간절한 기원이 담겨 있다.

기념탑 옆에는 눈물을 흘리는 천사상이 있는데 거시기가 뽀얗게 닳았다. 근처에 혼인 신고서가 있는데 이 천사의 거시기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이 있어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기념탑 앞에는 현장학습을 나온 소년들이 많았는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재잘거린다. 모든 슬픔의 역사는 새 세대에 의해 덮여지기 마련이다.

 

 

 

  다음은 전쟁박물관을 보러갔다. 2차 대전 당시의 많은 사진과 유품들이 있다. 뼈만 남은 앙상한 시신의 사진도 있는데 굶겨 죽인 유태인들이다. 가장 소름끼치는 사진은 전봇대에 유태인을 목매달면서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환한 미소를 짓는 독일인의 얼굴이다.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 존재일까?

  무거운 마음으로 전쟁 박물관을 나와 미르로 이동하였다. 미르에는 미르성이 있는데 동화 속의 백설 공주가 살았을 것 같은 아름다운 성이다. 흰색과 붉은 색이 조화된 성 안으로 들어가니 마당에는 우물과 도르래가 설치되어 있다. 건물 내부에는 각종 유물들이 있다. 유물 중에는 갑옷이 있었는데 어린 소년의 것으로 보이는 작은 갑옷도 있다. 이렇게 작은 아이도 전쟁터에 내보낸 모양이다. 더 희한한 것은 어른의 갑옷인데 거시기를 씌우는 갑옷이다.

 

 

 

  아니 전쟁터에서 싸움은 안하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기에 이렇게 거시기가 벌떡 서있단 말인가? 이걸 보고 있자니 언젠가 들었던 농담이 떠오른다.

  한 노년의 남자가 거시기에 힘이 없어져 밤일도 못하고 의기소침하게 지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산에 가 산신령님께 빌었다. 딱 한번만 밤일을 하게 해 달라고 빌었더니 신령님이 세 번의 기회를 주겠다고 하였다. ‘하면 거시기가 서고 빵 빵하면 수그러드니까 잘 해보라고 하였다. 집에 온 남자는 이게 정말일까 싶어 골방에 들어가 했더니 정말 벌떡 섰다. 그래서 빵 빵했더니 도로 작아졌다. 아직도 두 번의 기회가 남았으니 다음날 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날 부지런히 퇴근길을 재촉하는데 차가 밀렸다. 자신도 모르게 하고 경적을 누르자 그만 서버렸다. 빨리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뒤차가 빵 빵하는 바람에 그만 죽어버렸다.

마지막 기회를 활용하려고 방에 들어가 해서 키운 다음 빨리 들어오라고 부인을 불렀다. 부인이 방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라서 와아~ 빵빵하네~” 하는 찰라 폭삭 죽어버렸다.

  아마도 전쟁터에서는 여기서도 저기서도 하고 대포가 터지니까 거시기가 늘상 서 있나보다.

  오늘도 끝없는 유채밭을 바라보며 폴란드로 향했다. 민스크 가이드는 폴란드 비자가 없어 미르성에서 돌아가고 여행사 직원이 폴란드 국경 너머까지 동행해 주기로 했다.

  벨라루스 출국하는데 2시간, 폴란드 입국하는데 1시간 이렇게 시간을 끌다보니 밤 12시가 다 되어 폴란드 비아르위차 국립공원의 호텔에 도착했다. 캄캄한 밤중에 비는 쏟아지는데 어찌나 추운지 개 떨 듯 떨었다.

 

비아로위차는 모기 천국? ( 522)

  아침식사 전에 수영장으로 갔다. 사우나와 스파까지 갖춘 멋진 수영장이다. 수영하는 사람은 미숙씨와 나, 둘 뿐이다. 우리가 들어가자 공기가 나오게 버블도 틀어주고, 물 폭포도 틀어준다. 우리가 노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우리가 나오려하자 버블도 폭포가 다 꺼버린다.

  이 호텔의 벽은 온통 벽화 투성이다. 모두 한 사람의 작품인 듯한데 꼭 샤갈의 그림을 보는 듯 환상적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염소도 보이고 사슴도 보이고 코끼리도 보인다. 보면 볼수록 빨려드는 느낌이다.

  오전에는 비아로위차 국립공원 트레킹을 하였다. 이 공원은 벨라루스와 폴란드에 걸쳐있는 유럽에 마지막 남은 원시림인데 왕들의 사냥터로 쓰였다고 한다.

  이번에 여행하는 나라가 일곱 군데나 되는데다가 가는 나라마다 말이 다르니 이름 외우기가 장난이 아니다. 나라 이름과 수도 이름만 외우려 해도 머리에 쥐가 나는데 공원이름까지 외우려니 용량 초과다. 거기다 꽃 이름까지 추가하니 그야말로 머리가 다운되게 생겼다.

  원장님은 비아로위차 외우기 힘들다고 비아그라 공원으로 바꾸고, 명수씨는 미나리아제비 꽃을 알려줬더니 다음에 아제르바이잔이라고 승격시키지를 않나, 광대수염은 장군수염으로 승진시키지를 않나 모두 혀가 뒤틀려 엉망이 된다.

  하도 많은 성당과 성을 보았더니 그놈이 그놈이고 이놈이 이놈이라 뒤죽박죽이 되어 하나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을 입력시켰나보다.

  비아로위차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가니 드넓은 호수가 나타난다. 호숫가에는 작은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는데 하루에 52마리의 유럽산 들소(바이즌)를 사냥한 기념으로 세웠다고 한다. 이렇게 마구 사냥 하다 보니 들소가 멸종되어 지금은 동물원에 있던 들소를 번식시켜 야생으로 돌려보낸다고 한다.

  야생동물 보호에 각별히 신경을 써서 산림이 우거지는 것도 조절한다. 나무가 우거지면 맹금류가 사냥을 할 수 없으므로 넓은 초지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나무를 잘라낸다고 한다.

가이드와 동행해야만 출입할 수 있는 구역도 있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광대수염, 명이나물(산마늘), 말굽 버섯 등이 자연 그대로 자라고 있다. 그야말로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를 야생화 천국이다.

  보는 건 좋은데 모기가 떼로 달려든다. 아무리 쫓아도 악착같이 달려드니 수 십 방씩 물린 것은 기본이다. 모기 퇴치 약을 뿌리고 바르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조문숙씨 팔을 보니 멀쩡한 부분보다 물린 부분이 더 많아 팔 전체가 빨갛게 변했다.

  누군가 산 마늘이 많은 곳에 오니 모기가 적다고 마늘 냄새 때문인가 보다고 한다. 너도 나도 산 마늘 잎을 따서 귓구멍에도 넣고 주머니에도 넣고 난리가 났다.

