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1. 1. 25. 제주도 기행문

아~ 네모네! 2012. 10. 21. 15:02

 

 

 

 

 

 

 

 

 

 

 

 

 

사라오름을 사라

 

기간 : 2011125~ 126

                                                    장소 : 제주도 사라오름, 돈내코

한라산은 여러 번 가봤지만 16년 만에 개방 됐다는 사라 오름과 18년 만에 열린 돈내코 코스가 보고 싶어 또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웰 컴 투 제주! ( 125)

새벽 첫 전철을 타고 김포공항에 내리니 오라는 시간보다 30분은 빨리 도착했다. 계단을 오르려니 곽희재님과 한명미님이 보인다. 같은 전철을 탔는데 칸이 달랐나보다.

2층에 올라가 식당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떡집 앞으로 가니 회원들이 많이 모여 있다. 대장님이 도착하여 스틱을 모아 화물로 부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50분밖에 안 걸리니 잠 잘 틈도 없이 제주공항에 도착한다.

밖으로 나오니 버스기사님이 구의여행사라고 쓴 종이를 들고 있다. 오늘 사라 오름 갈 수 있냐고 물으니 어제까지는 삼 일간 통제였는데 잘 모르겠단다. 일단 식당에 들러 아침 식사를 하고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못 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오늘은 사라 오름 통제가 풀렸단다.

성판악을 향해 가다가 제주에 미리 내려와 있던 양숙씨를 태웠다. 양숙씨는 버스에 오르며

“Welcome to Jeju!" 하며 손을 들고 인사한다. 해외로 오니까 인사도 영어로 줄줄 나온다. 자리에 앉더니 비닐봉투를 들고 다니며 가래떡을 나눠준다. 안순자씨가 안 오니까 새 가래떡 장수가 나타났다.

성판악에 도착하여 아이젠과 스패츠를 차고 전투에 나가는 마음으로 산을 향해 돌진했다. 누가 잡는 것도 아닌데 수시로 통제를 하니 언제 막아 버릴지 몰라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산으로 들어갈수록 설상가상이 아니고 점입가경이다. 설국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도 하고 동화의 나라로 들어가는 듯도 하다. 정신이 몽롱해지도록 넋을 잃고 걷다보니 사라 오름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왼쪽 길로 접어드니 순백의 상고대와 설화가 가슴 저리도록 아름답다. 쪽빛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나무들의 상고대가 눈이 시리도록 빛난다. 하얀 숲을 지나 조금 오르니 갑자기 눈앞이 확 터지면서 넓디넓은 설원이 나타난다. 말로만 듣고 TV에서만 보던 사라 오름이다.

오름이란 기생화산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봉우리들을 말하는데 제주도에는 368개의 오름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라오름은 한라산에 붙어 있는 하나의 기생화산이다. 사라오름에는 분화구에 물이 고인 화구호가 있다.

TV에서 볼 때는 넓은 호수였는데 지금은 얼어서 하얀 설원으로 변했다. 우리는 탄성을 지르며 설원으로 달려갔다. 호수 주위에는 온통 흰 나무들이 빽빽이 늘어서 장관을 이룬다. 서서 찍고, 앉아서 찍고, 엎어져서 찍고 자빠져서 찍고 온통 생쇼를 벌이며 사진을 찍어댔다. 찍어도 찍어도 더 찍고 싶다. 한 번 보기 아까워서 집에 가지고 가서 또 보려는 욕심이다.

이렇게 난리를 치다가 카메라를 떨어뜨렸다. 아차 하는 순간 렌즈가 비뚤어져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고 병신이 됐다. 한 달 전에도 산에 가서 온갖 방정 떨며 찍다가 떨어뜨려 고쳤는데 또 망가뜨렸다.

카메라가 없으니 할 일이 없다. 이후로 찍사는 못하고 모델 노릇만 했다. 분화구 안의 눈밭에서 실컷 놀다가 다시 숲길로 올라가니 사라 오름 정상 전망대가 나타난다. 여기서 전망대 아래 절벽으로 기어 내려가 몽블랑 같다고 감탄하며 스틱을 들고 사진을 찍는데 이런 우리 모습이 재미있는지 다른 사람들이 우리 모습을 찍어댄다. 다시 전망대로 기어 올라와 메일 주소를 주며 보내달라고 하였다.

