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08. 6. 30. 터키 기행문

아~ 네모네! 2012. 10. 14. 17:33

 

 

 

 

 

 

 

 

 

 

 

 

 

 

 

 

 

<기행문>

터키가 사람 잡네

이현숙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 이 정도는 학교 다닐 때 외워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밖의 아무 사전 지식도 없이 동생 둘과 친구 상순이, 이렇게 넷이서 터키 여행길에 올랐다.

 

해도 너무 한다.

여인숙만도 못한 호텔

인천공항 가까이 가는데 동생 재숙이에게서 전화가 온다. 자기는 벌써 도착했단다. 나도 거의 다 왔다고 하고 전화를 끊으니 곧 또 전화가 울린다. 이번에는 대학친구 상순이다. 상순이도 도착했단다. 둘이 서로 얼굴을 모르니 아마 혼자 온 줄 알고 헤매고 있나보다.

공항에 도착하여 LM사이 만남의 장소로 가니 상순이와 재숙이가 나란히 앉아있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니 재숙이가 내 대학교 때 앨범에서 상순이 얼굴을 봤던 기억이 떠올라 알아봤다고 한다. 내 동생이라 그런 건 아니지만 정말 재숙이는 똑 소리 나게 똑똑하다. 한참을 기다리니 혜숙이가 나타난다.

넷이서 아무리 기다려도 여행사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거 사기 당한 것 아닌가 약간의 불안감이 일어나려한다. 재숙이가 인터넷에서 뽑은 전화번호로 전화해보니 통화중이다. 불안이 가중된다.

몇 년 전인가 지구과학 연구회에서 제주도로 답사 갈 때 여행사 직원이 우리 90여명의 돈을 몽땅 받아서 달아나는 바람에 공항에서 우왕좌왕 하다가 여행사 사장이 나와 우여곡절 끝에 제주도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다시 전화를 하니 AB사이로 오란다. 끝에서 끝까지 짐을 끌고 가보니 모든 여행사들이 손님 받는 자리가 이쪽으로 이동 되었고 여행사 닷컴도 있었다. 비행기 영수증을 받아 체크인 하려고 가니 한 직원이 우리를 보고 거기 줄을 서지 말고 컴퓨터로 자기가 해 주겠단다. 우리 셋은 잘 되는데 재숙이 여권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자꾸 에러가 난다, 그 직원이 여행사 직원에게 부탁하여 간신히 네 명이 연결된 자리를 얻었다.

비빔밥도 먹고 빵도 먹으며 11시간의 긴 비행을 마치고 이스탄불에 도착하니 오후 8시가 다 됐다. 출구로 나가 여행사 닷컴이라고 쓴 피켓을 찾으니 보이지 않고 웬 총각이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아니 우리가 누군줄 알고 오라나 하고 따라가 보니 이번 비행기에 단체는 우리 밖에 없단다. 그리고 한국 사람은 옷과 표정만 보면 다 알아볼 수 있단다. 정말 이 가이드는 우리 일행 22명을 다 찾아 자리에 앉혔다.

밖에 나가 버스에 오르니 가이드가 자기 이름은 전창호이고 터키 온 지 6년 됐다고 하였다. 여기서는 현지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못 외워 스티브라고도 한단다.

여러 가지 주의 사항을 일러주고 시청 옆에 있는 작은 호텔로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호텔 로비라고 하는 것이 우리 집 거실 반쪽도 안 된다. 큰 짐짝을 들고 엉덩이 돌리기도 힘 든다. 설상가상으로 엘리베이터는 4명밖에 못 탄다. 그것도 손으로 문을 잡아당겨야 문이 열린다. 한 팀이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왜 내려왔느냐고 했더니 자기네도 모른단다. 올라가서 손으로 문을 밀어야 열리는데 가만히 있으니 밑으로 그냥 내려온 모양이다. 다시 올라가면 얼른 문을 밀고 빨리 내리라고 알려주니 다음에는 빈 채로 내려온다. 엘리베이터는 덜거덕 덜거덕 하며 올라가는데 언제 추락할지 시간문제다.

한참 만에 겨우 방에 오니 이건 더 가관이다. 침대는 어찌나 작은지 자다가 굴러 떨어지게 생겼고 욕실은 몸을 돌리기도 힘들게 좁다. 샤워하는 곳도 엉성한 비닐 커텐으로 가려졌을 뿐 욕조도 없다. 이건 정말 해도 너무한다. 여인숙만도 못하다. 여인숙에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정말 아무리 후진국에서도 이보다는 백배 나았다. 노랑풍선 여행사와 조인을 했다더니 이건 완전 짐짝 취급이다. 그래도 다리 뻗고 누울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다 싶어 두 다리 쭉 뻗고 잠자리에 들었다.