  비아로위차는 한 마디로 모기 천국이다. 잠시도 서 있을 수가 없다. 섰다하면 모기의 집중공격을 받는다. 모두들 손수건이나 옷가지로 모기를 쫓느라고 마구 휘저으며 걷는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갔지만 어디서도 먹을 수가 없다. 결국 숲 밖으로 나와 맨땅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와 상윤씨는 장애자인 관계로 미숙씨가 3인분 도시락과 물을 모두 지고 갔다. 미숙씨는 우리 방과 상윤씨 방을 오가며 짐도 들어주고, 상윤씨 머리도 감겨주고 옷도 갈아입힌다. 미숙씨는 마지막 주에 우리보다 40만원이나 더 주고 합류했다. 미숙씨 안 왔으면 상윤씨와 내가 룸메이트 하기로 했었는데 어찌 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미숙씨는 한 마디로 하늘이 보내준 천사다. 여행 내내 우리의 매니저요, 주치의였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나보다.

모기에 쫓기듯 공원을 탈출하여 호텔로 돌아왔다.

 

로얄 오크 트레일은 야생마 침실인가? ( 523)

  아침에 식당으로 가기위해 로비를 지나는데 벽을 보니 오늘의 날씨가 보인다. 기온은 14이고 비 올 확률 80%라고 전광판에 쓰여 있다. 이렇게 해주니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알 수 있어 편리하다.

오늘은 비아로위차 공원의 로얄 오크 트레일을 걷기로 했다. 오래된 오크 트리가 많은데 일설에 의하면 이 나무들은 지그문트 왕의 명령에 의해 심어졌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야생 동물을 가두어 기르며 번식도 시키고 사람들에게 관람시키는 곳도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야생마들이 우리 안에서 서성인다. 자세히 보니 한 수말이 거시기가 한껏 늘어져 있다.

 

 

  이 녀석은 밤낮도 모르나 백주 대낮에 거시기를 한 없이 과시하며 서있다. 대충 어림잡아 보다도 50cm는 되어 보인다. 이건 도저히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는 크기다. 여기가 자기 침실인 줄 착각하는가보다. 할머니인 주제에 왜 자꾸 이런 것만 눈에 보이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어찌 보면 굳이 감출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곁에서 누가 보거나 말거나 짝짓기에 열중한다. 유독 사람만이 남의 이목을 피해서 이 일을 치르려고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어서 수치심이라는 것이 생긴 것일까?

  그 밖에도 이곳에서는 야생 들소, 멧돼지, 노루, 사슴 등 많은 동물을 키우고 있다. 자연의 흐름에 이렇게 인간이 관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사람이 망가뜨린 자연이니 사람이 복구해야하는 게 당연한 지도 모른다.

  폴란드는 쇼팽의 고향이다. 운전기사가 쇼팽의 피아노곡을 들려준다. 늙어 죽도록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고향을 그리워한 쇼팽은 아직도 폴란드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나보다.

폴란드 이정표를 보니 우리와 반대다. 우리나라 이정표는 먼 곳까지의 거리를 위에 쓰고 가까운 곳을 밑에 쓰는데 폴란드는 가까운 곳을 위에 써 놨다. 날씨도 참 다르다. 하루 종일 우중충한 게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해가 나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 슬픔을 띤 폴란드 사람들의 얼굴 표정과 똑 닮았다.

  바라샤바로 가는 도중 휴게소에 들렀다. 섰다하면 수 십 명이 화장실로 우르르 몰려간다. 김사장님은 미안한 마음에 들어갈 때마다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사서 나눠준다. 유럽은 대부분 유료 화장실이다. 우리나라만큼 화장실 인심 좋은 곳은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휴게소 이곳저곳 기웃기웃 하는데 자동차에 붙이는 스티커가 보인다. 그 중에 SEX라고 쓴 게 눈에 띈다.

 

 

  운전하다가 섹스를 하라는 것인지, 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졸다가도 이것만 보면 잠이 확 달아나는지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내 눈에는 왜 이런 것만 보이는지 모르겠다.

  식사 때마다 돌아가면서 건배 제의를 한다. 나는 이미 건배 제의를 두 번했다. 한 번은 조폭건배다. “! 한잔 하자.” 하면 다 같이 ! 형님.”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제의는 모임의 막내가 해야 묘미가 나는데 나 같은 늙다리 할망구가 하니까 김빠진 맥주 모양 니 맛도 내 맛도 아니다. 또 한 번은 시발조통이다. 시발조통은 시국의 발전과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인데 발음을 잘해야지 조금만 세게 발음하면 영~ 다른 뜻이 되고 만다.

  오늘은 애란씨가 하라고 원장님이 부탁한다. 애란씨는 생긴 것처럼 건배 제의도 예쁘게 한다. 갑자기 노래로 하겠단다. 웬 노랜가 했더니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천만번 더 들어도 기분 좋은 말하니 모두들 사랑해~”로 화답한다. 이거 정말 건배 제의도 수준 차 난다.

  애란씨와 연옥씨는 이번이 TNT와 첫 번째 여행이다. 처음 김사장님께 얘기하니 원장님과 상의해야한단다. 이게 무슨 소린가 했더니 모르는 사람을 합류시켰다가 불협화음을 일으킬까봐 걱정을 하신 거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보다 더 잘 적응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 사실 나보다 더 젊고, 건강하고, 예쁘고, 돈 많은 사람 아니면 내가 소개를 하지 않는다. 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다.

  원장님은 조수석에 앉아 운전기사와 계속 대화중이다. 현지 가이드가 없는 관계로 기사가 얘기하는 것을 원장님이 우리에게 통역해준다. 폴란드에는 어디가 좋으냐 하고 물으니 폴란드에도 멋진 설산이 있고 호수 트래킹 하기 좋은 곳이 있다고 한다. 벌써 다음 여행 준비를 하려고 탐색 중이다. 이 덕에 우리는 항상 좋은 곳 보고, 맛난 음식 먹고, 멋진 곳에서 잔다. 잠시 조용해지나 했더니 기사가 가이드가 졸고 있다고 농담을 한다. 원장님이 졸았나보다.

  4시간을 달려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기사는 구시가지에 내려주며 1시간 반 동안 구경을 하고 버스 내린 곳으로 오라고 한다. 칼과 십자가를 든 높은 동상이 있는 광장에서 이 골목 저 골목을 들락날락하며 구경했다. 광장에는 노천카페도 있고 원반과 칼을 든 여인상이 있는 분수대도 있다. 분수대 앞에는 비둘기들이 잔뜩 모여 모이도 먹고 물도 먹는다.

  한 골목으로 들어가니 웬 성채가 있다. 붉은 고깔모양의 지붕을 한 멋진 성채다. 성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광장으로 오니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가씨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남자가 지나간다. 야외 촬영을 나온 신랑 신부인 줄 알고 사진을 찍었더니 곁에 있던 할아버지가 잡지 모델이라고 한다. 그림을 파는 할아버지다. 어디서 왔느냐고 하기에 코리아라고 했더니 남한이냐 북한이냐 묻는다. 남한이라고 하니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을 두려워하고,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우리의 실정을 꼭 집어서 표현한 말이다. 언제나 코리아라는 말만으로 끝낼 수 있으려나?

