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08. 11. 27. 레바논, 시리아, 요르댠, 이스라엘, 두바이

아~ 네모네! 2012. 10. 14. 21:09

 

 

 

 

 

 

 

 

 

 

 

 

 

 

 

 

 

 

 

 

 

<기행문>

못 먹어도 고~

이현숙

 

얼마 전 아침밥을 먹으며 요르단에 가겠다고 하니 남편이 자기 정년퇴직 할 때까지만 다니라고 은근히 일침을 놓는다.

나는 인생 퇴직할 때까지 갈 건데?” 하니까 밥 굶어도 갈꺼냐고 한다.

밥은 굶어도 여행은 가야하는데?” 하니 기가 찬 듯 쳐다본다.

내가 지금까지 밥을 안 굶어봐서 그런지 모르지만 솔직한 심정은

굶어도 GO! 못 먹어도 GO!’ 이다.

이거 내가 생각해도 중증인 것 같다. 하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빚을 내서라도 여행은 가고 싶다.

 

1127일 우째 이런 일이? (인천 공항)

저녁 8시에 공항에 도착하여 김사장이 여권을 걷는데 갑자기 수런수런한다. 웬일인가 했더니 한 회원이 구멍 뚫린 옛 여권을 가져 왔다는 것이다. 여권을 새로 만들었는데 찾아도 안 보여 유효기간이 지난 여권을 그냥 가져 왔단다. 김사장님과 대장님은 난감하여 어쩔 줄을 모른다.

이걸로는 도저히 갈 수 없으니 집에 가서 다시 찾아보라고 대장님이 택시까지 잡아주고 기사 팁도 3만원 주겠다고 하며 돌려보낸다. 짐을 끌고 되돌아가는 그 회원의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허탈하고 찌운했다.

일단 나머지 회원들끼리 체크인을 하려니 이번에는 한 회원의 여권에 메모한 낙서가 있어 여기서는 통과시켜주지만 그쪽에서 입국을 안 시켜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입국을 못하고 돌아오더라도 공항측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출국수속을 마쳤다. 면세점에서 돌아다니는데 아까 돌아간 회원이 새 여권을 찾아서 오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비행기로 올랐다.

비행기에 오르니 좌석에 여유가 있어 보인다. 윤영자님과 나는 잽싸게 뒤쪽 네 자리 붙은 데로 옮겨갔다. 조금 있으니 내 자리는 임자가 나타나 다시 두 자리 쪽으로 옮겨갔다. 윤영자님은 끝까지 주인이 안 나타나 혼자 네 자리 차지하고 누웠다. 길이도 짧은 윤영자님은 네 다리 쭉 뻗고도 위 아래로 자리가 남는데 장대같이 긴 부반장님은 한 자리 차지하고 꼿꼿이 앉아서 간다. 이걸 보니 사람은 그저 찍기를 잘 해야 하나보다.

그래도 나는 두 자리 차지하고 옆으로 잔뜩 웅크리고 누웠다. 10시간이 넘게 이리로 한 판, 저리로 한 판 돌아누워 자고 일어나니 그렇지 않아도 아네모네인 내 얼굴이 완전 메주덩이가 돼버렸다. 아네모네는 면목중학교 근무할 때 애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처음에는 아네모네 꽃인 줄 알고 기뻐했더니 그게 아니고 ~ 네모네!’란다.

 

1128일 이재호씨 동생 뻘은 되겠네. (레바논 베이루트)

두바이 공항에 내려 다시 환승 수속을 밟는데 윤영자님이 바구니에 넣은 시계가 없어졌다고 한다.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고 하기에 빈 바구니 놓는 레일 밑을 들여다보니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여행 가서는 종이 한 장이라도 잃어버리면 서운하다.

2시간 동안 면세점 구경을 하다가 레바논의 베이루트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필이면 내 옆에 외국인 여자가 앉는다. 3시간 반이야 못 참으랴 싶어 그냥 앉아있었다. 영어가 짧으니 한 마디도 안 하고 앉았다가 화장실 갈 때

“Excuse me." 한 번 하고, 갔다 와서 ”Thank you." 한 번 했다.

내릴 때가 가까워지자 옆의 여자는 얼굴의 털 뽑고, 화장하고, 매니큐어 칠하고 향수 뿌리고 한참 단장을 한다. 애인이라도 나오는 모양이다. 호선생님이 창밖을 보라고 하여 쳐다보니 무지개가 떴다. 아마도 밑에 소나기가 내렸나보다.

베이루트 공항에 내려 입국수속을 하다가 박남철님이 사진을 찍었더니 공항 직원이 카메라를 빼앗아 지워버린다. 오랫동안 내전을 겪었다고 하더니 아직도 경비가 삼엄한 것 같다. 밖으로 나가니 현지 가이드 우경석씨가 반갑게 맞이한다.

레바논은 히브리어로 희다는 뜻이라고 한다. 레바논은 숲이 많고 사막이 없으며 중동지방이지만 석유가 한 방울도 안 난다고 하였다. 레바논 국기에는 가운데 백향목이 그려져있다. 백향목은 레바논에서만 자란다고 하는데 단단하고 항균 방부 효과가 있어 페니키아인들이 이걸로 배를 만들어 타고 다니며 해상을 장악했다고 한다. 성경에도 다윗이 성전 지을 목재를 마련하기위해 레바논의 백향목을 수운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레바논의 백향목이 좋기는 좋은가보다.

조금 전까지 비가 내렸다고 하더니 땅이 젖었다. 지중해 바닷가에 있는 라우쉐 비둘기 바위를 보러 갔을 때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우산이 큰 짐에 들어있어 다들 멈칫 거리고 있는데 대장님이 빗속으로 용감하게 나가신다. 다들 버스에서 내려 비둘기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쫓기듯 들어왔다. 비둘기 바위는 비둘기 서식지라고 하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비둘기는 보이지 않았다.

시청광장과 로마 유적지를 보고 제이타 동굴로 향하였다. 제이타 동굴은 상 하 두 개의 동굴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동 최대의 동굴이라고 한다. 12월이 되면 눈 녹은 물이 많아져 1층 동굴은 문을 닫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운 좋게 보트를 타고 다 돌아볼 수 있었다. 이 동굴은 특히 종유석과 석순이 발달되어 기기묘묘한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카메라는 입구에 맡기고 들어가야 하므로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게 아쉽다. 우리는 이건 마법의 성이다, 이건 삼장법사다, 이건 마리아상이다.’ 하고 이름을 붙이고 다니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제이타 동굴에서 나와 바이블의 어원이 된 도시 비블로스로 향했다. 비블로스는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로 페니키아인들은 레바논에서 나는 백향목을 수출하고 이집트산 파피루스를 사들여 그리스 등지에 팔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특히 이곳은 이집트산 파피루스의 집산지로 유명했는데 비블로스라는 도시 이름도 파피루스를 뜻하는 그리스 말이라고 한다. 이 비블로스가 성경 즉 바이블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비블로스의 페니키아성에 도착하니 벌써 황혼이 깃들고 문 닫을 시간이 다 됐다. 거대한 성채에 올라서니 지중해가 한 눈에 들어오고 신전 터, 열주로 등이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서서 신비감을 자아냈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부지런히 돌아보는데 벌써 사방이 캄캄해지고 관리인은 빨리 나오라고 호루라기를 불어댄다. 쫓겨나다시피 성을 나와 버스로 돌아오니 부반장과 한 회원이 보이지 않는다. 김 사장님이 찾으러 갔는데 버스가 우리가 내린 곳에 있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 걸 모르고 처음 장소로 갔다고 한다.

