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1. 3. 18. 남미기행문

아~ 네모네! 2012. 10. 21. 15:48

 

 

 

 

 

 

 

 

 

 

 

 

 

 

 

 

 

 

 

종합선물 세트

 

                      기간 : 2011318~ 48

                                                     장소 : 남미 에콰도르, 베네주웰라, 칠레, 아르헨티나

 

  미친년 시리즈에 보면 10억도 없으면서 강남 살겠다는 년, 20억도 없으면서 자녀 유학 보내겠다는 년, 30억도 없으면서 유산 상속 걱정하는 년은 다 미친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1억도 없으면서 뻔질나게 해외여행 가겠다는 나 같은 년도 이 시리즈에 추가돼야 할 것 같다. 남미는 한 번 가봤지만 T.N.T(TREKKING & TRAVELING) 회원들이 갈라파고스, 엔젤폭포, 파타고니아로 간다는 말에 마음이 동해서 또 따라 나섰다.

 

아차! 비빔밥 ( 318)

  인천공항에서 김사장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아차! 비빔밥하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다. 며칠 전 이번 여행 때 가져오라고 즉석 비빔밥 여섯 개를 택배로 보내주었는데 깜빡 하고 집에 두고 왔다. 난감해 하고 있으니 여희씨와 양숙씨가 한 개씩 나눠준다. 남편에게 장롱 속에 든 비빔밥을 먹으라고 문자를 보냈다.

  열 네 시간 동안 주리를 틀고 앉았다가 뉴욕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 내리니 온몸이 무감각하다. 미국은 환승만 해도 입국심사를 해야 한다. 입국심사대 앞에 서면 지은 죄가 없어도 항상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오른손 찍고 왼손 찍고 눈알까지 찍은 후 입국 허가 도장을 쾅 쾅 찍어준다.

  짐을 찾으니 양숙씨 가방과 내 가방만 열쇠가 없어졌다. 미국은 가방을 잠그면 열어보려고 자물쇠를 부순다더니 아예 집어 먹었나보다. 환승을 기다리는 동안 카페에서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마시려니 원장님 부인 정연씨 생각이 나는지 양숙씨가 원장님에게 전화좀 해보라고 한다. 정연씨는 이번에 같이 오기로 했다가 시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못 오게 되었다. 이길자님은 본인 몸이 아파 입원하는 바람에 막판에 취소했다. 여행 한 번 오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 돼야 한다. 건강하고 돈도 있어야하지만 애경사도 없어야하고 주위 사람들이 다 편안해야한다. 이렇게 필요충분조건을 다 갖춘 사람들이 누리는 혜택이 해외여행이다.

밤 열 두 시가 다 되어 에콰도르 과야킬 행 비행기에 올랐다.

 

적도에서 얼어 죽을 판 ( 319)

  일곱 시간의 비행 끝에 과야킬 공항에 내리니 또 입국심사다. 그렇지 않아도 영어가 딸리는데 에콰도르 사람의 영어는 영어인지 스페인 말인지 도무지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다. 멍하니 쳐다보니 몇 마디 하다가 포기하고 도장을 꽝 꽝 찍어준다.

  밖으로 나오니 현지 가이드 크리스찬이 반가이 맞이한다. 한국말로 설명해도 알아듣기 힘든데 영어로 설명하니 귀머거리와 같은 신세다. 인솔자 김사장님이 통역을 해주니 그나마 다행이다.

  에콰도르는 영어로 equator 즉 적도라는 뜻이다. 과야킬은 과야스의 합성어인데 두 인디오 부족의 이름이라 한다.

  공항에서 곧장 호텔로 가 오전 내내 휴식을 취했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숫자를 눌러도 불이 들어오지 않고 다시 문이 열린다. 무슨 일인가 밖으로 나가니 호텔 직원이 번호판 옆에 카드를 끼우라고 알려준다.

  이틀에 걸쳐 비행기를 탔더니 온몸이 말씀이 아니게 피곤하다. 백주 대낮에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려니 이대장님 얼굴이 떠오른다. 이대장님 사전에 오전 휴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6년간 같이 여행 다녀봤지만 한 마디로 택도 없는 소리다. 아무리 피곤해도 해가 있는 한 관광을 계속한다. 사방이 캄캄해져 보이는 게 없어야 호텔로 들어온다. 그런데 T.N.T는 노약자를 배려해 수시로 휴식시간을 준다.

  점심은 누에스트로라는 음식점에 가서 게 다리 요리를 먹었다. 누에스트로는 우리의 것이라는 뜻이란다. 오후에는 시내관광을 했다. 센테나리오 광장으로 갔는데 이구아나가 바글바글하다. 사람들도 이구아나도 아무 거리낌 없이 자연스레 놀고 있다. 이구아나들이 한 남자의 다리로 기어오르자 곁의 어린 아이가 질겁을 하고 소리 지른다. 아빠는 이게 재미있는지 아랑곳 하지 않고 웃고 있다. 진짜 아빠 맞나 모르겠다.

  과야스강으로 가니 수초가 떠밀려 올라간다. 왜 강물이 거슬러 올라가나 했더니 마침 밀물 때라 바닷물이 밀려 올라간다는 것이다. 과야스강에서 유람선을 타려 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비행기에서 기내박 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시차가 14시간이나 되니,

땅 위를 걸어 다니는 것인지 구름 위를 떠다니는 것인지 비몽사몽간이다. 술에 취한 듯, 마약을 먹은 듯 발이 헛디뎌지고 머릿속이 몽롱하다.

  방에 들어오니 어찌나 냉방을 심하게 했는지 냉장고 속에 들어앉은 기분이다. 정원식님도 방 안에서 고아텍스 잠바 입고 있었다고 한다. 적도에서 얼어 죽을 판이다.

 

존경 받는 종경님 ( 320)

  모닝콜 소리에 얼른 전화기를 드니

굿모닝 미스 리?” 하는 소리가 들린다. 방마다 사람 이름을 보면서 하는 모양이다. 기계음으로 들리는 소리보다 한결 친근감이 느껴진다.

  식사하러 가다가 박명수씨 내외와 마주쳤다. 이 부부는 둘 다 어찌나 늘씬하고 잘 생겼는지 영화배우를 보는 것 같다. 먹을 것 다 먹고 잠 잘 것 다 자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서 이리도 날씬하고 예쁜지 그 비결이 뭔지 모르겠다. 이들을 보고 있자면 나는 남들 클 때 뭐하고 남들 예뻐질 때 뭐하고 있었나 모르겠다.

  식당에 가니 혼자 앉아 식사하고 커피 마시는 남자가 보인다. 해외출장 가서 혼자 식사할 사위 생각이 나서 가슴 한 구석이 짠해 온다. 아침식사를 하는데 원장님이 안 보인다. 나는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양숙씨는 방에 오자마자 전화를 한다. 이렇게 예쁜 짓을 하니 뭇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나보다. 원장님은 한참 운동 중이란다. 원장님은 매일 팔굽혀 펴기 500, 태극권 30, 스트레칭 30분씩 한단다. 감귤같이 탱글탱글한 피부와 30대 못지않은 탱탱한 근육을 유지하는 데는 다 남다른 노력이 있었나보다.

  갈라파고스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니 고갱의 그림에 나오는 타히티 여인처럼 가무잡잡한 피부에 빨간 입술의 스튜어디스가 서비스를 한다. 남태평양의 진한 냄새가 물씬 풍긴다. 비행기가 발트라섬 가까이 가자 머리 위 선반의 문을 열고 스프레이를 뿌린다. 갈라파고스는 동물보호에 심혈을 기울이기 때문에 소독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공항에 내리니 열사의 햇볕이 내리 쬔다. 공항청사는 말이 청사지 슬레이트 지붕으로 햇빛만 겨우 가리고 벽도 없는 엉성한 건물이다. 짐을 찾아 나오니 현지 가이드 사라가 우리를 알아보고 다가온다. 자기가 타는 버스를 타야지 절대 다른 버스를 타면 안 된다고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말이 어찌나 빠른지 마치 따발총을 쏘는 듯하다.

  버스를 타고 선착장으로 이동하여 배를 타고 산타크루즈 섬으로 갔다. 푸에르토아요라에 있는 호텔에 짐을 푼 후 버스를 타고 하이랜드로 이동하여 자이언트 거북이를 보러 갔다. 자이언트 거북이는 말 그대로 거대한 몸을 느릿느릿 움직이며 풀을 뜯고 있다. 다리가 코끼리 같이 생겨 코끼리 거북이라고도 한다. 자이언트 거북이는 육지거북이라 수영을 못하고 소처럼 풀을 먹고 산다고 한다.

  풀을 먹는 모양을 가만히 보니 씹지도 않고 그냥 삼킨다. 거북이는 이빨이 없어서 혀로 그냥 뜯어 먹는다고 한다. 거북이가 풀을 그냥 삼키는 걸 보고 있자니 언젠가 들었던 우스갯소리가 떠오른다.

서울 남자와 충청도 여자가 결혼을 했다. 첫날밤에 신랑이 화장실에 들어가 깨끗이 샤워를 하고 향수를 뿌리고 나왔다. 이 냄새를 맡은 신부가

  “존내(좋은 냄새) 나네유~” 하니까 신랑이 좇내 난다는 줄 알고 다시 들어가 열심히 닦고 향수를 더 많이 뿌리고 나왔다. 이번에는 신부가

더 존내 나네유~” 하니 당황하여 다시 들어가 더 열심히 닦고 향수를 더 뿌리고 나왔다. 밤새 이 짓만 하다가 날이 밝았다.

아침 식사를 하러 가서 신랑이 맛나게 밥을 먹자 신부가

씹두(씹지도) 않고 잘 먹네유~.” 했단다.’

론썸 (lonesome)조지 거북이도 보았는데 이 거북이는 말 그대로 외롭고 쓸쓸한 거북이다. 이 종류의 거북이는 오직 한 마리뿐이라 홀로 외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 다른 종류의 암컷과 교배를 시켜 봤지만 부화에 실패해 그야말로 부인도 없고 자식도 없는 독거노인 신세다.