  광장에는 커다란 펌프 같은 것이 있다. 폴란드 여자는 그 큰 손잡이를 번쩍 번쩍 들었다 놓는다. 미숙씨도 해 보겠다고 하더니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못 들겠단다.

  분수대 앞에 모여 쇼팽하우스를 찾으러 갔다. 대통령 궁을 지나 한참 가도 쇼팽하우스가 나오지 않는다. 기사와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그냥 돌아왔다. 저녁 식사 후 바르샤바 공항으로 갔다. 오늘은 기내박이다.

 

시그나기인지 식은 아기인지? ( 524)

  3시간 반의 비행을 마치고 그루지아의 트빌리시 공항에 도착하니 그루지아 가이드 박종완씨가 마중 나왔다. 공항에서 바로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시그나기로 향했다. 시그나기인지 식은 아기인지 이름도 요상하다. 시그나기는 터키어로 피난처라고 한다. 정말 산 속에 콕 박힌 아늑한 마을이 피난처로 딱 맞다. 일단 호텔에 들어 짐을 풀고 휴식한 후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미숙씨와 나는 짐을 방에 던지고 바로 시그나기 시내 구경을 나갔다. 미숙씨나 나나 구경이라면 밤을 샜건, 밥을 굶었건 무조건 환장을 하고 나서니 이거 아무래도 룸메이트 잘못 만난 거라고 미숙씨가 한 마디 한다. 도무지 제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쉬고 싶기는 하지만 시내가 궁금하기도 하고 미숙씨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할 것 같아서 따라 나섰다.

  시그나기는 포도주가 유명하다더니 과연 집집마다 포도나무가 있다. 어떤 집은 담쟁이 넝쿨처럼 포도넝쿨이 타고 올라갔다. 우선 거리에 그려있는 안내 지도를 보며 대충 갈 방향을 잡았다.

  길옆에는 우산을 어깨에 메고 철가방을 든 채 말을 탄 남자의 조각상이 있다. 마치 동키호테 같은 모습이다. 또 여기에 기어 올라가 사진을 찍겠다고 동상의 신발을 밟고 올라가고, 말꼬리를 밟고 올라가고 하며 포즈를 취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했는지 남자의 구두 위쪽이 하얗게 벗겨졌다.

이 골목 저 골목 헤집고 다니다가 시그나기 박물관으로 가니 아직 문을 안 열었다. 그냥 밖에 있는 조각상과 축대 벽에 조각된 그림을 보는데 무수한 이름이 쓰여 있다. 어떤 사람들의 이름인지 모르겠다.

  박물관 아래 공원에는 웬 할아버지들이 모여 있다. 나는 눈도 마주치지 않게 얼른 지나갔는데 성격 좋고 비위 좋은 미숙씨는 할아버지들에게 다가가 사진도 찍어주고 찍은 사진 보여주며 말도 잘 나눈다. 저렇게 변죽이 좋으니 남미여행도 혼자 50일 정도 했나보다. 아무튼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다.

  성당도 보고 성채도 보고 되돌아오는데 갑자기 웬 경적소리가 울린다. 옆을 보니 아까 그 할아버지다. 그새 구면이라고 인사를 한다. 미숙씨는 배낭을 열어 비행기에서 받은 햄버거를 드리니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순박한 시골 할아버지의 마음씨가 느껴진다.

  솔로몬 호텔로 돌아와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와이너리를 방문하러 갔다. 가는 길에 전망 좋은 곳에 서서 시그나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초록의 숲에 둘러싸인 시그나기의 붉은 집들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와이너리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가니 주인 할머니가 손녀를 안고 나와 우리를 맞이한다. 손녀는 허구헌 날 손님들을 맞아서 그런지 마치 인기스타처럼 포즈도 잘 취한다. 얼굴도 클레오파트라 뺨치게 예쁘고 앙증맞게 생겼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땅에 포도주 항아리가 묻혀있고 포도를 넣고 밟는 나무통도 있다. 우리나라의 막걸리 항아리에 넣는 용수처럼 생긴 소쿠리도 매달려 있다. 할아버지는 악기를 만드는 장인인데 지금도 작업 중이다.

  다음은 빵 굽는 곳으로 갔다. 큰 항아리 안에 숯이 들어있고 뜨거운 항아리 벽에 밀가루 반죽한 것을 붙여 구워낸다. 순희씨가 해보겠다고 하더니 처음에는 실패하여 반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두 번째는 성공하여 벽에 탁 붙여놓았다. 매사에 적극적인 모습이 보기 좋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문에는 십자가 다섯 개로 된 그루지아 국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걸려있다. 한국인이 자주 오나보다. 하긴 박종완씨와 주인아저씨의 태도를 보니 퍽 친해 보인다.

  오늘은 양 한 마리를 통째로 주문했다. 주인아저씨 싸이먼이 전통 복장을 입고 화덕에서 양과 돼지고기 바베큐를 꺼내 먹기 좋게 썰어준다. 싸이먼은 딸과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식사하는 내내 우리 귀를 즐겁게 해준다. 싸이먼과 딸의 화음은 부녀간이라 그런지 화음이 딱 딱 맞는 게 조화롭다. 그 모습을 보니 부모 모시고 자식과 함께 이렇게 노래하며 사는 것이 인간의 참 행복이 아닐까 싶다.

  라이브 공연을 끝내더니 싸이먼이 러브 샷을 하자고 한다. 이곳의 잔은 소뿔로 되어있어 한 번에 다 마셔야지 남긴 것을 바닥에 놓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황희정씨가 도전하여 멋지게 마시고는 포옹까지 한다. 연옥씨도 하겠다고 두 손 들고 나가더니 멋지게 한 잔하고 얼굴에 키스까지 하고 들어온다. 다들 신나게 노는 모습이 행복하기 그지없다.

  그루지아 와인은 값도 싸고 맛있다. 그루지아는 종교와 와인의 나라다. 로마보다 먼저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였다. 포도에 대한 의미도 남다르다. 성녀 니노가 로마에서 이곳으로 와서 지내던 중 꿈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십자가를 주며 이곳에 선교하라고 하였다. 그녀는 포도나무를 꺾어 십자 모양을 만든 후 자신의 머리칼로 엮어서 십자가를 만들었다. 그녀가 시그나기에서 죽자 다른 곳으로 관을 옮기려했으나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녀를 이곳 시그나기에 묻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의 포도나무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와이너리에서 나와 그루지아 군용도로를 타고 카프카즈 산맥의 카즈베기로 이동하였다. 그루지아의 현재 대통령은 미국에서 유학하였는데 러시아식 이름인 그루지아를 영어 발음인 죠지아로 바꾸었다. 카프카즈 산맥도 영어로 하면 코카서스 산맥이다.