여기서 다시 오늘의 숙박지 자흘레로 이동하였는데 자흘레는 가파른 산 위에 있는 동네였다. 깜깜한 밤에 아슬아슬한 산길을 지그재그로 올라가는데 간이 콩알만 해졌다. 운전 실력이 이재호씨 만은 못해도 동생뻘은 되겠다.

 

1129일 번갯불에 콩 구어 먹기 (레바논 자흘레)

자흘레는 해발고도 1000m라서 아침에 일어나니 퍽 쌀쌀하다. 산골 마을이라 그런지 방도 춥고 화장실에 비데도 없다. 뒷물을 하려면 욕조의 수도꼭지에 앞으로 한 판, 뒤로 한 판 엉덩이를 들이대로 씻어야한다.

아침 식사 후 바알벡으로 이동하였는데 바알벡은 베카평원의 비옥한 토지에 위치해 옛날부터 농업이 발달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 사람들은 포도의 신인 바알을 섬겼다고 한다. 바알벡 신전은 로마시대에 세운 신전인데 비너스 신전, 제우스 신전, 박카스 신전 등이 남아있었다. 그 규모도 어마어마하여 그리스의 팔테논 신전보다 훨씬 낫다고 다들 혀를 내두른다.

무엇보다 맘에 드는 것은 들어가지 말라고 막아놓은 곳도 없고 경비원도 없어서 우리 맘대로 성벽에도 올라가고, 사자상의 입속에 손도 넣어 휘젓고, 아무데나 올라가 맘대로 사진 찍으니 모두들 물 만난 고기 마냥 신이 났다. 단지 가이드 우경석씨만 우리들이 사진 찍는 걸 보면 너무 아슬아슬해서 눈 뜨고 볼 수가 없으니 제발 그런데는 올라가지 말라고 통사정을 한다.

출구 쪽에는 박물관도 있었는데 석관 안에 유골도 있고 그 옆에는 눈물단지와 화장품을 넣었던 유리병 등이 놓여 있었다. 죽은 사람이 생전에 쓰던 물건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눈물은 닦으면 되지 뭣 하러 모아두었나 모르겠다.

바알벡 신전에서 흡족하도록 로마유적을 만끽하고는 시리아 국경으로 향했다. 국경에 다다르니 차들은 별로 없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 내려서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한다. 내려가니 커피 파는 할아버지가 우리 쪽으로 오며 먹어보라고 막 준다. 커피 장사까지 있는 걸 보니 시간이 엄청 걸릴 모양이다. 하지만 커피가 너무 써서 거저 줘도 못 먹겠다.

여기서는 입국 심사를 하며 아버지 이름을 쓰라고 한다. 한참 후 김정숙님을 불러서 가보니 아버지 이름을 묻더란다. 참 입국심사 방법도 가지가지다. 한 시간이 넘게 차에서 기다리려니 지루해서 면세점에서 사온 럼주로 럼주파티를 하였다. ‘술이란 좋은 것이여하며 즐기다보니 김사장님과 우경석씨가 여권을 가지고 온다.

시리아에 입국하니 길가의 소나무들이 모두 한 방향으로 쓰러져 있다. 우경석씨에게 물으니 바람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보니 소나무들은 모두 동쪽으로 누워 있었는데 이 지역이 편서풍지대이기 때문인가 보다. 부반장님은 아마 기도 중인가 보다고 조금 있으면 일어날꺼라고 농담을 한다. 여기서 기사의 성이라고 하는 크락데스 체발리에로 향했는데 이곳의 이름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라 외우기는커녕 보고 읽기도 힘들다. 4시에 성문을 닫는다고 하여 나는 듯이 달려 성 입구에 도착하니 358분이다. 운전기사가 어찌나 밟아댔는지 에버랜드에서 청룡열차 탄 기분이다.

어제 비블로스 성에는 닫기 1분 전에 도착했는데 그래도 오늘은 2분 전에 도착했다. 문이 벌써 반쯤 닫혔는데 겨우 허락을 받고 들어갔다. 여기서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100m 달리기 하듯 구경을 했는데 석양을 배경으로 선 모스크를 바라보니 자신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이 성은 십자군 성채로서 페르시아 장군이 계속 공략해도 난공불락이라 한 가지 꾀를 냈단다. 가짜 십자군 수장의 편지를 보내 전쟁이 끝났으니 성을 비우고 돌아가라고 하였다. 이 편지를 받고 십자군의 장군은 돌아가고 페르시아군은 손쉽게 성으로 입성하였다고 한다.

우리만 늦은 줄 알았더니 한 아가씨가 성 위에 앉아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기에 코리아라고 했더니 자기는 뉴질랜드에서 왔단다. 뉴질랜드 아가씨와 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오니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했다.

여기서 나와 라타키아로 이동하는데 버스에서 대장님이 가진 건 술밖에 없다고 하자 호선생님이 술병을 들고 배복순씨가 안주를 들고 앞에서부터 일일이 대접을 한다. 남편은 술 상무에 부인은 안주 상무 하는 걸 보니 보면 볼수록 천생연분이요 찰떡궁합이다. 술이 들어가자 호선생님이 뒤쪽으로 와 자기는 평생 카메라 들고 찍쇠 노릇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기행문에서 주인공이 못 된다고 푸념이다. 주인공이 되려면 나와 룸메이트를 해야 하는데 그럴 가망이 없으니 주인공 되기는 틀렸다는 것이다.

라타키아의 호텔에 도착하여 저녁식사 할 때 대장님이 태권도 시범을 보였다. 레바논 기사는 여기서 작별하고 다시 레바논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자기도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질 않나 호선생님을 따라 태권도 폼을 잡지 않나 하여튼 한참 재롱이 잔치를 하고는 본국으로 돌아갔다.

 

1130일 미아가 아프다구? (시리아 아파미아)

아직도 시차 적응이 안 됐는지 새벽 3시면 깨서 잠이 안 온다. 아침 일찍 항구에나 가볼까 하고 밖으로 나가니 호선생님 부부와 박용옥, 이수연씨도 나온다. 항구 찾아 삼만 리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뒤지고 다녀도 도무지 바다가 보이지 않고 무슨 물류창고 같은 건물만 보인다. 우리가 헤매고 다니자 경비원 같은 사람이 나온다. 바다가 어디냐고 하니 도로 밖으로 나가 왼쪽으로 가라고 가르쳐준다. 그쪽으로 가보니 컨테이너 박스만 가득한 항구가 나온다. 항구 구경은 포기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이 날은 라타키아에 있는 살라딘 성채를 보았는데 라타키아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라고 한다. 살라딘은 쿠르드족 성주인데 200년간 계속되어온 십자군 전쟁을 종식시킨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자비로운 군주로서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다 쓰고 그가 죽은 후 금고를 열어보니 한 푼도 남은 것이 없이 텅 비어있었다고 한다.