 

나보다 한 수 위인 가이드

웃기지마

아침에 일어나 식사 전에 산책을 나갔다. 어제 밤 버스 타고 들어올 때 보았던 로마시대 수로를 보러 갔다. 수로는 아취형의 2층 문들 위에 있었는데 2000년 전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견고하게 버티고 서 있었고 문으로는 차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시청 앞 분수대에는 비둘기들이 아침 샤워를 하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버스에 오르니 전창호씨가 터키 말부터 가르쳐준다. 아침인사는 우무트베이, 저녁인사는 어쩌구저쩌구 하고 가르쳐 주는데 그저 아침저녁 모두 쓸 수 있는 게 규나이드라고 하기에 이거 하나만 외우기로 했다.

동로마가 어쩌구 서로마가 어쩌구 이스탄불은 1600년간 수도였다고 설명을 하더니 유머를 시작한다. 마누라가 해외여행 나올 때는 까불지마이렇게 써놓고 온단다. “스 조심하고 잘 끄고 퍼 내리지 말고 누라 생각만 하라.는 뜻이란다. 나도 여기까지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답이 더 가관이다. 이렇게 써 놓고 가면 남편이 답장을 써 놓는단다. 답은 웃기지마인데

음이 절로 난다.

운이 넘쳐 난다.

퍼는 내 맘이다.

누라는 오지마라.

앞으로는 절대 까불지마써 놓고 나오지 말아야겠다. 잘못하다간 집에서 쫓겨 날 판이다.

터키 관광버스에는 앞에다 큰 터키 지도를 붙여 놨다. 우리가 어디쯤 있는지 궁금한데 가이드가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해주니 이해하기 좋다. 이스탄불도 교통체증이 심하고 길이 좁았는데 버스 기사들은 요리조리 잘도 빠져 나간다. 전창호씨 왈 터키 기사들은 깻잎운전 면허인데 깻잎 한 장 들어갈 틈만 있으면 무조건 밀고 들어간단다. 그리고 신호도 안 지키는데 신호 지키면 터키 사람 아니란다. 관광객만 지킨다고 하며 신호 믿지 말고 전후좌우 잘 보고 건너란다.

실크로드의 종착지라고 하는 바자르를 보고 4시간을 이동하여 점심을 먹은 다음 다나렐즈 해협을 건너 트로이로 이동하였다. 트로이는 트로이 목마로 원체 유명하여 기대가 컸는데 전창호씨가 트로이는 세계 3대 허무관광 중의 하나이니 기대하지 말라고 하여 기대치를 팍 낮췄다.

과연 도착해보니 엉성한 나무로 만든 말이 껄렁하게 서 있었다. 계단으로 올라가 말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2층으로 되어있고 창문이 있어 밖을 내다보게 만들었다. 트로이 전설에 의하면 트로이 목마 속에 수많은 그리스 군이 숨어있는 걸 모르고 성 안으로 목마를 끌어들였다가 트로이가 멸망했다고 하는데 그 목마는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트로이는 땅속에 아홉 층의 도시가 있다고 한다. 도시가 건설 된 후 지진으로 매몰되면 그 위에 다시 도시를 건립하고 다시 매몰되면 또 건립하여 9번에 걸쳐 도시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트로이 목마도 전설일 뿐 아마 지진으로 멸망한 것으로 추정 된다고 한다.

트로이 유적은 독일의 고고학자인 하인리히 슐리만에 의해 알려졌는데 발굴 3년 만에 수많은 유물이 발견 되었다고 한다. 금관만 16000개나 나왔는데 슐리만은 터키와의 약속을 어기고 이 유물들을 가지고 독일로 야반도주 했다고 한다. 1차 대전에 독일이 패망하자 이 유물은 다시 러시아의 손으로 넘어갔고 현재 러시아 푸시긴 박물관에 소장 되어 있다고 한다.

트로이에서 나와 아이발릭으로 이동하였다. 아이발릭인지 어른 발인지는 몰라도 호텔이 바닷가에 있어 아주 경치가 좋았다. 해변가에는 김삿갓의 모자처럼 생긴 나뭇가지로 둥글게 엮어 만든 파라솔이 많았는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저녁식사 후 바닷가를 거닐며 삿갓 밑에 앉아 사진도 찍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데 어느 새 달이 떠올라 에게해 바닷물에 일렁이고 있었다.

