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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2008. 7. 30. 지리산

by 아~ 네모네! 2012. 10. 14.

 

 

 

 

 

 

 

 

 

 

 

 

 

 

 

<기행문>

40년 만의 지리산 종주

이현숙

대학교 2학년 때 지리산 종주를 한 후 40년 만에 다시 기회가 왔다.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들의 탁월한 실력으로 산장 예약에 성공해 모처럼 부푼 가슴을 안고 종주에 합류하였다.

 

진수성찬

애교 만점 이애란, 진짜 맛을 보여주는 석진미, 천국에서보다 더 멋지게 사는 이연옥, 인순이보다 더 노래를 잘 할 것 같은 장인순, 양보다 더 순한 김양순, 그리고 현재까지 숙맥으로 살아온 이현숙, 이렇게 여자들 여섯이서 겁도 없이 지리산 종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일기예보에서는 사흘 내내 비가 내린다고 기를 팍팍 죽이는데 우리는 기세등등하게 엄청난 무게의 배낭을 짊어지고 버스에 올랐다. 백무동으로 가는 길에 곳곳에서 장대비가 우리 심장을 조여 왔다. 그래도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배짱으로 버티고 앉아있는데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에서 갑자기 경고음이 들리더니 급기야는 노견에 서고 말았다. 에어컨을 계속 켜니 엔진이 과열되어 못 간다고 한다. 얼마를 쉬면서 엔진이 식은 후 다시 남으로 남으로 달려 백무동에 도착하니 저녁 어스름이 내린다.

작년에 묵었던 황토민박으로 들어가니 마침 큰 방이 비어 그리로 들어갔다. 거실도 우리 차지, 부엌도 우리 차지라 널널하게 짐을 늘어놓고는 저녁준비를 하였다. 우선 제일 무거운 카레와 짜장을 먼저 처치하기로 하였다.

나는 짐이 무거워 밑반찬이라고는 달랑 김과 볶은 김치만 사갔는데 힘 좋고 솜씨 좋고 인심 좋은 인순씨는 다섯 가지 반찬을 직접 해 와서 우리는 그야말로 진수성찬으로 저녁을 먹었다.

 

옥황상제 알현이요~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번쩍 띄게 날씨가 맑았다. 작년에는 집중호우로 통제된 매표소 앞을 룰루랄라 신나게 통과하여 들어가니 새삼 감회가 새롭고 벌써 반은 성공한 기분이었다.

이건 노루오줌, 이건 모싯대, 이건 까치수염

하며 있는 실력 없는 실력 모두 짜내서 외우며 가파른 길을 올라갔다. 그 밖에도 꼬리풀, 하늘 말나리, 산 수국, 바위채송, 며느리 밥풀꽃, 술패랭이, 기린초, 물레나물, 비비추, 동자꽃, 구절초, 등등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야생화가 만발하여 감탄사를 연발하며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가다가 인순씨와 양순씨가 안 오기에 물가에서 간식을 먹으며 쉬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기에 올라오는 아이에게 여자 두 명 올라오는 거 못 봤냐고 했더니 봤다고 하며 조금 뒤에 온다고 한다. 과연 얼마 안 가 인순씨가 오는데 양순씨가 몸이 안 좋아 토하니 우리 먼저 가서 천왕봉에 갔다 오는 동안 자기들은 장터목 대피소에서 쉬겠다고 한다.

우리 넷은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하여 3시간 걸린다는 장터목에 오니 4시간이나 걸렸다. 짐을 대피소 안에 두고 카메라만 들고 천왕봉에 오르는데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을 배경으로 서있는 고사목이 어찌나 환상적인지 우리는 그야말로 천상으로 오르는 기분이었다.

천왕봉 가까이 가려니 구름이 몰려오고 멀리서 우르릉 우르릉 산이 우는 소리를 낸다. 맨몸으로 왔는데 소나기라도 만나면 큰일이다 싶어 헐레벌떡 정상으로 오르니 많은 사람들이 사진들을 찍고 있다. 우리도 천왕봉 표지석을 붙잡고 사진을 찍었다. 천왕봉 표지석을 보니 옥황상제라도 알현한 듯 가슴이 벅차고 한 마디로 감개무량이다.