  갈라파고스는 스페인 말로 바다거북을 뜻하는데 찰스 다윈이 진화론의 증거로 거북이를 연구한 곳이다. 산타크루즈 섬에는 찰스 다윈 연구소가 있다. 여기서 수많은 거북이를 부화시켜 일정한 기간 키운 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하루 종일 거북이만 보다가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식사를 하다가 이종경 회장님이

하루 종일 거북이만 봤더니 속이 거북하네.” 하고 농담을 한다.

  이종경 회장님은 이름이 종경이니 평생 존경 받을 팔자를 타고 났다. 부모 잘 만나 좋은 이름 받고 평생 존경 받으니 얼마나 좋으냐 말이다.

 

오뉴월 바다사자 팔자 ( 321)

  오늘은 산타크루즈섬 남쪽에 있는 플로레아나 섬으로 가는 날이다. 오후에 스노클링을 한다고 하여 속에 수영복을 입고 겉옷을 입었다. 선착장에 가서 작은 배를 타고 큰 배까지 갔다.

  파도에 휘둘리며 한 시간 반 정도 가자니 다들 어제 본 늙은 거북이처럼 축 처졌다. 화장실에 가니 어찌나 배가 요동을 치는지 변기에 앉기도 힘들다. 수영복을 내릴 수도 없어 옆으로 잡아당기고 소변을 보려니 오줌이 변기로 가는지 수영복에 그냥 싸는지 정신이 하나 없다.

  토하기 직전인데 다행히 플로레아나 섬에 도착했다. 최사장님은 기어이 참지 못하고 바닷물에 토하고 만다. 섬에 내려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정신을 차린 후 화물차를 개조한 차를 타고 플로레아나 고원으로 갔다. 비포장이라 몸이 널뛰듯 춤을 춘다. 멀쩡한 집 놔두고 왜 나와서 이 고생인가 모르겠다. 사서 고생이라더니 꼭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도 보통 값으로 산 게 아니라 하루에 70만원씩 주고 사서 이 고생이니 말이다. 그래도 내 좋아 하는 일이니 즐겁기만 하다.

  우리 동네에 지하실 셋방에 사는 할머니가 있다. 88세 된 독거노인이라 나라에서 매달 30만 원 정도 나온다고 한다. 20만원 방세 내고 전기료 수도료 내고 나면 2~3만원 가지고 한 달을 산다고 한다. 그 할머니가 이런 소리 들으면 졸도해 돌아가시겠다. 이 할머니를 생각하면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고 천벌을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차에서 내려 산길로 들어가니 여기도 온통 거북이 세상이다. 곳곳에 시멘트로 넓게 거북이 식탁을 만들고 물웅덩이도 만들어 거북이가 살 수 있게 해 놓았다. 산으로 더 올라가니 좁은 바위틈이 나타난다. 해적들이 살던 곳이다. 높은 바위 위에서 망을 보았다고 한다. 움푹하게 들어간 바위는 처음 이곳에 온 여자가 애기를 낳은 곳이라고 한다.

  플로레아나 섬에는 150명 정도의 사람이 산다고 하는데 초등학교도 있고 성당과 우체국도 있다. 곳곳에 바다사자들이 늘어져 잠을 자고 있다. 사람이 다가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뉴월의 개 팔자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오뉴월 바다사자 팔자가 상팔자다.

오후에는 스노클링을 하려 했으나 바람이 강해 포기하고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했다. 화산섬이라 모래도 새카맣다. 파도가 한 번씩 몰려올 때마다 수영복 속으로 까만 모래가 한 줌씩 들어간다.

  남의 집 마당 수도에서 대충 물을 끼얹고 집 뒤에서 옷을 갈아입은 후 배에 올랐다. 돌아오는 배에서는 다들 정신없이 자느라 뱃멀미도 안 했다. 올 때는 밀물이라 큰 배가 부두까지 들어와 바로 내렸다.

  호텔에 들어와 샤워하고 젖은 옷을 빨아 곳곳에 널었더니 마치 피난민 수용소 같다.

 

암수 한 몸이면 좀 좋으랴? ( 322)

  오늘은 산타크루즈섬 서쪽에 있는 이사벨라섬으로 갔다. 아침에 홍삼 절편을 먹고 배에서도 진행 방향으로 앉았다. 홍삼 덕인지 자리 덕인지 아니면 두 번째 타서 적응이 되었는지 오늘은 멀미도 하지 않고 잘 달린다.

  한참 신나게 가는데 갑자기 배가 선다. 웬일인가 하고 밖을 보니 사라가 갑판에서 내려온다. 모자가 날아갔다는 것이다. 배를 되돌려 선원인 벤이 꼬챙이로 건져 올렸다. 벤은 뱃사람이라 그런지 뱃멀미도 안 하고 흔들리는 배에서 잠도 잘 잔다. 눈이 어찌나 예리하게 생겼는지 흡사 독수리 눈 같다. 거기 비하면 내 눈은 썩은 동태 눈알 같이 티미하다.

  이사벨라섬에 오니 펭귄도 보이고 푸른 발 가마우지도 보인다. 머리는 하얗고 날개는 갈색인데 유독 발만 푸른빛이다. 마치 파란 장화를 신은 듯하다. 물새는 총알처럼 물로 내리꽂히고 이구아나는 바위 사이를 어슬렁거린다. 바다 이구아나는 바위색과 똑같이 새카매서 잘 눈에 띠지 않는다. 물새는 잠수해서 고기를 잡아 올라오는데 2초 걸리지만 이구아나는 한 번 숨 쉬면 두 시간도 잠수할 수 있다고 한다.

  바닷가에는 검은 색 현무암이 가득한데 온통 흰 무늬가 있다. 우리는 새똥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란다. 사라가 손으로 흰 물질을 닦아내려 하지만 전혀 묻지 않는다. 그것은 바위에 섞인 칼슘 성분이란다. 칼슘이 공기와 접촉하여 석회로 변한 모양이다.

  한참 걷다보니 게 껍질이 있다. 속이 텅 비었다. 사라가 집더니 게가 탈피한 거라고 한다. 게도 탈피하는 줄 처음 알았다. 하긴 게가 성장하자면 그 단단한 껍질이 어떻게 늘어나겠는가.

  어제 못한 스노클링을 하려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수영도 못 하는 주제에 그래도 호기심은 있어서 물로 들어갔다. 시퍼런 바다 밑을 보니 오금이 저리다. 자꾸 물가로 가니 가장자리는 바위가 날카로워 위험하다고 깊은 곳으로 오라고 사라가 손짓한다. 조심조심 움직이며 밑을 보니 검은색 물고기, 노란 줄 물고기가 산호초 사이에서 떼 지어 다니고 성게도 보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다표범도 내 옆을 스쳐간다.

  스노클링을 하지 않고 배 위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조금하고 배로 갔다. 배는 시동만 걸고 제자리에 있는데 아무리 수영을 해도 가까워지지 않는다. 배가 자꾸 멀어지는 것 같다. 나를 두고 가는 게 아닌가 겁이 더럭 난다. 겨우 겨우 사력을 다해 배로 오니 십 년 감수한 것 같다.

  출발 지점으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 했다. 화장실에 가니 남자 화장실에는 남자 모양 거북이를, 여자 화장실에는 여자 모양 거북이를 그려 놨다. 갈라파고스는 거북이로 시작해서 거북이로 끝난다. 하도 거북이를 보니 돌멩이만 봐도 거북이로 보인다.

  식사 후 트럭을 개조한 차를 타고 플라밍고를 보러 갔다. 핑크빛 홍학이다. 한 쪽 다리로 서서 머리를 날갯죽지에 박고 쉬는 놈도 있고 주둥이를 물에 박고 돌아다니는 놈도 있다. 플라밍고는 물밑 진흙을 훑으며 먹이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거북이 사육장으로 가니 무수한 거북이들이 크기별로 나누어져 있다. 토란잎 모양의 먹이를 주니 벌떼같이 달려와 먹어치운다. 이들은 세 달 마다 크기와 무게를 재서 성장 상태를 체크한다.

  어린 거북이는 등껍질이 얇고 부드러워 뭇 짐승들의 밥이 된다. , 고양이, 멧돼지, , 심지어 개미들까지 어린 거북이를 잡아먹기 때문에 껍질이 단단해 질 때까지 5~7년 정도 키워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어린 거북이를 보고 더 안쪽으로 가니 큰 거북이들이 있다. 마침 짝짓기를 하려고 큰 숫 거북이가 작은 암 거북이 등에 올라탔다. 숫 거북이는 우어 우어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데 암 거북이는 자꾸 도망을 친다. 한참을 보아도 성공하지 못한다. 뭇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쑥스러워 암컷이 자꾸 도망가나 보다.

  모든 동물과 식물은 짝 짓기를 하느라 심혈을 기울인다. 암컷을 차지하려고 사투를 벌이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모면 어째 조물주는 암 수를 따로 분리해 이 고통을 겪게 하나 싶기도 하다. 암수 한 몸이면 얼마나 편하겠냐 말이다.

  사육되는 거북이들을 보고 있으려니 이런 인간의 노력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까 싶다. 거대한 지구의 움직임을 인간의 힘으로 멈추게 할 수 있을까?

  돌아오는 배 속에 앉았으려니 어찌나 배가 요동을 치는지 임명옥님은 꼬리뼈 부러진다고 난리고, 양숙씨는 없는 애 떨어지겠다고 야단이다. 현지 가이드 사라도 못 견디겠는지 토하려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토하고 나오더니 박명수씨에게 네 남편은 어제는 물고기에게 밥 주더니 오늘은 괜찮으냐고 묻는다.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침대가 요동치는 듯하다.

 

손주와 다시 오라고? ( 323)

  아침에 엽서를 부치려니 1개에 3달러란다. 엽서 사는 데는 3장에 1달러인데 원체 오지라 그런지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로비의 탁자에 보니 방명록이 있다. 우리도 T.N.T 왔다 간다고 쓰고 이름을 쭈욱 썼다.

