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3년 3월 캄보디아 기행문

아~ 네모네! 2013. 3. 17. 21:17

 

섭섭하이

 

                                                              기간 : 201331~ 310

                                                                        장소 : 캄보디아 시엠립, 몬돌끼리, 프놈펜

 

 

  캄보디아 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다. 10여 년 전에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들과 갔었다. 사위가 캄보디아로 발령을 받아 딸네 식구들이 프놈펜에서 살고 있는데 딸도 볼 겸 친정 동생들과 캄보디아 여행을 가기로 했다.

 

VIP 비자가 있는 공항 ( 31)

  시엠립 공항에 도착하니 캄사랑이라고 쓴 공항 경찰이 한국관광객들의 여권을 걷는다. 이른바 VIP 비자를 내준다는 것이다. 원래 비자피는 20달러인데 1인당 5달러를 내면 경찰이 서류작성과 절차를 밟아 호텔로 직접 여권을 가져다준다. 참 재미있는 나라다. VIP 비자 받으면 인간도 VIP 되려나?

가이드 이언주씨의 안내를 받아 키메라 앙코르 호텔에 들었다.

 

유적답사 하러 왔냐? ( 32)

  아침에 로비로 나가니 국왕과 왕비 사진이 걸려있다. 작년 10월에 돌아가신 시아누크 왕과 왕비의 사진이다. 3개월간의 추모 기간이 끝나고 며칠 전 장례를 치렀단다. 그 동안 모든 음악과 춤을 금지하고 애도의 기간을 가졌다고 한다.

  버스에 오르니 언주씨가 우릴 보고 유적답사 하러 왔느냐고 묻는다. 무슨 말이냐고 하니 우리가 요구한 스케줄을 보니 유적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이다. 보통 4개 정도 보는데 우리는 14개나 보여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스케줄은 4번 동생 재숙이네가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보고 짠 것이다.

  우리 친정은 16녀로 딸 부잣집이다. 아들은 하나라 혼동할 일이 없는데 딸은 너무 많아 우리들도 가끔 헷갈려 번호를 붙여 부른다. 몇 번 언니 몇 번 동생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고 부르기도 쉽다. 나는 두 번째 딸이라 2번 언니다.

  어느 나라에 가나 가이드들은 먼저 그 나라 인사부터 가르쳐준다. 언주씨도 역시 우리에게 인사말을 가르쳐주었다. 안녕하세요는 섭섭하이, 감사합니다는 오꾼찌란, 미안합니다는 쏨또라고 한다. 섭섭하이는 우리말 섭섭하다는 뜻으로 쉽게 외었는데 오꾼찌란은 오군이 지랄을 한다는 것인지 뭔지 도통 외울 수가 없다. 쏨또는 미안할 일을 안 하면 되니까 외우지도 않았다.

  언주씨는 우리에게 앙코르왓트 같은 유명 유적지를 먼저 보면 다른 것들이 시시해 보일 테니 이름 없는 것부터 보자고 한다. 일단 3일짜리 티켓을 1인당 40달러를 주고 구입했다. 이 티켓은 7일 동안에 3일을 입장할 수 있다. 티켓에는 사진이 들어가므로 사진 촬영부터 해야 한다.

  티켓을 받은 후 초기 유적지가 있는 룰루오스로 향했다. 먼저 4개의 탑으로 이루어진 롤레이 사원을 보았다. 이 사원은 야소 바르만 1세가 조상을 위해 만든 사원이다. 벽돌을 쌓아 만든 이 사원에는 남자 탑 두 개와 여자 탑 두 개가 있다. 벽돌이 깨지고 허물어져 잡초가 자라고 있다. 일부는 공사 중인지 철 구조물로 얼기설기 묶여 있다. 안간 힘을 내어 버티고 서 있는 탑들을 보려니 나를 만나기 위해 몇 백 년을 이 자리에 서서 얌전히 기다려온 듯하다.

  다음은 바콤 사원을 보았다. 바콤 사원은 왕이 자신을 위하여 만든 사원이다. 그늘에는 어린 소년 두 명이 조각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 사원 네 귀퉁이에는 코끼리 상이 있는데 우리는 코끼리 코와 꼬리를 붙잡고 사진을 찍었다.

  캄보디아 사원을 돌다보면 곳곳의 그늘에 앉아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부상당한 참전용사들인 듯하다. 우리들이 나타나면 한국 사람인 줄 귀신같이 알고 아리랑을 연주한다. 5번 동생이 총무인 관계로 이때마다 1달러씩 기부했다.

  바콤 사원을 본 후 코코넛 열매를 사서 그 물을 마시는데 오전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다. 이곳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전거를 타서 그런지 모든 아이들이 자전거를 자유자재로 타는 듯하다. 어른이 타는 커다란 자전거를 페달에 발이 닿지도 않는데 잘도 타고 간다.

오후에는 반티아이 스레이와 반티아이 삼례를 보았다. 반티아이 스레이는 여자의 성이라는 뜻이다. 앙코르 유적 중 가장 정교한 조각을 가진 사원이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돌이 아니고 나무에 조각한 듯 섬세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이 유적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프랑스 문화부 장관까지 지냈던 앙드레 말로가 이 조각품을 밀반출하려다 붙잡혔다고 한다. 사원 입구에는 양쪽으로 수많은 링가가 서 있다. 링가는 시바를 상징하는 기둥 모양의 돌 조각품이다.

  반티아이 삼례는 삼례족의 성채라는 뜻이다. 남성적인 모습을 지닌 사원으로 소박하고 장중한 느낌을 준다.

  저녁식사는 압살라 디너를 먹었다. 압살라는 무희라는 뜻이다. 압살라 춤을 보며 뷔페식을 먹는 디너쇼이다. 며칠 전 어떤 화물차가 태국에서 오는 전선주를 들이받는 바람에 수많은 전봇대가 무너져 시엠립 전체가 며칠 째 정전이다. 이것을 보수하려면 1주일 이상 걸린다고 하니 우리가 시엠립을 떠날 때까지 복구되기는 틀렸다. 캄보디아에는 발전소가 없어 태국과 베트남에서 전기를 사서 쓴다. 디너쇼 장은 자가 발전으로 불이 들어오지만 에어컨이 약해 완전 찜질방이다. 그래도 한국 아줌마 정신으로 끝까지 관람한 후 호텔로 돌아왔다.

