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0. 9. 24. 일본 북알프스

아~ 네모네! 2012. 10. 17. 21:22

 

 

 

 

 

 

 

 

 

 

 

 

 

 

좇나 개고생, 좇나 뷰티풀

 

기간 : 2010924~ 928

                                                    장소 : 일본 북알프스 (3190m)

 

일본에 있는 북알프스가 험하고 멋지다는 소리는 익히 들어왔다. 이번에 미투리산악회에서 여기 간다는 소릴 듣고 겁도 없이 따라 나섰다. 출발일이 다가오자 내가 주제 파악 못하고 또 사고 쳤구나 싶은 게 걱정이 앞선다.

 

걱정덩어리 ( 924)

남자가 나이 들면 덩어리란다. 집에 두고 나가면 걱정덩어리, 데리고 나가면 사고덩어리, 며느리에게 맡기면 골칫덩어리, 몇 가지 더 있는데 생각이 안 난다. 남편이 근무할 때는 그래도 마음이 덜 쓰였는데 퇴직한 남편을 혼자 집에 두고 나서려니 걱정이 앞선다.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사람도 별로 없고 한가하니 인천공항보다 한결 낫다. 우리 일행은 열한 명밖에 되지 않아 인솔자가 따라가지 않고 여행사 직원이 나와 설명만 해준다. 나고야 공항에서 출구로 나가 좌회전 후 우회전하여 연결통로를 지나면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여길 내려가 UP여행사 버스를 타라고 한다.

각자 체크인을 하려는데 양숙씨가 갑자기 아차한다. 왜 그러냐고 하니 여권을 전자 여권으로 바꿨는데 비행기표 예약은 구여권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양숙씨가 못 가게 되는 줄 알고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해 하고 있는데 여행사 직원이 제주항공 직원에게 물으러 가서는 양숙씨보고 오라고 손짓한다. 무슨 방법이 있나보다 하고 가보니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무비자라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더니 양숙씨도 이런 실수할 때가 다 있다.

1시간 반 정도의 비행 끝에 나고야 공항에 도착하니 여기도 동경 나리타공항보다 작고 한산하여 편안한 느낌이다. 김포에서 직원이 가르쳐준 대로 밖으로 나가니 버스 한 대가 달랑 서 있다. 앞 유리를 보니 ‘UP여행사라고 써 붙였다. 우리는 잽싸게 짐을 싣고 히라유로 향했다. 이동하며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우고 4시간을 달려 히라유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4시가 넘었다. 화장실이 어디 있나 두리번거리는데 벽에 붙은 종이가 보인다. 일어, 영어, 한자, 그리고 한글로 변소라고 쓰고 화살표를 해 놓았다. 한글까지 써준 마음씨가 고맙기 그지없다.

430분에 가미고지 가는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산길을 달렸다. 가미고지 버스 종점에 내려 짐을 끌고 20분 정도 걸어가니 고나시타이라 캠프장이다. 가는 길에는 나무에 원숭이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어떤 녀석은 땅으로 나와 유유히 걸어 다닌다. 하도 사람들이 오가니 우리에게는 관심도 없다.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내일부터 산행이다.

짐 정리를 한 후 저녁을 먹으러 가니 방에 밥상은 차려져 있는데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식은 밥을 대충 먹고 방으로 돌아왔다. 이 산장은 체크인 할 때 바구니에 요카버와 베개 카버를 주고, 손전등도 하나씩 준다. 난방을 하려면 800엔을 내라는 종이도 있었는데 우리는 별로 추울 것 같지 않아 그냥 잤다.

 

좇나 뷰티풀 ( 925)

먹고, 싸고, 찍고, 가고를 반복하며 10시간을 걸었다. 가미고지(1505m) - 요코오산장(1620m) - 야리사와롯지 - 야리가다케 산장(3020m)까지 가는 길에는 마가목 열매, 촛대 승마, 투구꽃 등이 피어 우리를 반긴다.

곳곳의 안내판에는 한글로 북알프스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말과 주의 사항이 쓰여 있어 기분 좋은 미소가 떠오른다. 산장이 자주 있어 노상 방뇨할 필요가 없으니 이 또한 맘에 든다. 화장실 앞에는 작은 통을 매달아 100엔 씩 넣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문이 잠긴 것은 아니고 그냥 알아서 넣도록 되어 있다. 동전이 없을 때는 그냥 사용하고 동전이 있을 때는 넣고 했다.