  버스에 올라 하이랜드로 이동하여 괴메로스 분화구로 갔다. 하이랜드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부딪쳐 구름이 생기니 비도 잘 오고 습기가 많아 식생이 다양하다고 한다. 분화구 속에도 나무가 우거졌다. 사오백 미터 높이에 이런 숲이 있으니 나무들이 빗물을 저장해 다른 생물의 생존에도 크게 기여한다. 분화구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니 중국 단체 관광객이 잠시 기다리라고 조또 마떼~’ 한다. 우리를 일본 사람인 줄 알았나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10분 정도 배를 타고 발트라섬에 내리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배 아래를 보며 내릴 생각을 안 한다. 가보니 까만 가오리 세 마리가 신나게 수영을 하고 있다. 마치 잘 가라고 인사를 하는 듯하다.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니 사라가 인사를 한다. 나중에 자녀들과 또는 손자들과 다시 오란다. 비행기에 타기 전 갈라파고스 입장권을 다시 보여 달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 찾았는데 정원식님은 못 찾아 10달러 주고 표를 다시 샀다. 아니 입장할 때 표 보여 주었으면 됐지 나갈 때 또 보여 달라는 곳은 난생 처음이다.

  원래 발트라섬에서 과야킬 가는 비행기는 국내선이라 여권에 도장을 찍을 필요가 없는데 갈라파고스는 희망자에게 거북이 그림이 있는 도장을 찍어 준단다. 사라가 우리 여권을 모두 가지고 가서 다 찍어 줬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 정원식님이 가방을 뒤지다가 갈라파고스 입장표가 나왔다. 양숙씨가 다시 가서 입장권 보여주고 10달러 찾아오라고 농담을 한다. 정원식님이 사탕을 주며 어제 배에서 받은 것인데 껌이니 먹어보라고 한다. 나는 어제 사탕인 줄 알고 다 씹어 먹었는데 껌이라는 것이다. 과연 끝까지 씹지 않고 녹여 먹었더니 껌이 남는다. 며칠씩 거북이만 쳐다보니 먹는 것도 거북이 닮아 껌까지 다 먹어 버렸다.

  과야킬 공항에서 다시 국내선을 타고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로 향했다. 키토의 마리스칼 수크레 공항에 도착하니 저녁때가 다 됐다. 밖으로 나가니 엄청 춥다. 키토는 고도가 2840m라서 적도지방에 있어도 이렇게 추운가 보다. 밖에 나가 사람 같은 조각상 앞에서 사진만 찍고 쫓기듯 들어왔다.

  여기서 국제선으로 갈아타고 리마로 향했다. 페루 리마의 차베스 공항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다 됐다.

 

애비앙인지 에미앙인지? ( 324)

  호텔방에 애비앙인지 에미앙인지 하는 유료 생수가 있다. 나는 듣도 보도 못한 물인데 양숙씨 말로는 이게 알프스에서 생산한 프랑스 물인데 엄청 비싸다는 것이다. 1리터에 만 원도 넘는다는 말에 나는 손도 안 댔다. 이런 물 먹고 살다가는 집 팔고 거리에 나 앉게 생겼다.

  체크 아웃하려고 로비에 왔더니 누가 이 비싼 물을 먹었다는 것이다. 방 호수를 알아보니 최사장님과 박명수씨 방이다. 나중에 들으니 비싼 줄 알면서도 목이 말라 그냥 마셨단다. 좋은 물을 먹어서 그런지 얼굴의 때깔도 달라 보인다.

  공항으로 가는 길거리에는 온통 사람 얼굴과 번호를 쓴 현수막이 가득하다. 웬일인가 했더니 410일이 대통령 선거란다. 그래도 그렇지 건물이며 전봇대까지 완전히 도배를 했다.

  베네주웰라 카라카스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도착예정시간이 자꾸 늦어진다. 북반구로 넘어왔기 때문인가 보다. 북반구 쪽은 북동 무역풍이 부는데 북동쪽으로 가려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 아닌가 싶다.

  베네주웰라 수도인 카라카스에 있는 시몬 볼리바르 공항에 도착하니 현지 가이드 루드비히가 나왔다. 시몬 볼리바르는 베네주웰라의 독립을 이끈 영웅으로 화폐에도 그의 사진이 들어 있다. 그런데 얼굴 사진이 옆으로 누워 들어있는 것이 특이하다.

  베네주웰라는 작은 베니스란 뜻인데 이태리 베니스와 비슷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세계7대 산유국이라 휘발유 값이 무지 싸다. 1달러 내면 70리터를 준다고 한다.

  그란 멜리아 호텔에 도착하여 우선 식사부터 했다. 암송아지 스테이크가 어찌나 맛있는지 입안에서 살 살 녹는다. 저녁을 잘 먹고 방으로 가니 이게 웬일인가? 청소가 안 되어 수건이며 시트가 바닥에 뒹굴고 다림질 판도 가운데 뻗치고 서 있다.

  로비로 내려가며 청소가 안 됐다는 걸 뭐라고 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다가 직원에게 방 호수를 말하고 깨끗하지 않다고

“Not clean." 했더니 단박 알아듣고 사람을 보내겠다고 한다.

방에 와 청소부를 기다리니 아무리 기다려도 함흥차사다. 다시 식당으로 내려가 김사장님에게 얘기하니 자기 방과 바꾸자며 카드키를 준다. 양숙씨와 둘이 짐을 끌고 김사장님 방에 와 보니 일 인실이라 침대가 하나 밖에 없다. 안 되겠다 싶어 씻지도 못하고 그냥 앉아 있으려니 사방에서 전화가 온다. 물이 없다고 하는 사람, 영어로 김사장님 찾는 사람들 때문에 자리에 앉아 있기도 힘들다.

  얼마 동안 기다리니 김사장님이 온다. 로비에 알아보니 청소를 했다고 한다면서 자기가 먼저 가보겠다고 한다. 현지 가이드 루드비히와 같이 갔다 오더니 아직도 청소가 안 됐다며 다시 따지러 간다. 얼마를 더 기다리다가 우리 방으로 올라가니 청소하는 아줌마가 온다. 복도에 나와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어찌나 행동이 느려 터졌는지 죙일 꾸물대고 있다. 결국 9시 반이나 되어 겨우 방에 들어갔다.

  양숙씨가 먼저 샤워를 한다고 들어가더니 욕조에 물이 안 빠진단다. 둘이 이것 누르고 저것 당기고 해봐도 소식이 깡통이다. 벌거벗고 김사장 부를 수도 없어 그냥 대충 물로만 닦았다. 비데가 있기에 비데 물은 빠지나 하고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물이 천장까지 치솟아 물벼락 맞았다.

  다음 날 아침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욕조 구멍 마개의 한쪽 끝을 누르면 마개가 옆으로 돌며 물이 빠진다는 것이다. 에고~ 머리가 나쁘면 사지가 고생한다더니 샤워도 제대로 못했다.

 

O.K ( 325)

  이 호텔은 모닝콜도 안 해 주는지 아침에 김사장이 방마다 전화를 한다. 6시에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가니 불은 꺼져 있고 문도 잠겨 있다. 문 앞에서 기다리니 직원이 열쇠 꾸러미를 가져와 이것저것 모두 넣어 보지만 열리지 않는다. 얼마동안 승강이를 벌이다가 겨우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 간단한 음료와 빵으로 요기를 했다.

  김사장이 인터넷 뉴스를 보고 아침마다 알려준다. 일본에서는 5만 명이 실종되고 후쿠시마 원전 근처 23km 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큰 짐은 호텔에 맡긴 후 23일 동안 카나이마에서 쓸 짐만 배낭에 지고 버스에 올랐다. 카나이마는 차로는 8일이 걸리는데 그 값이 플로리다 가는 것보다 비싸서 현지인들은 엄두도 못 내고 루드비히도 여태 못 가봤다고 한다.

  공항으로 가면서 보니 곳곳에 케이블카가 움직인다. 달동네에는 차가 들어갈 수 없어 케이블카로 오르내린다고 한다. 루드비히 말로는 차베스 대통령이 말로만 국민들 잘 살게 해주겠다고 하지 해준 것이라고는 길가 집 벽에 페인트 칠 해준 것 밖에 없단다.

  베네주웰라는 인디오 피가 20% 정도 밖에 안 섞여 얼굴이 서양 사람들 같다. 미스 유니버스도 가장 많이 배출했다고 한다. 공항에서 본 한 여자도 미스 유니버스인지 매니저 할머니와 찍사들이 줄줄이 붙어 다닌다. 어찌나 늘씬하고 예쁜지 우리가 넋을 잃고 바라보자 금방 목에 힘을 팍 준다.

  비행기 티켓을 받아보니 모두 성이 바뀌었다. 나는 숙씨가 되고 임명옥씨는 옥(OK)씨가 되었다. 한국이름을 잘 모르는 공항 직원이 마지막 글자가 성인 줄 알고 이렇게 친 것이다. 루드비히는 웃으며 임명옥씨에게

미쎄스 O.K 갑시다.” 한다.

  카라카스 공항을 출발하여 푸에르토 오르다즈에 내린 후 다시 경비행기로 갈아탔다. 푸에르토 오르다즈인지 오르가즘인지 도무지 보고 읽기도 힘들다. 카나이마 공항에 도착해 짐을 내렸는데 김사장 짐이 없다. 푸에르토 오르다즈에서 짐을 찾으려 하니 카나이마까지 직접 부쳐주니까 그냥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공항에서 산 스킨 하나만 맡겼는데 옷이며 화장품 등을 모두 맡긴 사람들은 난감해서 어쩔 줄 모른다. 김사장님은 몸이 달아 항공사에 전화하고 미국 걸리버 여행사 본사에 전화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밖으로 나오니 와쿠 롯지 차가 기다린다. 차를 타고 롯지에 도착하니 정원에는 개구리 조형물들이 엎드려 있고 전망이 환상이다. 정원 앞에는 큰 호수가 있고 그 너머에 세 개의 거대한 폭포가 우리를 반긴다.