 

빡 세게 올라가는 박세이 참크롱 ( 33)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화장실에서 씻고 있는데 정전이 되어 캄캄해진다. 조금 기다리니 곧 다시 들어온다. 여기서는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이렇게 수시로 전기가 들락날락 한다.

오늘은 앙코르톰으로 이동하여 유적 관람을 시작했다. 앙코르는 도시라는 뜻이고 톰은 크다는 뜻이다. 즉 앙코르톰은 큰 도시라는 말이다. 앙코르와트는 와트가 사원이므로 도시사원이라는 말이다. 앙코르톰은 앙코르 제국의 마지막 수도였다.

  첫 번째로 간 곳은 박세이 참크롱 사원이다. 시엠립의 유적을 보려면 가는 곳마다 티켓 검사를 한다. 한국인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우리를 보면 안녕하세요? 티켓 보여 주세요. 감사합니다. 하며 한국말로 반갑게 인사한다.

  박세이 참크롱 사원의 계단은 70도 경사를 이룬 듯하다. 옆의 난간도 없어서 그냥 계단을 붙잡고 네 발로 기어 올라가야한다. 한마디로 빡세게 올라갔다가 빡세게 내려오는 사원이다.

  앙코르톰으로 들어가는 남문에는 차량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남문 앞에는 힌두 신화에 나오는 유해반교의 조각들이 있다. 비슈누 신 좌우의 신들과 아수라가 나가(뱀신)로 바다를 저으면 바다는 유해(우유바다)로 변하고 불로불사의 약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바이욘 사원은 불교사원이며 모두 54개의 석탑이 있었다. 석탑에는 네 개의 면에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 얼굴의 주인공은 자야 바르만 7세라고도 하고 관음보살 상이라고도 한다. 현재는 36개의 사면상탑만 남아있다. 사면상은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고 표정도 다르다. 앙코르인의 미소도 백제인의 미소만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바이욘 사원 벽에는 캄보디아인들의 전투 모습과 생활상이 조각되어있다. 상투 틀고 수염이 있는 날카로운 인상의 사람들은 중국 사람이고 부처님처럼 귀가 길고 인자한 표정의 사람들은 앙코르인이다. 이 밖에도 소달구지 타고 가는 사람, 어른들을 따라가는 아이, 식량으로 데려가는 돼지, 자라 등도 보인다. 옛날 앙코르 사람들도 용봉탕을 좋아했나보다.

  서당에서 공부하는 모습도 있는데 예전 아이들도 지금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엎드려 졸고 있는 아이도 있고 선생님에게 일러바치는 아이도 있다. 수상 전투하는 모양의 조각품에는 물고기와 해초, 물속으로 잠수하는 사람, 적군의 배 밑바닥에 구멍을 내는 사람 등이 있다. 요리하는 모습도 있는데 돼지를 통째로 꼬챙이에 꿰어 바베큐 만드는 모습, 고치구이를 만드는 모습 등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재미있다.

  바프온 사원은 시바신에게 바쳐진 힌두 사원으로 바이욘 사원이 지어지기 전에 지어졌다. 이 사원은 소매 없는 옷이나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사원 입구에 있는 해자에는 물고기를 잡기위해 투망을 던지는 현지인들이 보인다. 흙탕물인데 여기서 잡은 고기를 먹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사원 앞마당에는 무너져 내린 돌들이 즐비하고 사원 꼭대기도 많이 손상되어 제 모습을 추측하기 어렵다. 붕괴를 우려해서 그랬는지 마지막 계단 입구에는 출입금지 표지가 되어있다. 표지판이 옆으로 밀려있고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있기에 우리도 올라가 사진을 찍었는데 잠시 후 관리인이 와서 내려오라고 사람들을 잡아끈다. 사실 남의 나라 유적 보호를 위해 협조해야 하는데 미안한 생각이 든다. 바프온 사원 뒤편으로 내려오면 사원 뒷면을 이룬 돌들이 부처님 누워 계신 모양이다. 돌들을 어떻게 쌓아서 이런 모습을 이루었는지 신기하다. 힌두사원이지만 부처님 모습을 만들어 불교적 요소를 가미한 것도 경이롭다.

  바프온 사원에서 코끼리테라스 쪽으로 가는 길에 피메아나카스라는 사원이 있다. 이곳은 왕이 수시로 드나드는 왕궁 부속 사원이다. 왕이 뱀여인과 동침하는 궁전으로 천상궁전이라고 불린다. 여기에는 가파른 계단이 있는데 왕이 이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왕의 체력을 가늠했다고도 한다. 또 여기서 별을 관측하여 일기예보도 했다고 한다.

  코끼리 테라스는 커다란 공터의 한편에 코끼리모양의 조각이 있는 테라스다. 앙코르제국의 왕 자야바르만 7세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군대를 맞이하던 곳이다. 350m의 벽에 코끼리 모양의 부조가 연달아 서있고 테라스 가장자리에는 7개의 머리를 가진 나가(뱀신)가 조각되었다.

코끼리 테라스 옆에는 문둥왕 테라스가 있다. 문둥왕은 자야바르만 7세를 말한다. 자야바르만 7세는 개선 열병식에서 모든 군인들에게 무릎을 꿇도록 했다. 이때 다들 무릎을 꿇었는데 유독 한 병사만 서 있었다. 화가 난 왕이 내려가 이 병사를 칼로 베었는데 그는 문둥병 환자였고 그 피가 왕에게 튀었는지 그 후 왕은 문둥병에 걸렸다. 자야바르만 7세는 연이은 전쟁에도 수많은 병원을 세웠는데 이는 자신이 문동병자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시엡립에는 지금도 자야바르만 7세 병원이 있다. 자야바르만 왕의 선조 중 수리야바르만 왕도 있는데 수리야는 태양을 뜻하고, 자야는 땅을 뜻한다.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왕 테라스 사이의 벽면에 수많은 새 모양의 부조가 있다. 양팔을 들고 테라스를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이것은 가루다라고 하는데 불사조 수호신이다. 얼굴은 독수리 모양인데 팔과 다리가 있는 모양이 희한하다.