~스크림까지 사먹고 방에 돌아와 재숙이가 사온 와인으로 축배를 들며 위하여를 외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바울의 흔적

에베소 원형극장

아침에 일어나 다시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나무로 된 방파제 같은 곳으로 나가보니 남자 두 명이 낚시를 하고 있다. 아는 말은 없고 해서 굿모닝? 한 다음 고기가 있느냐고

“Any fish?" 했더니 단박 알아듣고 ”Not yet." 한다. 그러면서 큰 고기는 늦게 오는 법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아이발릭을 떠나 3시간을 달려 에베소에 도착했다. 에베소는 바울이 전도한 교회가 있었던 곳이고 에베소에 보냈던 편지가 성경에 나와 있다. 바울의 고향인 다소도 터키에 있고 아브라함의 고향인 하란도 터키 땅이라고 한다.

에베소는 그 당시 세계 최대의 무역도시로서 25000명을 수용하는 원형극장과 아퀼라에 의해 세워진 셀수스 도서관이 있다. 아퀼라는 자신의 아버지 셀수스 폴레마이아누스를 기리기 위해 이 도서관을 지었는데 셀수스의 무덤은 중앙 적소 아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것도 모르고 여기 올라가 만세를 부르며 사진을 찍었다. 사울이 2년간 강론을 펼쳤다는 두란노 서원도 바로 이 셀수스 도서관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에베소에는 수세식 화장실도 있었는데 벽은 없고 긴 돌판에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려 거기 앉아 볼일을 보면 그 아래 수로로 흘러가는 물에 씻겨 내려가게 되어있었다. 변기 의자 앞에는 작은 도랑도 있었는데 남자들이 앉아서 소변을 보면 이 도랑으로 흘러가 한 곳에 모이고 이 소변은 양가죽을 손질하는데 쓰였다고 한다. 로마 사람들의 지혜가 생각할수록 놀랍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원형극장 가운데 서서 얘기하거나 노래를 부르면 뒤쪽에서 바다 바람이 불어와 넓게 퍼져 나간다고 신혼여행 온 신랑에게 노래를 하라고 하였다. 신랑은 노래하고 신부는 옆에서 거들었는데 무슨 노래를 하려나 했더니 애국가를 부른다. 우리는 모두 합창을 했는데 애국가가 끝나자 옆에서 듣던 외국인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 원형극장에서 바울은 강론을 했고 돌에 맞아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2000년 전 바울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코끝이 찡했다.

애국가 공연을 마치고 에베소에서 나와 가죽 공장에 들러 패션쇼를 보고 가죽옷들을 산 다음 파묵칼레로 이동하였다. 파묵칼레는 파와 묵을 칼로 썰었는지 팔았는지 모르지만 그 뜻은 목화의 성, 솜의 성이란다. 아마도 석회질 물질이 쌓여 생긴 하얀 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지도 모른다.

호텔에 짐을 풀고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다. 그런데 수영장 깊이가 165cm나 되어 벽에 대롱대롱 매달리며 겨우 겨우 수영을 했다. 키가 155cm 밖에 안 되는 나 같은 인간에게 이건 정말 치명적이다. 수영하다가 쥐라도 나면 어쩌겠냐 말이다. 수영은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 옆 건물에 있는 온천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뜨끈한 물속에 우리 팀들이 여러 명 들어있었다. 여기서 몸을 녹이고는 밖으로 나와 물기를 닦고 방으로 돌아갔다.

저녁 식사 후 하얀 설산 같은 석회봉에 올라가 보려고 호텔을 나섰다. 하얀 산에는 조명까지 켜 놓아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산 밑에 도착하여 산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작은 집에서 사람이 나오더니 티켓을 끊으란다. 우리는 어차피 내일 올라갈 것인데 두 번 내기 억울하여 “TOMORROW" 하고는 밑의 호수로 갔다.

호수 쪽에서 하얀 돌 폭포 밑으로 가 사진을 찍으니 밑에서 호루라기를 불고 난리다. 아마 돈 안 내고 올라가는 줄 알았나보다. 호수가로 내려와 산책을 하는데 마침 둥근 달이 떠올라 호수에 비친다. 호수를 한 바퀴 돌고 맥주를 사가지고 방으로 돌아와 또 내일을 위하여를 외치고 각자 방으로 돌아왔다.

 

점입가경

설산보다 더 흰 석회봉

아침에 일어나 호텔 앞의 야산으로 올라갔다. 여기서 보니 하얀 석회봉이 한 눈에 들어왔다. 길도 제대로 없는 야산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여기 저기 피어있었다. 패랭이도 찍고 양귀비도 찍으며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마른 풀이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들판이 나타나고 멀리 미루나무가 몇 그루 외롭게 서 있었다.

