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08. 8. 19. 몽골

아~ 네모네! 2012. 10. 14. 18:02

 

 

 

 

 

 

 

 

 

 

 

 

 

 

 

<기행문>

징기스칸의 후예 몽골

이현숙

몽골이란 말은 원래 용감함이란 뜻을 가진 부족명인데 징기스칸이 몽골부족을 통일함으로써 민족명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몽고가 몽골과 같은 나라라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몽고(蒙古)라는 명칭은 중화사상을 가진 중국 사람들이 몽골족을 무지몽매한 야만인이라고 무시하며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814일 비행기에 갇혀 세 시간

아침 7시에 공항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 여기 저기 면세점을 기웃거리다가 이번 여행의 룸메이트 한선희씨가 뭘 좀 먹자고 한다. 그러자고 했더니 자기 아들이 50만원을 줬다고 하며 샌드위치와 커피를 산다.

비행기에 올라 신문을 보다가 오늘의 운세를 보니 인기를 얻고 재물이 생긴다고 한다. 이래서 오늘 공짜 아침을 얻어먹었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비행기에 오르니 뒷좌석이 텅텅 비어 잽싸게 뒤로 옮겨 앉았다. 비행기가 이륙하도록 아무도 오지 않기에 다섯 자리를 차지하고 머리베개 두 개에 발베개 한 개를 하고 누우니 비즈니스 석은 저리가라다. 이럴 때 한 열 시간 갔으면 좋으련만 베이징까지 한 시간 반 정도 밖에 안 가는 것이 아쉽다.

베이징에서 울란바타르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려니 요즘 올림픽 기간이라 그런지 유난히 검색이 까다롭다. 김정순님은 기내에서 산 양주 두 병을 기어이 빼앗기고 말았다. 대한항공 승무원이 와서 기내에서 산거라고 해도 막무가내기다. 한국 들어갈 때 샀으면 좋았을 것을…….

비행기에 올라 이륙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소나기가 퍼붓는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노아의 홍수가 다시 나는 듯, 세찬 빗줄기와 천둥 번개가 천지를 뒤흔든다.

소나기니까 곧 그치겠지 했는데 도무지 그칠 생각을 안 한다. 한 시간 이상이 지나자 기내식으로 샌드위치가 나온다. 땅바닥에서 기내식 먹기는 난생 처음이다. 샌드위치를 다 먹고 아무리 기다려도 도무지 비는 그칠 기미가 없다.

수요반의 까까언니는 남의 집 어린 애기를 안고 어르며 놀고 있고 화요반 회원들은 이럴 때 조연옥이 있어야 오락부장 시키며 노는데 조연옥이 없으니 아쉽다고 한탄을 한다.

결국 예정보다 세 시간이나 지나서야 이륙을 하였다. 문득 모든 일의 계획은 사람에게 있을 지라도 일의 결국은 여호와께 있다는 성경 구절이 생각난다. ‘몇 시에 출발, 몇 시 몇 분 어디 도착하며 열심히 계획을 세워봤자 하늘이 허락지 않으니 말짱 도루묵이다. 이러다 몽골이나 가려나 했는데 그래도 해 지기 전에 울란바타르 징기스칸 공항에 도착하였다.

밖에 나와 화요반은 작은 버스를 타고 나머지 회원들은 큰 버스에 올랐다. 큰 버스에는 철수라는 한국명을 가진 가이드가 오르고 우리 차에는 이한길이란 어린 가이드가 올랐다. 몽골 가이드들은 한국 사람이 부르기 좋게 한국이름을 가지고 있다. 한길이는 의정부의 충암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까지 한국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몽골에 온지 네 달 밖에 안 되어 몽골 사정을 한국사정보다 몰랐다. 누나는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한국에 산다고 하였다.

울란바타르를 가로지르는 돌 강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오늘의 숙소인 나름달 캠프로 가는데 가는 길이 비포장이고 앞서 가는 버스에서 어찌나 매연을 뿜어대는지 숨을 쉬기가 괴롭다. 그래도 숨을 안 쉴 수는 없어 먼지와 매연 범벅이 된 공기를 들이마시니 콧구멍 목구멍이 금방 뻑뻑해져 온다.

한 시간 정도 들까부르는 버스에서 요동을 치다가 나름달 캠프에 도착하니 끝없이 이어지는 능선 위로 황혼이 붉게 물들었다. 황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바라보니 흰 게르 위로 둥근달이 떠올라 우리를 환영한다.

