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1. 6. 30. 캐나다 로키

아~ 네모네! 2012. 10. 21. 21:27

 

 

 

 

 

 

 

 

 

 

 

 

 

 

 

 

 

당신 멋져!

 

기간 : 2011630~ 710

                                                    장소 : 캐나다 로키

로키산맥은 북아메리카 서쪽을 내리 달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산맥이다. 미국의 로키는 2년 전에 가 봤지만 캐나다 쪽은 처음이다.

 

아리랑 찾아 삼만 리 ( 630)

오후 4시 반에 이륙한 비행기가 10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밴쿠버에 도착하니 같은 날 오전 10시 반이다. 16시간의 시차 때문에 하루가 40시간으로 늘었다. 짐을 찾은 후 입국 수속을 마치고 국내선으로 갈아탔다.

캘거리 공항에 내리니 검은 구름이 잔뜩 내려 앉아 하늘이 곧 무너져 내릴 듯하다. 밴쿠버에서 동쪽으로 이동한 관계로 시차는 15시간으로 줄었다.

공항 옆 차를 렌트해 주는 곳에서 차를 빌렸다. 동생 재숙이와 제부 정민이 아빠는 혹시나 문제가 생길까 우려되어 차를 움직이기 전에 꼼꼼하게 사진을 찍어 두었다.

우선 캘거리 시내 한국 식품점에서 부식을 장만하기로 했다. 아이폰에 이곳 내비게이션을 다운 받아 왔기에 내비가 가르쳐 주는 대로 우선 코압(CO-OP)이라는 등산 장비점을 찾아 갔다. 인터넷에 코압 옆에 아리랑이란 한국 식품점이 있다는 것이다.

내비년 말 들으면 안 된다더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리 가랬다 저리 가랬다 갈팡질팡이다. 정민 아빠 말로는 시내에서는 높은 빌딩이 많아 인공위성에서 우리 차의 위치를 잘 못 파악한다는 것이다.

캘거리 시내를 온통 휘젓고 다니다가 드디어 코압이라는 장비점을 찾아 주차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 봐도 아리랑이란 식품점이 보이지 않는다. 우선 세이프 웨이 마트에 들러 필요한 것을 샀다. 마침 그곳에서 젊은 한국인 부부를 만나 한국 식품점을 물으니 어찌 어찌 가라고 일러준다.

차를 끌고 일러준 대로 아무리 돌고 돌아도 한국 식품점은 보이지 않는다. 좁은 골목 속에 있나 하고 차를 세워둔 후 걸어서 또 돌았다. 그래도 보이지 않는다. 한 마디로 아리랑 찾아 삼만 리다. 마침 한국인이 하는 슈퍼가 있어 들어가 물으니 또 어찌 어찌 가라고 일러주며 걸어서 가도 된단다.

아무리 가도 한국 간판은 안 보이고 다른 코압이 보인다. 코앞인지 눈앞인지 우리가 가는 길에 코압이 세 개나 있다. 아차, 코압이 한 개가 아니로구나 하며 계속 가니 드디어 한글 간판들이 보이고 아리랑 식품이란 간판이 보인다. 여기서 쌀, 배추김치, 총각김치, 감자, 고구마, 등 한국 음식을 잔뜩 샀다.

차가 주저앉을 정도로 짐을 잔뜩 싣고 캔모어를 지나 우리의 숙소인 밴프 바운더리 롯지로 갔다. 밴프 조금 못 미처 있는 이 롯지는 밴프보다 값이 싸다고 한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저녁 준비를 했다. 이것저것 늘어놓으니 잔칫상 부럽지 않다. 긴긴 하루를 보내고 30여 시간 만에 자리에 누우니 온몸이 파김치처럼 늘어진다.

 

캐나다의 날 ( 71)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 먹고, 김밥 싸서 점심 챙기고 출발하려니 7시가 넘었다. 오늘은 레이크 루이스 트레일을 걷는 날이다. 밴프 국립공원 입구에서 연간 입장료 136달러짜리 티켓을 끊었다. 이것을 사면 내년 7월까지 사용할 수 있단다.

승용차 한 대의 입장료라서 속에 들어있는 사람 수는 몇 명이든 상관이 없다. 일 년 열두 달 쓸 수 있는 티켓을 열흘 쓰고 버리기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고 이게 아까워 다시 올 수도 없는 일이다.

레이크 루이스 주차장(1732m) 샤토호텔 미러호수 아그네스 호수 리틀비하이브(2281m) 아그네스 호수 빅비하이브(2270m) 씩스 글레이서 찻집 씩스 글레이서 전망대 샤토호텔 (21.5km, 7시간)

레이크 루이스 주차장에 내려 샤토호텔 앞으로 가니 갑자기 기막힌 설경을 물에 가득 담은 호수가 나타난다. 탄성을 지르며 마구 사진을 찍어대는데 눈앞에 빨간 제복을 입은 두 남자가 서 있다. 사진 모델이 되어주는 호텔 직원들이다. 사람들이 이 직원들과 사진을 찍기에 우리도 같이 사진을 찍었다. 푸른 호수 물을 배경으로 빨간 제복을 입고 서 있으니 엽서의 한 장면 같다.

레이크루이스의 원래 이름은 에메랄드레이크였는데 19세기 후반 빅토리아 여왕의 딸 루이스가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레이크루이스로 바꿨다고 한다.

호수 옆길을 버리고 오른쪽 산길로 접어드니 앙증맞은 야생화가 우릴 반긴다. 호수를 내려다보며 한 시간 정도 오르자 미러 호수가 나타난다. 이름처럼 거울 같은 호수에 떡시루 같은 봉우리가 비친다.

미러 호수 왼쪽 길로 해서 너덜지대를 지나 급경사를 오르니 아그네스 호수다. 아그네스 호숫가에는 아담한 찻집이 있다. 입구에는 예쁜 도자기로 만든 주전자로 장식해 놓았다.

여기서 빅비하이브와 리틀비하이브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우리는 우선 리틀비하이브로 향했다. 30분 정도 오르니 루이스 호수와 샤토호텔이 눈앞에 펼쳐진다. 말 그대로 그림처럼 아름답다.

리틀비하이브에서 길이 끝나고 다시 아그네스 호수로 내려와야 한다. 호수 건너편 절벽에 정자가 보이는데 이곳이 빅비하이브다. 빅비하이브는 아그네스 호수 옆길로 가서 호수 끝자락에 있는 급경사 길을 지그재그로 올라가야 한다. 하얀 잔설이 물에 비쳐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갑자기 급경사 길을 오르려니 숨이 턱에 닿는다. 느릿느릿 굼벵이 걸음으로 얼마를 오르니 평평한 능선이 나타나고 전망대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급경사를 오르느라 힘들었는지 고소 증세가 나타났는지 재숙이가 우리끼리 갔다 오라고 한다. 산에 오면 날다람쥐처럼 날아다니는 애가 갑자기 약한 모습을 보이니 어안이 벙벙해진다. 나도 가는데 네가 못 가다니 말이 안 된다고 이제 평평한 길만 남았는데 같이 가자고 하니 마지못해 따라 나선다.