  가는 길에 양떼를 만났는데 어찌나 양이 많은지 길을 꽉 막아 앞으로 전진할 수가 없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도 양의 홍수에 갇혀 꼼짝을 못한다.  

 

 

  이 군용도로는 독일인 포로들이 만든 것이다. 200km나 되는 이 길은 눈 덮인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 러시아로 이어진다. 스탈린은 이 길을 통해 흑해의 부동항을 확보하려고 2차 대전 중 잡아온 독일군 포로들을 동원하여 6개의 터널을 뚫고 길을 만들었다. 구불구불 산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이 길은 코카서스 산맥의 진수를 보여주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다.

  1983년 예카테리나 여제가 도로 개통 200주년을 기념하는 전망대를 만들었다. 그녀는 독일 여자인데 러시아로 시집 간 후 남편이 죽자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코카서스 산맥의 위용이 가슴 벅차다. 2400m 높이의 고개 정상에는 십자가도 세웠는데 십자가가 있으므로 이 고개를 크로스 패스(cross pass)라고 한다.

일 년의 반 이상이 눈으로 덮여있고, 비가 오면 흙이 쏟아져 길이 막힌다. 이 날도 곳곳이 공사 중이라 차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흙에 바퀴가 빠져 올라가지 못하는 차는 공사차량이 끈을 매어 끌어올린다.

  고개를 내려가는 도중 능선 너머로 카즈베기 산이 보인다. 마치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 큰 바위 얼굴이다. 카즈베기에 도착하여 룸스 카즈베기 호텔에 들었다. 호텔에서 카즈베기 산이 정면으로 보인다. 능선 아래에 삼위일체 성당도 그림처럼 아름답다. 다들 탄성을 지르며 누가 가자 그랬어?’를 연발한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원장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사실 우리야 이런 나라가 있는지 이런 산이 있는지 이런 멋진 호텔이 있는지 까맣게 모르고 살았다. 다들 카즈베기를 배경으로 미친 듯이 사진을 찍느라고 열쇠를 받으라고 불러도 들어가질 않는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로비로 들어가니 로비도 장난이 아니다. 마치 도서관에 들어온 듯 서가에 책이 가득하고 맘대로 꺼내 볼 수 있게 하였다. 곳곳에 소파도 있어 거기 앉아 카즈베기를 바라보며 차 한 잔 하면 그야말로 자신이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날이 어두워지자 산 중턱에 있는 삼위일체 성당에 불이 들어와 은은한 빛을 발한다.

  다음 날은 삼위일체 성당까지 가보기로 하였다. 일부는 짚차를 타고 올라가고 일부는 걸어 올라가기로 하였다. 박종완씨는 짚차를 태워주겠다는데 왜 걸어 올라가느냐고 하지만 우리는 걸어 올라가는게 더 좋다고 우겼다. 걸을 사람은 로비에 5시까지 모이라고 하였다.

 

2년 만에 이런 팀 처음이라고? ( 525)

  카즈베기 산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하늘나라에 있는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서 이 산의 바위에 묶였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매일 독수리한테 간을 파 먹히는 벌을 내렸다. 하루 종일 파 먹히고 나면 밤사이 다시 간이 재생되어 다음 날 또 다시 간이 파 먹히는 고통을 당해야했다. 이런 프로메테우스를 헤라클레스가 구해주었다. 프로메테우스의 이런 헌신 덕분에 지금 우리는 따땃한 방에서 따끈한 음식 먹고 사는지도 모른다.

  새벽 5시에 로비로 나가니 14명의 회원이 중무장을 하고 모였다. 박종완씨가 바람이 많이 불고 추울 거라고 한 까닭이다. 박종완씨는 나머지 6명의 회원들과 짚차를 타고 오기로 했다. 성당 앞으로 짚차를 가지고 올라갈 테니 내려올 때는 타고 오라고 한다. 그러면서 2년 동안 걸어 올라가겠다는 팀은 처음이라고 한다.

  삼위일체 성당의 본 이름은 게르게티 삼위일체 성당이다. 이 성당은 그루지아에 있는 성당 중 유일하게 돔 형태의 지붕을 가지고 있다. 소련시절에는 모든 예배가 금지되었지만 그루지아인들의 성지인 이곳에서는 예배가 이루어졌다. 성당 천장에는 비밀의 방이 있어 전쟁 때는 보물을 숨겼는데 니노 성녀의 십자가도 전시에는 이곳에 숨겼었다.

  1시간 반쯤 산을 오르는 동안 이곳저곳 야생화에 눈길을 빼앗겨 지루한 줄 모르겠다. 숨을 헐떡이며 기어오르다 보니 갑자기 성당이 보인다. 능선에 올라서니 바람이 어찌나 센지 몸 가누기도 힘들다. 돌 탑 위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성당에서 개가 우리를 좇아 내려온다. 배가 고파 어제 와이너리에서 가져온 빵을 꺼내니 마구 달려든다. 다 빼앗길까봐 두 손을 번쩍 들고 반을 잘라서 주니 얼른 물고 간다. 나머지 반을 야금야금 씹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카즈베기의 큰 바위 얼굴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성당의 뒤편은 카즈베기가 자리하고 앞에는 이름 모를 산들이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서있다. 이 성당 건물 옆에는 여자들의 옷 갈아입는 방이 딸려있다. 웬 옷을 갈아입나 하고 들어가 보니 치마와 스카프가 여러 개 있다. 여자들은 바지 차림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다. 머리도 맨 머리로 들어가면 안 된다. 성경에 보면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고 남자의 머리는 예수님이라고 되어있다. 그래서 여자는 성당에 들어갈 때 머리를 가린다. 맨 머리를 드러내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결혼할 때 여자가 면사포를 쓰는 것도 이제 머리가 없다는 뜻이라 한다. 그러면 결혼한 여자는 남자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나? 하긴 결혼이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했으니 한 몸에 머리가 둘이면 안 되겠지.

  검은 치마를 두르고 스카프를 뒤집어 쓴 후 안으로 들어가니 안에서는 수도사가 한창 경을 읽는 중이다.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그 목소리가 무척 경건하게 들린다.

  밖으로 나가 성당 뒤 바위가 있는 곳으로 가니 벤치가 있고 김 사장님이 앉아있다. 보온병에서 커피를 따라주며 마시라고 한다. 추위에 떨다가 따끈한 커피를 마시니 그 맛이 환상이다. 세심한 배려가 고맙다.

  커피를 마시고 내려오니 성당 문 앞에 한 소년이 수도사 복장을 입고 서 있다. 우리는 이 소년과도 기념사진을 찍었다. 소년의 얼굴 표정이 물처럼 맑다.

