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는 그린란드
아 네모네 이현숙
기간 : 2014년 8월 2일 ~ 8월 20일
장소 :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영국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는 지도에서나 보았지 내가 여기를 밟아볼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하지만 조상의 음덕인지 우리 국민의 노력 덕인지 좋은 사람들을 만나 여기에 발을 딛게 되었다.
강적이네~ ( 8월 2일 )
8월 3일에 태풍이 올라온다는 바람에 하루 일찍 출발하기로 하였다. 인천공항에서 회원들을 기다리자니 정연씨가 발을 붕대로 칭칭 감은 채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다. 한 달 전에 엄지발가락이 골절되었다는 것이다. 아직 덜 붙어서 앞으로 스틱을 짚고 걸어 다니겠다고 한다.
작년에 발틱여행 갈 때는 상윤씨가 어깨뼈 빠졌다고 팔걸이를 어깨에 걸치고 나오더니 한 술 더 뜬다. 용기가 대단하다. 한 마디로 강적이다.
12시간의 비행 끝에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10년 전 기억이 떠오른다. 그 때 이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받을 때 심사원이 우리 일행들의 여권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우리는 땅에서 여권을 집어 들고 나오며 어안이 벙벙한 채 이유를 몰랐다. 나중에 생각하니 우리들 여권이 비닐 덮개에 싸여 있어 일일이 벗기며 심사를 하다가 신경질이 난 것 같다. 다시는 영국에 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어쩔 수 없이 또 오게 된 나는 잔뜩 긴장했다.
우리 일행이 줄을 서자 이번에는 심사원이 여권을 들어 보이며 비닐 커버를 벗기라고 알려준다. 우리는 모두 커버를 벗기고 무사히 입국절차를 마쳤다. 예전에도 이렇게 친절히 알려주었으면 좋았으련만 ……
세 번 보는 런던 ( 8월 3일 )
이 날은 태풍 때문에 갑자기 생긴 날이다. 마지막 날 하루만 보기로 했던 런던을 오늘 하루 더 보기로 했다. 이번이 세 번째 보는 런던이다. 템즈강 가에서 국회의사당,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바라보았다. 그 전에는 보지 못했던 런던 아이가 있다. 허니문카처럼 서서히 돌아가는 큰 원이다. 런던 올림픽 때 만들었다는데 눈알 같이 둥글게 생겨서 아이(eye)라고 한 건지 궁금하다.
버킹검궁전의 근위병 교대식은 여전히 인기가 많다. 수많은 인파에 밟혀 죽을 지경이다. 원장님은 휠체어를 밀고 정연씨는 타고 거침없이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비집고 잘도 다닌다.
점심 식사 후 피카디리 서커스로 갔다. 서커스는 로타리를 뜻한다. 우리나라 명동 거리처럼 인파가 넘치는 곳이다. 삼성의 옥외 광고판이 눈에 뜨인다. 현대차 광고도 보인다.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정연씨 휠체어가 타고 싶었는지 순환씨, 양숙씨 서로 다투어 타보겠다고 난리다. 김대장님이 한 명씩 교대로 태우고 분수대를 한 바퀴씩 돌아온다. 나보고도 타라고 하는데 쑥스러워서 사양했다.
하이드파크 옆의 캔싱톤가든에는 빅토리아여왕의 남편 앨버트공의 동상이 있다. 그는 오페라하우스를 짓고 문화 발전에 힘쓴 사람이다. 번쩍이는 금장식과 으리으리한 조각상들에서 그에 대한 영국민들의 사랑이 느껴진다.
호수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백조와 드넓은 풀밭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니 도심 한 가운데 이토록 큰 공원을 가진 런던 시민이 부럽다. 우리는 따가운 태양을 피해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식혔다. 영국 사람이 보면 제네들이 왜 저러나 할 꺼다.
켄싱톤궁에는 지금도 윌리암 왕세손이 살고 있다. 궁 앞에는 무슨 전시회를 하는지 다이애나비의 사진이 들어있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녀의 어두웠던 생애와 안타까운 죽음이 생각나 가슴이 찡하다.
풀밭만 나오면 양숙씨는 엎어져서 찍고 자빠져서 찍고 원장님과 등을 대고 찍고 온갖 쇼를 하여 우리를 웃긴다. 모두 따라서 생쇼를 하며 여분으로 생긴 하루를 만끽했다.
밤 9시가 넘어 히드로 공항을 출발하여 아이슬란드로 향했다. 3시간의 비행 끝에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빅에 도착했다.
아이슬란드는 그린란드 ( 8월 4일 )
캬빅은 고대 노르웨이어로 만(灣)이란 뜻이다. 말 그대로 레이캬빅은 육지로 쏙 들어온 바닷가에 있는 도시다. 레이캬빅은 연기 낀 항만이란 뜻이지만 연기는 없고 공기는 더없이 맑고 신선하다.
아이슬란드는 ice라는 말 때문에 얼음으로 뒤덮인 곳인 줄 알았는데 가는 곳마다 푸른 이끼와 풀로 덮인 초원이다. 처음에 이주해온 바이킹들이 이곳에 경작할만한 비옥한 땅이 많은 걸 보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까봐 얼음 밖에 없는 땅이라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린란드는 얼음 밖에 없었지만 많은 이주민들이 와서 개척하기를 바라서 푸른 초원이 있는 그린란드라고 또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할그리무르 교회를 보러갔다. 할그리무르는 아이슬란드의 가장 유명한 종교시인 할그리무르 페튀르손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교회의 건축가 사무엘슨은 용암의 구조를 따서 모양을 만들고 눈과 얼음의 색을 이용해 자연의 일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어찌 보면 파이프 오르간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로케트 발사대 같이 보이기도 한다. 교회 앞마당에는 1930년에 미국에서 기증한 아이슬란드의 아들 에릭슨 동상이 서 있다.
지열발전소가 있는 흐베라게르디 지역으로 이동하여 잠시 트레킹을 하였다. 푸른 초원에는 물망초, 미나리아재비, 물매화, 톱풀 등이 만발하고 하얀 목화솜 같은 것이 달린 풀이 많았는데 이것은 휘바라고 하였다.
곳곳에서 온천이 솟아나므로 이 물을 이용하여 난방을 하는데 너무 뜨거워서 가는 동안 식으라고 송수관을 지그재그로 만들었다. 황량한 벌판에는 노란 이끼가 뒤덮여 있는데 이것은 화산재 위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솔헤스타 승마장에서 말을 탔다. 말 타기는 항상 두렵다. 말의 생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언제 뛸지 몰라 그저 불안 불안하다. 푸른 초원 위를 달리지는 못해도 스무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렬로 말 타고 가는 모습은 장관이다. 말이 수시로 풀을 뜯어 먹느라고 고개를 숙이면 고삐를 잡은 나도 앞으로 몸을 숙이고 있어야한다. 가다고 오줌도 누고 옆에 다른 말이 오면 머리로 탁 탁 치며 성질을 부리는 말을 그저 어쩌지도 못하고 그냥 맥없이 기다려야한다.
셀랴란드스 폭포는 앞에 푸른 초원이 펼쳐져 멀리서 봐도 장관이다. 폭포 뒤쪽으로 움푹 들어간 공간이 있어 폭포수 뒤쪽으로 걸어 다닐 수 있다. 물보라가 튀어 무지개도 보인다. 쏟아지는 물 안쪽에서 안개비를 맞으며 바라보는 세상은 신비하기 그지없다.
근처에 있는 스코가 폭포는 옆으로 올라가는 트레킹 코스가 있다. 폭포 위쪽에는 거센 물줄기가 만들어낸 비경이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나무 한 그루 없이 이끼만 덮인 산이 눈에 설다. 위쪽에 어떤 비경이 더 숨어있을까 궁금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맞추려고 발길을 돌린다.
날개를 달아주는 남자 ( 8월 5일 )
아침 산책을 나갔다. 풀숲에 둥지를 튼 새가 푸드득 날아오른다. 부리가 빨간 엽서에서 본 새다. 조용한 대지에 찾아든 이방인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둥지에 알이 있는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근처를 맴돈다.
이슬에 발이 젖는다. 산등성이에 올라서니 커다란 호수가 보인다. 풀밭을 내려가 호수에 이르니 백조가 노닌다. 백조의 호수다. 인간의 소리가 없으니 자연이 말을 걸어온다. 이 속에 내가 있음에 감사한다. 내가 이 세상에 올 수 있게 통로가 되어준 부모님께도 감사한다.
