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2. 4. 19. 에티오피아, 우간다, 두바이

아~ 네모네! 2012. 10. 21. 21:52

 

 

 

 

 

 

 

 

 

 

 

 

 

 

~ 간다~

 

                        기간 : 2012410~ 427

                                                      장소 : 에티오피아, 우간다, 두바이

  아프리카 여행은 이번이 네 번째다. 아프리카는 라틴어 aprica(햇볕 쬐는), 그리스어 aphrike(추위가 없는), 이집트어 af-rui-ka(고향) 등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아프리카는 햇볕이 강하게 쪼여 추위가 없는 우리 인류의 고향이다.

 

밥 먹을 때 깨워라 ( 410)

  밤 1155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모여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다 보니 정원식님의 딸 선균씨가 갑자기 눈물을 주르르 흘린다. 웬일인가 했더니 미국 유학 중에 있는 딸에게서 메일이 왔는데 그걸 보다가 울었다는 것이다. 무슨 사연인가 물으니 내일이 선균씨 생일인데 생일 축하 한다는 내용이란다.

  아니 별 일도 아닌데 그렇게 울다니 내 수준에서는 이해가 안 간다. 몸매도 야들야들, 얼굴도 야들야들한데 아마 마음도 무척이나 여리고 야들야들한가보다. 나는 마른 장작개비 같아서 웬만한 일에는 아무 감흥이 없이 맨송맨송하다.

  비행기에 오르니 잠이 쏟아진다. 잠을 자려니 밥 줄 때 깨지 못해 밥 굶을까봐 걱정이다. 이어폰이 든 비닐봉지를 여니 조그만 스티커가 들어있다. 스티커에는 세 종류의 문구가 있다. ‘깨우지 마라.’ ‘밥 먹을 때 깨워달라.’ ‘면세품 팔 때 깨워달라.’는 말과 그림이 함께 그려져 있다. 밥 먹을 때 깨워달라는 스티커를 떼어 앞에 붙이고는 맘 편히 꿈나라로 들어갔다.

이렇게 세심한 배려를 해주는 에미레이트 항공사가 고맙다.

 

새 꽃 아디스아바바 ( 411)

  이번 여행의 룸메이트 봉자씨는 순둥이처럼 깨지도 않고 잘 잔다. 나중에 들으니 아예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단다. 비행 중에는 이것도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두바이는 까만 카펫에 다이아몬드를 뿌려 놓은 듯 반짝인다. 공항에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려니 문이 두 짝이다. 이렇게 큰 엘리베이터는 첨 봤다. 서울 촌년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두바이 공항을 출발해 4시간의 비행 끝에 이집트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 짐을 찾다가 정원식님이 가져온 모자를 포터에게 주었다. 멋진 모자를 보더니 너도 나도 달라고 난리다. 어떤 사람은 한 개는 머리에 쓰고 하나는 얼른 주머니에 감춘다. 다른 직원이 오더니 포터가 쓴 모자를 빼앗아 자기가 쓴다. 어디서나 약육강식은 있게 마련이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모자를 엄청 좋아하나보다.

  출구 밖으로 나가자 가이드 이고(yigo)가 우리를 맞이한다. 까만 얼굴에 머리를 가닥가닥 땋아 내린 청년이다. 클레오파트라를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이다. 에티오피아는 이곳 고유 언어인 암하라어로 태양에 그을린 얼굴이란 뜻이라더니 길거리에 온통 검은 얼굴이 가득하다.

  성경에 보면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가 특출하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예물을 가지고 솔로몬 왕을 찾아간다. 솔로몬을 만나본 여왕은 소문이 실제의 반도 안 되었다고 솔로몬의 지혜에 탄복한다. 일설에 의하면 여왕은 솔로몬과 지혜 겨루기에 져서 솔로몬과 잠자리를 같이 하였고 여기서 태어난 아들이 에티오피아의 초대황제인 메넬리크 1세가 되었다고 한다.

  버스에 오르자 이고가 출석을 부르겠단다. 박명수씨를 부를 때 명수씨가 손을 들자 은 잘 안다고 한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축구선수 박지성 때문에 박씨는 잘 안단다. 박지성은 역시 세계적인 스타다.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는 동안 로비를 돌아보니 한 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웬일인가 쳐다보니 웬 여자가 커피를 볶아 즉석에서 갈아 물을 부어준다. 맛을 보니 쓰디 쓴 탕약 같다. 에티오피아가 커피의 원산지라고 하여 엄청 맛있을 줄 알았더니 나는 역시 삼박자 커피(커피, 프림, 설탕 다 넣은 것)가 최고다.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이고가 아디스아바바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메넬리크 황제 때 에티오피아의 수도는 은또또산에 있었다. 이 산은 적을 방어하기는 좋았지만 모든 물자를 산으로 올려야하는 어려움이 있었고 물도 부족했다. 황후는 자신의 별장을 은또또산 아래에 지었는데 마침 온천도 발견되었고 여기서 처음 보는 새로운 꽃이 피어났다. 그래서 왕비는 이곳의 이름을 새 꽃이라는 의미의 아디스아바바라고 지었다.

  박물관에는 루시라는 이름의 320만 년 전 인류화석이 있다. 1974년 미국의 인류학자 요한슨 교수가 처음 발굴할 때 조사대의 캠프에서 마침 비틀즈의 루시라는 곡이 흘러 나왔다. 그는 이 곡의 이름을 따서 루시라고 이름 붙였다. 진품 루시는 지금 아메리카로 여행 중이라 모조품만 진열되어 있었다.

  은또또산으로 오르는 길에는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는 할머니들이 많았는데 그 짐이 어찌나 큰지 사람이 주저앉을 지경이다. 여기서는 주로 여자들이 농사짓고, 나무해오고 힘든 일을 다 한다고 한다. 남자는 뭐하냐고 물으니 집에서 요리한단다. 에티오피아 남자들 참 팔자도 좋다.

  길옆의 집들을 보니 벽 위에 유리 깨진 것들을 박아 놓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이런 집이 많았는데 이런 모양을 보니 새삼 우리의 과거를 보는 듯하다.

  저녁에는 한식당에서 소고기와 돼지고기로 배를 채웠다. 마침 오늘이 선균씨 생일이라 이름까지 쓴 생일 케익을 놓고 다 같이 축하 노래를 불렀다. 나는 수 십 번 해외여행 다녀도 생일 한 번 걸린 적 없는데 선균씨는 한 번에 대박 났다.

 

묻지마 비행 ( 412)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 식사하러 가니 김사장님이 한국 소식을 알려준다.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여 국회의원 과반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박근혜씨가 손목에 붕대 감고 열심히 돌아다니더니 효과가 있었나보다.

  바히르다르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위해 공항으로 가니 사방은 캄캄한데 청사 밖으로 긴 줄이 늘어서 있다. 공항 청사 문 앞에서 엑스레이 검사를 하니 문 밖에서 몇 십 분씩 기다려야한다.

  겨우 겨우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 비행기표를 받아보니 편명도, 좌석 번호도, 이름도, 행선지도 없는 백지 비행기표다. 우리는 기가 막혀 멍하니 들여다보며 이거야 말로 묻지마 비행이라고 배꼽 잡으며 웃었다.

  보딩을 할 때도 지정 좌석이 없으니 완행열차 타듯 밀치며 달려가 좋은 자리를 차지해야한다. 회장님 부부와 정원식님 모녀도 날쌔게 달려가 앞자리를 잡았다. 잠시 앉아 이륙을 기다리는데 승무원이 와서 회장님과 정원식님에게 뒤로 가라고 한다. VIP 손님이 있다는 것이다. 양보할 수 없다고 버티자 옆의 현지인에게 양보하라고 한다. 결국 그들이 뒤로 쫓겨 가고 새 승객이 들어와 앞자리를 차지한다. 공무원인지 제복을 입고 금배지를 달았다. 권력이 남용되는 후진국 냄새가 난다. 쿠리프트 리조트에 도착해 보니 이들도 우리와 같은 리조트로 들어온다.

  바히르다르에 도착하니 이고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돈다. 여기가 자기 고향이란다. 자기는 이 도시에서 27년 전에 태어났는데 공기가 깨끗하고 호수가 있어 물 걱정도 없다는 것이다.  

  바히르다르는 2006년에 아프리카에서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 되었고 다음 수도의 후보지는 이곳이라고 자랑을 한다.

  얼마를 달려 타나 호수에 도착하니 바다 같이 넓은 호수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곳곳에 섬이 있어 그림같이 아름답다. 보트를 타고 호수를 건너 제게반도로 갔다. 우라키다네, 메렛고대 수도원 등을 보았다. 수도원에는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곳이 많았는데 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하기 쉽게 하려고 만든 것 같다. 섬에도 수도원들이 있는데 남자만 들어갈 수 있는 수도원도 있고 남녀 모두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있다. 수도사들은 한 번 수도원에 들어가면 평생 이 섬에서 나오지 않고 수도한다고 한다.

  점심 식사 후 식당에서 나와 블루나일 폭포로 가려는데 경찰들이 나와 길을 막고 있다. 고위 공무원이 지나야하니 기다리라는 것이다. 늘상 있는 일인지 운전기사는 뒷골목 길로 요리조리 빠져 간다. 한참 가다가 큰 길로 나가니 한쪽에 대형 군인 트럭이 길 전체를 막고 있다. 이고에게 도대체 고위 공무원은 누구냐고 어디까지가 고위냐고 물으니 시청에 근무하는 정도면 고위란다. 이런 지경이니 툭하면 길을 막고 자리 뺏는 일이 생기나보다.