빅비하이브 전망대에 이르니 정자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라 이곳저곳 나무판자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판자 하나를 들고 내려가 바위에 깔고 앉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루이스 호수와 샤토호텔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경이다. 과연 자는 아무데나 붙이는 게 아니다.

정민 아빠와 미경이는 쌩쌩하니 재숙이와 나만 노이코비를 먹었다. 노이코비는 산행에서 체력이 바닥났을 때 먹으면 반짝 힘이 난다. 다시 갈림길로 나와 씩스 빙하 가는 하산 길로 들어서니 재숙이는 힘이 솟는지 꽁지도 안 보이게 휑하니 달아난다.

씩스 빙하로 가는 길에는 빨간 눈썹의 오동통한 새도 보이고 살이 토실토실 찐 마모트도 보인다. 한참을 내려오면 레이크루이스에서 씩스 빙하로 가는 길과 만난다. 이 길에서 오른쪽 산으로 향하면 씩스 빙하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을 끌고 허덕허덕 걷다보니 쓰러지기 직전에 씩스 빙하 찻집에 이른다. 찻집 앞에서 잠시 쉬며 간식을 먹고 씩스 빙하 전망대로 향했다. 지루한 모레인 지역을 지나니 빙하의 끝자락이 보이고 길은 끝난다. 여기서 루이스 빙하로 흘러드는 여섯 개의 빙하를 볼 수 있다는데 정말 여섯 개가 되는 건지 안 되는 건지 잘 구분이 안 된다.

뼈 빠지게 고생한 후에 기막힌 빙하가 나타날 줄 알았는데 그저 그런 경치에 맥이 탁 풀린다. 어제 외손자 건희가 말한 농담이 떠오른다.

형과 아우가 편을 갈라 시합을 하는데 모두들 아우 쪽으로만 붙었다. 이런 경우에 무엇이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어 모른다고 했더니 형편없다.’고 한단다.

형편없다고 까지 말할 수는 없지만 노력과 투자시간 대비 좀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왔으니 빙하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씩스 빙하 찻집을 거쳐 루이스호수까지 하염없이 내려왔다.

레이크루이스 근처까지 내려오니 암벽에 매달려 등반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렇게 고생을 하면 떡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하는 우리 인간의 모습이 우습다.

샤토호텔 근처에 오니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였다. 중앙에는 캐나다라고 쓴 커다란 케이크가 있고 막 커팅을 하려는 순간이다. 우리도 달려들어 구경을 하고 한 조각 얻어먹었다. 떡도 안 나오고 밥도 안 나오지만 케이크가 나왔다.

남의 집 잔치에서 케이크까지 잘 얻어먹고 주차장에 돌아오니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듯 말씀이 아니다. 밴프에 들러 곤돌라를 타려고 밴프를 향해 차를 몰았다. 고속도로 밴프 출구를 나가서 조금 가니 차들이 꼼짝을 안 한다. 교통사고가 났나하며 30분 정도 가니 오늘이 캐나다의 날이라 5시부터 퍼레이드를 한다고 써 있다.

그래도 무슨 방법이 있겠지 하고 계속 가니 여자 안내원들이 나와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곤돌라 타러 간다고 하자 도로 차를 돌려 다음 출구로 나가란다. 아니 그럴 거면 고속도로 출구 전에 나와서 다음 출구로 가라고 하지 이게 무슨 행패인가 싶다.

다시 고속도로로 나와 다음 출구로 빠져 밴프 시내로 가려니 여기도 차가 장사진을 이루고 서 있다. 이제 곤돌라장에 가 봤자 보이는 것도 없고 정상에도 못 갈 것 같아 포기하고 다시 차를 돌려 숙소로 향했다.

오는 길에 캔모어 세이프웨이에 들러 체리와 소고기를 샀다. 체리가 어찌나 싼지 한국에서의 반의 반의 반값도 안 된다. 고기와 맥주로 포식을 하고 한국에서 비싸서 못 먹던 체리까지 욕심껏 먹고 나니 숨 쉬기도 힘들다. 소화도 시킬 겸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세상에 부러운 놈 하나 없네. ( 72)

오늘은 돌로미테 연봉을 보며 써큐픽 정상에 오르기로 했다.

헬렌 호수 주차장 헬렌 호수 써큐픽 정상 헬렌 호수 헬렌 호수 주차장 (18km ) 에 이르는 코스인데 총 9시간이 걸렸다.

주차장에서 헬렌 호수까지 가는 길은 야생화도 보며 돌로미테 연봉도 바라보며 이리저리 한 눈을 팔다보면 그리 힘든 줄 모르고 오른다. 곳곳에 눈이 녹지 않아 푹푹 빠져 가며 헬렌 호수에 이르니 호수는 얼음에 덮였고 눈앞을 가로 막는 써큐픽은 거대한 절벽처럼 앞을 가로 막는다. 눈에 뒤덮인 채 고추 선 써큐픽을 바라보자 오금이 저려 발도 못 떼겠다. 아무도 가지 않았는지 발자국 하나 없다.

길은 눈에 덮여 보이지 않고 우리 힘으로 러셀을 하며 길을 낼 수도 없다. 호숫가에서 간식이나 먹고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가져온 김밥과 계란을 먹는데 웬 남자 두 명이 올라온다.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으니 써큐픽에 간단다. 우리는 내심 쾌재를 부르며 이 사람들 뒤를 따라 갔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걸음이 빨라 눈 깜짝할 사이에 십리만큼 달아나고 잠시 후 써큐픽 중간 지점에서 느릿느릿 올라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발자국을 따라 가다가 발자국도 잃어버리고 눈과 돌이 범벅이 된 길을 사투를 벌이다시피 기어 올라갔다.

한 발 올라가면 두 발 미끄러지니 도무지 진전이 없다. 제대로 된 길은 눈 속에 파묻혀 있어 이리 저리 바윗길을 돌아가려니 언제 황천길로 들어설지 몰라 가슴이 두 근 반 세근 반 한다. 정민 아빠와 두 동생은 까마득히 올라갔는데 뒤떨어진 나는 새로 길을 찾느라 어리버리 헤매고 있다.

악전고투하며 올라가는데 앞서 간 두 남자는 벌써 성큼성큼 내려온다. 나는 이들이 벌써 정상에 갔다 오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눈이 너무 많아 포기하고 내려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써큐픽과 씨름을 하고 있는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스패츠에 아이젠, 헬멧까지 중무장을 하고 우리를 지나쳐 올라간다. 한 눈에 봐도 남자는 가이드 인 것 같고 여자도 전문 산악인인 것 같다.

우리가 포기할 만하면 귀인이 나타나 우리를 돕는 듯하다. 이들이 간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니 드디어 써큐픽 정상이다. 정민 아빠와 두 동생은 벌써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나도 초죽음이 되어 겨우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인간세상이 아니다. 신의 세상으로 진입한 듯하다. 멀리 까마득하게 보우호수가 보이고 사방으로 둘러싼 로키의 산들이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천태만상의 기기묘묘한 산들이 넌줄넌줄 춤을 추고, 파도처럼 달려들고, 우르르 몰려간다. 가만히 서 있는 것은 하나 없이 모두들 드라마틱하게 움직인다.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오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아무리 설명해 본 들 어찌 이 광경을 표현할 수 있을까? 그 산에 오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일 뿐 아무도 이 감격을 말할 수 없다. 옆의 바위 봉우리를 보니 돌탑이 쌓여있다. 그 사이에 눈이 가득 차 감히 건너갈 생각을 못하고 있는데 먼저 올라온 남녀가 그쪽으로 조심조심 발을 내딛는다.

