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08. 4. 12.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아~ 네모네! 2012. 10. 14. 17:15

 

 

 

 

 

 

 

 

 

 

 

 

 

 

 

 

 

 

 

 

<기행문>

마포시대

이현숙

유럽은 벌써 5번 다녀왔지만 스페인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중산악회에서 작년부터 벼르다가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간식 주고 약 주네!

스페인으로 출발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삼삼오오 둘러 앉아 얘기를 하는데 장원장님이 오더니 약을 한 봉투씩 나누어준다. 여행 중에 먹으라고 소화제와 설사약, 두통약을 준비해 오셨다. 그러자 임양숙씨도 부스럭부스럭 배낭을 뒤지더니 비닐봉지를 하나씩 나누어준다. 뭔가 했더니 잣, 대추, 과자, 사과 말린 것 등 등 20여 가지의 간식을 봉지 봉지 싸서 카드까지 넣어 주는데 그만 감격하여 눈물이 날 지경이다.

카드를 열어보니

행복이 시작되는 좋은 시간과 추억을 함께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과거보다는 나은 미래를 위해 즐거운 여행 되시고 맛있게 드세요.’

라는 예쁜 인사말이 우리 모두를 미소 짓게 한다. 다른 데서는 병 주고 약 준다는데 일중은 간식 주고 약 준다.

14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넘었다.

 

제 정신이 아니네!

황영조 선수가 뛴 바르셀로나

새벽 2시나 되어 잠자리에 들었지만 시차가 8시간이나 되니 새벽부터 눈이 떠진다.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에 내려가니 옆 자리에 앉았던 한국인이 우리에게 가방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자기 팀의 한 명이 의자에 가방을 걸어두고 식사하다가 잃어버려 구경도 못 하고 여권 만들러 마드리드로 갔다는 것이다.

식사 후 버스에 오르니 가이드 안병욱씨가 스페인 인사말부터 가르쳐준다.

안녕하세요는 올라’, 감사합니다 는 그라시아’, 헤어질 때 인사는 아디오스란다.

그리고 노래 제목인 베사메무초베사메가 키스 미, ‘무초가 많이 라는 뜻이니 키스를 많이 해달라는 뜻이란다.

먼저 구엘공원으로 갔는데 구엘공원은 구엘 백작이 100년 전 전원주택을 만들어 팔려고 했으나 수요가 적어 달랑 두 채 짓고 공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구엘 백작은 엑스포에 출품된 가우디의 작품을 보고 그에게 반하여 평생 그의 후원자가 되었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평범한 돌멩이들을 모아 붙여서 꽃, 동물, 식물모양의 기둥을 만들고 세라믹으로 테라스 난간과 천장 등을 만들었는데 독특한 모양과 색채가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천재작가 가우디와 부호 구엘이 만든 걸작품이 세계의 관광객과 공부하는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이런 걸 보고 우리말로 찰떡궁합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가우디 없는 구엘이 있을 수 없고 구엘 없는 가우디가 있을 수 없다.

가우디의 작품 중 최고의 걸작품은 성가족 성당이다. 이 성당은 1883년부터 그가 운명한 1926년까지 40여년을 헌신한 작품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상징하는 네 개의 전면기둥에 착수했지만 생전에 한 개만 완성하였고 익명의 기부자와 방문객들의 헌금으로 지금도 계속 완성되어가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마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지시만하고 돌아갔는데 말년에는 이 작업에 심취하여 마치 거지꼴을 하고 살았으며 전차에 치어 쓰러져 있을 때도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해 3일 만에 죽었다고 한다.

성가족 성당에서 나와 피카소미술관에 갔는데 이 미술관은 피카소의 친구가 저택 다섯 채를 사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피카소는 초반에는 초상화를 많이 그렸는데 아주 사실적으로 그렸다. 이것이 점차 변하여 추상화 같은 모습으로 변했는데 그 과정이 아주 잘 나타나 있었다. 특히 포르노 그림 같은 것도 그렸는데 오랄섹스하는 모습도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올림픽항구 맨땅에 둘러 앉아 프랑크푸르트에서 사온 럼주로 병나발을 불었다. 병을 돌리며 자기가 원하는 만큼씩만 먹는 것인데 알파인주법이라고도 한다.

럼주를 바닥내고 1992년 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몬주익 언덕으로 갔는데 은 언덕 또는 산이란 뜻이고 주익은 예수님 곧 주님을 뜻한다. 즉 주님의 언덕이다. 올림픽 주경기장 앞에는 황영조 선수의 기념 조형물이 있었는데 현지 교민들과 경기도가 마라톤에서 금메달 탄 것을 기념하여 세웠다. 황영조 선수의 뛰는 모습이 새겨져있고 그의 발도 찍혀있었다. 태극기도 돌에 새겨있고 한글로 뜨거운 우정 만방에 영원하라.’는 기념사까지 쓰여 있는 걸 보니 어깨가 으쓱으쓱 올라갔다.

람블란스 거리에서 그림 그리는 화가들도 구경하고 퍼포먼스 하는 사람들과 사진도 찍고 하며 까딸리나 광장까지 와서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와서 우르르 버스에 올라 막 출발을 했는데 갑자기 대장님이

아차! 내 카메라!” 한다.

잘 찾아보라고 했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단다. 조금 전 마차를 찍고 아무래도 거기 세워져 있던 오토바이에 놓고 온 것 같다고 한다. 버스를 되돌려 그 자리로 뛰어갔지만 이미 카메라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장님은 카메라보다 찍은 사진이 아깝다고 애석해 했지만 그래도 여행 끝판에 잃어버린 것 보다는 낫다고 위로들을 하였다. 가이드가 시킨 대로 소매치기 조심은 잘 했는데 제 손으로 놓고 왔으니 누굴 탓하랴?

저녁식사를 하고 버스로 돌아오니 이번에는 이증자님이 식당에 모자를 두고 왔다고 뛰어간다. 대장님은 버스에 두고 간 것 아니냐고 이증자님 자리에 가보니 과연 모자는 거기 있었다. 대장님은 모자를 들고 또 식당으로 뛰어갔다. 이렇게 이날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시차도 큰데다 어제 거의 날밤들을 새운 탓인가 보다.

 

세상 참 좁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와 문화의 도시 똘레도

3시 반에 기상하여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 바닥에 주저앉아 호텔에서 싸 준 도시락을 까먹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국내선이라 그런지 비행시간이 1시간 밖에 안 되어 그런지 물도 안 준다. 물은 2유로, 커피도 2유로란다. 박용옥씨는 지독한 놈들 앉은 자리에 풀도 안 나겠다고 분개한다. 정말 물도 안 주는 비행기는 처음이다.

