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0. 10. 11. 설악산

아~ 네모네! 2012. 10. 17. 21:38

 

 

 

 

 

 

 

 

 

 

 

 

 

나는 남산

 

기간 : 20101011~ 1013

장소 : 강원도 설악산 (1708m)

 

공룡능선의 단풍이 아름답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바이다. 이번에 롯데 트래킹에서 23일로 공룡능선에 간다고 하여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따라 나섰다.

 

나는 남산 ( 1011)

한계령 휴게소에서 내려 산길로 접어드니 초반부터 급경사라 숨이 턱에 닿는다. 그래도 타는 듯한 단풍에 넋이 빠져 힘든 줄도 모르겠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느라 한참씩 지체한다. 몇 사람 찍어주다 보면 다 달아나고 나는 꼴찌가 된다. 찍사 노릇하려면 걸음이 빨라야 하는데 나는 거북이 걸음이라 모델들 따라 가기도 힘들다. 내가 봐도 화요반에는 일급 모델이 수두룩하다.

귀때기 청봉 갈림길에서 우리는 오른쪽 서북능선길로 접어들었다. 여기서부터는 능선길이라 노냐 노냐 룰루 랄라 노래 부르며 신나게 걸어간다. 끝청에서 뒤쪽을 바라보니 우리가 온 능선길이 아스라이 이어져 있다. 앞에는 중청의 둥근 구조물이 보인다. 무슨 군 시설물인 것 같은데 무엇인지 궁금하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걷다보니 어느 덧 중청 대피소에 도착한다. 많은 사람들이 벌써 와서 식사를 하고 있다. 십여 년 전 숙임씨와 여기서 머물 던 기억이 난다. 숙임씨는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데 올봄에 벌써 천국으로 가버렸다. 마음씨가 워낙 착하고 베풀기를 좋아해서 아마 하늘나라에서도 그곳 사람들과 신나게 즐기고 있을 것이다. 그 때도 10월이라 단풍이 퍽이나 고왔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얼음이 얼었었다.

숙임씨의 기억을 뒤로하고 대청봉으로 향했다. 바람이 세차다. 햇님도 뉘엿뉘엿 서쪽으로 기울었다. 가는 길에 보니 이질풀이 아직도 두 송이 꽃을 달고 서있다. 강한 바람에 오들오들 떨고 서 있는 모양이 애처롭다. 조금 올라가니 수영씨가 내려온다. 왜 이렇게 빨리 왔느냐고 하니 대장님 따라 가려고 했는데 대청봉 정상에도 안 계시단다. 아마 소청 산장에 벌써 내려가셨나 보다.

대청봉에 올라 벌벌 떨며 정상 사진을 찍고 중청으로 다시 내려오는데 우리 팀 몇 명이 수영씨에게 배낭을 맡기고 맨몸으로 올라온다. 다들 추워서 얼굴이 퍼렇다. 중청에 내려와 간단히 간식을 먹고 소청으로 향했다. 내리막길이라 속도가 붙는다.

소청 산장에 도착하니 대장님이 벌써 와 김치찌개를 끓여 놓고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는 방에 짐을 풀고 나와 허겁지겁 허기를 채웠다. 꽁치 통조림을 넣은 김치찌개가 그야말로 꿀맛이다. 저녁을 다 먹고 샘에 가서 양치하고 방에 들어오니 사방이 캄캄한데 후미는 아직도 안 온다. 대장님이 걱정되어 마중을 나가신다.

후미까지 모두 저녁식사를 마치고 한 방에 모이니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결린다 하며 온몸에 파스로 도배를 한다. 초저녁부터 자리에 누우니 잠은 안 오고 재미있는 얘기를 하자고 하니 하순희씨가 한 마디 한다. 여자와 산에 관한 학설이란다.

20: 금강산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30: 설악산 (깊고 푸르다.)

40: 속리산 (속속들이 다 보인다.)

50: 지리산 (지리 지리 지루하다.)

60: 남산 (한 번 보고 안 간다.)

70: 백두산 (가고 싶어도 못 간다.)

누가 지었는지 생각할수록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불붙은 공룡 ( 1012)

너무 일찍 잠자리에 드니 한 밤중에 소변이 보고 싶다. 양쪽으로 빽빽이 누운 사람들 발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밖으로 나오니 하늘에는 다이아몬드가 무수히 박혔다. 초저녁에는 구름 때문에 달도 안 보이더니 은진씨가 밤새 걸어놨나보다. 사람들이 별 떴느냐고 은진씨에게 물었을 때 자기가 걸어놓겠다고 하더니 약속도 잘 지킨다.

멀리 봉정암에서 독경소리가 은은히 올라온다. 새벽 1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예불을 드리나보다. 새벽 예불을 드리러 봉정암으로 내려간 수영씨는 잘 있나 모르겠다. 하루 종일 걸어서 피곤할 텐데 밤길을 내려간 수영씨의 불심이 놀랍다. 밤을 새워 경을 읽는 스님의 목소리가 산이 내는 소리 같다. 평생토록 진리를 찾아 정진하는 인간은 정말 영적인 존재인가보다. 다른 동물도 이토록 애타게 진리를 찾고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 컵라면으로 요기를 한 후 공룡능선으로 향했다. 후미 팀은 어제 대청봉에 못 간 관계로 대청에 올랐다가 봉정암을 거쳐 오세암에서 만나기로 했다. 공룡능선은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왔다. 그때도 10월이었다. 몇 년 전인가 동생들과 왔을 때도 10월이라 단풍이 고왔던 걸 생각하니 나는 10월에만 공룡과 만나는구나 싶다.