살라딘 성채는 사방이 절벽으로 된 요새로 부산의 영도다리처럼 다리를 오르고 내려 사람이 통행했다고 한다. 이렇게 완벽한 요새도 3톤이나 되는 돌 폭탄을 수없이 퍼붓자 이틀 만에 무너졌다고 한다.

여기서 나와 아파미아로 이동했는데 가는 도중 산꼭대기에 있는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밑에는 하얀 운해가 깔려있었는데 운해를 배경으로 사진들을 찍고 나자 대장님이 돌 틈에서 볼일들을 보라고 한다. 단체로 1500m 상공에서 운해를 보며 노상방뇨를 하니 그렇게 시원하고 유쾌 통쾌 상쾌할 수가 없었다. 그저 화장실은 뭐니 뭐니 해도 노천 화장실이 최고다.

길을 가다보니 아이들이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서 돌아온다. 일요일에도 수업을 하느냐고 물으니 여기는 토요일이 안식일이라 토요일에 놀고 일요일부터 수업을 한다는 것이다.

아파미아에는 거대한 돌기둥이 4~5km나 늘어서 있었는데 이런 것을 열주로라고 한단다. 로마인들은 식민지 개척을 하면 먼저 도로를 만들고 도시입구에는 열주로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기독교 전파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또 바울은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도로를 통해 로마 전체를 맘대로 다니며 전도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거의 독채전세를 내다시피 우리 외에는 별로 사람들이 없었는데 아파미아에 오니 관광객들이 엄청 많다. 아파미아를 떠나 알레포로 가는 길에 우경석씨가 조금 전에 열주로 본 데가 어디냐고 물으니 다들 멍하니 쳐다본다. 도무지 이름을 외울 수가 없다. 그러자 우경석씨는 자기 딸 이름이 미아인데 아프다고 하며 아파미아라고 알려준다. 정말 아랍지명은 외우기 힘들어 머리카락이 다 빠질 지경이다.

시리아는 가는데 마다 아사드 대통령 부자 사진이 걸려있는데 이들 부자가 30년 넘게 집권하고 있단다. 그 밖의 모든 체제가 북한과 아주 흡사하다고 한다.

시리아는 사회주의국가라 여행사도 참 투어라는 국영여행사 하나뿐이었다. 아파미아도 겨우 외웠는데 또 알레포를 외우려니 알레? 모를레? 하며 헛소리를 해본다. 알레포 성채도 4시에 문을 닫는다고 우경석씨는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는데 사회주의 국가라 그런지 기사 아저씨는 그저 마냥 느긋하게 꾸물거린다.

알레포에 도착하니 벌써 황혼이 깃든다. 문 닫히기 전에 들어가려고 성채를 향해 100m 달리기를 하다시피 뛰었다. 문을 닫으려는 것을 사정사정하여 들어갔는데 10분 안에 보고 나오란다. 성채는 넓고 볼 것은 많은데 무슨 007 작전하듯 달리며 봐야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성채는 전통적인 이슬람 군대의 요새인데 성채 밖에는 깊이가 20m 넓이가 30m나 되는 거대한 해자가 있다.

성에서 나오니 사방이 깜깜해졌다. 대 모스크를 볼 계획이었지만 포기하고 재래시장에 들르기로 했다. 시장은 사회주의 국가답지 않게 활기가 넘쳤다. 한국 관광객도 많이 오는지 한 가게의 아저씨는 시어머니를 위해 선물하세요.’라고 쓴 커다란 판을 들고 있었다. 아마도 한국 사람이 써 준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이 가게에 들러 2개에 10달러씩 주고 너도 나도 머플러를 왕창 샀다. 남자라고는 대장님 하나에 여자들만 바글바글하니 우리들이 대장님 마누라라도 되는 줄 알았는지 대장님보고 슈퍼맨이란다. 슈퍼맨 되는 거 식은 죽 먹기다.

 

121일 회충약을 먹였나? (시리아 팔미라)

아침에 일어나 로비에 가서 엊저녁에 쓴 엽서를 부치려고 하니 호텔에서는 부쳐주지 않는다고 박물관 가서 우표를 사서 부치란다. 세계 대부분의 호텔에서는 엽서를 부쳐주는데 역시 사회주의 국가라 서비스가 부족하다.

아침 식사하러 가니 호선생님 내외가 벌써 나와 식사중이다. 식사하다 말고 호선생님은 또 사진을 찍는다. 호선생님은 언제 어디서나 시간불문 장소불문 먹다가도 찍고 마시다가도 찍는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찍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박명수씨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올라가며 몇 살이냐고 물으니 소띠란다. 아니 그럼 나와 동갑? 나보다 10년은 젊어 보이는데 이럴 수가? 남편은 몇 살이냐고 물으니 돼지띠란다. 아니 그럼 환갑도 넘었다고? 이분들은 나이를 뼛속으로 먹었나 도무지 그런 나이라고는 상상이 안 간다. 방에 와 양숙씨에게 얘기하니 도대체 비결이 뭔가 물어보자고 한다. 그래서 이따가 도대체 뭘 먹어서 그렇게 젊은가 알아보기로 했다.

호텔을 떠나 대 모스크를 보러갔다. 그런데 아직 문이 안 열려 밖에서 구경만 하고 하마로 이동하였다. 가는 버스에서 유경석씨가 이슬람교에 대해 설명한다. 유태교와 이슬람, 천주교와 기독교는 모두 한 하나님을 믿는데 유태교와 이슬람은 예수님을 하나의 선지자로 보고 천주교와 기독교는 하나님의 아들로 본다. 아랍족은 아브라함의 첩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의 후손인데 유태인은 본 부인인 사라의 아들 이삭의 후손이다. 이슬람은 마호멧의 교리를 믿는다. 마호멧은 하심가문의 사람으로 유복자로 태어나 20세에 돈 많은 과부인 15살 연상의 하디제와 결혼한다. 돈 걱정이 없어진 그는 명상 중에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 교리를 듣는다. 하디제 얘기를 하다가 마누라의 종류에는 네 종류가 있단다. 네 마리 오리인데 돈 많고 순종적인 부인은 황금오리, 돈 많고 남편을 무시하는 부인은 탐관오리, 돈 없고 바가지만 긁는 부인은 어찌~하오리, 돈 많고 일찍 죽는 부인은 아싸~가오리란다. 내가 아는 오리와는 좀 다르지만 훨씬 실감나는 표현이다.

점심 가까이 되어 하마에 도착했다. 하마는 물속에 사는 하마인줄 알았더니 지명이란다. 하마에는 커다란 수차가 있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수차로 비잔틴시대에 도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모양은 우리나라 물레방아 비슷한데 규모가 엄청 컸다. 지름이 20m나 되는 거대한 물레방아로서 오른테스강의 물을 끌어올려 수로와 관개시설에 물을 저장하여 사용했다고 한다.

수차를 보고 버스에 오르니 이번에는 대장님이 코미디를 하신다. 옛날 옛적에 70대 노부부가 살았단다. 어느 날 할머니가 이혼을 요구하자 할아버지가 싫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럼 내기를 하자고 하였다. 무슨 내기냐고 했더니 오줌을 누가 멀리 누나 내기 하자고 했다. 첫 번째는 앉아서 누기였다. 둘이 앉아서 누었더니 똑같이 나갔다. 두 번째는 서서 누기였다.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이겼다. 할머니가 삼 세 번 해야 한다고 안 잡고 서서 누기 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이겼다. 결국 무승부라 이혼 안 하고 오래오래 잘 살았단다.