  오후에는 차우사이테보다 사원과 톰마논 사원을 보았다. 두 사원은 가까운 거리에 서로 마주 보고 서있다. 톰마논 사원이 10년 먼저 지어졌다고 하며 차우사이테보다 사원은 2000년에 중국이 복원했다는 안내판이 서있다. 한국도 앙코르 유적 복구에 참여해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시엠립의 중요 도로도 외국기업들이 투자하여 포장해주는데 한국은 6번 도로를 포장해주었다고 한다. 차우사이테보다 사원 안에는 캄보디아 국기가 그려진 흰 셔츠를 입은 수십 명의 학생들이 사원을 스케치하고 있다. 프놈펜에서 온 대학생들이라 한다. 유적 답사도 하고 스케치도 하러 왔단다. 스케치 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타케우 사원도 공사 중이. 이것은 미완성 사원으로 벽에 부조가 거의 없다. 이 사원을 지을 때 벼락이 사원에 떨어지자 불길한 징조라고 생각한 왕이 공사를 중단시켰다고 한다. 사원 옆 공터에는 아이들이 배 위에 돌멩이를 올려놓고 누가 멀리 걸어가나 시합을 벌이고 있다. 배를 쑥 내밀고 걷는 모양이 웃음을 자아낸다. 공사 중이지만 출입 제한은 없어서 또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언주씨는 지쳤는지 밖의 나무 그늘에 앉아 우리를 기다린다.

  다음은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지였던 타프롬 사원으로 갔다. 유명 관광지라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사원의 돌들을 휘감은 스펑나무로 유명한 사원이다. 커다란 나무가 벽과 지붕에 내려앉고 담을 휘감은 모습에서 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이 느껴진다. 타프롬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지은 사원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원이라고도 부른다. 새들이 나무열매를 먹고 사원의 탑이나 담에 배설하면 그 씨가 발아하여 뿌리를 내린 것이라 한다. 나무가 너무 자라도 돌이 무너지고, 나무를 베어서 나무가 죽어도 붕괴되므로 성장을 늦추기 위해 성장 억제제를 투여한다고 한다.

  통곡의 방은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그리며 통곡한 방이다. 보석을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해 방의 벽을 금으로 장식하고 수많은 구멍에 보석을 박아 놓았는데 지금은 다 도굴당하고 텅 비어 있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국력이 약하면 그 나라의 유적도 유린을 당하는 게 가슴 아픈 현실이다. 우리도 일제 강점기에 얼마나 많은 유적과 유물을 잃었던가?

  여기도 내전과 지뢰에 의해 부상 당한 사람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최저생계비와 아이들을 학교 보내기 위해 도와달라는 내용의 안내판을 한글로 써서 세워 놓았다. 한국 사람들도 엄청 많이 오나보다.

  쓰라쓰랑은 큰 인공호수인데 왕이 물놀이를 하는 곳이다. 물가에는 흰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캄보디아에는 사람만 삐쩍 골은 것이 아니다. 소도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고 개도 닭도 모두 피골이 상접해있다. 너무 더우니 지방을 축적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지 먹을 게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프라삿크라반은 왕이 아닌 고위 관리가 개인적으로 지은 힌두사원이다. 비슈누, 비슈누의 아내, 브라마, 시바, 시바의 아내를 모시고 있는데 중앙탑을 빼고는 모두 지붕이 사라졌다. 10세기에 지어졌으며 현재 독일에서 복원 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반티아이크데이는 자야바르만 7세때 만들어진 불교사원인데 타프롬 사원처럼 건물 앞에 큰 스펑나무가 자라고 있다. 정글 속에서 1000년을 버텨온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모처럼 숲길을 걸으니 기분이 좋다.

  일몰을 보기 위해 프놈바켕 사원으로 올라갔다. 이 사원은 야트막한 바켕산 위에 있어 정글로 떨어지는 태양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사원 위에서 일몰을 보는데 사원 붕괴의 위험 때문인지 인원 제한이 있다. 올라가는 계단에서 사람 수를 세며 몇 명씩 올려 보낸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원 꼭대기에 걸터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모양이 더 장관이다. 하도 보는 눈이 많아 부끄러웠는지 햇님이 구름 속에서 보일락 말락 한.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산을 내려왔다. 하루 종일 새카만 돌덩이만 보고 다녔더니 그놈이 그놈 같고 그년이 그년 같아 도무지 무얼 봤는지 아무 생각도 안 난다.

 

앙코르 앙코르와트 ( 34)

  새벽 5시에 일어나 이마에 랜턴을 붙이고 호텔을 나섰다. 앙코르와트의 일출을 보기 위함이다. 사원 앞에 이르니 많은 사람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사원 안으로 들어간다. 큰 해자에 걸쳐진 다리 양쪽에는 나가(뱀신)가 줄 지어 있고 나가에 앉지 말라는 안내문도 보인다. 하긴 걸터앉기 딱 좋게 생겼다. 안으로 들어가니 언주씨가 자그마한 사원 건물로 우리를 안내한다. 여기서 보면 일출이 잘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호수에 비친 앙코르 와트를 보고 싶어서 혼자 연못 가로 갔다. 많은 사람들이 연못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카메라를 들고 해뜨기만 기다리고 있다. 일출을 기다리는 군중 사이로 커피나 음료를 파는 상인들이 돌아다닌다. 연못에는 빨간 수련이 동동 떠있다. 6시가 넘어도 해는 보이지 않고 구름만 가득하다. 일출 보기를 포기하고 처음 자리로 돌아와 과자, 커피, 망고로 배를 채웠다.

사원 안으로 이어지는 돌길을 걸어가는데 구름 사이로 태양이 떠오른다. 입구에 있는 압살라 부조의 가슴은 10 년 전과 마찬가지로 새카맣게 때가 타고 반질반질 윤이 난다. 지금도 여전히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만지며 지나가는 모양이다.

  1층 회랑 벽면의 부조는 천상과 지상, 지옥을 표현하였는데 지옥에 떨어져 혀를 뽑히는 모양이 끔찍하다. 이 사람은 혀를 잘못 놀려 죄를 지었나보다. 염라대왕 앞에서 제발 살려달라고 비는 모습도 있고, 지옥으로 줄줄이 떨어지는 모습도 보인다. 어떤 사람은 온 몸에 못이 박혀 매달려 있는 모습도 보인다. 이걸 보고 있자니 나도 기억 못할 만큼 무수한 죄를 지었다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천상에서 춤을 추는 압살라들은 기쁨이 충만한 천사의 모습이다.

  곳곳에 있는 구멍은 떨어져 나간 곳을 보수하여 끼워 넣은 돌을 외국인들이 이 속에 무슨 보물이라도 숨긴 줄 알고 모두 빼어낸 것이라 한다.

