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3. 5. 1. 가슴으로 일하나?

아~ 네모네! 2013. 8. 3. 16:53

가슴으로 일하나?

 

아 네모네 이현숙

 

  몸이 건강할 때는 무엇이 어디 붙어있는지 아무 감각이 없다. 몸의 이곳저곳이 아프면 무슨 장기가 어디에 있었는지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 비로소 자각하게 된다. 마치 그 장기가 나 여기 있어요.’하고 외치는 듯하다.

  지난 일요일 대전에 있는 시댁 조카 결혼식에 다녀오다가 중부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남편이 차선을 바꾸려고 2차선으로 들어서는 순간 뒤차가 달려와 우리 차를 박았다.

  이 차가 사각지대에 있어 남편이 미처 보지 못했나보다. 우리 차의 오른쪽 앞 범퍼가 박살나면서 왼쪽으로 튕겨나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에어백이 터지면서 차안이 자욱하고 역한 냄새가 가득 찼다. 얼른 창문을 열고 뒤차를 보니 그 차도 우리 뒤에 멈췄다.

  조심스럽게 차문을 열고 나와 뒤차에 가보니 그 차도 심하게 찌그러지고 할머니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다. 충돌 순간 안경이 깨지면서 눈을 다친 것 같다. 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는 별 부상이 없어보였다.

  갓길로 나와 119를 부르고 서 있자니 지나는 차마다 조심조심 우리 곁을 지난다. 하도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도 정신이 없다. 단지 가슴이 아프고 숨 쉬기가 힘들다.

  구급차가 와서 할머니와 아들 며느리를 싣고 병원으로 갔다. 우리 차도 왕창 부서지는 바람에 시동이 걸리지 않아 레카가 와서 끌어 수리 센터로 이동하고 우리는 이천 버스 터미널까지 레카를 타고 와 서울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 온몸이 시커멓게 멍들고 만신창이가 됐다. 일요일 저녁이라 병원도 못 가고 그냥 참기로 했다. 통증 때문에 숨을 크게 쉴 수도 없고, 트림만 나와도 가슴이 아프다.

  세수를 하려고 티셔츠를 벗으려니 팔을 위쪽으로 올릴 수가 없다. 겨우 겨우 옷을 벗은 후 씻고 쓰러지듯 자리에 누웠다. 너무 놀라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는다. 잠시 잠이 드는 듯하다가 자꾸 도로 깬다.

  월요일에 동네 외과에 가서 멍이 심하게 든 손과 발, 가슴 사진을 찍었다. 다행히 뼈는 부러지지 않았다고 한다.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받아왔다. 소염 진통제와 위장약이라고 한다.

  평소에 모든 일은 팔 다리가 하는 줄 알았다. 가슴은 그냥 가운데 떡 버티고 앉아서 편안히 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웬 걸 그게 아니다. 일어설 때도 앉을 때도, 문을 열 때도 닫을 때도, 거의 모든 행동을 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심지어 가위질을 할 때도 가슴이 아프니 이게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어떤 행동을 할 때나 가슴이 근육을 밀고 당기며 팔 다리를 움직이게 해주나보다. 가슴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트림만 해도 아프고, 코를 풀려고 해도 아프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역은 볼일을 볼 때다. 힘을 주기도 힘들고 일을 본 후 휴지로 뒤를 닦으려면 몸을 앞으로 굽히고 손을 뒤로 쭉 뻗어야 하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도 가슴이 아파 닦기가 힘들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앞으로 숙이는 순간 허파가 앞으로 쏠리면서 갈비뼈를 누르기 때문인가 보다.

  바닥에서 무엇을 집으려면 몸을 앞으로 숙여야하니 발을 구부려 몸을 낮춘 후 집는다. 우리 몸은 유기체라 다 함께 연결되어 있다. 어느 한 곳만 아파도 모든 행동이 제약을 받는다.

  오른쪽 엄지발가락 부근이 아프니 걸을 때 자꾸 새끼발가락 쪽으로 힘을 주며 엉거주춤 걷는다. 마치 고산에 올라간 사람처럼 엉금엉금, 좀비처럼 어슬렁어슬렁 걷는다. 평소에는 신호등 불빛이 반짝거리면 냅다 뛰었는데 요즘은 이조시대 새 색시 모양 조신하게 걷는다. 항상 방방 뛰며 통통거리고 다니던 내가 본의 아니게 요조숙녀가 됐다.

  왼손의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부어 구부리기가 힘드니 행주 짜기도 힘들다. 모든 일은 엄지와 검지가 다 하고 새끼손가락은 건성으로 따라 다니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겉옷을 입을 때 속셔츠 소매를 잡고 겉옷 소매에 손을 넣어야하는데 그게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손가락으로 잡는 줄 처음 알았다. 나도 모르게 그 두 손가락으로 잡으려고 하다가 아프고 잡히지를 않으니 다시 엄지와 검지로 옮겨 잡고 옷을 입는다.

  벽을 잡고 일어설 때도 내가 왼쪽 무릎을 세우며 일어나는 줄 이번에 알았다. 매번 일어날 때 마다 무의식적으로 왼쪽 무릎을 세우고 일어서려다 오른쪽 발가락이 꺾이며 아파서 다시 오른쪽 무릎으로 바꿔 세운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나도 모르는 나의 습관이 엄청 많다는 것을 느꼈다. 평소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척 중요한 일을 감당하고 있음도 알게 됐다.

  우리 사회도 이와 같지 않을까? 평소에는 아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 있는지 없는지 느끼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실상은 아주 중요한 일을 감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모든 것의 존재 가치는 그것이 망가지거나 사라져서 그 자리가 빌 때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있을 때 잘 하라는 말도 생겨났나보다.

  모든 것은 꼭 필요한 존재이고 전체가 연결되어 있어 어느 하나라도 없어지면 모든 순환이 엉망진창이 된다. 약육강식이 너무 잔인해 보여도 그것이 있어야 전체 자연의 조화가 이루어지듯 우리 사회도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루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