  블루나일 폭포를 보기 위해 산등성이로 오르는데 아이들이 따라오며 볼펜 달라 캔디 달라하며 손 벌리고 달려든다. 명수씨가 한 아이에게 주자 순식간에 벌떼 같이 달려들어 둘러싼다. 어떤 아이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낫을 든 채로 달려온다. 명수씨는 기겁을 하며 도망치듯 우리를 따라왔다.

  산등성이를 넘어가자 다리가 나온다. 출렁다리를 건너자 장엄한 폭포가 나타난다. 우기에는 폭포의 폭이 400m가 된다는데 지금은 건기라 그 정도는 안 되어도 엄청남 물줄기가 그 위용을 자랑한다.

  타나호수에서 발원한 이 청나일강은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된 백나일강과 수단에서 만나 나일강이 되어 이집트를 지나 지중해로 흘러들어간다고 한다. 폭포 옆의 고원지대로 올라가 청나일강을 건너 우리의 리조트로 돌아왔다.

  점심때는 정연씨가 가져온 더덕무침으로 입 호강을 하였는데 저녁때는 오이소박이로 또 우리 입맛을 사로잡는다. 정연씨는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날씬한데 요리까지 잘 한다. 원장님은 어디에 복이 들어 이런 부인을 얻었나 모르겠다. 복이 눈에 들었나 코에 들었나 입에 들었나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그 넓은 마음에 복이 들었나보다.

  얼굴도 박색에 요리 솜씨도 엉망인 나의 남편은 빈 집에 혼자 앉아 양숙씨가 만들어 준 반찬으로 밥 잘 먹나 모르겠다. 내가 여행 오기 전날 양숙씨가 만나자고 하더니 점심 사주면서 잘 다녀오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여행 간 동안 아저씨 드시라고 반찬도 세 가지나 해 주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내가 못하니까 주위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항상 끊이지 않는다.

 

코리안 로드 ( 413)

  새벽에 일어나 호숫가를 산책하는데 해가 떠오른다. 일출을 보고 식당으로 가니 다들 나와 자리에 앉아 있다. 식사 후 옛 에티오피아 수도였던 곤다르로 향했다. 곤다르에서 옛 왕궁인 파실게비를 보았다. 파실게비성은 곤다르 최초의 성으로 네 모서리에 둥근 지붕의 타워가 있다. 이 달걀모양의 지붕 때문에 계란성이라고도 한다. 파실라다스 목욕탕은 큰 풀장 안에 2층 건물이 있다. 평소에는 물이 없고 매년 1월 물의 축제 때만 물을 채우고 예수세례와 성수의식을 행한다고 한다.

  데브레 비르한 셀라시에 교회에 그려진 그림을 보려고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발을 내딛기도 힘들다. 이 교회를 보고 시미엔산 국립공원으로 달렸다.

  가다가 포장길이 나오면 코리안 로드, 비포장 길이 나오면 차이나 로드라고 이고가 농담을 한다. 그래도 좋은 길을 코리안 로드라고 해주니 기분은 좋다. 하지만 포장길은 별로 없고 온통 돌투성이 먼지투성이 비포장 길이다. 차에 에어컨도 안 나오니 창문을 열고 가다가 앞에 차가 나타나면 번개같이 창문을 닫아야한다. 수 십 번씩 창문을 여닫으려니 팔이 후들거리고 손바닥이 아프다.

  창문으로 해가 들자 앞에 앉은 명수씨는 남편에게 안면 마스크를 씌워준다. 가만히 살펴보면 꼭 애기 보살피듯 한다. 나는 남편을 소 닭 보듯 하며 야생마처럼 놓아먹이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희한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시골길을 달리다가 차가 서면 어디서 슬금슬금 아이들이 몰려든다. 서울서 가져온 옷과 학용품, 사탕을 주면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린다. 우리가 나눠주면 마구 달려들던 아이들도 이고가 나눠주면 줄을 서서 얌전히 기다린다. 이고는 아이의 나이를 생각해서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으로 사려 깊게 잘도 나눠준다. 뒤에 서 있는 할아버지에게 바지를 하나 주자 주름진 얼굴에 희색이 만면하다.  

  서울서는 유행 지났다고 싫증난다고 마구 버리는 옷이 여기서는 명품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

길옆의 시멘트로 된 통에 자물쇠가 잠겨져있기에 무엇인가 했더니 우물이란다. 물이 하도 귀하니 누가 훔쳐 갈까봐 이렇게 단속을 하나보다. 수돗물 마구 틀어놓고 샤워하는 우리 모양이 죄스럽다.

한참을 더 달려 차밭에 도착했다. 일종의 마약차를 재배하는 곳이다. 선균씨가 차에서 내리자 한 청년이 다짜고짜 결혼하자고 한다. 어이없어 쳐다보는 선균씨에게 계속 전화번호 달라고 조른다.  

  선균씨가 하도 어려보이니까 처녀인 줄 아나보다. 2 학생인 아들이 있는데 말이다. 참 순진하다고 해야 하나 무모하다고 해야 하나? 암튼 재미있는 아이다. 밑져야 본전이다 생각하고 한 번 내뱉어 보나보다. 선균씨는 내가 두 번 시집 갈 일 있냐고 급히 차로 들어온다.

  국립공원 신고소에 도착하여 입산 신고를 하고 화장실에 들렀다. 공중화장실이 없어 한 롯지의 방에 있는 화장실로 갔다. 방을 열어주어 들어가니 침대 하나 달랑 있고 그 옆에 화장실이 딸려 있다침대에 놓인 새카만 타월을 보더니 선균씨가 걱정이 태산이다. 오늘 저녁에 우리도 이런 방에서 자는 거냐고 묻는다. 아마도 그럴 것 같다고 하니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 타월을 가져올 걸 잘못했다고 때 늦은 후회를 한다.

  여기서부터는 총 든 가이드 두 명과 산행 가이드 한 명, 이고까지 가이드가 네 명이 되었다. 털털거리는 산길을 달리고 달려 어두움이 내릴 즈음 시미엔 마운틴 롯지에 도착하니 그래도 아까 본 롯지보다는 한결 깨끗한 롯지라 한시름을 놓았다.

 

줄방구 ( 414)

  고소에 오니 기압이 낮아서 그런가 줄방구가 부르릉 붕 붕 쉬지 않고 나온다. 장소 불문 시간 불문, 체면 불구 염치 불구로 나오니 내보내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산카바르까지 가는 동안 차가 서기만하면 아이들이 달려온다. 아예 공연단을 만들어 공연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페트병을 잘라 줄을 매고 바이올린 연주하듯 하는 아이가 악장인 듯하다. 물건을 팔아달라고 하는데 살 만한 것이 없다. 우리는 옷과 볼펜, 색연필 등을 나누어주고 계속 달렸다.

  가는 길에 개코 원숭이 떼를 만났다. 무리지어 다니는 원숭이들은 별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자기 할 일 다 한다. 서로 털을 골라주며 여유를 즐기는데 부부 금슬이 좋아서 그런가 똥꼬까지 다 닦아준다. 아예 엉덩이를 쳐들고 엎드려 있다.

  산카바르에서 차를 내려 트래킹에 나섰다. 곳곳에 하얀 꽃이 피어 있었는데 에버래스팅 플라우어(Everlasting flower)라고 하였다. 건기와 우기를 가리지 않고 항상 피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달맞이꽃 비슷한 노란 꽃도 있었는데 이건 우울증 치료에 좋다고 하고, 잎사귀에 가시가 돋은 식물 열매는 비누 대용으로 쓴다고 하였다. 자이언트 로벨리아라고 하는 큰 나무는 3m까지 자란다고 하는데 그 잎이 고소에 좋다고 하여 뜯어서 냄새를 맡았다.

  진바르폭포는 말이 폭포지 물이 별로 없어 실 폭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도 주변 경관은 웅장하여 볼만했다. 폭포까지 본 후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휴게소 옆 전망대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휴게소라고 해야 천막 한 동 달랑 쳐있을 뿐이다. 점심 식사 후 네 팀으로 나누어 산행을 계속했다.

원장님과 이고는 차를 타고 시미엔의 두 번째 봉우리로 가고, 명수씨 내외와 정원식님 모녀, 김사장님과 나 이렇게 여섯은 시미엔의 낮은 봉우리를 감상하며 트래킹을 계속했다. 정연씨와 봉자씨는 우리가 올 때까지 전망대 부근에 머물러 있기로 하고 회장님 내외는 차로 고개까지 올라가 전망을 감상한다고 하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바위산이 우리를 침묵케 한다. 얼마를 걷다가 찻길을 건너 계곡을 따라 내려오니 전망대 옆 공터에 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다 함께 차를 타고 롯지로 돌아오는데 정연씨와 봉자씨가 그동안 겪은 얘기를 한다. 휴게소의 텐트에서 싸움이 일어났는데 한 명은 총 들고 나오고 한 명은 맥주병 들고 나오더란다. 하도 겁이 나 바위 뒤로 도망가 숨어 있었단다. 기다리다가 고소에 좋다는 자이언트 로벨리아가 보여 입을 뜯어 콧구멍에 쑤셔 넣었단다. 나중에 가이드가 오더니 깜짝 놀라면서 그게 혈관을 타고 뇌에 들어가면 죽는 수도 있다고 하더란다. 둘이서 코 풀고 물로 닦고 한참 난리를 피웠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롯지로 돌아오는 길은 삭막한 고원지대의 연속이다. 눈에 보이는 곳은 온통 희뿌연 고원인데 마치 회색의 바다를 보는 듯하다. 이걸 보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지고 머릿속이 텅 비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과 동식물이 위대해 보인다.