스코가폭포 옆으로 이동하여 버스로 산을 오른다. 용암과 이끼로 뒤덮인 산이 외계의 행성에 온 듯도 하고 100만 년 전 지구로 되돌아간 듯도 하다. 픰뵈르두할즈부터 에이야프알라 빙하까지 트레킹 하기로 한 날이다. 안개비에 젖은 산장에서 추위에 떨며 도시락을 먹고 중무장을 한 후 빙하 위로 내려선다. 아이슬란드의 빙하는 잦은 화산 폭발로 화산재가 덮여 검은 색을 띠고 있다. 이끼도 없는 검은 돌과 흰 얼음으로 덮인 세상은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감히 인간의 소리를 섞을 수 없는 태고의 침묵이 흐른다. 인간이 나타나기 전의 세상은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몇 개의 능선을 넘고 빙하를 건너니 큰 분화구 속에 작은 화산이 있다. 거기까지 가고 싶지만 일행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냥 통과한다. 마큰리 화산 정상에 오르니 정상 부근은 붉은색 돌이 널려있어 마치 화성에 와 있는 착각이 든다.
아직도 화산활동이 끝나지 않았는지 뜨거운 공기가 솔 솔 나온다. 바위에 앉으니 찜질방에 온 듯 엉덩이가 따끈따끈하다. 공기구멍에 소세지를 넣고 익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정상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하산 길로 들었다. 내리막길이니 식은 죽 먹기로 속도가 붙는다. 다시 큰 분화구 속의 작은 화산 앞에 이르러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김대장님이 “저기 한 번 올라가 볼까요?”한다. 나는 내심 쾌재를 부르며 그러자고 했다.
작은 화산으로 올라가 이리보고 찍고 저리보고 찍고 신나게 돌아다니니 마치 날개를 단 기분이다. 한참 돌아치다보니 우리 팀들이 내려오다가 우릴 보고 환호한다. 얼른 내려와 다시 본래의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산장으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해안가의 드와르프 절벽으로 갔다. 검은색 해변가에 연초록의 이끼 낀 절벽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절벽 위에는 빨간 물탱크를 머리에 인 등대가 있다. 엊저녁에 우리 호텔에서 보이던 등대다. 끝에는 디르홀레이라는 커다란 구멍이 있는 절벽도 있다. 이것은 거대한 용암에 의해 형성된 것인데 이 구멍 때문에 이 반도가 문구멍을 가진 섬(디르홀레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토미 테일러라는 스턴트 파일럿이 이 구멍을 통과하여 비행한 적도 있다고 한다.
여기서 나와 블랙샌드 해변으로 갔다. 화산활동으로 생긴 검은색 돌이 해변에 쌓여있다. 해변가에는 주상절리가 있는데 어린아이들이 올라가 놀고 있다. 주상절리에 뚫린 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웬 신랑신부가 나타난다. 여기서 야외 촬영을 하나보다. 흰 드레스를 입고 맨발로 검은 해변을 걷던 신부와 신랑이 주상절리위로 성큼성큼 올라간다. 주상절리 위에서 거침없이 사진 찍는 모습을 보니 이들의 앞날도 거침없이 풀릴 것 같다.
새벽종이 울리네 ( 8월 6일 )
새벽에 복도에서 요란한 종소리가 들린다. 깜짝 놀라 나가보니 이방 저 방에서 사람들이 복도로 뛰어나온다. 웬일인가 하고 기다리니 잠잠해져서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들으니 화재경보기가 오작동 했다고 한다.
디르홀레이를 떠나 버스를 타고 두 시간 달리니 스카프타펠국립공원에 이른다. 아이슬란드 지명은 너무 어려워 보고 읽기도 힘드는데 스카프타펠은 목도리라는 스카프와 타펠이란 주방기구를 생각하니 금방 외어진다.
여기서 빙하 트레킹을 하였다. 우리가 준비해간 아이젠으로는 안 된다고 하여 크렘폰을 빌리고, 스틱이 없는 사람은 피켈도 빌렸다. 제법 전문가답게 차려입고는 빙하 위로 올라서니 새카만 연탄 위를 걷는 것 같다. 빨려 들어갈 듯한 푸른색의 빙하를 상상했건만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다.
아이슬란드의 빙하는 잦은 화산활동으로 화산재가 날아와 이렇게 검은 색을 띤다는 것이다. 검은 대륙이란 아프리카가 아니고 여기인 듯싶다.
가이드는 크렘폰을 신었을 때는 다리를 많이 벌리고 걸어야한다고 시범을 보인다. 나도 예전에 이걸 신고 걷다가 크렘폰 날에 바지가 걸려 바지에 구멍을 낸 기억이 나서 조심조심 걸었다.
빙하 위를 걷다가 얼음 굴로 들어가니 위에 구멍이 뻥 뚫렸다. 구멍 사이로 푸른 하늘이 눈부시다. 청빙의 빙하는 못 보았어도 눈이 시리도록 푸른 얼음구멍을 보니 속이 뻥 뚫리는 것처럼 가슴이 시원하다.
검은 빙하 위로 맑은 물이 흐른다. 가이드가 피켈을 짚고 엎어져서 물을 먹는 시범을 보이며 우리도 먹어보라고 한다. 미숙씨와 나는 잘 먹고 일어섰는데 순환씨는 빙그르르 돌면서 엎어져서 일어서지를 못한다.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모두 배꼽 잡고 웃었다. 결국 원장님이 몸을 번쩍 들어 일으켜주었다.
이렇게 빙하트레킹을 마치고 호숫가로 나와 도시락을 먹었다. 가이드 두 명은 옷을 벗더니 호수 물로 풍덩 뛰어들어 수영을 즐긴다. 따땃한 태양빛을 받으며 피크닉을 나온 듯 풀밭에서 점심을 먹고 안내센터를 지나 스바르티폭포를 보러갔다.
폭포까지 가는 데는 왕복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하지만 길가에 구릿대, 이질풀, 모싯대 등 수많은 야생화가 피고 설산이 바라보여 천상의 화원을 걷는 기분이다. 환상에 빠져 걷다보니 거대한 주상절리 사이에서 떨어지는 스바프티 폭포가 나타난다. 스바르티는 주상절리라는 뜻이다. 파이프 오르간 모양의 주상절리 사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수 소리는 대지가 교향악을 연주하는 듯하다.
폭포 앞에서 교향악단을 연주하는 지휘자처럼 두 팔을 벌리고 온갖 폼을 잡으며 사진들을 찍었다.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내려와 안내센터 화장실에 이르니 남자화장실 표시가 맹랑하다. 흰 종이에 WC라고 쓰고 화살표를 한 옆에 남자 모양을 그렸다. 거시기까지 리얼하게 그린 것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난다.
빙하 유람선을 타려고 요쿨살론으로 달렸다. 두꺼운 빙하로 덮여있던 곳이 녹으면서 호수가 생겼는데 바다와 연결되어 민물과 해수가 섞여있는 호수다. 호수에는 수많은 유빙들이 떠 있는데 여기서 배트맨 비긴즈와 007영화 ‘디 아더 데이’를 촬영했다고 한다.
수륙양용차를 탔는데 우리가 탄 배가 007영화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탄 배라고 자랑한다. 차가 물로 들어서니 꼭 빠질 것 같은데 가볍게 떠오른다. 유빙 사이로 요리조리 빠져 다니며 구경을 시킨 후 가이드가 1000년 된 얼음을 맛보라고 한다. 형탁씨는 예쁘장한 가이드 아가씨가 마음에 들었는지 옆에 서서 초콜렛까지 먹여주며 우리를 웃긴다.
너도 나도 얼음을 들고 맛을 본 후 호픈으로 이동하여 호텔에 들었는데 전망이 기막히다. 한쪽으로는 산이 보이고 한쪽으로는 커다란 빙하가 보인다. 툼레이더라는 영화를 찍을 때 배우들이 묵었던 호텔이란다.
빗속을 달리는 음악카페 ( 8월 7일 )
푸른 풀밭과 하얀 자작나무 숲에 이끌려 호텔을 나섰다. 자작나무 사이로 노란 유채꽃이 만발했다. 여기 저기 휘젓고 다니는데 정원식님과 여희씨, 연희씨, 순선씨가 벌써 나와 한바탕 돌고는 춤을 추듯 돌아온다. 자연은 사람도 춤추게 하는 모양이다.