우선 식당으로 올라가 저녁 식사를 하였다. 식당으로 쓰는 게르는 무척 넓어서 벽을 보니 세계최대: 20m 20cm, 세계최고: 해방 2000m, 동시 수용인원: 300명이라고 쓰여 있다. 웬 해방인가 했더니 해발을 쓴다는 게 해방이 된 모양이다. 시설은 엉성해 보여도 감자국은 깔끔하고 개운한 게 아주 맛이 있었다. 이 캠프의 사장이 한국 사람이라 김치도 우리 입맛에 딱 맞았다.

식사를 마치고 공연장으로 가니 민속공연이 있었는데 그 창법이 우리나라의 판소리 비슷한 게 독특한 신비감을 자아냈다. 사람이 내는 소리가 아니고 자연이 내는 소리 같다고나 할까?

민속공연 후에 꼬마 아이가 나와 춤을 추는데 몸이 어찌나 유연한지 마치 뼈가 없는 무척추 동물 같았다. 그 후 전통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패션쇼를 하고 마지막에는 한복을 입고 나왔는데 다리미가 없는지 그야말로 꾸기망숙쟁이가 되어 보기에 민망할 정도다.

짐을 끌고 각자의 게르로 들어와 짐을 푸는데 한선희씨가 홍삼 엑기스를 먹으라고 준다. 하여튼 나는 다른 건 몰라도 룸메이트 복 하나는 확실하게 타고 난 모양이다.

짐을 정리하고 샤워장으로 가니 화장실 변기에 깔판이 없어 앉으면 곧 빠질 것 같아 엉덩이를 반쯤 걸치고 변을 봐야한다. 샤워실도 엉성하여 밖에서 안이 보일 것 같아 샤워는 생략하고 쪼그리고 앉아 이만 닦고 게르로 돌아왔다.

그래도 침대에 누워 두 다리 쭉 뻗으니 안온한 느낌이 들고 이부자리가 보송보송하여 기분이 좋다. 밤에 일어나 소변을 보러 가려니 달이 어찌나 밝은지 천지가 온통 하얗고 하늘의 별은 어린아이 눈동자처럼 초롱초롱하다.

 

815일 버스에서 세 시간

아침에 일어나 게르 문을 열고 보니 동쪽하늘이 붉으스레 물들었다. 일출을 보려고 밖으로 나오니 정원식님과 윤영자님이 벌써 나와 마당의 수돗가에서 양치질을 하신다. 더 높은 곳에서 일출을 보려고 작은 산봉우리로 오르는데 다른 캠프의 게르가 보이고 철조망이 앞을 가로 막는다. 개구멍을 찾아 들어가 걸어가려니 갑자기 금강산 가서 총 맞은 여자 생각이 떠오른다. 나 같은 여자가 금강산 갔으면 총 맞기 딱 알맞겠다.

뒤에서 한선희씨와 정원식님, 윤영자님이 얘기하며 오는데 갑자기 게르에서 웬 남자가 팬티바람으로 나타난다. 자기네 캠프에 웬 여자들이 오나 하고 자다가 나온 모양이다. 바라보기 민망하여 모른 척하고 봉우리로 올랐다.

봉우리에 오르니 작은 돌무더기가 있고 긴 막대에 푸른색 헝겊이 휘감겨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 성황당 비슷한 것 같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쉬를 하고 능선을 돌아 우리 캠프로 돌아오는데 온갖 야생화가 아침 인사를 한다. 돌아보니 호선생님도 벌써 나와 다른 봉우리로 오르고 있다.

9시에 출발하여 체체궁산(2256m)으로 향했다. 도시락과 물을 싣고 가며 울란바타르 시내를 바라보니 시내버스가 온통 우리나라 차다. 색깔도 우리나라에서 쓰던 색 그대로이고 서울사랑 지하철사랑등 쓰여진 글씨도 그대로 놔뒀다. 우리나라에서 폐차할 버스가 모두 여기에 와 있는 듯하다.

등산 기점인 룰 흐레 계곡으로 가려는데 관리인이 나와 못 간다고 한다. 산불이 나서 길이 끊겼다는 것이다. 다시 방향을 돌려 우리의 하산점으로 가려니 여기서 두 시간을 더 가야 한단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버스를 돌려 다시 큰 길로 나와 만즈시르 사원 쪽으로 향했다. 어제는 비행기를 추가로 세 시간 더 탔는데, 오늘은 버스를 세 시간이상 타게 생겼다.