한 걸음만 잘못 디디면 눈 속에 파묻혀 형체도 못 찾게 생겼다. 쌍지팡이로 조심조심 앞 사람을 따라 옆의 봉우리로 이동하는데 앞사람의 발에서 미끄러진 돌들이 우수수 우수수 떨어진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옆 봉우리로 올라 돌탑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실력은 엉망이지만 폼은 에베레스트 등정한 사람보다 더 멋진 폼으로 한 바탕 사진을 찍고 나니 내려갈 걱정에 앞이 캄캄하다.

아이젠을 끼고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어찌나 겁이 나는지 간이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겠다. 진땀을 흘리며 급경사 길을 내려와 완만한 능선에 다다르니 한숨이 절로 난다.

여기서 간단히 허기를 면하고 눈길을 한참 내려오니까 헬렌 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이 아래로는 위험구간이 없으니 마음이 편하다.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띤다.

여유 있게 야생화도 바라보며 내려오는데 동생들이 자리 깔고 누워 돌로미테를 바라보고 있다. 나도 같이 누워 돌로미테 연봉을 바라보니 이것이 모두 내 것인 양 가슴이 뿌듯하다.

이렇게 산 속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 한 마디로 세상에 부러운 놈 하나 없다. 이렇게 자연의 품에 안겨있을 때는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느끼고, 내가 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부모님께 감사한다.

살다보면 괴로운 날도 많고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탄할 때도 있지만 이 순간만은 끝없는 행복감이 온몸에 흘러넘친다.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을 준 대상은 산이라고 하자 미경이가 아이들이 아니냐고 묻는다. 아이들도 물론 내게 큰 행복을 준 건 사실이지만 산이 준 행복이 더 크다고 하니 미경이가 의아한 표정이다. 이렇게 돌로미테를 취하도록 바라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산해진미를 포식한 듯 포만감이 가득하다.

주차장에 내려와 크라우훝(crow foot)으로 갔다. 빙하가 까마귀 발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아무리 봐도 까마귀 발이 안 보인다. 재숙이와 미경이는 왜 저게 안 보이냐고 야단인데 정민 아빠와 나는 어리버리하니까 이거 노친네들하고 같이 못 놀겠다고 난리다. 나는 동생들 따라 다니며 노느라고 골병들 판인데 말이다.

재숙이가 가리키는 쪽을 한참 바라보니 드디어 까마귀 발 비스므레한 것이 보인다. 두 개의 빙하가 맞닿아 닭발 비슷하다. 원래는 발가락이 세 개였다고 한다. 1918년에 찍은 사진에는 발가락이 세 개라 까마귀 발 같았는데 그 후 빙하가 녹아 지금은 발가락이 두 개 밖에 없어 영~ 알아보기 힘들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차들이 잔뜩 서 있기에 웬일인가 하고 다가가니 곰이 새끼 두 마리와 풀을 뜯고 있다. 곰 새끼는 강아지 보다 훨씬 예쁘다. 어미를 따라 뛰어다니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한참 곰을 보며 사진을 찍다가 830분까지만 세탁실을 개방한다던 안내문이 생각나 서둘러 롯지로 돌아와 그동안 입은 옷을 빨았다. 세탁기는 2달러, 건조기는 1.5달러인데 2개씩 밖에 없어 다른 사람이 끝나길 기다려야했다.

빨래를 넣어 놓은 후 이 날도 고기를 구워 맥주를 마시며 가슴 벅찬 하루를 마감했다.

 

하나님이 보호하사 ( 73)

벤프에서 떠날 때까지는 해가 쨍쨍 나서 오늘은 정말 끝내주는 날이라고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요호국립공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점점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요호국립공원 안내소에 이르렀을 때는 폭우가 쏟아진다.

안내소에 들어가 아이스라인 트레일의 상태를 알아보니 눈이 너무 많아 통제되었단다. 재숙이는 오늘 하루 쉬라는 신의 계시라고 좋아하고, 미경이는 ~나님이 보호하사하며 노래까지 부른다. 나도 어제 하도 걸어 오늘 22km, 10시간 산행을 어떻게 해낼까 내심 걱정이 많았는데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구나.’ 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날씨 덕에 오늘은 드라이브하며 관광이나 하자고 내추럴 브리지(natural bridge)를 보러갔다. 계곡에 있는 이 다리는 말 그대로 사람이 놓은 다리가 아니고 자연적으로 생긴 다리다. 계곡에 있는 큰 바위 밑으로 물이 흘러 그 위로 계곡을 건널 수 있게 생겼다. 계곡물이 어찌나 무섭게 흐르는지 바위 위에 서니 곧 물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아 오금이 저리다.

다음은 에메랄드 레이크를 보러갔다. 햇빛이 쨍~ 나면 에메랄드빛을 띠겠지만 비가 오니 색이 힘을 잃었다. 호숫가나 걸으려고 호수 왼쪽 길로 접어드니 여기도 통제다. 곰이 자주 출몰하여 갈 수 없다고 안내판을 세워 놓고 가지 못하게 통행금지 줄도 묶어 놨다.

할 수 없이 다리를 건너 호수 오른쪽 길로 가니 동네가 끝나는 곳에 여기도 입간판을 세워 놓고 곰 때문에 통제한다고 써 있다. 길가에 바퀴 달린 하얀 짐승의 우리 같은 것이 있어 들여다보니 곰 잡는 우리다. 곰이 많기는 많은가보다.

다음은 타카카우 폭포를 보러갔다. 타카카우 폭포는 수량이 많아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천둥소리를 내며 물이 쏟아진다. 타카카우라는 뜻은 magnificent 장엄한’ ‘굉장한이라고 한다.

그 높이가 254m로 캐나다에서 가장 높은 폭포라는데 하얀 물보라가 수 십 미터 밖까지 뿜어져 나와 영롱한 무지개까지 생긴다.

폭포를 보고 난 후 요호계곡으로 트래킹을 하려고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날씨는 해가 났다 비가 왔다 하며 변덕이 죽 끓듯 한다. 조금 올라가다가 점심을 먹으려고 냇가에 자리를 펴고 준비해온 김밥을 먹는데 또 비가 쏟아진다. 허겁지겁 다시 챙겨 배낭에 넣고 차로 돌아와 차에서 나머지 밥을 먹고 커피에 과일까지 완벽하게 먹었다. 다시 해가 났지만 우리는 아무리 해가 나도 너하고는 더 이상 안 논다.’ 하며 밴프로 향했다.

