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3. 4. 8. 광나루 다리에 불던 바람

아~ 네모네! 2013. 8. 3. 16:38

광나루 다리에 불던 바람

 

아 네모네 이현숙

 

  너 댓 살 먹은 여자 아이가 광나루 다리를 건너간다. 손에는 조화를 들고 머리는 바람에 흩날린다.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엄마 손에 이끌려 아득하게 보이는 다리 끝을 향해 걸어간다. 어린 아이 눈에 다리 끝은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것처럼 무한대의 거리에 있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최초의 바람이다. 이게 어디 가는 길이었느냐고 좀 커서 엄마에게 물어보니 할머니 환갑잔치에 가는 거였다고 한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 얼마 안 되었으니 대중교통도 별로 없었을 때다. 아마도 성남시까지 계속 걸어갔던 것 같다.

  복우물(지금의 복정동)에 있는 엄마 친정에 들렀다. 그곳에 들어가니 떡을 하느라고 온 동리 아낙이 다 모였다. 말랑말랑한 인절미를 썰어 콩고물을 묻혀 주는데 입에서 살살 녹는다. 내 평생에 그렇게 맛있는 인절미는 다시 먹어보지 못했다. 아마도 사돈 환갑잔치에 가져가라고 인절미를 만들어 주신 모양이다.

  내가 들고 간 조화는 문틀 위에 잘 매달아 놓았다. 누가 매달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문 위의 벽에 걸렸던 조화는 내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여기서 하루 밤을 자고 다음 날 여수리(지금의 여수동)까지 산길을 걸어갔다. 세 고개를 넘어 모란에 이르고 여기서 개천을 건너 얼마를 가다 큰 길을 버리고 왼쪽 길로 들어선다.

  야트막한 고개가 나타나는데 이게 소막고개다. 멋진 소나무가 여러 그루 있고 소나무 밑에는 돌들이 쌓여있다. 사람들이 지나다닐 때마다 한 개씩 던져서 큰 무더기를 이루었다. 소나무에는 울긋불긋 천 조각들이 매여 있다. 소막고개를 넘으면 큰집 울타리가 보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울타리는 편백나무였다. 나뭇잎이 납작납작한 게 신기해 보였다. 큰 집 문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사랑방이 있고 왼쪽에는 외양간이 있다. 사랑방 앞에는 큰 가마솥이 있고 아침이면 큰 아버지가 소죽을 끓였다.

  마당을 지나면 왼쪽에 부엌이 있고 그 앞에는 안방과 마루, 건넌방이 나란히 있다. 뒤꼍에는 장독대와 대추나무 호두나무들이 있어 놀기 좋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바람을 맞았지만 어렸을 적 광나루다리(광진교)를 건너며 맞았던 바람이 가장 시원하고 달콤하고 인상적이었다. 내 생에 이런 바람은 다시 맞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