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0. 3. 3. 뉴질랜드 밀포드

아~ 네모네! 2012. 10. 17. 20:34

 

 

 

 

 

 

 

 

 

 

 

 

 

 

 

 

나도 오바마

 

기간 : 201033~ 314

                                                     장소 : 호주 시드니, 뉴질랜드 남섬 밀포드

 

나이 들어 백수가 되면 모두 오바마가 된단다.

: 오라는 데마다 모두 간다.

: 바람 부는 대로 흘러간다.

: 마음 내키는 대로 쏘다닌다.

10여 년 전 호주와 뉴질랜드 북섬은 다녀왔다. 남섬이 더 아름답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언제 기회가 오려나? 벼르던 중 드디어 기회가 왔다. 오라는 데 안 갈 수 있나?

 

마음은 청춘

시드니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 심사 하려니 입국 절차가 까다롭다. 이포규씨는 멸치를 빼앗겼다. 이순희씨는 김치 있다고 미리 신고했더니 안 빼앗겼단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가이드 김재길씨가 마중 나왔다. 신발만 보면 우리 팀인지 알아볼 수 있다고 족집게처럼 잡아낸다.

시드니에서 북쪽으로 220km 떨어진 포트 스테판으로 이동한 후 넬슨베이에서 돌핀 크루즈를 탔다. 야생 돌고래를 보는 배인데 어쩌다 한 마리 나타나면 서로 보려고 우르르 몰려간다. 돌고래 쇼 하듯이 물 위로 펄쩍 펄쩍 뛰어 오르면 속이 시원하겠는데 물에서 들락날락하며 등짝만 보여주니 감질만 난다.

크루즈 관광을 마치고 아나 베이로 이동하여 사륜구동 차를 타고 모래사막을 질주했다. 해변에 생긴 사구(모래언덕)에서 보드처럼 생긴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맛은 그야말로 스릴 만점이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조심조심 내려오더니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 만세를 부르며 쏜살같이 내려온다. 몸은 늙어도 마음만은 청춘이란 말이 실감난다.

모래썰매를 탄 후 해변을 한 바퀴 돌아 버스로 오니 기사 아저씨가 큰 솔을 들고 문 앞에 서서 들어오는 사람마다 운동화 바닥을 때리며 탁탁 털어준다. 이재호씨는 압축공기로 한 순간에 떨어내는데 일일이 발바닥을 치고 있으니 우습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시드니에 돌아와 저녁 식사 후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바닷가에 무수한 요트가 정박해 있는데 팔려고 내놓은 배의 값을 보니 천문학적 숫자다. 이 배 저 배에 올라타 사진도 찍고 구경하다가 한 배를 보니 불이 켜 있다. 배 사진 좀 찍어도 되냐고 하니 오케이란다. 그 배에 올라가 사진을 찍으며 안을 보니 최고급 호텔처럼 멋있다. 탁자에는 양주도 몇 병 놓여있다. 배가 참 멋있다고 하니 땡큐하면서 자기가 감사하다고 한다. 배를 나오니 몇 몇 사람이 그 배로 간다. 저녁에 선상파티를 하려나보다.

호텔로 돌아오다 해변가에서 신연희씨가 가져온 과자를 먹었다. 공항에서 사온 호주 과자인데 어찌나 신지 식초 맛이다. 다들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는데 대장님만 맛있다고 잘 먹는다.

 

이런 제~길 재길이가 이건 왜 안 가르쳐 줬대?

아침 비행기로 시드니를 출발했는데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도착하니 2시간이 빨라져 오후 3시가 다 됐다. 크라이스트처치는 떠다니는 과학 실험실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쇄빙선 아라온 호가 남극으로 출항했던 항구다.

뉴질랜드 공항은 호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안순자씨는 영양크림이 걸리고, 많은 사람의 등산화가 걸렸다. 걸린 사람들은 등산화를 들고 닦으러 갔는데 김희옥씨는 직원이 직접 들고 가 씻어서 비닐 봉투에 담아 주었다.

이런 제~길 재길이(호주 가이드)가 이건 왜 안 가르쳐 줬대? 하고 툴툴 거리면서 공항을 나오니 이재철 가이드가 나와 뉴질랜드는 낙농국가라서 이렇게 철저히 검색을 한단다.

500km 떨어진 퀸스타운으로 이동하며 이재철씨가 뉴질랜드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뉴질랜드는 1646년 처음으로 이 땅을 발견한 네덜란드 사람이 새로운 열정의 땅이라고 하여 뉴(NEW) (JEAL) 랜드(LAND)라고 이름 붙였단다. 그는 원주민들의 화살세례 때문에 상륙하지 못했고 1769년 캡틴 쿡이란 사람이 들어와 추장과 잘 사귀었다. 그는 이 땅의 지도를 그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게 바쳤다. 마운트 쿡이란 이름도 이 선장의 이름을 딴 것이라 한다.

가다가 지랄디 마을인지 제랄딘 마을인지에서 휴식을 했는데 휴게소도 5시면 퇴근하기 때문에 화장실만 이용할 수 있다. 진한 옥색의 테카포 호수도 보고 선한 목자 교회도 보았는데 이 교회는 앞면이 유리로 되어있어 호수를 바라보며 예배를 보게 되어 있다. 우리가 갔을 때 마침 예배 중이라 안에는 들어가 볼 수 없었지만 빙퇴석(빙하가 내려오다 녹아 쌓인 자갈)으로 벽을 만든 그림 같이 아름다운 교회다.

푸카키 호수의 전망대에서는 마운트 쿡 설산이 보인다는데 이날은 구름이 끼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구름 사이로 터져 나오는 빛이 푸른 호수에 쏟아지는데 그 광경이 어찌나 장엄하고 신비로운지 천지 창조의 순간 같기도 하고 구름 사이에서 예수님이 재림할 것 같기도 하다.