한참을 달리다가 화장실을 찾아 볼 일을 보려는데 화장실은 산기슭에 한 개 뿐이고 멀어 사람들이 돌무더기 뒤에서 보면 안 되냐고 하니 신성한 곳이라 절대 안 된다고 한다. 뙤약볕 아래 여기 저기 흩어져 볼일을 보고 돌무더기를 자세히 보니 여러 개의 목발이 돌 위에 흩어져 있다. 다리 아픈 사람들이 여기 와서 빌고 병이 낫자 목발을 여기에 두었다는 것이다.

만즈시르 사원 아래쪽에 도착하여 도시락을 먹고 수박으로 후식까지 잘 먹고 등산을 시작했다. 사원 터에는 여기 저기 돌부처도 있고 여러 가지 석조물이 흩어져 있었다. 커다란 무쇠 솥도 있었는데 그 크기로 보아 아마도 전성기에는 스님 수 천 명이 기거하지 않았나 싶다.

조금 올라가니 라마교의 탑이 보였는데 우리의 산행가이드 바시카가 탑을 돌면 좋다고 하여 다들 한 바퀴씩 돌고 산행을 계속하였다. 산행 길에는 층층꽃, 솔체, 오이풀, 패랭이꽃, 용담, 진범, 잔대 등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를 무수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나무도 많아 그늘에서 걸으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운 줄도 모르겠다. 한참을 올라가니 갑자기 나무가 없어지며 커다란 평원 위에 바위 봉우리가 나타난다. 여기가 정상이다. 정상 부근에는 분홍색 꽃이 만발해 있었는데 이름을 모르겠다. 체체가 꽃이름이라고 하더니 이게 혹시 체체꽃이 아닌지? ‘체체는 꽃이름이고 은 높은 곳이라니 체체궁산은 체체꽃의 산인 셈이다.

이 봉우리 저 봉우리로 왔다 갔다 하며 사진을 찍다가 바위 봉우리 아래로 돌아가니 바위 두 곳에 부처님을 새겨 놓았다. 우리나라 마애불에 비하면 엉성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올라와서 기도를 한 사람의 신심이 놀랍다.

바위 아래 붉은 꽃밭은 어찌나 기가 막힌 지 가슴이 벅차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다. 어제 비행기에서 세 시간 갇혀 있고 오늘 버스 세 시간이상 탄 스트레스가 한 방에 다 날아갔다.

얼마를 내려오다가 두 팀으로 나누어 일부회원은 올라온 길로 그냥 내려가고 일부회원은 옆으로 돌아 능선 길로 내려왔는데 능선에서 바라보는 평원은 아프리카의 대평원을 보는 듯 가슴이 탁 트였다.

능선을 지나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라마교의 만즈시르 사원 유적이 남아있었는데 흙벽돌로 지은 사원의 벽들이 어찌나 넓고 거대한지 옛날의 규모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나름달 캠프로 돌아오는데 능선에서 보름달이 떠오른다. 보름달은 언제 봐도 넉넉한 표정으로 웃음 짓는다. 눈 꼬리는 살짝 내려가고 입 꼬리는 올라가서 영락없이 웃는 표정이다.

10시에 캠프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 11시가 다 되어 캠프화이어를 했다. 한길이와 호선생님은 동반자를 부르고 배복순씨는 잘 한다~” 하며 흥을 돋운다. 언제 봐도 호선생님과 배복순씨는 천생연분이요 부창부수다.

이렇게 이 날도 밤이 깊도록 몽골의 밤을 즐겼다.

 

816일 엉거주춤 엉거츠산

이 날은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울란바타르 시내를 통과했는데 서울의 거리라고 쓰여진 팻말이 눈에 띈다. 차들도 소나타, 액센트, 그레이스 등등 한국 차가 거리를 누비고 다닌다. 울란바타르는 몽골의 수도이자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데 붉은 영웅이란 뜻이라고 한다.

오늘은 한길이 대신 현지 가이드 성실이가 동행했다. 성실이는 울란바타르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는데 외국어 선택과목에서 한국어를 선택해 배웠다고 한다. 4년간 제대로 교육을 받아 한길이나 철수씨 보다는 발음이 한결 나았다. 성실이란 이름은 교수님이 붙여준 한국이름이라고 한다. 현지인이 한국말을 배워 가이드를 해주고 한국이름으로 부르니 우리나라의 국력이 대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날도 도시락과 물을 사고 대장님이 아이스크림을 한 방 쐈다. 러시아 아이스크림이라는데 한국 돈 200원 정도 밖에 안하지만 우리나라 700원 짜리보다 훨씬 맛있다.