7시에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하니 가이드 윤태일씨가 마중을 나왔다. 마드리드는 아랍어 마헤르트에서 온 이름인데 물의 기원이란 뜻이란다. 이름 그대로 지하수가 풍부하여 2000만 명이 살 수 있는 양이란다. 북쪽에 있는 설산에서 계속 눈이 녹아내려 지하수가 고갈될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똘레도로 이동하였는데 똘레도는 라만차주의 주도로서 세르반테스의 소설 동키호테의 무대가 된 곳이다. 똘레도는 마드리드 이전에 스페인 수도로서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도시로 지정되었다. 라만차는 붉게 물들다는 뜻인데 실제 이곳의 땅은 유난히 붉은색이라고 한다. 하지만 붉은 땅은 보이지 않고 끝없이 이어진 녹색의 밀밭이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였다.

똘레도는 라틴어로 요새라는 뜻인데 수없는 외침으로 주인이 바뀌면서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공존하면서 하나로 융화되어 특수한 문화를 형성했다고 한다.

대성당과 서민성당에는 엘그레꼬의 그림이 있었는데 그의 그림에는 손이 강조되어있고 특히 넷째 손가락과 다섯째 손가락이 붙어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엘그레꼬는 그리스 사람이란 뜻이고 그리스 사람인 그는 이곳에 와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서민 성당을 지을 때 그는 심혈을 기울여 그림을 그렸지만 성당이 완성되자 성당측은 값을 깎으려고 하였다. 이에 분개한 그는 성당을 고소하고 세계의 유명한 화가들을 모셔와 값을 감정 받은 결과 소송에서 이겼고 성당측은 그레꼬에세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지금도 그레꼬의 그림을 보려고 매년 5000만 명씩 이 성당을 방문하는데 입장료가 우리 돈 약 3000원이라니 그는 사후에도 연 1500억 원씩 기부하는 셈이다.

대성당에 들어가 설명을 하던 윤태일씨가 어제 한국으로 떠난 팀의 한 분이 자기는 원래 다른 팀으로 와서 사하라까지 가려고 했었는데 집안 사정으로 미리 왔다고 하더란다. 혹시 그 팀이 이 팀 아닌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 분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윤 뭐라고 했는데......”한다.

혹시 윤영자 아니에요?”

했더니 맞는다고 한다. 세상 참 좁다. 윤영자님 가이드가 우리를 또 맞게 되다니……. 그것도 하루 차이로 말이다. 이래서 죄 짓고는 못 산다고 하나보다.

빠가머리?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과 땅끝 마을 까보다로까

어제 쓴 엽서를 부치려고 로비로 가서 한국으로 부칠 수 있느냐고 물으니 오케이란다. 얼마냐고 물으니 모른단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하니 그냥 두고 가란다. 공짜로 붙여준다는 뜻인 줄 알고 엄청 기뻐했는데 아직도 꿩 구어 먹은 소식이다.

이날도 새벽같이 일어나 공항으로 이동하여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으로 향하였다. 리스본 공항에서 곧장 유럽대륙의 최서단 까보다로까로 이동하였는데 까보는 케이프즉 곶이란 뜻이고 로까는 바위즉 삐쭉 나와 있는 바위라는 뜻이다.

이곳은 아프리카 최남단인 희망봉과 비슷했는데 대서양의 푸른 물결이 더 역동적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야생화가 만발한 절벽과 대서양의 날뛰는 물결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다이나믹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길을 따라 땅 끝 탑 쪽으로 곧장 가려고 하니 대장님이 그쪽으로 가지 말고 자기를 따라 오란다. 대장님을 따라 위로 올라가니 그야말로 대서양의 절경이 나타났는데 다들 입이 딱 벌어져 탄성을 질렀다. 대장님은 처음 가는 곳에서도 어떻게 이렇게 기막힌 장소를 찾아내는지 매번 감탄한다. 무슨 동물적 본능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년간의 경험으로 노하우가 생긴 것인지 하여튼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가는 길에 윤태일씨가 포르투갈의 민요인 빠두를 틀어줬는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빠두 메오 빠두 메오하며 절규하는 듯 했다. 애절한 감정이 그대로 내 가슴 속까지 물결쳐 들어왔다. 빠두가 빠가머리는 아닐 테고 무슨 뜻인가 궁금하여 버스에서 내릴 때 물어보니 빠두는 숙명, 운명이란 뜻이고 메오는 나의라는 뜻 즉 나의 운명이여 나의 운명이여 하고 울부짖는 소리란다.

포르투갈은 유럽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하여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한 번 나가면 돌아오지 못 하는 남자들이 많아 그들의 부인, 애인, 어머니들이 바다를 보며 이토록 가슴 아픈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여기서 떠나 신트라로 이동하여 페냐성으로 올라갔다. 1755년 리스본에 대지진이 일어나 폐허가 되자 국왕은 별궁이 있던 신트라로 이사를 갔고 그 후 신트라는 귀족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페냐성은 동화 속에 나오는 궁전처럼 환상적이고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이 성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서민들이 피와 땀을 흘렸을까? 하지만 어찌 보면 이 성으로 말미암아 관광수입을 엄청나게 올리니 그 덕을 그들의 후손이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력한 권력과 부의 축적 없이는 이런 걸작이 나올 수 없고 그로 인해 자손만대로 먹고 살 수 있으니 빈부의 격차가 꼭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는 게 아닐까?

페냐성을 보고 리스본으로 돌아와 벨렝탑을 보았는데 이 탑은 따호강 하구에 있는 타워로 세관이 있던 곳인데 그 후 정치범 수용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대장님이 한 번 올라가 보자고 제안하여 송중섭님이 일인 당 3유로씩 내주어 부지런히 탑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지하에는 감옥 방이 있었는데 죄수를 벽에 묶어 놓으면 밀물 때마다 물이 목까지 차올랐다고 한다. 참 인간 만큼 잔인한 동물은 이 세상에 없다.

어부 수호의 성모님을 모신 제로니모 수도원을 보고 나자 윤태일씨가 그 옆의 빵집에서 벨렛파이를 사 주었다. 이 빵집은 1837년 제로니모 수도원의 한 신부님이 가르쳐준 비법으로 파이를 만들어 팔았는데 그 맛이 어찌나 기막힌지 하루에 1억 원어치씩 판다고 한다. 과연 야들야들하고 달콤한 게 엄청 맛있었다.