  성당 뒤쪽으로 내려오니 사륜구동차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걸었던 반대방향으로 차를 타고 내려오다가 중간에 서서 다시 한 번 성당을 바라보았다. 개 두 마리도 여기까지 우리를 따라 내려왔다. 이 개들은 이렇게 경치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평생을 사니 엄청 복 받은 개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얼굴도 잘 생기고 때깔도 좋고 윤이 반지르르하다. 여기도 둥근 모양의 탑과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호텔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고 아나우리로 이동하였다. 어제의 그 고개를 다시 넘는데 어제보다 더 안개가 심해 전망대고 코카서스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공사판 앞에서 한참 지체했다. 오늘도 밑에서 올라오는 차가 올라오지를 못해 체인으로 잡아끌어 올리려니 시간이 한참씩 걸린다. 고개를 다 내려와 조금 달리니 왼쪽으로 큰 성채가 나타난다. 아나우리 요새다. 망루 꼭대기에 사람들이 올라가 있다. 우리도 올라가 보고 싶었지만 남은 일정이 많은 고로 겉모양만 보고 다시 출발했다.

  트빌리시를 향해 계속 달리다가 트빌리시 서쪽 50km에 있는 고대 동굴도시 우플리스치케로 갔다. 이 동굴도시 이름은 외우기는커녕 보고 읽기도 힘들다. 혀가 꼬이는 것 같다. 이 도시는 기원 전 6세기 경 태양신을 모시던 종교도시로서 한 때는 5000명의 사람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11세기 초에는 실크로드의 교역로가 되면서 2만 명의 거민이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언덕 위에 작은 성당이 하나 있을 뿐이고 현장학습 나온 아이들만 다람쥐 모양 날렵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이 도시는 쿠리 강변에 세워졌는데 강가에서 동굴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적들의 눈을 피해 강물을 길어 올리던 통로라고 한다. 지금은 계단을 놓아 오르기 쉽게 해놓았다.

  위로 올라가니 무수한 동굴이 벌집 모양 뚫렸는데 재판을 행하던 곳도 있고 죄수를 가두던 웅덩이도 있다. 물 없는 이 웅덩이는 빠지지 않게 철망 뚜껑으로 덮어 놓았다. 그 옆에는 처형장도 있는데 목을 바위에 파 놓은 홈에 대면 목을 친 후 몸뚱이가 옆으로 떨어지게 해놓았다. 가이드 박종완씨가 몸소 시범을 보이며 바닥에 누워 홈에 머리를 대자 호기심 많은 황희정씨가 자기도 해본다고 땅바닥에 누워 머리를 댄다. 하여튼 우리 팀은 한 마디로 못 말리는 팀이다.

  한곳에는 타마여왕의 연회장도 있고 약국도 있다. 약국에는 벽돌로 구멍을 많이 만들어 한약방같이 칸칸이 약재를 넣어두게 되어있다. 그야말로 완벽한 하나의 도시다.

동굴 위에서 애란씨와 연옥씨 사진을 찍어주려는데 웬 아이들이 함께 찍겠다고 우루루 몰려든다.

 

 

  단체 사진을 몇 방 찍더니 너도 나도 개인 사진을 찍겠단다. 같이 온 엄마들도 서로 자기 아이와 함께 찍으라고 난리다. 졸지에 애란씨와 연옥씨 세계적인 스타 됐다.

 

 

  여기서 나와 한 시간 정도 달려 므츠헤타로 이동했다. 두 개의 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 있는 이 도시는 옛 이베리아 왕국의 수도였다. 이곳에는 즈바리 수도원이 있는데 즈바리는 십자가라는 뜻이다. 언덕 위에 있는 이 자리에는 원래 태양신을 위한 신전이 있었는데 성녀 니노가 이 자리에 십자가를 꽂고 성당을 세웠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중앙에 나무로 된 큰 십자가가 서 있다. 이게 니노 수녀님이 꽂은 십자가 인가 하고 자세히 쳐다보는데 박종완씨가 그게 아니고 큰 십자가의 아랫부분 문짝 모양으로 된 속에 성 니노의 십자가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므츠헤타에서 가장 큰 교회는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이다. 스베티츠호벨리는 살아있는 기둥이란 뜻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입었던 성의가 보관되어 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로마 병사들이 옷을 나누어 가졌다. 그 때 예루살렘에 있던 그루지야의 엘리야라는 사람이 로마 병사에게 예수님의 옷을 샀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자기의 여동생인 시도니아에게 보여주었다.  

  시도니아가 이 옷을 받아들며 아 이것이 예수님의 성의인가?” 하며 전율을 일으켜 죽었다.

죽은 시신에서 성의를 빼내려했으나 꼭 잡고 놓지 않아 할 수 없이 성의와 시신을 함께 묻었다. 그 자리에 삼나무가 자랐는데 300년 후 그 삼나무를 잘라서 교회를 세우려고 했다. 7개의 기둥을 세우는데 그중 한 개가 공중에 떠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 때 니노 수녀님이 기도하자 기둥이 내려왔고 교회를 건축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기둥 교회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 교회는 겉의 큰 교회 안에 작은 교회가 그대로 있다. 그 작은 교회에 예수님의 성의가 묻혀있다고 한다. 이 교회 마당에 서면 멀리 산꼭대기에 있는 즈바리 수도원이 보인다.

  살아있는 기둥교회를 나와 트빌리시로 오며 박종완씨가 또 백만 송이 장미에 대한 얘기를 해준다. 이 노래는 심수봉이 불러서 우리나라에서도 애창되던 곡이다. 라트비아 가이드도 이 얘기를 했었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트빌리시에서 살던 타로스만이란 짐꾼으로 부업으로 식당이나 술집 간판을 그리던 사람이었다. 그는 미술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사람이었다. 어느 날 트빌리시에 프랑스 가극단이 들어왔다. 그는 가극단의 여가수를 짝사랑하게 되었고 자신의 집을 팔아 100만송이 장미를 사서 그 여가수가 묵는 호텔 정원에 가득 깔아놓고 청혼을 하였다. 여가수는 매정하게 뿌리치고 프랑스로 돌아갔다.

  집도 절도 없이 빈털터리가 된 그는 다시 역전으로 돌아가 짐을 나르다가 간경화로 죽었다. 파리에서 타로스만의 회고전이 열리자 할머니가 된 그 여가수가 와서 보고 갔다고 한다. 이 곡은 원래 라트비아 곡인데 러시아 작사가가 작사를 하여 이 곡에 붙여 유명하게 되었다.

  트빌리시에 도착하여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갔다. 그루지아의 어머니 상이 있는 곳이다. 어머니상은 어머니라기보다는 칼을 든 여전사의 모습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트빌리시 시내는 마치 남산 타워에서 바라보는 서울 모습이다. 가운데는 강이 흐르고 둥둥섬과 순복음교회처럼 생긴 건물도 보인다.