고도를 더할수록 악! 소리 나게 기막힌 경치가 우리 혼을 뺀다.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어 가는 듯하다. 풀밭을 지나 너덜지대로 들어서니 멀리 야리가다케 정상이 보인다. 송곳처럼 뾰족한 모양이 우리를 위협하는 듯하다. 정상 옆으로 오늘 우리가 묵을 야리가다케 산장의 빨간 지붕이 보인다. 일본이름은 영어보다 더 외우기 힘들어 야리가다케하나 외우는데 오늘 하루가 다 걸린다. ‘야리가다케인지 아이가 자다가 깼는지 도통 혀가 돌아가지 않는다.

너덜지대 갈림길에서 안사장님 부부는 계속 올라가고 나머지 아홉 명은 오른쪽 殺生산장으로 돌아 바위 능선 길로 올라갔다. 능선에 올라서니 발아래 깔린 구름이 천상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

일몰 전에 산장에 도착하려고 서두는데 마음만 급할 뿐 고소라 그런지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바위를 껴안고 안간 힘을 쓰다 보니 어느 덧 야리가다케 산장이다. 구름의 바다로 오늘의 태양이 가라앉고 구름은 핏빛을 발한다. 3000m 고도라는 생각을 잠시 잊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사진을 찍다보니 어느 덧 어둠이 내린다.

산장 안으로 들어가 배낭을 내려놓으니 그제야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고소에서 너무 경거망동했나보다. 얼른 타이레놀 두 알을 삼키고 잠시 자리에 누웠다.

식사하러 식당으로 가니 한국인 청년이 써빙을 한다. 이곳 산장에서 세 달간 근무하고 있단다. 내일 모레면 여기를 떠나 네팔에 가서 가이드를 한다고 한다. 우리가 오늘 날씨 참 좋다고 하니 자기가 세 달간 근무했어도 이렇게 좋은 날은 열흘 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 산장에서 한국 종업원을 만나니 갑자기 마음이 편해지고 힘이 솟는 듯하다.

저녁식사 후 달을 보러 밖으로 나가는데 일본 청년이 들어오며

좇나 뷰티풀한다.

좇나는 우리나라 애들만 쓰는 말인 줄 알았더니 일본 애들도 잘 쓰는 말인가 보다. 야리가다케 봉우리 옆으로 둥근 달과 이글이글한 목성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방으로 돌아와 이 얘기를 하니 좇나는 원래 매우라는 뜻의 일본말이란다. 나는 일본애가 우리나라 애들 말을 배워서 쓰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이를 닦으러 세면실로 가니 물이라고 꼭 병아리 오줌발처럼 가늘게 나온다. 그것도 꼭지를 누르고 있어야만 나오니 한 컵 받으려면 속 터질 지경이다. 대충 닦는 시늉만 하고 방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우니 양숙씨가 우스갯소리를 한다.

충청도 노부부가 자다가 할아버지가 할머니 쪽으로 돌아누웠다. 할머니가

할껴?” 하고 물으니 할아버지가 신이 나서 혼신의 힘을 다해 열심히 밤일을 했다. 다 하고 나서 할아버지가

어뗘?” 하고 물으니 할머니가

한 겨?” 하고 되물었다.

내가 아는 내용은 여기까지 인데 양숙씨는 속편도 알고 있었다. 이 말에 충격 받은 할아버지가 이거 안 되겠다 싶어 비아그라를 먹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먹다가 비아그라가 목에 걸렸다. 이걸 넘기려고 펄 펄 뛰니 그만 목이 뻣뻣해졌다는 것이다.

눈물이 나도록 웃다가 이번에는 내가 한 마디 했다. 남자가 나이 들어 꼭 있어야하는 세 가지가 무어냐고 물으니 돈, 건강 등 여러 가지 답이 나온다. 그게 아니고 첫째는 부인, 둘째는 와이프, 셋째는 마누라 했더니 또 다들 뒤집어지게 웃는다.

8시 반이 되어 소등이 되니 깜깜한 어둠 속에서 일찌감치 잠을 청했다. 하지만 너무 일러서 그런지 고소라 그런지 통 잠이 오지 않는다.

 

좇나 개고생 ( 926)

12시가 넘도록 뒤척여도 머리가 깨지도록 아프고 잠이 안 와 할 수 없이 일어나서 또 타이레놀 두 알을 먹었다. 계속 몸을 굴리다가 날밤을 새우고 새벽 4시 반에 일어났다.