산을 내려와 식사를 하고 호텔을 출발하여 하얀 석회봉 위의 히에라폴리스 유적을 보러 갔다.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190년 페르가몬 왕조의 유메네스 2세에 의해 만들어졌다는데 로마시대의 온천지로 유명했다고 한다. 석회봉으로 온천수가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석회질 물질이 녹으며 둥근 욕조모양의 웅덩이를 만들어 그 형상이 기기묘묘하고 색깔이 하늘색도 아니고 초록색도 아니고 흰색과 하늘색을 섞어 놓은 것 같은 오묘한 색을 띠고 있었다. 들여다보고 있으면 있을수록 그 빛깔 속으로 빨려들 것 같은 희한한 색이었다.

이 색을 배경으로 이 폼 저 폼 온갖 똥 폼 다 잡으며 사진을 찍고는 원형극장으로 향했다. 원형극장으로 가는 큰 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다가가니 외국 여자가 이리 저리 입구를 찾고 있다. 우리도 그 여자를 따라 철조망 옆으로 들어가 개구멍을 통과해 원형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원형극장 안으로 들어서니 앞에 아폴로의 조각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에베소의 원형극장 보다는 좀 작지만 훨씬 가파르고 아름다웠다.

원형극장을 나와 빌립교회로 향했는데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석조물과 노란 풀들은 알 수 없는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노란 풀밭을 지나 산으로 오르려니 무슨 신비한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약속 시간에 쫓겨 부리나케 내려오는데 보고 싶은 것도 많고 찍고 싶은 것도 많아 패키지여행이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0분이나 늦게 약속 장소로 돌아오니 다행히 아직 안 온 사람도 있다. 그냥 버스로 가려고 하기에 하얀 석회봉을 걸어 내려가면 안 되느냐고 물으니 전창호씨가 쾌히 희망하는 사람은 걸어 내려가라고 한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얼른 신발을 벗어들고 물 흐르는 석회봉을 내려오는데 곳곳에 비취색의 물웅덩이와 눈처럼 흰 폭포가 있어 그야말로 점입가경이었다. 산을 다 내려오니 마침 맞게 버스가 나머지 사람들을 싣고 내려온다.

버스에 올라 지중해의 휴양도시 카슈로 향했다. 카슈는 눈썹이란 뜻인데 이곳 지형이 눈썹모양이라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곳 호텔은 마치 별장과 같은 집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는데 우리는 전창호씨가 방을 바꿔줘 지중해의 푸른 물이 발아래 펼쳐진 곳이다. 여기서도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쏘다니니 가이드는 우릴 보고 네 공주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우릴 보고 호기심 많은 자매라고 하였다.

이날도 지중해에 어린 보름달을 바라보며 바닷가에서 맥주 한 잔씩을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산채로 바베큐?

꺼지지 않는 불 야나르타시

이 날 아침은 더 이상 다닐 곳도 없어 식당 문 열기도 전에 턱 받치고 기다리다가 식사를 하고는 버스에 올랐다. 케코바인지 개코를 보라는 것인지 하여튼 그런데서 배를 타고 수중도시를 보았다. 배 밑바닥에 유리를 깔아놓고 들여다보라는데 유리도 작고 흐려서 별반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들여다보니 계단 같은 것도 보이고 벽 같은 것도 보였다. 배에서 혜숙이와 상순이는 얌전히 있는데 재숙이와 나는 배 지붕에까지 올라가 만세를 부르고 터키 국기를 잡고 온갖 생 쇼를 다 하며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수중도시를 보고 시메나 섬에서 배를 내려 성으로 올라갔다. 성은 1인당 5유로씩 내야했는데 꼭대기에는 터키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터키 국민은 애국심이 강한지 웬만한 건물과 성과 배에 모두 국기를 달고 있었다. 성의 정상에서 바라본 쪽빛 바다는 푸른 잉크를 푼 듯 바다 위를 달리는 배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성을 보고 내려오니 현지 아이들이 어디서 문어를 잡았는지 그물에 넣어가지고 와서는 4리라 내라고 야단법석이다. 살아있어 싱싱해 보이기는 하는데 데쳐 먹을 수가 없으니 그림의 떡이다.

다시 배를 타고 케코바로 돌아와 성 니콜라스 성당이 있는 미라로 향했다. 니콜라스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우연히 길을 가다가 돈이 없어 시집을 못가 우는 모녀를 발견하고는 밤에 몰래 돈 주머니를 창문 안쪽에 넣어줬단다. 두 번째도 또 돈을 넣어주자 모녀는 미안하여 창문을 모두 걸었고 급기야 굴뚝으로 들어가 돈 주머니를 놓으려다 도둑으로 몰렸다고 한다.