  저녁식사는 우설찜과 치즈빵을 먹었다. 이 식당에서는 노래공연도 하였는데 가운데를 비워놓아 춤도 출 수 있게 해놓았다.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자 너도 나도 뛰어나와 춤을 춘다. 국적 불문, 성별 불문으로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데 세계는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나오자 모두 나가 한바탕 말 춤을 추었다. 싸이의 인기는 가히 온 세계를 뒤흔든다.

신나게 놀다가 호텔로 가려니 경찰들이 길을 막고 차량통행을 금지시킨다. 우리가 묵으려는 마리오트 호텔 앞에서 내일 행사가 있어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내일은 그루지아의 독립기념일이다. 성 조지아의 황금상이 있는 우리 호텔 앞 광장이 서울의 시청 앞 광장과 같은 모양이다. 결국 사람만 내려서 호텔로 오고 짐은 나중에 호텔 직원이 가져다주었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방 있으면 나와 보라. ( 526)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철철 내린다. 독립기념일 행사하려면 지장이 많겠다. 얼른 그쳤으면 좋으련만. 오늘은 아르메니아로 넘어가는 날이다. 이 나라 저 나라 하도 돌아다니니 이제 국경통과는 식은 죽 먹기다. 그런데 국경만 통과하려면 비가 온다. 그래도 그루지아 출입국 사무소는 건물 안에서 출입국 심사를 하니 비를 안 맞아서 좋다.

  아르메니아 쪽 입국심사를 받으려는데 반대편에서 웬 여자가 이쪽으로 오라고 안내를 한다. 알고 보니 아르메니아 가이드 카린이다. 카린은 KBS2 영상앨범 산 프로에 박종완씨와 함께 출연했다고 한다. 526일에 방영된다고 하니 서울 가서 인터넷으로 봐야겠다.

  아르메니아는 코카서스 3국 중 가장 못 산다고 한다. 하지만 머리가 비상하여 미그기도 이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 한다. 수도 예레반은 소련에서 독립하면서 수도가 된 곳으로 100년도 안 된 도시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아라랏산을 성스러운 산으로 여긴다. 아라랏산을 아버지, 세반호수를 어머니로 생각한다. 그래서 국기에도 아라랏산을 넣었다. 그런데 스탈린이 터키와 협상하면서 터키에게 주어버렸다.

  코카서스 산맥은 두 줄기로 되어있다. 러시아와의 국경에 있는 대 코카서스 산맥의 최고봉은 엘부르즈산이고 터키와 아르메니아의 경계에 있는 소 코카서스 산맥의 최고봉은 아라랏산이다. 아라랏 산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대홍수 때 방주가 물에 떠다니다가 처음 땅에 닿은 곳이다. 아르메니아인은 노아의 셋째 아들 야벳의 후손이라고 한다. 노아가 아라랏 산에서 방주를 나왔다면 이곳에서 살았을 확률이 크다.

  아그파트로 이동하여 아그파트 대성당을 보았다. 이 성당은 데베드 협곡 위 고원지대에 있는데 주변 경관이 뛰어나다. 성당 바닥에는 무수한 돌 판이 깔려 있고 돌판 마다 이름이 쓰여 있다. 모두 이곳에 묻힌 사람들의 관 뚜껑이다.

  다른 방의 바닥에는 많은 항아리들이 묻혀 있는데 양피지로 된 각종 문서를 보관하던 곳이다. 성당 외벽에는 두 사람이 교회를 맞들고 있는 조각이 장식되어 있는데 두 아들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사나힌 수도원과 아그파트 성당은 아버지와 아들이 지었다. 쌍둥이 교회라고도 하는데 아버지가 지은 사나힌 수도원이 10년 정도 먼저 지어졌기 때문에 형님교회다. ‘거기보다 먼저라는 뜻의 사나힌이라고 이름 지었다.

  아들이 지은 아그파트 성당은 아버지가 지은 것보다 더 단단하게 잘 지었다고 단단한 성이라는 뜻의 아그파트라 하였다. 아그파트 성당 앞 풀밭에는 네잎 클로버가 많다. 네 잎 클로버를 찾느라고 다들 풀밭을 뒤지고 다닌다. 나도 네 개를 찾아 미숙씨와 상윤씨, 애란씨와 연옥씨에게 하나씩 주었다.

  이렇게 다 주고 버스에 올랐더니 선실씨가 다섯 잎 클로버를 준다. 이런 걸 보고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고 하나보다. 아그파트 성당을 나와 시나한 성당으로 갔다.

  이곳은 먼저 지어진 성당이라 그런지 아버지가 지은 성당이라 그런지 아그파트보다 작고 소박하다. 이 성당에는 공부방도 있는데 칸칸이 한 명씩 앉을 수 있게 벽이 움푹 들어가 있다. 여기도 교회 밖 벽면에 두 남자가 교회를 들고 있는 조각상이 새겨있다.

  다음은 미그기를 보러 갔다. 비행기 꽁무니가 뚫려있어 안을 들여다보니 속이 시커멓다. 원장님도 열심히 들여다본다. 비행기 내장 들여다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르 사람들을 아르메니안이라고 하는데 아르메니안의 땅을 아르메니아라고 한단다. 그래서 고려 사람을 코리안, 고려인의 땅을 코리아라고 하나보다. 우리가 지명, 인명 등을 기억하기 힘들어하니까 박종완씨가 해설을 붙여준다. 데베드 계곡은 bed 즉 큰 침대 계곡이라고 외우란다. 그렇게 외우니 훨씬 기억이 잘 된다. 역시 명강사는 교수법이 다르다.

  바나도르 마을로 이동하여 코카서스의 스위스라 일컫는 딜리잔 마을로 갔다. 딜리는 남자 이름이고 ~잔은 누구야~ 하고 부르는 접미어란다. 그러니까 딜리잔은 딜리야~하고 부르는 소리다. 딜리라는 남자 아이가 이곳에 살았는데 툭하면 숲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으니 엄마가 딜리잔~ 딜리잔~ 하고 불렀다고 한다. 딜리와 엄마가 껴안고 있는 동상도 있다는데 보지는 못했다. 이곳에는 예술가들이 작업하는 아름다운 공방과 예쁜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가 많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딜리잔에서 나와 세반호수로 달렸다. 세반호수는 1900m 높이에 있는 길이 78km의 거대한 호수다. 세반은 검은색을 뜻하는데 워낙 높은 곳에 있는 관계로 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검게 보인다고 한다.

  과연 우리가 가는 날도 호수 주변의 산에 구름이 덮여 호수를 향해 기어 내려오고 있었다. 길 가에서 우리를 향해 양팔을 쫙 벌리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무얼 하는 사람들인가 했더니 그만큼 큰 고기가 있으니 사라는 것이란다. 그런데 실제로 가보면 30cm 정도 밖에 안 된단다. 일단 모션을 크게 하여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 차를 세우려는 속셈이다.

