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2. 10. 18. 문학기행 (부석사)

아~ 네모네! 2012. 10. 25. 19:38

 

 

 

 

 

 

 

 

 

 

경로천국

소연 이현숙

 

  미래수필문학회에서 문학기행을 떠났다. 박위순 회원의 고향인 예천으로 갔다. 목요일 수필수업을 마치고 세 대의 차에 나누어 탄 회원들은 가을 정취 물씬 풍기는 부석사로 향했다.

  부석사로 가는 길은 빨간 사과와 노란 은행잎이 어우러져 총천연색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주차장 매표소에 이르니 입장료가 1200원이라 쓰여 있. 경로는 얼마냐고 물으니 공짜란다.

  우리 차에는 경로가 한 명 밖에 없어 세 명의 입장권을 샀다. 박위순님에게 전화하여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벌써 안으로 들어가 구경하고 있단다. 입장료는 어떻게 했느냐고 했더니 다 경로라고 말하고 그냥 들어갔다는 것이다.

자기 고향이라 뱃장이 두둑해졌나 보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이르니 박위순님 차를 타고 온 다섯 명의 회원이 부석(浮石)과 안양루를 보고 있다. 전화로 해설사를 부르니 잠시 후 무량수전 앞마당으로 해설사가 올라온다.

  얼마 동안 하면 좋겠느냐고 묻기에 30분만 해달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하며 설명을 시작한다.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사랑이야기로 시작하여 절집의 배치며 배흘림 기둥, 흙으로 만들었다는 소조여래좌상과 안양루 처마 밑의 부처님 모양 구멍까지 설명이 끝없이 이어진다.

  부석사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철철 넘쳐 1시간이 넘도록 끝날 줄을 모른다. 나중에는 좀 지루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고향에 대한 열정과 긍지가 넘치는 모습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부석사를 떠나 예천읍내에 있는 청포집으로 이동해 저녁식사를 하였다. 예천은 녹두가 많이 나 청포묵이 유명하다고 한다. 온갖 나물과 청포묵을 썰어 넣고 여기에 밥을 비벼 먹는데 난생 처음 먹어보는 별미다.

  식사 후 박위순님 여동생의 집으로 오니 거실의 큰 상에 떡과 과일을 차려놓고 우리를 맞는다. 이 부부는 우리에게 잘 쉬라고 집을 내주고는 다른 집에 가서 잔다고 문을 나선다.

  우리는 너무 배가 불러 먹을 수 없으니 먼저 세미나를 하기로 하였다. 회원들이 돌아가며 자기 작품을 읽는데 때로는 웃음이 터져 나오고 때로는 가슴이 뭉클하여 숙연해진다. 오장육부까지 다 드러 내놓는 글 친구는 부부간에도 할 수 없는 말까지 다 털어놓는다. 어찌 보면 부부보다 더 가깝고 형제자매보다 더 친하다.

  작품 낭독을 마치고 와인과 간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돌아가며 한 곡씩 뽑는데 노래방 기계가 없으니 가사를 몰라 어리버리한다. 노래하던 사람이 머뭇거리면 다른 사람이 얼른 도와주니 그런대로 노래가 이어진다.

이렇게 노래와 대화로 밤 깊어가는 줄 모르다가 하나 둘 방으로 들어가 잠이 들고 윤중일 선생님과 두 여인은 거실에서 대화가 계속된다.

 

  아침에 일어나니 박위순님이 온천에 가자고 한다. 근처에 예천온천이 있는데 100% 온천물만 사용하기 때문에 물이 엄청 좋다는 것이다. 두 대의 차에 12명이 끼어 타고 온천에 가니 벌써 많은 차들이 주차장에 들어와 있다.

  매표소 앞에 써 붙인 목욕료를 보니 일반은 5000, 경로는 2500원이다. 나는 또 솔직하게 경로 손들어 보라고 했더니 너도 나도 다 든다. 그러자 매표소에 있는 분이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랜다. 또 박위순님이 나서서 목욕하러 오는데 주민등록증 가져오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우긴다. 결국 두 명만 일반표 끊고 10명이 경로표를 끊었다.