정상 바위 위에서 무슨 에베레스트라도 정복한 듯 온갖 폼을 잡으며 사진을 찍고는 하산을 서둘렀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고 능선을 넘는 구름이 지리산에 신비감을 더해준다.

한참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양순씨와 인순씨가 나타난다. 어찌나 반가운지 죽었던 동생이 살아온 듯 반갑다. 양순씨가 아침에 근육이완제를 먹은 게 탈이 났던 것 같다고 한다. 너무 힘들어 도로 내려간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생생한 얼굴을 보니 가슴을 짓누르던 바위 덩어리가 없어진 듯 날아갈 듯한 기분이다. 빨리 갔다 오라고 하고는 장터목산장에 도착해 라면을 끓여 먹고 다시 세석 산장으로 출발하였다.

연하봉을 지나 세석으로 가는 능선 길은 흰 구름을 배경으로 선 구상나무와 야생화들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을 걷는 기분이다.

가도 가도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길을 따라 무념무상으로 걷다보니 촛대봉이 나타난다. 촛대봉에 오르니 오늘의 목적지 세석산장이 발아래 다소곳이 엎드려있다. 발걸음도 가볍게 내리막길을 내려와 산장에 오니 6시부터 자리배정을 한단다.

밖의 취사장에 자리 잡고 앉아 저녁을 준비하려니 버너가 없다. 코펠도 있고 가스도 있는데 양순씨와 인순씨가 버너를 가지고 있으니 대책이 없다. 두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너무 늦을 것 같아 옆에 식사를 마친 부부에게 버너를 빌려 햇반을 데우고 미역국도 끓였다.

밥을 다 먹고 두 사람을 위해 햇반을 뜨거운 물에 담가 놓고 국도 남겨 놓았다. 바람이 불어 추웠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 자리를 빼앗길 것 같아 교대로 자리를 지키며 세수도 하고 두 명씩 보초를 섰다.

주위가 서서히 어두워지는데 두 사람이 안 보이니 오다가 또 어디가 아파서 못 오나 슬슬 걱정이 된다. 안타깝게 기다리다보니 헛것이 보이는지 인순씨도 아닌데 꼭 인순씨 같아 몇 번 씩이나 엉뚱한 사람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무 일 없이 도착하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있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인순씨가 나타난다. 너무도 반가와 빨리 이리 오라고 자리에 앉히고 저녁을 먹으라고 하였다.

세석산장의 관리인은 어찌나 기세가 등등한지 사람들이 설설 긴다. 취침 전에 요가를 한다고 하여 거실로 내려가니 깔판도 없이 맨바닥에 머리를 박고 이리 엎드리고 저리 엎드리며 요가를 하라고 한다. 관리 아저씨는 요가를 많이 했는지 아주 유연하게 잘도 한다. 나는 마른 장작개비 같이 몸이 굳어 대충 시늉만 내다가 올라왔다. 그래도 다리가 개운한 게 몸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방으로 들어와 물티슈로 발과 몸을 대충 닦고는 자리에 누웠다. 잠이 안 와 뒤척뒤척하는데 갑자기 한 여자가 울며불며 밖으로 나간다. 무슨 큰 일이나 났나 했더니 그건 아닌지 잠시 후 조용해진다.

 

용량초과

자다 깨다 하며 비몽사몽간에 뒤척이는데 곳곳에서 벌써 출발 준비를 하는지 비닐주머니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웅성대는 소리와 들락날락하는 소리 때문에 잠자기는 다 틀렸다.

우리도 일어나서 가다가 벽소령에서 아침을 먹기로 하고 4시 반에 출발하였다. 밖으로 나오니 별이 하늘 가득 박혀 아침인사를 한다. 은하수도 보이고 동쪽에서 떠오르는 오리온도 보인다. 은하수 사이로 흐르는 별똥은 미처 소원을 빌기도 전에 사라져 항상 아쉬움을 남긴다.