파이까지 잘 먹고 시내로 들어와 롯시오광장에서 꼬메르시유광장까지 걸었는데 그곳에는 달동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이걸 보자 대장님은 또 타자고 한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대장님이

왕복표를 사야하는데 왕복이 뭔지 가이드에게 물어볼걸......” 하며 걱정을 한다. 나도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서 인원수를 말한 다음 올라갔다 내려오는 거니까

“UP AND DOWN" 했더니 단박 알아듣고 왕복표를 준다. 이렇게 알아듣는 걸 보니까 참으로 신통방통하다.

 

안달이 났다구?

콜럼버스의 영혼이 깃든 세비야

아침 식사하러 로비로 내려가 이쪽저쪽 두 번 바라보니 종업원이 이쪽으로 가라고 손짓한다. 척 하면 삼천리라고 아침에 내려와 두리번거리면 당연히 식당을 찾는 줄 알고 가르쳐준다. 한 가지 일만 계속하다보면 IQ 70에 눈치 150으로 진화하기 마련이다.

아침 식사 후 안달루시아주의 주도(州都)인 세비야로 이동하였다. 영어도 모르는데 포르투갈어에 스페인어까지 외우려니 머리에서 쥐가 나려한다. 안달루시아는 안달이 났다구? 세비야는 쌔볐다구?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찍어다 붙이며 외운다.

세비야는 콜럼버스가 이자벨 여왕의 후원을 받아 인도로 가기 위해 배를 출항시킨 곳이다. 까데드랄 대성당에는 콜럼버스의 관이 뱃사람들의 마네킹 어깨에 들려 안치되어 있었다. 그는 이자벨 여왕이 살았을 때는 많은 명성과 후원을 받으며 살았지만 여왕이 죽자 재산을 몰수당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성당 안에는 오렌지 정원이 있었는데 마침 꽃이 피는 계절이라 오렌지 향기가 진동하고 있었다. 이렇게 향기가 흘러넘치니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휘날리고같은 음악이 나온 모양이다.

세비야는 롯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야의 이발사’, 비제의 칼멘’,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등등의 무대가 된 곳으로 오페라의 도시 또는 칼멘의 도시라고도 한다. 도시 곳곳에 이발사의 집, 돈 후앙의 집, 비제가 살던 집 등이 남아있었다.

이날 저녁에는 플라멩코 쇼를 보러 갔다. 비제의 칼멘에 맞추어 춤을 추는 무희들을 보니 이건 한 사람의 춤이 아니라 스페인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수 백 년을 떠돌던 집시가 없었다면 어찌 이런 음악이 나왔을 것이며 인도에서부터 몇 백 년 에 걸쳐 더 나은 곳을 찾아 거지 생활을 하며 여기까지 흘러온 집시들의 한이 없었다면 어찌 이런 격렬한 춤이 나올 수 있었을까? 마치 2만 볼트 전기에 감전 된 듯, 간질병 환자가 발작을 일으키듯 춤추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이 춤과 이 음악은 집시와 스페인 사람들의 정서가 모두 녹아 무희들을 통해 표출되는 듯싶고 비제의 작품이 아니라 스페인의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팔자가 늘어졌네!

양가죽 무두질의 꼬르도바와 석류 그라나다

가는 데마다 욕실에 비데가 따로 있기는 한데 수도꼭지의 방향이 맘에 안 든다. 변기같이 만들어 놓고 수도꼭지를 뒤에 달아 놨으니 볼일을 보고 씻으려면 물이 뒤에서 앞으로 오는 바람에 뒷구멍의 오물이 앞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 찜찜하다. 그랬다고 돌아앉으려니 무릎이 벽에 닿아 다리를 있는 대로 벌려야했다. 신혼 초에 방광염이 자주 걸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여자는 구멍 사이의 거리가 짧아 남자보다 방광염이 잘 걸린다고 하며 잠자리를 같이 했을 때는 즉시 소변을 봐라.’ ‘볼일을 보고 휴지로 닦을 때는 뒤에서 앞으로 닦지 말고 꼭 앞에서 뒤로 닦아라.’ 하며 주의 사항을 일러 주었다. 누가 비데를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한 수 가르쳐주고 싶다.

아침 식사 후 버스에 오르니 송중섭님이 요즘 손이 부드러워졌다고 하시며 연일 산해진미로 먹고 고급 침실에서 잠자며 호강했더니 때깔이 달라졌다고 하신다. 사실 해외 나오면 해주는 밥 먹지, 청소 안 하지, 설거지 안 하지, 깔아 논 이부자리에서 잠만 자고 쏙 빠져 나오니 한 마디로 팔자가 늘어졌다. 이래서 여자들이 더 해외여행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꼬르도바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내가 어제의 일정표를 보며 어제 본 까떼드랄이 뭐지?’ 했더니 김사장님이 그게 대성당이예요.’ 한다. 타일 벽화가 많이 있던 데가 어디였더라?’ 했더니 배복순씨가 그게 스페인 광장이죠.’ 한다. 도무지 이름이 어려워 보고도 뭘 봤는지 모르겠다. 까떼드랄인지 까떼지랄인지 도무지 그게 그 소리 같아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꼬르도바는 양가죽 무두질이란 뜻이라는데 꼬리로 도박을 하는지 꼴갑을 떠는지 혀가 돌아가지 않는다. 꼬르도바에는 8세기 때 지어진 회교사원이 있었는데 8세기의 회교사원은 이라크의 바그다드와 여기 꼬르도바 두 곳 밖에 없었단다. 하지만 바그다드의 사원은 최근 이라크 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다 부서져 이제 이곳 하나만 남아있다고 한다.

오렌지 향기 가득한 정원에서 현지인들과 사진을 찍은 후 회교사원에 빨리 입장하려고 뛰어가다가 박용옥씨가 기둥 모서리에 발이 부딪쳐 넘어지면서 발이 삐끗하는 바람에 쩔쩔 매고 잘 일어나지 못한다. 겨우 부축해 안으로 들어서자 여기 직원이 금방 휠체어를 가져와 앉으라고 한다. 용옥씨는 괜찮다고 절뚝절뚝 하면서 그래도 구경은 다 하였다. 회교사원은 나중에 성당으로 개조해 사용해서 회교양식 건물에 천주교 양식의 조각품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흰 대리석으로 된 십자가의 예수상은 검은 줄이 박혀 꼭 핏줄이 온몸을 휘감고 있는 듯 했다.

회교 사원을 나와 꽃의 거리, 유대인 거리, 아랍인 거리를 거쳐 성을 나오니 세네카 동상이 서 있다. 세네카는 이곳 꼬르도바 사람인데 네로의 스승이었지만 그의 노여움을 사서 동맥을 끊는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동맥을 끊고 그 피를 제자들이 대야에 받아내며 죽어가면서도 네로에게 가르침을 전하자 다른 제자들이 받아 적었다고 한다.