  아침에 바위에 앉아 있던 할머니는 저녁에 내려올 때도 그 자세 그대로 앉아있다. 사람도 검고 흙도 검어 가만히 있으면 흙인지 바위인지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이 안 간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할 때 흙으로 만들었다는 말이 실감난다. 부서지면 곧 흙이 될 것 같다.

  롯지에 돌아와 우리 방으로 올라가려니 머리가 깨지듯 아프다. 어제 저녁에는 코피가 좀 나더니 오늘은 고소가 더 심하다. 침대에 누워 쉬다가 식사를 하러 내려갔지만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다. 억지로 조금 먹었더니 다 토하고 말았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두통약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코딱지인지 흙딱지인지 ( 415)

  아침에 일어나니 속이 많이 가라앉았다. 김사장님이 햇반으로 죽을 끓였으니 먹어보라고 한다. 식당에 내려가니 원장님은 노이코비와 비타민 C를 주며 먹으라 하고 봉자씨는 홍삼엑기스를 주며 먹으라고 한다. 이거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이렇게 골골 대면서도 자꾸 높은 산에 가고 싶어 하는 것도 중독인가보다.

  식당에 들어서는데 웬 한국 사람이 봉자씨에게 인사를 한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의 아들이라고 한다. 이곳 에티오피아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단다. 부인과 아이도 함께 이곳에 휴가차 놀러 왔다고 하며 여기서 한국사람 처음 만난다고 놀란다. 봉자씨는 원체 마당발인데다 성격도 좋아 아는 사람이 세계 곳곳에 널렸다.

  시미엔은 북쪽이란 뜻이라고 한다. 이 산이 에티오피아의 북쪽에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나보다. 시미엔의 일출은 고원의 바다에서 떠오르는 것 같다. 바닷물에서 떠오르는 것보다 더 가슴 저리게 장엄한 광경이다.

  아침 식사 후 우리는 트래킹을 하며 걸어 내려가고 버스는 찻길로 서서히 내려갔다. 걷다가 길옆의 전통가옥에 들어갔다. 이고가 미리 허락을 받고 컴컴한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불이 피어있고 식구들이 불 옆에 둘러 앉아 있다가 우리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앉으라고 권한다. 집 안에는 연기가 자욱한데 이 연기 때문에 해충이 들어오지 않고 집도 더 견고해져서 오래 견딘다고 한다.

  1층에는 거실과 가축우리가 있고 2층은 침실이다. 오늘은 부활절이라 저녁에 쓸 양을 잡아 놓았는데 입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이고는 오늘 저녁부터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좋아한다. 2달 동안 고난기간이라 인제라만 먹고 고기를 안 먹었다는 것이다. 나는 고난 주간에도 고기에 술에 닥치는 대로 먹는데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훨씬 엄격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다.

  두 시간 정도 걷다가 버스를 타고 국립공원 신고소에 도착해 총 든 가이드 두 명과 산행 가이드 한 명은 내렸다. 이곳의 롯지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2층으로 올라가니 나무로 된 허름한 장에서 컵을 꺼내준다. 장에 자물쇠까지 채워져 있어 귀한 것이 들었나 했더니 유리컵 몇 개와 플라스틱 접시뿐이다.

  수프를 갖다 주는데 그릇에 땟물이 줄 줄 흐른다. 이걸 보니 먹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그래도 여기서는 귀한 음식이다 싶어 다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구두닦이 소년이 구두를 닦으란다.

  여기서는 운동화도 닦아준다. 김 사장님이 돈을 낼 테니 닦으라고 하여 구두 통에 발을 올려놓으니 새카만 물에 비누를 묻혀 열심히 닦는다. 한 바가지도 안 되는 물로 열 명의 신발을 다 닦으니 더러운 흙이 더 묻을 것 같다. 그래도 소년은 한 번에 단체 손님을 받았으니 신이 났다.

  비포장 산길을 달려 곤다르에 도착해 고하호텔에 들었다. 고하호텔은 산 위에 있는데 전망이 뛰어나다. 곤다르 시내에 있는 왕궁과 저수지가 내려다보인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얼굴도 옷도 깨끗한 게 때깔이 다르다.

  저녁식사 때는 최사장님이 와인을 냈다. 두 병을 시키니 이고가 깜짝 놀라며 이게 얼만지 아느냐고 묻는다. 사실 110 달러나 내고 와인을 먹는다는 것은 이고에게 상상이 안 되는 일일 것이다. 나도 내 돈 내고는 절대 안 먹을 것 같다. 몇 십 만 원짜리 이태리 고급 와인이나 몇 천 원짜리 싸구려 포도주나 내 입에는 그게 그거다. 술 맛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나 같은 무수리과는 그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찬 기분이다.

  방에 들어와 세수를 하며 코를 푸니 흙덩어리 두 개가 나온다. 하도 흙먼지를 마셨더니 코딱지가 흙딱지가 되었다. 가방은 온통 먼지를 뒤집어써서 땅강아지가 되었다. 이거야 말로 사서 고생이다. 다른 사람이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할 것이다.

 

곤다르인지 곤달걀인지 ( 416)

  봉자씨는 아침마다 홍삼엑기스를 준다. 친정아버지가 드시다가 다 못 드시고 돌아가신 거란다. 여기 오기 열흘 전에 돌아가셨다. 봉자씨는 이번에 못 올 뻔 했는데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시는 바람에 오게 됐다. 나는 혼자 방을 쓸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봉자씨 친정아버지 덕에 룸메이트도 생기고 홍삼도 먹게 됐다.

  저녁에는 또 콜라겐 마사지 하라고 팩도 준다. 요새 내 위장과 얼굴이 엄청 감동 먹었을 것이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룸메이트 복 하나는 확실히 타고 났다.

  로비에서 우리가 지나가자 벨 보이가 곤니찌와~ 오하이오 고자이마쓰~ 하며 이것저것 주워댄다. 우리가 코리안이라고 하자 굿모닝이 뭐냐고 묻는다. 안녕하세요 라고 가르쳐주니 안농하세요? 하며 열심히 연습한다. 시미엔산 가이드도 땡큐가 뭐냐고 하여 감사합니다를 가르쳐주자 수첩에 적어서 연습하더니 여기도 한국어 열풍이 불었나보다. 사실 일거리가 별로 없는 이곳에서 가이드는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업이다.

  스마트 폰들이 많아 서울서 소식이 속속 날아온다. 석촌호수에 벚꽃이 피었다고 사진까지 보내왔다. 우리는 석촌호수가 에티오피아보다 좋다고 감탄하였다.

  오늘은 곤다르에서 랄리벨라로 가는 날이다. 곤다르 공항에 가니 공항 입구에서 여권검사를 한다. 청사에 들어가기 전에 또 여권검사를 한다. 청사 안에 들어가니 한국 사람이 말을 건다. 코이카 직원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곳의 비행기는 시간을 제대로 안 지킨다고 하며 12시 비행기가 11시에도 뜨고 1시에도 뜨고 맘대로 라는 것이다.

  공항에는 비행기가 한 대도 없다. 다른 곳에서 비행기가 와야 이곳에서 사람을 태워 떠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찍 오길 잘 했다고 하며 2층의 카페로 올라갔다. 12시가 넘어도 비행기는 올 기미가 없고 연착 된다고 하여 점심을 먹기로 했다. 봉자씨는 개코원숭이를 많이 보더니 개코가 되었나 연방 냄새 난다고 난리다. 한참 딴 짓을 하더니 여권 가방을 엑스레이 투시기에 두고 왔다고 달려 내려간다. 다행히 여권 가방은 그 자리에 있었다. 정연씨 여권까지 들어있었다는데 두 사람 모두 곤다르에 남아 에티오피아사람 될 뻔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소식이 없는 비행기를 애타게 기다리느라 귀를 쫑끗 세우고 앉아 있는데 김사장님이 비행기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우리는 정말인가하고 밖을 내다보니 지붕에 있는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다.

  할 일 없이 몇 시간씩 앉아 있으려니 그런 고역이 없다. 엽서를 두 개 사서 아들과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원장님은 랄리벨라에 대한 예습을 하라고 잡지에 난 것을 준다. 그걸 다 읽어도 비행기는 오지 않는다.

  심심하여 카페를 둘러보는데 냉장고가 눈에 띤다. 그런데 냉장고에 잠금장치가 되어있다. LG 제품인데 이런 냉장고는 처음 본다. 아마 이곳으로 수출하는 것들만 특수 제작한 모양이다. 냉장고 문을 열 때 보니 음료수 몇 병뿐이다. 몰래 꺼내 먹는 사람이 있나 보다.

  결국 3시나 되어 비행기가 도착해 랄리벨라로 출발했다. 40분간 비행기 타려고 공항에서 5시간 소비했다. 5시간 동안 에어컨도 없는 곤다르 공항에서 기다리다가 곤달걀이 될 뻔했다. 이 비행기 표도 역시 도착지도 출발지도 이름도 없는 백지 비행기 표다. 손님은 외국인 3명과 우리 11명뿐이다.

  랄리벨라에 도착해서 우리는 내리고 외국인 3명은 아디스아바바까지 간다고 내리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11개의 암굴교회가 있는 산으로 올라갔다. 이고는 비행기가 늦은 것이 자기 탓도 아닌데 늦어서 미안하다 최선을 다 하겠다고 하며 연방 사과한다.

  랄리벨라는 자그웨 왕조의 랄리벨라왕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다. 암굴교회는 랄리벨라왕을 비롯한 네 명의 왕이 24년에 걸쳐 바위산을 깎아 11개의 교회를 만들었다. 바위산을 파 내려갔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교회가 보이지 않아 이슬람 세력의 눈을 피했다고 한다.