머리에 랜턴을 붙이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찾아 가려니 장님 생각이 난다. 잠시만 앞이 안 보여도 이렇게 불편한데 평생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장님은 얼마나 갑갑할까? 모든 것은 없어봐야 그 존재 가치를 알게 되나보다. 이래서 있을 때 잘 하라는 말도 생겼나보다.

랜턴 빛에 의지하여 얼마를 가다보니 사방이 어슴푸레 밝아오고 멀리 산 밑으로 운해가 가득하다. 흰 구름 위로 솟아있는 봉우리들은 흰 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 고요하고 아름답다. 산에 와서 이런 절경을 대할 때마다 참 세상에 태어나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 속에 살게 해줬는데 더 이상 뭘 바라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절로 순수해지고 온갖 욕심에 사로잡혀 아등바등 살아가는 내 모습이 딱하다는 생각도 든다.

칠선봉을 지나 주능선 길을 따라 가는데 밑에 깔린 구름이 순식간에 붉은빛으로 변한다. 돌아보니 먼 능선에 해가 떠오르고 있다. 떠오르는 해는 한 인생의 탄생을 보는 듯 힘차고 반갑다. 반면 지는 해는 한 인생의 마감을 보는 듯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남긴다. 나도 지는 해와 같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임종을 맞고 싶다.

선비샘에 도착하니 몇 사람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우리는 벽소령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기 때문에 물을 채우고 고양이 세수를 하였다. 세수를 한 다음 대충 찍어 바르고는 다시 출발했다.

능선 길에는 여전히 무수한 야생화가 피어 있었는데 어제 외운 이름을 복습하며 걸어갔다. 그런데 도무지 이름이 아리까리하여 떠오르지를 않는다. 그래서 노루오줌을 사슴오줌이라고 하질 않나, 까치수염은 까마귀수염이라고 하질 않나, 심지어 며느리밥풀은 며느리발톱이라고 하니 서로가 기가 막혀 배꼽 빠지게 웃어댄다. 그래도 바보 네 명이 모이면 똘똘이까지는 안 되도 보통 인간은 되는 것 같다. 한 사람이 엉뚱한 소리를 하면 제대로 기억한 사람이 고쳐주며 이름을 기억해 냈다.

인간의 두뇌용량은 제한되어 있는데 수 십 년 동안 하도 많은 것을 입력했더니 이제 용량이 초과되어 입력이 안 된다. 업그레이드는 안 되니 먼저 것을 삭제해야 하는데 삭제하는 양보다 줄어드는 두뇌용량이 더 커서 아무 대책이 없다.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하니 바람이 어찌나 센지 버너를 켤 수가 없다. 대피소 벽에 바짝 붙어 불을 붙여도 바람이 이리 저리 방향을 바꾸니 어느 세월에 물이 끓을지 까마득하다. 옆의 사람을 보니 바람막이로 버너를 가리고 금방 끓인다. 그 사람들이 다 끓인 후 바람막이좀 빌려 달라고 하여 겨우 북어국을 끓이고 햇반을 데웠다. 갈수록 낯가죽이 두꺼워져 아무한테나 이것저것 잘도 빌린다.

이틀을 걷다보니 연옥씨는 발톱이 아프다고 밴드를 덕지덕지 붙이고 애란씨는 발목이 아프다고 파스로 도배를 하다시피 한다. 진미씨는 물 뜨러 가다가 엎어져 무릎을 까는 바람에 무릎에 반창고를 붙이니 무슨 패잔병 부대가 된 듯하다.

연하천을 지나면 물이 없을 것 같아 점심때 먹을 햇반까지 데워서 하나씩 배낭에 넣고 모처럼 다 같이 출석부 사진을 찍고는 벽소령을 출발하였다.