하마를 떠날 팔미라까지 가려니 심심해서 또 술 파티가 벌어졌다. 이번에는 박명수씨 남편 최창욱씨도 뒷좌석으로 와 합석을 했다. 우리는 이 기회에 젊음의 비결을 알아보려고 도대체 비결이 뭐냐? 회춘약을 먹었냐 회충약을 먹었냐? 하고 물으니 아무 것도 안 먹었단다. 아니 아무 것도 안 먹고 이토록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니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 조상을 잘 만났거나 아니면 부인이 황금오리인가?

팔미라에 도착하니 또 석양이 물들었다. 탁 트인 사막 한 가운데 야자수 숲과 거대한 유적지가 나타난다. 팔미라는 고대 오아시스 도시로 오리엔트 세계와 지중해 세계를 잇는 실크로드의 최대 경유지라고 한다. 팔미라는 로마시대부터 3세기까지 전성기를 누렸는데 물건을 싣고 사막을 건너는 대상들은 이곳을 사막의 궁전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팔미라의 클레오파트라라고 자칭했던 제노비아가 로마의 땅을 점령하고 로마와 적대관계를 갖게 되면서 급속도로 쇠퇴하였다. 그 후 11세기에 이 지역을 강타한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되고 모래바람에 묻혀 잊혀진 도시가 되었다가 20세기에 와서야 유적발굴이 이루어졌다.

팔미라에는 벨 신전과 열주로, 원형극장, 탑 모양의 묘지 등이 남아있었는데 붉은 석양을 배경으로 선 아취문과 거대한 기둥들은 마치 로마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을 주었다.

낙타는 2명이 5달러라고 하여 양숙씨와 같이 탔는데 마부 아니 낙타부가

너희 남편도 같이 왔냐?” 한다. 아니라고 했더니

남편은 한국에 있냐?” 하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그러면 너희들은 내 부인이다.” 하며 농담을 하였다.

나올 때는 공짜로 태워주겠다고 하여 타고 왔더니 양숙씨 머플러로 터번을 만들어주겠다고 한다. 머플러를 풀어주니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하더니 머리에 멋진 터번을 만들어준다.

유적지를 보고 나오니 산꼭대기에 있는 성에 버스가 올라갈 수 있다고 빨리 타라고 한다. 부리나케 올라타니 가파른 산을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다 올라가니 제법 큰 주차장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벌써 내려오고 있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또 닫히려는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가 미친 듯이 휘돌아 나왔다. 성채 위에는 눈썹 같은 초승달과 쎅씨한 별 두 개가 상큼하게 떠 있었다.

호텔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러 내려오니 김사장님이 라면을 끓이고 볶은 김치를 나눠준다. 우리는 오랜만에 한국라면에 한국김치를 보니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뚝딱 해치웠다.

방으로 들어와 한참 머리에 비누칠을 하는데 양숙씨가 화장실 문을 두드린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현지 가이드 후세인의 집을 방문하려고 하니 10분 안에 로비로 모이란다.

씻다말고 대충 물기를 닦은 후 머리를 싸매고 로비로 가니 10여명이 가겠다고 모였다. 대장님이 후세인 아버님 드릴 음료수를 사고, 몇 가지 선물을 가지고 그 집으로 갔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응접실이 있었는데 바닥에는 카페트가 깔리고 사방으로 돌아가며 보료와 방석이 깔렸다. 족히 30명은 앉게 생겼다. 후세인은 형, 동생, 형네 아이들, 동생네 아이들, 누나네 아이들, 하며 줄줄이로 불러들여 인사를 시켰다.

후세인은 인사를 시키며 이 아이는 장난꾸러기라 6개월 전 지붕 위에서 떨어졌는데 기적적으로 살았다. 불장난을 하다가 집을 다 태울 뻔 했다. 얘는 형의 아들인데 얘가 3개월 때 형이 죽었다 하며 일일이 설명을 하였다. 마지막에는 자기 아버지를 인사 시켰는데 80이 넘은 할아버지였다. 이 할아버지를 보니 애굽으로 내려가 바로 앞에서 온 식구들을 소개하던 야곱이 생각났다. 할아버지의 온 가족과 우리들은 기념사진을 찍고 그 집에서 대접한 차와 대추야자를 먹고 선물까지 받고는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은 새벽 5시에 산꼭대기 성채에 일출을 보러 가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122일 죽어서도 밤일하나? (시리아 다마스커스)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1인당 3달러씩 내어 택시를 타고 산 위 성채로 향했다. 성채문은 굳게 잠겨 있고 바람은 몰아치는데 성벽에 바짝 붙어 일출을 기다렸다. 일출을 기다리며 덜덜 떨면서 김사장님이 타온 커피를 마셨는데 그야말로 샤방샤방 죽여줘요.” 였다.

일출을 기다리는 동안 여명이 밝아오는 동쪽하늘을 배경으로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고, 천지창조 시 아담과 하와 같은 모습 등 온갖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생 쇼를 하다 보니 지평선에 갑자기 비행접시같이 가느다란 붉은 빛이 보인다. 비행접시는 점점 커지더니 사막의 붉은 해가 장엄하게 떠올랐다.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마냥 샷터만 눌러댔다.

팔미라를 떠나며 다시 한 번 유적지를 바라보니 아침 햇살을 받은 모습은 황혼 때와는 전혀 모습으로 다가왔다. 어제의 그 낙타부?는 낙타를 타고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배웅했는데 손을 흔들고 섰는 모습이 어쩐지 쓸쓸해보였다. 그는 손을 흔들다 못해 손 키스까지 보내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바그다드카페라는 휴게소에 들렀는데 높은 풍차를 이용해 지하수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바그다드카페라는 영화를 찍은 장소라는데 이 영화를 못 봐서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카페 분위기로 보아 애정영화가 아니었을까?

다시 출발하여 버스 속에서 유경석씨가 이슬람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이슬람에 대한 편견이 여러 가지인데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이것은 잘못된 것이란다. 이슬람인들은 종교의 자유를 준단다. 일부다처제라고 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고 시리아와 레바논은 11처제란다.

장례문화는 절대 화장을 하지 않는데 이것은 죽은 영혼이 다시 돌아왔을 때 거할 곳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장례는 주로 이슬람사원에서 치루는데 사원으로 갈 때 노제를 지내고 고인이 다녔던 곳을 두루 들러서 간다. 이때 부인은 따라가지 못하고 집에서 기도하는데 죽은 남편이 집에 왔을 때 부인이 기도하고 있어야 천국에 간다고 한다. 장지로 갈 때는 조문객들이 줄을 서서 머리 위로 관을 옮기는데 망자가 생전에 덕을 많이 쌓을수록 이 줄이 길어진다. 관은 묻지 않고 시신만 꺼내서 묻고 관은 다시 재활용한다. 남편과 부인은 포개서 합장을 하는데 만일 남편이 먼저 죽어서 묻혀있으면 다시 꺼내어 여자를 밑에 묻고 그 위에 남편을 묻는단다. 죽어서도 밤일을 하라고 이렇게 묻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피식 나온다.