  랄리벨라의 어머니는 어느 날 벌에 둘러싸여 행복한 모습으로 요람에 누워있는 아기를 보았다. 그녀는 장차 이 아기가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랄리벨라라고 이름 지었다. 랄리벨라는 벌들이 왕이 될 것을 알려준다.’는 뜻이다.

  그런데 랄리벨라의 형 하베이는 이 사실을 알고 동생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독약을 먹은 랄리벨라는 사흘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 이때 천사들이 랄리벨라를 하늘나라로 데려가 교회를 어디에 어떻게 지을 것인가 보여 주었다. 형은 동생이 깨어나자 잘못을 뉘우치고 왕좌에서 물러났다. 랄리벨라는 왕좌에 오르자 전국의 석공과 목수를 모아 성당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중 기요르기스 성당이 제일 나중에 세워졌는데 지붕 윗면에 세 겹의 십자가가 조각되어있다. 랄리벨라 왕의 꿈에 성 기요르기스가 나타나 왜 자신의 성당은 짓지 않았느냐고 탄식해서 이 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성당 안에는 사제가 전통 복장을 입고 같이 사진을 찍게 해준다. 하지만 사진을 찍은 후에는 기부금을 내야한다.

  지하로 내려가면 성당 옆 암굴에 자연 상태로 만들어진 미라가 있다. 이 성당을 너무 사랑해서 죽어서도 이 성당에 남겠다는 어느 성직자의 미라라고 한다.

  성당에 들어갈 때는 신을 벗어야하는데 신을 정리해주는 신발보이가 있다. 우리가 들어가면 신을 돌려 가지런히 정리해 놓는다.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이 다를 때는 신을 옮겨다가 신기 편하게 놓아둔다. 일거리가 하도 없으니 별 직업이 다 있다. 현지 가이드 중에 우리를 맡게 된 아이들은 무슨 왕비 간택이라도 받은 것처럼 뛸 듯이 기뻐한다. 번갯불에 콩 구어 먹듯 휘돌아 치며 구경을 하고 마운틴뷰 호텔로 돌아왔다. 마운틴뷰 호텔은 전망이 뛰어나고 사람들도 깔끔하니 부티가 줄 줄 흐른다.


봉지 터질 뻔 ( 417)

  새벽 4시에 잠이 깨어 밖을 보니 북두칠성이 지평선으로 내려앉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북두칠성이 북극성 주위에서 맴돌며 지지 않는데 여기는 적도 근방이라 북두칠성도 뜨고 지나보다.

오전에는 어제 못 본 교회들을 마저 보았다. 지옥 체험을 한다고 깜깜한 동굴 속을 손으로 더듬으며 지나갔는데 교회와 교회 사이의 통로인 듯하다. 게오르기스 교회도 다시 한 번 보고 랄리벨라 공항으로 갔다. 어제 우리가 내린 후 세 명의 외국인은 비행기 고장으로 아디스아바바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비행기가 애를 먹이지 않고 잘 도착하여 아디스아바바까지 순조롭게 갔다.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 나와 버스를 타려는데 웬 서양인 부부가 에티오피아 아이 두 명을 데리고 비행기를 타러 간다. 두 아이를 입양하는 중이다. 내 아이도 키우기 힘 드는데 남이 낳은 아기를 이렇게 입양해 가는 사람을 보면 놀랍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레인보우식당에서 오랜만에 한식으로 포식했다.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짬뽕, 닭고기 탕수육 등 등 우리 입맛에 딱 맞았다. 식사 후 한국전쟁참전 기념공원으로 갔다. 가는 길에 50달러를 주고 흰 장미로 만든 꽃바구니를 준비했다.

  공원에 도착하니 제법 깨끗하고 넓은 공원에 참전 기념탑이 서 있고 참전용사도 있다. 22살에 참전했다고 하니 지금은 80살이 넘은 할아버지다. 할아버지에게 격려금으로 50달러를 주니 미소가 얼굴 가득 번진다.

  재래시장을 둘러보았는데 좁은 골목에 웬 사람이 그리도 많은지 내리기도 겁난다. 마치 쓰레기 하치장 같은 곳에는 빈 페트병이 산처럼 쌓여있다. 이것을 녹여 신발을 만든다고 한다. 여기를 떠나 부자 동네도 보았는데 이곳은 들어갈 때 나갈 때 차단기가 있고 길을 막고 지키는 사람도 있다. 크고 깨끗한 집이 많아 에티오피아 같지 않다. 빈부의 차이가 극심해 이고는 땅과 하늘 차이라고 설명한다.

  이리 저리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끌려 다니니 화장실이 없다. 봉자씨는 점심에 맥주까지 마셔 봉지 터질 지경이라고 쩔쩔 맨다. 민속 쇼를 보며 식사하는 전통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모두 화장실로 직행했다.

  민속 쇼는 엉성하니 별로 볼 것이 없었다. 우리는 도중에 나와 공항으로 향했다.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오니 사방은 캄캄하고 비는 쏟아지는데 차가 어찌나 많은지 청사 앞까지 갈 수도 없다. 멀리 차를 댄 후 우리는 청사로 가고 김사장님과 이고가 짐을 가져오겠다고 하였다.

  문 앞에서 엑스레이 검사를 하니 비를 맞으며 밖에서 기다려야한다. 한참을 기다리니 김사장님이 혼자 온다. 이고는 안 오느냐고 하니 다른 사람과 싸움이 붙어 겨우 뜯어말려 집으로 보냈단다. 이고가 가져 간 카트를 다른 사람이 가져가자 서로 치고 박고 싸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고와 작별인사를 하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 에고~ 이고야~ 조금만 참지 그랬냐?

  겨우 짐을 통과시키고 안으로 들어가 체크인을 하려니 우간다 가는 비행기는 여기가 아니란다. 다시 밖으로 나가 옆의 청사로 가야한단다. 우리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무거운 짐을 끌고 어둠 속으로 나가 한참을 걸어 옆의 청사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여기는 사람이 많지 않아 겨우 체크인을 하고 출국심사를 받은 후 게이트로 갔다. 비행기에 오르자 모두 초죽음이 되어 늘어졌다. 에티오피아는 경제 수준이 세계 207위이고 우간다는 204위라고 하니 우간다도 별 차이 없을 거라 생각된다. 봉자씨는 우간다가 우려된다고 미리 겁을 먹고 선균씨는 우간다 가지 말고 그냥 서울로 가고 싶다고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우리는 굳세어라 금순이 같이 ~ 간다~’를 외치며 우간다로 향했다.

 

아침에 눈 떠봐야 안다 ( 418)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넘었다. 비행기에서 미리 입국신고서를 주면 좋으련만 심사대 앞에서 입국신고서를 주니 그 자리에서 쓰느라 다들 분주하다. 불빛도 흐린데다 글씨도 깨알 같아서 쓸 수가 없다. 눈 밝은 김사장님과 선균씨가 부지런히 써서 나누어준다.

  공항 건물을 보니 에티오피아 보다는 좋아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 인상이 우락부락한 게 겁나게 생겼다. 엔테베공항에서 나와 수도인 캄팔라까지 가는데 길이 온통 과속방지턱의 연속 같다. 포장은 되었는데 비포장 저리 가라 싶게 차가 널을 뛴다. 우간다는 영국 지배를 받아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밖을 내다보니 집들이 에티오피아보다는 좋아 보인다. 사람들이 우간다가 3등급 높다더니 좀 나은가보다고 하자 정원식님이 아침에 일어나봐야 안다고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다.

  캄팔라의 세레나호텔에 도착하니 새벽 2시가 되었다. 호텔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화려하고 좋았다. 이런 호텔에 너무 늦게 들어와 몇 시간 만에 나가야하니 다들 두고 가기 아깝다고 하고 선균씨는 서울 간다는 소리가 쏙 들어갔다.

  자는 둥 마는 둥 몇 시간 만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머치슨 폭포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과일 가게가 보여 두리안 같이 생긴 걸 사 먹었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아 이상하다 했더니 잭푸르트라고한다. 우리가 겉껍질만 깐 걸 그냥 먹으니 현지인들이 깔깔대고 웃으며 속껍질도 까먹으라고 손동작으로 가르쳐준다.

  계속 이어지는 푸른 숲을 보더니 봉자씨가 우간다 살고 싶다고 한다. 에티오피아는 왕비를 시켜줘도 안 온다더니 우간다는 맘에 드나보다. 가다가 마신디라는 마을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훈제로 구운 닭고기가 별미다.

  얼마를 달리다가 가난한 집들이 모여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아이들에게 서울서 가지고 간 것을 나눠주었다. 이고가 없으니 김사장님이 직접 나눠주는데 아기를 안은 엄마가 물건을 받자마자 두 무릎을 땅에 털썩 꿇더니 절을 한다.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학교에서 돌아오던 학생들에게도 옷과 학용품을 나눠주니 신이 나서 춤을 추며 돌아간다. 마치 축제 분위기 같다. 이렇게 하잘 것 없는 것으로 그토록 큰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가는 길에 가끔 원숭이도 나타나고 멧돼지도 보인다. 수세미처럼 긴 열매가 달린 나무가 있어 조수인 톰에게 물어보니 나중에 알아보고 가르쳐 주겠단다. 후에 알려준 바로는 이게 바로 소세지나무라고 한다. 원숭이나 코끼리 등이 좋아하는데 알코올 성분이 있어 많이 먹으면 취한다고 한다. 운전기사인 로렌스는 톰의 아버지다.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려고 훈련시키는 모양이다.