배부르게 젖을 빤 아기같이 흡족하도록 설경을 만끽하고는 하산 길로 들어섰다. 돌아보고 돌아보고 몇 번을 돌아보며 두고 가기 아까운 경치를 눈에 담았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상고대가 많이 떨어져 좀 싱거웠다. 볼짱 다 본 님을 버리듯 뒤돌아 볼 필요도 없이 휑하니 내려오니 버스가 잠겨 있다. 휴게소로 가니 기사님이 나오며 안에 들어가 몸을 녹이란다. 들어가 아이젠과 스패츠도 풀고 아침에 준 가래떡을 먹었다.

저녁에는 제주도 전통요리인 오분작 찌개를 먹었는데 양숙씨가 맥주를 내겠단다. 왜 자꾸 내냐고 하니 제주도가 제 2의 고향이라고 하며 굳이 내겠단다. 저녁 식사 후에는 자기네 농장에서 따온 키위로 후식까지 제공한다. 한 턱 잘 얻어먹고 썬랜드 호텔로 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양숙씨와 연희씨, 수영씨, 인순씨, , 이렇게 다섯 명이 한 방을 쓰기로 했다. 연희씨는 목 디스크가 있는 관계로 침대를 쓰기로 하고 네 명은 바닥에 자리 잡았다.

다 자리를 잡고 나자 연희씨가 TV를 틀더니 몇 시에 몇 번에서 무슨 연속극 보고 또 몇 시에는 몇 번에서 뭘 보겠다고 쭈루룩 주워 섬긴다. 나는 채널권이 없어서 남편이 스포츠만 보는 관계로 연속극은 한 개도 못 본다고 했더니

아니 여태 채널권도 없단 말이예요. 왜 살아요?” 하며 웃는다.

연희씨가 보는 대로 연속극도 보고 세계테마기행도 보고 즐기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웬 방바닥이 그리도 뜨거운지 맨발로 딛기도 힘들다. 똑바로 누우면 등짝이 타는 듯하여 왼쪽으로 누웠다 오른쪽으로 누웠다 하며 잠을 설쳤다. 우리가 무슨 영창대군인 줄 아나 아주 태워 죽일 모양이다. 그래도 비몽사몽간에 꿈 속을 헤매며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돈 내라고? ( 126)

아침 5시가 되니 수영씨가 일어나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노래를 하며 일어나라고 한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는 참 이 노래 많이도 불렀다.

이 노래를 듣다보니 요즘은 새벽종이 안 울려서 걱정이라는 남편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남자들은 새벽이 되면 거시기가 서서 종이 울리는데 나이를 먹다보니 새벽이 되어도 감감 무소식이란다.

다섯 명이 한 화장실을 쓰려니 시간이 걸려 1층 화장실로 갔다. 집을 떠나면 변 보기가 어렵다. 한참 공을 들여야 조금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가 도로 들어가 버린다. 그래도 이렇게 제대로 된 화장실에서 일을 볼 때는 앉기도 편하고 호강이 넘친다. 메킨리 가서 플라스틱 깡통에 비닐봉투 씌우고 텐트 옆에 앉아 볼 일 볼 때는 엉덩이가 깡통에 배겨 어찌나 아픈지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아무데나 버릴 수도 없어서 똥이 든 통을 썰매에 싣고 다닌 생각을 하면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난다.

아침 식사하러 식당으로 가니 미선씨가 보인다. 미선씨는 진도 갔을 때 같은 방에서 잤던 주말반 총무다. 어제 저녁에 제주도에 도착했단다. 식사 후 방으로 오니 양숙씨가 커피를 타 준다. 웬 커피냐고 했더니 자기 농장에서 가져 왔단다. 과연 제 2의 고향 맞기는 맞다.

커피까지 잘 먹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오르니 제주도 특산품 오메기떡을 나누어준다. 은주씨가 아들 제대 기념으로 낸다는 것이다. 어제는 양숙씨가 떡 사고 술 사고 박옥순님이 해외여행 다녀왔다고 찬조금 내더니 오늘은 은주씨가 낸다. 하여튼 화요반은 내는 사람이 많아서 항상 먹을 게 차고 넘친다. 신연희씨는 신년이라고 내고, 한명미님은 인생이 아름답다고 낸다. 건수만 있으면 온갖 구실을 붙여 내니 나처럼 맨입만 달고 다니는 사람도 굶어 죽을 일 없다.

제주시에서 영실 입구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설국 그 자체다. 가도 가도 상고대에 뒤덮인 나무들이 흰 밀림을 이루고 있다. 다들 감탄사를 연발하느라 탄성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순희씨는 이증자님에게 서울 가서 자기 밥 사줘야 한단다. 뭔 소린가 했더니 이증자님이 안 가려고 하는 걸 강권하여 오게 됐단다. 정말 평생에 다시 보기 어려운 절경이다.