얼마를 더 가니 커다란 바위가 나타났는데 이정표를 보니 형제봉이라 쓰여 있다. 바위가 하나 밖에 없는데 왜 형제 인가 했더니 뒤에 작은 바위가 하나 더 있고 바위 사이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고고하게 서 있다. 흙도 별로 없는 바위틈에서 어떻게 저렇게 큰 나무가 자라는지 참 생각할수록 희한하다. 말라 죽지 않으려고 죽자 사자 바위틈으로 파고 들어가나 보다.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완전 시장 바닥이다. 겨우 긴 의자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아 오이와 누룽지를 먹고는 다시 출발하였다.

화개재를 지나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은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이다. 중간 중간 쉬는 곳이 없으면 숨이 끊어질 지경이다. 삼도봉에 오르니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라고 쓰여 있는 삼각형 모양의 표지석이 우리를 맞아준다. 표지석 옆의 바위 위에서 바라보니 멀리 노고단이 보인다. 거기까지 가야할 생각을 하니 그저 아득하기만 하다. 그래도 맨땅에서 날밤 새울 수는 없으니 또 아픈 다리를 끌고 출발했다.

다들 물이 떨어져가니 그저 남은 물로 입술만 축이며 가는데 앞에서 오던 어떤 여자가 임걸령 가면 물이 있다고 알려준다. 우리는 너무도 반가와 남은 물을 다 먹고는 부지런히 임걸령으로 내려갔다. 과연 임걸령에 도착하니 꿀맛 같은 샘물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는 신이 나서 실컷 마시고 병에 채운 후 얼굴 닦고 발 닦고 수건까지 빨며 물 잔치를 벌였다.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고 나니 불이 날 것 같은 발도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우리는 발걸음도 가볍게 노고단을 향해 다시 출발을 하였다. 노고단 쪽에서 임걸령으로 올 때는 그렇게 먼지 몰랐는데 역방향으로 가니 왜 그리도 멀고 힘든지 도무지 길이 끝날 것 같지 않다. 그래도 날씨가 춥도 덥도 않고 가끔씩 구름이 가려 그야말로 날씨 하나는 끝내준다. 한 마디로 대박이다.

대학교 때 종주할 때는 대피소라는 것도 없고 관리소도 없어 입산 통제도 없었다. 들어가든지 말든지 죽든지 살든지 누구하나 신경 써주는 사람도 없으니 그냥 산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일주일 내내 비가 오고 태풍이 불어 배낭을 지고 능선 길을 걷다가 자꾸 자빠져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안개는 어찌나 짙은지 몇 미터 앞을 볼 수 없고 몇 날 며칠 동안 제자리를 뱅뱅 도는 느낌이었다. 바람이 어찌나 강한지 텐트를 칠 수가 없고 치려면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우리는 아무래도 조난당한 것 같다는 두려움을 안고 계속 걷다가 겨우 땅을 파서 만든 군 초소를 발견하고는 그 안에 겨우 텐트를 치고 잠을 잤다. 이렇게 일주일을 땅바닥에서 뒹굴다가 중산리로 내려 왔을 때는 거지 중의 상거지들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찌나 날씨가 좋은지 사흘 내내 비 온다던 기상대 예보도 아랑곳없이 수십 킬로 먼 곳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한 마디로 화룡점정이요 금상첨화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돼지평전을 지나 노고단 고개에 오르니 갑자기 구름이 몰려온다. 부지런히 노고단 대피소로 들어가 자리 배정을 받았다. 우리는 6명인데 5명밖에 예약을 못해 한 자리 더 없느냐고 하니 아직 취소된 것이 없으니 6명 값을 내고 5명이 끼어서 자라고 한다. 아니 끼어서 자려면 그냥 끼어 자야지 왜 돈을 내냐고 했더니 그러면 그냥 밖에서 자라고 호통이다. 밖에서 자라고 하니 더 이상 우길 수도 없어 6명 값을 다 내고는 다섯 자리표만 받아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와 마루 계단에 앉아 있는데 자리가 남았는지 관리인이 나와 예약 못한 사람은 모이라고 한다. 동작 빠른 진미씨가 잽싸게 달려가 표 하나를 받아왔다.