미라에서 점심을 먹고 거리 광장에 있는 니콜라스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니콜라스 교회를 보러 갔다. 니콜라스 교회는 수리중이라 교회 앞 정원에서 바라보기만 했는데 정원에 있는 동상 아래는 각국의 국기가 그려져 있었다. 태극기가 있나 찾아보니 제일 위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었다.

미라를 떠나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올림포스 산으로 갔다. 이 불은 야나르타시라고 하는데 천연가스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와 오랜 세월동안 꺼지지 않고 탄다는 것이다. 차에서 내려 40분쯤 산으로 올라갔는데 햇빛이 어찌나 강한지 그대로 익어버릴 것 같았다. 그래도 꾹꾹 참고 올라가니 과연 바위 틈 곳곳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거대한 불기둥을 기대했는데 마치 아궁이에 불을 지핀 듯 작은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뭇가지를 태워 봤는지 곳곳에 타다 만 부지깽이도 있었다.

땡볕 아래 불 옆에서 사진을 찍으려니 산채로 바비큐가 될 판이다. 그래도 찍겠다는 일념으로 꾹 참고 몇 장 찍었다. 버스에 돌아오니 머리가 핑핑 돌고 속이 메슥거렸다.

멀미가 나려는 걸 꾹꾹 참고 몇 시간을 달려 안탈리아에 도착하니 어느 덧 태양도 서서히 빛을 잃어간다. 안탈리아 해변을 따라 산책을 하는데 지나는 아이들이 코리아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대~한민국 짜~자자 짝짝하고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월드컵 때 우리 응원이 명물은 명물이었나 보다. 구 시가지도 보고 공원도 들러본 다음 호텔에 들었다.

 

신이 만든 예술품

버섯바위 가득한 카파도키아

아침에 식당에 가니 식당 종업원이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어떻게 지내세요?” 하고 인사한다. 한국 관광객이 “How are you?"를 이렇게 가르쳐 줬나보다. 가는 곳마다 곤니찌와 아니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한다. 아무래도 일본 관광객이 더 많은지 곤니찌와가 더 많다.

호텔을 출발하여 콘야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콘야는 이고니온이라고 불리던 바울의 선교지라고 한다. 콘야를 거쳐 카파도키아로 이동했는데 카파도키아는 아름다운 말이란 뜻이란다.

우리는 먼저 지하도시 데린구유를 보러갔다. 데린구유인지 계란을 구웠는지 지하 120미터까지 파고 도시를 만들었단다. 지하도시는 원래 B. C. 1250년경 히타이트 제국 때 만들어졌다는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서 일부러 땅 속에서 살았단다.

그 후 로마시대 때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자 기독교도들이 이 속에 들어가 살다가 기독교가 국교로 승인된 A. D. 313년 콘스탄틴 대제 때 지상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데린구유는 깊은 우물이란 뜻으로 시골의 한 소년이 매일 닭이 한 마리씩 없어져 어디로 갔나 찾다가 함정을 찾았는데 이 함정 속에 지하 동굴이 있었단다. 데린구유는 40곳 이상에서 발견되었는데 9km 떨어진 곳에도 있고 거기까지 지하통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니 말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도시가 땅속에 있었던 것이다.

땅 속에는 포도주 저장고, 교회, 부엌, 마구간, 신방, 시체 보관실 등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그래도 몇 백 년을 땅 속에서 지내며 3대째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살았다니 그 고통이 어떠했을까 상상이 안 간다. 이런 사람들의 희생으로 기독교가 이 세상에 퍼지게 되었으니 신앙의 힘이 얼마나 큰지 가히 짐작이 간다.

여기서 나와 터키의 전통가옥을 보러갔는데 기기묘묘한 바위에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이건 먼 옛날 바다에서 생성된 석회암이 지각변동으로 융기하여 육지가 되고 그 후 화산폭발로 화산재가 쌓여 응회암으로 덮인 것이 풍화되어 생긴 것이라고 하였다. 이곳의 수많은 구멍 속에 비둘기들이 살았다고 하는데 비둘기들은 이곳에 거주하던 기독교인들에게 아주 귀한 존재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비둘기 알에서 성화를 그리기 위한 재료를 얻었기 때문이다.

