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3. 4. 12. 바이올린이 된 패트병

아~ 네모네! 2013. 8. 3. 16:46

바이올린이 된 페트병

 

아 네모네 이현숙

 

 

  에티오피아 시미엔산에 트래킹을 갔다. 시미엔이란 에티오피아 말로 북쪽이란 뜻이다. 즉 에티오피아 북쪽에 있는 국립공원이다. 시미엔 마운틴 롯지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다음 날부터 트래킹에 나섰다.

  트래킹을 시작하는 산카바르까지 가는 동안 차가 서기만하면 어디선가 아이들이 나타나 달려온다. 집도 안 보이는 첩첩 산중에 어디에 있다가 이렇게 나타나는지 참 신기하다.

  무엇인가 살 수도 없는 물건을 들고 팔아달라고 한다. 사실 거저 줘도 별로 갖고 싶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아예 공연단을 만들어 공연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페트병의 한 면을 잘라내고 줄을 매 바이올린처럼 만들었다. 나무를 활처럼 휘게 하여 여기에 끈을 매서 이것으로 페트병에 맨 줄을 문지르며 연주한다. 간이 바이올린이라고나 할까? 제법 깽깽이 소리가 난다. 이것을 연주하는 아이가 악장인 듯하다. 다른 아이들은 페트병을 두드리며 박자를 맞춘다. 그마저도 없는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노래한다. 손으로 만든 조잡한 물건을 팔아달라고 내미는데 살 만한 것이 없다. 우리는 한국에서 가져간 옷과 볼펜, 색연필 등을 나누어주고 계속 달렸다.

  여기서는 페트병도 귀중품이다. 이렇게라도 하며 물건을 팔고 돈벌이를 하는 아이들이 기특하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다. 먼지투성이가 된 새카만 얼굴로 악을 쓰며 노래하는 모습이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 듯하다.

  우리가 페트병에 물을 가지고 다니며 마시면 유심히 바라보다가 물병이 거의 비어갈 때쯤이면 아예 졸졸 따라다닌다. 그러다가 다 마시면 병을 달라고 한다. 병을 주면 누가 빼앗기라도 할까봐 독수리가 병아리 채 가듯 낚아채간다. 이런 상황이니 길거리에 쓰레기가 없다. 모든 것을 재활용하기 때문이다. 빈병 하나도 굴러다니는 일이 없다. 휴지 한 조각도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아디스아바바에서 재래시장 구경을 갔다. 좁은 골목에 웬 사람이 그리도 많은지 내리기도 겁난다. 새카만 얼굴에 눈만 반짝이는 이들이 몇 년 굶은 아귀들처럼 무시무시하다. 시장 한편의 쓰레기 하치장 같은 곳에는 빈 페트병이 산처럼 쌓여있다. 이것을 녹여 신발을 만든다고 한다. 과연 신발 가게에는 페트병으로 만든 빨강, 파랑, 노랑 슬리퍼가 가지런히 모여앉아 손님을 기다린다.

  우리 아파트는 매주 목요일마다 재활용품 수거를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버리는 데도 매주일 한 보따리씩 나온다. 우유병, 물병, 요구르트병, 등등이 끝없이 나온다.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버리는 페트병이 도대체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얼마나 많이 나올까? 이걸 모두 에티오피아에 보내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마구 버리는 페트병을 볼 때마다 죄의식을 느낀다. 페트병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아이들 생각이 난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기도 하다. 그들도 같은 인간인데 말이다.

  이들을 보면 이 지구상에 남아있기위해 몸부림을 치는 듯하다. 사실 그냥 내버려두면 얼마 살지 못하고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다이어트를 뇌까리며 기름진 배를 두드리는 우리네 모습이 부끄럽기 한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