푸카키 가든에서 저녁 식사를 했는데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이라 그런지 연어회도 나와 푸짐한 식사를 즐겼다. 저녁 식사 후 여왕의 마을이란 뜻의 퀸스타운으로 이동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식곤증이 와 저절로 눈이 감긴다. 이런 우리 모습을 보더니 가이드 이재철씨가 식곤증은 왜 나타나느냐고 묻는다. 피가 위로 몰려서 그렇다느니 어떻다느니 한참 늘어놓았더니 그게 아니고 배가 불러 뱃가죽이 눈가죽을 당겨서 그렇단다. 정말 들을수록 진리의 말씀이다.

퀸스타운은 광부들이 만든 도시인데 스포츠의 천국이라 한다. 번지 점프, 래프팅, 등산, 패러글라이딩, 골프 등 온갖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데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이곳에서 134m 높이의 번지 점프를 했단다.

퀸스타운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다 됐다. 하늘에는 남십자성과 하현달이 떠 있는데 꼭 상현달 모양으로 오른쪽 반달이다. 보름이 지났는데 왜 달 모양이 저런가 하다가 아차 여기가 남반구라 달 모양이 반대로구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남반구라 북두칠성은 보이지 않고 남십자성을 비롯한 남쪽 하늘의 별들은 시계와 같은 방향으로 돈다.

내일 산으로 가져갈 짐과 호텔에 맡길 짐을 분리하느라 부스럭거리다가 새벽 두 시나 되어 잠자리에 들었다.

 

대장님의 마술 쇼

오늘은 밀포드 트래킹 첫 날이다. 이 트래킹 코스는 1888년 퀸틴 맥캐논이란 사람이 개척한 코스다. 이곳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피오르드 국립공원 내에 있으며 하루에 50명씩 만 신청을 받으므로 6개월 전에 예약해야 한다. 아침 식사 후 밀포드 트래킹 사무실로 가니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각자의 명찰을 받아 들고 버스에 올라 테아나로 향했다. 버스에는 커다란 새가 그려져있는데 이 새는 남섬의 대표적인 영리한 새이다. ‘키악 키악하며 울기 때문에 키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가다가 휴게소에 들렀는데 미국 달러를 안 받는다. 뉴질랜드 돈이 없어 아이스크림 한 개를 사서 열 명이 한 입씩 먹는데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도 없다. 입안에서 맴도는 아이스크림이 어찌나 맛있는지 뱃속의 회가 동한다.

테아나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나오니 가이드가 저녁 식사를 주문하란다. 미리 주문해야 산장에서 준비한단다. 우리처럼 무식한 사람도 알아볼 수 있게 생선요리는 물고기 그림을 그려 놓고 사슴고기는 사슴을 그려 놓았다. 각자의 이름을 찾아 주문을 마친 후 다시 버스에 올랐다.

테아나 다운스 선착장에 도착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데 선상에서 서로 인사하고 같이 사진 찍고 하며 낯을 익힌다. 핑크 모자를 쓴 뉴질랜드 팀이 있는데 티셔츠도 핑크빛이고 등에는 2004년부터 매년 간 곳의 이름이 쓰여 있다. 우리가 같이 사진 찍자고 하니 모자까지 빌려주며 같이 찍는다.

이렇게 서로 웃고 즐기다 보니 어느 덧 글레이드 하우스 선착장에 도착한다. 배에서 육지로 이어지는 곳에는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살균약을 담아 놓았다. 이 약에 발을 담근 후 트래킹을 시작했다. 글레이드 하우스 산장까지는 1마일(1.6km) 밖에 안 되니 식은 죽 먹기다. 산장에 도착해 방 배정을 받은 후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 우리는 밀포드 트래킹 126차 팀이다.

방에는 등산화를 신고 들어가지 말라고 쓰여 있어 신발은 문 밖에 벗어두고 덧신을 신고 들어갔다. 헝겊 덧신을 가져갔더니 화장실 갈 때 발이 젖어 불편하다. 비닐 슬리퍼를 가져갈 걸 하고 후회해 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 날은 숙소에 일찍 도착하여 저녁 식사까지 시간이 많으니 근처를 돌아본다고 한다. 밖으로 나오니 몇 조로 나누어 가이드가 한 명씩 붙어 안내를 한다. 우리 가이드는 그레타라는 아가씨인데 어찌나 예쁘고 날씬한지 양귀비 뺨치게 생겼다. 아까까지만 해도 사진 찍을 때마다 커플을 찾던 최선생님은 마누라가 뒤에서 오는지 안 오는지 쳐다도 안 보고 가이드 아가씨 뒤에 바짝 붙어서 온갖 질문공세를 퍼 붓는다.

그레타는 나무에 붙어있는 삼각형의 핑크색 표시는 덫을 설치한 곳이라고 일러주며 직접 들어가 보여준다. 뉴질랜드는 새들의 천국인데 족제비 같은 동물이 들어와 마구 잡아먹어 덫을 놓아 잡는다고 한다.

계곡에 이르니 반대 방향으로 돌던 사람들이 거기 모여 있는데 여기서 서로 엇갈린다고 한다. 계곡의 돌을 보니 온통 붉은 색을 띠고 있다. 이것은 이끼의 일종으로 이것이 바위에 붙어 다른 생물이 자라는 것을 돕는다고 한다. 손으로 만져보니 붉은 물이 들어 물로 씻어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계곡을 나와 오던 방향으로 계속 걸으니 우리의 숙소인 글레이드 산장이 나타난다. 방에 와 덧신으로 갈아신고 식당으로 가니 식당 입구 옆에 방명록이 있고 그 위 벽에는 각국의 돈과 명함, 국기, 메모 등이 붙어있다. 자세히 보니 한국 돈과 태극기도 보인다.

식당으로 들어서니 칠판에 글레이드 하우스에 온 걸 축하한다는 말과 그림, 저녁식사 시간, 식사 후 슬라이드 쇼가 있다는 내용이 예쁘게 적혀있다. 식당 내의 미니바에서는 맥주도 팔고 간단한 안주나 음료도 판다. 계산은 돈이나 카드로 하지 않고 명찰을 보고 체크만 한다. 마지막 날 마지막 산장에서 한꺼번에 계산한다는 것이다.