  난간에 있는 창살은 원형 무늬의 기둥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외부 바람이 안으로 잘 들어가게 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다.

  탑의 입장 시간이 되지 않아 앙코르와트 건물을 한 바퀴 돌며 사진을 찍고 올라가는 계단 앞으로 오니 안내원들이 일일이 점검을 하며 올려 보낸다. 여기도 소매 없는 옷이나 치마, 반바지는 안 된다. 신성한 장소이므로 모자도 벗어야한다. 예전에는 계단도 좁고 가파른데다 난간도 없어서 네 발로 기다시피 올라갔는데 나무로 계단을 만들고 난간도 생겨 오르기가 수월하다.

  사원 한 켠에는 점을 봐주는 할아버지도 보인다. 점괘를 바라보는 부부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앙코르와트는 봐도 봐도 또 보고 싶은 곳이다. 한 마디로 앙콜~ 앙코르와트다.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국기에도 그려져 있다. 이 사원은 정글에 묻혀 있다가 19세기에 발견되었다. 사원이 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후 세계를 위한 사원이라고 추정된다.

앙코르와트를 다 보고 호텔로 돌아와 아침을 먹었다. 오전은 휴식을 취하라고 해서 수영장으로 갔다. 일본 남자 두 명이 벤치에 앉아있다. 혼자서 수영을 하고 있는데 일본 남자들도 물속으로 들어온다. 다들 관광을 나갔는지 호텔이 조용하다.

  수영을 마치고 3번 동생과 4번 동생 내외, 5번 동생, 나 이렇게 다섯이서 재래시장을 보러갔다. 호텔 앞에는 툭툭이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는데 1인당 왕복 2달러라고 한다. 툭툭이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택시다. 재래시장에 내려 1시간 30분 후에 오라고 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사탕수수 줄기를 기계로 압축해 즙을 파는 노점상이 있기에 먹어보기로 했다. 세 잔만 사서 나누어 먹었는데 파는 여자가 미리 돈을 받고는 자꾸 덜 받았다고 우긴다. 나와 34번 동생은 그냥 더 주라고 했지만 5번 동생이 캄보디아어 프린트 해온 것을 꺼내어 보며 끝까지 설명하니 그냥 가라고 한다. 그래도 젊은 사람이 다르기는 다르다.

  시간이 되어 툭툭이 내린 곳으로 돌아오니 툭툭이 기사가 딸에게 영어의 알파벳을 가르쳐주고 있다. 어느 나라 사람이나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해 열심이다.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고픈 부모의 마음이다. 우리를 데려다주고 학교로 딸을 데리러 갔었나보다. 호텔로 돌아오며 딸에게 사탕을 주니 껍질을 잘 벗기지 못한다. 3번 동생이 까주니 입에다 넣고는 껍질을 길에다 획 버린다. 쓰레기 버리는 교육이 잘 안 되었나보다. 하긴 쓰레기차도 볼 수 없고 거리에 쓰레기가 즐비한 것을 보면 쓰레기 수거를 안 하는지도 모르겠다.

  호텔로 돌아오니 로비에서 호텔 직원이 연꽃을 접고 있다. 연꽃 송이 잎을 일일이 안쪽으로 접어 넣어 꼭 조화같이 만들어 놓았다. 식당 식탁에 있는 물그릇에 둥둥 띄워놓은 연꽃을 보고 조화인 줄 알았는데 생화로 접은 것이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손재주가 많다더니 과연 기막힌 솜씨다.

  오후에는 프레야칸을 보았는데 왕이 신성한 검을 보관하는 곳이다. 프레야는 신성하다는 뜻이고 칸은 검이란 뜻이다. 이 검은 세자에게 대대로 물려주었다고 한다. 프레야칸의 특징은 중앙으로 갈수록 문이 낮아지는데 이것은 머리를 숙이고 존경을 표하라는 뜻이다. 이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만든 것으로 특이하게 3개의 옴니(바위에 파인 구멍으로 여자를 뜻함)가 한 바위에 새겨져 있다. 옴니 위에는 사리탑이나 링가 같은 조각품이 세워져 있다.

  네악페안은 수상병원이다. 물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안으로 들어가면 연못 안에 사원이 있고 성소 쪽으로 접근할 수 없게 막아 놓았다. 중앙의 성소 탑에서 네 방향으로 물이 흐르는데 이 물이 인간의 병을 치료해 준다고 한다. 네 방향에는 각기 다른 동물상이 새워져 있고 각 방향으로 흐르는 물줄기 마다 치료의 효과가 다르다고 한다.

  언주씨가 전화를 받더니 내일 몬돌끼리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톨레샵 호수는 갈 수 없다고 한다. 지금 가자고 하니 배 시간이 안 맞아 갈 수가 없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원을 줄이고 오늘 톨레샵 호수를 갔을 텐데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다시 물 위의 나무다리를 건너와 타쏨으로 갔다. 타쏨은 자야바르만 7세가 아버지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사원이다. 어머니를 위해 지은 타프롬 사원에 비하면 작고 소박하다.

  동메본은 왕이 백성을 축복하려고 제사를 지내려고 지은 사원인데 네 귀퉁이에 코끼리상이 있다. 우리는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식으로 코끼리 다리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프레룹은 죽은 육신의 그림자라는 뜻인데 1000년 전 왕족의 장례식을 행하던 곳이다. 사원 앞에는 시신을 임시로 안치해 두는 석조물이 있고 옆에는 화장하는 탑이 있다. 이 탑에는 연기가 나가도록 창문이 뚫려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네 귀퉁이에 해태상 같은 석조물이 있었는데 항문이 뚫려있다. 똥침 한 번 놓을까? 했더니 남동생과 4번 동생이 똥침 놓는 포즈를 취한다. 신성한 장소에서 너무 장난이 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원을 빙 돌며 두 팔 들고 사진 찌고 와불처럼 누워서 찍고 온갖 포즈로 촬영을 하며 놀다 보니 뉘엿뉘엿 해가 지려한다.

