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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3. 8. 욕지도 연화도

아~ 네모네! 2012. 10. 21. 15:17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기간 : 201138~ 39

                                                     장소 : 경남 통영시 연화도, 욕지도

연화도하면 연화 아가씨가 웃으며 나와 반겨줄 것 같은데. ‘욕지도에 가면 어쩐지 욕지거리를 들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무식의 소치일 뿐 욕은 하고자할 이고 지는 알고자 함을 뜻한다고 한다.

 

바다에 떠오른 한 송이 연꽃 ( 38)

욕지도는 몇 년 전 한 번 가봤지만 연화도는 처음이다. 잠실에서 버스에 오르니 회원이 20명밖에 안 되어 1인당 두 자리씩 차지하고 널널하게 앉았다. 안순자씨는 옆의 두 자리까지 비어 네 자리를 차지하고 길게 눕더니 다리가 짧아 안 되겠다고 두 자리만 차지하고 눕는다.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서 1시 배를 타고 연화도로 향했다. 쾌속선으로 50분 정도 달리니 연화도에 도착한다. 오늘의 숙소인 용머리 횟집에 들러 짐을 맡기고 산으로 향했다. 능선 길을 조금 오르니 시야가 탁 트이며 푸른 바다가 빛난다. 쪽빛의 푸른 바다가 어찌나 짙게 보이는지 풍덩 빠지면 온몸에 푸른 물이 들 것 같다.

갑자기 대장님이 우리가 탔던 배의 선장에게 전화를 걸어 핸드폰이 없느냐고 묻는다. 박경은씨가 핸드폰을 배에 두고 왔다는 것이다. 한참 후에 찾았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산행을 계속했다.

50분 오르니 멀리 하얀색의 아미타대불과 두 개의 석등이 보인다. 수영씨는 벌써 올라 부처님 앞에 조아려 절을 한다. 우리의 무사 산행을 빌고 있을 것이다. 여기가 연화봉(212m) 정상이다. 정자 옆에 연화봉 정상 표지석이 있다. 멀리 용머리가 아련히 보인다.

용머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보덕암을 향해 내려오니 연화도인의 토굴이 나타난다. 토굴은 집을 지어 놓고 안에 도인의 석상이 모셔져 있다. 그 아래는 사명대사의 토굴이 있고 여기도 석상이 있다.

연화도는 전설 속의 세 여인이 머물던 곳이다. 조선 중기에 사명대사는 억불정책으로 지리산 쌍계사에서 머물다가 조실 스님을 만나 남해도 보리암으로 옮겼다. 여기서 기도하던 중 사명당을 찾아 전국을 헤매던 세 여승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다름 아닌 사명당의 여동생 보운(임채운), 사명당의 처 보월(김보구), 애인 보련(황현욱)이다.

이들은 이것을 불가의 인연이라 생각하고 연화도로 옮겨 지금의 연화봉 밑 이 토굴에서 수도 정진하여 득도하게 되었다. 이 세 비구니를 자운선사라고 하는데 이들은 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이순신 장군을 만나 거북선 제조법, 해상 지리법, 천풍 기상법 등을 알려 주었다.

연화도인은 이곳에서 기도하다가 속세를 떠날 때 앞바다에 수장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유언대로 수장했더니 그 자리에서 한 송이 연꽃이 피어올랐고 이것을 기념하여 섬이름을 연화도라 하였다. 실제로 북쪽 바다에서 연화도를 보면 꽃잎이 하나하나 겹겹이 봉우리 진 연꽃 모양이라고 한다.

토굴을 지나 능선 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오니 보덕암이 있다. 보덕암에는 동백꽃이 반발하여 푸른빛 바다와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보덕암 동백꽃 속에 하얀색의 해수관음상이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다.

해수관음상은 목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목걸이가 탐나네.” 했더니 불자인 금형씨가 목걸이보다 손에 들고 있는 병이 좋은 거란다. 그게 뭐냐고 하니 온갖 병을 낫게 하는 약이 들었단다. 그저 값싼 보물에 눈이 어두워 진짜 보물을 보지 못하는 나 같은 인간을 일컬어 무지 몽매한 중생이라고 하나보다.