밴프에 오니 날씨도 좋고 차도 안 막힌다. 곤돌라장으로 가서 곤돌라를 타고 설퍼산에 내리니 정상까지 이어지는 마루 길이 보인다. 마루 길을 따라 설퍼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바람이 어찌나 센지 내려오는 사람들 얼굴이 시퍼렇게 얼었다. 우리도 덜덜 떨며 올라가니 꼭대기에 작은 집이 있다. 속을 들여다보니 옛날에 이곳에서 살며 기상 관측을 했던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설퍼(sulfur)는 유황이란 뜻인데 이 산은 sulphur산이라고 되어있다. 유황 광산이 있었는지 그건 모르겠다. 설퍼산 정상에서는 루이스산, 런들산, 캐스케이드산 등 캐나다 로키의 멋진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고 밴프 시내와 호수가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곤돌라 하차장 건물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가니 벽에 각 나라의 국기와 그 나라가 있는 방향이 표시 되어 있다. 태극기도 있고 한국은 북서방향으로 314도에 있다고 써 있다.

곤돌라를 타고 내려와 보우강가에 있는 스프링스 호텔로 갔다. 쪽빛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이 호텔은 중세 시대의 성처럼 아름답고 눈부시다. 호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근처에 있는 캐스케이드 정원으로 갔다.

캐스케이드 산이 바라보이는 아담한 정원이다. 밴프 사람들이 즐겨 찾는 휴식처인 듯 어린아이들도 많이 보인다. 네 명의 아이들과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니 퍽 수줍어하면서도 기분 좋은지 같이 찍는다.

공원에서 나와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의 촬영지인 보우폭포를 보러갔다. 보우폭포는 비스듬히 누운 폭포인데 물살이 거칠어 노도와 같이 성난 물결이 쏟아져 내려온다. 마릴린 몬로가 뗏목을 타고 이 급류를 내려오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폭포 옆으로 밴프 트레일이 밴프 시내까지 이어진다. 보우강 옆으로 이어진 평화로운 길이다. 왕복 2km 정도이니 심심풀이 땅콩으로 걷기 좋은 길이다. 오늘 22km 걸을 계획이었는데 2km로 확 줄여 걸으니 좋기는 좋다.

차로 돌아와 삶은 옥수수를 먹었는데 캐나다 옥수수는 알이 쏙쏙 빠지지를 않아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속 대공에 붙어있는 게 더 많다. 다 먹고 나니 꼭 쥐 뜯어 먹은 듯 지저분한 대공만 남는다.

이 날은 아이스라인 트레일이 폐쇄된 관계로 가벼운 하루를 보내고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왔다.

 

빽 빽 대는 입 틀어막다. ( 74)

8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모레인 호수로 향했다. 오늘은 모레인 호수 주차장 미네스티마 호수 센티늘 피크(2611m) 미네스티마 호수 모레인 호수 주차장 ( 15.8km )으로 되돌아오기로 했다.

모레인은 빙퇴석 즉 빙하가 내려오다가 녹아 그 속에 있던 자갈 모래 등이 쌓인 것을 말한다. 즉 빙하가 퇴적시킨 돌이다. 호수에는 무수한 나무 잔해들이 떠 있고 설산에 둘러싸인 호수는 그야말로 에메랄드빛이다. 보트장에는 많은 보트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호수 옆길로 조금 가니 호숫가로 이어지는 길과 라치밸리로 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른쪽 라치밸리 길로 들어서니 네 명 이상이 모여 다니라는 안내판이 있다. 곰이 나타날 경우를 대비하여 써 놓은 것이다. 우리는 마침 네 명이니 주저 없이 산길로 들어섰다. 전에는 여섯 명 이상이었는데 네 명으로 기준이 완화되었다고 한다.

편안한 숲길을 전나무 향을 맡으며 얼마쯤 걷다보니 갑자기 넓은 평원이 나타난다. 열 개의 봉우리가 보이는 알파인 평원이다. 전나무 향이 얼마나 좋은지 맡으면 맡을수록 그윽한 향기가 코를 간지른다. 허파 속까지 나무향이 가득해지는 것이 마치 보약을 먹는 기분이다.

열 개의 봉우리를 바라보며 환상에 빠져 걷다보니 얼음에 덮인 미네스티마 호수가 나타난다. 미네스티마는 잠잔다는 뜻이다. 잠자는 호수라는 이름에 맞게 얼음과 연둣빛 물이 어우러져 몽롱한 색을 띠고 있다.

호수 너머로 피너클과 템플산이 양쪽에서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고 가운데 오목한 센티늘 패스가 있다. 쪽빛 하늘이 뾰족한 산에 찔려 푸른 물이 주르르 흐를 것 같다. 너덜지대 끝에서 간식을 먹고 스패츠를 찬 다음 급경사 설사면에 붙었다. 길이 곳곳에서 눈에 덮여 급경사면을 그대로 치고 올라갔다.

그래도 써큐픽에 비하면 양반이다. 매달리지는 않고 두 발로 갈 수 있으니 말이다. 지그재그 경사길을 몇 번 돌고 도니 드디어 센티늘 패스 정상이다. 고개 너머로 파라다이스 계곡이 아련히 이어진다. 고개 정상에는 누가 만들었는지 돌로 둥그렇게 담을 쌓아 놓았다. 바람을 피하기 위해 만든 모양이다.

여기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파라다이스 계곡 쪽에서 한 남자가 올라온다. 너덜지대라 무척 힘들어 보인다. 잠시 기다리니 땀에 뒤범벅이 된 남자가 올라선다. 혼자 왔느냐고 하니 그렇다고 한다. 사진을 찍어주려고 카메라 있느냐고 하니 없단다. 이 지역 주민인 것 같다. 자기는 왔던 길로 다시 간단다. 우리도 왔던 길로 다시 내려왔다.

급경사 설사면을 쏜살같이 내려오니 금방 미네스티마 호수에 닿는다.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한 가족이 올라온다. 호주에서 온 부부와 딸이다. 센티늘고개까지 길이 좋으냐? 갈 수 있느냐? 하며 묻는다. 우리가 갈 수 있다고 하자 열심히 걸어간다.

한참 내려가고 있는데 그 가족이 내려온다. 앞에서 가는 정민이 아빠와 한참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뒤에서 보니 손짓을 하며 한참 설명을 하는 게 아마 고개 정상에 가지 못한 모양이다. 말소리는 안 들려도 말 하는 모양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걸 안 봐도 비디오라고 하는 모양이다.

나중에 정민아빠에게 물으니 우리 예상대로 정상에 못 가고 돌아온단다. 길도 애매하고 딸이 도저히 못 가겠다고 했단다.

야생화가 만발한 초원 지대를 지나 모레인 호수에 이르니 여기 저기 보트를 사람들이 보인다.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아침보다 물 색깔이 더 짙고 푸르러졌다.

오늘은 재스퍼까지 가야하니 갈 길이 바쁘다. 갈 길도 바쁜데 산양이 길로 뛰어 나와 맘판 돌아다니며 길을 가로 막는다.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캐나다에 와서 사먹은 거라곤 밴프에서 쵸콜렛 하나 사서 나눠 먹고 아이스크림이 처음이다.