  우리는 짐 안 온 것도 잠시 잊고 탄성을 지르며 호수가로 가 사진을 찍어댔다. 점심 식사 후 카누를 타고 폭포를 보러갔다. 오른 쪽부터 무지개 폭포, 제비 폭포, 아차 폭포라고 하는데 아차는 인디오 말로 도끼라고 한다. 아무리 봐도 도끼 같지 않은데 왜 이름이 도끼가 됐는지 모르겠다.

  이 폭포 뒤에는 산책길이 있는데 쏟아지는 폭포 물 뒤에서 태양을 바라보니 물 커텐을 친 것 같다. 폭포 물을 뒤집어썼더니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세 폭포를 보고 이번에는 사포 폭포로 갔다. 여기도 폭포 뒤로 길이 있다. 미끄러지면 폭포에 빠져 황천길로 갈 지경이니 조심조심 엉거주춤 걸어가는데 물보라에 생긴 영롱한 무지개가 보인다.

  사포폭포에서 나와 폭포 위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현지 가이드 호세는 몇 백 년 동안 대대로 여기 살며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호세는 장난기가 심해 길가에 있는 꽃을 가리키며 이게 뭐냐고 묻는다. 우리는 꽃 이름만 생각하고 한참 생각하다 모른다고 했더니 그냥 꽃이란다.

  와쿠 롯지의 와쿠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인디안 말로 아름답다는 뜻이란다. 사포 폭포에서 보이는 전망은 정신을 잃을 지경으로 아름답다.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에덴동산이 여기가 아닌가 싶다.

  아래 쪽 호수로 내려오니 수영타임이라고 한다. 호수 색깔은 레드 와인처럼 붉었는데 이것은 바닥에 있는 철분 때문이란다. 철이 녹슬면 붉은 색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해가 기울자 기온이 떨어지는데 젖은 옷을 입고 있으니 금세 추위가 몰려온다. 정원식님만 물로 들어가 우아하게 수영한다. 나는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 소금물만 섞고 나왔다.

  다시 호숫가를 걸어 카누를 타고 롯지로 돌아오니 따끈한 커피와 케익을 준다.

 

개구리 폭포 ( 326)

  아침에 호세에게 사포의 뜻이 뭐냐고 물으니 개구리란다. 이제야 정원에 개구리 조형물을 많이 만들어 놓은 이유를 알겠다. 식사를 마치고 롯지 뒤쪽 기념품 가게에 갔더니 문이 안 열렸다. 8시에 연다고 쓰여 있어 옆의 원숭이 우리로 갔다. 원숭이가 철망을 잡고 왔다 갔다 하는데 거시기가 발딱 섰다. 발정기가 되었나보다. 이런 원숭이는 처음 보는지라 우리가

얘가 왜 이러지?” 하니 회장님 왈 여자들이 죽 서서 보고 있으니 그렇단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작은 5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악마의 협곡이 있는 인디언 마을 카박으로 갔다. 가는 도중 세계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엔젤 폭포를 보았다. 과연 천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위경관도 폭포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카박은 비행기 활주로가 비포장이다. 비행기가 내릴 때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요동을 친다. 내려보니 주변 경관은 기막혀 입이 딱 벌어진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여기 저기 사진 찍느라 바쁘다. 인디안 마을은 마치 우리나라 민속마을처럼 새로 지어 조금 생경한 느낌이다.

  커다란 홀이 있는 집으로 들어가 간식을 먹고 걸어서 산으로 들어갔다. 세계에서 가장 좁은 협곡인 인챈티드 밸리(enchanted valley)로 갔다. 인챈티드 밸리는 말 그대로 마술에 걸린 듯 황홀하고 매혹적인 계곡이다.

  어찌나 좁고 험한지 길이 없다. 물에 누워 바위에 매어 놓은 밧줄을 잡아당기며 전진해야 한다. 원장님과 정원식님, 여희씨는 백조처럼 우아하게 수영하며 올라간다. 발만 안 닿으면 온몸이 경직되는 나는 밧줄을 잡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바들바들 떨면서 올라갔다. 수영을 못하는 김사장님도 두 눈을 질끈 감고, 다른 사람들 표현을 빌자면 물방개처럼 온몸을 잔뜩 웅크리고 사색이 되어 다다다닥 건넜다는 것이다. 최사장님은 저녁 식사 때 그렇게 공포에 질려서도 책임감 때문에 올라간 김사장님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한 명 한 명 건널 때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훈수들을 두는 바람에 시간이 엄청 걸렸다. 한참 네 발로 기다보니 갑자기 앞이 넓어지며 신천지가 전개 된다. 천길? 아니 백길 낭떠러지에서 천둥 같은 소리를 내려 물이 쏟아진다. 하늘을 바라보니 작은 구멍이 뚫린 듯하다. 하늘에 뚫린 구멍에서 물이 쏟아진다. 가장 자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다이아몬드가 떨어지는 듯도 하고 물방울로 짠 발을 쳐 놓은 듯도 하다.

  여자의 좁은 질 속을 통과해 자궁에 도달한 정자는 이런 느낌일까? 좁디좁은 협곡 속에 들어있는 작은 호수는 여자의 자궁 같이 편안하고 안온하다. 폭포를 배경으로 이 폼 저 폼으로 사진을 찍다가 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왔다. 돌이 어찌나 미끄러운지 내려올 때도 엉금엉금 게걸음이다. 계곡 속에는 햇빛이 들지 않으니 온몸이 얼어붙는 듯하다. 앞서 내려오는 최사장님도 비 맞은 개 떨 듯 떨고 있다협곡을 지나 햇볕이 쬐는 곳이 이르니 몸이 조금 녹는다. 다시 들판을 지나 인디언 마을에 도착하니 바비큐 치킨이 기다린다. ‘라도 잡아먹을 기세로 꾸역꾸역 쑤셔 넣고 밖으로 나가니 여자들이 속옷을 말린다고 풀밭에 엎드려 있다. 엉덩이를 쳐들고 엎어져 있는 모습이 개구리가 엎드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알라신에게 절하는 것 같기도 하다.

  대충 말린 후 다시 경비행기를 타고 출발하는데 갑자기 김사장님 쪽 문이 열린다. 땅에서 떠오르기 전에 열렸기 망정이지 하늘에서 고공 다이빙 할 뻔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끝없는 정글이 이어진다. 저 속에서 꽃 한 송이 피고지면 어느 누가 알까? 물 위에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물방울 같은 게 우리 인생이 아닐까?

  와쿠 롯지에 도착하니 짐이 와 있다. 무슨 일이 닥치건 최선을 다하고 될 때까지 노력하는 김사장님이 존경스럽다.

 

환전하는 경찰들 ( 327)

  아침에 일어나 폭포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싶어 밖으로 나갔다. 구름이 끼어 일출은 보이지 못했지만 열심히 운동하는 정원식님이 보인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이유를 알겠다.

  옆에서 어리버리한 폼으로 따라 하고 있는데 원장님이 나온다. 원장님도 스트레칭을 하더니 태극권으로 기를 모은다. 이번에는 원장님을 따라 하는데 갑자기 허벅지를 탁 친다. 이것도 운동인 줄 알고 따라 했더니 모기 잡는 거였다.

  식사 후 경비행기를 타고 푸에르토 오르다즈 공항에 내리니 웬 여자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우리와 같은 경비행기를 타고 온 베네주웰라 여자다. 이 여자는 21살인데 변호사라고 한다. 그 후로도 우리에게 호의를 보이며 우리의 통역사 역할까지 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이렇게 옷깃을 맞대며 사진 찍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보통 인연은 아니다. 무한대의 시간 중에 같은 시간에 지구에 나타난 것도 인연이고 무한대의 우주 공간에서 같은 지점에 서 있다는 것도 크나큰 인연이다.

  다시 비행기를 타고 카라카스 공항에 내리니 공항세 추가분을 내야한단다. 그게 뭔 소린가 했더니 3일 동안 환율이 올라 돈을 더 내야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달러로 내면 40불을 내야하고 베네주웰라 돈으로 내면 33볼리바르만 내면 된다고 한다. 마중 나온 루드비히와 김사장이 밖으로 나가 경찰에게 환전하여 들어왔다. 경제가 불안정하고 환율이 수시로 바뀌니 암달러상이 판을 치는데 여기에 경찰까지 합세한다. 환전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재미로 공항 근처에는 환전하라고 따라 다니는 경찰이 부지기수다. 이러니 어찌 치안이 제대로 잡히겠는가?

  출국 수속도 어찌나 느린지 길이 한 없이 길다. 그 길을 다 빠져 나오는데 3시간이 걸렸다. 이 지경이니 곳곳에서 새치기 얌체족들이 판을 친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출국하고 비행기에 오르니 사지에 힘이 쪽 빠진다.

  페루 리마 공항에 내리니 사방은 캄캄한데 스모그까지 심해 숨을 쉴 수가 없다. 호텔까지 가는 동안 목과 폐까지 아프다. 3일간 호텔에 맡겨두었던 짐을 찾아 방으로 올라갔다.

 

꿀 맛사지 ( 328)

  아침에 산책하려고 방의 안내 팜플렛에 있는 산책코스를 찾아 골프장으로 가니 주위에 어찌나 매연이 심한지 도저히 걸을 수가 없다.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와 수영장으로 갔다. 혼자서 온갖 똥 폼 잡으며 수영을 하는데 직원이 와서 몇 호실이냐고 묻는다. 방 호수를 말하니 미스 리냐고 묻는다. 아주 이름까지 외우고 다니나보다. 사우나장으로 가니 양숙씨는 런닝 머신에서 열심히 뛰고 있다.

스파에 들어가 이것저것 누르니 공기가 나온다. 욕조 안에 누워 발 맛사지, 등 맛사지를 하고 방에 와 꿀 맛사지까지 했다. 꿀 맛사지는 연희씨가 가르쳐줘 식당에서 가져온 꿀로 얼굴에 발랐다. 난생 처음 꿀맛을 본 내 얼굴이 엄청 감동 먹었을꺼다.