얼마를 달려 말룰라인지 소룰라인지 하여튼 예수님 당시 쓰던 아랍어를 여태 쓰고 있다는 마을로 들어갔다. 언덕 위로 올라가니 성세르기우스 성당이 있다. 세르기우스는 시리아의 수호성인인데 국경수비대 장교였단다. 기독교로 개종한 후 이교도들이 그의 귀, , 입에 꼬챙이를 꽂아 끌고 다니며 주리를 틀어 죽였다고 한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으니 한 여자가 나와서 아람어로 주기도문을 낭독하였다. 가이드가 주기도문이라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지 무슨 소린지 도무지 모르겠다.

성당에서 나와 태클라협곡으로 들어갔다. 바울의 전도로 신자가 된 태클라라는 수녀가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도망쳤을 때 앞이 막혀 더 이상 갈 곳이 없자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자 바위가 갈라져 그 사이로 피신할 수 있게 되었다는 협곡이다. 태클라협곡을 지나자 성태클라수도원이 나타났는데 이 수도원은 태클라수녀의 무덤 위에 지어졌다고 한다.

수도원에서 나와 점심을 먹고 만년고도 다마스커스로 향했다. 다마스커스는 시리아의 수도인데 아랍어로는 다마시크 즉 성경에 나오는 다메섹이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바울이 기독교인들을 잡아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길 위에서 강한 광채를 발하는 예수님을 만나고 눈이 멀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그는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직가(straight street 직선길)에 사는 아나니아에게 안수를 받고 눈을 뜨게 된다.

다마스커스에 도착하여 우마야드 모스크를 보러갔는데 이 사원은 우마야드 왕조의 칼리프 알 와리드가 건립한 것으로 처음에는 다신교 사원으로 지었지만 그 후 그리스도교 성당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이슬람교의 모스크로 개조되었다. 남북에 미나렡(첨탑)이 있는데 남쪽 탑은 그리스도교 때의 탑이고, 북쪽 탑은 알 와리드 시대의 건축이다. 메카를 향한 남쪽 벽에 미흐랍(설교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사원이 처음이라고 한다.

우마야드 모스크 들어갈 때 여자들은 모자 달린 긴 외투를 입어야 들어갈 수 있는데 회색의 긴 외투로 머리까지 뒤집어쓰니 무슨 죄수들 같기도 하고 포로수용소로 끌려들어가는 포로들 같기도 하였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랬으니 시키는 대로 입고 신주머니에 신을 넣어 들고 줄줄이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회랑이 나온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니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하고 바닥에는 끝이 안 보이는 카페트가 깔렸는데 네모진 무늬 하나에 한 명씩 앉는다고 한다. 여자들은 분리대 뒤에 따로 앉아 예배를 보게 되어있다. 가운데는 세례요한의 머리 무덤이 있었다. 그는 헤롯왕의 비리를 책망하다가 옥에 갇혔는데 헤롯왕의 명령으로 목이 잘려 소반에 담겨 그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바쳐진다. 마가복음에 보면 그의 제자들이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여기다 묻었나보다. 그런데 머리 하나 묻기를 관은 사람 서너 명 들어가게 크고 무덤은 집채만 하다.

사원에서 나와 하이디에 재래시장으로 갔는데 여기는 100년 된 아이스크림 집이 있다고 꼭 먹어보란다. 유경석씨가 알려준 대로 원조집을 찾아들어가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1컵에 1달러인데 양도 많고 맛도 엄청 좋았다. 우리들이 날이 갈수록 펄펄 뛰며 돌아다니니 유경석씨는 우리 보고 마징가 제트 체력이란다.

오늘이 호선생님 환갑날이라 우리가 시장구경 하는 동안 김사장님은 케익 찾아 삼만 리 택시 타고 한 시간이나 되는 거리에 가서 케익을 구해왔다. 호텔에 돌아와 환갑잔치를 하는데 호선생님은 어제부터 몸살에 배탈에 쩔쩔 매느라 카메라도 차에 두고 내려 찍쇠 노릇도 못 하고 개점 휴업중이다. 호선생님은 하루 종일 누룽지 불린 것 몇 숟갈 먹고 우리는 호선생님 덕에 와인에 양주에 럼주에 케익에 온갖 호강을 다했다. 배복순씨는 호선생님 대신 술 상무 하느라 술병 들고 돌아다니고 대장님은 호선생님에게 외손주보면 주라고 기저귀 찬 애기 인형을 선물한다. 하긴 해외에서 환갑잔치 아무나 하나? 우리 자랄 때는 다마스커스 이름만 들었지 어찌 여기 와서 잔치할 줄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냐 말이다. 그저 이런 데 와서 잔치 하는 것만으로 도 큰 복이다.

 

123일 고스톱 송 (요르단 제라쉬)

아침에 시리아 민속 박물관을 보러갔다. 박물관에는 여러 가지 유물과 고대 시리아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본뜬 마네킹들이 전시되어있었다. 호화로운 자개장과 낙타 등에 얹는 가마도 있었고 인형극을 보는 남자들 모형도 있었다. 그 시대 사람들도 인형극을 즐겼나보다. 그런데 남자들만 보았는지 여자 모형은 없었다.

박물관에서 나와 직가로 갔는데 바울이 눈이 먼 후 아나니아를 찾아갔다는 똑바른 길을 걸었다. 멀쩡한 사람이 졸지에 장님이 되어 더듬거리며 갔을 생각을 하니 얼마나 복장 터졌을까 싶다. 그래도 바울이 눈을 뜨고 회심하여 평생 전도한 것을 생각하면 불행 중 다행이다.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 역사가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

다시 버스를 타고 국경으로 향했다. 오늘은 시리아에서 요르단으로 넘어가는 날이다. 국경에서 큰 트렁크를 모두 꺼내 X-ray 투시기를 통과시켰는데 샘플로 호선생님 가방을 개봉하였다. 출입국 관리인도 이번 여행의 주인공을 알아보는 모양이다.

요르단 국경에서 1시간 반을 노다 거리려니 지루하여 호선생님과 양숙씨는 서울 가서 부른다고 유경석씨가 가르쳐준 고도리송 연습에 열중이다. 고도리송은 유경석씨가 손님에게 배운 것이라는데 사랑의 미로에 고도리 가사를 붙인 것이다.

그토록 노름을 하건만 끝 발~은 알 수 없어요.

고도리에 멍든 가슴은 설사 한 방에 울지요.

그대 작은 밑천에 심어둔 싹쓸이여 상처를 주지 마오. 영원히~

끝도 시작도 없이 아득한 피박의 미로여~”

양숙씨는 화요반 가서 한다고 하고 호선생님은 일중에 가서 한다고 했는데 하려나 모르겠다.

간신히 국경을 통과하여 제라쉬로 가는 도중 대장님이 불로초 얘기를 하신다. 불로초는 다른 게 아니라 물이라는 것이다. 늙을수록 대뇌에서 물을 거부하기 때문에 물 먹기가 싫어진다는 것이다. 그래도 의무적으로 먹어야지 안 먹으면 죽을 날이 가까운 징조란다. 하긴 나무도 겨울이 오면 잎자루에 막이 생겨 물이 이동하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잎이 말라 떨어진다고 한다. 나는 식사 때 물 한 모금 먹으면 그만인데 아무래도 죽을 날이 멀지 않았나보다.