자리 문제는 해결 됐으니 마음 편하게 취사장으로 가 라면을 끓여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며 밖을 보니 안개가 점점 심해지고 날이 어두워져 한 치 앞이 안 보이게 생겼다. 인순씨와 양순씨가 노고단 고개에서 표지판을 못 보고 엉뚱한 곳으로 가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어 표지판을 잘 보고 노고단대피소 1.3km쪽으로 가지 말고 0.3km 쪽으로 오라고 문자를 보내고 밥을 먹는데 답장이 온다. 지금 임걸령에서 쉬고 있으니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라고 한다.

임걸령에서 여기 오려면 두 시간은 걸릴 텐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초행길인 두 사람이 어떻게 오나 생각하니 걱정이 태산이다. 임걸령 아래 있는 물을 먹고 오라고 다시 전화를 하니 그렇지 않아도 지금 물 먹고 발 닦고 빨래하며 신나게 쉬고 있다는 것이다.

저녁까지 잘 먹고 오랜만에 치약으로 이도 닦고 자리에 누우니 발은 욱신욱신 쑤시고 두 사람 걱정이 되어 잠이 안 온다. 이러다가 길을 잘못 들면 엉뚱한 계곡에서 헤매다가 시체로 발견 되는 거 아닌가 싶고 만약에 시체를 끌고 서울 가면 인순씨 남편과 애들 얼굴을 어찌 보나? 별별 생각이 다 든다.

9시에 소등을 한 후 어둠 속에서 가끔씩 핸드폰 시계만 쳐다보고 있는데 임걸령에서 떠난 지 두 시간이 넘어도 오지를 않는다. 아무래도 엉뚱한 곳으로 갔나보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아무래도 잘못 온 것 같다고 노고단 정상이란 표시만 있고 대피소 표시가 없단다. 넓은 곳에 왔느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나온 방향에서 왼쪽으로 돌면 오래된 허름한 이정표가 또 있고 거기서 0.3km라고 쓴 곳으로 오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끊는다.

그러고도 얼마를 지나 전화가 없기에 잘 오나보다 하며 기다리는데 또 전화가 울린다. 아무리 내려와도 불빛이 안 보이니 이거 잘못 온 거 아니냐고 한다. 돌길로 내려오는 중이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조금만 더 오면 불빛이 보일 거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한다.

이렇게 애를 태우기를 3시간, 드디어 인순씨가 배낭을 메고 들어선다. 진미씨, 애란씨, 연옥씨도 잠을 못 잤는지 일어나 얼른 배낭을 받아준다. 양순씨는 왜 안 오냐고 했더니 화장실에 갔단다.

두 명이 무사히 도착한 걸 보고 다시 담요를 끌어 올려 잠을 청했다.

 

누구 덕?

아침에 날이 맑으면 노고단 일출을 보려고 5시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여전히 안개가 자욱해 일출 보기는 틀렸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 누워 있으려니 여기서 종주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일어나 부스럭거리는 바람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냥 눈을 감고 누워 있다가 다들 일어나기에 취사장으로 가 남은 음식을 모두 털고 햇반 두 개를 더 사 아침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내 핸드폰이 울린다. 열어보니 장인순이 보내는 신호다. 아니 이거 인순씨는 내 앞에서 밥 먹고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어제 전화하다 끊긴 것이 지금 울리나? 하며 끊고 다시 밥을 먹는데 또 전화가 울린다. 이번에는 다른 번호다. 받아보니 장인순씨를 아느냐고 한다. 지금 같이 있다고 하니 화장실에 장인순씨 지갑이 있으니 찾으러 오란다. 작은 가방에 핸드폰이 있어 마지막 통화했던 번호를 누르니 내가 받은 거란다.