점심식사 후 그라나다로 이동하였는데 그라나다는 석류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그라나다의 대표적 관광명소는 누가 뭐라 해도 알함브라 궁전이다. 알함브라는 붉은 성이란 뜻이란다. 알함브라 궁전은 한 시간에 860명씩 하루에 8600명만 입장시키는데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 들어갈 수 있단다. 한국관광객은 항상 급하게 오므로 비싸게 주고 암표를 구입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5시에 예약했기 때문에 먼저 여름궁전을 보았다. 여름궁전에는 곳곳에 분수대가 있었는데 그 옛날 전기도 없던 시절에 높은 곳에 물을 저장했다가 가는 관을 통해 낮은 곳으로 보내 뿜어져 나오도록 했다. 낙차와 관의 굵기를 조절해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의 높이와 세기를 조절한 것이 참으로 희한하였다.

이 궁전의 정원에는 죽은 나무가 처참하게 서 있었는데 왕비가 경호원의 아들과 겨울에 이 나무 밑에 와서 데이트를 하다가 왕에게 발각되었다고 하였다. 왕은 질투에 불타 경호원의 일가친척 남자들 37명을 모조리 목 베어 왕비의 방에 늘어놓았고 왕비는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린 왕은 이 나무도 죽여서 이토록 흉측한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5시가 되어 알함브라 궁전의 본궁인 나자리궁으로 오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표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겉에서 보기에는 색깔도 우중충한 것이 별 볼 일 없어 보였다. 인도의 타지마할보다 못하다고 실망했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그게 아니었다. 우선 외부인이 왕을 만나러 오면 무기를 모두 맡기고 눈을 가리는 방이 있었다. 여기를 지나면 이리저리 미로를 끌고 다니다가 또 뺑뺑이를 돌리는 방이 있었다. 눈을 가리고도 이 사람이 왕이 있는 방의 위치를 알아챌까봐 이렇게 어지럽게 돌린다는 것이다. 여기를 지나니 왕의 집무실이 나오는데 천장이며 벽이 온통 정교한 타일과 붉은 사암을 조각해 파서 만든 천장 등이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창문도 큰 돌을 얇게 갈아 기기묘묘한 문양의 구멍을 파서 만들었는데 이걸 보고 있자니 가슴이 콱 막히는 듯도 하고 숨이 멎는 듯도 하고 하여튼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무로 조각을 한다고 해도 이보다 정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왕비 방에는 가운데 둥근 분수대가 있었는데 이 분수대 주위로 경호원 집 남자들의 잘린 머리가 37개나 놓여있었다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아무리 화려한들 이게 어디 지옥이지 사람 사는 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음은 사우나실로 갔는데 사우나실에는 24시간 불을 때서 항상 뜨거운 물이 흐르도록 하였고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게 했는데 이 악사들의 눈을 빼 장님으로 만들어 볼 수 없게 하였다.

스페인의 이자벨 여왕이 회교국인 이 그라나다를 눈의 가시처럼 여기고 연합군을 결성하여 공격하자 정신불안증에 걸린 왕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항복해버리고 말았단다. 알함브라 궁전을 보고 버스에 오르자 윤태일씨가 알함브라의 추억을 틀어줬는데 기타리스트가 형편없는지 버스의 음향기기가 껄렁한지 분위기 깨는 소리를 냈다.

이날 묶은 호텔방에서는 시에라네바다의 설산이 보였는데 시에라는 산맥’, 네바다는 눈이 덮인’, 눈 덮인 산맥이란 뜻이란다. 내일이면 윤태일씨와도 작별이라 저녁식사 후 대장님 방에 모여 송별회를 하였다. 양숙씨가 올해 결혼 26주년이라고 와인을 내고 김사장님이 알함브라 맥주를 사왔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알함브라는 물이 좋아서 그런지 맥주 맛도 좋다. 특히 초록색 병의 맥주가 맛있다고 한다.

 

지 불알을 탔다구?

동굴마을 구아딕스와 모로코의 탕헤르

아침에 버스에 오르니 버스기사가 우정복님에게

“I miss you." 하고 인사를 한다. 우정복님도 맞장구를 치며

“I miss you too." 하고 인사를 한다. 며칠 동안 같은 기사와 다니다 보니 농담 따먹기 할 정도로 친숙해졌나보다.

독특한 동굴주거형태 마을인 구아딕스로 이동하였다. 동굴집이라고 해서 무슨 원시인 사는 동굴처럼 생각했더니 완전 초호화저택이었다. 박물관이 없나 카페가 없나 벽에다는 흰 칠을 하고 벽에는 온갖 화려한 장식품을 걸어 동화 속의 아름다운 공주가 나올 듯하였다. 굴로 들어가는 입구도 예쁜 집을 만들어 웬만한 전원주택은 저리 가라였다. 방이 하나 더 필요하면 또 굴을 파서 만든다고 하였다.

작은 동산 위에는 성모상이 서 있었고 성모상 앞에는 주민들이 갖다 놓은 꽃다발이 놓여있었다. 골목에는 빵 차가 와서 빵을 팔고 있었는데 맛이 참 좋았다.

구아딕스에서 나와 코스타 델 솔(태양의 해변)을 지나 알제시라스에서 점심을 먹고 타리파 항으로 이동하였다. 오늘 우리와 헤어지게 된 윤태일씨는 못내 아쉬워하며 자기도 사하라사막을 못 봤는데 이 팀을 따라가고 싶지만 다음 팀을 곧 받아야하므로 버스 기사와 함께 돌아가야 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사하라까지 가는 팀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고 하며 우리를 엄청 부러워하였다.

타리파 항에서 페리를 타고 지브랄타 해협을 건너 모로코로 향했다. 지브랄타는 스페인 땅이었지만 스페인이 영국에게 패하면서 영국에게 빼앗겨 지금까지 영국 땅이라고 하였다. 지브랄타인지 지 불알을 탔는지 우리는 알 바 없고 5시 배를 타고 모로코의 탕헤르 항으로 향했는데 배에서 입국심사를 하였다.

5시 배를 타고 1시간 왔는데 4시에 도착했다. 모로코가 1시간 늦은데다 스페인은 서머타임을 실시했기 때문에 두 시간 차이가 돼버렸다.

탕헤르에 도착하니 갑자기 유럽에서 중동지방으로 건너온 듯 온통 뒤집어쓰고 다니는 사람에 길바닥은 쓰레기투성이다. 모로코 가이드 정미란씨는 우리 일정표를 보고 엄청 젊은 사람들이 오는 줄 알았단다. 갑자기 할머니들이 나타나니 놀랐나보다.