  저녁에는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너무 짜고 매워 먹기가 힘들었다. 손님은 우리 9명밖에 없는데 종업원 7명이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니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다. 한국 주인이 손님을 잘 보고 있다가 필요한 것 있으면 즉시 갖다 드리라고 교육을 시켰나보다. 하지만 14개의 까만 눈이 부동자세로 서서 우리를 응시하고 있으니 신경이 쓰여 밥이 목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몬돌끼리 가는 길 ( 35)

  몬돌끼리로 가기 위해 아침 8시에 호텔을 출발했다. 영어도 한국말도 못하는 버스기사에게 우리를 맡기는 것이 불안한지 언주씨는 급할 때를 대비하여 캄보디아어를 가르쳐준다. 잠깐은 짬뜩, 화장실은 번뚭떡이니 화장실이 급하면 짬뜩 번뚭떡.’하고 소리를 지르라고 한다. 곧 잊어버릴 게 뻔하니 메모지에 잘 적어 놓았다.

  가는 도중에 식당이 있는지 알 수 없어 빵과 음료수 과일 등을 챙겨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보니 길 가에 패트병, 콜라병, 사이더 병 등에 노르스름한 액체를 넣어놓고 판다. 무엇인가 했더니 휘발유란다. 이곳은 주유소가 별로 없어 소형차나 오토바이는 주로 이렇게 연료를 보충한다.

우리 기사는 우리가 주는 빵도 먹지 않고 부지런히 달린다. 가다가 길 가에 잠시 서더니 음료수 하나를 사서 마시고는 다시 차에 오른다. 우리는 음료수 가게 아줌마의 딸에게 초코파이를 하나 주었다. 그러자 어찌나 좋아하는지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합장을 하면서 고마움을 표한다. 초코파이 하나가 한 아이를 이렇게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게 참 묘한 기분이 든다.

  다시 가다가 주유소에 들러서 화장실도 가고 기름도 넣었다. 길옆에 세워 놓은 녹슨 트럭은 곧 부서질 듯한데 그 지붕 꼭대기에는 사람들이 잔뜩 타고 있다. 저렇게 달리다가 급정거를 하면 모두 길 바닥에 패대기쳐 질 텐데 태연하게 앉아있는 사람들의 태평스런 얼굴이 희한하다.

  가끔씩 오토바이에 죽은 돼지를 싣고 사는 게 보인다. 몸통은 오토바이에 묶고 두 다리는 공중으로 향해 흔들흔들 실려 간. 털이 깨끗이 깎인 걸 보면 시장으로 가서 팔려고 하나보다. 이 더운 나라에서 냉장차도 아닌 오토바이에 그냥 싣고 달리는 걸 보니 고기가 상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몬돌끼리로 가는 길에는 몇 키로 마다 세 남자의 사진 광고판이 보인다. 도대체 누군데 저렇게 전국을 도배하다시피 했나 나중에 알아보니 훈센 총리와 그 당의 요인이란다. 그 중의 반 만 줄이고 이정표나 만들어 주었으면 좋으련만.

  장장 9시간이나 걸려서 몬돌끼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우리가 묵어야할 롱 비볼이란 게스트 하우스를 찾을 수가 없다. 기사는 여기 저기 전화를 하여 뭐라고 하는데 알 수가 없나보다. 결국 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몇 번씩 물어서 겨우겨우 해 지기 전에 찾아갔다.

  주인이 전화를 하자 여기서 우리를 안내해줄 가이드가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짬롱이라는 청년인데 영어를 잘 하여 그나마 겨우 소통이 되었다. 잠시 후 코이카 직원 문화씨가 찾아와 한국말로 안내를 해주니 속이 다 시원하다. 시골구석까지 한국 봉사단이 나와 있다는 것이 참 놀랍다. 짐 정리를 하고 크메르키친이란 식당에 가서 생고기 구이를 먹었다. 시골이라 그런지 시엠립보다 식당도 허술하고 음식도 엉성하다.

  대충 저녁을 때우고 방에 와서 김과 잣, 참치 등을 안주삼아 맥주 파티를 하였다. 여기서는 앙코르 맥주가 유명하다. 하지만 나는 배가 쌀 쌀 아파서 먹을 수가 없다. 아무래도 생고기에 문제가 있었나보다.

 

스위트룸이 벌레투성이? ( 36)

  날이 밝기도 전에 개소리, 새소리, 닭소리가 잠을 깨운다. 방에 전화기가 없으니 모닝콜도 안 되지만 모닝콜이 필요 없이 잠이 깬다. 아침 식사를 하러 가는데 4번 동생이 얼굴이 불긋불긋 온통 벌레 물린 듯하다. 목도 시뻘겋게 됐다. 그 방이 제일 좋아 스위트룸이라고 했더니 침대에 벌레가 있나보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방을 바꿔달라고 하려는데 남동생이 보고는 아무래도 벌레 물린 게 아니고 알레르기 같다는 것이다. 다시 보니 그런 것 같다. 세 명이 같이 잤는데 혼자만 물렸을 리가 없다. 아마 어제 저녁에 먹은 고기 때문에 식중독을 일으킨 게 아닌가싶다. 올케도 설사가 났다고 한다.

아침에는 쌀국수를 먹었는데 깔끔하고 개운하니 맛이 있다. 그런데 식탁의 조미료 통에 미원이 담겨있다. 우리는 몸에 안 좋다고 꺼리는데 여기서는 공공연히 맘대로 쳐 먹으라고 식탁 위에 까지 놓아주는 게 놀랍다.

  4번 동생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붉은 반점이 많아지더니 나중에는 얼굴 전체가 부풀어 올랐다. 문화씨에게 전화하여 알레르기약을 부탁했다.

  식사 후 부스라 폭포를 보러 갔다. 버스 기사는 짬롱과 만나니 물고기가 물 만난 것처럼 왕수다가 되었다. 입에서 봇물 터진 듯 말이 쏟아져 나온다. 저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 어제는 9시간 동안 말 한마디 못하고 왔으니 얼마나 심심했을까?

  짬롱은 동생들이 아디다스 모자 쓴 것을 보고 자기도 아디다스를 좋아한다고 하며 아디다스의 뜻을 설명한다. adidasall day I dream about sports의 약자라는 것이다. 3번 동생은 자기는 10년 넘게 아디다스 가게를 하면서도 그 뜻을 몰랐다고 놀란다. 유명 메이커 상품 좋아하는 것은 세계 모든 젊은이들이 다 똑 같다. 또 싸이를 좋아한다고 하며 오빤 강남 스타일을 흥얼거린다. 한류의 물결이 여기까지 도달했다니 참 대단하다.