호텔을 떠나 에길스타다르로 이동하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정연씨가 한국에서 가져온 CD를 틀어준다. 빗속을 달리는 음악카페다. 김사장님은 과자, 초콜렛, 과일 등을 들고 다니며 차내 서비스를 한다. 이렇게 달리다가 랑가바드지역에 있는 듀피보른이란 마을에 들렀다. 듀피는 deep, 보른은 bay 즉 깊은 만(灣)이란 뜻이다. 이름 그대로 깊은 만에 쏙 들어와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해변가에는 둥근 돌들이 늘어서 있는데 가이드 디띠가 이 지역에 사는 새의 알 모양이라고 설명해준다. 길쭉한 것은 절벽에 사는 새의 알이고 둥글둥글한 것은 평지에 사는 새의 알이라 한다. 절벽에 사는 새는 알이 굴러떨어지지 않게 알도 이렇게 길쭉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세 시간을 달려 에길스타디르에 있는 에다호텔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이슬란드에는 에다호텔이 많다. 에다는 12세기 아이슬란드의 시인이 쓴 책인데 현재는 고대서사시를 총칭하여 에다시라고 한다.
오후에 다시 두 시간을 달려 데티포스에 도착했다. 여기서 데티폭포와 셀폭포를 보았는데 데티폭포 가는 길에는 장구채, 톱풀, 바늘꽃이 지천이다. 데티폭포의 장엄한 물줄기는 마치 남미의 이과수폭포를 연상시킨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마치 내 몸이 폭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데티폭포에서 주차장으로 나오다가 왼쪽으로 가니 셀폭포가 있다. 이것은 데티폭포보다 규모는 작지만 나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가이드 디띠는 셀폭포 물이 쏟아지는 곳까지 바짝 다가가 바닥에 엎드려 떨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보게 해준다. 물줄기와 함께 내 몸도 끝없이 추락하는 기분이다.
셀폭포에서 나와 다시 버스를 타고 아스비르기로 이동하였다. 말발굽 모양의 절벽 안에 수정같이 예쁜 호수를 품은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말이 땅을 박차고 날아 올라갈 때 말의 발굽에 의해 이런 지형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수직절벽에 둘러싸인 옥빛 호수는 금방 어디선가 요정이라도 나타날 듯한 신비감을 간직하고 있다. 호수 위 절벽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끝없이 이어지는 푸른 숲이 안개에 싸여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스비르기의 호수를 본 후 후사비크로 이동하였다.
오 마이 갓~ ( 8월 8일 )
어제 예정에도 없는 곳까지 일부러 돌아서 비경을 보여준 디띠에게 우리는 너무도 고마워서 박수로 답례를 하였다. 딤무보르기르로 이동하기 전에 옛날에 바이킹들이 살던 집을 보았다. 바이킹들은 돌담을 쌓고 흙과 풀을 섞어 지붕을 만들었는데 이런 재료를 쓰면 단열이 잘 된다고 한다. 바이킹 집 옆에는 작은 교회와 박물관이 있었지만 시간이 일러 박물관은 문이 닫혀있었다.
우리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구경하였다. 우리 TNT 팀은 어디든 풀어놓으면 잘도 논다. 단지 한 번 풀어놓으면 주워 담기 힘든 게 문제다.
뮈바튼 호수 근처에 있는 흐베르펠 분화구 트레킹을 하였다. 석탄재처럼 까만색의 분화구 위로 서서히 올라가는 동안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린다. 식물이 전혀 없을 것 같이 황량한 땅이지만 초록이끼와 앙증맞은 꽃들이 군데군데 피어있다.
분화구 가장자리를 따라 가장 높은 정상 쪽으로 가며 안쪽을 보니 여기도 분화구 안에 작은 화산이 있다. 한 번 분출한 후에 시간이 지난 후 그 안에서 다시 분출한 복식화산이다. 분화구 안의 화산을 보자 또 마음이 설렌다. 가보고 싶다.
정상에 가자 미리 가 있던 김대장님이 안쪽에 있는 화산에 또 가보자고 한다. 날개를 달아주는데 안 갈 수 있나? 육여사와 미숙씨, 나는 김대장님을 따라 분화구 속으로 달려 내려갔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아 흙이 밀려 내리며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다 내려간 후 다시 안쪽 화산으로 올라가는데 뒤에서 우리 일행이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든다. 우리는 소리는 안 들리지만 환호 하는 줄 알고 함께 손을 흔들며 계속 올라갔다. 안쪽 화산 꼭대기에 오르자 작은 돌탑이 쌓여있다. 돌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부지런히 내려와 바깥쪽 화산으로 올라왔다. 다른 회원들은 다 내려가고 김사장님 혼자 우릴 기다리고 있다.
가이드가 우릴 보고 오 마이 갓~ 하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그곳은 자연보호 차원에서 출입금지이고 위반하면 일인 당 천 달러씩 내야한다는 것이다. 회원들이 소리를 지른 것은 가지 말고 빨리 되돌아오라는 뜻이었단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환호성인 줄 알고 마구 휘젓고 다녔으니 참으로 회원들과 가이드 디띠에게 미안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걸리지 않고 잘 다녀왔으니 네 명이면 4천 달러 번거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딤무보르기르 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여기도 화산재와 돌이 엉성하게 쌓여 한 걸음 내디디면 두 걸음씩 내려가게 된다. 줄줄 미끄러지며 내려오니 저 앞에 우리 팀이 내려가는 게 보인다. 다 내려와 디띠에게 미안하다고 모르고 그랬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비를 맞으며 계속 딤무보르기르 쪽으로 걸어갔다. 딤무는 어둡다는 뜻이고 보르기르는 도시라는 뜻이다. 즉 어두운 도시다. 검은 색의 화산암이 뒤덮여 이런 이름이 붙었나보다. 용암이 식으면서 동굴과 터널, 기기묘묘한 형상을 만들어 장관을 이룬다. 혀를 빼문 개의 머리, 혀를 내밀고 코를 치켜든 사람 등 별별 모양이 다 있다. 개선문처럼 커다란 아치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며 포즈를 취하라고 했더니 형탁씨가 나를 보고 어느 스튜디오에서 나왔느냐고 농담을 한다.
이렇게 척박한 바위틈에도 이끼와 난초, 블루베리가 숨어있다. 우리는 블루베리를 따 먹으며 계속 전진했다. 정연씨는 스틱을 짚고 비를 맞으며 끝까지 완주했는데 그 정신력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딤무보르기르를 떠나 한 기념품 가게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옆의 호텔에서 뜨거운 물을 사다가 같이 먹었는데 추위에 떨면서도 한참 운동을 한 다음이라 다들 거뜬히 해치웠다.
점심 식사 후 뮈바튼 호수로 이동하였다. 여기는 모기가 많았는데 뮈는 날파리이고 바튼은 호수, 즉 날파리 호수라는 뜻이다. 호수 안쪽에는 용암이 호수로 들어오면서 굳어진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즐비하다. 호수 옆에는 분화구 모양의 작은 산이 있었는데 이것은 호수에 유입된 용암이 굳어지면서 생긴 가짜 분화구라고 한다.
하루 종일 개 떨 듯 떨다가 버스에 오르니 졸음이 몰려온다. 노천온천인 뮈바튼 자연온천까지 가는 동안 병든 닭처럼 꼬박꼬박 졸았다. 뜨끈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자 추위에 오그라진 몸이 확 풀리면서 긴장감이 사라진다. 형탁씨는 너무 좋다고 내일까지 물속에 있고 싶단다. 곳곳에 돌무더기 틈 사이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는데 무심코 다가갔다가 너무 뜨거워 깜짝 놀랐다. 원장님은 팔을 데어서 뻘겋게 익었다.
목욕을 마치고 호텔로 가니 로비 옆에 농구장까지 있다. 웬 호텔에 이런 시설까지 있나 했더니 학교 기숙사인데 방학 동안 이렇게 일반에게 빌려준단다. 빈 기숙사를 이렇게 활용하는 것은 참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단지 방에 화장실과 욕실에 없는 게 조금 불편하다. 복도에 있는 공동 샤워실과 화장실을 이용해야한다.