호텔로 가기 전에 재래시장 구경을 하였는데 곳곳에서

니하우?” “아리가또?” 하며 인사를 한다. 우리를 중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인 줄 아나보다.

가끔 젊은 아이들은

“JAPANESE?" ”KOREA?" 하며 묻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KOREA"하니까 “SOUTH KOREA? NORTH KOREA?" 하며 또 묻는다. 여기서도 한국을 알고 남한과 북한이 나뉜 것을 아는 걸 보니 희한하다.

 

무슨 꿈 꿨다구?

로마 유적지 볼루빌리스와 천년 고도 페스

모로코는 국민의 99%가 이슬람교 중 수니파에 속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전통의상인 질러봐인지 질레바인지를 입고 전통을 고수하며 산다. 언어는 신문이나 TV에서는 아랍어와 불어를 쓰고 일상생활에서는 현지어를 쓴다. 하지만 과거에 프랑스 식민지였기 때문에 관공서에서는 불어를 쓴다고 한다.

현지어로 안녕하세요?’ 샬라마리꿈?’, ‘감사합니다.’쇼크란이라고 한다. 스페인 말과 포르투갈 말 외우기도 힘든데 모로코 말까지 외우려니 거의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다. ‘샬라 마리가 몇 마리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돼지 몇 마리 나온 꿈인가보다 하고 외우고 쇼크란은 쇼크 받았다는 소린가보다 하고 기억했다.

버스로 4시간을 달려 볼루빌리스로 향했는데 끝없이 이어지는 밀밭은 심은 시기가 밭마다 조금씩 달라서 그런지 초록빛 연둣빛 노란빛의 조각 천을 이어 만든 조각이불 같기도 하고 한 폭의 파스텔화를 보는 듯도 하였다.

볼루빌리스는 2~3세기 로마식민지 시대의 도시인데 마치 로마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하였다. 섬세한 타일무늬며 아취형의 문, 신전 기둥 같은 것들이 그대로 보전되어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한데 기둥머리 위에는 무심한 왜가리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고 있었다.

볼루빌리스를 떠나 메크네스를 거쳐 페스로 이동했는데 페스는 천년동안 수도였다고 한다. 809년 볼루빌리스에서 이리로 수도를 옮겼는데 건설 당시 땅에서 금으로 만든 괭이가 나왔고 페스는 괭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페스에 도착하니 페스 가이드가 나왔는데 난장이인지 꼽추인지 하여튼 작고 장애인 같은 남자가 나왔다. 그는 페스 가이드 1호라고 하는데 자기 일에는 매우 충실하여 왼쪽으로 오른쪽으로하며 우리를 잘 인도하고 수시로 인원점검을 하였다. 언덕 위 망루로 올라가니 페스 시내가 한 눈에 보였는데 집집마다 스카이 라이프 같은 안테나를 설치하여 온통 시내를 뒤덮고 있었다.

망루에서 내려와 세계 최대의 미로라고 일컫는 메디나 거리를 보았는데 길은 좁고 당나귀가 짐을 싣고 골목을 누비고 다니니 우리는 앞에서 당나귀하면 모두 왼쪽으로 붙었다. 가이드는 여기서도 사진 찍을 위치를 잡고 호선생님에게 여기서 찍어라 이 각도에서 찍어라 하며 훈수를 두었다. 그는 페스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해서 올해가 페스 건립 1200년 되는 해라 축제가 있다고 몇 번씩 강조하였다.

거리 곳곳에서도 우리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아보고 빨리 빨리’ ‘천천히 천천히’ ‘아줌마 어떻게 만나요?’ 별별 소리를 다 한다. 그래서 이따 만나요.’ 하고 대꾸하니 재미있는지 깔깔 웃으며 간다.

다음에는 천연가죽 염색공장으로 갔는데 큰 통에 각종 천연색소를 넣고 가죽을 담그며 염색을 하고 있었다. 원래는 냄새가 엄청 심하다는데 이날은 바람이 잘 불어 그런지 별로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입구에서 허브 잎을 나누어주며 코에 대라고 했지만 별 필요가 없었다.

페스는 푸른 도시라고 하더니 호텔방에 들어가자 커텐, 침대커버, 의자 등 모조리 푸른색이다.

 

원 맨 쇼?

사하라의 문 에르푸드

이 날은 모처럼 9시에 출발하는데 6시 반에 아침밥을 먹고 나니 할 일이 없다. 면세점에서 카메라를 찾아올 때 가져온 삼각대를 꺼내 만져 보려니 도무지 어떻게 할 줄을 모르겠다. 옆 집 사는 호선생님을 찾아가니 과연 전문가답게 이것저것 잘 가르쳐 준다.

방에 오니 원종옥씨가 와서 자기 카메라에 찍은 사진이 안 보이니 다 없어진 거 아니냐고 묻는다. 저절로 삭제되지는 않을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옆방의 전문가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하였다.

오늘은 하루 종일 사하라 사막의 초입에 있는 에르푸드까지 이동하는 날이다. 가는 버스에서 수요반의 까까언니가 준 CD를 들었다. 옛날에 유행하던 노래들이라 다들 옛 추억에 잠겨 노래를 듣는데 나도향이 부르는 노래가 재미있었다. ‘항문을 조입시다.’라는 노래인데 항문을 조여라 풀어라 하며 운동을 시키는 노래다. 노래에 맞춰 항문운동을 한바탕 하고 나니 들판에서 열심히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땅에 붙어 일하는 농부가 마치 한 포기의 풀과 같이 보였다. 평생을 고향에서 떠나지 못하고 죽도록 땅에서 일 하다가 그 땅에 묻히는 사람은 식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지구에 뿌리박고 한 발작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인간은 먼 우주에서 보면 한 그루 나무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버스가 점점 고도를 높이더니 1500m 고지에 있는 아프란에 도착했다. 아프란은 아프리카의 스위스라고 불린다더니 과연 갑자기 유럽으로 공간이동을 한 듯 산뜻한 모습이다. 여기서 잠시 쉬며 차도 마시고 호숫가로 산책도 하다가 다시 출발하였다.

얼마를 더 가는데 길가에서 북 치고 꽹과리 치고 장구 치고 난리가 났다. 이게 웬일인가 하고 우르르 내리니 신부 집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신랑 집으로 가는 행렬이었다. 가다가 푸른 들판에서 한바탕 놀고 가는 거였다. 이곳에서는 신부 집에서 12, 신랑 집에서 12일 결혼잔치를 한다고 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헤나염색으로 신부의 온몸을 단장하는데 손등, 손바닥 등 온통 문신 같은 무늬로 뒤덮여 있었다. 헤나는 유목민들의 소독제로 쓰였으며 무좀이나 상처에 발랐다고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푸른 벌판에는 양들이 머리를 땅에 박고 풀을 뜯고 있었는데 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풀은 땅을 빨아먹고 양은 풀을 빨아먹고 인간은 양을 빨아먹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평화로운 환경에서 사니 이들은 눈만 마주치면 웃고, 얼굴만 마주치면 말 걸고, 손을 흔드나보다.