기암절벽과 타는 단풍이 중국의 황산을 보는 듯하다. 마치 공룡의 몸에 불이 붙은 느낌이다. 예전에는 하도 험해서 네 발로 올라가고 다섯 발로 내려왔는데 지금은 곳곳에 쇠줄과 사다리를 해 놓아 한결 수월해졌다. 그새 공룡이 늙었나보다.

마등령 정상에서 마침표를 찍고 오세암으로 향했다. 내려오는 길에도 단풍이 어찌나 빨갛게 들었는지 손으로 꽉 짜면 붉은 물이 주르르 흐를 것 같다. 이렇게 화려한 꽃단장을 하고 노후를 맞는 나무를 보면 부럽기 한이 없다. 인간도 이렇게 아름답게 생을 마감할 수는 없을까?

오세암에 도착하여 방으로 들어가니 두 시 밖에 안 됐다. 세면실에 가서 한바탕 물을 끼얹고 오니 날아갈 듯 기분이 상쾌하다. 후미 팀은 단풍에 취했는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5시 반이 되어야 저녁을 준다고 하여 누워있으려니 잠이 솔솔 온다. 회장님이 오늘 시간이 많으니 만경대에 가자고 하는데 다시 땀을 흘릴 생각을 하니 선뜻 나서지지 않는다. 박영희씨만 얼른 따라 나선다.

저녁식사는 미역국과 오이무침이다. 양숙씨와 조이사님이 오이 써는 것 도와주었다고 하더니 그래서 더 맛있는 것 같다. 식사를 마친 이순희씨는 설거지를 하며 일손을 돕는다.

저녁식사 후 경내나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오세암은 다섯 살 먹은 동자의 전설이 서린 곳이라 동자상을 모신 동자전이 있다. 물이 나오는 곳에도 동자승이 바가지를 들고 물을 따라주는 모양의 석상이 있다.

대학교때 산악회 선배들에게 들었던 설화가 생각난다. 옛날에 이 암자에 노승과 다섯 살 먹은 동자승이 있었단다. 늦은 가을 어느 날 노스님이 겨울 양식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갔다. 양식을 구해 암자로 돌아오려는데 폭설이 내려 길이 막혔다. 겨우내 눈이 쌓여 오지 못한 노스님은 봄이 되어 눈이 녹자 암자로 돌아왔다. 동자 생각에 마음이 급한 스님이 암자로 들어서니 방문에 동자승이 앉아 예불하는 모습이 비쳤다. 여태 살아 있나보다 하고 문을 여니 동자승은 앉은 채로 숨져 있었다. 경을 읽다가 그대로 성불한 것이다. 그 후로 이 암자 이름이 오세암이 되었다는 것이다.

초저녁부터 자리에 누우니 눈이 말똥말똥하다. 비좁은 방에 머리와 다리를 엇갈리게 누워도 몸을 똑바로 펴기가 힘들다. 임경희님은 엉덩이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야단이다. 콩나물시루같이 빽빽하게 누워있어도 어느 결에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시골 인심보다 더 좋은 절 인심 ( 1013)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린다. 오늘도 엊저녁과 같이 미역국에 오이무침이다. 그래도 이 산 속에서 웬 호강인가 싶다. 식사 후에는 커피까지 준다. 12식에 얼마나 냈는지 모르지만 왠지 미안하고 송구스럽다.

비옷을 입고 만경대로 향했다. 비에 젖은 바위로 기어오르려니 어제 회장님이 가자고 할 때 갈 껄 하고 후회막급이다. 만경대 정상에도 안개가 가득 끼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더니 어제 일을 오늘로 미뤘더니 요 모양 요 꼴 됐다.

오세암에서 영시암까지 오는 동안 비가 그쳤다. 영시암에서는 녹두죽을 끓여 놓고 마음대로 퍼 먹게 해 놓았다. 시골 인심보다 더 좋은 게 절 인심이다. 백담사까지 이어지는 백담계곡은 예나 이제나 수채화를 보는 듯 아름답다. 계곡물에 떠내려가는 오색 단풍을 볼 때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풍경 하나를 본 것만 해도 이 세상에 온 보람이 있다.

백담사 주차장에 내려와 우리 버스를 타고 미시령을 넘어 속초로 갔다. 오랜만에 회로 푸짐한 점심을 먹고 건봉사로 향했다. 부처님의 치아사리가 모셔진 절이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는 산 속의 조그만 그야말로 절간같이 조용한 절이었는데 주차장도 크게 넓히고 건물도 엄청 많아졌다. 치아사리를 보면 저런 치아가 어떻게 몇 천 년 동안 썩지 않고 보존 되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건봉사에서 나와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니 잠이 쏟아진다. 내가 비록 지금은 남산이지만 백두산 아니라 백두산 할아버지가 되도 좋으니 산에나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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