테를지로 가는 길에 징기스칸 동상을 보았는데 둥근 건물 위에 말을 탄 거대한 징기스칸 동상이 자신의 고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징기스칸이 탄 말의 꼬리 속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몸은 식당, 머리는 전망대라고 한다.

광장에는 독수리를 빌려주고 사진을 찍게 해 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호선생님이 왼팔에 가죽 장갑을 끼고 독수리를 들고 흔드니 독수리가 거대한 날개를 펴고 춤을 춘다.

다시 버스를 타고 초원을 달리는데 양과 염소 떼가 지나간다. 가만히 보니 염소는 앞에 가고 양은 뒤따라간다. 성실이가 설명해 주는데 염소는 똑똑해서 집을 잘 찾아 가는데 양은 머리가 나빠 집을 못 찾고 꼭 염소 뒤를 따라 다닌다고 한다.

테를지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가 나무 그늘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엉거츠산으로 갔다. 엉거츠는 비행기라는 뜻도 있고 말구유라는 뜻도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비행기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엉거츠산은 등산로가 잘 다듬어지지 않아 바위 봉우리 사이로 엉거주춤 기어 올라갔다가 다시 엉거주춤 내려와 다른 봉우리 쪽으로 올라갔다. 아래쪽 벌판에는 절굿대, 패랭이, 에델바이스, 양귀비 등 온갖 야생화가 흐드러지도록 피어 알프스의 초원을 걷는 것 같았다.

다음 봉우리에 올라가 끝없이 펼쳐진 몽골의 초원을 바라보고 하산을 서둘렀다. 하산 길에 초원 속을 나풀나풀 걸어 내려가는 황청자님을 바라보니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엉거츠산을 내려와 거북바위를 보고 말을 타러 갔다. 말은 중국에서도 몇 번 타 봤지만 항상 마부가 앞에서 줄을 잡고 가 안심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마부가 없이 혼자 타려니 말이 언제 뛸지 몰라 잔뜩 긴장이 된다.

내 말은 대장님 말과 친구인지 애인인지 타기 전부터 서로 목을 기대고 흥흥 거리더니 딱 붙어 같이 가면서 목을 꼬고 난리다. 대장님이 빨리 가라고 추! ! 하면 내 말까지 같이 뛰려고 하니 나는 죽을 맛이다.

출발하여 조금 갔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대장님~” 하고 부른다. 돌아보니 김정순님이 풀밭에 서 있다. 왜 내렸나 했더니 내린 게 아니고 떨어졌단다. 그래도 다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나는 겁도 나고 엉덩이 까질까봐 걱정되어 달리지 않고 서서히 걸어가는데 이 녀석이 며칠을 굶었는지 그저 풀 뜯어 먹느라고 갈 생각을 안 한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말을 건드릴 수 있나 저도 먹고 살아야지 싶어 가만히 있으면 저도 양심이 있는지 한 입 먹고 조금 가서 또 한 입 먹고 한다.

반환점을 돌아오는데 갑자기 서서 가만히 있다. 오줌 누나 싶어 옆의 사람에게 내 말이 오줌 누느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애기들도 잘 놀다가 가만히 있으면 똥이나 오줌 누는데 말도 똑 같다. 팔다리에 안간 힘을 쓰며 출발점으로 돌아와 말에서 내리니 어찌나 무릎이 아픈지 두 시간 걸은 것보다 더 아프다.

다들 돌아오자 대장님이 경마를 시키자고 제의한다. 1달러씩 모아 1등은 10, 2등은 5, 3등은 3불 이런 식으로 상금을 주자는 것이다. 돈을 준다니까 마부들이 신이 나서 달려간다. 우리의 가이드 성실이도 하라고 했더니 말도 안 좋고 자기가 출발점에 가기도 전에 출발하여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성실이는 나담축제에서 3등을 했다더니 정말 영화에서처럼 멋지게 달렸다.

이렇게 하루 24시간이 짧다고 해가 지도록 놀다가 울란바타르로 돌아와 모처럼 호텔에서 편안한 밤을 맞았다.

817일 땅바닥에서 세 시간

아침에 일어나 오랜만에 제대로 볼 일을 보려고 식사 전에 산책을 하였다. 밖으로 나가 큰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장원장님은 벌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길에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상점들도 열지 않았다. 조금 더 가니 오페라 하우스같이 생긴 분홍색 건물이 보인다. 여기서 사진을 찍고 호텔로 돌아와 한선희씨는 로비에 있는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나는 방에 들어와 볼 일을 보려고 8층으로 올라갔다.