  침대에 누워 TV를 켜니 일기예보가 나온다. 서울의 기온도 나오고 KBS 제공 뉴스도 나온다. CNN 뉴스에 한국도 등장하는 걸 보니 어쩐지 어깨가 으쓱으쓱 해진다. 심심하여 탁자에 있는 안내문을 읽어보니 10시에서 오후 5시까지 공사를 하는데 소음이 나도 이해해 달라고 일일이 이름을 써서 양해를 구했다. 양숙씨에게 주는 안내문도 따로 있다. 과연 일류 호텔은 다르구나 싶다.

  커피를 내려 마시며 창밖을 보니 일하는 사람들 모습이 보인다. 누구는 땡볕에서 땅 파며 일하고 누구는 편안한 방에서 커피 마시니 이래도 되는가 싶다. 저 사람들은 나를 위해 저렇게 수고하는데 나는 저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평생 주둥이만 놀리고 밥만 축내고 살아온 내가 부끄럽다.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너는 평생 세상에서 뭐하다 왔느냐고 물으면

잘 먹고 잘 놀다 왔슈.” 이 말 밖에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체크 아웃 하려고 로비에 왔더니 호텔 직원이 임명옥씨를 찾는다. 임명옥씨는

나 아무 것도 건드린 것 없는데.” 하며 긴장하고 간다.

가보니 무얼 먹었다는 게 아니고 생일 축하 한단다. 여권에 생년월일이 있어 축하하는 것이다. 정말 손님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감동적이다. 작은 선물 꾸러미를 가져와 풀어보라고 하니 초콜릿이 여러 개 들었다. 나누어 주기에 나도 하나 얻어먹었다.

  오랜만에 노다지라는 한식당에 가서 포식을 하고 아르마스 광장으로 갔다. 아르마스는 영어로 ARMS 즉 무기라는 뜻이니 무기고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대성당이 있는 자리는 피라밋이 있었고, 대통령궁이 있는 자리는 사제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 광장에 여학생들이 지나기에 여희씨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니 기뻐하며 자기들도 핸드폰을 꺼내 찍는다.

  신시가지인 미라플로레스로 이동하여 태평양도 바라보고 쇼핑도 했다. 6년 전에 왔을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그때는 눈부신 햇빛에 푸른 바닷물이 넘실댔는데 오늘은 안개가 가득해 아련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두 시간을 주었지만 시간이 남아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에 과자 하나 달랑 꽂아 주었는데 뒤에 온 사람은 멋진 장식을 얹어준다. 우리가 왜 우리는 안 해 주냐고 툴 툴 대자 주인이 자기 직원을 목 잘라야겠다고 목에 손을 대고 자르는 시늉을 한다.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설탕을 녹여 만든 멋진 장식을 해다 준다. 나비 같기도 하고 벌 같기도 하고 하여튼 기막힌 예술작품이다. 우리가 탄성을 지르자 또 기다리라더니 이번에는 초콜릿으로 또 멋진 장식품을 만들어준다.

  이 주인 아저씨는 한국말도 잘 해서 감사합니다. 건배!” 하더니 아디오스가 한국말로 뭐냐고 한다. ‘안녕히 계세요라고 했더니 잘 따라하지 못한다. 그냥 안녕~’ 이라고 하자 열심히 연습한다. 한국말을 배우려 노력하는 모습이 고맙다.

  상윤씨는 두 시간도 모자라 시간이 다 되어 허둥지둥 오는 바람에 아이스크림도 못 먹었다. 쇼핑을 좋아하는 상윤씨는 상점에만 오면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물건들 구경하는 게 그렇게도 재미있단다. 나는 쇼핑하라면 머리 골치가 딱딱 아프고 종아리가 아파 걸어 다니기도 힘든데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나 모르겠다. 여기서 상윤씨는 쇼핑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다시 노다지 식당에 와서 저녁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갔다. LAN 항공사 직원이 어찌나 서툴고 버버거리는지 시간이 한 없이 걸린다. 급기야 양숙씨 짐에 태그도 안 붙이고 컨베이어 벨트에 실어버렸다. 다시 짐을 찾아오느라 한참을 기다렸다. 가져온 것을 보니 내 짐에 양숙씨 태그를 붙이고 내 태그는 그냥 남아있다. 할 수 없이 양숙씨 짐에 내 태그를 붙여 다시 실었다.

  공항 직원들은 친절해서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를 연발한다. 안으로 들어가 대기실 벤치에 누워 보딩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멀쩡한 집 놔두고 노숙자 됐다.

 

17( 329)

  새벽 1시가 넘어 출발한 비행기가 5시 반쯤 칠레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했다. 칠레는 농업국이라 검역이 철저하다고 하더니 직원이 미리 나와서 농산물은 안 된다고 다 버리라고 한다. 우리는 짐을 모두 풀어

이건 되냐? 이건 어떠냐?” 일일이 물어 버리라는 건 다 버렸다. 양숙씨는 집에서 말려온 사과, 대추, 바나나 등을 모두 뺏기고 나는 호두 한 봉지를 뺏겼다. 모두들 간식으로 가져온 것을 다 버리고 엑스레이 투시기로 짐을 통과시켰다.

  다른 사람은 잘 통과했는데 상윤씨와 양숙씨가 걸렸다. 무엇 때문인가 했더니 꿀이 있단다. 나도 꿀이 두 개나 있고 정원식님도 있었는데 요행히 통과했다. 상윤씨는 끌려가다가 다시 오고 양숙씨는 김사장님과 사무실로 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일단 걸리면 만 불이니 1인당 얼마씩 내야하나 계산을 하며 하염없이 기다렸다.

  허리가 부러지도록 기다리는데 드디어 두 사람이 온다. 어떻게 됐느냐고 우루루 좇아가니 잘 처리되었단다. 양숙씨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눈물이 글썽글썽하다. 그걸 보니 나도 눈물이 난다.

  김사장님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일을 해결한다. 인솔자도 되고 통역사도 된다. 그 밖에도 찍사, 요리사, 포터, 가이드, 해결사 12, 아니 17역을 거뜬히 해낸다. 아무튼 볼수록 대단한 사람이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공항 청사에서 햄버거로 아침을 먹었다. 식사 후 국내선으로 갈아타려고 엑스레이 투시기 앞으로 가니 또 가슴이 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투시기만 나오면 심장이 쪼그라드는 듯하다. 이러다 꿈에서도 엑스레이 투시기 나타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요즘 배 속이 시원찮아 하루에도 서너 번씩 화장실에 드나들었더니 똥꼬가 부풀어 원숭이 똥구멍이 돼 버렸다. 여희씨에게 얘기했더니 원장님 처방으로 지은 약이라고 자기 것을 나눠준다. 남미에만 오면 남미가 나를 미워하는지 배탈이 난다. 6년 전에 왔을 때도 1주일 내내 설사해 피골이 상접하도록 고생했다.

  산티아고에서 푸에르트몬트까지 가는 동안에는 왼쪽 안데스 산맥의 설산이 끝없이 나타난다. 백록담 모양으로 움푹 파인 분화구에 하얀 눈이 가득하다. 어떤 산은 여자의 대음순, 소음순을 닮았고 어떤 산은 골골이 흘러내린 눈이 하얀 실핏줄을 보는 듯하다. 자연은 한 마디 말없이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한다. 단 내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하지 않고 자연을 보고 있을 때만 말을 걸어온다.

안데스와 대화하고 있는 사이 어느 덧 푸에르트몬트 공항에 착륙한다. 푸에르트몬트에서는 기내에서 그냥 앉아 대기했다. 그런데 양숙씨가 어느 결에 밖으로 나갔다. 양숙씨는 오늘 일진이 안 좋은가 계속 트러블 메이커가 됐다. 김사장님이 또 좇아 나가 데려왔다. 사람들이 올해 삼재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다시 이륙하여 푼타아레나스로 향했다. 아레나는 모래라는 뜻이다. 모래를 푸는지 뭔지 아무튼 지명이 점점 많이 나오니까 머리에서 쥐가 나려한다. 기내에서 승무원이 무얼 먹겠냐고 묻지도 않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내가 영어도 스페인어도 모르는 일자무식 할머니로 보이나보다. 명수씨는 영어 하냐? 스페인어 하냐? 묻기에 영어라고 했다는데.

  문득 몇 년 전 지하철에서 학원 광고지를 나누어 주던 생각이 난다. 일부 사람만 골라서 주기에 뭔가 했더니 한글반에 들어오라는 광고지다. 내가 한글도 모르는 할머니로 보였나보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왼쪽에 세 자리, 오른쪽에 세 자리 차지하고 왔다 갔다 하며 바깥도 내다보고 라푼젤이란 영화도 보고 하니 벌써 푼타아레나스 공항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과연 평평한 모래벌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공항을 나오니 호아킨이란 가이드가 맞는다. 시골 아저씨 같이 맘씨 좋게 생겼다. 호아킨은 엘살바도르 사람인데 이곳 여자와 결혼하여 여기서 산단다. 여기서 푸에르토나탈레스까지 버스로 3시간 정도 간다. 가는 길에는 양도 보이고 염소도 보이고 플라밍고도 보인다. 플라밍고는 철새라서 여기서 살다가 겨울이 오면 북쪽으로 올라간다고 한다. 여기는 남반구나 북쪽으로 갈수록 따뜻하다.

가는 길에 가끔씩 소나기가 내리더니 푸에르토나탈레스 근처에 다다르자 영롱한 무지개가 땅으로 쏟아진다. 코스타 아우스트랄리스 호텔에 도착하니 전경이 어찌나 멋진지 다들 함성을 지른다. 호수 너머에 흰 설산이 우뚝 서있고 오늘의 태양이 서서히 호수를 향해 내려간다. 정말 이렇게 전망 좋은 방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고 싶다.

  방에 짐을 놓고 시내 구경을 했다. 조그맣고 예쁜 가게들이 즐비하다. 여기서도 상윤씨는 물 만난 고기 마냥 생기가 돈다. 상윤씨는 계속 상점을 섭렵하고 우린 장엄한 일몰을 본 후 방으로 돌아왔다.

 

펭귄 마냥 뒤뚱 뒤뚱 ( 330)

  오늘 오전에는 소형 배를 타고 울티마 에스페란만을 거슬러 올라가고, 오후에는 고무(조디악)보트를 타고 세라노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하도 춥다고 해서 옷을 있는 대로 다 껴입었더니 걷기도 힘들다.