계속 달리다가 길가의 카스바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카스바는 어디 지명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고 성채라는 뜻이란다. 그러니까 곳곳에 카스바가 있다. 시에라네바다의 설산을 배경으로 서있는 이 붉은 빛의 카스바는 독특한 신비로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비몽사몽간에 졸다보니 버스가 서는데 내다보니 강가에 영월의 선돌 같은 거대한 바위가 서있다. 다들 탄성을 지르며 내려가 사진도 찍고 바위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대장님이 난간을 훌쩍 뛰어 넘더니 그 바위로 올라간다. 보는 사람은 아슬아슬 하구만 대장님은 식은 죽 먹기로 날다람쥐 같이 순식간에 꼭대기에 올라서서 승리의 V자를 그리며 만세를 부른다. 손에 땀을 쥐고 있던 외국인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고 샷터를 누른다. 이 날은 완전히 대장님의 날이다. 혼자서 원 맨 쇼 하고 스타 됐다.

또 졸며 자며 가는 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사진 찍느라고 난리가 났다. 눈앞에 호수가 나타났는데 그 색깔이 어찌나 오묘한지 마치 신기루를 보는 듯 했다. 나도 양말 바닥으로 반대편으로 가서 정신없이 찍어댔다.

가는 길에 대추야자가 가득 자라는 오아시스에서 잠시 쉬었는데 대추야자는 말려서 원주민들의 비상식량으로 쓰였다고 한다. 대장님이 대추야자 말린 것을 사서 나누어 주었는데 꼭 우리나라 대추 비슷하고 노란 색이이었다. 먹어보니 달콤하고 쫄깃하니 맛이 좋았다.

이렇게 물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푸른색을 띠었는데 온천지가 황무지라도 물이 흐르는 곳은 생명이 있었다. 마치 초록색의 실핏줄을 보는 듯했다. 우리말에서는 물 쓰듯 한다는 것이 마구 별 값어치 없이 막 쓴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물이 곧 생명이었다.

사하라사막의 입구에 있는 도시 에르푸드 가까이 가서 화석공장에 들렀는데 거대한 암모나이트와 삼엽충 등 많은 화석이 있었다. 화석이 박힌 돌을 갈아 탁자도 만들고 그릇도 만들었는데 몇 억 년 전의 생물이 박힌 것이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화석공장에서 나오니 석양이 물들고 우리는 에르푸드의 한 카스바에 짐을 풀었다.

 

에고~ 황공무지로소이다

숨죽인 사하라

3시 반에 기상하여 41조로 지프차를 타고 사하라사막의 메르주가로 이동하였다. 메르주가는 알제리에서 3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국경 도시다. 우리는 모로코의 최남단까지 내려간 셈이다. 1시간을 달려가 지프차에서 내리니 아직도 사방은 캄캄한데 흑색의 하늘이 온통 보석을 뿌려놓은 듯하다. 그런데 지평선을 보니 가느다란 반원의 호가 보인다. 뭔가 하고 쳐다보니 그믐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달은 본 적이 없어 멍하니 떠오르는 달을 보고 있자니 마치 태고의 신비를 보는 듯했다. 일출 보러 왔는데 월출까지 보니 마치 보너스를 받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다시 낙타를 타고 50분 정도 이동하였는데 낙타는 다리가 세 마디로 되어있어 그런지 키가 커서 그런지 타고 내릴 때 앞으로 휘청 뒤로 휘청하며 금방 바닥에 내동댕이 처질 것 같아 겁이 난다. 그래도 일단 타고 나면 기분 좋게 흔들흔들하며 잘 간다.

나는 양숙씨와 같은 낙타를 탔는데 우리 마부는 영어를 좀 하는지 어디서 왔냐? 모국어가 뭐냐? 하며 말을 시킨다. 한국서 왔다 모국어도 한국어다 하고 대답하다가 이런 싱거운 질문을 왜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민족과 국가는 달라도 남의 나라 말을 쓰는 나라도 많으니 당연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싶었다.

일출을 보는 곳에 이르니 여기저기 모래 언덕에 먼저 온 팀들이 카메라를 설치라고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낙타에서 내려 모래언덕에 오르니 마부가 낙타에 얹었던 카페트를 모래에 깔고 앉으라고 한다. 그런데 저쪽 언덕을 보니 대장님이 혼자 모래언덕을 오르고 있다. 우리도 따라가려고 했더니 마부가 그곳은 일몰이 좋은 곳이고 일출은 여기가 좋으니 그냥 앉아서 기다리라고 한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대장님이 가는 곳에는 뭔가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저 사람이 우리의 리더다. 우리도 가겠다.’ 하고 말해도 자꾸 앉으라고 하니 그냥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일출을 기다리는데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땅에는 바람 한 점 없었다. 마치 사하라가 숨을 죽이고 앉아 있는 듯 했다. 동쪽 하늘이 검붉은 색으로 물들더니 마침내 한 줄기 빛이 대지를 뚫고 뛰쳐나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에 처음으로 한 줄기 빛을 내뿜는 태양을 바라보자니 마치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는 듯 장엄함과 숭고함에 몸이 저려왔다. 아무 말 못 하고 넋을 잃고 바라보자니 앞의 모래 언덕에 올라갔던 대장님이 돌아온다. 와서 왜 따라오지 않았느냐고 막 화를 내신다. 우리는 못 들었다고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고 대장님은 저쪽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다고 흥분하신다. 결국 마부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 그 언덕에 오르기로 하였다.

어제까지 따분하고 지루해 하던 양숙씨는 언덕에 오른다니 갑자기 신이 나서 앞장서서 달린다. 그저 산꾼들은 산에 올라야 오장육부가 제대로 돌아가고 하늘을 오를 듯 힘이 나나보다. 언덕에 올라보니 과연 그곳에는 신천지가 전개되어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구릉이 마치 모래의 바다를 보는 듯했다. 모래언덕은 바람의 파도가 만들어 놓은 물결 같았다. 모두들 탄성을 지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난리를 치자 대장님의 화가 슬며시 가라앉고 직성이 풀렸다.