808호에 올라가 열쇠를 꽂으려니 영 들어가지 않는다. 분명히 열쇠를 다시 보아도 808호가 맞는데 들어가지도 않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어떡할까 고민을 하며 다시 내려오려는데 다른 방에서 두 남자가 문을 열어놓고 인터넷을 하는지 컴퓨터를 보고 있다. 문 앞에 서서

“Hello~" 하고는 뭐라고 할 지 몰라 가만히 서 있었더니

“May I help you?" 하며 나온다.

열쇠가 안 열린다는 말을 못해 열쇠를 들고 우리 방으로 와 넣으려 했더니 그 사람도 해보고 열쇠 번호를 확인해보고 하지만 대책이 없다. 열쇠를 다시 꺼내 뒷면을 보니 'A'라고 써 있다.

‘A'가 다른 구역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다른 빌딩이라고 한다. 밑으로 내려와 'A'쪽으로 오려니 한선희씨도 그리로 올라갈 것 같아 화장실을 찾아가 'A'빌딩으로 오라고 일러주고 방으로 돌아가 모처럼 쾌적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니 3일치가 한꺼번에 나온다. 재고품까지 다 정리를 하고 나오니 한선희씨가 온다. 볼일을 봤느냐고 하니 염소 똥만 한 것 다섯 개 밖에 안 나왔다고 변비약을 먹어야겠다고 한다.

버스에 오르니 이 날도 재잘 재잘, 하하 호호 신들이 났다. 월드 스페이스의 박이사님은 일중은 언제 봐도 핑크 빛이라고 감탄을 한다. 내가 봐도 일중 회원들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어디 갖다 놔도 장난감을 찾아서 잘 논다.

승리의 기념탑에 올라 울란바타르 시내를 바라보니 도시 전체가 납작하고 매연이 심한지 뿌옇게 보인다. 승리의 기념탑은 러시아와 연합으로 여러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만들었다고 하는데 산 위에 만들어 전망대를 겸하고 있다.

여기서 내려와 이태준 기념공원에 들렀는데 이태준은 연대의대를 나와 몽골에서 선교사로 일하며 병원을 개설하여 매독 치료에 앞장섰다. 그 후 마지막 황제의 주치의로 일하다가 러시아군에 의해 일본 사람으로 오인되어 38세의 나이에 이 자리에서 피살 되었다고 한다.

울란바타르 시내 중심에 있는 광장에 오니 몽골 독립의 영웅 스쿠바타르 장군 동상이 있고 광장 바닥에는 도로의 기점을 표시하는 동판도 설치 되어있었다. 우리가 사진을 찍는데 몽골 여자아이 두 명도 같이 찍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같이 찍고 보여주었더니 “Thank you!" 하며 인사도 한다.

여기서는 평양에서 온 대학생 세 명도 만났는데 하나 같이 검은 양복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었다. 반가워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니 사양하며

통일 되면 만납시다.” 하며 가버린다. 언제나 통일이 되어 서로 격의 없이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을까? 삼국시대가 수 백 년 이어졌듯이 2국 시대가 너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까 걱정 된다.

버스에 오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웬 멋진 차들이 줄줄이 광장으로 들어온다. 웬일인가 했더니 신랑 신부를 태운차가 예쁘게 장식을 하고 나타나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신랑, 꼬마 들러리들이 내린다. 좇아 내려가 신랑 신부 사진을 찍고 들러리 꼬마도 찍는데 빵빵한 사람이 결혼을 했는지 검은 양복의 경호원들이 줄줄이 붙어 다닌다.

몽골에서는 결혼하려면 남자측 대표 다섯 명이 신부 집으로 가서 청혼을 하고 신부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결혼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결혼식 후에는 우리처럼 폐백을 드리며 대추도 던져준다고 한다. 아마 이 폐백 문화는 몽골이 우리나라를 지배했을 때 들어온 것 같다.

점심을 먹고 저녁 도시락을 버스에 싣고 호스타이 국립공원으로 출발하였다. 호스타이 국립공원은 울란바타르 서쪽 130km 떨어진 곳에 있는데 몽골 토종 야생마의 일종인 타키와 각종 동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타키는 몽골에서 멸종 되었는데 다른 나라에서 들여와 번식을 시켜 현재 세 군데서 키우고 있다고 한다.