  소형배를 타니 승무원 브라드가 앞에 타라고 손짓한다. 정원식님이 웩 웩 토하는 시늉을 하며 싫다고 하니 그대로 둔다. 브라드는 어찌나 잘 생겼는지 영화배우 같다. 사람들이 부르스리 닮았다고 하니 자기 애인도 그렇게 말한다고 농담을 한다.

  가끔씩 비가 뿌리더니 쌍무지개가 떴다. 그 빛이 어찌나 강한지 물로 내리꽂히는 듯하다. 물에도 무지개가 비친다. 폭포 위에서는 콘돌이 유유히 나르고 바위틈에서는 바다표범 가족이 놀고 있다. 물 위에서 소용돌이가 이니 물보라가 휘돌아 올라간다. 도는 방향을 자세히 보니 시계와 같은 방향이다. 지구의 자전 때문에 북반구에서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남반구에서는 시계와 같은 방향으로 돈다더니 정말 그렇다.

  발마세다 빙하는 푸른빛 얼음이 물로 쏟아져 내려오는 형상이다. 발마세다 인지 발마사지인지 이름도 희한하다.

  배에서 내려 오솔길을 걸어 세라노 빙하쪽으로 갔다. 여기서 다시 더 작은 고무보트를 타고 세라노 빙하 가까이 접근하여 빙하를 보았다. 우의를 뒤집어쓰고 보트를 타고 가려니 나라 잃고 바다에서 헤매는 보트피플 같다.

  세라노 빙하를 보고 까페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추위에 덜덜 떨며 점심 식사를 한 후 주황색 두툼한 우의를 껴입으니 모두들 펭귄처럼 뒤뚱거린다. 뚱뗑이 펭귄 집단이 되어 다시 고무보트를 타고 세라노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비는 내리고 점심을 먹고 가만히 앉았으려니 졸음이 솔 솔 온다. 다들 꿈나라로 막 진입하려는 순간 원장님이 노래를 부르자고 제의한다. 친구, 만남, 7080 노래와 동요까지 다 부르고 나자 더 부를 노래가 없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노래를 하며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다 말하자 마지막에 보트를 운전하던 사공이 왜 자기는 안 물어 보냐고 한다. 그를 향해 또 당신은 누구냐고 하니 자기 이름을 말한다.

  이렇게 노래를 부르며 즐기다보니 어느 덧 비도 그치고 하늘이 밝아온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에 있는 라고 그레이 호텔에 도착하니 사방에 어둠이 깔린다. 이 호텔도 전망이 환상이다. 호수 너머에 빙하가 보이고 파란 얼음 덩어리가 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3년 전 여기 머물며 남극 대륙에 갔었다고 한다.

  저녁 식사 때 박명수씨가 오늘 자기 남편이 이런 사람들 만나게 해줘 고맙다고 말하면서 포옹을 했다고 하니 양숙씨가 감동 먹었다. 눈물까지 글썽인다. 사실 이런 마음먹기도 힘들지만 이런 얘기하기는 더 어려운 일이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것은 죄악이다 ( 331)

  라고 그레이 호텔방 안내문을 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쓰여 있다. 또한 비행기를 타고 여기 오는 것은 죄악이라고 한다. 사실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거북이가 씹두 않고 먹는 것과 같다. 여기 비하면 버스 타고 여행하는 것은 음식을 씹어 먹는 것과 같고, 걸어서 여행하는 것은 혀끝으로 핥아 야금야금 녹여 먹는 것과 같다.

  오전에 파이네 국립공원의 페오에 호수로 갔다. 파이네는 BLUE 즉 푸르다는 뜻이고 토레스는 TOWER 즉 탑이란 소리다. 델은 OF 푸르름의 탑이다. 이름에 걸맞게 호수 색깔이 오묘한 푸른빛이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푸른 심연은 푸른 눈동자를 연상케 한다. 호수 너머에는 쇠뿔모양의 봉우리 세 개가 있다.

  이런 기막힌 아름다움에 접할 때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아름다운 자연에 태어나 이 좋은 공기 마시며, 시원한 물 마시면 됐지 더 이상 뭘 바라나 싶다.

  페오에 호수 안에는 동화 속처럼 작고 예쁜 섬 하나가 있고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이 섬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돌아오는 길에 섬에 가기로 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그란데 폭포로 갔다. 그란데 폭포 입구에는 사람이 입김을 불어 내뿜는 그림이 있고 바람의 문이란 글씨가 쓰여 있다. 이 말 그대로 안쪽으로 갈수록 바람이 거세게 불어온다. 폭포 위에 가니 몸을 가누기 힘들다. 몸이 흔들리니 사진 찍기도 힘들다. 난간 위에서 사진 찍는 김사장님이 바람에 중심을 못 잡는다. 두 사람이 한 다리씩 붙잡고서야 겨우 사진을 찍었다.

바람에 쫓기듯 입구로 다시 나오는데 한 쌍의 남녀가 우릴 보고

한국 사람이세요?” 한다. 그렇다고 하니 자기들도 한국 사람인데 남미 북쪽 끝에서부터 여기까지 6개월 동안 여행 중이라고 한다. 산더미 같은 배낭을 지고 지구촌 곳곳을 누비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자랑스럽다.

  그란데폭포를 떠나 다시 페오에호수로 왔다. 페오에는 HIDE 즉 숨는다는 뜻이다. 숨겨진 비경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나보다. 다리를 건너 그림 같은 카페에 들어가 차를 시켰다.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는데 이집은 장맛 보다 뚝배기다. 집모양은 그럴듯한데 차 맛은 밍밍한 게 ~ 아니올시다.’ 이다.

  차를 마시다가 양숙씨가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라고 하니 김사장님이 축하한다고 사진을 찍어 즉석에서 가족에게 보내준다. 사람들이 호아킨하고 찍어서 남편에게 보내라고 했더니 호아킨이 안 된단다. 문제가 생긴단다. 쯧 쯧 순진하기는.

  오후에는 배를 타고 그레이 빙하를 보러 갔다. 가이드 얘기가 어제 비가 와서 빙하가 새로 떨어졌단다. 우리보고 운이 좋다고 한다. 전화위복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어제 고무보트 타고 올 때는 재수 없이 비 온다고 생각했는데 그 덕에 더 멋진 빙하 보게 생겼다.

  빙하가 푸른색을 띠는 이유는 다른 색은 다 흡수하고 푸른색만 반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색이 어찌나 투명한 푸른색인지 볼수록 빨려 들어갈 것 같다. 블랙홀은 중력이 너무 강해 모든 입자가 빨려 들어간다. 빛도 다시 나오지 못해 검은 빛을 띤다고 하는데 이 빙하도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것 같다.

  코발트빛이라 해야 할지, 비취빛이라 해야 할지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하기 힘들다. 보면 볼수록 가슴이 벅차 가슴이 먹먹해진다. 인간의 말과 문자는 너무도 부족해서 표현하는 순간 실제와 다른 엉뚱한 것이 된다. 그때마다 허탈감을 느낀다. 인간의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으니 직접 가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별 뜨고 달 뜨고 해 뜨다 ( 41)

  캄캄한 새벽에 도시락을 들고 버스에 올랐다. 칠레에서 아르헨티나로 넘어가는 날이다. 한참 졸다 깼더니 호수 위에 그믐달이 있고 그 위에 타는 듯한 별이 있다. 혼자 보기 아까워 앞에서 자는 명수씨를 깨웠다. 별의 크기와 밝기로 보아 금성인 듯하다. 금성이 뜬 후 그믐달이 떴나 보다.

어둠 속에서 또 비몽사몽 간에 졸고 있는데 하늘이 시뻘겋게 물들어 온다. 차에서 내려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고 노상방뇨를 한 후 국경으로 달렸다. 칠레 국경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고 출국심사를 받은 후 아르헨티나 국경으로 갔다.

  출입국사무소로 들어가려는데 웬 개 한 마리가 나온다. 마약 탐지견이란다. 사람마다 열심히 냄새를 맡더니 아무 이상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쓰레기통으로 가서 음식 쓰레기를 뒤진다. 입국 심사를 마친 후 짐을 옮겨 싣고 칼라파테로 달렸다.

  칼라파테의 코스텐 아이케 호텔에 도착하니 저녁때가 다 됐다. 방에 짐을 풀고 칼라파테 발코니로 향했다. 트럭을 개조한 사파리용 버스라 아주 튼튼하게 생겼다. 체인을 감고 산길을 마구 달린다. 눈길도 진흙길도 거침이 없다. 가이드 루이스는 왕 수다쟁이다. “감사합니다. 아리가또, 쎄쎄.” 마구 떠들어 댄다. 급경사 내리막길이 나오면 자기가 먼저

어머머머, 어머머머.” 하며 엄살을 부린다.

  차를 타고 달리며 광활한 고원지대를 보니 지구가 아닌 어떤 혹성에 온 듯하다. 텅빈 벌판 같아도 토끼도 나타나고 하늘 높이 콘돌도 난다.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칼라파테와 아르헨티노 호수는 평화 그 자체다. 머릿속이 텅 비는 듯하다. 지구가 처음 탄생한 순간으로 되돌아 간 듯한 원시의 풍경에 마음이 한 없이 순수해진다.

  정상까지 올라가니 눈밭에 기암괴석이 서 있다. 악어바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고 나니 벌써 땅거미가 몰려온다. 아래쪽 능선 상에도 기암괴석이 줄줄이 늘어섰다. 터키의 카파도키아를 닮았다. 바위 옆에는 텐트 두 동이 쳐 있고 그곳으로 내려가는 회원들의 모습이 개미행렬 같다.

  부지런히 따라 내려가 텐트 안으로 들어가니 빵과 차를 준다. 뜨거운 차를 마시니 추위에 오그라졌던 몸이 확 풀린다.

  다시 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웬 짐승이 차 앞에서 길을 건너간다. 웬 짐승인가 내다보는데 고약한 냄새가 들어온다. 루이스가 무슨 동물이냐고 하기에

스컹크했더니 맞다고 한다. 캐나다에 갔을 때 차에 깔린 스컹크를 보았는데 몇 백 미터 밖에서부터 무지 냄새가 났었다.