바위 속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나와 파샤바 계곡으로 향했다. 여기도 온갖 모양의 희한한 버섯바위들이 즐비했는데 거대한 인간이 고깔모자를 쓴 것도 같고 포경 수술한 남자의 거시기 같기도 했다.

사실 중학교 과학교사 30년이 넘도록 하면서 바람의 침식작용에 의해 생긴 지형은 버섯바위, 바람의 퇴적작용으로 생긴 건 사구, 이렇게 가르치기만 했지 내 눈으로 직접 본 건 처음이다. 보지도 못한 걸 몇 십 년 동안 나불거렸으니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하다.

바위 구멍 속에 있는 성신교회까지 다 보고 버스로 향하는데 갑자기 사방이 캄캄해지더니 소나기가 쏟아진다. 다들 놀라 버스까지 달음질을 하니 전창호씨는 인솔자도 없는데 비가 쏟아져 모두 제 시간에 버스에 올랐다고 즐거워한다.

여기서 다시 차를 타고 낙타계곡으로 갔다. 낙타계곡에는 낙타가 살았나 했더니 그게 아니고 낙타를 닮은 바위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큰 낙타, 하나는 작은 낙타였다. 여기는 마리아 상도 있었고, 육영수여사 바위, 신랑각시 바위, 나폴레옹 모자 바위 등 별별 바위가 다 있었는데 이건 한국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란다.

낙타를 손 위에 놓고 사진을 찍은 후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들어가니 비가 그치고 해가 난다. 소나기 후 해가 나기에 무지개가 떴을 것 같아 호텔 밖으로 나가 해의 반대편을 보니 과연 빛나는 무지개가 날좀 보소~ 날좀 보소~ 하며 떠 있었다. 전창호씨에게 무지개 떴다고 하니 얼른 뛰어나간다.

저녁 식사 후 벨리댄스를 보러 갔다. 벨리댄스에 앞서 메블라나라는 춤을 보았다. 신비하고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고깔모자를 쓴 남자들이 흰 옷 위에 검은 겉옷을 걸치고 빙빙 돌며 춤을 추었다. 춤도 춤이지만 그 음악이 마치 영혼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듯도 하고 천상에서 들려오는 듯도 하여 무아지경에 빠지는 듯하였다.

나중에 가이드 말을 들으니 이것은 알라신에게 바치는 춤인데 고깔모자는 비석을 뜻하고 흰옷은 생명, 검은 옷은 죽음을 뜻한다고 하였다. 높이 올린 손은 알라신께, 낮게 올린 손은 인간 세상을 향한 것이라고 하였다. 하여튼 이 춤과 음악이 뇌리에 깊이 박혀 지금도 그 느낌이 가슴 깊이 남아있다.

벨리댄스는 배와 허리와 가슴을 온통 흔들어대며 오두방정을 떨었는데 그야말로 쌕시그 자체였다. 배배 트는 손놀림은 남자를 유혹하는 것이고,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것은 성행위, 배를 비트는 것은 태동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것은 하렘의 수많은 여자들이 남자를 유혹해 자기 침실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에서 발달되었다고 한다.

하렘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술탄을 만나기 위해 목을 빼고 기다렸지만 정작 잠자리를 같이할 여자는 술탄의 어머니가 골랐다고 한다. 흑인 내시로 하여금 여자들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체온을 측정해서 배란기에 이른 여자를 골라 그날 밤 왕을 모시게 했다는 것이다. 배란기를 알아내는 체온 측정법은 그때부터 발달한 모양이다.

이날은 댄스까지 보고 늦게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인간이 만든 예술품

종이 내프킨으로 만든 튤립

아침 식사 하러 가는데 웬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려 우르르 들어온다. 웬일인가 했더니 열기구 타고 오는 사람들이다. 160유로라고 해서 안탔는데 아마 엄청 멋있나보다. 우리 팀에서 타고 온 신혼부부와 이동수 바지 입은 부부에게 물어보니 기가 막히단다. 아프리카에서도 돈이 아까워 안탔는데 다음에는 꼭 한 번 타봐야겠다.

아침 식사를 하다가 상순이가 요플레 그릇을 놓쳐 그릇이 박삭 깨지며 요플레가 사방으로 튀었다. 나한테는 조금 밖에 안 튀었는데 두 자매 중 언니 옷에 범벅이 되었다. 그 사람은 괜찮다고 했지만 상순이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며 닦아 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나자 종업원이 얼른 달려와 닦아주고 내프킨을 의자에 깔아주면서 앉으라고 한다. 그릇을 깬 걸 아까워하지 않고 손님을 최대한 배려해 주는 마음 씀씀이가 감동적이다.