  길은 계속 털털거려 차도 사람도 백만 볼트 전기에 감전된 듯 요동을 친다. 어찌나 요란하게 흔들리는지 공중분해 될 것 같다. 의자를 잡고 안간 힘을 쓰니 어깻죽지가 아프다.

  날이 저물 무렵 빅토리아 나일강에 도착했다. 마지막 배가 7시란다. 건너편에 있던 배가 건너와서 버스를 싣고 강을 건넜다. 강기슭 언덕에 자리 잡은 파라 사파리 롯지에 들었다.

  우선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가는데 전등에 커다란 나방이 같은 것이 잔뜩 모여든다. 선균씨는 괴성을 지르며 무서워한다. 이곳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떨어진 나방을 쓸어 담는다. 나중에 들으니 메뚜기처럼 식용으로 쓴다고 한다.

 

봉자씨의 영역 표시 ( 419)

  이침 6시에 라면으로 허기를 면한 후 로비 의자에 앉아있는데 명수씨가 요새 배가 나온다고 한다. 날씬함의 극치를 달리는 사람이 이런 소리를 하니 봉자씨가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내가 한 마디로 표현하면 죽일 년이라고 하자 봉자씨가 딱 맞는 소리라고 박장대소한다.

  원장님 핸드폰에 양숙씨 문자가 왔다. 잘 놀고 오라 한국은 꽃 천지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꽃이나 볼 껄 괜히 왔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우간다에 오니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에티오피아는 건조해서 코 속이 다 헐었는데 습기가 많아지니 부드러운 공기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종횡무진으로 돌아다니니 몸이 적응하느라 바쁘다. 우리 몸이 온도계, 습도계, 기압계로 변신했다. 정연씨는 조금만 고도가 높아지면 곧 알아채고 머리가 띵 하다고 한다.

  동 트기 전 동물들이 많이 움직인다고 해서 새벽 같이 나왔더니 과연 워터바크라는 동물이 눈에 많이 띤다. 노루 비슷하게 생겼는데 수컷은 뿔이 달렸다. 곳곳에서 코끼리도 보이고 멀리 기린도 보인다. 멧돼지는 땅에 얼굴을 대고 먹이 찾기에 바쁘고 하마는 물속에서 떼 지어 앉아있다. 동물을 찾아다니다가 노상방뇨를 하기로 했다. 나무 뒤에 앉아 볼일을 보는데 봉자씨가 자기는 큰일을 보겠다는 것이다. 아침에 너무 일찍 나와서 볼일을 못 본 탓이지만 언제 어디서 무슨 짐승이 나타날지 몰라 총 든 가이드까지 대동하고 다니는 처지에 참 대담무쌍하다.

  사자를 못 봐서 사자야 나타나라.’를 연발하며 다니는데 사자는 다 어디에 숨었는지 나타날 생각을 안 한다. 봉자씨가 영역표시를 너무 확실하게 해놓아 겁 먹었나보다.

  사자 찾아 삼만 리 하다가 모래밭에 바퀴가 빠졌다. 아무리 밀어도 바퀴는 점점 빠지고 헛돌기만 한다. 톰과 로렌스는 아무 장비도 없는지 맨손으로 바퀴 앞의 모래만 파내고 있다. 1m 파고 밀고 또 1m쯤 파고 밀고 이러기를 30m쯤 했을 때 겨우 빠져 나왔다. 모두들 땡볕에서 차 미느라 팔 다리가 후들거린다.

  롯지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호숫가에 하이에나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차를 밀 때 이런 동물이 나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무사히 롯지로 돌아와 정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낮에는 휴식했다. 여기서 이틀을 묵는지라 그동안 밀린 빨래를 하여 창 밖에 널었다. 매일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니 빨래에서 나오는 물이 온통 흙탕물이다.

  오후에는 빅토리아 나일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머치슨 폭포 밑에까지 갔다. 유람선에서 우리 앞에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이 앉았다. 한 여자가 우릴 보고 영어 할 줄 아냐? 어디서 왔냐? 하며 말을 시킨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 조카가 한국 아가씨와 사귀고 있다고 하며 반색을 한다. 배가 만삭 같은 아저씨는 마스크와 썬 글라스로 중무장한 우릴 보고 웃으며 너희들 은행 강도냐?  

  한국에서도 가면 쓰고 다니냐? 눈과 얼굴 좀 보여 봐라.’하며 말을 걸어온다. 선균씨가 썬 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었더니 그렇게 예쁜데 왜 가리고 다니냐?’ 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배 뒤편에서는 김사장님이 이 배의 선원과 한참 얘기를 하다 폭소를 터트린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이 흑인 청년이 한국여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이 여자들 중 한 명만 달라고 한단다. 봉자씨를 가리키며 어떠냐고 했더니 팔이 굵어서 싫단다. 이 청년도 야리야리한 선균씨에게 필(feel)이 꽂혔나보다.

  폭포 관광을 마치고 우리를 내려준 배가 강 반대편으로 건너가다가 되돌아온다. 김사장님이 뛰어가서 돈을 준다. 우리는 우리가 먹은 음료수 값을 안 주었느냐고 물었더니 주긴 주었는데 선원이 계산을 잘못해서 2달러 덜 받았다는 것이다. 2달러 때문에 손님을 태우고 다시 돌아온 것이다.

저녁 식사 전에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다. 하지만 물이 흐리고 추워서 금방 방으로 돌아왔다.

 

미치도록 멋진 머치슨 폭포 ( 420)

  새소리에 잠이 깼다. 새들은 사람들 못지않게 왕수다다. 체격도 작은데 웬 목청이 그리도 좋은지 귀가 먹먹하다. 만일 새가 사람만큼 컸다면 목소리가 대포소리 같았을 꺼다.

오늘은 차를 타고 머치슨 폭포 위쪽으로 가서 트래킹을 했다. 폭포 옆에서 걸으며 바라보는 폭포는 악마의 솥이라는 별명에 걸맞도록 무시무시하게 쏟아진다. 우리는 미친 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머치슨의 매력에 푹 빠졌다. 살인적인 햇볕에 살이 타는 줄도 모르고 여기서 찍고 저기서 찍고 마구 마구 사진을 찍어댔다. 주차장으로 올라오니 어제의 오스트레일리아 아저씨가 보인다. 오늘은 너무 더워 그런지 셔츠 단추까지 다 풀어헤치고 만삭의 배를 드러내고 다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변 눈치 보느라 감추기 바쁜데 자연스럽게 다니는 이들이 부럽기도 하다.

  주차장 옆 그늘에서 김사장님이 싸준 삼각 김밥을 먹었다. 여행 갈 때마다 이렇게 맛있는 김밥을 싸주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우리는 김사장님 아내가 남편이 이렇게 고생하는 걸 보면 가슴 아파서 돈도 못 쓸 거라고 하며 맛있게 먹었다.

  머치슨 폭포를 떠나 호이마에 도착해 도시락을 먹었다. 호이마는 옛날 분뇨로 왕국의 수도였다고 한다. 이름이 요상해서 분뇨로 왕국은 꼭 분뇨로 만들었을 것 같다. 마땅한 그늘도 없어 차 안에서 그냥 식사를 한 후 포트포탈로 달렸다.

  사방은 캄캄한데 멀리서 불이 번쩍 번쩍한다. 봉자씨는 서치라이트 같다고 하는데 내 보기에는 번갯불 같다. 포트포탈에 도착하니 다들 오줌을 참고 참아 방광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주유소에 들어가 화장실로 달려갔는데 화장실이 한 개 뿐이라 기다리기 힘들다. 주위를 살피는데 마침 불이 꺼진다. 우리는 문 앞에 앉아 단체로 노상방뇨를 하는데 곧 불이 들어온다. 우리는 기겁을 하여 옷을 올리고 차로 돌아왔다.

  연일 비포장 길을 달리니 회장님은 허리가 아파 몹시 괴로워한다. 디스크 치료 받다가 왔는데 한국 가면 다시 입원해야겠다고 울상이다. 멀쩡한 우리도 허리가 아프고 밑이 다 헐었다. 날씨도 습한데 하루에도 몇 시간씩 엉덩방아를 찧어대니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래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누가 말리겠냐 말이다.

  빛도 없는 비포장 산길을 아무리 달려도 우리가 찾는 롯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톰과 로렌스는 연방 롯지에 전화를 걸어 악을 쓰며 묻는다. 마치 싸우는 사람 같다. 길 가는 사람들에게 몇 번씩 묻고 물어 겨우 은달리 롯지에 도착하니 밤 10시 반이다. 주인은 음식을 차려 놓고 우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들어가자마자 식탁에 앉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다 먹어치웠다. 이 롯지는 방이 여덟 개 밖에 없고 우리가 여섯 개를 쓴다고 한다. 옆 테이블에는 덴마크에서 온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오늘 침팬지 트래킹을 다녀왔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공짜로 세탁을 해준다고 하여 밀린 빨래를 모두 내 놓았다. 다니다보니 별 희한한 롯지도 다 있다. 나는 웬만하면 입던 옷 계속 입고 집에 갈 때까지 빨래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도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다니니 한 번 벗으면 다시 입을 수가 없다. 빨래 당번이 곁에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혼자 왔으니 도리가 없다. 남편은 빨래 당번이고 나는 밥 당번이다. 세탁기도 없어 손빨래를 하려니 팔 다리가 후들거린다.