  칼라파테의 야경을 보며 산을 내려와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너나 잘 해라 ( 42)

  아침에 화장실에 들어가니 양숙씨가 큰일을 보고 물도 안 내렸다. 7년 동안 같이 여행 다니며 룸메이트 했어도 이런 일은 처음이다. 요즘 피곤해 하더니 제 정신이 아닌가 보다. 아침 식사를 하러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이번에는 화재경보기를 누르려 한다. 정말 걱정이 된다.

  식당에 가니 여희씨가 식사를 하고 있다. 여희씨는 언제 봐도 여유가 있고 생활의 지혜가 많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어라. 피곤하면 꿀 차를 먹어라. 저녁에는 꿀 마사지를 해라.” 하고 일러준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어찌나 야무진지 항상 보고 배운다.

양숙씨가 식사를 못 하자 김사장님은 몸이 달아 죽 먹을래? 햇반 먹을래? 한다.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하며 커피도 사절이다. 아무래도 단단히 고장 난 것 같다.

  오늘은 모레노 빙하인지 모래내 빙하인지 보러 가는 날이다. 버스를 타고 일부러 돌아서 아르헨티노 호수를 보며 갔다. 호수에는 플라밍고, 흰 백조, 블랙스완, 오리 등이 여유 있는 아침을 맞고 있다. 가이드 후안이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일부러 돌아가자고 했단다. 모두들 탄성을 지르며 생긴 것도 예쁜데 하는 짓도 예쁘다고 했더니 기분이 좋아 으쓱으쓱하며 자기가 MOVIE STAR(영화배우)라고 방방 뛴다. 요새 젊은이들은 솔직해서 좋다.

  칼라파테에는 왜 이렇게 길거리에 개가 많으냐고 후안에게 물으니 주인들이 낮에는 일부러 밖으로 내보낸단다. 한 마디로 ‘FREE TIME(자유시간)’이라고 한다. 칼라파테는 완전 개판이다. 칼파파테는 식물이름인데 관목으로서 그 뿌리로 배를 수선하는데 쓰고, 열매는 아이스크림 만들 때 쓴다고 한다.   유럽 사람들이 와서 칼라파테 나무가 많은 걸 보고 도시이름도 칼라파테라고 했단다.  

  가다가 갑자기 버스가 선다. 웬일인가 하며 앞을 보니 독수리가 아침식사 중이다. 무엇을 잡았는지 뻘건 고기를 발톱으로 잔뜩 움켜쥐고 있다. 작은 동물들이 찻길을 건너갈 때 하늘에서 갑자기 내려와 사냥을 한단다. 옆에는 독수리가 남긴 것을 먹으려고 다른 새들이 기다리고 있다. 모든 사회에는 어쩔 수 없이 서열이 생겨나나보다.

  가는 동안 후안이 국립공원에서는 쓰레기 버리면 안 된다 담배 피면 안 된다 하며 주의 사항을 한참 늘어놓는다. 우리는 담배 피는 사람 없으니 너나 잘하라고 하니까 기사도 피운다고 손가락으로 기사를 가리킨다. 멋쩍으니까 아주 물귀신 작전으로 나간다.

  선착장에 도착해 배를 타고 모레노 빙하를 보았는데 무수한 첨탑이 모여 있는 듯하다. 푸른얼음 기둥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다. 어제의 그레이 빙하는 칼로 도려낸 듯 큼직큼직한 유빙이 많았는데 모레노 빙하는 망치로 박살을 낸 듯 부서진 유빙이 많다. 모레노는 페리토 모레노라는 아르헨티나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그레이 빙하가 녹은 호수 물은 이름 그대로 회색이었는데 모레노 빙하 쪽 호수 물은 맑고 투명한 푸른빛이다. 빙하가 녹은 호수의 물 색깔은 빙하 속에 있는 물질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그레이 빙하는 석회질이 많은 모양이다.

  모레노 빙하를 유람선을 타고 다 본 후 다시 선착장으로 와 버스를 타고 육지 전망대 쪽으로 이동했다. 버스 안에서 가져간 햇반과 볶은 김치로 점심식사를 했다. 후안이 점심 밀 박스를 가져 왔지만 햄버거는 아무도 안 먹는다.

  모레노 전망대는 작년에 새로 보수하여 빙하를 육지에서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끝없는 빙원이 장관이다. 산 사이 계곡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빙하가 말 그대로 얼음 강이다. 중국에는 돌로 된 숲 즉 석림이 있는데 여기는 얼음숲 즉 빙림이다. 유람선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이토록 거대한 자연 앞에 서면 인간의 크기가 마냥 작아진다. 수백만 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연이 우릴 보면 어떤 모습일까?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하루살이 같은 존재가 아닐까?

  곳곳에서 얼음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때로는 천둥소리가, 때로는 따발총 소리가 난다. 빙하가 무너질 때마다 곳곳에서 탄성을 지른다. 곧 떨어질 것 같은 빙하 앞에서 떨어지길 기다리는 데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다 같이 함성을 지르면 떨어질 듯도 하다. 대포를 쏘아 왕창 무너지게 하고도 싶다.

  빙하 얼음 속의 검은 줄무늬는 화산재라고 한다. 이것을 조사해 과거의 화산활동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하루 종일 푸른 빙하만 쳐다봤더니 눈이 시리다.

 

현숙이 CNN 뉴스에 나오다? ( 43)

  아침에 식당으로 가니 김사장이 삼각 김밥을 두 개씩 나눠준다. 전기밥솥을 가져와 밤새 김밥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40년 가까이 함께 사는 남편도 밥 한 번 안 해줬는데 황송하게 삼각 김밥이라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

  오늘은 남미 최대의 빙하인 웁살라인지 ~ 쌀라?’ 인지 하는 빙하를 보러간다. 싸기는 뭘 싸는가 모르겠다. 후안에게 우리 호텔이름인 'KOSTEN AIKE'가 뭐냐고 물으니 'coast area' 즉 해안가라는 뜻이라고 한다.

  한참 달리는데 여명이 밝아온다. 검푸른 도화지에 붉은 물감으로 쓱쓱 칠한 수채화 같다. 뭉크의 작품 절규에 나오는 하늘을 연상케 한다. 절규에 나오는 사람의 표정과 하늘색을 보면 멀쩡한 사람도 정신병자 될 것 같다. 그런데 오늘의 아침노을이 꼭 그런 느낌이다.

  일출을 보려니 다들 호선생님 생각이 난다고 한다. 이번에 같이 오려다 사정이 생겨 못 와 모두들 아쉬워했다.

호선생님이 오셨으면 지금 사진 찍느라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을 텐데.’

이번에 같이 왔으면 작품사진 많이 찍었을 텐데.’ 하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버스들이 와 손님을 쏟아낸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아 추위에 덜덜 떨며 30분쯤 기다렸다. 문이 열리자 우르르 배를 향해 몰려간다. 부지런히 걸어 잽싸게 2층으로 올라갔다.

한참 웁살라 빙하를 향해 가는데 여희씨가 부른다. 종합선물 세트 중 마지막 한 개를 보여줄 테니 하늘을 보란다. 가리키는 쪽을 보니 구름이 있는데 오색영롱한 무지개구름이다. 무지개는 여러 번 봤어도 무지개구름은 처음이다. 구름 알갱이가 프리즘 역할을 하여 무지개 색이 나타났나보다.

  웁살라 빙하는 유빙이 너무 많아 배가 접근할 수 없으므로 5~7km 밖에서 봐야한다. 바짝 다가가지 못해 아쉽다. 그래도 기기묘묘한 형상의 투명한 청색 유빙들이 어찌나 환상적인지 얼음조각품을 늘어놓은 것 같다. 피라밋 모양, 초가집 모양의 유빙도 있고, 물개의 머리를 닮은 것과 탑을 쌓아 올린 모양도 있다. 청색유리를 끼운 듯 얇고 투명한 게 있는가 하면 얼음 개선문도 있다. 하늘이 만든 얼음조각 전시회다.

  이렇게 전시회에 온 기분을 만끽하다보니 이번에는 오넬리 빙하가 나타난다. 오넬리 빙하는 얼음 숲이 산에서부터 쏟아져 내려 물에 빠지는 형상이다. 설산을 배경으로 서있는 얼음 기둥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장엄한 모습에 넋이 빠지는 듯하다.

  배 뒤로 가니 사람들이 유빙 건져 올린 것을 들고 사진을 찍는다. 여희씨와 나도 얼음을 핥으며 사진을 찍었다. 얼음조각을 보니 빙하도 인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생로병사를 겪으며 흙으로 돌아가듯 빙하도 생성되고 늙고 쪼개져 유빙이 된 후 녹아서 물로 돌아간다. 푸석푸석해진 빙하를 보면 골다공증 걸린 인간의 뼈를 보는 듯하다.

  선실로 들어와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어제 본 모레노 빙하가 다시 나타난다. 어제 본 면과 다른 쪽 면이다. 빙하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모습들도 재미있다. 서로 떨어져서 찍는 사람, 껴안고 찍는 사람, 어깨동무 하고 찍는 사람, 키스하며 찍는 사람 별별 사람이 다 있다. 나는 평범한 할머니 폼으로 찍고 있는데 웬 남자가 나를 찍는다. 별 싱거운 사람도 다 있다.

  다시 선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아 보니 양숙씨가 오늘은 쌩동쌩동 살아나서 잘 돌아다닌다. 원장님이 준 약을 먹었다더니 약발이 받나보다. 쥐약을 먹였나 마약을 먹였나 몰라도 약효 하나는 끝내준다.

  잠시 졸고 있는데 사람들이

~ 이현숙씨 CNN 뉴스에 나오네!” 한다.

눈을 떠 보니 모니터에 내가 나온다. 아까 나를 찍던 남자가 사진사였나 보다. 이걸 보고 사진 찾으라고 자꾸 보여준다. 나는 정원식님이 내 카메라로 찍어줬으니까 찾지 않았다.