대바위와 망부석을 지나 용머리 끝까지 갔다가 다시 큰 길로 나와 원래길로 접어들었다. 원래길 입구에는 온통 억새밭이다. 누런 억새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바람과 함께 춤을 춘다. 길가에는 곳곳에 벤치가 있어 바다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원래길을 따라 봉화대를 향해 올라가는데 먼저 올라갔던 사람들이 벌써 내려온다. 봉화대가 있느냐고 하니 봉우리 끝에 있다고, 돌아올 때는 갈대밭 사이로 내려오란다. 봉우리 꼭대기까지 올라가 아무리 봐도 봉화대가 안 보인다. 수영씨는 왼쪽 길로, 은진씨는 오른쪽으로 내려가며 아무리 찾아도 없다. 무전기로 대장님에게 물으려 해도 무전기가 불통이다. 봉화대 찾아 삼만 리로 헤매다가 수영씨가 핸드폰으로 대장님께 물으니 봉화대가 있는 게 아니고 봉우리 꼭대기에 작은 삼각점 표지가 있고 그 위에 십자가가 새겨졌단다. 이번에는 땅을 보며 샅샅이 뒤졌더니 어린애 조막만한 삼각점 표지석이 보이고 그 위에 십자표시가 보인다. 이걸 보니 허탈감에 맥이 빠진다. 우리는 태백산이나 마니산에 있는 거대한 돌탑 같은 걸 찾았으니 이게 눈에 뜨일 리가 없다.

그래도 목표물을 찾았으니 미련 없이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벌써 해는 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려 한다. 억새밭 길로 내려오며 용머리를 보니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나아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동두마을을 지나 포장길을 따라 연화선착장으로 향했다. 뒤에 있던 은진씨가 자꾸 더 뒤쳐진다. 강정숙님이 오더니 은진씨가 체했는지 토한다고 한다. 돌아보니 길옆에 앉아 있다. 엄청 괴로운가 보다. 걷다가 뒤돌아보니 오다가 다시 돌아간다. 나중에 물으니 장갑을 두고 와서 다시 갔단다.

연화 선착장에 도착하니 한 여자가 바구니를 들고 가며 이 시간에 산에 가느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석양을 보러 간다고 하며 연화 리조트 쪽으로 가서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붉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갈매기가 날고 있다. 지는 햇빛으로 바다에는 붉은 다리가 놓였다. 꼴깍 꼴깍 넘어가는 해에게 빠이빠이 인사를 하고 용머리횟집으로 들어오니 벌써 식사가 한창이다. 박경은씨가 핸드폰 찾은 기념으로 맥주를 샀다.

참돔 회에 정신이 팔려 한참 먹다 보니 은진씨가 안 보인다. 대장님께 은진씨가 체해서 토했다고 하니 2층으로 올라간다. 2층에 가니 문이 잠겼다고 하여 연옥씨가 다시 가보니 아무도 없단다. 웬일인가 걱정 되어 빨리 먹고 올라가니 은진씨가 화장실에 있다. 어디 갔었느냐고 하니 우리가 만났던 아줌마가 보건소까지 안내해줘 보건소에 갔었단다. 보건소에서 부항도 뜨고 손발 다 따고 약 먹었더니 좀 가라앉았단다. 그새 눈이 휑하니 십리는 들어갔다. 그래도 우리가 걱정할까봐 괜찮다고 말한다.

대장님이 올라오더니 다들 노래방 갔으니 샤워하고 노래방으로 가란다. 노래라면 자다가 귀신 봉창 두드리는 소리밖에 낼 줄 모르니 그냥 자리에 누웠다. 한참 있으니 노래자랑이 끝났는지 다들 들어온다. 고미혜씨가 한 턱 쏴서 한바탕 잘 놀았단다.

방이 작아 네 명이 자는데도 똑바로 눕기가 힘들다 옆으로 세워 누워서 잠을 청했다. 방바닥은 왜 그리도 뜨거운지 왼쪽 구웠다 오른쪽 구웠다 하며 뒤척이려니 바람 소리가 요란하다. 이래가지고 내일 배나 들어올지 걱정이다.

비몽사몽간에 헤매는데 난데없는 전화소리가 난다. 누구 배낭에서 알람소리가 난다. 한참 울려 끝났나 했더니 잠시 후 또 울려 댄다. 몇 번씩 울려대니 수영씨가 배낭을 뒤져 핸드폰을 꺼내 거실로 내놨다.

 

향학열에 불타는 섬 욕지도 ( 39)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사람 날아갈 지경이다. 등대까지 가려다가 포기하고 바람에 쫓겨 다시 들어왔다.