  후레쉬를 들고 더듬더듬 우리 방을 찾아 갔다. 여기는 열쇠가 없다기에 좀 불안했지만 아무 문제가 없으니 염려 말라고 한다. 방에는 전기불도 있고 호롱불도 켜 놓아서 아늑한 느낌이 든다. 벽의 촛대에 초가 꽂혀있어 여기도 불을 켜니 분위기가 그만이다. 하지만 이곳은 방에 충전하는 콘센트가 없어 카메라 충전기를 사무실에 맡겼다.

 

도라지라도 좋다 ( 421)

  아침에 배터리를 찾으니 다른 사람들 것은 다 있는데 내 것이 없다. 주인은 이것 밖에 없었다고 하여 사무실에도 가보고 주인 살림집에도 가봤지만 행방이 묘연하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기분이다.

  여자 나이 10대는 산삼, 20대는 홍삼, 30대는 건삼, 40대는 수삼, 50대는 더덕, 60대는 도라지, 70대는 무말랭이란다. 나는 도라지라 사실 사진을 찍어봤자 꾸부정하니 할머니 폼으로 별 볼일 없다. 도라지에 얼큰이(얼굴 큰 사람)인 주제에 사진을 찍기를 좋아하니 다른 사람이 보면 참 가관일 것이다.

  침팬지 트래킹을 하러 가며 배터리를 잃어버리면 지금까지 찍은 사진도 볼 수 없고 컴퓨터에 옮길 수도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오래된 카메라라서 배터리 구하기도 힘들다. 인천공항에서도 하나 더 사려했지만 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걱정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 미련을 버리고 단념을 했다.

  침팬지가 서식하는 키발리국립공원으로 가서 안내원의 설명을 들은 후 숲으로 들어갔다. 원장님 팀 5, 김사장님 팀 6명으로 나누어 가이드와 함께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가니 과연 나무 위에서 침팬지들이 왔다 갔다 한다. 조용히 해야 침팬지가 내려온다고 하여 침묵하고 있는데 근처의 외국인들도 나무 위의 침팬지를 바라보며 마냥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가이드는 이리저리 살피러 다니다가 침팬지가 보이면 오라고 손짓을 한다. 원장님 팀은 기다리기 지루하다고 그냥 걷겠다며 사라지고 우리는 계속 고개를 쳐들고 침팬지만 바라봤다. 몇 십 분씩 하늘로 고개를 젖히고 있으니 목 떨어질 지경이다. 어떤 침팬지는 나무에서 오줌까지 누고 있다. 그 밑에 있다가는 오줌 세례 받게 생겼다.

  우리가 보고 있는 침팬지 그룹의 대장은 마게지라는 수컷인데 마게지는 지혜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마 이 침팬지가 퍽 지혜롭게 행동하나보다. 침팬지들은 내려올 생각을 안 하고 서로 털 고르기만 하고 있다. 지루하여 안내소로 돌아가려고 큰길로 나왔는데 갑자기 침팬지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가이드는 침팬지가 우리 잘 가라고 빠이빠이 하는 거란다. 혹시나 하고 다시 침팬지 있던 자리로 가니 큰 수컷이 나무에서 내려와 달려가고 있다. 순식간에 다른 나무로 가더니 날쌔게 올라간다.

  침팬지 구경을 마치고 다시 롯지로 돌아왔다. 충전기를 찾으면 우리 방에 갖다 놓겠다고 했는데 혹시나 하고 방에 와보니 역시나다. 포기하고 앉아있는데 김사장님이 충전기 찾았다고 달려온다. 어디서 찾았냐고 하니 정연씨 충전기에 묻어 그 방으로 갔단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카메라에 배터리를 장전했다.

  오후에는 롯지 옆에 있는 호수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우리가 배낭을 지고 나서자 롯지에 사는 네 마리 개가 모두 따라 나선다. 가이드는 유칼립투스 나무가 만병통치약이라고 열심히 설명을 한다. 자신들은 별로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호숫가를 걷다가 한 집 앞에 이르니 아이들이 나와서 우릴 보고 있다. 가이드는 여기가 자기 집이고 이 아이들이 자기 자식이라고 알려준다. 우린 가지고 있던 간식을 나눠주었다. 한 여자 아이는 나무 뒤에 숨었는데 개를 무서워하기 때문이란다. 호수를 따라 작은 오솔길이 이어졌는데 평화로운 모습의 호수와 작은 집들이 우리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혀주었다. 은달리 롯지는 규모는 작지만 앞에는 루웬조리 산맥이 장쾌하고 뒤쪽으로는 호수가 있어 마치 낙원에 온 기분이다. 하루 저녁에 500달러라고 하니 이틀 자면 방 하나에 1000달러씩이다. 하지만 그 돈이 아깝지 않게 우릴 만족시켰다. 주인은 영국 사람인데 훤칠하니 멋지게 생겼고 매너도 끝내준다. 아침 식사 전에도 우리 식탁에 와 인사를 하고 저녁에도 인사를 한다.

  호수 트래킹을 마치고 방으로 오니 창 밖에 웬 할아버지가 앉아있다. 뙤약볕에 앉아 보초를 서는 중이다. 안으로 들어와 쾌적한 욕실에서 샤워를 하려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 땅의 주인은 저 할아버지인데 영국 사람은 와서 돈 벌고, 우리는 잘 먹고 떠들며 돌아다니고 있으니 적반하장이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인 듯하다.

  저녁 식사 때 어제 밤 불빛이 무엇인가 토론이 벌어졌다. 일부는 번개라고 하고 일부는 서치라이트라고 하는데 원장님은 전쟁 난 줄 알았단다. 우리를 이끌고 온 책임감 때문에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 모양이다. 거수로 판정하자고 했는데 번개가 6, 서치라이트가 4, 전쟁이 한 명이다. 김사장님이 롯지 직원에게 물어보니 번개가 맞는다고 한다.

  주인은 우리 옆에서 친구와 식사를 하고 있다. 자신의 롯지 광고 팜플렛을 만들려는데 우릴 찍어도 되느냐고 한다. 그러자 친구가 커다란 카메라를 설치하고 우리 사진을 찍는다. 이거 우리 얼굴 세계적으로 팔리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우리가 코리안 수프라고 숭늉을 주자 맛있다고 먹는다.

 

팁은 하마도 웃게 한다? ( 422)

  아침에 우리 식탁에 또 주인 남자가 나타났다. 자신이 요가 하러 가니 작별인사를 미리 하겠단다. 봉자씨는 주인이 멋지다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벌린 입에서 침 떨어질 지경이다. 그 남자가 가자 나를 보더니 화장이 이게 뭐냐고 내 얼굴을 두드리고 문지르고 난리다. 내가 엉터리 화장을 해서 그렇다고 하니 이건 엉터리가 아니고 엉망진창이라고 하며 두드리니 식탁에 앉은 사람들이 배꼽 빠지게 웃는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말 그대로 쪽 팔렸다.

  오늘은 퀸엘리자베스 국립공원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또 허리 부러지도록 차를 타야한다. 회장님이 왜 비행기를 타지 않느냐고 묻자 김사장님은 우간다에 국내선 비행기가 없어 별 수 없다고 한다.

퀸엘리자베스 국립공원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녀간 곳이고 타잔을 찍은 곳이라 한다. 타잔에 나온 원숭이는 작년에 죽었단다. 가는 길에 오늘은 유난히 멋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띤다. 조금 더 가니 교회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교회 가느라고 한껏 멋을 냈나보다.

  화장실이 급해 휴게소에 섰는데 화장실 문이 잠겨있고 수퍼마켓에 가서 1인당 300실링을 내고 열쇠를 받아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김사장님이 가게에 가서 돈을 내니 화장실이 고장 나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길 건너에 있는 카페에 가니 1인당 2.5 달러를 내란다. 커피 값도 2.5달라 라고 해서 차를 마시기로 했다. 물론 커피를 마시면 화장실은 공짜다. 그런데 커피를 가지러 간 사람이 함흥차사다. 커피 밭에 커피 따러 갔는지 볶으러 갔는지 시간이 한 없이 걸린다. 청소하는 여자가 와서 청소를 다 마치도록 소식이 감감이다. 커피가 나온 후 또 홍차가 나오는데 죙일 걸린다. 결국 족히 한 시간은 허비했다. 겨우 차를 얻어먹고 달리는데 적도 기념비가 보인다. 내려서 사진을 한바탕 찍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다시 출발하여 호숫가를 지나는데 버팔로, 멧돼지, 워터바크 등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멀리 검은 연기 같은 것이 물에서 올라가기에 뭔가 하고 바라보니 김사장님이 용오름이라고 소리친다. 자세히 보니 세 군데서 물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고 있다. 이 물을 타고 용이 하늘로 올라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음웨야 사파리 롯지에 도착해 점심식사를 하는데 여기서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사파리 트래킹은 8명이상 할 수 없다고 하여 회장님 부부와 김사장님은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우리는 샌드위치를 싸달라고 하여 차에 올랐다. 캼부라 협곡 안내소에 도착하니 너무 늦어서 트래킹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원래 1시 반까지 와야 하고 늦어도 2시까지는 와야 하는데 그걸 모르는 우리는 3시에 갔다.

아무리 사정을 해도 요지부동이다. 우리가 돌아가지 않고 기다리니 톰과 로렌스에게 사고가 생겨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한다. 이들도 책임지기는 힘든지라 회사에 전화를 하고 알아보느라 4시가 다 됐다. 우리는 나무 그늘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멀리서 천둥이 치고 먹구름이 몰려온다. 우리는 배낭 커버를 씌우고 비옷을 입고 기다렸다. 회사에서 허락이 떨어졌는지 방명록에 여권번호를 쓰라고 한다. 각자 여권을 꺼내 번호와 이름, 국적, 나이 등을 쓰고 차에 오르니 또 늦은 이유를 써야한단다. 톰이 어찌할까 하고 있으니 원장님이 배탈 나서 병원 가느라 늦었다고 얼른 둘러댄다. 톰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썼다. 원장님은 의사라 이런 때 머리도 잘 돌아간다.