  현지 가이드 카린이 컨디션이 안 좋은지 안색이 안 좋다. 감기가 심하다고 하니 원장님이 감기약을 준다. 우리가 이 사람은 의사라고 했더니 웃으며 공짜냐고 한다. 공짜라고 하니 배려해줘서 고맙다고 깍듯이 인사한다.

  세반 호숫가에 있는 호텔로 들어가 방으로 가니 입이 딱 벌어지게 전망이 기막히다. 우리 방은 코너에 있는 방인데 한 쪽 창으로는 세반호수가 펼쳐지고 한 쪽 창으로는 구름이 흘러내리는 산이 펼쳐진다. 넓직한 거실과 소파가 있고 방도 두 개다. 방에는 오디오까지 있다.

 

 

 

  욕실에는 스파까지 갖추어져 모든 게 완벽하다. 세상에 이렇게 멋진 방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고 싶다. 세반 호수 위로 지는 일몰 또한 환상이다.

 

 

돌들의 심포니라고? ( 527)

  호텔 앞에 보이는 산으로 아침 산책을 나갔다. 산 아래는 아담한 세반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을길로 들어서니 한 할아버지가 소를 끌고 지나간다. 아침 꼴을 먹이러 가나보다. 집 앞 마당에는 토종닭들이 모이를 찾고 있다. 자연환경이 좋으니 닭들도 털이 반지르르한게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산등성이로 오르니 소떼를 몰고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멀리 가서 풀을 뜯게 하려나보다. 산에는 라벤다와 장구채 등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마음 같아서는 산꼭대기까지 가고 싶지만 아침 식사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마을길로 내려섰다.

  한 집 마당에는 사과 꽃이 가득 피었다. 우리가 사진을 찍자 이층 베란다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나는 그냥 가려고 했지만 성격 좋은 미숙씨가 또 들어갔다 가자고한다. 마당으로 들어가 이층 베란다로 올라가니 의자에 앉으란다.

 

 

커피를 마시고 가라고 하며 할머니가 얼른 안으로 들어가더니 에스프레소 커피 두 잔을 내온다. 예쁜 그릇에 사탕과 초콜릿도 내온다. 나는 너무 써서 조금 먹고 말았는데 미숙씨는 맛있다고 내 것까지 다 마신다.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하여 코리아라고 하니 쎄울한다. 서울에서 왔느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니 예레반은 두 손가락, 모스크바는 네 손가락을 내밀며 쎄울?’ 한다. 서울은 얼마냐고 하는 건지 뭔지 도무지 못 알아듣겠다. 우리는 예레반은 가깝고 모스크바는 조금 머니까 아마 거리를 묻는 모양이라고 하며 열 손가락을 내밀었다.

  미숙씨는 할머니의 성의가 고마워 무엇을 주고 싶은데 아무 것도 안 가져왔으니 어쩔까 하다가 손목에 낀 묵주 팔찌를 빼서 할머니 손목에 끼어준다. 한국 전통 문양의 팔지라고 열심히 설명을 한다. 이것은 설악산 봉정암에서 산 묵주인데 가운데 탑이 그려져 있다. 할머니 기뻐서 입이 귀밑까지 올라붙었다. 항상 옆의 사람들에게 베풀려고 하는 미숙씨의 마음 씀씀이가 존경스럽다. 나보다 일곱 살이나 어린데 어찌나 속이 깊은지 가끔씩 깜짝 깜짝 놀란다. 우리가 커피를 다 마시고 일어서려고 하자 사탕을 가지고 가란다. 우리는 세 개씩 호주머니에 넣고 그 집을 나왔다.

 

 

 

  아침 식사 후 호수 안쪽에 있는 세반느반크 수도원으로 갔다. 반크는 교회라는 뜻이다. 이곳은 원래 호수 안에 있는 섬이었는데 수위가 낮아지면서 육지와 연결되었다. 스탈린이 이 호수의 물을 터널을 통해 러시아 각지로 보냈는데 그 결과 수위가 20m나 낮아졌고 섬도 육지와 연결된 것이다. 아르메니아인의 피난처요 항쟁지였던 이곳이 육지와 연결되자 아르메니아인은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수위를 높이려 노력하고 있다.

 

 

 

  세반 호수를 떠나 아자트 계곡에 있는 게하르트 수도원을 보러 갔다. 이 수도원은 돌산을 통째로 깎아서 만든 한 개의 바위로 된 수도원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로마 병사가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다. 그 창을 예수님의 제자 다데오와 바돌로메가 가지고 와서 보관한 곳이다. 그래서 창끝교회라고도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웬 여자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촬영 중이다. 무엇을 찍는지는 몰라도 늘씬한 팔등신의 미녀들이 한껏 포즈를 취하며 춤을 추니 수도원이고 뭐고 안중에도 없고 모두 카메라를 들이댄다. 뭐니 뭐니 해도 인간만큼 아름다운 작품은 없다.   

 

 

  한 방으로 들어가 박종완씨가 아리랑을 부른다. 바위를 파서 만들어서 그런지 울림이 기막히다. 바위가 스스로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다른 방으로 가니 마침 성가대가 노래를 부르려고 들어온다. 석류나무가 그려진 옷을 입고 다섯 명의 여자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어찌나 아름답고 경이로운지 다들 숨을 죽이고 듣는다.   

 

 

  성가대의 찬송을 들은 후 밖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모여 돌을 던진다. 바위 위에 있는 구멍에 돌을 던져 넣으면 행운이 온다는 것이다. 우리도 열심히 던졌는데 자꾸 굴러 떨어진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연옥씨와 나는 골인을 시켰다. 앞으로 어떤 행운이 올지 기다려봐야겠다.

  수도원에서 나와 농가 체험을 하러 갔다. 라바쉬라는 종이처럼 얇은 빵을 굽는 곳이다. 땅에 깊은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층층이 고기와 감자를 넣어 익힌 요리도 기막히다. 고기보다 감자가 더 맛있어 다들 감자를 먹으려하니 박종완씨가 고기 한 개를 먹어야 감자 한 개 준다고 농담을 한다.

식사 후 가르니 협곡의 주상절리를 보러갔다. 계곡 입구에 도착하니 ‘SYMPHONY OF STONES’ 라고 쓴 안내판이 보인다. 어떻게 돌들이 교향곡을 연주하나 하는 마음으로 계곡으로 내려가니 어마어마한 주상절 리가 나타난다.

  주상절리(柱狀節理)는 마그마가 식을 때 부피가 줄어들면서 생기는 거대한 틈이다. 주상(柱狀)이란 기둥모양을 의미하고 절리(節理)란 냉각작용으로 생긴 수직방향의 쪼개짐 현상을 말한다. 완벽하게 형성된 주상절리는 주로 육각기둥모양을 이룬다. 가르니 계곡의 주상절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것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마치 파이프 오르간의 건반처럼 늘어서 있는 절리가 보는 이를 압도하여 숨을 멈추게 만든다. 말 그대로 바위들이 교향곡을 연주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건 인간의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신의 작품이다.