가다가 콜롬비아 빙원(icefield)에서 흘러내리는 아사바스카 빙하를 보고 빙원까지 설상차를 타고 오르기로 했다. 콜롬비아 빙원은 로키산맥에서 가장 큰 얼음덩어리로 된 평원이다.

5시 차를 타려고 부지런히 달려 아이스필드 센터의 매표소로 가니 6시 표밖에 없단다. 6시에 설상차를 타면 7시도 넘어서 내려올 텐데 두 시간이면 우리 발로 직접 걸어 올라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표를 사지 않고 다시 차로 와 두꺼운 옷을 입고 쌍지팡이를 들고 빙하 끝자락으로 갔다.

들어가지 못하게 줄이 쳐 있어 돌아 나오려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줄을 넘어 안으로 들어간다. 정민 아빠 말로는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은 아니고 너의 모험은 네가 책임지라고 써 있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도 모험을 해보자고 줄을 올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자갈밭을 지나 빙하 왼쪽 끝으로 가니 개울을 건널 수 있게 작은 나무다리도 있다. 다리를 건너 빙하 위로 올라서니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앞으로 달려들 듯 다가온다.

정민 아빠와 두 동생은 사쁜사쁜 힘 안들이고 잘도 올라간다. 혼자 뒤쳐져 엉금엉금 올라가려니 가끔씩 내가 오나 하고 뒤돌아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다들 날쌘 돌이 같이 잘 다니는데 나만 뭉그적거리며 지장을 주는 것 같아 미안하기 짝이 없다.

처제야 젊고 예뻐서 데리고 다닐 만도 하겠지만 나처럼 짐 덩어리, 골치 덩어리인 쭈그렁 방탱이 처형을 누가 데리고 다니겠냐 말이다. 그저 천사표 제부를 둔 것도 큰 복이다 생각하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긴다.

하얀 빙하 위를 찬란한 햇빛을 안고 올라가는 동생들 모습이 천국으로 올라가는 천사들 같다. 한참 올라가는데 설상차가 옆에서 올라온다. 차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 사람들이 우릴 보면 엄청 멋있어 보일 꺼다.

설상차는 빙하 옆으로 계속 올라가더니 빙원 위에 멈췄다. 우리도 부지런히 설상차 있는 곳까지 올라가니 많은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있다. 사람들은 빙원에 내려 사진 몇 장 찍고는 다시 설상차를 타고 내려간다.

우리는 다시 빙하 위를 걸어 주차장까지 내려오며 빙하 체험을 만끽했다. 5시 표가 없어 걸어온 것이 천만 다행이라고 1인당 6만원씩 절약하고 100배 많이 보았다고 신이 나서 떠들며 내려왔다. 사실 걸을 수만 있으면 걸어 올라가는 것이 설상차 타는 것보다 1001000배 멋있다. 설상차 타는 것보다 걸어가는 것을 강추한다. 두 시간 만 투자하면 빙하를 온몸으로 맛볼 수 있다.

빙하체험까지 마치고 재스퍼에 있는 랍스틱 롯지에 도착하니 8시가 넘었다. 짐을 다 들여놓고 밥을 하는데 화재경보기가 빽 빽 울어댄다. 그랬다고 밥을 안 할 수도 없어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입을 틀어막기로 했다. 대일밴드 여러 개로 화재경보기 구멍을 모두 틀어막았다. 그랬더니 이놈이 찍소리도 못하고 잠잠하게 붙어있다. 3일간 입에다 재갈을 물렸다가 가는 날 풀어주기로 했다.

 

미추냐 강추냐? ( 75)

오늘은 대머리 민둥산 볼드힐(bald hill)에 오르기로 했다.

멀린 레이크 주차장 볼드힐 (2341m) 2408m볼드힐 아래 능선길 멀린 레이크 주차장 (16.2km) 까지 6시간 걸렸다.

재스퍼에서 멀린 호수로 가는 길에 메디신(medicine: , 주술, 마술) 호수가 있다. 이름이 특이해서 안내판을 잘 보니 설명이 나와 있다. 메디신 호수는 여름에는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들어 물이 가득한데 10월 쯤 되면 유입되는 빙하수는 줄어들고 호수 바닥의 수로를 통하여 물이 흘러 나가면서 물이 거의 없어지는 특이한 호수다. 인디언들은 이 현상이 어떤 주술 때문인지 마술 때문인지 기이하게 생각하여 두려움을 가졌다고 한다.

메디신 호수를 지나 멀린 호수로 달리는데 갑자기 산양이 달려든다. 속도를 죽이고 천천히 가는데 이놈들이 아주 차로 바짝 달려든다. 비지죽도 못 얻어먹었는지 피골이 상접했다. 털갈이를 하느라 털은 군데군데 빠지고 거지 중에 상거지 꼴이다.

조심조심 한 시간가량 가니 멀린 호수 주차장이 나온다. 호수에는 유람선도 있고 매표소 건물도 보인다. 선착장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트레일 입구가 나타난다. 멀린 은 악한’ ‘나쁜이란 뜻이라는데 이토록 아름다운 호수에 왜 이런 이름이 붙었나 모르겠다.

트레일 입구 안내판에는 볼드힐까지 왕복 10.4km이고 왕복 4~6시간 걸린다고 쓰여 있다. 더글러스 전나무가 우거진 평탄한 임도를 따라 올라가는데 한 부부가 올라온다. 에드민튼에서 왔다고 한다. 우리보다 빨리 올라가다가 갈림길에서 쉬고 있기에 다가가니 모기약을 주며 몸에 바르라고 한다. 재스퍼 모기는 아주 독하다고 하기에 팔과 목에 듬뿍 발랐다.

갈림길에서 이 부부는 가파른 숲길로 들어가고 우리는 계속 임도를 따라갔다. 얼마를 가니 임도는 끝나고 넓은 조망대가 나타난다. 발 아래로 멀린 호수가 빛나고 조금 더 가니 초원지대가 나타난다.

초원에는 각종 야생화와 이끼가 덮여 있어 꽃 융단을 깐 듯하다. 초원에서 바라보는 볼드힐은 말 그대로 나무 한 그루 없는 대머리(bald)산이다. 왼쪽의 경사면을 치고 올라가 능선에 올라서니 여기도 야생화가 만발이다.

야생화 밭에 앉아 찍고 서서 찍고 마구 찍어댄 후 정상으로 오르니 작은 돌탑이 서 있다. 밑에서 볼 때는 민둥한 것이 볼품없어 보이던 산이 정상에 서니까 조망이 뛰어나다. 여기까지 올 때는 볼드힐은 별로 추천할 가치가 없어 보여 미추(추천하지 않음)라고 했는데 정상에 서니 강추(강력하게 추천함)로 마음이 바뀐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바람을 피해 고구마와 커피로 요기를 했다. 잘 먹고 나무를 보니 나무들이 온통 똥 세례를 받고 서있다. 눈이 많았을 때 사람들이 눈 위에 볼 일을 보았는데 눈이 녹으니 나뭇가지에 똥이 걸렸나보다. 완전 똥밭에서 식사를 한 꼴이다.