초원으로 얼마를 달리다가 유목민의 게르를 구경하려고 내렸다. 게르 속으로 들어가니 유목민 아줌마가 빵과 과자, 마유주를 준다. 마유주는 말의 젖을 가죽 부대에 넣어 발효시킨 것이라고 하는데 요구르트 같이 시큼털털하였다. 가이드 철수씨는 며칠 전부터 마유주 타령을 하더니 대접채로 벌컥 벌컥 들이킨다. 부반장님도 신나게 마시더니 나중에 배가 이상하다고 약을 먹었다.

대장님은 큰 볼 일을 보려고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 갈까하며 방황하더니 허허벌판에서 도저히 엄폐물을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오신다.

마침 젊은 부부가 말의 젖을 짜기에 자세히 보니 부인이 망아지를 그 어미 말에게 데리고 가서 몇 모금 빨리고는 쭉 잡아 빼니까 남편이 양동이를 들이 대고 쭉쭉 짠다. 다 짜고는 또 다른 망아지를 그 엄마에게 데리고 가서 몇 모금 먹이고는 또 다 뺐어온다. 불쌍한 망아지는 입맛만 다시고 목만 겨우 축이고 만다. 하여튼 인간은 못돼 먹었다. 꿀벌의 꿀 다 뺐고 설탕을 넣어주지 않나 우유 뺐고, 말 젖 뺐고, 양젖 뺏고 모조리 다 뺐어 먹는다. 그래도 힘센 동물들이 들이 받지 않고 얌전히 있는 게 참 희한하다.

한 시간 정도 달리다가 버스가 바닥에 쿵 하고 부딪치더니 탱크 소리를 낸다. 이거 뭔 일이 났구나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조금 가다가 서버린다. 철수씨가 운전사와 얘기하더니 도저히 고칠 수가 없고 울란바타르에서 다른 차가 와야 한단다.

우리는 모두 내려 허허벌판에 나무 그늘도 없으니 버스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오징어와 소주를 먹었다. 회원들이 가져온 간식이 많아 쥐포에 문어에 김에 육포에 줄줄이 나온다. 수박까지 다 먹고는 저녁밥 있겠다 추우면 버스에 들어가 자면 되고 뭐가 걱정이냐고 모두들 천하태평이다. 아예 버스 안 왔으면 좋겠다고 하며 여기서 별구경이나 하자고 한다. 하여튼 일중은 못 말린다.

6시가 되도록 버스가 안 오자 도시락을 꺼내 벌판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한 회원이 무릎을 꿇고 밥을 먹는다. 호선생님이 왜 그러느냐고 하자 다른 사람이 동쪽으로 알라신에게 무릎 꿇고 빌면서 먹는 거라고 한다. 호선생님은 곧이듣고 사진을 찍는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실상은 그게 아니지.” 한다.

어제 신나게 말을 타더니 엉덩이가 다 까져 앉지를 못 한단다. 호선생님이 우먼 전용 약이 있다고 하자 벌써 약 바르고 적외선 치료, 통풍 치료 다 했단다. 통풍치료 더 하려다 앞 동네가 너무 말라 중단 했다고 한 술 더 뜬다.

하여튼 웃고 웃기며 버스를 기다리는데 드디어 버스가 나타난다. 그런데 이 버스가 고장 난 버스를 근처 동네까지 끌어다 놓고 가야한단다. 결국 7시나 되어 다시 출발하였다.

가는 길에 박이사님이 미안하다고 노래를 하겠단다. 다들 신이 나 박수를 치자 산악인의 노래를 부른다. 철수씨는 몽골 노래를 불렀는데 뭔 소린진 모르지만 애조를 띠고 슬픈 느낌이 들었다. 성실이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노래를 부르고, 윤영자님은 당신의 여자, 이종성님은 고비사막, 대장님은 후니쿠니 후니쿨라를 불렀다. 이렇게 즐기며 일몰을 감상하면서 계속 달려 호스타이 국립공원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어 버렸다.