국경에서 1시간이 넘게 달려 제라쉬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로마시대의 유적지를 보았다. 제라쉬는 10개 도시의 연합체인 데카폴리스 중 1개인데 가장 큰 플라자(광장)을 가지고 있었다. 커다란 광장 주위로 원기둥이 늘어서 있고 그 위로는 수로가 이어져있었다.

유적지에는 제우스 신전, 박카스 신전, 아르테미우스 신전, 원형극장 등이 있었는데 아르테미우스는 성경에 나오는 아데미신이란다. 아데미는 여신이라 제사를 지낼 때는 소 이십 마리의 고환을 신상에 걸어주고 제사가 끝난 후에는 여자 사제들과 남자 사제들의 혼음이 성행했다고 한다.

30분 안에 빨리 보라고 하여 부지런히 걸었는데도 나올 때는 사방이 어두워져 캄캄해졌다. 다시 암만으로 이동하여 호텔에 들고 우경석씨는 집이 암만이라고 자기 집으로 갔다. 내 엽서는 부칠 곳이 없어 계속 가지고 다니다가 우경석씨가 부쳐주겠다고 하여 그에게 주었다. 암만은 해발 800m라더니 꽤 추웠다. 암만은 로마 비잔틴 시대에 필라델피아라는 이름으로 불려젔다고 하니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필라델피아 교회가 여기 있었던 모양이다.

 

12445°로 들어라 (이스라엘 예루살렘)

아침 식사를 하러가니 윤영자님이 사흘째 세금을 못 냈더니 죽겠다고 하며 콩알만 한 것 하나 누는데 어찌나 힘 드는지 머리가 터질 뻔 했단다. 여행이 길어지니 어떤 사람은 변비에 어떤 사람은 설사에, 감기, 몸살 등 등 모두 힘들어한다. 나도 여행 이틀째부터 잇몸이 들떠 앞니로 음식을 베어 물기가 힘들다. 과일을 먹으려면 자를 수가 없어 송곳니로 조금씩 긁어 먹는다. 다들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하는데 정상윤씨만 정상이다. 아무래도 이름을 잘 지어서 그런가보다.

이날은 이스라엘 국경을 통과해야하므로 7시에 호텔을 출발하였다. 이스라엘 국경으로 가는 도중 우경석씨가 이스라엘 입국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하였다.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나 하고 귀를 기울이니 출입국 관리인이 무슨 말을 하든 턱을 45°로 들고 딴 데만 쳐다보라는 것이다. 영어를 아는 것 같으면 시시콜콜 미주알 고주알 묻느라고 보내주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예스건 오케이건 무조건 한 마디도 대답하지 말아야 한단다.

요르단 국경을 통과하여 이스라엘 국경에 다다르니 과연 차들이 줄줄이 서 있다. 짐을 통과시키는 곳에서도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급행료를 주고야 겨우 통과시킬 수 있었다. 그룹심사가 안 돼 개별심사를 받아야했지만 그래도 한 줄로 서는 게 빠르다고 하여 한 줄에 모두 섰다. 그런데 아랍사람들이 어찌나 새치기를 잘 하는지 한 명이 슬금슬금 들어오면 자기 앞에 자기 아는 사람을 모두 넣어준다. 이러다간 언제 통과할 줄 몰라 철봉으로 된 분리대 양끝은 손으로 잡고 못 들어오게 막고 서 있었다. 내가 제일 앞에 섰었는데 조금 있다 보니 웬 꼬마가 철봉 밑으로 들어와 또 내 앞에 있다. 우리가 나가라고 마구 손짓을 하니 옆 라인의 어른이 슬그머니 데리고 간다. 우리 앞의 아랍인 할머니는 시간만 질질 끌다가 입국허가를 못 받았는지 기어이 뒤로 쫓겨 가고 말았다.

2시간이나 기다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오자 김사장님이 내 앞으로 들어와 상황 설명을 하고 대장님이 가져온 신랑 각시 열쇄 고리를 입국심사하는 아가씨에게 주었다. 지금까지 표독스런 눈초리로 째려보며 꼬치꼬치 묻던 아가씨는

“Thank you."하며 금새 만면에 웃음을 띤다. 옆의 아가씨에게 보여주며 자랑을 하고 신이 났다.

내가 여권을 내자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우경석씨가 가르쳐준 대로 턱을 45°로 올리고 딴청을 부리자 영어 못하냐고 묻는다. 또 못들은 척하고 있으니 김사장님에게 이 여자 영어 못하냐고 묻는다. 김사장님이 이 여자 영어 못하고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영어 못한다고 미리 선수를 친다.

이런 작전이 성공하여 무사히 다 통과해 다섯 번째 문을 나오는데 대장님과 호선생님을 따로 부른다. 짐 검사를 한다는 것이다. 가방까지 다 열어 짐을 꺼내 검사하고 겨우 나왔다.

요르단 국경에서 1시간, 이스라엘 국경에서 3시간을 허비하고 밖으로 나오니 이스라엘 가이드 임창묵씨가 아침 8시부터 나와 기다렸다고 한다. 우리는 사해로 달려가 도시락으로 늦은 점심을 때우고 수영복을 입고 물로 뛰어들었다. 사해는 해수면보다 400m가 낮아서 그런지 별로 춥지도 않았다.

그런데 책에서 본대로 그냥 누워도 몸이 둥 둥 떴다. 초등학교 다닐 때 사해에 떠서 책 읽는 사진을 보고 무척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그 사해에 내가 떠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게 다 조상 잘 둔 덕이구나 싶다. 우리의 부모들이 고생하며 뿌린 씨앗의 열매를 우리가 거둔다는 생각이 든다. 물밑에는 진흙이 깔려 있었는데 이걸 뜯어서 머드팩을 하고 깜둥이가 되어 사진들을 찍고 신나게 놀다가 나와 샤워를 하고는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다.

이스라엘은 어디고 팔레스타인은 어딘가 했더니 이스라엘 속에 6개의 팔레스타인 자치구가 있다고 한다. 결국 팔레스타인은 국가가 아니고 이스라엘 속의 한 구일 뿐이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는 누더기 같은 천막집들이 있었는데 베두인들이 사는 집이라고 하였다. 베두인은 바다 위의 주민이란 뜻인데 바다 위에 떠다니듯 사막을 돌아다니며 방목을 하고 산다고 한다. 겉으로 보면 꼭 거지 살림 같지만 실속을 알고 보면 벤즈를 타고 다니는 알부자가 많다고 한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주기도문 교회로 갔다. 주기도문 교회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세운 교회다. 여기는 주기도문이 세계 각국어로 기록되어 벽에 박혀 있었는데 남양주의 빛과 소금 교회에서 만든 한글 주기도문도 있어 뿌듯했다.

여기서 나와 감람산으로 갔는데 감람산은 조그만 동산에 불과했다. 감람나무가 많아서 감람산인데 감람나무는 올리브나무라고 한다. 감람산에 서니 예루살렘 성이 한 눈에 들어왔다.

황금 돔 교회는 진짜 황금인지는 몰라도 둥근 지붕이 금빛 찬란했다. 황금 돔 성전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모리아산에 솔로몬이 최초로 세운 성전이다. 하지만 헤롯이 산을 깎아 평지로 만들어 지금은 전혀 산 같지 않았다.

임창묵씨는 저 회색 돔 두 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골고다 언덕이고, 붉은 지붕 집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집이고, 뾰족한 지붕은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드신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열심히 설명을 한다.