여기까지만 하고 내려갔으면 4시간 정도 걸렸을 텐데 옆의 다른 봉우리로 향하는 능선길이 아련하게 이어져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는 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능선길을 따라 갔다.

가는 길에는 곳곳에 눈이 있고 밑의 멀린 호수가 내려다 보여 그야말로 탄성이 절로 난다. 정상에 올라 GPS로 높이를 재니 2408m이다. 여기도 전망이 기막히다. 한참 사진을 찍는데 두 남자가 올라온다. 가만히 보니 부자지간인 것 같다. 이들에게 이 산 이름을 물으니 자기들도 모르겠다고 한다.

정상 사진을 찍고 너덜지대로 내려오다가 초원으로 내려서니 볼드힐 오른쪽 능선이 너무도 아름다워 보인다. 우리는 또 마음이 동해 초원을 가로질러 이 능선으로 올라갔다. 여기도 온통 야생화가 피어 천상의 화원에 온 듯하다.

볼드힐에만 갔다 오면 10.4km인데 옆의 산도 오르고 종횡무진 왔다 갔다 하고 내려오니 16.2km나 걸었다. 총 여섯 시간 걸렸다. 원 플러스 원(1+1)이 아니고 원 플러스 투, 원 플러스 쓰리(1+3)까지 하니 나 같은 할망구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될 판이다.

내려오는 길은 왜 이리도 긴지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인다. 동생들은 다 달아나고 혼자 내려오려니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겁이 덜컥 난다. 마지막 임도를 내려오려니 아무도 없는데 곰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꼴찌로 내려오면 좋은 점도 있다. 가스 방출과 노상 방뇨가 자유자재다. 요새는 괄약근에 힘이 없어 그런가 시도 때도 없이 시간 불문, 장소 불문으로 방귀가 터져 나온다. 길 갈 때는 차나 오토바이가 지날 때 뀌고, 집에서는 싱크대에 물을 커다랗게 틀어놓고 뀌면 되는데 산에서는 너무 조용해서 참 곤란하다. 그러니 아무도 없는 이런 때가 가스 방출에 최적 시간이다.

길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드디어 주차장이 나타난다. 재스퍼를 향해 오는데 또 차들이 잔뜩 서 있다. 뭔가 나타났나보다. 우리도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가니 곰이 새끼 세 마리를 데리고 놀고 있다. 어미에게 달라붙어 핥기도 하고 비비기도 하는 모습은 인간과 다름이 없다.

다시 차를 타고 멀린 캐년으로 가는데 재숙이가 농담을 한다. 언젠가 나도 들었던 농담이지만 새로 들으니 역시 재미있다.

O형은 단무지 (단순하고 무식하고 지랄 맞다.)

A형은 소세지 (소심하고 세심하고 지랄 맞다.)

B형은 오이지 (오만하고 이지적이고 지랄 맞다.)

AB형은 지지지 (지랄 맞고 지랄 맞고 지랄 맞다.)

생각할수록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세 명은 모두 B형인데 나만 AB형이다. 내가 생각해도 내 성격은 지랄 맞고 지랄 맞고 지랄 맞다. 그래서 친구가 별로 없다. 아마 산을 좋아하게 된 것도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지 못해서 궁여지책으로 만든 취미인 것 같다.

멀린캐년은 좁은 협곡인데 협곡 사이에 여섯 개의 다리가 있다. 주차장에서 협곡으로 들어가면 2교를 건너게 된다. 밑이 잘 안 보일 정도로 좁은 바위틈 밑에 급류가 흐르고 그 위에 다리가 놓여 있다.

4교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와서 1교로 올라갔다. 협곡 속에서 물보라가 올라와 바위 사이에 무지개가 걸렸다. 5교와 6교는 너무 멀고 경치도 별로 라고 하여 생략했다.

재스퍼로 돌아오니 기찻길 앞에 차들이 늘어서 꼼짝을 못한다. 기다란 화물차가 지나가느라 차들이 한 없이 늘어서 있다. 우리는 차를 돌려 다른 길로 재스퍼 시내로 향했다.

여기도 차들이 늘어섰는데 뭔가 구경을 하는 눈치다. 내려 보니 엘크가 풀을 뜯고 있다.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는데 어떤 여자가 30m이상 떨어지라고 소리를 지른다. 유니폼을 입은 걸 보니 국립공원 관리원인가 보다. 우리는 3m 거리까지 갔으니 소리를 지를 만도 하다.

엘크까지 잘 보고 집으로 돌아와 수영도 하고 스파도 하고 사우나도 하니 온 몸이 개운하다.

 

에고~ 속 터지네! ( 76)

오늘은 카벨 메도우에 오르기로 했다. 카벨 메도우 주차장에 도착하니 카벨 메도우는 눈이 많고, 또 초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땅이 마를 때까지 폐쇄하니 빙하가 있는 아랫길만 가라고 쓴 안내문이 붙어있다.

무슨 폐쇄가 이토록 많은지 가슴이 답답하다. 주차장 위쪽에는 에디스 카벨에 대한 안내판이 있다. 카벨은 영국인 간호사인데 1차 대전 당시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간호했으며, 벨기에에서 도망 온 죄수들을 도와주다가 처형 되었다. 이 간호사의 헌신적 행동을 기리기 위해 1919년 빙하 위의 산을 에디스 카벨산이라 이름 지었다. 목초지는 카벨 메도우, 빙하는 카벨 빙하라 부른다.

메도우 쪽은 폐쇄되었으니 모레인 지대의 너덜 길을 따라 올라갔다. 카벨산에 오르는 길인 듯하다. 오르는 중에 천둥소리가 나서 옆을 보니 카벨산 위의 눈이 흘러 내려 눈 폭포를 이루고 있다. 물로 된 폭포는 여러 번 봤어도 눈이 쏟아지는 폭포는 처음 본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곳곳에 눈이 쌓였는데 강풍에 눈이 날려 물결 모양을 이루고 있다. 어찌나 바람이 강한지 귀가 떨어져 나갈 지경이다. 얼마를 가다가 다시 되돌아 내려오는데 너덜지대라 길도 제대로 안 보이고 돌들은 제대로 박히지 않아 까딱하다가는 발목 삐게 생겼다.

너덜지대에 않아 간식을 먹는데 어디서 마모트가 나와 물끄러미 쳐다본다. 먹을 걸 달라는 줄 알고 빵을 뜯어 바위에 놓아주어도 먹을 생각은 안 하고 우리 배낭이나 스틱만 핥고 있다. 무엇이 먹고 싶어 그러는지 모르겠다.

너덜 길을 내려와 이번에는 빙하가 있는 쪽으로 갔다. 엔젤폰드에는 얼음 조각 들이 무수히 떠 있고 빙하 끝자락이 절벽처럼 서 있어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옆의 엔젤 빙하에서 내려오는 물까지 합쳐져 연못을 이루고 있는데 그 물빛이 오묘한 비취색이라 신비감을 자아낸다. 너덜지대의 산길과 빙하 길을 돌아오는데 9km, 4시간이 걸렸다.

다음은 피라미드 호수로 가서 점심을 먹고 피라미드 섬으로 들어갔다. 주차장에서 섬까지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섬이 작고 아담하여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30분 정도면 족하다.