  부스라 폭포의 부스라는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사람의 이름이란다. 아마도 이 폭포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몬돌끼리의 몬돌은 중앙 즉 센터라는 뜻이고 끼리는 크메르어로 산이란 뜻이라 한다. 그러니까 몬돌끼리는 산의 중심이란 뜻이다. 캄보디아에는 산이 적은데 몬돌끼리에는 산이 많아 이런 이름이 붙여졌나 보다. 산악지대라 그런지 밤에는 제법 추위가 느껴진다. 시내 중심가에는 두 마리의 물소상이 있는데 몬돌끼리를 상징하는 동물이 물소라고 한다.

  부스라 폭포에 도착하니 여기도 어김없이 훈센 총리를 비롯한 세 사람의 사진이 버티고 서 있다. 세뇌교육이 북한 보다 더 심한가보다. 표를 끊고 안으로 조금 들어가니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진다. 건기의 끝이라 수량은 많지 않지만 그런대로 볼만하다.

  폭포 옆에는 전통의상과 알록달록한 조화로 만든 헤어밴드를 대여해 준다. 현지인들이 활 쏘는 전통의상을 입고 여자 아이들은 꽃 장식 헤어밴드를 하고 사진을 찍고 있다.

  부스라 폭포는 2단 폭포인데 아래 폭포는 가파른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여기까지 내려가 폭포를 배경으로 손들고 찍고 손 내리고 찍고, 서서 찍고 앉아서 찍고 온통 생 쇼를 벌인 다음 다시 올라왔다.

  올라오면서 보니 곳곳의 물가에 돗자리를 깔아 놨다. 아마도 자리를 대여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몇 십 년 전에는 저렇게 계곡에 돗자리 깔아놓고 돈 받았던 기억이 난다.

  화장실을 다녀 나오니 4번 동생 남편이 땅에서 무엇인가 주워서 공중으로 던지고 있다. 뭐냐고 하니 나무열매란다. 무슨 열매인지 모르겠는데 씨에 날개가 붙어서 던지면 뱅글뱅글 돌며 날아간다. 나도 몇 개 던져보니 제법 재미가 있다.

  부스라폭포인지 부셔라폭포인지를 떠나 오플라이 강으로 갔는데 건기라 물이 적어 작은 계곡에 불과했다. 그래도 물 안에 차를 세워두고 밑에 까지 걸어서 갔다 오는 현지인들이 있다. 우리도 길가에 차를 두고 물속을 걸어 내려갔. 물 속 바위에는 이끼가 끼어있었지만 그렇게 미끄럽지는 않았다.

  걸어 올라오니 현지 아이들이 나무에 올라가 다이빙을 하고 있다. 10m가 넘게 높이 올라가 물속으로 뛰어드는 아이들에게 사탕과 과자를 주었더니 신이 나서 더 잘 뛴다.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커피농장으로 갔다. 입구에는 물레방아 같은 게 있는데 이것으로 자가 발전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식당 안에는 기타 모양의 나무로 만든 식탁도 있고 정원도 제법 아담하게 꾸며 놓았다. 잭 푸릇이란 나무도 있는데 꽃도 예쁘고 오톨도톨한 열매도 달려있다. 두리안 비슷한데 조금 더 작다.

  식사 후 몬돌끼리 커피가 유명하다고 해서 커피도 시켜 맛을 보았다. 남들은 맛 있다고 하는데 내 입에는 뭐니 뭐니 해도 커피, 프림, 설탕 세 가지가 다 들어간 3박자 커피, 커피믹스가 최고다. 화장실 가는 길에 작은 잎을 단 풀이 있었는데 가이드 짬롱이 미모사라고 하며 슬쩍 건드린다. 만지자마자 순식간에 잎을 오므리는 모양이 신기해서 우리도 너도 나도 잎에 손을 대며 동영상을 찍었다. 비록 식물이지만 죽은 척하며 자신을 방어하는 모양이 신비롭다. 우리는 재미있어서 근처에 있는 미모사 잎을 모두 건드려 다 오므려 놓았다.

  농장에는 이 밖에도 바나나 나무, 고무나무, 후추나무, 망고, 고무나무 등이 있었다. 고구마 같기도 하고 마 같기도 한 뿌리식물도 있는데 카사바라고 하며 이 나라 사람들의 주식이라고 한다. 잘게 잘라 햇볕에 말려 갈아서 익혀 먹는다고 한다. 몬돌끼리 올 때 길에서 수많은 트럭에 산더미처럼 싣고 가는 것을 많이 보았다.

  농장에서 나와 센 모노롬 폭포를 보러 갔다. 안내판에는 그냥 모노롬 폭포라고 쓰여 있다. 센은 매우라는 뜻이고 모노롬은 편안하다는 뜻이란다. 즉 매우 편안한 (very comfortable)폭포다. 폭포랄 것도 없는 작은 폭포였는데 여기서 코끼리를 탔다. 손님도 없는데 코끼리라고 달랑 한 마리 놓고 기다리는 주인이 좀 안 돼 보여 두 명씩 세 번에 걸쳐 여섯 명이 탔다. 숲으로 들어가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다. 코끼리 등에 앉아 코끼리를 보니 귀를 뚫어 밧줄을 매고 주인이 끌고 간다. 이걸 보니 코끼리에게 너무 미안하고 동물 학대라는 생각이 든다.

  원두막 같은 곳에는 바나나를 놓고 코끼리 먹이라고 판다. 1달러에 한 송이인데 우리도 한 송이 사서 한 개씩 코끼리 코에 대주니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는다. 잘 먹는 모양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조금 가신다.

  버스를 타기 전에 아이스박스에 있는 맥주 캔을 하나씩 사서 마셨다. 한 개에 2500리엘이다. 1달러가 4000리엘이라고 하니 1000원도 안 된다. 짬롱에게도 하나 주었더니 자기 엄마에게 술 먹은 거 이르지 말라고 농담을 한다.

  다음은 씨 포리스트(sea forest) 라는 언덕으로 갔다. 썸못처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크메르어로 숲의 바다라는 뜻이다. 과연 끝없이 펼쳐진 숲이 바다같이 보인다. 여기서 보는 일몰이 멋지다는데 시간이 너무 일러서 저녁에 다시 오기로 하고 할아버지 산으로 갔다.

  할아버지 산에는 할아버지 상이 모셔져있다. 절에 다니는 올케가 대표로 절을 하고 시주를 하였다. 우리의 운전기사도 정성을 다해 절을 한다. 무엇인가 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진지하고 경건해 보여서 보기 좋다.