성벽 동쪽에는 수많은 묘지들이 있었는데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동쪽하늘에서 온다고 하여 빨리 부활하고 싶어서 동쪽에 묘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다음은 예수님이 로마군병에게 잡혔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갔는데 여기도 거의 평지에 가까웠다. ‘이란 틀이고 세마네는 올리브란다. 그러니까 올리브 기름 짜는 틀이 있던 곳이다. 여기도 교회가 세워졌는데 교회 옆 마당에는 지금도 많은 올리브나무들이 있다. 그 안에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했다는 바위가 있다. 제법 크고 넓은 바위에 사람들이 엎드려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여기서 나와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갔는데 예루살렘에는 일곱 개의 성문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 동쪽 문은 오스만 터키가 지배하던 시절 막아버렸다. 이유인즉 예수님이 부활하면 동쪽에서 온다고 하여 막았다는 것이다.

성 안에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걸어간 십자가의 길이 있는데 처음으로 쓰러진 곳, 구례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진 곳, 쓰러질 때 손으로 짚었던 바위벽 등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 위에는 예수님을 못 박은 십자가를 세웠던 바위의 홈, 예수님을 염했던 바위, 시신을 넣어두었던 동굴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교회 안에 들어있었다.

여기까지 돌아 나오려니 어찌나 힘 드는지 발바닥이 아파 지팡이를 짚고 다니던 윤영자님은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다 내가 꼴까닥 하겠다.” 한다.

다음은 통곡의 벽으로 갔다. 통곡의 벽은 로마가 성전과 성벽을 모두 부술 때 경고의 의미로 서쪽 벽 일부만 남긴 거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1년에 세 번씩 성전에 올라왔는데 그 때마다 벽 앞에서 통곡을 하여 통곡의 벽이 되었다. 통곡의 벽에는 가운데 칸막이가 있어 남자와 여자가 들어가는 곳이 달랐다. 여자 쪽으로 들어가 보니 벽 틈에 수많은 종이쪽지가 끼워져 있었다. 여기에 이렇게 끼우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이렇게 많이 꽂아 두었다는 것이다. 통곡의 벽에서 통곡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벽을 만지며 간절히 기도하는 여자들은 많아서 거의 빈틈이 없었다.

이스라엘은 이삭의 둘째 아들인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천사와 밤새 씨름하여 이긴 후 하나님이 붙여 준 이름으로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란 뜻이다. 이스라엘에는 6개의 팔레스타인 자치구가 있는데 가자지구, 헤브론지구, 베들레헴지구, 여리고 지구 등이라고 한다. 팔레스타인은 자치구일 뿐 나라는 아니므로 여행을 하려면 이스라엘 비자를 받아야 한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머리에 손바닥만한 빵떡 아니 빈대떡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이것을 키파라고 하며 하나님과 직접 접할 수 없다는 겸손의 의미로 쓴다고 한다. 너무 작아 실 핀으로 머리에 고정했는데 대머리인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125일 과거 안 보슈? (요르단 페트라)

오늘은 다시 요르단으로 넘어가는 날이다. 국경을 넘을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다. 호텔을 출발해 여리고로 내려간다. 예루살렘은 800m고지에 있고 여리고는 -250m 요단강 가에 있으니 점점 더워진다. 여리고는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진 치고 있다가 처음으로 빼앗은 성이다. 빼앗은 방법이 특이해서 군인들이 매일 성을 한 바퀴씩 6일간 돌고 7일에는 7바퀴를 도니 저절로 무너져 내렸다는 성이다.

국경이 가까워지니 검문소가 많아진다. 티셔츠 입고 람보 총 찬 군인 두 명이 버스에 오르더니 쓰윽 훑어보고는 어디서 왔냐? 몇 명이냐? 중간에 태운 사람 있냐? 내린 사람 있냐? 시시콜콜 묻고 간다. 이렇게 검문하면서 사람들 표정을 보고 테러분자를 많이 색출했단다. 국경에 다다르니

“Welcome to Jordan River Terminal." 이라고 쓰여진 간판이 보인다.

이걸 보니 아하 요르단이 요단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단강은 죽어서나 넘는 덴 줄 알았더니 살아서도 넘을 수 있다. 장례식장에서 찬송 부를 때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하는 그 요단강을 어제도 건넜고 오늘도 건넌다.

그런데 그 요단강이 어찌나 작고 물이 없는지 청계천만도 못하다. 상류에 댐을 막아 수량이 이렇게 줄었다는 것이다. 양숙씨는

양재천만도 못하네! 이게 무슨 요단강이야 요단천이지 한다.”

여기도 출국절차가 까다롭기는 한데 그래도 사람이 적으니 시간이 적게 걸린다. 우선 이스라엘 버스에서 모두 내려 짐 검사를 마치고 구내에서만 운행하는 셔틀버스에 짐을 싣는데 여자 경찰이 와서 여권검사를 해야 버스에 오를 수 있다. 사람이 다 차기를 기다려 2분 정도 가서는 다시 짐을 내리고 입국심사를 받은 후 요르단에서 온 버스에 짐을 실어야한다.

요르단 쪽에 오니 우경석씨가 마중을 나왔다. 우경석씨 얼굴을 보자 고향에 돌아온 듯 하다고 다들 즐거워한다. 우경석씨가 이스라엘 여행 좋았냐고 묻자 징글징글하다.’ ‘다시는 안 온다.’ 하며 불평들이 많다. 출입국 절차가 너무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 진저리가 쳐지기는 한다. 그래도 나는 예수님이 성장한 갈릴리나 태어나신 베들레헴을 보러 다시 한 번 오고 싶다.

국경에서 다시 달려 모자이크로 유명하다는 마다바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시내구경을 했다. 시내라야 조그만 시골동네 같았는데 모자이크로 만든 물건 파는 집이 많이 있었다.

다시 페트라로 출발했는데 가는 도중 지루하니 우경석씨가 우스개 소리를 한다.

조선시대에 한 젊은이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다가 산에서 길을 잃었다. 해가 져서 쩔쩔 매고 있는데 웬 할아버지가 나타나 길을 물으려고 보니 산신령이었다. 그는 잘 됐다 싶어 어떻게 하면 과거에 급제할 수 있냐고 물었다. 산신령님은 한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하며 이 길로 내려가 마을에 도착하면 첫 번째 만나는 여인과 동침을 하라고 하였다. 단 셋까지 세는 동안 끝내야 한다고 하였다. 청년은 신령님 말대로 길을 따라가니 과연 마을이 나타나고 웬 할머니가 나타나더란다. 기가 막힌 청년은 난감하여 어쩔 줄 모르다가 산신령님 이야기를 하고 제발 한 번만 봐달라고 통 사정을 하였다. 할머니는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고 합방을 하였는데 시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한 할머니가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 셋 둘 셋 넷.” 하면서 시간을 끌었단다.

그 후로 장날만 되면 할머니는 장터에 나가 젊은 남자만 보면 뭐라고 귓속말을 하였다. 무슨 소린가 가까이 가 들어보니

과거 안 보슈? 과거 안 보슈?” 하더란다.