멀린 레이크 크루즈를 타기 위해 다시 1시간을 달려 멀린 레이크 선착장으로 갔다. 배를 타기 전에 화장실에 가려고 주차장에 있는 화장실에 가니 웬 남자가 먼저 들어간다. 금방 나오겠지 하고 기다리는데 나올 생각은 안 하고 큰 딸이 휴지를 갖다 주고 작은 딸은 문 앞에 지키고 서 있다.

내가 차례를 기다리고 서 있으려니 여자 아이가 나를 보고 말을 걸어온다.

이름이 뭐냐? 무슨 색을 좋아하냐? 자기는 빨강과 초록과 푸른색을 좋아한다. 네 셔츠가 예쁘다. 네 모자가 멋지다. 하며 온갖 수다를 다 떤다. 나는 배 떠날 시간이 다 되어 속이 터지는데 안에서는 얼마나 큰일을 보는지 나올 생각을 안 한다.

결국 포기를 하고 선착장으로 달려오니 미경이가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달려가서 배를 타니 배 속에 어찌나 모기가 많은지 사람들 등에 까맣게 붙었다. 배가 멀린 호수 속의 스피릿(spirit영혼)섬까지 간다고 하여 얼마나 멋지길래 이름이 스피릿일까 기대를 잔뜩 걸고 갔는데 섬이랄 수도 없는 작은 땅에 몇 그루 나무가 서 있을 뿐이다. 너무 작아 배를 댈 수도 내릴 수도 없다.

뭔가 사기를 당한 듯 허탈하다. 이건 말 할 것도 없이 미추(추천 안함). 어제 볼드힐에서 본 경치가 몇 배 더 아름답다. 볼드힐에 올라가지 못할 사람이라면 한 번 타 볼 필요도 있겠지만 볼드힐에서 본 사람은 굳이 크루즈를 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를 타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는데 손을 소독하는 소독약이 벽에 걸려있다. 한국 사람이 그랬는지 영어로 쓴 밑에 비누라고 한글로 써 놓았다. 이억 만리 타국에서 한글을 보니 엄청 반갑다.

다시 재스퍼로 돌아와 재스퍼 트램을 탔다. 일종의 케이블카다. 케이블카를 타는 곳에 직원들 사진과 이름이 적힌 안내판이 있는데 자세히 보니 Taewon이라고 쓰고 South Korea라고 써 있는 사람이 있다. 태원이란 한국인 직원이 있나보다. 7분 정도 타고 올라가 하차장에 내려 30분 정도 오르면 휘슬러산 정상이다. 어느 방향에 어떤 산이 있는지 알려주는 구조물이 설치되어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피라미드 호수와 피라미드 섬이 꿈속 풍경처럼 아련하다.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와 허둥지둥 쫓기듯 내려오는데 빨리 내려오라고 싸이렌이 울려댄다.

 

따발총 쏘는 모기떼 ( 77)

오늘은 정민아빠 생일이다. 마트에서 사온 간단한 케잌에 별모양의 폭죽을 꽂고 생일축하 노래를 했다. 해외에서 생일을 맞는 것도 자기의 복이다.

체크아웃을 하고 캔모어로 내려가며 관광을 하기로 했다. 방을 나오기 전에 입을 틀어막았던 화재경보기의 대일밴드를 떼어냈다.

썬왑타폭포 리조트 앞 휴게소에는 커다란 토템폴과 인디언 집 모양의 뾰족한 텐트를 만들어 놨다. 이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지나던 사람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모처럼 넷이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가다가 탱글탱글한 탱글폭포도 보고 눈물의 벽이라는 폭포도 보았다. 눈물의 벽은 폭포가 두 줄기로 갈라져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모양이다. 아이스필드의 아사바스카 빙하는 3일전 보다 많이 녹은 듯하다. 대신 밑에는 야생화가 많이 피어 새로운 경치를 선물한다.

미스타야캐년에 잠시 들렀는데 질풍노도와 같은 계곡물이 깊은 암반 사이로 흐른다. 부드럽기 한없는 물이 딱딱한 바위보다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부드러운 사람이 실은 더 강한지도 모른다.

더 내러가다가 페이토호수에 들렀다. 페이토 호수는 끝이 세 갈래로 갈라져 아기 손 같기도 하고 세 가닥으로 갈라진 단풍잎 같기도 하다. 물 색깔은 하늘색도 아니고 비취색도 아니고 에메랄드색도 아니고 이걸 다 합친 색이라고나 할까 하여튼 오묘하고 신비하고 환상적이다.

페이토호수를 떠나 보우강의 발원지인 보우호수로 갔다. 보우강은 여기서 발원하여 밴프를 거쳐 대서양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호숫가에서 점심을 먹고 넘티자 롯지(NUM-TI-JAH)에서 트래킹을 시작했다. 넘티자 롯지는 써큐픽에 오를 때 보았던 빨간 지붕의 아름다운 롯지다.

멀리 보우빙하와 보우빙하폭포가 까마득하게 보인다. 보우호수 옆길을 따라 걷는 트레일은 평평한 호숫가 길을 산책하듯 가볍게 걸을 수 있는데 그늘이 별로 없어 뙤약볕에 걸어야 하니 그게 좀 힘들다. 폭포까지 4.6km.

호수 끝까지 가니 작은 언덕이 나오고 여길 넘으니 폭포까지 온통 자갈밭이다. 폭포에서 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여기서 폭포로 가나했더니 정민아빠가 되돌아선다. 그만 가나보다 했더니 웬걸? 계곡의 바위를 건너 왼쪽 물줄기를 따라간다. 폭포 위쪽으로 가려나 보다.

너덜지대를 조금 가니 폭포 옆 바위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 여자가 있어 물어보니 자기 일행인데 계곡물을 건너 올라갔다는 것이다. 우리도 가려고 신발을 벗어들고 빙하수가 흐르는 계곡을 건너는데 어찌나 물이 찬지 뼈가 쪼개지듯 아프다.

다음 지류를 건너려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우리는 폭포 위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건너와 보우산장 쪽으로 갔다. 얼음물에 뼈가 얼마나 얼었는지 걸을 때마다 오른쪽 발의 뼈가 아프다. 이거 큰일이다 하며 한참 걸으니 서서히 발이 녹으며 통증도 가라앉는다. 너덜길과 숲길을 계속 가는데 도무지 보이는 것도 없고 정민 아빠는 어디까지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모기는 얼마나 많은지 잠시라도 걸음을 멈추면 새카맣게 벌떼처럼 달려든다. 현지인들은 소매도 없는 옷에 반바지만 입고 잘만 다니더구만 이놈들이 모처럼 별미를 맛보자 환장을 했는지 정신없이 파고든다.

재숙이도 힘이 드는지 더 가봐야 볼 것도 없을 텐데 뭐 하러 가는지 모르겠다고 툴툴대며 말없이 걷고 있다. 재숙이는 먹든지 말하든지 별로 입을 다물지 않는다. 항상 재 재 재 재 한다. 조용해지면 뭔가 탈이 난 것이다. 요즘 목이 아프다고 하더니 오늘은 더 심한가보다.