  캼부라협곡으로 내려서기 전에 여자 가이드와 총을 멘 남자 가이드에게 팁을 10달러씩 주니 고맙다고 웃음이 온 얼굴에 퍼진다. 지금까지 성난 하마 같던 얼굴이 순식간에 순둥이 얼굴로 바뀐다. 팁은 하마도 웃게 하는 모양이다.

  총 든 남자가 앞에 서고 우리는 뒤따라갔는데 길의 경사가 심해 줄 줄 미끄러진다. 여기저기서 엉덩방아를 찧는다. 하지만 하마 발자국, 하이에나 발자국, 하마 똥 등만 보이고 실물은 보이지 않는다. 겨우 나무 위에 있는 흰꼬리원숭이의 꼬리만 조금 보았을 뿐이다.

  물 가로 내려가니 드럼통 위에 쇠막대로 얼기설기 엮은 배가 있다. 계곡 양쪽 나무에 줄을 매어놓아 줄을 당기며 건너게 해 놓았다. 한 번에 4명씩 나누어 타고 겨우 계곡물을 건너 반대편 물가에 다다르니 땅으로 올라서기도 힘들다. 나무를 잡고 밑에서 올려주어 겨우 상륙했다. 물에서 아차 중심을 잃으면 물에서 하마가 나올지 악어가 나올지 몰라 조마조마했다.

  물 건너의 숲을 온통 이 잡듯 뒤져도 다들 이사를 갔나 침팬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물을 건너려면 그 배를 또 타야하나 걱정했더니 나가는 쪽에는 나무다리가 놓여있다. 안심하고 건너니 벌써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가이드는 날이 저물면 하마는 물에서 나와 풀밭으로 이동하고 사자는 풀밭에서 나와 물가로 가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한다. 우리는 동물 찾기를 단념하고 다시 계곡 위 찻길로 올라와 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다가 차가 오는 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해가 지니 선선하여 걷기 좋았다. 차를 만나 안내소로 가서 가이드는 내리고 우리는 롯지로 달렸다.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하니 안내원이 6시가 넘어 들어갈 수 없다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또 가지고 있던 간식을 주고 사정하니 문을 열어준다. 이미 사방은 캄캄하게 어두워졌다. 1시간 가까이 달려 롯지 입구에 도착하니 7시가 넘어 롯지에 들어갈 수 없다고 문을 안 열어준다. 사무실에 연락하여 겨우 문을 열고 들어왔다.

  롯지에 도착하니 김사장님은 걱정이 되어 문 앞에서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식당으로 가 느긋하게 저녁식사를 즐겼다.

 

횡설수설 ( 423)

  아침에 버스로 가려는데 톰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은달리 롯지가 더 좋으냐 여기가 더 좋으냐 묻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은달리 롯지가 더 좋다고 대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들도 은달리 롯지가 더 좋다고 한다.

  새벽에 또 사파리 게임 드라이브를 나갔다. 동물이 별로 많지 않아 케냐 사파리만 못 하다고 푸념을 하는데 앞에 호수가 나타난다. 소금호수라고 하여 자세히 쳐다보니 염전을 만들었는지 논처럼 작은 칸들이 있다. 여기서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원숭이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우리 쪽으로 온다. 바나나, , 사과 등을 주니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는다. 늘상 있는 일인가보다. 한참 먹더니 거시기를 우리 쪽으로 향하고 앉아 오줌을 한바탕 눈다. 원숭이는 만인이 보는 앞에서 저렇게 당당하게 볼일 보는데 우리 인간은 왜 숨어서 볼일을 보나 모르겠다. 선악과를 따먹어 죄의식이 생긴 것일까?

  롯지로 돌아와 그동안 밀린 빨래를 한바탕하고 운동화까지 빨아 밖에 널었다. 오후에는 카징가 운하에서 유람선을 타고 동물 구경을 했다. 카징가 운하는 에드워드호와 죠지호를 잇는 운하다. 어제 미리 유람선을 탔던 김사장님의 조언대로 모두 왼쪽으로 앉았다. 우리 배에는 선교단체 회원들도 같이 탔는데 쿠바에서 온 할아버지는 찾는 속도가 느린지 남들이 다 감탄사를 연발하고 나면 그제서야 소리를 지른다. 과연 배는 왼쪽 물가로 바짝 붙어서 운행을 하며 동물을 보여주었다. 물속에는 하마가 널렸고 물가에는 코끼리, 원숭이, 멧돼지 등이 어슬렁거린다. 나무 위에는 물수리가 날카로운 눈초리를 빛내며 앉아있다. 악어는 물가에 올라 앉아 일광욕을 즐기고 노란 새는 나무에 조롱박처럼 매달린 집으로 연방 드나든다.

  롯지로 돌아와 근처를 산책했다. 롯지에는 집이 많았는데 엘리자베스여왕이 묵었던 집이 가장 크고 멋진 자리에 있다. 풀밭을 걸어가는데 웬 개미떼가 이사를 가는 중이다. 새카맣게 이어진 개미는 수십만 마리는 되는 듯하다.

  여행이 오래 계속되니 정신이 없어 모두 횡설수설한다. 정원식님은 저녁식사 때 머스터드 소스를 달라고 한다는 것이 머쉬룸을 달라고 하여 본의 아니게 버섯 요리 두 번 먹었다. 나는 우간다에서 곧장 두바이로 간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아디스아바바에 가면 또 한식당 가냐고 헛소리를 했다. 피곤하고 환경변화가 심하니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저녁식사 때 큰 풍뎅이가 날아와 식탁 옆에 앉았다. 옆에 있던 외국여자는 오 마이 갓하며 소리를 지르고 남자는 스푼을 풍뎅이 옆에 놓고 사진 찍기 바쁘다. 우간다는 숲이 우거지고 환경이 좋아 풍뎅이도 이렇게 대형으로 진화했나보다.

 

애니카 한 방이면 될 것을 ( 424)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어제 개미들이 높은 곳으로 이사를 가더니 비가 올 징조였나 보다. 그 작은 개미의 뇌 속에 어떤 정보가 들어있기에 일기예보도 안 듣고 그렇게 잘 알까? 생각할수록 자연의 오묘함이 느껴진다.

  비가 오면 비포장 길이 또 어떻게 변할지 몰라 일찌감치 롯지를 나섰다. 흔들리는 차에서 막 잠이 들려하는데 앞에 앉았던 김사장님이 사자다.’하고 소리친다. 벌떡 일어나 앞을 보니 수사자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길을 건너 반대편 숲으로 들어간다. 가다말고 돌아서서 물끄러미 우리 차를 보더니 여유 있게 숲으로 사라진다. 사자 찾아 헤맬 때는 꽁지도 안 보이더니 사파리를 나선 것도 아니고 캄팔라로 돌아가는 도중 길에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사자를 본 감동에 흥분하여 얘기하고 있는데 차가 미끄덩하고 미끄러지더니 쾅 하고 길옆으로 꼬나 박는다. 미처 손 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처음에는 곧 빠져 나올 줄 알았더니 길이 푹 젖은 데다 진흙 밭이라 내려서 밀수도 없다.

  로렌스와 톰은 도저히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롯지로 전화를 한다. 우리는 레카가 와서 꺼내주기를 기다렸다. 30분 정도 기다리니 웬 승용차가 우리 차 앞에 와서 선다. 승용차로 이 큰 버스를 어떻게 끌어내려나 의아해 하고 있는데 승용차 안에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계속 나온다. 다 나온 후 세어보니 11명이다. 장비는 삽 하나에 곡괭이 하나 달랑 들고 말이다. 내리더니 진흙탕에 대고 쭈욱 서서 볼일들을 한 바탕 보더니 삽과 곡괭이로 바퀴 앞 흙을 퍼낸다. 일 하는 사람은 두 명이고 다른 사람은 장비가 없으니 차를 밀 때만 동원된다.

  기껏 파내고 차를 밀면 몇 미터 못 가서 또 진흙에 빠진다. 좁은 도로에서 차가 옆으로 돌아버렸으니 끌어올려 방향을 바꾸는 데만 엄청 시간이 걸린다. 애니카 한 방이면 순간에 끝낼 일을 삽 하나 곡괭이 하나 인간 열 한 명이 두 시간 동안 싱갱이를 벌렸다.

  기다리다가 소변이 급해 숲으로 들어가려니 사자 생각이 난다. 사자를 보기 전에는 아무 나무 뒤로나 맘대로 들어가 볼 일을 보았는데 언제 어디서 사자가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인지라 다 같이 떼를 지어 일렬로 앉아 볼 일을 보았다. 오전에 마라마감보 숲에 들러 야생동물을 보고 캄팔라로 갈 계획이었지만 야생이고 뭐고 곧장 가기로 했다.

  캄팔라로 가는 길에 웬 궁전처럼 멋진 집이 언덕 위에 보였다. 이것은 카다피가 지어준 집이란다. 이 나라 왕의 여동생이 카다피에게 시집갔는데 그녀를 위해 지어준 별장이라 한다.

  가다가 차가 잠시 서자 김사장님은 차 바닥을 쓸고 유리를 닦는다. 진흙탕에서 몸부림치느라 차가 온통 흙투성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지 말라고 해도 열심히 닦는 모습을 보니 자신의 고객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진흙탕에서 빠져 나오려고 안간 힘을 쓰다가 휘발유가 소진되었는지 계기판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차가 언제 설지 모른다고 한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있어도 마음이 불안하여 좌불안석이다.