잠지가 얼어붙는 듯 ( 8월 9일 )
아침에 화장실에 갔다가 샤워실에 가서 닦으려하니 물이 얼음장이다. 비누칠까지 했으니 멈출 수도 없고 끝까지 닦으려니 잠지가 얼어붙는 것 같다. 얼얼하여 정신이 나갈 정도다. 기숙사라 온수 공급을 안 하나보다.
식사 후 고다폭포로 이동했다. 고다폭포는 WATER OF GODS(신의 폭포)라는 뜻인데 서기 1000년 기독교가 아이슬란드의 국교로 정해지자 한 법관이 오래된 노르웨이신의 조각상을 이 폭포 속으로 집어던진 데서 유래한다.
말발굽 모양의 절벽에서 쏟아지는 장엄한 폭포가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다. 눈높이가 너무 높아져서 한국 가서 어떻게 폭포를 볼지 걱정된다. 폭포의 한 쪽에서 감상한 후 다리를 건너 반대편 쪽으로 가서 또 볼 수 있다.
다리로 가는 길의 돌무더기 앞에 김대장님이 서 있다. 왜 서 있느냐고 물으니 여기서 꼭 사진을 찍어야한단다. 별 볼 일 없는데서 뭘 찍나 했더니 구멍이 있다. 구멍 안에 얼굴을 대고 찍으라는 것인데 너도 나도 목을 들이밀고 찍는다. 바위틈으로 머리를 넣은 모양이 마치 단두대에서 처형당하는 사람의 모습이라 웃음이 절로 난다. 목이 달아나건 말건 깔깔대고 웃는 모습이 어린아이들 같이 천진난만하다.
고다폭포를 떠나 비티분화구로 이동했다. 비티분화구에는 1724년에 일어난 대규모 화산폭발 때 생긴 화구호가 있다. 비티 분화구에서는 진흙탕이 약 100년 동안 끓었는데 이 때문에 지옥이라는 뜻을 가진 비티라는 이름이 붙었다.
화구호로 올라서니 비취색 물빛이 우리 눈을 사로잡는다. 보면 볼수록 그 신비함에 호흡이 멈추는 듯하다. 도대체 자연은 어디에 이토록 신비한 색을 감추어 두었다가 밖으로 내놓는 것일까?
호수를 지나니 푸른 초원이 나타나고 휴화산인 크라프라산으로 이어진다. 왼쪽 능선으로 붙어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전망이 어찌나 좋은지 발걸음을 떼기가 어렵다. 발 아래 펼쳐지는 초원과 멀리 보이는 산들,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흰 연기들이 외계의 행성에 와 있는 듯 황홀하다. 멀리 지나온 비티 분화구의 호수는 돈황의 월아천을 보는 듯하고 여인의 푸른 눈동자처럼 깊고 영롱하다.
이곳은 지각판 중 미주판과 유라시아판이 만나는 곳으로 두 지각판이 벌어지면서 대서양 바다 속에는 해령(바다 밑 산맥)이 만들어지고 아이슬란드의 곳곳에서 화산과 지진이 발생한다. 그 열로 전기를 만드는 지열발전소가 곳곳에서 눈에 띤다.
정상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오른쪽 능선을 타고 다시 비티 분화구 호수로 내려왔다. 거의 다 내려와 지열 발전소에 이르자 육여사가 저 하얀 연기를 이용해 엉덩이에서 방구가 나오는 모양으로 사진을 찍자고 한다. 겉으로는 마냥 순진하고 어리숙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어느 구석에 이토록 재미있고 기상천외한 발상이 들었는지 놀랍다. 멀리 지열 발전소에서 나오는 흰 연기에 똥꼬를 맞추느라고 고개를 숙여라 앞으로 조금, 뒤로 조금 연방 지시를 하며 정확히 맞춘 후 사진을 찍으니 정말 대형 방구를 뀌는 듯 재미있는 모양이 된다. 이렇게 할 짓 못할 짓 모두 마치고 내려오며 다시 한 번 비티호수의 매력에 푹 빠져 호수 물빛을 만끽하고 버스로 돌아왔다.
비티호수에서 내려와 아쿠레이리로 이동하다가 디띠가 또 보여줄 것이 있다고 하여 버스에서 내렸다. 작은 용암지대인데 꼭 옐로스톤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곳곳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유황냄새가 코를 찌른다. 진흙탕물이 끓는 구멍도 보이고 노란 유황이 잔뜩 붙은 돌무더기도 보인다. 지구 탄생시의 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용암지대에서 나와 아이슬란드 제 3의 도시 아쿠레이리로 향했다. 아쿠레이리는 만(灣) 안쪽에 있는 아담한 항구도시인데 제 3의 도시답게 화려하고 아름답고 깨끗하다. 쭉쭉빵빵 미인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아쿠레이리는 밭이 있는 사구(砂丘)라는 뜻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고래탐험에 나섰다.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만(灣) 끝쪽으로 나가서 유람선을 탄다. 밤인데다가 배를 타야하니 다들 있는 대로 껴입고 얼굴을 가려서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힘들다.
한참을 바다로 나가도 거센 파도만 보일 뿐 아무 기척도 없다. 지루함에 멀미가 나려할 즈음 누군가 저기 고래 있다 하고 소리를 지른다. 방송으로 몇 시 방향을 보라고 알려주기에 그쪽을 보니 과연 고래가 흰 물줄기를 내뿜고 물속으로 들락날락한다.
우리 마음 같아서는 고래가 물 밖으로 튀어나와 전신을 보여주었으면 속이 후련하겠건만 검은 등과 꼬리만 살짝 살짝 보여주고 다시 잠수하는 모습이 감질나게 한다.
그래도 몇 번씩 수면을 넘나들었는데 그때마다 배에서는 와 와 하며 탄성이 터져 나온다. 그런대로 흡족하게 구경을 하고는 다시 항구로 돌아와 시내구경을 할 사람은 자유로 하고 피곤한 사람은 호텔로 가라고 하였다.
미숙씨와 나는 이 거리 저 거리를 활보하며 돌아다녔는데 거리의 건물들이 동화 속 집들처럼 아담하고 아름답다. 특히 언덕 위에 있는 교회는 조명을 받아 신비감을 더하고 교회 문 앞에 서니 아쿠레이리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백야라서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어있다.
호텔로 돌아오니 자정이 다 되었다. 우리가 묵는 아쿠레이리 호텔은 방이 19개 밖에 없는 작은 호텔인데 우리 일행이 19명이니 반 이상 차지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는 없지만 각 방에서 와이파이가 팡 팡 터져서 사진 올리는 소리가 연방 카톡 카톡 카 카 카 톡하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낸다.
바람과의 전쟁 ( 8월 10일 )
케르링가르프요우틀로 이동하다가 또 흐베라벨리르라는 용암지대에 들렀다. 여기도 흰 연기가 자욱한데 지반이 약하니 데크 위로만 다니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안개 속에서 데크를 따라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천상으로 통하는 길을 가는 듯하다. 곁의 풀밭에서는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개울가에 와서 물을 마시고 있다.
케르링가르프요우틀에 도착하여 해발 1400미터 되는 스내클루르 산에 올랐다. 너덜지대를 올라서니 거대한 빙하가 나타난다. 빙하 위를 걷다가 다시 너덜지대로 들어선다. 꼬불꼬불 이어지는 돌밭은 끝없이 이어진다. 돌중에 새까맣고 반질반질한 돌이 보였는데 이것은 밖으로 반출하면 안 된다고 한다. 내 기억으론 흑요석인 것 같다.
정상으로 가까워질수록 바람이 점점 세져서 서있기도 걷기도 힘들다. 아차 하면 계곡 아래로 처박힐 지경이다. 디띠는 나에게 머리통만 한 돌을 주며 이걸 들고 있으라고 한다. 정말 돌이라도 배낭에 넣어야할 판이다.
첫 번째 봉우리에서 일부 회원은 내려가고 두 번째 봉우리로 향하다가 앞서 가던 김대장님이 놀라서 되돌아온다. 위험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한다. 우리는 모여서 잠시 회의를 하였다. 디띠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한다. 원장님이 잠시 생각하더니 위험을 무릎 쓰고 강행할 필요는 없는 것 같으니 그냥 내려가자고 한다.