안으로 들어가 옷을 벗는데 일하는 아줌마가 우릴 보더니 아무래도 경로가 아닌 것 같다고 한 마디 한. 우리는 우리가 젊어보여서 그렇지 두 명 빼고 다 경로라고 또 오리발을 내밀었다.

  안으로 들어와 샤워하고 뜨끈한 탕 속에 들어앉으니 어제의 피로가 확 풀린다. 가만히 앉아 생각하니 우리가 너무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이렇게 경로도 아닌 경로 노릇을 하면 젊은 사람들이 우리 몫까지 더 내야하는 꼴인데 젊은이들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 노인 인구가 너무 많아 재정이 흔들린다는데 젊은 사람들이 세금내기 힘들다고 다 이민 가 버리면 어쩌냐 말이다.

  물이 어찌나 좋은지 온 몸이 매끈거린다. 날아갈 기분으로 목욕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석송령을 보았다. 600년이 넘은 소나무인데 홍수가 나서 떠내려 오던 것을 지나가던 과객이 건져 이 자리에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1930년 경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이란 사람이 이 소나무에게 영험하다는 뜻으로 석송령이라 이름 짓고 2000평에 달하는 땅을 주어 재산세까지 내게 되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나보다 훨씬 부자다. 석송령 주위를 돌며 시원한 아침 공기를 마시니 맑은 샘물을 마시듯 기분이 상쾌하다.

  집으로 돌아와 문 안으로 들어서니 아침상이 차려져 있다. 웬 우렁각시가 왔었나 하고 부엌을 보니 박위순님 여동생이 이것저것 더 차려 상으로 가져온다. 굴비에, 불고기에, 뜨끈한 곰탕 국물까지, 온갖 나물이 상다리가 휘어지게 올라앉았다. 우리는 모처럼 시골 음식을 만나니 그야말로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해치웠다.

  아침 식사 후 박위순님 남동생 사과밭에 가서 사과 따기 체험을 하였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도록 사과가 주렁주렁 달렸다. 사과는 그냥 잡아 당겨 따는 것이 아니고 비틀어 따야 나무가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생전 처음 사과를 따보니 따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들 크고 잘 익은 것을 따느라 분주하다. 어느 정도 딴 후 바닥에 다 쏟아 놓고 나누어 가졌다. 가방 가득 사과를 들고 내려오니 갑자기 큰 부자가 된 듯 뿌듯하다.

  주인도 없는 사과 밭에 와서 마구 땄으니 박위순님 남동생 집에 가서 인사를 하려고 읍내로 가니 대문도 없는 집에 주인도 없다. 건물의 문도 열려 있어 박위순님이 안으로 들어가더니 나를 보고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무슨 일인가 하며 거실로 들어가니 우리들 주라고 더덕 무침을 해놓았다고 가지고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둘이서 부엌 서랍을 뒤져 비닐봉지 13개를 꺼내 나누어 담았다. 마당으로 나와 한 봉지씩 나누어주니 다들 탄성을 지르며 입이 귀에 걸린다.

  예천은 예의를 존중하는 고장이라 그런지 건물에 아예 대문을 만들지 않았다. 마당의 텃밭에는 배추, , 고추, 감 등이 널려있는데 가져가는 사람도 없나보다.

  다시 예천 읍내 시장에 가서 땅콩과 잡곡, 고추, 야채 등을 사 차 트렁크를 가득 채운 후 예천의 별미라는 콩가루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경찰서 옆 고향식당에 이르니 사람이 많아 들어가기도 힘들다. 식당 앞에서는 숯불에다 고추장 양념 돼지고기를 굽고 있다. 냄새가 기막히다. 안으로 들어가 돼지고기와 칼국수로 포식을 하고는 서울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곰곰이 생각하니 우리나라는 경로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은 나라에서 도우미를 보내 보살펴주고 생활이 어려운 생활보호대상자는 병원비도 무료다. 이 지구상에 우리나라보다 더 좋은 나라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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