식사 시간에는 각자 원하는 테이블에 앉으면 가이드가 와서 아까 무얼 주문했느냐고 묻는데 물고기는 손으로 수영하는 모양을 흉내 내고, 사슴고기는 손가락을 머리에 뿔 모양으로 대며 묻는다. 우리도 이런 모양을 흉내 내며 답하니 자신이 생각해도 우스운지 한참 웃어댄다. 모든 것이 이렇게 철저히 준비되어 있으니 까막눈이라도 밥 굶을 일은 절대 없다.

저녁 식사 후 각자 자기소개가 있었는데 우리는 한꺼번에 모두 나가 대장님이 우리는 코리아에서 왔다고 간단히 소개를 한 후 쇠고리 두 개로 마술 쇼를 하였다. 여러 사람에게 고리를 나누어 준 후 고리를 빼는 사람에게 이것을 주겠다고 하니 빼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러다 한 사람이 성공하자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한다. 마술 쇼를 마치고 아리랑을 합창했는데 최선생님이 노래의 내용을 미리 설명해 주자 흥미롭게 열심히 듣는다. 다른 팀들도 소개를 했는데 미국서 온 사람, 유럽에서 온 사람, 모녀간에 온 사람, 친구와 온 사람, 부부간에 온 사람 등 국적도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소개가 끝나고 슬라이드 쇼를 했는데 무슨 재미있는 쇼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고 다음 날 갈 곳을 슬라이드를 보여주며 미리 설명하는 거였다. 모든 것이 일사분란하게 짜여 움직이는 것이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듯하다.

 

여기가 어디메뇨?

트래킹 둘째 날이다. 오늘은 10마일(16km)을 걸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재료를 넣어 샌드위치도 싸고, 과자와 과일 등 간식도 준비한다. 나는 여섯 시간 걸을 생각에 샌드위치를 두 개나 만들어 배낭에 넣었다. 식사를 마친 후 출발은 830분에서 9시 사이에 자유롭게 한다.

이 날은 평탄한 숲 속 길을 마냥 걷는다. 숲속은 온통 원시림에 나무마다 이끼들이 줄줄이 늘어져 중생대로 돌아간 듯도 하고 에덴동산에 온 듯도 하다. 여기가 어디메뇨? 에덴이 여기로다. 혼자서 흥얼대며 가는데 아침에 주스와 커피를 마구 마셔댔더니 자연이 나를 부른다. 전후좌우 살피다가 아무도 안 보일 때 숲속의 작은 물길로 내려가 노상방뇨를 하고 오니 완전 범죄에 성공한 기분이다.

그런데 5분도 못 가 클린턴 오두막이 나타나고 여기에 화장실이 있다. 조금만 참을 걸 하고 후회해봐야 엎어진 물이 아니고 쏟아버린 오줌이다. 오두막으로 가는 길에 누가 그랬는지 작은 나무에 덮인 이끼에 돌멩이 세 개를 박아 얼굴모양을 만들어 놨다. 작은 것이지만 보는 사람마다 웃음이 절로 난다.

계곡 길을 따라 가다가 냇가에서 간식을 먹었다. 자갈도 물도 어찌나 깨끗한지 그냥 마시고 싶다. 계곡물에는 팔뚝만한 송어가 노닐고 있다. 여기서 한참 더 가니 점심 식사 장소가 나타난다. 작은 집을 지어 놓고 가이드들이 먼저 와 도착하는 대로 따끈한 커피와 주스를 준다. 배낭을 내려놓고 가져온 샌드위치와 커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욕심껏 두 개나 싸 온 나는 다 먹지 못하고 대장님께 드렸더니 잘도 드신다.

클린턴 계곡의 절경을 감상하며 계속 걷다보니 호수가 나타나고 외국여자 두 명이 수영을 하고 있다. 물이 차서 다들 엄두를 못 내고 있는데 최고 연장자인 박남철씨가 뛰어든다. 노익장을 과시하고 물에서 나오니 모두 환성을 지른다. 이 모습을 찍어야하는데 내 카메라가 고장 났다. 이집트 갔을 때도 말썽을 부리더니 해외만 나오면 사시나무 떨 듯 떨어 찍을 수가 없다. 주인을 닮아 수전증이 걸렸나보다.

발이 무감각해 지도록 걷다보니 드디어 오늘의 숙소인 폼포로나 산장이 나타난다. 산장에는 샤워실과 건조실이 있어 옷을 빨아 널면 한 두 시간에 다 마른다. 샤워실에는 샴푸, 린스, 샤워젤까지 완벽하게 준비돼 있어 고급 호텔 못지않다. 수건도 각자 준비 돼 있고 발수건도 따로 있다.

이날 저녁 식사 때는 술병이 왔다 갔다 하고 분위기 애애하다. 대장님이 매실 장아찌와 취나물 장아찌를 나눠주자 핑크 모자 아저씨도 술병을 들고 주거니 받거니 신이 났다. 식사 후 내일 일정과 코스에 대한 슬라이드 설명이 있었다. 내일 걸어야할 가파른 지그재그 길을 보여주자 모두 소리를 지른다.

설명을 마치자 가이드들이 발이 아픈 사람 치료를 해 준다고 한다. 예쁜 아가씨들이 발 마사지와 치료를 해 준다고 하자 멀쩡한 호선생님이 먼저 달려간다. 가이드들은 어디가 아프냐고 묻고 테이프도 붙여주고 약도 발라준다. 나도 벌레에 물려 발등이 부었기에 보여 주었더니 약을 발라준다. 발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발등이 아파 내일 산행이 걱정된다.

 

입탱이 밤탱이 된 호선생님

오늘은 9마일(15km)을 걷는데 11개의 지그재그로 된 길을 가파르게 올라가야한다. 빙하가 빠져나간 장엄한 U자 계곡을 바라보며 힘겹게 안부에 올라서면 맥캐논인지 맥힌놈인지 하는 기념탑이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전경은 한 마디로 턱이 빠질 정도로 기막히다. 사방으로 둘러선 설산들이 우리를 압도한다. 웅덩이에 비친 산과 절벽 중간에 매달린 야생화를 바라보면 탄성이 절로 난다.