재빠르게 상황 판단을 하고 즉시 결정하여 강하게 밀고 나가는 것이 리더로서 자격이 있구나 싶다. 원장님의 최대 강점은 돌다리도 열 번 스무 번 두드려보는 신중함과 즉각적인 상황 판단이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원장님을 믿고 이렇게 따라 오는 모양이다.
내려오면서 바라보는 빙하와 풀 한포기 없는 화산지대는 몽롱한 신비감에 젖게 한다. 땅을 딛고 걷는 것인지 구름 위를 걷는 것인지 꿈속을 걷는 것인지 발이 공중에 둥 둥 떠 있는 것 같다.
바람은 계속 불어서 안 넘어지려고 양 손에 든 스틱으로 땅을 밀며 안간 힘을 쓴다. 첫 번째 봉우리로 되돌아와 잠시 쉬며 간식을 먹었다. 먹다가 최사장님이 옆으로 볼일을 보러 갔다. 볼일을 보나 했더니 곧 되돌아오며 도저히 안 되겠단다. 다들 쳐다보니 바람에 소변이 날려서 우리 쪽으로 다 날아오게 생겼단다. 우리는 먹다말고 숨이 막히도록 웃었다. 졸지에 음식 먹다 오줌 세례 받을 뻔했다. 다시 반대쪽으로 가서 원장님과 나란히 볼일을 보고 돌아온다.
아무튼 이 날은 바람과의 전쟁이었다. 내려오는 길은 계속 빙퇴석이 쌓인 모레인지역이다. 줄 줄 미끄러지며 버스가 있는 곳까지 오니 머리가 띵한 게 정신이 하나 없다.
안기고 싶으면 말로 하지 ( 8월 11일 )
굴포스와 게이시르, 싱벨리어국립공원을 일컬어 골든 서클이라 한다. 굴(GULL)은 금(GOLD), 포스(FOSS)는 폭포(FALLS)라는 뜻이다. 금폭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물이 금빛을 띠었기 때문이란 설도 있고 한 농부가 엄청난 양의 금을 갖게 되었는데 사후에 다른 사람이 이걸 가진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어 큰 상자에 넣어 이 폭포에 던졌다는 설도 있다.
굴포스에 이르니 엄청난 양의 물이 3단으로 쏟아져 내리는데 그 어마어마한 광경이 인간 언어의 한계성을 느끼게 한다. 좁은 협곡으로 굉음을 내며 쏟아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 자신이 한 없이 작아진다. 멀리서 바라보니 폭포 옆 암반에 서 있는 사람들이 개미 같다.
폭포 위의 초원으로 작은 트레일이 이어진다. 시간이 남아 오솔길을 따라 갔다. 끝없는 초원 위로 길이 가물가물 사라진다. 멀리 앞서 가는 원장님이 보인다.
시간에 맞춰 되돌아오는데 한 꼬마가 데크 위에 옆으로 누워 떼를 쓴다. 앞에 있는 남자가 오라고 해도 끄떡도 안 한다. 안아달라고 하는 모양이다. 나중에 보니 꼬마는 아빠 어깨 위에 앉아 무등을 타고 간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이것은 동서고금이 다 같은가보다.
다음은 게이시르로 이동하였다. 게이시르는 어감상 게이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이것은 간헐천이다. 게이시르(geysir)는 아이슬란드어로 분출한다는 뜻이다. 7~8분 간격으로 30m 정도 분출하는데 이것을 보려고 많은 사람이 둥그렇게 모여서서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그러다 물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면 다들 와아~ 하고 탄성을 지른다. 지표의 물이 땅속으로 들어가 데워지면 수증기가 생기면서 그 압력 때문에 치솟아 오르는데 한 번 뿜고 나면 땅 속이 텅 비면서 겉의 물이 순식간에 빨려들어간다. 곳곳에 펄 펄 끓는 물구멍이 보이고 돌덩이 사이에서 쉭 쉭 하며 증기기관차 소리가 난다.
다음은 싱벨리어국립공원으로 이동했다. 아이슬란드어로 싱은 의회를 뜻한다. 이곳은 알씽기라고 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회의사당이 930년에 건설되었다. 알씽기는 1년에 한 번씩 모였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법률을 공표하고 토론하던 곳이다. 또한 지질학적으로 미주판과 유라시아 대륙판이 갈라지는 곳이다. 용암이 갈라져 깊게 패인 틈으로 투명한 물이 채워져 있다. 이곳을 잇는 다리에서 동전을 던져 바닥에 닿을 때까지 볼 수 있으면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소문 때문에 물속에 동전이 가득하다. 디띠는 여기가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이라고 농담을 한다.
블루라군으로 이동하여 온천을 하였다. 라군은 모래톱에 의해 바다와 분리된 호수를 말한다. 여기에 온천시설이 있는데 옥색 물빛이 환상이다. 어찌나 넓은지 한 바퀴 도는데 한참 걸린다. 순선씨와 건물 근처 그늘에서 놀고 있는데 금옥씨와 미숙씨가 하얀 진흙으로 얼굴에 머드팩을 하고 온다. 건너편에 바르는 곳이 있단다.
우리도 가서 팩을 하려고 호수를 가로질러 갔다. 나는 걷는 속도가 느려 뒤에서 천천히 가고 있는데 앞서 가던 순선씨가 물에 빠져 허우적댄다. 순간 웬 백인 남자가 순선씨를 번쩍 들어 얕은 곳으로 옮겨준다. 아니 백인 남자에게 안기고 싶으면 말로 하지 물에 빠질 건 뭐람.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순선씨를 본 나는 가장자리로 살금살금 까치발을 떼며 머드가 있는 곳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흰 머드를 온 몸에 바르고 수다를 떨다가 밖으로 나왔다. 나도 가운데로 가서 한 번 백인 남자 품에 안겨 보는 건데 아무래도 큰 실수를 한 것 같다.
나오는 절차도 어찌나 복잡하고 탈의실도 두 층으로 나누어진데다 A,B,C 등으로 나누어져 내가 어디에서 옷을 벗었는지 찾기도 힘들다. 명수씨는 잘못해서 1층으로 갔다가 직원에게 물으니 2층으로 가라고 해서 간다는 것이 알몸으로 밖에 나갈 뻔 했단다. 미숙씨는 열쇠를 잃어버려 형탁씨 나올 때 같이 묻어나오느라고 혼났다고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나도 열쇠를 열고 닫을 줄 몰라 한참 헤매며 고생을 했다. 한 마디로 촌년이 모처럼 서울 와서 목욕 한 번 하려다 생쇼를 했다.
온천을 마치고 66° 아웃도어 매장에 가기로 했다. 디띠도 66°라고 쓴 옷을 입고 66°라는 옷을 사람들이 곳곳에 보여 66°가 뭐냐고 물으니 아이슬란드가 북위 66°에 있고 이걸 따서 66°라는 메이커가 있단다. 66° 매장에 눈이 멀어 어떤 건물에 66이란 숫자가 보이니까 다들 저기 있다고 소리친다. 그러자 디띠가 그건 매장이 아니고 그 건물의 주소란다. 우리 모두 66°에 눈이 멀어 헛것이 보이나보다.
레이캬빅 호텔로 돌아오니 웬 소녀가 반가이 뛰어나온다. 가이드 디띠의 딸이란다. 디띠의 표정도 마냥 밝고 부드러워진다. 지금까지 보던 표정이 아니다. 부녀가 안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세상에 가족처럼 좋은 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째 이런 일이? ( 8월 12일 )
오늘은 그린란드로 이동하는 날이다. 비행기 예약이 힘들어 두 팀으로 나누어 가기로 했다. 선발대 9명에 후발대 10명이다. 3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비행기다. 레이캬빅공항에서 대기중인데 웬 남자가 명수씨에게 말을 건다. 명수씨 배낭에 붙어있는 우간다 로고를 보고 우간다에 갔었냐, 무엇을 보았냐 하며 관심을 보인다. 명수씨는 작년에 갔다고 하며 이런 저런 얘기를 잘도 한다.
선발대 9명이 먼저 나가 비행기에 올랐다. 36인승의 작은 비행기다. 가볍게 날아올라 바다를 건너 그린란드 상공에 이르자 비행기 아래로 설산이 보인다. 검은 산에 하얀 빙하가 눈부시게 펼쳐져있다. 하늘에서 바라보니 저런 땅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살 수 없을 것 같다. 일루리샤트 근처에 오자 바다에는 수많은 빙산과 유빙들이 가득 떠 있다.