정민아빠가 앞으로 갔으니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계속 갔다. 한참을 가니 너덜지대가 나타나고 정민아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보우산장까지 가려면 너무 먼 것 같으니 그만 돌아가자고 한다. 우리도 안도의 한숨을 쉬며 되돌아섰다.

되돌아오다가 노상방뇨를 하려니 모기가 걱정이다. 생살을 내놓았다가는 따발총을 쏘아댈텐데 큰 걱정이다. 그랬다고 참고 주차장까지 갈 수는 없을 것 같아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두 손으로 연신 문질러 대며 볼 일을 보았다.

이글이글 타는 태양 아래서 지글지글 끓는 자갈밭을 걸으려니 온몸이 익어버릴 것 같다. 보우호수 옆을 지나오며 보니 나무들이 쓰러진 잔해들이 보인다. 나무들은 죽어서 해골만 남아도 너무 멋지다. 사람의 해골은 흉측하고 무서운데 나무해골은 고고하고 귀티가 나니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푸른 호숫물 위에 빨간 지붕의 넘티자 롯지가 동화 속 건물처럼 앙증맞다. 아무 생각 없이 거의 무아지경으로 걷다보니 드디어 주차장이다.

다들 지쳐 차에 올라 더 이상 한눈팔지 않고 캔모어로 향했다. 캔모어 팔콘 크레스트 롯지(FALCON CREST LODGE)에 도착해 보니 이건 완전 킹카다. 방 안에 식기세척기와 세탁기, 건조기, 대형 냉장고, 전자레인지에 커다란 냄비, 식기도 다양하게 엄청 많다. 와인 잔에 맥주잔까지 아무튼 지금까지 지내온 롯지 중 단연 최고다. 이건 정말 강추다.

저녁에는 와인에 고기까지 한 상 푸짐하게 잘 차려 다시 한 번 생일잔치를 했다.

 

체리 잔치 ( 78)

요즘 연일 체리잔치다. 한국에서는 너무 비싸 먹을 엄두를 못 냈는데 여기는 완전 똥값 아니 체리 값이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싸가지고 다니면서 먹는다. 평생 먹은 것보다 이번 여행에서 더 많이 먹었다.

내일이면 캐나다를 떠나야하니 체리잔치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캘거리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존스톤 협곡을 걷기로 했다. 아래 폭포까지는 1.1km, 위의 폭포까지는 2.4km. 위의 폭포까지 갔다 오기로 했다.

가는 길의 협곡에는 나무를 깔아 만든 길이 많아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다. 아래폭포에는 다리를 놓아 폭포 옆에까지 바짝 다가가서 볼 수 있다. 다리를 건너 바위에 뚫린 구멍으로 들어가면 폭포물이 바로 눈앞에서 쏟아져 내린다.

다시 다리를 건너와 위의 폭포로 가는 길도 나무로 길을 잘 만들어 산책하듯 걸을 수 있다. 나무길 앞에는 고양이길(cat walk) 위에서 뛰지 말라고 쓰여 있다. 고양이처럼 사쁜사쁜 걸으라는 뜻인가 보다.

위의 폭포도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흰 물줄기를 쏟아 내린다. 잉크팟까지 가보고 싶지만 여기서 발걸음을 돌려 다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안내판을 보니 월터 필립이란 사람은 존스톤 협곡에 매료되어 수 없이 여기 와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한참 내려오는데 사람들이 모여 있다. 뭐가 있나 다가가 보니 다람쥐가 플라스틱 스푼을 빨아먹고 있다. 누가 케이크를 묻힌 채 버린 모양이다. 스푼을 잡고 열심히 빨아먹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마지막으로 투잭호수와 존슨레이크를 보러갔다. 투잭호수에는 예쁜 섬이 있는데 멀린 호수에 있는 스피릿 섬보다 더 멋지다. 바람이 어찌나 강한지 날아갈 지경이다.

존슨레이크 호숫가 탁자에서 점심을 먹고 호수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3km 정도인데 한 시간 걸린다. 여기서 캐나다 로키의 호수를 마지막으로 음미하고 차에 올랐다.

캘거리에 도착해 이코노 롯지(ECONO LODGE)에 들었는데 2층짜리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도 없고 취사시설도 없어 지금까지 중 최악이다. 이건 완전 미추다.

창 밖 베란다에 가스버너를 피우고 코펠에 카레를 끓였다. 저녁은 간단히 카레라이스로 때우고 내일 공항에서 먹을 감자를 삶았다.

오늘 저녁까지 반찬도 다 먹고 쌀도 다 떨어졌다. 열흘 동안 밥 한 끼 안 사먹고, 커피 한 잔 안 사먹었으니 정말 우리가 생각해도 짠돌이 중에 짠돌이들이다. 자린고비가 우릴 보면 형님이라고 부를 꺼다.

 

로키여 안녕~ ( 79)

새벽 5시에 일어나 짐을 싣고 6시에 공항으로 향했다. 어제 삶은 감자와 마지막 남은 체리를 챙겼다.

차를 반납하고 캘거리 공항에서 인천까지 짐을 부친 후 탁자에 앉아 아침 식사를 했다. 감자와 체리까지 다 먹고 배낭을 엑스레이 투시기로 통과 시키는데 직원이 다시 체크해야 한단다. 걸릴 게 없는데 웬일인가 했더니 미경이가 내 배낭에 넣은 화장품이 걸렸다. 내 화장품까지 합치니 액체가 100ml를 넘었나보다.

꺼내보더니 별 말 없이 비닐봉지에 넣어 다시 준다. 정민 아빠도 걸려서 배낭을 다 뒤졌다. 뭣 때문에 걸렸느냐고 물으니 모르겠단다.

화장실에 가니 휴지통 뚜껑이 센서로 감지하여 저절로 열린다. 여기에 휴지를 넣으면 잠시 후 스스로 닫힌다. 처음 보는 거라 엄청 신기해서 여러 번 해봤다. 우리 아파트 음식물 수거통도 이런 것으로 했으면 좋겠다. 손으로 열려면 음식물 찌꺼기 가 손에 묻어 기분이 찝찝한데 이런 것으로 교체하면 손 안 대고 버릴 수 있어 정말 좋겠다.

캘거리에서 밴쿠버로 오는 동안 창밖으로 로키의 설산이 이어진다. 이제 정말 캐나다 로키와 이별이다.

 

집으로 ( 710)

갈 때는 10시간 걸리던 비행시간이 올 때는 11시간 걸린다. 편서풍 지대에서 서쪽으로 오려니 바람을 마주 보기 때문인가 보다. 하지만 영화 한 편 보고 잠 한 번 자고 나니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우리 비행기는 어느 새 서울 하늘을 날고 있다. 잠실 종합운동장도 보이고 아차산과 용마산도 보인다. 자세히 보니 용마산 자락에 있는 우리 아파트도 보인다. 집이 보이니 마음이 턱~ 놓이고 집에 다 온 것 같다.

 

집으로 향하며 캐나다 로키를 다시 생각하니 생각할수록 멋지다. 한 마디로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당신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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