설산과 야생화에 넋을 잃으며 걷다보면 패스 산장이 나타나고 여기서 점심 식사를 한다. 점심 식사 후 하산 길로 접어들어 가파른 길을 내려오면 퀸틴 폭포가 보이고 여기를 지나 완경사 길을 하염없이 걷다보면 오늘의 숙소인 퀸틴 산장이 나타난다. 퀸틴은 밀포드 트래킹을 처음 만든 사람의 이름이다. 다들 짐이 무거워 어깨뼈가 부러질 지경이다. 대장님은 남의 짐까지 지느라 눈이 십리만큼 들어가고 얼굴이 반쪽 됐다.

퀸틴 산장에 도착하여 음료와 과일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배정된 방으로 들어오니 발 빠른 양숙씨는 먼저 와 아래 침대를 차지하고, 안순자씨는 남편이 마중 나와 배낭을 받아다 아래 침대에 놓아주었다. 힘없고 빽 없는 나는 이층 침대로 기어 올라가려니 에고고 내 팔자야~ 하는 소리가 절로 난다.

다 도착했는데 호선생님과 배복순씨가 안 보인다.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하는데 배복순씨가 들어오며 왜 그렇게 빨리 내려오느냐고 툴툴댄다. 뒤이어 들어오는 호선생님을 보니 입술 위가 찢어지고 눈탱이 밤탱이가 아니고 입탱이 밤탱이가 됐다. 사진 찍고 서두르며 내려오다 넘어져 굴렀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만하기가 다행이라고 하며 써더랜드 폭포를 보러 갔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등짝도 뻐개지는 듯 아프고, 발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 써더랜드고 원더랜드고 다 귀찮더니 간식 먹고 좀 쉬니까 마음이 달라진다. 써더랜드 폭포는 그 높이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폭포라고 하는데 왕복 1시간 30분 걸린다고 한다. 길은 평탄하여 걷기 좋았다. 폭포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폭포 물에 들어가 물을 맞는 사람도 있는데 직접 맞을 수 없으니 바위 뒤에서 돌에 한 번 부딪친 물을 맞는다.

우리도 발을 벗고 한 번 들어가 보니 물이 어찌나 찬지 뼈가 저리다 못해 아리다. 물보라가 일어나 무지개가 생기는데 그 모습 또한 기막히다. 위를 바라보면 하늘에 구멍이 뚫려 물이 쏟아지는 듯하다. 써더랜드는 이곳에 처음 정착한 사람의 이름이라고 한다.

서양 사람들은 모든 곳에 자신의 이름 붙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산장도 폭포도 사람이름을 따서 붙인다. 동양인들은 생긴 모양을 보고 구룡폭포니 용추폭포니 하고 부르는데 말이다. 서양인들은 사람을 앞세우고 동양인은 자연을 우선시 하는 것 같다.

폭포를 배경으로 온갖 폼을 잡으며 사진을 찍고 산장에 돌아와 샤워하고 세탁실로 갔다. 세탁하는 싱크대가 두 개 밖에 없어 빨랫감을 들고 줄을 서야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동서양 차이가 난다. 서양인은 남자들이 빨래하러 오는데 동양인은 여자가 빨랫감을 들고 온다. 빨래 잘 하는 남편 데려왔으면 여기서 실력 발휘 한 번 하는 건데 혼자 온 게 아쉽다.

저녁 식사 후 침대에 누워 있는데 별 보러 나오라는 대장님 소리가 들린다. 이층 침대에서 내려가기 싫어 못 들은 척 그냥 잠을 청했다. 밤에 화장실 가려고 밖으로 나가니 은하수가 뿌옇게 흐르고 앞문 쪽으로 가니 남십자성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별미 맛 본 쌘드플라이

아침에 일어나니 안개가 자욱하다. 오늘은 트래킹 넷째 날, 13마일(21km)을 걸어야 한다. 계곡을 끼고 내려오는 길은 고사리 모양의 양치식물로 뒤덮여 고생대로 되돌아 간 듯하다. 원시림 속을 끝없이 내려오다 보면 무수한 폭포와 만난다. 멕케이 폭포 옆에는 종바위(bell rock)가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이 설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있고 바위가 하나 있다. 엊저녁에 슬라이드 쇼에서 본 것처럼 신연희 씨가 안으로 들어가고 다리만 보이게 한 후 사진을 찍었다.

글랜트 게이트 폭포 옆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샌드플라이(sandfly)라는 작은 파리가 어찌나 달려드는지 밥 먹기도 힘들다. 파리가 먹기 전에 부리나케 먹어치우고 다시 하산을 서둘렀다. 계곡에 걸린 출렁다리에는 최고 몇 명까지 건널 수 있다는 표지가 붙어있어 한 번에 많은 사람이 건너지 말라고 되어있다. 이런 데까지 세심하게 배려한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아다 호수를 지나 트래킹 종착점인 샌드플라이 포인트에 도착하니 사무실이 있고 여기서 음료수를 준다. 사무실 앞에는 샌드플라이 포인트 33.5마일이란 표지판이 있고 그동안 사람들이 걸어놓은 등산화가 매달려 있다. 써더랜드 폭포에 갔다 온 거리까지 합치면 총 60km를 걸었으니 생각할수록 가슴이 뿌듯하다.

여기서 기념사진을 찍고 배를 기다리는데 이름에 걸맞게 샌드플라이가 단체로 달려든다. 이놈들이 별미를 맛보더니 환장을 했나 마구 뜯어댄다. 약을 뿌리면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 집중 공격을 한다. 이곳 가이드들은 반바지에 짧은 티 입고 뻘건 다리 내놓고 다녀도 멀쩡한데 우리는 긴 바지에 긴팔 입어도 옷 속으로 파고 들어와 물어댄다. 신연희씨는 손바닥까지 물려 물집이 잡혔고 양숙씨는 발등을 수십 군데 물렸다.