  집으로 돌아와 잠시 쉬다가 일몰 시간에 맞춰 다시 길을 나섰다. 씨 포리스트로 가는 길에 할머니 산에 올라갔다. 할아버지 산 바로 옆에 있는데 할머니 상이 모셔져있다. 할머니상 옆에는 젊은 여인의 상도 있는데 딸인지 며느리인지 모르겠다. 두 여인 모두 호리병 같은 것을 들고 있다.

할머니 산에서 내려와 다시 씨 포리스트로 갔다. 숲의 바다로 내려앉는 태양이 장엄하다. 일몰을 보면 한 생명의 마감을 보는 듯 비감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뭔가 기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빌어야할지 생각이 안 난다.

 

팔자에 없는 룸서비스 ( 37)

  일출을 보려고 5시에 일어나 또 이마에 랜턴을 붙이고 할아버지 산에 올랐다. 이번에는 산길로 걸어 올라갔다. 새벽이라 엄청 춥고 바람이 거세다. 짬롱은 4시 반에서 5시 사이에 해가 뜬다더니 6시가 넘어도 뜰 생각을 안 한다. 기다리기가 지루해서 나무에 올라가 사진도 찍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거의 동태가 될 때가 되어서야 눈썹 같은 해가 머리를 내민다. 일출은 한 생명의 탄생을 보는 기분이다. 나도 생기가 돌고 기분이 좋아진다. 뭔가 기원을 해야 할 것 같다. 일출을 보고 산을 내려오는데 활주로 부근에서 학교 가는 오누이를 만났다. 오빠는 자전거를 끌고 여동생은 옆에서 걸어간다. 사탕을 하나씩 주니 엄청 좋아한다. 때 묻지 않은 순박한 미소가 순수함 그대로인 캄보디아의 자연을 닮았다.

  집에 와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 오늘도 쌀국수다. 캄보디아에 와서 평생 먹은 쌀국수보다 더 많은 양을 먹었다. 식사 후 집에 와 방에서 쉬는데 동생이 방문을 두드린다. 커피를 타 가지고 왔다. 내 생전에 이렇게 룸서비스까지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나는 원래 무수리과라 서비스 받는 데는 익숙치 못한데 이런 황송한 대접을 받으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아침 식사 후 민속마을인 닥담마을을 보러 갔다. 우리나라 민속촌처럼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니고 사람이 살고 있는 그대로의 마을이다. 마을 여기저기 닭, , 돼지들이 어슬렁거린다. 여기 돼지들은 생식력이 뛰어난지 대부분 젖꼭지가 줄줄이 달리고 배가 축 늘어져 땅에 닿게 생겼다.

갈대 잎으로 지붕을 만든 전통 가옥에 들어가니 한 소년이 불에 바나나를 굽고 있다. 집 밖으로 나오니 형제자매인 듯한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다. 캄보디아는 환경오염이 없어 사람도 생식력이 왕성한가보다. 사람이나 소나 닭이나 삐쩍 골은 작대기 모양인데 그래도 그것 하나만은 끝내 주나보다. 마당에는 카사바를 잔뜩 늘어놓고 말리고 있다.

  한 집을 지나가는 데 한 소녀가 쏜살같이 달려와 짬롱에게 뭐라고 한다. 자기가 천을 짜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 집으로 가니 소녀가 얼른 방에 들어가 베 짜는 도구를 가지고 나온다. 도구라고 해야 막대기 몇 개가 고작이다. 한 개는 두 발에 걸고 한 개는 허벅지 위에 놓고 한 개는 두 손으로 움직이며 실을 엮는다. 우리가 신기해하자 신이 났다. 다른 아이가 미리 짜 둔 스카프를 가지고 나온다. 우리는 이미 스카프를 샀기 때문에 그냥 팁만 주고 나왔다.

  그 집에서 나와 조금 걸어가는데 짬롱이 한 나무 밑으로 가더니 무엇을 주워온다. 이게 뭐냐고 하니 목화나무 열매라는 것이다. 캄보디아 목화나무는 우리나라 느티나무처럼 키가 크고 열매도 크다. 칼로 열매를 열어 보여주는데 과연 그 속에 하얀 솜과 까만 씨가 들어있다. 짬롱이 솜을 꺼내 실을 만들고는 잡아 당겨보란다. 꽤 질긴 것이 충분히 천을 짤 수 있겠다,

  집에 와 체크아웃을 하고 센모노롬 시장 구경을 갔다. 우리네 전통시장처럼 계란에, 물고기에, 오이김치, 과일, 야채 등이 쌓여있고 살아있는 닭은 철조망 속에 갇혀있다. 기가 막힌 것은 무수한 정육점인데 냉장고가 없어 그냥 좌판에 생고기를 늘어놓고 팔고 있다. 새카만 파리는 잔뜩 붙어있고 어지러이 널린 고기가 보기만 해도 식중독 걸릴 것 같다. 우리가 이런 고기로 만든 것을 먹었으니 탈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점심식사를 하고 짬롱과 헤어져 프놈펜으로 향했다. 헤어질 때 짬롱에게 팁과 아디다스 모자를 주었더니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린다. 뉘엿뉘엿 해가 질 때 프놈펜 가까이 왔는데 우리 기사는 우리의 숙소를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달린다. 날이 어두워져서 프놈펜 시내로 진입했는데 길 가의 식당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길에는 차와 오토바이 툭툭이 등이 엉켜 아수라장이다. 이 날도 7시간이 넘게 걸려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우리 숙소는 딸네 집이 있는 리조트의 펜션이다. 집에 들어가 짐을 놓자마자 식당으로 갔다. 모처럼 외손자 건희와 외손녀 송희를 만나니 무척 반갑다. 아이들이 며칠 전부터 우리 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동생들은 펜션으로 들어가고 나와 남편은 딸네 집에서 자기로 했다.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 자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오니 그동안 건희가 만든 조립식 장난감이 가득하고 송희가 그린 그림이 벽에 잔뜩 붙어있다.

  곰 인형 그림도 있는데 이것은 건희가 송희를 위해 그린 것이란다. 송희가 가지고 놀던 아빠곰 인형을 잃어버리고 며칠 씩 슬퍼하자 오빠가 인형대신 그림으로 그려주었다는 것이다. 정말 크기도 모양도 아빠곰 인형과 똑 같다. 가슴에는 아빠곰이라고 쓰고 밑에는 song hee lee라고 이름도 썼다. 여동생을 생각하는 건희의 따뜻한 마음이 가슴까지 전해진다.