 

칼라파테 가이드 해라 ( 44)

  오늘은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어 칠레 푼타아레나스까지 8시간 이동해야한다. 칼라파테는 8시가 넘어야 해가 뜬다. 저녁에도 해가 늦게 진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브에노스아이레스를 표준시로 했는데 이곳은 한참 서쪽에 있기 때문인가 보다.

  삼 일간 머무르던 칼라파테를 떠나는데 상윤씨가

이 골목 안에는 무슨 호텔이 있고 저 골목 안쪽에는 뭐가 있고.” 하며 설명 한다. 골목골목 어찌나 잘 아는지 사람들이 상윤씨에게 칼라파테 가이드 하라고 놀린다. 삼일 동안 골목을 샅샅이 뒤지더니 다 외었나보다.

  얼마를 달려 아르헨티나 국경에 도착했는데 마약견이 안 보인다. 나가는 사람은 마약을 가지든 말든 관심이 없나보다.

이놈이 너무 똑똑해서 나가는 사람인지 아르헨티나로 들어가는 사람인지 다 아나?” 하고 농담을 하며 출국심사를 받았다.

  아르헨티나를 지나 칠레 쪽으로 오니 호아킨이 마중 나왔다.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듯 반가워 호아킨을 불러댔다. 후안이 우리에게 호아킨이 칠레 가이드 이름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부러운 눈치다.

  후안과 작별을 하고 칠레 버스로 옮겨 탔다. 오랜 만에 고향집에 돌아온 기분이다. 호아킨도 자기 가족이나 되는 듯 우리를 반긴다.

  푸에르토나탈레스에 도착해 호숫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전망이 기막히다. 식사 후 다시 버스를 달려 푼타아레나스로 가면서 마이웨이, 예스터데이 등 우리들이 알만한 노래를 틀어주며 낮잠시간이니 자라고 한다. 순둥이 아기모양 자라면 자고 놀라면 놀고, 오줌 누라고 휴게소에 내려주면 달려가 오줌 눈다.

  칠레는 원주민 부족이름인데 chilly 즉 춥다는 뜻이라고 한다. ‘파타는 큰 발이란 뜻이고 고니아는 땅이라 한다. 마젤란이 여기를 지날 때 인디오들을 보니 발이 무척 커서 큰 발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땅이라고 파타고니아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푼타아레나스에 도착해 마젤란 해협에서 사진을 찍고 호텔로 향했다.

  저녁식사 후 원장님이 복습 설명회를 열었다. 서울서는 예습 설명회를 하더니 이번에는 복습 설명회다. 우리가 출발하여 지금까지 온 길을 자세히 설명해 주니 전체적인 가닥이 잡힌다. 15년 걸려서 만든 작품을 우리는 거북이처럼 씹두 않고 한 입에 삼킨 것 같아 미안하기 짝이 없다.

 

가랑이 찢어질 판 ( 45)

  아침에 식당으로 올라가니 마침 해가 뜬다. 창밖으로 마젤란 해협에서 뜨는 해를 바라보니 감개무량하다. 마젤란 해협은 지리시간에 시험 보려고 외우기나 했지 여기 와서 일출 볼 지 상상도 못 했다.

  식사 후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갈매기와 오리가 바글바글하다. 오리들은 물속에 머리를 처박고 먹이를 찾느라 빵빵한 오리 궁둥이를 하늘로 쳐들고 있다. 호텔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하고 마젤란 공원으로 갔다.

  이 공원에는 마젤란 동상이 있다. 마젤란이 여기 온 지 400년 되는 해인 1920년에 만든 동상이다. 마젤란의 발에 입을 맞추면 칠레에 다시 온다는 전설이 있다고 너도 나도 발에 입을 맞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입을 맞췄는지 마젤란 발이 백옥같이 깨끗하고 반질반질 윤이 난다. 이 전설이 꼭 효력 발휘를 했으면 좋겠다.

  다음은 지구촌 이정표를 보러 갔다. 전봇대에 세계 주요 도시의 방향과 거기까지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서울도 있고 평창도 있어 기분이 좋다. 원장님은 서울이 북경보다 작다고 3년 후에 다시 올 테니 그때까지 서울을 더 크게 써서 붙여달라고 호아킨에게 부탁한다.

  원장님은 호아킨에게 남극 가는 방법을 물으며 벌써 남극 갈 준비를 시작한다. 나도 가고 싶지만 돈이 얼마나 많이 들지 걱정이 앞선다. 뱁새가 황새 좇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는데 내가 그 짝 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이제 모든 관광이 끝나고 집에 갈 일만 남았다. 푼타아레나스에서 국내선을 타고 푸에르토몬트까지 간 후 다시 산티아고까지 갔다. 여기서 국제선을 타고 리마로 간 다음 또 국제선을 타고 기내박을 하며 미국 LA로 갔다.

 

수족관 속 물고기 신세 ( 46)

  40시간 동안 비행기 아니면 공항에 갇혀 있었더니 수족관 속 물고기가 된 기분이다. 물탱크 속에 갇혀 산소 공급 받으며 횟집으로 실려 가는 물고기 신세나 비행기에 갇혀 환풍기로 산소 공급 받으며 이동하는 우리 신세나 대동소이하다.

  새벽 일곱 시나 되어 LA공항에 내리니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뻐근하다. 오른손 찍고 왼손 찍고 눈알 찍으며 입국심사를 받는데 이번에는 최사장님이 걸렸다. 심사대 옆에 한참 서 있더니 사무실로 끌려간다. 우리는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하염없이 기다렸다.

  우리끼리 나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는데 저쪽에서 김사장님과 같이 온다. 무슨 일이냐고 하니 여권 사진에는 점이 없는데 왜 얼굴에 점이 있느냐고 통과를 안 시켰단다. 이 사진은 언제 찍은 거냐? 돈은 얼마나 있냐? 별 걸 다 물으면서 질 질 끌다가 통과시켜 주더란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밖으로 나오니 왕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한국서 보던 꽃을 보니 마냥 반갑다. 힐튼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호텔에 들어가 두 다리 쭉 뻗고 누우니 이제야 살 것 같다.

  오전에는 휴식이라고 하여 정원식님과 수영을 했다. 한참 놀고 있는데 여희씨가 온다. 셋이서 신나게 놀다가 수영장 옆에 있는 스파에 들어가 몸을 덥힌 후 방으로 갔다.

  점심은 오랜만에 조선갈비집에 가 갈비구이와 냉면으로 포식을 했다. 어찌나 맛있는지 열둘이 먹다가 열한 명 죽어도 모르겠다. 오후에는 할리우드 거리를 보고 아웃도어 매장에 가서 쇼핑을 했다. 할리우드 거리는 십 여 년 전이나 별 다름이 없다.

  저녁은 레돈도 해변에 가서 일몰을 보고 해변 횟집에서 랍스타를 먹었다. 랍스타가 어찌나 큰지 한상 가득하다. 저녁 식사비가 100만 원 정도인데 김사장과 이 회장님이 반씩 낸다고 하여 망치로 두드려 깨 가며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아무래도 서울 가면 체중 엄청 늘었을 것 같다.

  먹긴 잘 먹었는데 호텔방에 오니 배가 쌀쌀 아프다. 화장실에 가서 물 설사를 연거푸 세 번이나 했다. 아무래도 너무 욕심껏 먹었나보다. 밤에 자다가 또 두 번이나 쏟고 나니 이러다 나만 집에 못 가는 거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원장님도 없는데 아프니 더 걱정이 된다. T.N.T.에는 현직 의사도 있고 전직 간호사도 있어 언제 어딜 가나 안심이 된다. 특별히 보살펴주지 않아도 곁에 있기만 해도 든든하고 어쩐지 죽을 병 걸려도 안 죽을 것처럼 마음이 턱~ 놓인다.

 

두 손 들고 스캔 ( 47)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여희씨에게 설사약을 얻으려고 전화를 하니 땡큐하고 끊어버린다. 모닝콜인줄 알았나보다. 방으로 찾아가 약을 얻어 식당에 가서 음식을 조금 먹고 약을 먹었다.

원장님은 엊저녁에 고모네 집으로 가고 여희씨와 박명수씨 부부는 여기서 며칠 더 있겠다고 하여 긴 이별을 했다. 거대한 짐들을 이끌고 공항으로 갔다. 또 긴장되는 시간이다. 출국하기도 어찌나 힘 드는지 몸의 모든 것을 꺼내라고 한다. 심지어 휴지도 안 되고 목도리도 안 된다.

  이렇게 알몸처럼 깨끗이 비운 후 널찍한 엑스레이 투시기 앞에서 두 손을 들고 한참 서 있어야한다. 온몸 구석구석 샅샅이 스캔을 하는 것 같다. 다들 잘 나왔는데 이번에는 상윤씨가 걸렸다. 한쪽으로 데려가더니 손에 무슨 약을 바르고 한참 본다. 다행히 별 이상이 없는지 곧 보내준다. 무슨 약을 발랐느냐고 하니 자기도 모르겠단다. 손에 무슨 변화가 있었냐고 하니 아무 변화도 없었단다.

아무튼 엄청 어려운 입학시험이라도 치룬 듯 피곤하다. 비행기에 오르니 이제 진짜 가나보다 싶다.

 

벼슬하고 오냐? ( 48)

  원장님이 지어준 약이 좋기는 좋은가보다. 설사 한 번 하지 않고 인천까지 잘 왔다. 내릴 때가 가까워 오니 양숙씨가 이번에도 남편이 나오느냐고 한다.

별일 없으면 나오겠지.” 했더니 무슨 벼슬하고 오는 것도 아닌데 매번 나오느냐고 농담을 한다.

짐을 찾으며 양숙씨에게 누가 나왔냐고 물으니 자기도 남편이 나와 있단다. 양숙씨도 벼슬하고 오나보다. 벼슬은 못했어도 장원급제라도 하고 오는 것만큼 힘들었다.

 

  이번여행은 거북이부터 폭포, 빙하 등 진기한 것을 참 많이도 보았다. 마치 명품으로 가득 찬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기분이다. 언제 또 이런 선물세트를 받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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