빠리떼에 쫓기듯 배에 올라 오늘의 숙소인 마이터(Mitre)봉 산장으로 향했다. 산장에 도착하여 짐을 푼 후 저녁 식사 전까지 시간이 있어 바닷가로 나갔다. 산장 앞 바다에는 꼭 여자의 가슴 같이 생긴 바위산이 있는데 꼭지까지 완벽하다. 대장님이 즉석에서 유두봉이라고 이름 붙였다. 우리는 유두봉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고목나무에 앉아 영화 찍고 생 쇼를 하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앞 잔디밭에서 대장님이 신연희씨와 임양숙씨에게 유도하는 법을 가르쳤다. 저녁 식사 후 시범을 보이고 싶어서이다. 연희씨와 양숙씨가 대장님을 땅에 패대기치는 폼인데 아무래도 어설프고 겁이 나 잘 하지 못하니 그냥 포기했다.

식사 후 그간의 느낌을 얘기하는 시간에 대장님이 앞에 나가 이야기하고 최선생님이 통역했다. 대장님이 외국 사람들에게 우리들이 영어를 잘 못하고 서양문화도 잘 몰라서 여러 가지 실수를 한 것 같으니 용서해 달라고 하자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대장님은 어떻게 갑자기 연설을 시켜도 말을 그렇게 잘 하는지 모르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솟는다. 어쩌면 대장으로서 가장 책임감 있고 필요 적절한 말을 적시에 쏟아내는지 그 리더십이 놀랍다. 그러면서 동양에도 좋은 산이 많다고 중국의 황산, 일본의 북알프스, 한국의 설악산을 꼭 가보라고 권한다. 생각할수록 유효적절한 말이다.

그동안 우리들을 돌봐주던 가이드들은 바지와 셔츠를 벗고 완전 파티복으로 갈아입었는데 어찌나 예쁘고 아름다운지 눈이 부실 지경이다. 아마 가이드는 미모를 보고 뽑나보다. 일본인 남자 가이드도 말쑥하니 신사가 됐다.

얘기가 끝나고 수료증을 주는 순서다. 가이드가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면 나가서 받는데 이건 완전 올림픽 시상식 저리가라다. 수료증을 받고 가이드들과 일일이 포옹하고 만세를 부르고 사람마다 가지각색 모션으로 사람을 웃긴다. 한 서양여자는 수료증을 받아들더니 갑자기 호선생님께 다가와 무릎에 납작 안긴다. 호선생님은 본의 아니게 졸지에 서양여자 안아봤다. 또 핑크 팀의 한 여자는 수료증 받아들더니 대장님께 다가와 껴안는다. 참 서양여자들은 솔직하고 용감하다. 우리는 가이드와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비실비실 받아들고 들어오는데 말이다. 이렇게 같이 웃고 같이 고생하고 같이 울다보니 우리는 하나라는 생각이 들고 세계는 하나라는 느낌이 절절하다. 정치적 외교도 좋지만 이런 민간외교가 진짜 외교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 같은 피오르드

아침 식사하며 사람들이 호선생님에게 어제 그 여자 꽤 뚱뚱하던데 무겁지 않았냐고 물으니 새털같이 가볍더라고 농담으로 받아친다.

오늘은 밀포드 사운드 크루즈를 타고 피오르드를 보는 날이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선착장으로 가는 셔틀버스에서 한 남자가 대장님 옆에 앉더니 그 마술고리를 가지고 와 다시 가르쳐 달란다. 대장님이 하트를 만들어 돌리라고 몇 번씩 가르쳐 주자 드디어 성공했다. 그리고는 다 늙은 사람이 어린 아이처럼 마냥 기뻐한다.

크루즈를 타고 바라보는 피오르드는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안개까지 산허리에 걸려 신비감을 더한다. 호선생님은 이 날도 여기 찍으랴 저기 찍으랴 이 사람 찍어주랴 저 사람 찍어주랴 전후좌우 동서남북으로 종횡무진 달린다. 이런 호선생님의 모습이 멋져 보였는지 모녀 팀의 딸이 저걸로 몇 장까지 찍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표준용량으로 놓고 찍으면 8000장까지 찍을 수 있다고 하니 깜짝 놀란다. 그 사진을 다 주느냐고 하여 CD로 만들어 준다고 했더니 감격하는 눈치다.

또 우리가 어떤 팀이냐고 묻기에 매주 산에 다니고 해외여행도 다닌다 킬리만자로도 갔다 왔다고 했더니 자기 남동생도 아프리카 우간다에 산단다. 그러면서 이번에 비도 안 오고 날씨가 너무 좋았다고 하는데 비(rain)를 라인이라고 발음해 알아듣기 힘들다. 레인? 하니까 뉴질랜드 발음으로는 라인이라고 설명해준다. 호주나 뉴질랜드 영어는 미국영어하고 발음이 달라서 쥐꼬리만 한 실력에 알아듣기가 더 힘들다.

피오르드까지 다 보고 버스에 오르니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한국에서도 산행 끝나면 비 오더니 여기서도 모든 일정이 끝나니 비 온다. 누가 날 잡았는지 기막히게 잡았다고 했더니 양숙씨가 점쟁이한테 물어보고 잡았나보다고 한다. 호머터널을 지나니 계곡에 가득 담긴 구름이 하얀 솜사탕 같다. 더 내려오다가 버스에 앉아 가져온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고 첫 날 점심 먹었던 테아나에 도착하니 다음 팀이 기다리고 있다.

이들도 저녁 메뉴를 신청하고 화단에 걸터앉아 5일 전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여기서 두 명의 가이드는 다시 트래킹 코스로 돌아가고 두 명은 우리와 함께 처음 만났던 퀸스타운의 사무실로 돌아간다. 헤어지는 두 명의 가이드와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데 웬 남자가 옆에 섰다가 자기도 가이드인 것처럼 고맙다고 땡큐~’ 하며 농담을 한다. 서양 사람들은 볼수록 유머감각이 넘치는 것 같다.

사무실에 돌아와 서로 헤어지며 인사하고 기념품을 샀다. 모직양말이 좋다고 하기에 하나 사고 엽서와 우표를 샀는데 이 우표를 여기 붙일 거냐고 묻는다. 여기 붙이려면 다른 걸 사야한다고 하기에 그냥 모으는 거라고 했더니 싸준다. 50센트짜리라 엽서에 붙이기는 양이 많아 곤란한 모양이다. 그래도 무작정 팔지 않고 용도를 묻는 마음씨가 고맙다.