야리가다케 정상에서 일출을 보려고 5시쯤 정상으로 향했다. 이마에 랜턴을 붙이고 앞 사람 엉덩이만 바라보며 바윗길을 기어 올라가니 몇 개의 철 사다리가 나타난다. 철사다리를 다 오르니 조그만 나무집을 지어놓고 槍亇岳(3180m)라는 팻말이 놓여있다.

두 명의 일본 남자애들은 예쁜 인형까지 가져와 정상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는다. 그 발상이 재미있어 나도 그 인형을 찍었더니 바라보고 웃는다. 앙증맞은 버너와 코펠까지 가져와 정상에서 커피까지 끓여 먹는 여유가 부럽다. 비위 좋은 양숙씨는 어느 결이 커피까지 한 잔 얻어먹고 같이 사진을 찍는다.

일출 사진을 실컷 찍고 내려와 아침 식사를 한 후 서둘러 산장을 떠났다. 가도 가도 암릉길이요 철계단과 쇠밧줄의 연속이다. 그래도 계단과 밧줄이 있는 곳은 갈만한데 이것도 없는 바윗길은 그야말로 서커스를 하듯 바위를 잡고 늘어져야한다.

미나미다케를 지나 기다호다카다케로 이어지는 바윗길은 우리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하다. 설상가상으로 후암씨는 다리에 쥐가 나서 쩔쩔 맨다. 일행 중 권선생님이 후암씨 다리를 주물러주고 발도 제쳐주고 하니 조금 나아졌다.

점심 도시락을 먹을 때까지는 그런대로 날씨가 좋았는데 서서히 구름이 끼더니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싸락눈까지 쏟아지니 바위는 젖고 얼고 하여 점점 더 미끌거린다. 추위에 사시나무 떨 듯 덜덜 떨며 바위를 잡고 씨름하는데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람이 떨어지면 보이지도 않고 곧장 황천길 가게 생겼다.

랜턴을 켜도 안개와 물방울이 서려 앞이 보이지 않으니 한 발작 내디디기가 힘들다. 진행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추위는 갈수록 심해지니 10시간이면 간다던 호다가다케 산장이 12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정표도 없고 가도 가도 바위뿐이니 마치 같은 길을 뱅뱅 도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모두들 조난당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지만 이것이 현실로 나타날까봐 감히 입 밖으로 내 뱉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최대장님은 침착하게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격려하며 우리를 이끌고 나간다. 사실 대장님도 말은 못하지만 똥끝이 탔을 것이다. 그래도 초조한 기색 없이 침착하게 우리를 리드하는 모습을 보니 백전노장이란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소린가 싶다. 이렇게 한 치 앞에 죽음을 느끼며 암흑 속에서 헤매는데 앞에서 갑자기 저기 불빛이 보인다고 소리친다. 과연 앞을 보니 희미한 불빛이 안개 속에 나타난다. 불빛을 보니 이제 살았구나 싶고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더듬더듬 앞 사람을 따라 내려오니 몇 개의 텐트가 보이고 산장 건물이 보인다. 산장 안으로 들어서자 산장지기 여자가 수건을 한 장씩 나눠주며 물기를 닦으라고 한다. 잠시 후 후암씨가 쓰러질 듯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달려가 후암씨를 껴안고 눈물을 쏟았다. 생사를 같이 한 전우가 된 기분이다.

산장사람들도 비는 오고 어두운데 우리가 도착하지 않자 엄청 걱정을 했다는 것이다. 저녁 식사 후 젖은 옷을 입은 채로 배낭을 들고 건조실로 들어갔다. 여기서 젖은 물건을 꺼내 놓고, 배낭도 말리고 사람도 말리며 앉아 있으니 차차 추위가 가신다.

대충 말리고 방으로 돌아오니 8시 반이 되어 곧 불이 꺼진다. 하루 종일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눈만 감으면 바위길이 나타난다. 길도 없는 바위를 기어오르려고 나도 모르게 몸을 비틀며 안간 힘을 쓰느라 잠이 들지 않는다. 오늘은 일출 보러 야리가다케에 오른 것까지 열 세 시간을 걸었다. 온몸이 흠씬 두들겨 맞은 듯 쑤시고 아프다. 밤새 빗소리가 주룩주룩 들린다.