 

가슴 아픈 킬링 필드 ( 38)

  리조트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메콩강 가로 나가 강변을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전에 킬링필드를 보기로 했다. 내전으로 희생된 사람의 유골이 보관된 곳이다. 300만 명의 국민이 희생되었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리다. 입구에서 1인당 5달러씩 입장료를 내면 이어폰을 빌려준다. 돌아다니면서 그 장소에 표시된 번호를 누르면 한국말로 설명이 나오니 이해가 쉽다.

마당 곳곳에는 웅덩이들이 있는데 유골이 묻혀있던 곳이다. 한 곳에서는 450명의 유골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한 나무에는 무수한 고무줄 팔찌 같은 것이 걸려 있는데 어린 아이들을 이 나무에 머리를 부딪쳐 죽인 후 구덩이에 던졌다고 한다. 이렇게 피로 얼룩진 땅이건만 지금은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풀숲의 어미닭은 병아리들에게 먹이를 찾아주느라 부지런히 마른 풀을 파헤치고 있다.

  유골을 보관한 건물에는 신을 벗고 모자를 벗은 후 들어간다. 고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다. 유리장 안에 몇 층으로 유골들이 보관되어 있다. 교육적 효과는 있겠지만 이제 그만 자연으로 돌려보내주는 게 어떨까 싶다.

  박물관으로 들어가니 여러 가지 유품이 보인다. 상영관에서 기록영화를 상영한다고 하여 들어가 봤다. 여러 사람의 증언과 그 때의 참상이 기록된 영화다. 캄보디아에 아니 온 세계에 다시는 이런 슬픔이 재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후에는 시장 구경을 하고 저녁에는 메콩강에서 유람선을 탔는데 사위가 배를 예약해 우리들만 탔다. 식당에 저녁식사를 부탁해 식당 종업원이 직접 재료를 배로 가져와 삼겹살을 구어 주었다. 갑판으로 올라가 메콩강 위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프놈펜의 야경을 즐겼다. 그곳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종업원이 갑판까지 수박을 날라다 준다. 수박을 먹으며 동생들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유람선에서 내려와 부두로 나오는데 3번 동생이 자기도 우리 사위 같이 처갓집에 잘 하는 사위를 얻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음에는 또 다른 나라로 가서 초대해 달라고 한다. 이 말을 들으니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부두를 나와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길이 꽉 막혔다. 오토바이에 온 가족이 타고 차량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 나가고 차들은 꼼짝을 못한다. 오늘이 금요일인데다 여성의 날이라 온 시민이 다 몰려나왔나보다. 왕궁 앞까지는 이렇게 밀릴 것 같다고 하여 우리는 짐을 차에 두고 나와 강변을 걸어 집으로 왔다. 집에 오니 버스는 아직도 도착하지 못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려니 송희가 빨리 나오라고 문을 두드린다. 대충 씻고 나오니 같이 놀자는 것이다. 송희는 12시가 넘도록 이런 저런 말을 잘도  떠들어 댄다. 나는 피곤해서 눈꺼풀이 절로 감기는데 어린애가 낮잠도 안 잤다면서 어떻게 그 시간까지 버티는지 모르겠다.

 

섭섭하이 ( 39)

  아침에 딸네 식구들과 왕궁을 보러갔다. 길 가에는 3개월의 조문 기간이 지나고 장례식도 끝났건만 아직도 검은 천을 두른 시아누크 국왕의 사진이 걸려있다. 이조시대 왕이 돌아가셨을 때 우리나라도 이랬을 것 같다.

  매표소 앞에는 반바지 안 된다, 소매 없는 옷 안 된다. 총기류 안 된다. 애완동물 안 된다는 내용이 그림으로 표시되어있다. 왕궁 옆에는 작은 박물관도 있고 사원도 있다. 에머랄드로 만든 부처님이 있는 실버 사원이다. 박물관 안에는 전통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과 압살라 모자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왕궁에서 나와 프놈펜 국립박물관으로 갔다. 수도에 있는 박물관이라 규모도 크고 정원도 잘 가꾸어져 있다. 시엠립에서 보았던 문둥왕 자야바르만 7세의 조각상도 있다. 시엠립에 있는 것은 모조품이고 여기 있는 것이 진품으로 보물 1호라고 한다. 박물관에는 한 구석에서 손금 봐주는 사람도 있다.

  오후에는 왓 프놈을 보러 갔다. 왓 즉 와트는 사원이란 뜻이고 프놈은 산이란 뜻이라고 사위가 설명해준다. 프놈펜의 펜은 할머니 이름이고 프놈은 역시 산이다. 즉 펜 할머니 산이다. 옛날 옛적 메콩강에 큰 홍수가 났는데 보물이 떠내려 왔다. 이때 펜 할머니가 이 보물을 건져 작은 산에 모셨는데 이곳이 프놈펜이라 한다.

  왓 프놈은 말이 산이지 계단 몇 개 올라가니 정상이다. 높이가 50m 밖에 안 될 것 같다. 계단을 다 올라가니 웬 새를 새장에 가득 담아 놓았다. 사람들이 새를 사서 날려준다. 우리나라에서는 물고기를 방생하는데 여기서는 제비를 방생하고 있다. 어떤 놈은 몇 번씩 잡혔는지 나와서 날개도 제대로 못 편다.

  사원 앞에는 커다란 꽃시계도 있고 그 앞에 대나무로 만든 나가(뱀신)도 있다. 나가는 조명을 하여 밤에 불이 들어온다고 한다.

  왓 프놈에서 내려와 러시아 시장 구경을 갔다. 진입로에 있는 가게 앞에는 싸이의 모습을 그리고 강남스타일이라고 한글로 새긴 티셔츠를 팔고 있다. 싸이의 유명세를 실감한다. 시장 건물 입구에는 2011년 프랑스가 리모델링 했다는 표지석이 있다.

  시장 구경까지 마치고 집에 와서 짐을 싸가지고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식사 후 딸과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공항 가는 길에 시간이 남아 맛사지를 받기로 했다. 우리와 헤어지는 송희와 건희의 얼굴에 섭섭함이 역력하다.

  맛사지를 받으며 시간을 때우다가 공항으로 향했다. 사위는 우리를 공항까지 안내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번 여행은 다 좋았는데 아이들과 충분히 놀아주지 못해서 못내 아쉽다. 한 마디로 섭섭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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