퀸스타운에 도착하니 이재철씨가 미리 나와 맞아준다. 닷새 만에 만났는데 한 달은 된 것처럼 느껴진다. 스카이라인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퀸스타운 전경을 보았는데 왜 여기가 여왕의 마을이란 이름을 얻었는지 실감이 난다. 그 산과 호수와 집들이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곤돌라에서 내려와 제트보트를 타러갔다. 물 위에서 신나게 달리다가 360도 회전한다는 것이다. 뒷좌석이 재미있다고 하여 제일 뒤로 탔다. 한참을 달리다가 몇 바퀴 돌았는데 갑자기 이순희씨가 다쳤다고 울상을 한다. 웬일인가 했더니 급회전을 할 때 사람들이 한꺼번에 쏠려 옆의 쇠기둥에 어깨를 부딪쳤다는 것이다.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와 박이사님과 이재철 가이드, 이순희씨와 남편 금선생님은 병원으로 가고 다시 출발했다. 다시 가긴 하는데 다친 사람 생각에 흥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하던 것이니 몇 바퀴 돌고 왔다.

제트 보트에서 내려 첫 날 묵었던 호텔로 돌아오니 5일 만에 담쟁이 넝쿨이 붉게 변했다. 그새 가을이 왔나보다. 저녁식사 후 봉고를 불러 타고 퀸스타운 야경을 보러갔다. 호숫가에는 많은 카페들이 있고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거리 악사가 있어서 구경하는데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코리아라고 하자 연가를 연주하며 노래하라고 한다. 한밤에 호숫가에서 연가를 합창하려니 뭔가 감회가 새롭다.

노래를 마치고 다시 걷는데 이재철씨가 왔다. 병원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어깨뼈에 약간 금이 갔지만 2~3주면 낫는다고 한다. 뉴질랜드는 복지제도가 잘 되어있어 자국민은 물론이고 여행객도 모두 무료로 치료해준단다. 그것 참 아프려면 뉴질랜드에서 아파야겠다. 한 카페에 들러 아이스크림과 맥주로 목을 축이고 호텔로 돌아왔다.

 

잘 비운 내 요강 만 리 길 두렵지 않다?

아침에 어젯밤 쓴 엽서를 부치려고 로비로 가 이걸 한국에 부칠 수 있냐고 물으니 된다고 한다. 1달러 몇 센트라고 하기에 주었더니 우표 두 개를 내 놓으며 이걸 붙일래? 저걸 붙일래? 하고 묻는다. 예쁜 걸 골라 이거라고 하며 고맙다고 하니 ‘You are welcome. (천만에)’ 하며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아무거나 붙여주지 않고 일일이 묻는 마음씨가 무척 고맙다.

오늘은 하스트 고개를 넘어 서부해안으로 간다고 한다. 이쪽은 한국 관광객이 거의 안 가는 곳이고 이재철씨도 박이사도 처음 간다고 한다. 가다가 번지점프 하는 곳에 내려 구경을 했다. 이곳은 세계 최초로 번지 점프를 한 곳이다. 원래 번지는 원주민들이 성인식 할 때 밧줄로 몸을 묶고 모래밭에 떨어뜨렸다고 한다. 이것을 본 영국 사람들이 스포츠 놀이로 만들었다. 이 날 마침 한국 사람이 처음으로 떨어졌는데 아들 며느리 이름을 불러대며 사랑한다아~’ 하고 떨어지는 모습을 보니 보는 내 가슴이 더 떨린다.

가다가 과일 가게에 들렀는데 다들 오랜만에 싱싱한 과일을 보니 이것저것 사느라고 정신이 없다. 과일도 좋지만 뒤 정원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용인 에버랜드에 온 것 같다.

여기서 모두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하며 이재철씨가 잘 비운 내 요강 만 리길도 두렵지 않다. 싹 비워라.” 하여 모두 배꼽 잡고 웃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잘 비워도 천리 길은커녕 백리 길도 못 간다.

가다가 공사로 일방통행 길이 나왔다. 거기서 깃발 들고 신호하는 사람이 보이자 이재철씨가 저 사람들 뭐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다들 몰라 멍하니 쳐다보니 고스톱 하는 거란다. 깃발 들어 올리면 (go)’ 가라는 것이고 내리면 스톱(stop)’ 서라는 것이니 고스톱 하는 것이란다.

하웨아 호수를 바라보며 가져간 도시락을 먹었다. 이렇게 전망 좋은 식당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고 싶다. 빙하가 녹은 물이라 그런지 물색이 기가 막히다. 무슨 색이라고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색이다. 그 호숫가에 일렬로 앉아 식사하는 우리 모습도 한 폭의 그림이다.

점심을 먹고 졸며 자며 가는데 갑자기 꼬끼오~”하고 수탉 우는 소리가 난다. 깜짝 놀라 일어나니 우리가 다 졸자 이재철씨가 우리를 깨우느라고 틀은 소리다. 그러더니 기상나팔 소리가 울리고 둥근 해가 떴습니다.” 노래도 나온다. 그냥 일어나라고 하지 않고 이렇게 깨우는 아이디어가 재미있고 기발하다.

하스트고개를 넘어가니 서부해안이 나타나고 하스트 빌리지가 나온다. 평온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니 폭스 빙하(Fox Glacier)가 나타난다. 모양은 멀쩡한데 왜 여우라는 이름이 붙었나 모르겠다. 빙하 끝자락까지 갔다 오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 빙하 끝에 가니 밧줄로 막혀있고 가이드와 동반하지 않은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고 쓰여 있다. 빙하 한 번 밟아보지 못하고 여기서 돌아서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쪽 팔에 깁스를 하고도 열심히 따라다니는 이순희씨가 고맙고 대견하다. 얼굴 한 번 안 찡그리고 웃는 모습을 잃지 않으니 같이 다니는 사람도 마음이 가볍다.