낮에 와서 짚차를 타고 공원 구경하고 내리는 외국인에게 물어보니 원더풀이라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우리는 아쉬워서 여기서 하루 자고 내일 아침에 보고 가자고 하는 사람도 있고 호텔로 그냥 가자는 사람도 있다. 박이사님과 대장님, 가이드 보두 모여 상의를 하더니 그냥 버스를 타고 캄캄한 공원 속으로 들어가 보자는 것이다. 공원의 가이드를 태우고 공원 속으로 들어가니 야생마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언덕을 넘어 얼마를 가다가 버스에서 내려 가이드를 따라 가는데 땅에 허연 가루가 있다. 말들이 먹으라고 소금을 뿌려 놓은 곳이란다. 다시 또 걸어가는데 어두워서 아무 쪽으로나 막 갔더니 식충 식물을 건드렸는지 곳곳에서 따갑다고 난리다. 나도 무릎 위가 따끔 따끔했다. 박이사님이 한 20분 두면 가라앉는다고 그냥 두라고 한다. 그냥 둬도 아프면 오줌을 발라보라고 한다.

앞 서 가던 가이드가 걸음을 멈추고 앞을 보라고 하여 바라보니 어둠 속에서 허연 야생마가 우리를 보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자기도 슬슬 도망가며 우리를 연신 돌아본다. 성실이가 가서 잡아오겠다고 따라가고 우리는 서 있는데 황청자님이

저기도 있는 것 같은데?” 한다.

계곡 쪽을 보니 세 마리가 숲 쪽으로 걸어간다. 야생마 잡으러 갔던 성실이는 허탕 치고 돌아오고 다시 버스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데 구름 속에 있던 달이 얼굴을 내민다. 허브 향기 가득한 초원에 달이 비치니 마치 메밀꽃이 가득 핀 것 같다. 어디서 금방이라도 허 생원과 동이가 봇짐을 지고 나타날 것 같다.

달밤에 체조는 아니지만 달밤에 산책을 마치고 버스로 돌아와 다시 국립공원 입구로 돌아와 커다란 게르에 들어가 비디오를 감상하였다. 호스타이 국립공원에는 야생마 이외에도 수 십 종의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기이한 모양의 기암괴석들이 많다. 다음에 다시 와 보았으면 좋겠다.

화장실에 들러 오줌을 무릎에 바른 다음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달을 벗 삼아 달리고 달려 울란바타르에 도착하니 새벽 2시가 다 됐다.

 

818일 똥님 제발 나와 주세요.

아침에 일어나니 한선희씨가 오늘은 볼일을 꼭 봐야하는데한다.

똥님 제발 나와 주세요~” 하고 빌어보라고 했더니

똥님 제발 빨리 나와 주세요~” 한다.

해외에 나오면 똥이 아주 상전 중에 큰 상전이다. 기침 소리만 내도 얼른 알아서 모셔야지 수틀리면 도로 들어가 버린다.

한선희씨가 화장실에서 나오기에 볼일을 보았느냐고 했더니 튼튼하고 건실한 놈으로 보았단다. 순산했느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오전에 자연사 박물관과 역사박물관을 보았다. 자연사 박물관에는 거대한 공룡 뼈와 규화목이 있었는데 성실이는 처음 여기 와 보고 웬 쓰레기를 전시해 놓았나? 했단다. 자기 고향 고비 사막 쪽에는 규화목이 쓰레기처럼 널려 있단다.

우는 낙타를 그려 놓은 그림도 있는데 낙타가 새끼를 잃으면 3일간을 운단다. 주인이 안쓰러워 악기를 연주하며 달래는 그림도 있는데 이렇게 위로를 해주면 조금 진정이 된단다. 낙타라고 해도 인간보다 낫다 싶은 생각이 든다.

역사박물관에는 석기 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여러 가지 유물과 전통의상을 입은 마네킹이 있었는데 민족마다 옷이 달라서 마네킹 앞에는 몽골 지도에다 어느 지역 사람들인지 색을 칠해 놓았다.

다음에는 재래시장을 보러갔다. 그런데 이 시장은 입장료를 받는다. 시장 들어가면서 입장료 내기는 난생 처음이다. 성실이가 소매치기 많으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가 대장님이 돈을 잃어 버렸다. 위 주머니에 넣은 6000원이 없어 졌다는 것이다. 대장님은 항상 대표 선수다. 그래서 스페인 갔을 때는 카메라 잃어버리더니 이번에는 소매치기를 당했다. 이런 건 본을 안 보여줘도 되는데

시장 구경까지 다 마치고 첫날 묵었던 나름달 캠프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한 시간 휴식을 하였다. 휴식 후 활 쏘는 곳에 모여 활쏘기를 하였는데 난생 처음 당겨보는 활이라 엄청 힘이 들고 화살이 몇 m도 못 가 땅으로 쳐 박힌다. 호선생님과 현지인이 활쏘기 시합을 했는데 현지인이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호선생님은 활을 처음 쏘는 것 같은데 엄청 잘 쏜다.