일루리샤트 공항에 내리자 호텔 직원이 마중을 나왔다. 후발팀은 비행기 기체에 문제가 발생하여 다시 회항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며 호텔차를 타고 호텔로 왔다. 로비에 이르자 한글로 된 안내문을 보여준다. 우리가 예약한 덴마크의 노르딕 여행사에서 보낸 것이다. 우선 예약대로 점심식사를 하고 있으면 다시 연락을 하겠다는 것이다. 우린 우선 체크인을 하고 방에 짐을 푼 다음 식당으로 모였다.
김사장님에게서 문자가 왔는데 비행기가 상승을 못해서 회항했고, 기름을 가득 채운 채 착륙을 하면 위험해서 한 시간 동안 연료를 모두 소비하고 비상착륙을 했다는 것이다. 비행장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소방차와 구급차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우리는 한 시간 동안 사람들이 생사를 넘나드는 공포에 싸였을 것을 생각하고 마음 아파하였다. 먼저 온 우리는 무슨 죄인이나 된 듯 마치 초상집 분위기였다. 내일은 무사히 오기를 바라며 예정된 대로 일루리샤트 시내관광에 나섰다.
그린란드 가이드 투비어스와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오래된 공방과 고래잡이배, 은행건물, 소방서 건물 등을 보았다. 이틀 전만해도 항구에 유빙(遊氷)이 가득 차서 배들이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병원도 있었는데 의사가 두 명 뿐이라 환자가 오면 수도인 누크에 있는 전문의와 스카이프로 영상 통화를 하며 치료한단다. 어린이 놀이터는 울타리가 쳐 있는데 들개들이 어린아이를 물어죽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버스정류장 같은 나무 건물은 공동수도라고 하며 직접 물을 틀어 보여준다.
언덕에는 덴마크인 동상이 있는데 이누이트인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한 사람이다. 이누이트는 캐나다에서 부르는 에스키모족의 공식 명칭이다. 주로 에스키모라고 하는데 이것은 캐나다 인디언이 ‘날고기를 먹는 인간’이란 뜻으로 이름 붙인 것이다. 이누이트는 ‘인간’을 뜻하는 말로 그들 스스로 자신들을 그렇게 부른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으로 되어있고 지금도 덴마크 의회에 두 명의 대표를 보내고 있다. 일루리샤트는 그린란드어로 빙산을 뜻하는 말인데 이름 그대로 거대한 빙산들로 가득 차 있다.
바닷가에는 수 십 개의 카약이 나무 걸이에 높게 걸쳐 있다. 옛날 카약은 물개 가죽으로 만들었는데 개들이 물개 가죽을 뜯어 먹는 것을 방지하려고 이렇게 높게 올려놓는다고 한다.
조금 올라오면 아담한 교회가 있는데 건물 앞에 1779라고 쓴 기둥과 1929라고 쓴 기둥이 있다. 1779년에 바닷가에 세웠는데 그 후 빙산이 밀려오며 교회가 파손되었다. 1929년에 좀 더 높은 이곳으로 옮겨 다시 교회를 세운 것이다.
이 날은 날씨도 우중충하고 우리 마음도 우중충하여 시내관광을 대충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이산가족 상봉 ( 8월 13일 )
그린란드는 KT만 터지고 SK는 먹통이다. 그린란드 통신사가 공영기관인 KT하고만 제휴되어있기 때문이다. KT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휴대폰에 김사장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후발대가 공항으로 나갈 준비 중이며 오늘은 갈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오늘의 예정대로 블루로드 트레킹에 나섰다. 오늘도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쏟아진다. 우리나라의 장마철 같다. 안내센터에서 버스를 타고 잠시 가니 트레일 시작점에 이른다. 버스에서 내리니 웬 개들이 바글바글하다. 한 마디로 완전 개판이다. 어떤 개는 묶여있는데 어떤 개는 막 돌아다닌다. 여기서는 6개월까지는 놓아서 키워도 되지만 6개월이 지나면 사슬에 묶어야한다. 가끔씩 공무원이 돌아다니며 6개월이 지난 개가 돌아다니면 사살한다.
블루로드와 옐로우로드의 갈림길에서 옐로우로드로 가니 공동묘지가 있다. 하얀 십자가들이 비를 맞고 서있다. 바위 위쪽에 있는 십자가는 그 아래 시신이 없다고 한다. 바다에 나가 실종된 사람들은 시신을 묻을 일이 없으니 이렇게 바위 위에 십자가만 세운다.
으스스한 공동묘지를 떠나 다시 갈림길에 와서 블루로드로 접어들었다. 길은 데크로 깔려 있는데 데크 위에 ‘당신은 지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역으로 들어간다.’ 는 글이 쓰여 있다. 조금 가니 돌무더기가 있는데 이것은 길 표시도 되고 예전에 원정대들이 지나가면서 이곳에 일기장을 넣어두었다. 그 사람이 실종되면 그 후에 온 다른 사람들은 그 일기장을 꺼내 보고 어디까지 왔었으며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았다한다.
더 가니 옛날 이누이트의 주거지가 있다. 우묵한 구덩이 뿐인데 그 좁은 공간에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이렇게 삼대가 살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 명수씨가 대뜸 그럼 애는 어떻게 만들었냐고 하여 다들 한바탕 웃었다.
주거지 앞 바다에는 하얀 산들이 있다. 저게 진짜 산이냐고 물으니 투비어스가 빙산이라고 한다. 어찌나 큰지 설산인 줄 알았다. 얼음덩어리를 왜 빙산(氷山)이라고 하는지 실감이 난다.
좀 더 가다가 빙산을 배경으로 사진들을 찍고 나니 투비어스가 커피를 준다.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걷다가 따끈한 커피를 마시니 그 맛이 천하일품이다.
빗속을 계속 걷다가 투비어스가 돌무더기 속을 보라고 한다. 돌틈으로 들여다보니 유골이 보인다. 이 일대에는 이런 무덤이 많다고 한다. 얼마나 오래된 유골인지, 어떤 사람의 유골인지, 아직도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빗물에 젖는 유골을 보자 인생무상을 느낀다.
바닷가에는 절벽이 있는데 옛날 이누이트들은 식량이 떨어지면 노인들이 먼저 자살을 했다한다. 할머니들은 이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할아버지들은 카약을 타고 바다로 나가 자살했다. 후손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좋은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배 두드리며 다니는 게 참 다행이다. 옛날에 이런 데서 태어났으면 나같이 생산 능력 없어진 할망구는 1순위로 바다에 투신해야한다.
곳곳의 바위에 옐로우로드에는 노란색 원이. 블루로드에는 푸른색 원이 그려져 있어 길 잃을 염려가 없다. 개인적으로 와도 충분히 다닐 수 있다.
블루로드는 계속 이어지는데 비가 오고 바위가 미끄러워 너무 위험하다고 해서 레드로드로 접어들었다. 레드로드를 따라 내려오니 처음 출발했던 개판으로 이어진다. 낯선 사람들이 나타나자 개들이 합창으로 울어댄다. 어찌나 음산한지 완전 늑대 울음소리다. 이곳 개들은 발정기가 되면 수놈은 묶어놓고 암놈은 벌판으로 몰아낸다. 그러면 늑대와 짝짓기를 하고 돌아와 새끼를 낳는다. 그래서 야생성을 유지하게 한다. 그래서 이렇게 늑대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왜 저렇게 한꺼번에 울어대느냐고 묻자 투비어스는 우리가 오는 것을 환영하는 것이라고 농담을 한다.
트레킹은 대충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후발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잠시 기다리니 우리 일행이 들어선다. 우리는 너무 반가워 얼싸 안고 눈물 콧물을 쏟았다.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고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상봉도 아니다. 어찌나 반가운지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온 듯하다. 얼마나 놀랐느냐고 물으니 다섯 사람은 잠이 들어 아무 것도 모르고 착륙하기에 그린란드 다 왔는 줄 알았단다. 정말 다행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딱 맞다.