다음은 프란츠 조셉 빙하를 보러 갔는데 프란츠 조셉은 여기를 방문한 영국 총독의 이름이라고 한다. 프란츠 조셉 빙하는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리 전망대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나왔다. 이곳 안내판에는 매년 빙하가 얼마나 없어지는지 그림으로 표시해 놓았는데 그 어마어마한 규모가 지구 온난화를 실감케 한다.

빙하 관광을 마치고 프란츠 조셉 호텔에 도착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봄에는 씹새끼가 많다고?

아침에 식당으로 가니 호선생님과 이순희씨가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호선생님이 이순희씨에게 다치고 나서 더 예뻐졌다고 다치니까 남편에게 사랑을 많이 받나보다고 농담을 한다. 그러면서 자기는 주둥이가 다 튀어나와도 쳐다도 안 본다고 한다. 이순희씨가 다친 데도 급이 있다고 하니 병신도 등급이 있느냐고 맞받아친다. 다치고도 이렇게 농담 따먹기를 하는 두 사람이 눈물겹도록 고맙다. 호주와 연안한 타즈만 해협을 바라보며 달리다가 호키티카라는 마을에서 잠시 쉬었는데 바닷가로 나가니 바람이 강해 날아갈 지경이다. 파도가 덮칠 듯 역동적이다. 우리가 앞서 가며 해변가 고목에 앉아 사진을 찍으니 대장님이 뒤에서 오며 이제 가르칠 것이 없단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대장님 따라 6년을 다녔더니 척 보면 어디서 찍어야할지 감이 온다. 모래밭에 쓰러져 있는 고목을 바라보니 나무나 사람이나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똑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레이마우스에 도착해 킹스게이트 호텔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기서 기찻길이 시작되는데 우리는 아서스패스 국립공원에 가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거기까지 버스로 또 2시간을 가야한다.

뉴질랜드는 어딜 가나 양과 소, 사슴이 초원에 가득하다. 한 마디로 깔린 게 양이요. 널린 게 소다. 이 날은 간간히 비가 오니 벌판의 말들이 옷을 입었다. 들판의 양을 보더니 이재철씨가 봄에 오면 씹새끼가 많단다. 그게 뭔 소린가 하고 쳐다보니 봄에 양들이 새끼를 낳기 때문에 양 새끼(sheep 새끼)가 많다는 것이다.

아서스패스 국립공원에 도착하니 비지터 센터가 있고 그 안에 우리가 온 길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모형도 전시되어있다. 기차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동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동화 속 같이 아름다운 교회가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앞면이 유리로 되어있고 밖에는 푸른 숲과 폭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도 이런 곳에 교회를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조금 더 가니 폭포가 보였는데 폭포 옆 절벽에는 붉은 꽃이 피어있다. 마가목인가 했더니 라타꽃이라고 한다. 기차역으로 돌아오니 초등학생들이 바글바글하다. 동양 아이가 보여 어느 나라 아인가 했더니 한국 아이다. 3년 전에 크라이스트처치로 이민 왔단다. 장난이 심한 건 어느 나라 아이들이나 다 마찬가지다. 프란츠 알파인 기차를 타고 창 밖에 펼쳐지는 설산에 정신이 뺏겨 정신없이 바라보는 동안 어느 덧 기차는 크라이스트처치 역에 도착한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인구 36만 명의 소도시지만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 두 명이나 나왔단다. 원자모형을 만든 러더퍼드도 크라이스트처치 사람이라고 한다. 이미 어둠이 내렸는데 대성당과 시내를 둘러보았다. 여기는 카페 전차도 있는데 전차 안을 카페처럼 꾸며 놓았다.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관광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대성당 앞에서 졸업사진을 찍고 오랜만에 한식으로 식사를 했다.

 

 

쓰레기통에서 주워 먹다.

새벽 4시에 김밥을 먹으려니 들어가지를 않는다. 반씩만 먹고 양숙씨 것과 한데모아 공항에 가서 먹기로 했다. 가자마자 수속 밟으려니 밥 먹을 틈이 없다. 양숙씨가 김밥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짐을 부치고 잠시 짬이 나자 양숙씨가 버렸던 김밥을 다시 먹자고 한다. 버린 걸 어떻게 먹냐고 하니 잘 싸서 버렸기 때문에 괜찮다고 쓰레기통을 뒤져 다시 가져온다. 먹어보니 멀쩡하고 아까보다 맛이 있어 다 먹었다. 내참 내 생전에 쓰레기통 뒤져 먹기는 처음이다.

비행기에 오르니 음료수도 안 준다. 커피도 현금으로 내면 3달러, 카드로 하면 5달러라고 한다. 여기서도 한 컵 사서 여러 명이 나눠 먹었다.

시드니에 도착하니 가이드 김재길씨가 마중 나왔다. 시드니는 영국의 장관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본다이 비치로 갔는데 본다이는 바위에 부서지는 흰 파도 소리라는 뜻이라 한다.

바닷가에 내려가니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일광욕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슨 대회가 있는지 수 십 명이 모여 있다가 출발신호에 맞춰 바다로 뛰어든다. 모래를 밟고 버스로 오니 기사 아저씨가 기다렸다가 또 솔로 발바닥을 두들긴다. 신혼 첫날밤도 아닌데 왜 이렇게 발바닥을 두드려대는지 모르겠다.

다음은 더들리페이지로 갔다. 더들리인지 떠들리인지 모르겠는데 이 땅은 호주 정부가 일본 사람에게 팔았다가 시민연대의 반대로 8배의 값을 물어주고 다시 사들인 땅이다. 이때 시민연대의 대표자 이름이 더들리 페이지라고 한다.

여기서 무수한 요트가 정박해 있는 시드니의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고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했다는 갭(gap 틈새) 공원으로 갔다. 바닷가의 절벽이 인상적이었는데 빠삐용에서 죄수가 바다로 떨어졌다는 절벽 밑은 바위로 되어 있어 정말 떨어졌다면 두개골이 깨졌을 것 같다. 과연 이 공원에는 두 바위틈으로 바다가 보이는 곳이 있는데 갭 공원이란 이름이 지어진 이유를 알겠다.