다음에는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몽골 옷을 입으니 모두 몽골 사람이 된 것 같이 잘 어울린다. 활쏘기를 마치고 씨름구경을 했다. 몽골은 씨름장이 따로 없고 초지에서 그냥 한다. 바시카와 유레카가 전통의상을 입고했는데 씨름 옷은 가슴을 내놓게 되어있었다. 말 타기와 활쏘기는 여자도 참여할 수 있는데 씨름은 남자만 참여하게 되어있고 여자들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가슴을 내놓게 했다는 것이다.

대장님이 두 사람에게 각각 1불씩 걸자고 하며 양편으로 갈라서라고 한다. 진 쪽에 건 사람만 1불씩 내어 상금을 주자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바시카보다는 유레카가 더 단단하게 생겼지만 대장님은 바시카에게 걸겠다고 바시카 쪽으로 선다. 다들 유레카 쪽에만 걸면 상금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 나도 바시카 쪽으로 섰다. 첫 판은 바시카가 이겼지만 두 판 내리 져서 유레카가 승리 하였다. 결국 유레카가 10, 바시카가 5불인가 받았다. 바시카는 30대이고 유레카는 20대라고 하니 나이는 못 속이나보다.

씨름을 마치고 이번에는 말을 타러 갔다. 여기는 마부 한 명에 말 두 필씩 잡고 갔다. 황청자님과 나는 어린 소녀가 이끄는 말을 탔다. 그래도 마부가 있으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황청자님은 벌써 타는 폼이 다르다. 많이 타 보았느냐고 했더니 제주도에서 여러 번 타 보았다고 한다.

여자 아이가 우리들 말을 끌고 타박타박 걸어가는 걸 보니 징기스칸 생각이 난다. 징기스칸은 우리나라 여자들을 끌고 가 마구 농락하고 화냥년(환향녀還鄕女:몽골에 끌려가 몸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을 만들어 보냈는데 그 후손인 우리들이 징기스칸의 후예들에게 돈을 주며 씨름도 시키고, 마부로 부려먹는 걸 보면 정말 인간의 영화는 한낮 꿈에 불과 한가보다. 징기스칸이 이걸 봤으면 복장 터졌을 꺼다.

게르로 돌아와 통째로 바베큐한 양고기로 저녁을 먹고 울란바타르 시내에 있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시내로 들어오니 월요일이라 그런지 차들이 엄청 많아 급정거를 하고 빵빵 거리고 난리다. 급기야 우리 차가 앞차를 들이 받았다. 경찰이 오고 서로 합의를 해야 하므로 다른 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길바닥에 짐을 내려놓고 얼마를 기다리니 버스가 온다. 시간이 늦어 백화점은 생략하고 발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몽골 마사지는 머리끝부터 발가락 끝까지 문지르고 누르고 당기고 돌리고 하여튼 중국 마사지 보다 한 수 위다. 하루 종일 쌓였던 피로가 싹 가신다. 마사지까지 마치고 공항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대장님을 포함한 12명은 비행기표가 없어 다음 날 가기로 하고 28명만 비행기에 올랐다. 해외여행 가서 따로 오기는 또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여행은 정말 처음 겪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819일 일중은 천하무적

이 날은 순조로이 이륙하여 죽 한 그릇 먹고 잠시 눈 붙이니 금방 인천공항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하러 오는데 정원식님이 부지런히 부반장을 찾는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박영희님이 비행기에서 배낭을 꺼내다가 다른 사람 짐이 떨어져 그 사람 어깨에 맞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팔이 저리다고 하며 병원에 가야한다니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부반장님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한다.

얼마 후 부반장님과 박영희님 그리고 맞았다는 여자 모두 나오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멀쩡했다. 그래도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들 하였다. 부반장님에게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공항에 병원이 있고 여행자 보험으로 다 처리되니 걱정 없다고 태평한 얼굴이다.

대장님은 우리 일중 회원들이 무슨 일을 만나도 잘 적응하며 여행 잘 한다고 금메달감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천하무적이다. 비행기가 안 떠도, 버스가 안 가도 언제 어디서나 끄떡 없이 소화해낸다. 그냥 참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상황을 즐긴다. 아마 저승 가서도 잘 놀 꺼다. 이렇게 잘 노는 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고 싶다.

 

이번 여행은 한 마디로 우여곡절, 겪을 수 있는 건 다 겪은 특이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