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쥐 줄게 새 쥐 다오
아 네모네 이현숙
기간 : 2014년 5월 3일 ~ 5월 5일
장소 : 영양 일월산, 백암산, 영덕 블루로드
모처럼 4일 연휴가 생겼다. 이 중에 3일을 투자하여 가족 여행에 나섰다. 우리 친정은 아들 하나에 딸 여섯이라 딸은 번호를 매겼다. 1번 언니는 미국으로 이민 가서 돌아가신 관계로 2번인 내가 왕 언니 노릇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하나도 없고 동생들이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4번 동생이 미리미리 스케줄을 짜서 메일로 다 보내주니 그저 읽고 명령대로 움직이면 된다. A팀은 3일 날 아침 6시 반에 광나루역에서 출발하여 산행을 하기로 하고 B팀은 조금 늦게 출발하여 백암온천에서 만나기로 했다. 2번인 나와 4번 동생 부부, 5번 동생 부부가 A팀이고 3번 동생과 6번 동생 부부가 B팀이다.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도 차가 많이 막힌다. 4번 제부가 스마트폰의 김기사를 틀고 실시간 교통상황에 맞춰 안내하는 대로 간다. 팔당대교를 건너 양평에 가서 중앙선을 탔다.
치악산 휴게소에 들어가니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앉을 자리도 없고 밥 얻어먹기도 힘들다. 결국 밖에 서서 겨우 아침을 해결했다. 그래도 그 후에는 많이 밀리지 않아 일월산 밑에 도착하니 11시 반 밖에 안 됐다. 산길로 접어드니 산딸기, 병꽃, 노랑매미, 각시붓꽃, 구슬봉이 등 온갖 봄꽃이 우리를 반긴다.
영주시장에서 사온 빵과 집에서 가져온 과일로 점심을 해결하며 희미한 길을 헤쳐 나가니 어느 덧 월자봉이 나타난다. 일월산은 월자봉과 일자봉 두 개의 봉우리로 되어있는데 일자봉은 군 시설이 차지하고 있어서 정상에 오를 수가 없다. 군 시설 옆으로 일자봉을 빙 돌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산세가 높아 해와 달이 가장 빨리 보여서 일월산이 되었다고도 하고, 산마루에 천지라는 연못이 있는데 그 모양이 해와 달을 닮아서 일월산이라 했다고도 한다.
월자봉에서 능선길을 걷다보면 KBS 중계탑이 나타난다. 양지꽃, 족두리꽃, 괭이눈에 정신을 팔다보면 군 시설이 앞을 가로막는다. 왼쪽 길로 내려서니 윗대티에서 올라오는 길이 보인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계속 가니 일월산이란 표지석이 나타난다.
표지석 뒷면에는 이문열이 지은 일월송사가 새겨있다. 나무로 넓게 데크가 깔려있어 철퍼덕 주저앉아 간식 먹기도 좋고 따끈한 바닥에서 엉덩이 지지기도 그만이다.
B팀은 여주 휴게소인데 엄청 막힌다고 한다. 느긋하게 끝없이 이어지는 산세를 즐기다가 쿵쿵목이로 향했다. 쿵쿵목이에는 돌들이 탑처럼 쌓여있는데 안내판도 없으니 어인 연유로 이렇게 특이한 이름이 붙었는지 모르겠다. 돌을 쌓을 때 쿵쿵 소리가 나서 그랬나?
쿵쿵목이를 지나 부대 앞으로 오니 여기도 일월산 표지석이 있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니 황씨부인당이란 건물이 나온다. 산신각도 있고 연등도 달려있는 게 아마 굿도 해주고 기도도 해주는 곳인 가보다.
다시 올라와 KBS 중계탑을 지나 월자봉을 거쳐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5시가 되어 가는데 B팀은 여태 문막 밖에 못 왔다고 한다. 모처럼의 연휴인데다 어린이날까지 겹쳐 엄청 나게 몰려 나왔나보다. 우리가 산행할 동안 먼저 와서 온천하라고 했는데 우리가 먼저 가서 목욕재계하고 기다리게 생겼다.
이번 여행에서는 4번 제부 후배가 백암온천 부근에 아파트가 있다고 해서 거기서 묵기로 했다. 우체통에 숨겨놓은 열쇠를 꺼내 5층으로 올라가니 방이 셋이나 되는 널찍한 집이다. 집 주인이 살지 않는 집이라 가구가 없어 더 넓어 보인다. 우리는 짐을 대충 정리하고 온천으로 향했다.
백암태백온천에 가서 대건맨션에서 왔다고 하니 7천 원짜리 목욕표를 4천 원에 준다. 아마도 지역주민은 할인해 주나보다. 목욕을 하고 나와 근처에 있는 LG생활연수원으로 갔다. 연수원이라 음식 값이 엄청 싸다. 황태국이 3천원이다. 식사를 기다리며 B팀에게 도착예정시간을 물으니 밤 11시라고 나온단다. 오다가 그냥 저녁을 먹고 오라고 하고 우리끼리 저녁을 먹고 카페에 가서 차를 마셨다.
마냥 기다리고 있는데 이제 길이 뚫렸다고 잘 달리고 있단다. 8시 반이나 되어 겨우 도착했다. 곧장 식당으로 가서 식사하라고 하고 우리는 TV를 보며 느긋하게 환담을 나눴다. 식사하고 나온 3번 동생에게 물으니 의정부에서 9시에 출발했는데 이제 왔다는 것이다. 11시간이 넘게 걸렸다며 다음부터는 자기들도 새벽에 출발하겠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와 접시가 깨지도록 수다를 떨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다시 연수원에 가서 해장국을 먹고 신선계곡으로 향했다. 백암산에 있는 신선계곡은 초록색의 소와 탕이 이어지고, 기암괴석이 많아 신선이 살았음직한 모습이다.
