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3. 4. 1. 찾고 싶은 소리

아~ 네모네! 2013. 8. 3. 16:34

찾고 싶은 소리

 

아 네모네 이현숙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해서 새벽에 일어나 혹시나 하고 창문을 바라보니 창문틀에 물방울이 맺혀있다.

새벽기도 가려고 우산을 들고 1층으로 내려가 현관문을 여니 시원하고 촉촉한 바람에 실려 조잘조잘 빗소리가 몰려든다. 우산에 부딪치는 빗소리를 듣자니 뭐라고 하는지 소곤소곤 속삭이는 것이 그렇게도 다정하게 들릴 수가 없다. 교회까지 가면서 비의 속삭임에 계속 귀를 기울여보니 사랑하는 연인의 소리인들 이보다 더 달콤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요즘 이 소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지난 번 살던 집에서는 밤에 비가 오기 시작하면 투닥 투닥 빗소리가 잠결에 들려왔다. 잠결에 이불 속에서 듣는 빗소리는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대자연의 오케스트라다. 여기에 천둥과 번개까지 치면 이건 베토벤의 운명을 듣는 듯, 천지가 뒤흔들리는 듯한 격정의 소리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빗소리는 평생을 들어도 질리지 않으니 참 이상하고도 오묘하다.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세 번만 들으면 듣기 싫다는데 빗소리는 들어도 들어도 아니 들으면 들을수록 좋아지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게 그러니까 들을 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 투둑! 투둑! 하고 지붕에 떨어지는 소리,

! ! 타닥! 타닥! 하고 아스팔트에 떨어지는 소리,

! ! 토다! 토다! 하고 우산을 때리는 소리,

! ! 쪼로! 쪼로! 하고 홈통을 타고 내리는 소리,

! ! 후둑! 후둑! 하고 나뭇잎에 맞는 소리,

이렇게 떨어지는 장소에 따라 다르고 빗방울의 크기와 떨어지는 속도, 떨어지는 각도에 따라 천차만별의 소리를 내는데 이 변화무쌍한 빗소리를 표현하려할 때마다 인간 언어의 한계성을 실감한다.

 

  그런데 이 아름답고 오묘한 소리를 잃었다. 아파트로 이사 오니 밖에서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도무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갑자기 먹통이 되어버린 전화기 같다. 단지 베란다 밖의 철책에서 소리 없는 눈물처럼 방울져 옆으로 이동하다가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볼 뿐이다. 이게 아파트로 이사 온 후 가장 큰 손실이다.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자연과의 대화가 끊긴 세상, 문을 이중 삼중 사중으로 잠그고 이웃과도 외면한 채 달팽이 같이 딱딱한 껍질 속에 들어가 버린 세상, 죽음의 정적만이 감도는 세계가 바로 아파트가 아닐까?

  문을 이렇게 잠그다 보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사실 우리 집에 있는 물건이나 인간이나 길바닥에 내놔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텐데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잠그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이 소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

창밖에 양철 판때기라도 붙여 놓으면 가능할까?

아니면 창문 밖에다 도청기라도 설치해 놓으면 가능할까?

  별별 생각을 다 해보지만 별 신통한 방법이 없다. 난생 처음으로 아파트에 와보니 얻는 것도 많고 잃는 것도 많은데 아무래도 잃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여기서도 오래 살다보면 아파트 나름대로의 소리가 있고 아파트의 속삭임이 있겠지만 아직은 낯설어서 그런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갑자기 귀머거리가 된 듯 까만 정적이 나를 어둠 속에 가둔다. 언젠가 아파트와도 친숙해져 아파트와 대화하고 웃음 지을 날이 오기를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