750분에 연화도를 출발하여 15분 가니 욕지도항이다. 항구에 기다리던 시외버스를 타고 점심을 먹기로 한 늘푸른 횟집에 짐을 맡긴 후 두 팀으로 나눴다. 선두팀은 버스를 타고 야포까지 가서 섬종주 산행을 하기로 하고 후미 팀은 섬관광을 하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려 가파른 길을 오르니 일출봉에 이른다. 여기서 우측으로 능선 길을 따라가니 망대봉에 이르고 망대봉을 지나 계속 가니 왼쪽에 칼로 벤 듯한 바위가 나타난다. 홈통바위다. 홈 사이로 보이는 새파란 바다가 눈부시다.

따끈따끈한 햇볕을 가리느라 챙 넓은 모자에 버프에 면 수건으로 온통 가린 우리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난다. ‘잠시 후면 이 햇볕을 받고 싶어도 못 받을 텐데햇볕은 나를 통과해 버리고 그림자도 없을 텐데하는 생각이 든다.

억새밭 길을 지나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환상 속에 걸음을 계속하니 대기봉이 나타난다. 대장님은 대기봉에서 대기하고 우리끼리 전망바위(마당바위)를 보러갔다. 전망바위에는 돌탑이 있고 여기서 바라보니 오늘 지나온 일출봉, 망대봉이 아련하다.

다시 대기봉으로 돌아와 대장님과 천왕봉을 향했다. 천왕봉에는 군 기지가 있어 정상에 설 수 없지만 그 옆 전망대까지는 갈 수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데 개소리가 들린다. 웬 개소리인가 하고 철조망 안쪽을 보니 강아지 두 마리가 우리를 향해 꼬리를 흔들며 짖고 있다. 오랜만에 사람구경하니 같이 놀자고 하나보다.

전망대에는 이세선 통제사 친행 암각문이 있다. 숙종 15(1689) 65대 통제사 이세선이 욕지도에 진영을 설치하기 위해 현지 답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새긴 암각문이다. 욕지도는 지식에 대한 욕망이 강해서 산꼭대기에도 글을 새겨놨나보다.

천왕봉에서 다시 내려와 태고암으로 하산했다. 태고암은 한창 공사 중이다. 스님이 내려오며 약수물을 먹고 가라고 한다. 시원한 약수로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1시 배를 타려면 서둘러야한다.

골목길을 이리저리 따라 내려오니 바닷가에 이르고 늘푸른 횟집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니 후미 팀은 벌써 와서 부지런히 먹고 있다. 후미 팀은 봉고차를 빌려 새천년 기념공원과 새 에덴동산에 다녀왔단다. 점심때는 오랜만에 나온 홍훈자님이 맥주를 냈다.

점심 메뉴는 도다리 쑥국이다. 말만 들었지 난생 처음 먹어보는지라 맛이 어떤가 궁금했는데 그야말로 천하 일미다. 국물이 개운하고 쑥향이 입안에 가득해 혀끝에서 맴돈다.

배가 도착했다고 하여 부두로 나와 배에 오르니 이틀 동안의 산행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갑판에서 멀어지는 천왕봉을 바라보니 가슴 뿌듯한 게 큰 과업이라도 수행한 듯 가슴이 벅차다. 선실로 들어와 의자에 기대앉자 배부르고 등 따시니 눈이 절로 감긴다.

잠시 졸다 보니 벌써 통영이다. 통영 터미널에 내리니 촌사람이 갑자기 상경한 듯 눈이 휘둥그레진다. 섬에서 이틀 살다 뭍에 내리니 건물은 휘황찬란하고 차들은 쌩 쌩 달리는데 정신이 하나 없다. 그새 도시생활 다 잊었나보다.

통영에서 거제도로 가 작년에 개통된 거가대교를 건넜다. 바다 위에 걸쳐진 그림 같은 다리를 보니 예술작품을 보는 듯하다. 해저터널을 지날 때는 우리나라의 뛰어난 토목기술에 가슴 뿌듯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남성주 휴게소에 들러 회장님이 통영에서 사온 통영김밥과 부회장님이 낸 우동으로 간단한 저녁식사를 했다. 다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후딱 해치운다. 버스에 올라 눈을 감으니 연화도와 욕지도가 눈앞에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햇빛은 쨍 쨍, 바람은 산들 산들, 산길은 뽀송뽀송.

경치는 천하절경, 음식은 천하일미라 이보다 더 좋은 순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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