점심 식사 후 후발대 열 명은 트레킹을 떠나고 선발대 9명은 자유롭게 시내구경을 하였다. 오후에는 날이 개어 후발대가 빙산 구경은 더 잘했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저녁 식사 후 유람선을 타고 빙산을 보러갔다. 배를 타고 빙산 가까이 가 보니 더 실감이 난다. 한참 달리다가 투니버스가 바다에서 얼음조각을 건져낸다. 우리에게 맛을 보여주려나 했더니 그게 아니다. 갑판 위에 두 개의 얼음덩이를 올려놓더니 설명을 시작한다. 불투명하고 하얀 얼음은 눈이 압축되어 얼음으로 변한 것이고, 투명한 얼음은 한 번 녹아 물이 된 후 다시 언 것이라는 것이다. 눈이 압축된 것은 속에 공기가 많이 포함되어 희게 보인다는 것이다. 눈은 희고, 한 번 녹았다가 얼어서 된 우박은 투명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날은 빙산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우리 일행이 모두 함께 마음 편히 잠자리에 들었다.
빙하의 일생 ( 8월 14일 )
오늘은 일루리샤트 북쪽 80km 피요르드 끝 지점에 있는 에퀴빙하를 보러가는 날이다.
일루리샤트항을 출발하여 5시간 간 후 2시간 동안 빙하의 끝자락에서 빙하가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 에퀴빙하인지 에끼! 빙하인지 만나러 가기도 힘들다.
배에 앉아 바다에 뜬 빙산을 바라보니 그 형상이 기기묘묘하다. 커다란 산 모양, 코끼리 모양, 구멍이 뻥 뚫린 아치모양 등 별 별 희한한 모양이 다 있다. 특히 큰 아치는 미국 아치스공원에 있는 랜드스케이프 아치를 똑 닮았다. 위쪽이 가늘어서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겠다.
에퀴빙하에 다다르니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입이 딱 벌어진다. 빙하에서 얼음덩이가 떨어질 때마다 와 와 탄성이 터져 나온다. 빙하를 보다가 선실로 들어오니 낯익은 사람이 보인다. 레이캬빅 공항에서 명수씨에게 말을 걸어왔던 사람이다. 이번에도 우리를 보더니 퍽 반가워한다. 자기는 노르웨이 사람인데 자기 부인의 할아버지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난히 한국 사람에게 관심이 많은가보다.
오늘도 투비어스는 또 얼음을 건진다. 어제와 같은 설명을 하나 했더니 이번에는 칼을 꺼낸다. 흰 얼음은 눈이 압축된 것이라 속에 작은 기포가 들어있어 단단하지 않고, 투명한 얼음은 물이 언 것이라 밀도가 크고 단단하다고 한다. 칼로 콕 콕 찌르니 정말 흰 얼음은 곧 깨지는데 투명 얼음은 끄떡도 안 한다.
거대한 빙하와 거기서 떨어져 나와 물에 떠 있는 빙산, 빙산이 부서져 생긴 유빙들을 보니 인간의 일생을 보는 듯하다. 하나의 형태를 이루었다가 형체도 없이 사라져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경로우대는 사탕발림으로? ( 8월 15일 )
오늘은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가는 날이다. 3박 4일간 같은 방에 있으며 벽에 걸린 이누이트 여인의 초상화를 본다. 납작한 코에 삐죽 나온 입술이 내 얼굴을 보는 듯하다. 어쩌면 여자들의 자존심은 코의 높이에 비례하는 것은 아닐까? 콧대가 높은 서양여자들을 보면 공연히 기가 죽는다.
이번에도 두 비행기에 나누어 타야한다. 네 명만 먼저 가기로 했는데 이번에는 나이 순서다. 정원식님과 최사장님, 금사장님, 그리고 나까지 딱 경로증 있는 사람만이다. 하지만 먼저 출발하는 비행기는 아시아트를 경유하기 때문에 캉가르수아크에는 더 늦게 도착한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 승무원이 사탕을 준다. 사탕을 먹고 나자 잠시 후 아시아트 공항에 착륙한다. 일부 승객이 내리고 다른 승객이 탄다. 다시 이륙하자 또 사탕을 준다. 나중에 탄 사람 때문에 또 주는 모양이다. 경로만 먼저 가라고 하더니 경로우대는 사탕발림으로 하나보다.
캉가르수아크 공항에 내리자 후발대가 먼저 도착해있다. 환승시간을 이용해 밖으로 나가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무작정 밖으로 나가니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지나가는 청년을 붙잡고 물어보니 이리이리 가라고 일러준다. 그 말대로 가다보니 강이 나타나고 강 옆으로 예쁜 길이 이어져 있다.
강가에는 분홍색 바늘꽃이 피어있다. 열매가 바늘모양으로 길게 생겨서 바늘꽃이라고 순희씨가 알려준다. 순희씨는 어찌나 꽃 이름도 잘 알고 꽃에 대한 설명도 잘 하는지 우리가 꽃박사로 명명했다.
트레킹을 마치고 공항으로 돌아오자 비행기가 1시간 반 늦게 출발한다고 한다. 다시 공항을 나와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린란드에 캉가르수아크인지 캉가루스웨터인지 이런 곳이 있는 줄 알지도 못했는데 무슨 인연이 있어 여기까지 와서 이 땅을 밟게 되었는지 참 내가 생각해도 여행복은 타고 났나보다.
비행기의 내 좌석으로 가니 한 여자가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묻는다. 아주 조금 안다고 했더니 자기 남편과 자리를 바꿀 수 있겠느냐고 한다. 그러겠다고 하니 앞장서서 한참 앞으로 간다. 부부가 어찌 이렇게 멀리 떨어져 앉게 되었나 모르겠다.
내 옆에는 한 청년이 앉았는데 영어가 달리고 주변머리도 없어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데 청년이 잠에 곯아떨어진다. 나도 새벽부터 일어나 설친 관계로 정신없이 잠들어 버렸다. 자다보니 네 시간이 금방 지나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한다.
저 사람이 반장이냐? ( 8월 16일 )
오늘은 덴마크 코펜하겐을 떠나 다시 런던으로 가는 날이다. 비싼 힐튼 호텔에서 꼭두새벽에 빵 한 쪽 먹고 공항으로 가려니 본전 생각난다. 코펜하겐 공항에서 게이트를 찾아가는데 중간에 출국심사를 한다. 게이트 가는 길에 출국 심사하는 건 처음 본다.
이번에는 영국 항공기를 탔기 때문에 히드로 공항 1청사로 들어갔다. 1청사는 새로 지어서 밝고 화려하다. 공항 직원 할머니가 우릴 보더니 “빨리 빨리” 하면서 길을 안내한다. 입국 심사대 앞에서는 “기다리세요~” 하더니 앞에 있는 김사장을 가리키며 반장이냐고 묻는다. 어디서 반장이란 단어까지 배웠는지 웃음이 절로 난다. 낯선 공항에서 이런 할머니를 만나니 긴장감도 사라지고 영국에 대한 호감도 생긴다.
공항을 나오니 가이드 신은선씨가 기다린다. 은선씨는 영국에서 12년 살았다고 하더니 아는 것도 많고 능숙하다. 웨일즈 지방의 체스터로 다섯 시간 이동하는 동안 영국 역사에 대한 설명이 끝없이 이어진다. AD 43년 로마인들이 템즈강을 타고 올라와 론도니엄이란 성을 지었는데 여기서 런던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오랜만에 버스를 오래 탔더니 멀미가 나서 토할 지경이다. 체스터 식당에서 다들 맛있다고 신나게 닭고기를 먹는데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 아니고 그림의 고기다.
시내에 체스터 성당이 있는데 정원 분수대에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동상이 있다. 예수님에게 물을 주는 여인의 모습인데 서로 얼마나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있는지 곧 입술이 닿게 생겼다.
오늘이 마침 경마대회가 있는 날이라 거리에는 머리에 풍선 장식을 하거나 멋지게 차려입는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경마축제는 수백 년 된 축제인데 예전에는 왕족이나 귀족들만 즐기던 것이 지금은 모든 사람이 함께하는 축제로 발전했다.
성벽 위로 올라가니 빅토리아 여왕 때 만든 탑이 서있다. 탑에는 1897이란 숫자와 빅토리아의 이름을 딴 VR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성벽을 따라 걸어보니 밖에는 운하가 둘러싸고 있다. 이 운하로 물자를 운반하여 체스터는 중세 때 상업 중심 도시가 되었다.