길이 빙판이라 큰 길에서 버스를 내려 등산로 입구까지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오늘도 등산이 가능할까 걱정했더니 역시 오늘도 통제는 없었다. 다른 조치가 내릴까봐 두려워 얼른 산길로 접어들었다.

여기서부터 영실기암까지 가는 길도 온통 눈의 숲이다. 다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영실(靈室)신령한 영이 머무는 방이란 뜻이다. 말 그대로, 보면 볼수록 신비에 가득 차 있다. 병풍바위에 둘러싸인 움푹한 골짜기가 마치 방 같이 보인다. 빙하가 빠져 나간 듯 커다란 골짜기 속에 신령한 영이 살고 있는 듯하다.

오른쪽 능선 상의 기기묘묘한 바위들은 오백나한이다. 대장님 말씀에 따르면 옛날에 한 할머니가 자식들을 위해 죽을 끓였다. 너무 양이 적고 멀건 죽을 먹일 생각에 가슴이 아파서 할머니는 자신이 직접 끓는 죽 속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돌아온 자식들이 맛있는 죽을 다 먹고 바닥을 보니 어머니 해골이 나왔다. 어머니의 헌신에 감동한 자식들은 결국 큰 진리를 깨닫고 돌로 변해 오백나한이 되었다는 것이다.

병풍바위 위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허허 벌판이 나타난다. 시베리아 같은 벌판에서 바람이 불어오는데 어찌나 차가운지 볼태기가 갈가리 찢어지는 듯하고 귀때기청봉도 아닌데 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연신 두 손으로 얼굴과 귀를 감싸며 바람과 사투를 벌였다. 경치고 뭐고 볼 겨를도 없이 쫓기다시피 윗세오름 대피소로 들어섰다.

여기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고 일부 회원은 어리목으로 하산하고 16명은 돈내코 길로 들어섰다. 이쪽도 눈의 밀림이다. 조금 가니 통제소 건물이 보인다. 혹시 여기서 쫓겨나는 거 아닌가 하고 가까이 가니 아무도 없다. 걱정하던 마음을 달래며 계속 앞으로 나가니 왼쪽으로 바위 암릉이 보인다. 왕관릉이라고도 하는 백록담의 남벽이다.

남벽 분기점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오려니 뒤에서 바람이 불어 한결 부드럽다. 대장님이 어리목 코스로 가셔서 미선씨가 대신 우리들 사진을 찍어준다. 평괴대피소에서 화장실에 가려니 온통 눈에 덮여 갈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노상 방뇨를 하고 눈으로 감쪽같이 덮어 완전 범죄를 한 후 간식을 먹었다. 대피소가 눈에 파묻혀 들어갈 수 없으니 지붕 위에서 요기를 했다.

이끼 계곡을 지나 조금 더 오니 썩은 물통이다. 지금은 얼어서 썩은 얼음통이 되었다. 밀림입구를 지나 내려오면서 향금씨가 돈내코가 뭐지? 돈을 내라는 건가? 코는 무슨 뜻이지? 하며 내려오는데 밑에서 알루미늄 샷시를 지고 올라오던 청년이 는 제주도 방언으로 계곡이란 뜻이라고 가르쳐준다.

돈내코라는 이름은 예로부터 이 지역에 멧돼지가 많이 출몰하여 돗드르라고 했는데 돗드르는 지금 토평마을이란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돗은 돼지, "드르"는 들판을 가리키는 말이고, 코는 하천의 입구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돗드르에서 멧돼지들이 물을 먹던 내의 입구라 하여 돈내코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서귀포 충혼묘지를 지나 내려오니 주차장이 보이는데 우리 버스가 없다. 은주씨에게 물으니 지금 버스가 어리목에서 일부 회원을 태우고 이리 오고 있단다. 남은 간식을 먹으며 한참을 기다리니 버스가 온다.

7시간이 넘게 걸릴 거라던 것이 6시간만에 내려오니 비행기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여가 시간을 활용하여 석부작 테마공원을 보러갔다. 제주도에 많은 현무암에 여러 가지 식물을 부착하여 만든 분재를 전시한 곳이다. 산삼근 배양실도 보고 귤나무에서 귤도 땄다. 저녁에는 갈치조림과 전복죽으로 배부르게 먹고는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에 앉아 가만히 생각하니 우리들은 참 복이 많다. 적기에 와서 최고의 절경을 보고 아무 탈 없이 서울로 향하니 말이다. 할 수만 있다면 사라오름을 사라고 외치고 싶다. 돈은 돈내코에서 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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