인순씨에게 애기하니 깜짝 놀라 화장실로 뛰어간다. 가서 찾아와서는 큰일 날 뻔 했다고 그 안에 주민등록증에 카드에 현금 20만 원 정도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 돈이면 우리 모두 점심을 먹어도 몇 번을 먹겠다고 했더니 오늘 점심 자기가 사겠다고 흔쾌히 약속한다. 그러자 양순씨는 맥주는 자기가 내겠다고 인심 팍팍 쓴다.

느긋하게 커피까지 마시고 그래도 그냥 내려가기는 아쉬우니 노고단에나 다시 올라 가기로 하였다. 노고단이라는 말은 늙은 시어머니의 제단이란 한자말에서 온 것으로, 고려 때는 노고단에서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노고단 대피소 앞에는 늙은 시어머니 조각상이 문 앞에 서 있다. 시어머니상 옆에서 다시 6명이 증명사진을 찍고는 양순씨는 대피소에서 쉬겠다고 하여 다섯 명이 안개 속으로 다시 노고단에 올랐다. 노고단 하늘 정원은 10시부터 개방이라 그냥 가짜 노고단 탑에서 만세를 부르며 사진을 찍고는 1.3km 임도 길로 산책을 하며 내려왔다.

여기도 지금까지 본 야생화들이 있어 다시 한 번 복습을 하고는 대피소로 돌아왔다. 직원숙소 옆에 숨겨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니 깨끗한 양변기에 비데도 설치됐고 샤워기도 있었다. 직원들만 쓰려고 화장실 팻말도 안 붙인 이곳을 눈치 빠른 진미씨가 알아내 직원 눈에 띄지 않게 교대로 살짝 들어가 볼일을 보고 잽싸게 나왔다. 3일 동안 밀렸던 재고품까지 모두 정리를 한 후 배낭을 지고 성삼재로 향했다.

룰루랄라 노래하며 내려오는데 첫날부터 울어대던 휘파람새는 마지막 날까지 휘파람을 부르며 우리를 환송한다. 지리산은 휘파람새가 완전 접수한 모양이다. 온 산에 휘파람새의 휘파람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휘파람새의 환송을 받으며 성삼재에 내려오니 성삼재에 오르는 길은 차들이 끝이 안 보이게 밀려 꼼짝을 못 한다. 아침 630분에 주차장이 만 차 되었으니 들어오지 말라는 방송만 되풀이 하고 있다.

휴게소 앞 정자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제 시간에 버스가 오려나? 걱정을 하고 있는데 그래도 정시에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올라 지그재그 길을 휘돌며 내려오려니 멀미가 나 방금 먹은 아이스크림이 다시 나오려고 한다. 그래도 꾹 참고 구례에 도착해 버스표를 사려니 서울 가는 건 좌석이 없단다.

전주까지 가서 다시 서울 가는 버스로 갈아타라고 일러준다. 전주 가는 버스표를 끊고 식당에 가 추어탕과 생선구이를 시켰다. 맥주잔을 들고 다음 산행을 위하여!”를 외치며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였다.

진미씨는 남원에서 내려 대구로 향하고 우리 다섯 명은 전주에서 서울 가는 버스에 올랐다. 3일을 날밤 새웠더니 모두 기절하다시피 비몽사몽간에 헤맨다. 밖을 보니 곳곳에서 세찬 비가 쏟아진다. 이렇게 곳곳에서 비가 쏟아지는데 34일 동안 비 한 방울 안 맞고 지리산 종주를 마친 것이 실로 꿈만 같고 이게 도대체 누구 덕인가? 싶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인순씨가 평소부터 인심 팍팍 쓰고 양순씨가 지리산에게 미리미리 양해를 많이 구한 덕이 아닌가 싶다.

40년 만에 환갑이 다 되어 지리산 종주를 하고 나니 말 그대로 감개가 무량하고 내 평생에 다시 이런 기회가 올까? 싶기도 하다. 지리산이 나를 받아만 준다면 다시 한 번 Mr.지의 품속에 안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