오페라 하우스 앞으로 와 유람선을 타고 점심 식사를 하며 오페라하우스와 하버 브리지를 보았다. 바다에 떠서 보는 오페라 하우스는 더 멋지게 보인다. 오페라하우스도 객석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감상하게 되어있다. 보면 볼수록 멋지다. 여기서 오페라 한 번 감상했으면 좋겠다.

유람선에서 내려 맥콰리 포인트로 갔다. 맥콰리는 이곳의 6대 총독을 지낸 사람이다. 총독이 부인을 위해 조성한 이 공원은 아직도 영국 왕실 소유라고 한다. 이곳에는 맥콰리 총독이 부인을 위해 마련한 바위 의자가 있다. 큰 바위를 파내어 의자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도 여기 앉으면 총독 부인이라도 되는 듯 우르르 몰려가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맥콰리인지 맥카리인지 여기까지 다 보고 저녁 식사 후 호텔로 갔다. 체크인을 한 후 대장님이 다시 하버 브리지로 가서 그걸 걸어서 건너가자고 한다. 우리 호텔에서 시내까지는 꽤 멀기 때문에 호텔에 손님 싣고 온 봉고차를 100달러에 빌려 시내까지 갔다.

하버 브리지에 조명이 들어온 다음에 다리로 올라갔다. 밤에 바라보는 오페라하우스와 시드니 야경은 한층 더 환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다리를 다 건너 다시 오페라하우스로 가니 그 아래 카페에 젊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시고 있다. 어찌나 시끄러운지 호떡집에 불 난 것 같다. 우리도 오페라하우스를 다시 한 번 돌고 한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크림과 맥주를 먹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집에 갈 게 걱정이다. 김재길씨가 전철을 타고 맥콰리 대학 역에서 내리라고 했는데 이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우선 물어물어 전철역까지는 갔는데 티켓 발매기 사용법을 몰라 최선생님이 지나가는 청년을 데려왔다. 그 청년은 어디 가느냐고 묻더니 맥콰리 대학이라고 하자 자기 여동생이 그 대학 다닌다며 전화를 걸어 자세히 묻고 표를 끊어준다. 한 번에 4장씩 밖에 못 사니 똑 같은 동작을 네 번 되풀이 한다. 16명이 무사히 표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는데 어느 방향으로 가는 차를 타는지 모르겠다. 또 지나가는 청년을 붙들어다가 물으니 노선도를 보며 한참을 설명하다가 이상한지 갑자기

한국 사람이세요?” 한다.

우리는 박장대소하며 한국말로 시원스럽게 얘기했다. 한국말로 하면 이렇게 편한 것을 못 하는 영어로 말하며 이해하느라고 머리털 다 빠질 뻔 했다. 그 청년은 어학연수 온 지 두 달 됐다고 한다. 그 학생이 가르쳐준 방향으로 올라가 한 정거 가서 내려 빨간 노선으로 갈아타려니 또 어느 방향인지 모르겠다. 그 학생이 또 따라와 가르쳐주었는데 같은 노선이라도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5호선처럼 같이 가다가 갈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에 오는 차를 타지 말고 그 다음 열차를 타라고 한다. 그리고 맥콰리 공원역이 있고, 맥콰리 대학역이 있으니 안내방송을 잘 들으란다. 전광판 같은 게 없으니 주의해야한다고 자세히 일러준다. 꼭 어린애 혼자 보내는 것처럼 우리가 집 못 찾아갈까봐 걱정을 한다. 어느 새 우리가 이런 나이가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다음 열차를 타고 늦은 밤이라 잠이 들까봐 도끼눈을 뜨고 귀를 쫑긋 세웠다. 역에 설 때마다 역 이름을 확인했다. 노선표에서는 열 정거장이었는데 그냥 통과하는 역이 있어 헷갈린다. 우리나라는 다음역이 표시되어 있어 편리한데 여기는 현재역만 쓰여 있다. 열차 벽에 붙은 노선표를 보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무사히 내렸는데 다음에는 어느 구멍으로 나가서 어느 방향으로 갈 지를 모르겠다. 엘리베이터에서 동양인 학생이 있기에 최선생님이 한국인이냐고 하니 일본인이란다. 이번에도 이 학생에게 물어 겨우 겨우 방향을 잡아 걸어갔다. 오밤중에 낯선 거리를 가려니 이게 제대로 가는 건지 물어볼 사람도 없다.

한참 가니 드디어 우리가 묵는 호텔이 나온다. 호텔로 들어서자 미션 임파서블이라도 수행한 것처럼 맥이 쪽 빠지며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오매불망 비빔밥

이 날도 새벽같이 일어나 6시 반에 시드니 공항으로 향했다. 다시 하버 브리지를 건너는데 마침 아침 해가 떠오른다. 잘 가라고 배웅 나온 것 같다. 공항에 도착해 아시아나 항공에 오르니 모든 것을 무사히 마쳤구나 하는 생각에 긴장이 확 풀린다.

인천까지 오는 동안 밥을 두 번 주는데 처음에는 우리가 가장 꼴찌로 받았다. 두 번째는 공평하게 우리 좌석부터 시작한다. 마침 비빔밥 메뉴가 있기에 우리 열에 앉은 9명 모두 비빔밥을 시켰다. 우리 바로 뒤에 앉은 박이사님은 비빔밥 냄새가 죽인다고 이거 비빔밥 다 떨어지면 어쩌냐고 걱정이 태산이다.

우리는 밥을 다 먹었는데 그제야 우리 뒤쪽 줄 차례가 왔다. 세 명 다 비빔밥을 달라고 하니 두 개 밖에 없단다. 박이사님은 인솔자라는 이유만으로 오매불망 기다리던 비빔밥을 못 먹고 그냥 불고기 덮밥을 먹었다. 아마 집에 가자마자 비빔밥 사 먹을 꺼다. 이렇게 잘 먹고 잘 자다 보니 어느 덧 10시간 가까운 비행도 끝나고 인천 공항에 착륙한다.

 

공항을 나오며 생각하니 잠시 꿈을 꾼 듯도 하고 한편의 멋진 영화를 본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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