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꾸냥 산의 바람
아 네모네 이현숙
중국 사천성에 쓰꾸냥산이 있다. 쓰꾸냥(四姑娘)이란 네 명의 처녀라는 뜻이다. 쓰(四)는 넷이란 뜻이고 꾸냥(姑娘)은 처녀라는 뜻이다. 쓰꾸냥산에 네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1봉이 따꾸냥(太姑娘), 2봉이 알꾸냥(二姑娘), 3봉이 쌍꾸냥(三姑娘), 4봉이 쓰꾸냥(四姑娘)이다.
이 산의 세 번째 봉우리가 아무도 오른 적이 없는 처녀봉이라고 해서 같이 산에 다니던 사람들과 이곳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것도 한 겨울인 1월에 말이다.
밤 11시 50분 (현지시각 10시 50분) 성도 공항에 도착하니 우리나라 시골공항같이 엉성한데 성도는 안개에 젖어 뿌연 빛을 발하고 있다. 공항청사로 들어가 입국절차를 밟고 밖으로 나가니 한국인 가이드 김재현씨, 사천성 정부연락관 미스터 진, 등반가이드 미스터 고, 이렇게 세 명이 마중 나와 있다.
다음 날 한식당에 들러 된장 고추장 김치 등을 사서 쓰꾸냥산으로 향했다.
성도를 출발하여 청성의 옥당시장에서 닭고기 돼지고기 야채 등을 사고 민물고기도 샀는데 산 채로 큰 비닐봉지에 물과 함께 넣어 차에 실으니 비좁은 차가 온통 짐으로 꽉 찼다.
4500m가 넘는 고개를 지나 일륭에 도착하니 저녁때가 다 되었다. 4천 미터가 넘는 고개를 차를 타고 넘었더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속이 메슥거린다. 고소증이 나타난 것이다. 결국 저녁 먹은 것과 약까지 타 토하고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모든 짐을 말에 싣고 우리는 배낭만 지고 트래킹을 시작했다. 3500미터 고지의 평평한 곳에 베이스캠프를 쳤다. 거기서 하루 밤을 자고 다음 날은 4200미터 되는 곳에 제1캠프를 쳤다. 여기서 이틀을 지낸 후 제2캠프를 치기 위해 헬멧과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플라스틱화로 중무장하고 눈 덮인 산길을 올랐다.
산에는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고 길도 보이지 않았다. 눈 속에 허리춤까지 푹 푹 빠져 가며 전진하려니 기진맥진 진땀이 흘렀다. 급기야 우리 앞에 200미터는 되는 빙벽이 나타났다. 두 남자가 기어오르며 고정 밧줄(픽스 로프)을 설치하면 나는 그 줄을 잡고 주마를 이용해서 올라갔다. 식량이 든 무거운 배낭을 지고 빙벽을 오르려니 죽을 둥 살 등 제정신이 아니다.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쥐어짜내 겨우 빙벽에 올라서니 그 위에 또 100미터나 되는 빙벽이 앞을 가로 막는다. 혼자서 다시 내려갈 수도 없으니 또 울며 겨자 먹기로 밧줄에 매달린다.
여기에 올라서니 또 20미터 정도의 빙벽이 나타났는데 가지고 간 밧줄이 부족하여 내가 선 곳까지 줄이 닿지를 않는다. 밧줄 밑까지 그냥 와서 잡으라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차하면 수 백 미터 낭떠러지로 떨어져 계곡의 눈 속에 쳐 박히게 생겼다. 결국 배낭을 벗어 하켄에 매달아 놓고 맨몸으로 줄까지 기어가 줄을 당겨 다시 와서 배낭을 지고 다시 올랐다.
다 올라서니 두 남자는 텐트를 치려고 눈을 밟아 다지고 있다. 어스름한 저녁 빛으로 겨우 텐트를 치니 양쪽은 천 길 낭떠러지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잉 잉 앵앵 애기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앙칼진 여인의 비명소리 같기도 하다. 귀신 소리 같기도 하고 미친년의 울부짖음 같기도 한 바람소리를 듣자니 소름이 끼친다.
텐트 옆의 눈을 떠서 녹여 즉석 추어탕과 햇반으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한쪽 눈에는 소변을 보고 다른 쪽 눈은 떠서 밥을 해먹으니 참 제 배설물을 제가 먹는 것 같아 우스꽝스럽다.
2인용 텐트에 세 명이 누우니 똑바로 누울 수가 없다. 머리를 서로 반대로 하여 겨우 옆으로 누웠다. 밤새 바람은 점점 거세져 텐트 채로 날아갈 것처럼 우리 텐트를 흔들어댄다. 자다가 텐트 채로 세 명 모두 날아가 계곡에 쳐 박힐 것 같아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렇게 누워 가만히 듣고 있자니 바람은 산의 호흡이라는 생각이 든다. 계속 부는 게 아니라 들숨과 날숨 사이에 잠간씩 바람이 멈춘다. 산이 훅 훅 숨을 내쉬는 것 같다. 미친 듯한 바람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내가 살아서 저 빙벽을 내려갈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산의 숨소리를 들으며 누에고치 속의 누에같이 침낭 속에서 뒤척이다가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여전히 바람은 기세등등하다. 빙벽을 내려가다가 밧줄이 엉키면 어쩌나 심장이 쪼그라드는 듯하다. 아침식사도 행동식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하산을 서둘렀다.
바람은 여전히 몰아쳐서 줄에 매달린 몸이 흔들흔들한다. 중심을 잡으려고 다리를 있는 대로 벌리고는 천천히 하강을 하였다. 하강에 능숙한 만기씨는 앞서 내려가면서 밤사이 빙벽에 얼어붙은 줄을 아이스바일로 떼며 내려간다. 밧줄 세 개를 다 내려와 절벽 밑에 발을 디디니 ‘이제 살았구나!’ 하는 안도의 한 숨이 절로 나온다. ‘다시는 올라가지 말아야지’ 하며 다짐에 다짐을 한다.
그 다음부터는 그래도 절벽은 아니라서 HIDDEN CRACK(가려진 구멍)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스틱으로 짚어가며 내려왔다. 아무리 조심을 한다고 해도 발을 디디면 그냥 허당으로 빠져 들어가는 데는 도무지 속수무책이다.
지금도 쓰꾸냥산의 미친 듯한 그 바람을 생각하면 오금이 저리고 오줌을 지릴 판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 5. 4. 모가지 뎅강 잘라놓고 (0) | 2013.08.03 |
---|---|
2013. 5. 1. 가슴으로 일하나? (0) | 2013.08.03 |
2013. 4. 12. 바이올린이 된 패트병 (0) | 2013.08.03 |
2013. 4. 11. 안개꽃 달고 있으려나? (0) | 2013.08.03 |
2013. 4. 9. 지리산에 불던 바람 (0) | 2013.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