식사를 마치고 2시간 반 정도 달리니 소금호수가 나타난다. 호수는 호수인데 하얀 소금이 깔려 시베리아 벌판에 서 있는 듯하다. 버스에서 내려 소금호수 쪽으로 걸어가는데 가게의 종업원이 맥주 있어요.” “싸요.” 하며 호객행위를 한다. 척보면 한국 사람인 줄 알고 한국말이 튀어나오는 상술이 가히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소금호수에서 이리 저리 다니며 폼을 잡고 버스로 돌아오니 상순이가 과자를 사서 아침에 요플레를 씌운 자매에게 준다. 이토록 미안해하며 신경 쓰는 상순이의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앙카라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한국공원으로 갔다. 한국 공원은 1973년 터키 건국 5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의 터키인 묘지에서 흙을 파다가 만들었다고 한다. 한국공원에는 석가탑을 닮은 큰 탑이 있고 그 아래 사방으로 돌아가며 한국전쟁에서 숨진 770명의 이름과 전사한 날자가 적혀 있었다. 여기에는 17세 된 소년도 있다고 하니 그 부모의 마음이 어땠을까? 새삼 터키에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다 같이 묵념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아난다. 방명록에 우리나라를 위해 피 흘리신 터키 병사에게 감사드립니다.’라고 쓰고 넷이서 싸인을 한 후 1달러를 놓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로 향하는데 영 죽을 맛이다. 2주간 근육염 때문에 소염제를 먹었는데 며칠 전부터 속이 쓰려서 약을 끊었다. 속이 안 좋은 데다 추운 버스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었더니 체했는지 멀미가 나는지 속이 메슥거렸다. 식체에 먹는 약을 먹고 참으려고 애썼지만 휴게소 화장실에서 다 토했다.

이스탄불에 도착해 케밥인지 개밥인지를 먹는데 나는 도무지 먹을 수가 없으니 그림의 떡이다. 쾡한 눈으로 멍하니 앉아있는 내 모습이 불쌍했는지 식당 종업원이 종이 내프킨으로 예쁜 튤립을 접어서 갖다 준다. 나는 감격하여 나도 모르게 힘이 나서 튤립사진을 찍었다. 카파도키아는 신이 만든 예술품이지만 종이 튤립은 인간이 만든 예술품 같았다. 결국 음식은 한 톨도 못 먹고 종이 튤립만 만지작거리다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쓰러졌다.

침대에 누워있으니 재숙이가 바늘을 들고 와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 양쪽으로 여덟 군데를 따고 피를 뽑았다. 따고 나니 조금 정신이 드는 듯하다. 재숙이는 나보다 7살이나 어린데 훨씬 야무지고 당차서 못하는 게 없다. 참 내가 생각해도 신통방통하다.

 

박아 박아 박아 박아

뭘 박으라고?

아침에 일어나 식당에서 가져온 꿀을 물에 타서 마셨다. 궁하면 통한다고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다. 이 날은 토카프 궁전에 가서 다윗의 칼, 모세의 지팡이, 마호멧의 발자국 등을 보았다. 찍고 싶은 것은 많았는데 촬영이 금지돼 아쉬웠다.

보석관에도 과거 오스만 투르크족의 영화를 말해주듯 어마어마한 보석들이 즐비했는데 여기도 촬영금지라 역시 그림의 떡 아니 유리장 속의 보석이었다.

히포드럼 광장에는 오벨리스크가 있었는데 기원전 1550년 메소포타미아 전투 승리를 기념하여 이집트 파라오에게 바친 것이라 하였다. 큰 기둥의 밑 부분에는 조공을 바치는 모습 등 당시 왕족들의 일상생활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 뒤에는 세 마리의 뱀이 서로 뒤 엉켜 있는 셀팬타인 기둥이 있고, 또 그 뒤에는 보기 흉한 기둥이 서 있었는데 이것은 콘스탄티누스의 기둥으로 겉에 붙어있던 청동 조각품을 모두 떼어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 하였다.