대장님은 해외여행이나 국내 산행이나 최고의 작품, 아니 최고의 명품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그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자신이 분해서 참지 못한다. 한 마디로 부르르 떤다. 경치가 안 좋은 것이나 날씨가 안 좋은 것은 대장님 탓이 아닌데도 그것도 못 참는다. 그 성질 덕에 우리는 항상 최고의 명품만 감상하고 다닌다. 그저 내가 할 일은 롯데 너구리상 앞까지 가는 일만 잘 하면 된다.

다시 낙타를 타고 롯지로 돌아오니 김사장님이 라면을 끓여놓고 김치에 마늘쫑까지 곁들여 우리를 맞이한다. 이 무겁고 냄새 나는 것을 한국에서부터 이 사하라사막까지 끌고 와 끓여주는 성의를 생각하니 그저 고맙고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내 생전에 남자에게 이렇게 서비스 받기는 처음이다. 난 원래 무수리과라 이런 대접 받으면 황송해서 어쩔 줄 모른다. 김사장님~ 그저 황공무지로소이다.

지프차를 타고 호텔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한 후 버스에 오르니 가이드 정미란씨가 우리 보고 복도 많다고 하며 자기가 사막 일출 보러 자주 오는데 오늘처럼 날씨 좋고 일출 멋있는 적은 드물단다. 3월에서 5월까지만 가능한데 그나마 모래바람이 많이 불어 되돌아가기가 일쑤라는 것이다. 사하라는 버려진 땅, 불모의 땅이란 뜻이라는데 우리가 본 사하라는 하나의 거대한 보석이었다. 이 인상은 내 뇌리에 깊이 박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어제의 길을 되짚어 오다가 어제 점심 먹었던 카스바에서 다시 점심을 먹고 로마 유적지가 있던 볼루빌리스로 이동하였다. 한참을 가다가 갑자기 버스가 멈춘다. 길가에 원숭이가 나왔다는 것이다. 우리 버스의 조수 핫산이 먹이를 던져 주자 경계를 하며 나무로 올라가면서도 멀리 도망가지 않고 우리를 바라본다. 버스에서 내려 원숭이를 좇아가 사진을 찍고 원숭이는 사람 구경, 사람은 원숭이 구경을 하고는 다시 버스에 올랐다.

사막도 좋지만 푸른 숲과 원숭이를 보니 지금까지 막혀 있던 숨이 확 터지는 듯했다. 풀 한 포기 없는 불모의 땅은 가슴이 탁 막히는 절경이라면 숲과 동물들은 우리의 안방처럼 편안한 느낌이다.

사방에 어둠이 내릴 때 로마유적지 볼루빌리스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에 도착했다. 로비로 들어가 앉으니 호텔 직원이 뜨거운 박하 차와 과자로 우리의 피로를 풀어준다. 아침저녁으로 이런 서비스를 받으니 요새 현숙이 팔자 폈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와 영화의 도시 카사블랑카

아침에 일어나 커텐을 여니 볼루빌리스가 찬란한 태양을 받아 빛나고 있다. 지금이라도 긴 망토를 걸친 로마인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거리를 활보할 것 같다. 이 호텔은 이곳의 성주가 살던 곳이 아닐까 싶게 도시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성의 성주는 매일 이 성을 내려다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통치하는 이 도시를 바라볼 때마다 자신의 권력과 부를 느끼며 흐뭇해했을까? 하지만 무수한 무지랭이들은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하루 세끼 밥 먹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이 거대한 유적이 어찌 이 땅에 생겨날 수 있었을까?

옛 사람들의 기막힌 작품을 볼 때마다 이 작품을 낳기 위해 피를 말리며 고통을 겪었을 사람의 인생이 떠오른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일생을 바쳐 하나의 명작을 세상에 남기고 가는 것이 보람된 일일 것 같기도 하고, 한 번 밖에 못 사는 인생 그저 편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2천 년 전 도읍지를 뒤로 하고 라바트로 향하는데 끝없는 밀밭이 이어진다. 그런데 그 색채가 어찌나 오묘한지 밭마다 색깔이 다르다. 밀의 생장 정도에 따라 농도가 다른데 무슨 모자이크를 보는 듯하다. 초록색이 이렇게 무궁무진한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호선생님은 와아~ 누비이불 같다.’ ‘수채화 같다.’ 탄성을 지르며 감탄사를 연발하니 가이드가 오히려 감탄한다. 이렇게 감성이 풍부한 남자는 처음 본다는 것이다. 버스 안은 흥분의 도가니가 되어 왼쪽 봐요.’ ‘오른쪽 봐요.’ 소리를 지르는데 눈이 앞에만 있는 게 한이다. 앞에도 하나 있고 왼쪽에도 오른 쪽에도 뒤에도 골고루 있었으면 이리저리 목 돌릴 일도 없이 얼마나 좋겠냐 말이다.

양숙씨도 이거 두고 가기 아깝다고 되돌아가 다시 한 번 보자고 한다. 이렇게 여기보고 저기보고 정신을 팔다보니 어느 덧 라바트로 들어선다. 라바트는 중간의, 중간 역할을 하는, 중간 상인의 뜻이란다. 옛날부터 여기서 중간 상인들의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는지도 모른다.

바닷가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우다야 성채를 보았는데 예전에 곡물창고와 감옥으로 쓰인 곳이란다. 곳곳의 벽에는 죄수들을 묶어 놓는 고리가 있었고, 목을 자르기 위해 비스듬히 기울여 만든 벽도 있었다. 어떤 방은 잘린 목을 바닷물에 적셔 저장해 두는 곳도 있었다. 아래층은 현대미술관으로 쓰고 있었는데 마침 포토그래픽의 사진 전시회가 있었다.

여기서 나와 핫산탑과 모하메드 5세 묘를 보고 왕궁으로 갔다. 왕궁은 청와대처럼 정원은 개방되어 관광할 수 있었는데 왕궁 문 앞에 경비원과 사설 경찰이 지키고 어느 선 이상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는지 실험해 보자고 우리들은 일렬로 팔짱을 끼고 여우야 여우야 뭐 하~하는 식으로 한 발짝씩 가까이 가자 경비원들이 우리를 보고 웃더니 과연 어느 정도 가까이 가자 사설 경찰이 좇아 나와 더 이상 못 들어오게 저지한다.

이렇게 왕궁까지 다 보고 카사블랑카라는 영화로 유명해진 모로코 제 1의 도시 카사블랑카로 향했다. ‘카사는 집, ‘블랑카는 흰색 즉 카사블랑카는 흰 색의 집이란 뜻이라고 한다. 나는 카사블랑카 영화를 여기서 찍었는줄 알았더니 여기서 찍은 것은 전혀 없고 미국의 세트장에서 찍었다는 것이다.