  길옆에는 하얀 돌에 UNRA라고 쓴 팻말이 계속 눈에 띤다. 아마도 UGANDA NATIONAL ROAD ASSOCIATION의 약자인 것 같다. 봉자씨가 톰에게 배낭을 선물하자 좋아서 입이 귀밑까지 올라갔다. ‘여자 친구 있냐? 여자 친구 주어라.’ 하니 오케이 하며 신이 났다.

  포트포탈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는 동안 로렌스는 차를 수리하러 갔다. 진흙탕에 빠질 때 마후라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캄팔라로 가는 길에 톰은 가게에서 핸드폰을 충전했다. 우리는 충전이 다 될 때까지 버스에서 마냥 기다렸다. 아프리카에서는 모든 것이 상상을 초월한다.

  아침부터 길을 나섰건만 저녁 어스름이 내려서야 캄팔라에 도착했다. 캄팔라는 사람과 차량의 홍수가 난 듯하다. 무엇인가 살아 움직이는 도시 같다. 캄팔라라는 이름은 임팔라가 뛰놀던 언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우간다가 축복의 땅, 산 자의 땅, 풍요의 땅, 낙원의 땅이라면 에티오피아는 저주의 땅, 죽은 자의 땅, 빈곤의 땅, 실낙원의 땅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풍요가 꼭 좋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배부르고 등 따시면 신을 찾지 않고 부패되기 쉽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어떻게든지 이 지구상에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치며 신에게 매달리는 것 같다.

  퇴근시간과 맞물려 호텔까지 가는데 또 한 없이 시간이 흐른다. 결국 깜깜해져서야 캄팔라 세레나 호텔에 들어올 수 있었다.

 

기름에 떠가는 차 ( 425)

  캄팔라에 오니 톰과 로렌스는 집에 갔다 왔는지 말끔하게 되어 나타났다. 가족을 만나고 와서 그런지 기분도 좋아 보인다. 톰은 자기 부인 사진을 보여주는데 엄청 멋지고 섹시하게 생겼다. 딸도 하나 있다고 한다. 우리들이 부인 예쁘다고 톱 모델 같다고 하니 어깨가 으쓱으쓱 올라간다. 명수씨는 톰에게 아버지가 톰을 엄청 사랑하는 것 같다고 하며 아버지가 늙고 힘 없어지면 아버지에게 잘 하라고 교육까지 시킨다.

  우간다 박물관에 가니 아직 청소도 안 끝나 제대로 문을 열지 않았다. 톰이 가서 뭐라고 했는지 그냥 들어가서 보라고 한다. 박물관에는 우간다의 여러 가지 유물과 자연이 소개되어 있고 잔디밭에는 전통 가옥이 만들어져 있었다. 우간다 사람들이 입는 옷도 있는데 거시기만 가리는 손바닥만한 옷도 있다.

  박물관에서 나와 바하이 템플을 보러 갔는데 바하이는 이란에서 온 종교라고 한다. 성당 건물도 웅장하고 정원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평화의 언덕에 있는 성당은 아담한 성당인데 지붕을 수리하는 중이고 전망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점심 식사 후 엔테베 공항으로 갔는데 공항 입구의 경비원이 어디서 왔냐고 묻기에 코리아라고 하니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한다. 엑스레이 검사를 한 후 트렁크에 검사필 딱지를 붙여 줬는데 내 것이 찢어져서 이거 찢어졌네.l'하니 노 프로블럼하며 아무 문제없다고 한다. 한국말로 해도 눈치로 다 알아듣는다.

  340분 비행기가 3시에 떠서 좀 일찍 도착하나 했더니 두바이 공항에서 시간을 다 잡아 먹는다. 비행기가 공항에 내려서도 계속 가기에 어딜 가나 했더니 공항 제일 구석에 갔다 세웠나보다.  

  셔틀버스를 타고 청사 안으로 가는데 한 15분은 간다. 중간에 차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 옆으로 지나가니 아주 우리 호텔까지 데려다 주려나보다고 농담들을 하였다. 우간다에서 온다고 우릴 아주 푸대접하나 보다.

  두바이 공항을 나와 버스를 탔는데 길이 어찌나 좋은지 마치 기름 위를 떠가는 것 같다. 2주간 비포장 길에서 오두방정 떨듯 흔들리며 다니다가 부드러운 포장길을 달리니 언제 이런 길 달려봤나 싶다. 쉐라톤 호텔로 가니 오밤중이다.


은하철도 999 ( 426)

  아침에 로비로 내려가니 명수씨네 방은 전구 있는데서 물이 줄줄 새어 떨어졌다고 하고 정원식님 방은 더운 물이 안 나와 다른 방으로 옮겼다고 한다. 다행이 우리 방은 아무 문제가 없어 편안히 잘 잤는데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서은경 가이드를 따라 버즈칼리파 전망대로 갔다. 버즈(burj)는 탑이란 뜻이고 칼리파는 국왕의 이름이라 한다. 이 건물은 두바이 최고층 빌딩인데 삼성에서 지었다고 한다. 아랍 에미레이츠는 7개의 부족이 연합하여 만든 나라다. 에미레이트는 부족이란 뜻이고 두바이는 그중 한 부족의 이름인데 메뚜기란 뜻이라고 한다. 뜀뛰기를 잘 하는지 메뚜기처럼 생겼는지 어쩌다가 부족이름이 메뚜기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124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두바이는 끝없는 사막 가운데 떠 있는 오아시스처럼 아름답다. 풀 한포기 자라지 못하던 모래밭에 물을 끌어들여 이런 웅장한 도시를 건설한 메뚜기 부족의 힘이 생각할수록 위대하다.

  점심때는 만나랜드라는 한식집에 가사 모처럼 포식을 하였다. 식사 후 아부라라고 하는 수상택시를 타고 물에 떠서 다시 한 번 두바이의 빌딩숲을 감상하였다. 햇볕이 따가운데 돌아다니다 점심을 먹었더니 어찌나 졸리는지 트램을 타러 가는 도중 차에서 모두 잠에 곯아떨어졌다. 자다 깬 정연씨는 마치 파리약 친 것 같다고 웃음을 터뜨린다.

  트램을 타고 인공섬인 팜아일랜드(palm island)를 보았는데 어찌나 환상적인지 원장님은 은하철도 999를 탄 것 같다고 감탄한다. 종착역에 있는 아틀란티스호텔도 상상 속 건물처럼 신비롭고 우리는 모두 은하철도를 타고 우주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저녁식사는 돛단배 모양의 버즈 알 아랍 호텔에서 하였다. 지난번에 두바이 왔을 때는 바닷가에서 이 호텔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갔는데 이번에 드디어 입성하게 됐다. 그런데 이 호텔에 들어갈 때는 복장이 단정해야 한단다. 대부분 무사히 통과했는데 원장님과 최사장님이 입구에서 걸렸다. 운동화를 신어서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구두를 빌려 신고 한참 만에 들어왔다.

  이 호텔이 비싸다는 소린 들었지만 상상을 초월한다. 물 한 병에 23000, 맥주 한 병에 6만 원 정도 한다. 이런 데는 평생에 한 번 구경이나 할 곳이지 두 번 올 곳은 못 된다.

  식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어제 우리를 마중 나왔던 여행사 남자 직원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수속을 도와준 후 작별인사를 하고 가는데 어찌나 조심조심 살금살금 걷는지 웃음이 절로 난다. 봉자씨가 이 모양을 보고 거시기 떨어질까 봐 저렇게 걷나보다고 하여 배꼽 빠지게 웃었다. 손님 앞이라 조심하느라 그랬나본데 꼭 땅이 꺼질까봐 걱정하는 듯 고양이 걸음으로 걷는 모양이 정말 우습긴 우스웠다.

 

현숙이 팔자 폈네! ( 427)

  면세점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정원식님과 선균씨가 라운지 이용권이 있다고 하여 라운지로 갔다. 선균씨가 나를 게스트로 해줘서 같이 들어가 음료수를 마시고 의자 두 개를 붙이고 누워 휴식을 취했다.

  내 팔자에 라운지란 없는데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선균씨 덕에 팔자 폈다. 새벽 3시에 보딩을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의자에 앉으니 내 옆에 웬 두바이 남자가 앉는데 쓰리 엑스라지 사이즈다. 그러니 자동적으로 다리 한쪽은 내 영역으로 넘어온다. 빈자리도 없으니 꼼짝 마라로 가운데 꼭 박혀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비행기가 이륙하길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다. 한참 자다가 눈을 떠보니 밖에 공항 건물이 보인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 이상이 지났다. 비행기에서는 안내 방송도 없다. 선균씨가 앞으로 가서 승무원에게 물으니 안개 때문에 이륙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을 안 하는 승무원들이나 아무 소리도 없이 한 시간이 넘도록 앉아 있는 승객들이나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결국 예정시간 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두바이 공항을 출발했다.

  9시간 가까운 비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내리니 마중 나온 남편이 세 시간 기다렸다고 툴툴댄다. 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으니 쥐 죽은 듯 찍소리 못하고 남편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은 한 마디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여행이었다. 넝마조각을 걸치고 맨발로 흙 속에서 뒹굴며 극한의 상황을 견디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어린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리다. 우리의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순간순간 감사가 넘쳐야 할 텐데 이런 마음이 얼마나 지속될지 내 자신도 알 수가 없다. 다음에는 우~ 간다~를 외치며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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