다음에는 블루모스크라고 불리는 술탄아흐멧 모스크를 보러갔는데 블루라고 해서 푸른색일 줄 알았더니 회색이었다. 가이드 말로는 겉의 색이 아니라 안의 모자이크 타일이 푸른색이라 서양 관광객들이 그렇게 부른 것 같다고 한다. 여기는 입구에서 신을 벗고 비닐 주머니에 넣어 들고 들어갔다. 이 사원은 오스만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옆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보다 웅장하게 지어 이슬람의 위력을 보이려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규모도 어마어마하고 안쪽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천정 그림 등이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소피아 성당은 1500년 전에 만든 것으로 건축, 미술, 종교의 불가사의라고 하였다. 황토벽돌로 내진 설계를 하여 숱한 지진에서도 굳건히 지금까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슬람 지배하에 있을 때는 모든 벽에 회칠을 하고 다시 장식하여 500년 동안 이슬람 사원으로 썼는데 그 후 회칠을 벗겨 옛 모습을 드러냈다. 이 속에는 예수님의 옷도 있었는데 12044차 십자군 전쟁 때 베네치아 총독이 이탈리아로 가져 가 버렸단다. 눈알 같이 뚫린 대리석도 있었는데 여기에 엄지손가락을 넣고 손을 떼지 않고 한 바퀴 돌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너도 나도 돌렸는데 나도 남들처럼 손을 있는 대로 비틀어 넣어 한 바퀴 돌렸다. 그런데 돌리고 생각하니 소원을 안 빌었다.

성당에서 나와 물 저장고를 보러갔는데 저장고라고 해서 무슨 통인가 했더니 이건 지하의 거대한 궁전이었다. 지하에는 아직도 물이 있어 그 속에서 비단잉어들이 노닐고 있었고 무수한 기둥에 조명이 비춰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수백 개인지 수천 개인지 기둥마다 조각이 기가 막혔는데 눈물 흘리는 눈을 조각한 것도 있고, 머리칼이 뱀으로 변한 메두사의 머리를 조각한 것도 있다. 이 기둥들은 무수한 신전에서 뽑아온 것들이라고 한다.

점심을 먹고 보스포러스 해협의 유람선을 탔는데 한 쪽은 유럽이고 한 쪽 연안은 아시아였다. 나는 이스탄불이 터키 내륙에 있는 도시로 알았는데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있는 도시였다. 지리 시간에만 들었던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유람선까지 탈 줄 어찌 꿈엔들 생각했으랴 참 우리나라 좋아졌다.

비록 며칠 굶어서 눈은 십리만큼 들어가고 피골이 상접했지만 구경은 잘 했다. 경찰차가 앞에서 자~지 자~지하고 가고 그 뒤에 119차가 보~지 보~지하고 가니까 그 위에서 헬리콥터가 박아! 박아! 박아! 박아! 하고 갔다더니 뭘 박기는커녕 촬영금지로 사진도 제대로 못 박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공항에서 X-ray 투시를 하다가 재숙이 배낭이 걸렸다. 찾아보니 맥가이버칼이다. 이걸 가져와서 와인은 잘 먹었는데 와인 값보다 더 비싼 칼을 빼앗겼으니 엄청 비싼 와인 먹은 셈이다.

시간이 일러 체크인을 안 하기에 짐을 죽~ 세워놓고 화장실에 갔다. 변기 안에 보니 꼭지가 하나 나와 있고 변기 옆에는 수도꼭지 같은 게 있기에 뭔가 하고 틀어보니 갑자기 물이 뿜어져 나와 물바다가 됐다. 오줌 싼 모양으로 옷을 다 적셨으니 다시 짐 있는 곳으로 가 팬티를 꺼내 화장실에 가서 갈아입었다. 그러나 겉옷이 젖어 팬티도 곧 젖어버렸다. 아이고~ 내 팔자야 집에도 없는 비데를 써 본다고 허튼 짓 하다가 물에 빠진 족제비 꼴 됐다.

 

터키가 사람 잡네

금식인지 단식인지 죽을 맛

비행기에 올라 자리에 앉으니 거의 아사 상태다. 상순이가 승무원에게 말해 다른 자리로 옮겨가고 두 자리 차지하고 누웠다. 비빔밥이 나왔지만 햇반 한 숟가락 먹으니 위가 딱딱한 게 위경련이 일어날 것 같아 물만 먹었다. 다시 누워있으려니 이러다가 비행기 안에서 의사 부르고 난리쳐 국제적 망신당하는 거 아닌가 싶고 이거 생생하게 나왔다가 시체 되어 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몇 시간이 지나 죽이 나왔지만 한 두 숟갈 먹으니 이것도 먹을 수가 없다. 초죽음이 되어 인천 공항에 내려 남편에게 전화를 하니 다행히도 남편이 공항에 나와 있었다. 짐을 찾아 밖으로 나와 남편을 보니 구세주를 만난 듯도 하고 천사를 만난 듯도 하다.

 

그 후 체중을 달아보니 며칠 새 3kg이 줄었다. 터키 여행이 좋기는 좋았는데 사람 잡을 뻔 했다. 이제 해외여행도 막을 내릴 때가 되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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