아연광산이 있던 임도를 따라가면 계곡 옆에 콘크리트 옹벽이 나타나는데 여기에 울진 금강송을 그려놓아 거대한 벽화를 이루었다. 계속 계곡을 따라가면 거친 물살에 깎인 협곡이 이어지는데 마치 미국의 그랜드캐년을 연상케 한다. 그 규모가 작아서 그렇지 그랜드캐년은 못 되도 그랜드개년 정도는 된다.
B팀은 어제 너무 무리를 하여 중간에서 내려가고 A팀은 합수곡을 지나 백암산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어 넓은 공터가 있다.
정상에서 흰바위 쪽으로 하산했다. 백암산이란 이름이 흰바위산이란 뜻이니까 백옥같이 흰 바위인 줄 알았더니 오히려 검은색에 더 가깝다. 그래도 흰바위에서 조망은 끝내준다. 발아래 펼쳐진 신록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새의 흉내를 내며 사진을 찍는데 포즈가 엉거주춤하여 곧 추락할 것 같다.
백암산성을 지나니 새터바위다. 여기서 바라보는 앞산은 짙푸른 금강송과 연록의 활엽수가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더 내려오니 백암폭포다. 수량은 많지 않아도 몇 단에 걸쳐 내려오는 물줄기가 장관이다.
천낭묘 갈림길을 지나면 평평하고 널찍한 길이 이어져 그야말로 실크로드다. 다 내려오니 산불감시 초소가 나타나고 여기에는 입산자의 이름을 적는 방명록이 놓여있다.
4번 제부는 빠른 걸음으로 내려와 6번 제부와 함께 신선계곡입구로 차를 가지러 갔다. 4번 제부는 운전하랴 등산 안내하랴 발에 모터를 단 듯 돌아다닌다. 기사에 가이드에 대장에 찍사에 포터까지 1인 5역씩 하고 다닌다.
이런 제부를 둔 나는 참 복 많은 여자다. 이 날은 다 같이 느긋하게 온천욕을 즐기고 후포 항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4일 연휴가 되다보니 항구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여 차대기도 힘들다. 시장 안의 횟집에도 발 디딜 틈이 없다. 우리는 5번 제부 후배가 미리 예약을 해준 관계로 여유 있게 횟집으로 들어가 포식을 했다.
마지막 날은 밤에 비가 살짝 뿌리고 눈부신 햇살이 드러난다. LG생활연수원 앞에는 백암공원이 있고 그 뒤로 작은 동산이 있다. 여기에는 산책길도 있어 잠시 걸은 후 식당으로 갔다. 자율식당에서 3천 원짜리 아침 식사를 했는데 가격대비 넘 훌륭하다.
식사 후 영덕 블루로드를 걷기로 했다. B코스를 종주했으면 좋겠지만 저녁에 부모님과 식사를 하기로 해서 구간 구간 좋은 곳만 걷기로 했다.
죽도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축산항은 어머니 자궁 속 같이 오목하니 편안하게 생겼다. 서로 허리를 맞대고 나란히 떠 있는 배들은 사이좋은 형제들 같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블루로드 다리로 향하는 길도 쪽빛 바다로 빨려 들어가듯 환상 그 자체다. 해안가 모래사장을 지나니 진분홍 해당화가 방끗방끗 웃으며 우리를 반긴다.
해당화에 눈길을 빼앗기며 바닷가를 걸으니 기암절벽이 나타난다. 여기는 제주도의 용두암 비슷하게 생겼다. 동해안 해파랑길 중에서도 블루로드가 멋있다고 들었는데 정말 변화무쌍한 절경이 이어진다.
기암괴석을 지나 소나무 숲길로 들어서니 4번 제부와 6번 제부가 앞에서 나타난다. 우리 앞 쪽에 차를 갖다 두고 반대편에서 우릴 데리러 오는 것이다. 이번에 두 제부가 우리 자매들을 위해 몸 바쳐 충성한다. 내 남편인 2번과 바로 밑의 3번 제부는 둘 다 쥐띠다. 이제 환갑 진갑 다 지나고 보니 힘 빠지고 기력 떨어져서 같이 오지도 못하고 아무 짝에도 쓸데없이 되었는데 6번 제부가 등장하여 대타를 하고 있다. 알고 보니 6번 제부도 12살 아래 쥐띠라고 한다. 우리가 “헌 쥐 줄게 새 쥐 다오.” 하며 노래를 부른 일도 없는데 제 발로 나타나서 우릴 위해 봉사하니 우리 자매는 룰루랄라 신이 났다.
한 동안 걷다가 차를 타고 해맞이공원으로 갔다. 여기도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차들이 뒤엉켜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겨우 빈자리를 찾아 주차를 하고 게 발 모양의 등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아래로 내려가니 거기 또 게 발 조형물이 있다. 영덕은 처음부터 끝까지 게로 시작해서 게로 끝난다. 한 마디로 게판이다. 해안 쪽으로 내려가니 예쁘게 조성된 공원에 온갖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그림처럼 아름답다. 위로 올라오니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이란 표지판이 있다. 우리나라는 작지만 구석구석 온갖 아름다움이 배어있는 나라다.
차를 빼서 남쪽으로 달리다가 식당에 들러 대게탕을 먹고 서울로 향했다. 우리 자매는 3일간의 피로가 몰려와 꼬박꼬박 조는데 4번 제부는 스마트폰의 김기사 말을 열심히 들으며 운전을 계속한다.
이번 여행은 한 마디로 꿩 먹고 알 먹고 게 먹고 배 터지게 먹고 신나게 논 100점짜리 여행이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쭈욱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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