 

 

 

  주상절리의 강한 인상이 머리와 가슴에 깊이 박혀 지워지지 않는다. 집에 와서 아파트 창문에 걸린 버티컬만 보아도 주상절리처럼 보인다.

  절리에 마음을 빼앗겨 정신없이 걷다보니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가르니 태양신전으로 오르는 길이다. 태양신전은 그리스의 신전처럼 웅장하게 생겼다. 24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이 신전은 태양신전으로 지었지만 아르메니아 왕의 여름궁전으로도 쓰였다.

 

 

 

  신전 북쪽에 있는 목욕탕은 온돌로 되어있는데 바닥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과 동물이 모자이크 되어있다. 한 모자이크에는 코이니어로 우리는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노동자들이 무보수로 일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전 안으로 들어가니 한 남자가 아르메니아 전통 악기인 두둑을 연주한다. 두둑 소리는 두둑 두둑 하는 줄 알았더니 피리 같은 모양의 악기다. 아르메니아의 영혼이란 곡을 연주하는데 그 소리가 흐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빗소리 같기도 하다. 우수에 가득 찬 소리다. 이 곡은 영화 글레디에이터에 삽입된 곡이라 한다. 최사장님이 CD를 구입하여 버스에서 한 번 더 들었다.

  천둥소리가 우리를 버스로 뛰게 만든다. 가까스로 버스에 타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수도 예레반에 도착하여 빅토리 파크에 있는 아르메니아 어머니상을 보러갔다. 어머니상은 양팔로 칼을 들고 있는데 이것은 싸우자는 뜻이 아니고 더 이상 싸우기 싫다는 뜻이라 한다.

  빅토리파크에서 내려와 재래시장에 들렀다. 여러 가지 견과류와 견과류에 엿을 바른 것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다. 호도에 포도즙을 졸여 엿같이 만들어 발라놓은 것을 네 줄 샀다. 맛이 달콤하고 고소하니 나이든 사람 먹기 딱 좋다.

 

막내도 별 수 없네? ( 528)

  아침에 체크아웃하고 짐을 버스에 싣는데 나도 모르게 배낭은 두고 그냥 가려고 한다. 2주 동안 미숙씨가 허구한 날 배낭 져주니 이제 왕비로 착각하나 보다. 이래서 무수리는 무수리 대접해야지 왕비 대접하면 진짜 왕비인 줄 알고 기고만장 하게 된다.

  아침 6시에 간단한 식사를 하고 예레반 공항으로 갔다. 박종완씨는 체크인 할 때 앞의 전광판에 나오는 숫자로 가서 수속을 밟는데 두 번째 손가락을 찍는 거라고 친절히 일러준다. 마지막까지 공부시키려고 아르메니아의 아르강한이란 뜻이라고 일러준다. 아르갓산은 아르메니아의 최고봉인데 강한 산이란 뜻이다.

  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밟으려는데 연옥씨가 당황해 한다. 입국할 때 받은 출국 심사표를 호텔에서 버렸다는 것이다. 노친네만 정신없는 줄 알았더니 막내도 별 수 없나보다. 김 사장님 스마트폰에 비자 받은 서류가 저장되어 있으니 김 사장님과 함께 출국 심사를 받았다.

  출입국 심사를 받으려면 지은 죄도 없는데 공연히 심장이 떨리고 주눅이 든다. 잔뜩 긴장하여 여권을 내밀고 손가락 찍고 시키는 대로 다 하고 기다리니 도장을 쾅 쾅 찍고 여권을 다시 준다.

안으로 들어와 여권을 보니 웬 종이가 끼어있다. 이게 무슨 종이인가 애란씨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그런 거 없다고 연애편지인가 보다고 농담을 한다. 심사원이 낙서하던 종이를 정신없이 끼워 넣었나보다.

  비행기 타기 전에 게이트에서 또 손가락을 찍는다 아르메니아 사람들 손가락 찍기 엄청 좋아하나보다. 그새 사람이 바뀔까봐 그러나?

  파리 드골 공항에서 환승을 했다. 드골 공항은 하도 커서 촌년처럼 어리버리하는데 화살표도 이상하게 해 놨다. 앞으로 가라는 표시를 화살표를 아래 방향으로 해 놨다. 꼭 뒤로 되돌아가라는 것 같다.

  겨우 게이트를 찾아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문이 닫히고 한참이 지나도 비행기가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웬일인가 궁금해 하는데 방송이 나온다. 기내에 환자가 생겼으니 의사는 앞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김사장님이 친절하게도 B23에 계신 분이 의사라고 승무원에게 알려준다. 원장님이다. 비행기에서 환자 생기면 의사들이 나서기 싫어한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또 마냥 기다리는데 방송이 나온다. 현지에서 의사가 오기로 했으니 기다려 달란다. 다시 비행기 문이 열리고 한참 만에 의사와 구급대원이 왔다. 아무리 해도 안 되겠는지 휠체어에 싣고 나간다. 4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다.

  다시 문을 닫고도 움직이지 않는다. 추가 급유를 한다는 것이다. 두 시간 정도 시동을 걸고 있었으니 기름이 모자라나 보다. 급유를 하더니 이제는 공항에서 이륙 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더 기다려야 한단다. 이륙 스케줄이 빡빡하니 끼어들 틈이 없나보다. 결국 예정시간보다 3시간이나 지나서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11시간 비행하려던 것이 14시간 걸리게 생겼다. 벌써 온몸이 비틀린다.

 

세 시간 기다렸다고? ( 529)

  예정보다 3시간 연착하여 인천공항에 내리니 10시가 넘었다. 집에서 기다릴 남편 생각이 나서 3시간 연착했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3시간 기다렸다고 답장이 온다. 공항에서 기다렸느냐고 하니 그렇단다.

  서울 떠날 때 교통사고로 우리 차가 없어 버스 타고 왔다. 아무런 약속도 없이 떠났으니 당연히 나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새 차를 고쳐 찾아왔나보다. 그래도 그렇지 연락도 없이 무작정 나왔으니 어쩌란 말인가? 짐을 찾아 나오니 남편이 다가온다. 미안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지하철 타고 가려고 마음먹었는데 편안히 가게 되어 좋기는 좋다. 애란 씨는 복도 많네~’ 하며 사라진다.

 

  이번 여행은 참 우여곡절도 많고 재미있고 신나는 여행이었다. 몸이 불편하여 걱정하며 떠났지만 무사히 마치고 오게 되어 더 기쁘다. 누가 가자고 그랬는지 정말 감사하다. 나 같은 짐 덩어리 노약자를 누가 가자하겠는가? 앞으로도 누가 가자고만 하면 무작정 따라 나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