가는 동안 정미란씨가 카사블랑카 CD를 보여줬는데 카사블랑카로 가며 보는 느낌은 예전에 한국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달랐다. 단지 카사블랑카는 영화에서처럼 프랑스 자치구였으므로 미국으로 가기 위한 망명자들이 임시로 머물던 곳이란다.

카사블랑카에 도착하여 모하메드 5세 거리에 있는 유엔광장과 모하메드 5세 광장을 보았는데 휘황찬란한 옷차림의 물장수에, 풍선장수에, 땅바닥 가득 장난감을 늘어놓고 파는 사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시민이 다 몰려나온 것 같았다.

광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핫산 2세 모스크로 이동하였는데 모스크란 회교사원을 일컫는 말이다. 카사블랑카에 있는 이 사원은 메카에 있는 알카아바 모스크에 이어 세계 2번째로 큰 모스크로 핫산 2세 국왕이 국민의 성금을 모아 7년간의 공사를 거쳐 1993년 완성하였다고 한다. 이 모스크는 29000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고 그 첨탑의 높이가 200m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어둠이 내리는 석양을 배경으로 우뚝 선 사원은 보는 사람으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경건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사원에서 나와 아인디아브 해수욕장 근처의 호텔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아인’ ‘디아브늑대즉 늑대의 눈이란 뜻이라고 하였다. 오늘밤은 기내박이라 카메라 배터리 충전을 할 수가 없어 호텔 로비의 콘센트에 충전기를 꽂아 놓고 거리 산책을 하였다. 그런데 여기 신호등은 차를 위한 신호등만 있고 보행자를 위한 신호등이 없어 차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적당히 건너야했다. 모로코는 교통사고 세계 1위라더니 사람보다 차가 우선인가 보다. 밤거리를 배회하다가 공항으로 가 새벽 1시 비행기로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다.

 

이 봄에 웬 눈보라?

황태자의 첫 사랑이 깃든 하이델베르그

3시간 반의 비행을 마치고 푸랑크푸르트에 도착하니 공항직원이 우리들을 한쪽으로 보낸다. 단체라 빨리 내보내주나 했더니 웬 개가 한 마리 떡 버티고 앉아있다. 아니 얼굴 허연 사람은 그대로 보내고 우리만 개구멍으로 보내니 다들 기분이 상했다. 김사장님은 후진국 모로코에서 동양인이 들어오면 혹시 마약이나 안 들여오나 하고 검사를 한다는 것이다. 우정복님은 자존심 상한다고 얼굴색까지 붉어졌다.

밖으로 나가니 가이드 박경석씨가 맞는다. 비행기에서 준 빵을 공항에서 먹고 버스에 올랐다. 하이델베르그로 이동하며 박경석씨가 독일 설명을 해준다. 독일의 명물은 고속도로인 아우토반과 맥주라고 하였다. ‘아우토반자동차 길이란 뜻이라고 하는데 속도제한이 없는 게 특징이고 오토바이도 달릴 수 있단다.

기내박을 한데다 시간이 3시간이나 앞당겨졌으니 거의 날밤을 샌 꼴이다. 그러니 설명이고 뭐고 다들 비몽사몽간이다. 하이델베르그는 신성한 산이란 뜻인데 도시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 2차 대전시 연합군이 폭격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이델베르그는 유서 깊은 도시로서 하이델베르그 대학은 독일 최초의 대학이란다. 고성으로 올라갔는데 메카강과 도시 전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무너진 성과 푸른 잔디가 어우러져 고색창연함을 느끼게 했다. ‘사랑의 문도 있었는데 이것은 독일 국왕이 영국에서 온 공주를 위해 하루 사이에 만든 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부부 사이가 좋아진다고 호선생님 내외가 사진을 찍었다. 분수대에는 하얀색 남자 누드 조각상이 누워 있고 잔디밭 옆에는 괴테 동상도 있었다.

다들 춥고 배고파 덜덜 떠니 가이드가 카페에 들어가 커피나 마시자고 한다. 이날의 모닝커피는 박용옥씨가 한턱 쐈는데 따끈한 커피가 한 모금 들어가니 온 몸이 확 풀리는 듯하였다.

하이델베르그라고 하면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이 떠올라 가이드에게 그 영화의 배경이 된 카페는 어디냐고 물으니 친절히 안내해준다. 그 영화에서 왕자가 맥주 컵을 들고 탁자 위에서 'DRINK! DRINK! DRINK!' 하며 노래 부르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오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가 했더니 어느 새 우박과 눈이 휘몰아친다. 순식간에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는데 갑자기 길이 막히고 차들이 벌벌 긴다. 얼마를 밀리며 오다보니 차들이 미끄러지고 자빠지고 난리가 났다. 중앙선을 넘어 완전히 뒤집혀진 놈, 잔디밭으로 쳐들어간 놈, 별별 놈이 다 있다. 가이드는 지금까지 7년 동안 살면서 교통사고 난 것은 네 번 밖에 못 봤다고 하며 이건 완전 대형 사고라고 하였다.

프랑크푸르트에 돌아와 괴테 하우스를 보러갔다. 괴테 하우스는 괴테가 낳은 집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한다고 하였다.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라는 책을 보면 괴테가 이태리를 엄청 동경하고 가고 싶어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종 한 명과 이태리로 떠나 3년 동안 여행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곳 날씨가 이렇게 춥고 우중충하니 붉은 태양이 작열하는 이태리에 가보고 싶은 열망을 품은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날도 밤 12시가 넘어 비행기에 올라 기내박을 하며 인천으로 향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마포시대에 사는 내 남편

먹고 자고 먹고 자고 10시간의 비행 끝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어머니 품에 안기듯 편안함에 마음이 턱 놓인다. 공항에 도착하여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노래가 절로 나온다. 깨끗하지, 화장지 많지, 돈 안 받지, 하여튼 화장실 하나는 세계 최고다.

짐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남편이 다가온다. 이렇게 혼자 쏘다니다 들어오려면 남편이 뭐라고 안 해도 미안해서 안색부터 살핀다. 2주 동안 혼자서 먹고 자고 했을 남편을 생각하면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공연히 혼자 떠든다. 남편은 자칭 마포시대(마누라 포기한 시대)에 산다고 하는데 이렇게 혼자서만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다가 남편은 퇴직하여 돌아다니고 나는 기운 빠져 방에 콕 박혀 진남포시대(진짜로 남편 포기한 시대)를 살게 될까봐 은근히 겁난다.

 

이번 스페인 여행은 대장님의 걸작품 중에서도 명품 관광이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작품을 만들어 우리에게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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