무수리 팔자에 웬 귀족 저택? ( 8월 17일 )
체스터를 떠나 스노도니아 국립공원으로 이동하였다. 이 공원에는 스노돈 산이 있는데 이 산은 해발 1085미터로 웨일즈의 최고봉이다. 정상 바로 밑에 까지 산악열차가 운행되어 정상 정복은 식은 죽 먹기다.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며 바라보는 경치는 알프스 뺨치게 아름답다.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들이 어찌나 좋아보이던지 당장 내려서 같이 걷고 싶지만 우리는 갈 길이 먼 관계로 정상 바로 밑에까지 열차를 타고 갔다. 정상에는 안개가 가득하고 바람이 강해 서 있기도 힘들다. 하지만 하늘이 보여주는 만큼 보아야지 어찌하겠는가? 다시 열차를 타고 내려오며 바라보는 호수와 절벽 아래 계곡은 우리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점심 식사 후 브레콘으로 이동하여 귀족의 성을 개조한 호텔에 들었다. 집사 두 명이 문 밖까지 나와 환영을 한다. 방도 일일이 안내해 주는데 방마다 모두 다르다. 박명수씨네 방이 가장 멋졌는데 귀족내외가 쓰던 방인 듯하다. 우리 방도 그런대로 멋졌는데 어쩐지 내겐 과분하다. 무엇인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한 듯 어색하다. 그저 무수리는 무수리답게 살아야 마음이 편하다.
브레콘 비콘스는 양 똥밭? ( 8월 18일 )
브레콘 비콘스 국립공원에서 트레킹을 하였다. 대관령 목장처럼 생긴 구릉 지대를 걸었는데 양 똥이 어찌나 많은지 완전 똥밭이다. 양 등에는 색이 칠해져 있었는데 이것은 부부임을 나타내는 표시라고 한다. 과연 같은 색을 칠한 양이 두 마리씩 짝 지어 다니고 있었다. 구릉지대를 다 올라가니 웨일즈를 나타내는 붉은 용이 그려진 돌이 세워져있다. 거기서 기념사진을 찍고 드넓은 초원을 되돌아 나왔다.
트레킹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하러 갔다. 멋진 식당에서 맛난 식사를 마치고 버스로 돌아오니 기사가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고 있다. 웬일인가 했더니 자기는 조금이라도 우리를 편하게 해주려고 버스를 식당 가까이 차를 세울 수 없는 곳까지 끌고 왔는데 사람들이 늦게 왔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똥밭을 걷다 왔는데 이런 꼴을 보니 완전 똥 씹은 기분이다. 히드로 공항 할머니 때문에 약간 풀어지려던 영국인에 대한 인상이 다시 확 구겨져 버렸다.
원장님은 화가 나서 은선씨에게 저 기사가 왜 손님에게 화를 내느냐, 시간이 부족하면 우리가 스톤헨지 안 보면 될 거 아니냐, 기사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따졌다. 우리 일행이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될 때 당당히 따지고 우리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것도 리더로서의 자격인 듯하다.
에임즈버리로 이동하여 스톤헨지를 보았다. 스톤헨지에는 유명세에 걸맞게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거대한 돌을 원모양으로 세우고 돌 위에 돌을 얹어 놓았는데 하지 날 정확히 태양이 돌기둥 틈으로 들어와 제단을 비춘다고 한다. 방사성탄소로 연대측정을 해본 결과 약 5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 옛날에 이 큰 돌을 어떻게 이동시켰으며 그토록 정확한 천문지식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불가사의한 일이다.
스톤헨지에서 나와 버스로 오니 기사가 우리들에게 할 말이 있단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자기가 무례하게 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속이 풀려서 박수로 사과를 받아주었다.
런던으로 이동하여 모처럼 한식으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유일무이한 한식이다. 모처럼 모두들 포식을 하였다.
다시 보는 대영 박물관 ( 8월 19일 )
오랜 만에 다시 대영박물관을 보니 커다란 돔이 생겼다. 서기 2000년에 만든 유리 돔인데 유리마다 크기와 모양이 다르다고 한다. 지붕 바로 밑에는 엘리자베스 2세라는 글씨와 2000이란 숫자가 새겨져 있다.
이집트관과 메소포타미아관, 한국관을 보았다. 은선씨는 먼저 우리끼리 보고 나온 후 다시 함께 들어가서 설명을 해주었는데 미리 예습을 하고 들으니까 더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5천년이 넘었다는 미라는 여전히 유리관 안에 누워 뭇 사람의 시선을 받고 있다.
중간에 순희씨 부부가 없어져 김사장님이 찾아 나섰는데 길을 잃어 정문에 가 있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많고 전시관이 복잡하게 배열되어 길 찾기가 힘들다.
그전에 볼 때는 남의 나라 것을 도적질하여 갖다 놓은 것뿐이라고 생각하며 곱지 않은 눈으로 보았는데 은선씨 말을 들으니 그렇지 만도 않다. 현지인들은 이 보물의 가치를 모르고 함부로 다루었으며 이 유물들을 발굴한 여력도 없었다는 것이다. 영국이 투자하여 발굴하고 가져다가 이토록 잘 보존하고 있으니 우리 인류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입장료도 받지 않고 세계 모든 사람들이 와서 볼 수 있게 했으니 오히려 감사해야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정말 공감이 갔다.
트라팔가 광장에는 넬슨 제독의 동상이 높이 서 있다. 트라팔가 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넬슨 제독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광장이다.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여가를 즐기고 있다. 광장 네 모서리에는 영국을 위해 헌신한 위인들의 조각상이 세워졌는데 한 쪽 구석에는 푸른색 닭 조각상이 있다. 앞으로 또 위인이 나타나면 닭을 치우고 그 분의 동상을 세울 계획이라 한다.
광장 옆에 있는 국립 미술관도 입장료를 받지 않았는데 고흐의 해바라기가 있다고 하여 찾아갔다. 과연 해바라기 그림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감상하고 있었다. 미숙씨 말에 의하면 고흐의 해바라기는 여러 점이 있는데 우리가 본 것은 ‘열네 송이 해바라기’라고 한다.
해바라기를 보고 있자니 불우했던 고흐의 일생이 떠오른다. 그는 평생 그림이 팔리지 않아 동생 테오의 후원으로 살았다. 고갱과의 갈등으로 자신의 귀를 자르기도 하고 정신병이 악화되어 끝내는 권총으로 자살했다. 천재는 왜 그다지도 정신병이 많은지? 한 쪽으로만 너무 발달하여 다른 쪽이 성장하지 못해 정신적 불균형이 생겨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영국 일정까지 모두 끝내고 명수씨 부부는 런던에 남아 아일랜드 관광을 일주일 더 하고 온다고 하여 이별했다. 명수씨는 또 눈물 콧물을 닦으며 우리를 환송했다.
공항에 오니 1시간 40분 늦게 출발한다는 안내문이 보인다. 마냥 기다리는데 식사시간이 너무 늦어져 물과 간식을 준다는 방송이 나온다. 부리나케 달려가 줄을 서서 빵과 음료수를 받아왔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 8월 20일 )
밤 11시가 넘어 비행기에 오르니 졸음이 쏟아진다. 졸고 있는데 기내식이 나온다. 공항에 올 때 멀미가 나서 별로 당기지 않는다. 옆의 꼬마를 보니 잘도 먹는다. 만화 영화를 보는지 이어폰을 끼고 있다. 그런데 이어폰에 웬 두루마리 화장지가 끼어있다. 가만히 보니 머리통이 작아서 귀가 스피커에 잘 맞지 않으니까 엄마가 화장지를 끼워줬나보다. 아이디어 한 번 참신하고 기발 나다.
정신없이 졸다 깨니 벌써 착륙준비를 한다. 확실히 동쪽으로 비행할 때는 시간이 단축된다. 지구 자전으로 생기는 편서풍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 한다.
해외에 갔다 올 때마다 인천공항에 내리면 어머니 품속으로 들어가는 아기가 된다. 마음이 그렇게 평온하고 아늑할 수가 없다. 언제 봐도 어디서 봐도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다.
이번 여행은 외계의 행성에라도 다녀온 기분이다. 일반 여행에서는 보지 못했던 특이한 광경이 놀라웠다. 내가 본 아이슬란드는 푸른 이끼와 풀이 뒤덮인 그린란드(green land)였고, 그린란드는 얼음으로 뒤덮인 아이슬란드(ice land)였다. 아무래도 이름을 바꾸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에는 원장님과 김사장님이 우리를 또 어떤 신천지로 안내해줄지 지금부터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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