 

방금 해산 했슈? ( 927)

아침에 일어나니 안개는 자욱한데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다. 200엔을 주고 끓는 물을 채운 후 6시 반에 산장을 출발했다. 골짜기를 타고 오르는 안개가 가끔씩 산을 열어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안개 속을 헤매며 1시간쯤 오르니 드디어 북알프스의 정상 오쿠호다가다케(3190m)가 나타난다. 오다가다 깨는지 자다 가다 깨는지 정말 일본산 이름은 발음하기 힘들다. 정상에 오르자 갑자기 안개가 걷히며 끝없이 이어지는 고산준령이 나타난다. 정신없이 찍어대는데 순간 다시 베일로 가려 버린다. 여기도 둥근 돌탑 위에 작은 나무집이 있고 정상 팻말이 붙어 있다.

정상에서 내려와 하산을 서둘렀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골짜기 속에 무지개가 보인다. 내 생전에 골짜기 속에 생긴 무지개는 처음 본다. 골짜기에 가득한 안개 방울이 등 뒤에서 오는 햇빛을 굴절시켜 무지개가 생긴 모양이다.

너덜지대를 마냥 내려오니 다케사와 산장이다. 여기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가미고지로 향했다. 여기부터는 야생화도 보이고 나무도 있어 한결 부드러운 느낌이다. 보라색 초롱꽃과 벌개미취에 한눈을 팔다보니 어느 새 풍혈이 나타난다. 여름이면 찬바람, 겨울이면 더운 바람이 나오는 얼음골 같은 구멍이다.

8시간의 산행 끝에 북알프스 종주 종착점에 다다랐다. 여기서 기념사진을 찍고 습지 구경을 하며 다른 사람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대장님과 권선생님은 안사장님 부부가 무릎이 아파 늦어진다고 배낭을 져주러 다시 올라갔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니 모두 도착하여 가미고지의 하동교로 향했다. 우리가 걸었던 능선이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하동교를 건너 첫 날 묵었던 산장에 가서 맡겼던 짐을 찾았다. 시간이 늦어 샤워는 생략하고 버스터미널로 내려와 나고야로 향했다.

낮에는 잘 참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고소에서 3일간 지냈더니 얼굴이 부어 쌍꺼풀도 풀리고 눈이 뻑뻑하다. 양숙씨가 내 얼굴을 보더니

형님 방금 해산 했슈?” 하고 놀린다.

막 해산한 사람처럼 얼굴이 누렇고 퉁퉁 부었다는 것이다.

8시 반이나 되어 나고야 뷔페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안사장님 부인은 남편 팔에 매달려 절뚝절뚝 쩔쩔 매며 걷는다. 어지간히 다리가 아팠나보다. 그래도 이렇게 부부동반으로 다니는 모습이 볼수록 아름답다.

도쿄인 호텔에 도착하여 펑 펑 쏟아지는 물로 이 닦고 샤워하려니 우리가 평소에 엄청 많은 것을 누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샤워하며 코를 푸니 코피가 나온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코피 터져가며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보송보송하고 따뜻한 침대에 누워 생각하니 삼일 간의 산행이 꿈결 같고 까마득한 옛일 같다. 어쩌면 산이란 오르라고 있는 것이 아니고 기대어 살라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시건방 떨지 말고 산 밑에서 산에 기대어 겸손하게 살아야겠다.

 

어머니 자궁 속으로 ( 928)

아침 식사 하러 로비로 내려가니 또 비가 내린다. 식당 밖으로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식사하는 우리 회원들의 모습이 기막히다. 후암씨와 수영씨는 벌써 식사를 마치고 바닷가를 걷고 있다.

식사 후 양숙씨와 함께 산책에 나섰다. 비 내리는 바다는 또 다른 깊은 맛을 연출한다. 호텔로 돌아와 대장님에게 야리가다케 등정증을 받고 공향으로 향했다. 공항은 호텔에서 걸어서 5분 거리다.

두 시간의 비행 끝에 김포로 들어오니 멀리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용마산이 이어진다. 용마산 밑에 있는 우리 집도 보일 듯하다. 눈에 익은 산을 바라보며 공항 활주로로 들어가는 것이 마치 어머니 자궁 속으로 들어가는 듯 편안하다.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려니 5일간 빈 집에서 혼자 지냈을 남편 생각이 난다. 해외에 나갔다 올 때마다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찡하다. 어찌 생각하면 살림도 못하고 애교도 없는 주제에 뻑 하면 짐 싸들고 나서는 나 같은 사람과 여태 살아준 게 고맙기도 하다. 그래도 몇 달 지나면 또 좀이 쑤셔서 배낭 챙겨 들고 집을 나설 것이다.

이번 여행은 한 마디로 좇나 개고생 했지만 좇나 뷰티풀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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