그 후로 사진을 찍을 때마다 찍는 사람이

하나~ 두울~ !” 하면 우리는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 셋 둘 셋 넷. 과거 안 보슈?” 하니까 외국인들은 우리 모습이 재미있는지 샷터를 눌러댄다. 아마 이번에 우리 얼굴 전 세계로 퍼졌을 꺼다.

우경석씨가 우스개 소리를 하자 하루 종일 버스 속에서의 지루함도 달랠 겸 호선생님이 앞에 나와 자기도 한 마디 하겠단다.

세상에서 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남자는?” 하니까

노상서, 항상서, 매일서.” 별별 소리가 다 나온다. 호선생님은 다 틀렸다고 하며 그냥 서있는 남자란다. 이번에는

세상에서 남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여자는?” 하니까

누워있는 여자했더니 또 틀렸단다. ‘속 좁은 여자란다.

이번에는 양숙씨가 호선생님에게 문제를 냈다.

러브 호텔이란 어떤 곳이냐?” 고 하니 모르겠단다. 양숙씨가 조선놈이 들어갔다가 일본놈이 나오는 곳이라고 하자

아하~ 좆 선 놈이 들어갔다가 일 본 놈이 나오는 곳?” 하며 담박 눈치 챈다.

이번에는 김정숙씨가 문제를 냈다. 참새가 땅 위에 떨어진 비아그라를 먹었단다. 날아가면서 뭐라고 했냐고 한다. 아무도 몰라 멍하니 쳐다보니

독수리년들 다 나와~ 내가 한 방에 끝내 줄께!” 했단다.

밤이 돼서야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배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페트라에 도착했다. 페트라는 에돔 족속이 살던 땅으로 모세가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갈 때 에돔 땅에 있는 왕의 대로로 가려했으나 지나가지 못하게 하여 광야 길로 돌아갔다고 한다. 에돔 족속은 붉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판 에서의 후손이다. 에돔은 붉은 땅이라는 뜻인데 붉은 바위가 많다고 했다.

사막이라 그런지 바람이 많이 불고 엄청 추웠다. 대장님은 내일 아침에 옷을 단단히 입고 나오라고 하면서 식사 후에 모두 밖에 한 번씩 나가보라고 한다. 밖에 나가니 이건 완전 시베리아다. 방에 와 내복과 두꺼운 옷을 모두 꺼내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126일 텅 빈 보물창고 (요르단 페트라)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가보니 엊저녁보다는 바람이 수그러들었다. 어제는 어두워 아무 것도 안 보였는데 아침에 보니 호텔 뒤쪽이 끝없는 구릉 지대였다. 기묘한 바위산들이 곳곳에 보였는데 여명을 받은 바위산들이 어찌나 장엄하고 신비로운지 보면 볼수록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했다. 한 마디로 기가 탁 막혀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페트라는 TV에서 여러 번 보았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부푼 가슴을 안고 페트라 유적지로 향했다.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인데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산악도시로서 이집트. 아라비아, 페니키아 등의 교차지점에 위치하여 대상로를 확보함으로 번영을 누렸던 캐러밴 도시다. 페트라 유적지는 모세의 형 아론이 죽은 호르산 자락에 있었는데 1200년 동안 잊혀져 있다가 1812년 젊은 탐험가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는 페트라에 엄청난 유적이 숨겨져 있다는 말을 듣고 아랍인으로 변장하고 이 도시를 찾아 나섰다. 현지인들은 외부인에게 이 도시를 알려주려 하지 않았지만 그는 아론에게 제사 지내고 싶다고 거짓말을 하여 호르산으로 가게 되었고 보물창고라는 뜻의 알카즈네를 발견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텅 비어있었고 아무리 찾아도 보물이 없자 출입구 문 꼭대기에 있는 항아리에 보물이 있나 해서 권총을 난사했다고 한다. 알카즈네는 커다란 바위산을 파서 만든 건물인데 신전인지 도서관인지 창고인지 확실한 용도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알카즈네를 지나 왕들의 무덤, 원형극장을 지나 수도원까지 갔는데 모든 것이 바위를 파서 만든 것이었다. 가는 협곡이 어찌나 깊고 좁고 절묘한지 한 굽이 돌 때마다 신천지가 전개되어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왕복 4시간 정도 걸렸는데 걷기 힘든 사람을 위해 말, 낙타, 조랑말 등이 다니고 있었다. 단체는 무조건 말을 타줘야 한다고 해서 우리도 처음 2km 정도는 말을 타고 들어갔다.

수도원은 수녀들이 사나 했더니 그게 아니고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았다. 수도원을 지나 땅 끝 전망대까지 가는 길은 뒤는 깊은 협곡이요 앞은 망망대해 같은 사막지대라 마치 4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 어질어질하고 묘한 느낌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직접 가서 보는 수밖에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다.

낮에 해가 나자 사막은 급속도로 기온이 올라가 화장실에 들어가 모두 옷들을 벗어 배낭에 넣었다. 낮에 오는 사람들을 보니 소매 없는 셔츠에 반바지 차림이 많았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자 우리들은 발길을 돌려 오던 길을 되돌아 나왔는데 1시에 입구에서 우경석씨를 만나기로 해 발이 보이지 않게 부지런히 걸어 정각 1시에 나오니 우경석씨가 깜짝 놀라며 어디까지 갔다 왔냐고 한다. 수도원 지나 전망대까지 갔다 왔다고 하니 철인이라고 하며 놀란다. 아무리 빨리 와도 2시는 돼야 올 줄 알았단다. 자기도 전망대까지 간 건 3년 전이란다. 다른 손님들은 왕들의 무덤까지만 가도 힘들다고 돌아가자고 한단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라 과연 다르다고 감탄을 한다. 자기가 우리 팀에 두 번 놀랐는데 시리아 입국할 때 여권에 사진 찍으려니 출입국 도장이 어찌나 많은지 찍을 자리가 없어 놀라고 이번이 두 번째란다. 그리고 우리들 의상이 어찌나 화려한지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완전 무지개 색이라 멀리서도 찾기가 쉬워 너무 좋단다.

페트라에서 점심을 먹고 암만으로 출발했는데 가는 길이 지루하니 우경석씨가 또 손님에게 배운 노래라고 나의 살던 고향에 맞춘 노래를 불러준다.

아름다운 눈동자~ 오똑한 콧날~

새빨간 그 입술에 새하얀 목덜미~

울퉁불퉁 앞~가슴 날씬한 몸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하자 우리도 따라하며 웃어댔다. 이렇게 농담 따먹기를 하다 보니 지루한 줄 모르고 암만에 도착했다.

 

127일 두바이는 공사 중 (아랍 에미리트 두바이)

아침에 버스에 오르며 모두들 남은 한국 음식을 우경석씨에게 주니 우경석씨 입이 귀밑까지 올라간다. 자기 부인은 파리에서 살고 자기는 여기서 다른 여자 가이드들과 다섯 명이 같이 지내는데 이거 가지고 가면 무지 좋아할꺼란다. 많은 여자들하고 산다고 아랍인들은 자기를 보고 술탄이란다.

암만 공항에서 우경석씨와 이별하고 3시간 가까이 가니 두바이 공항이다. 두바이 공항은 새로 개장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으리으리하고 화려함의 극치였다. 입국수속을 하고 밖으로 나가니 나경민 가이드가 우리를 맞이한다.

아랍에미리트는 7개의 토후국으로 이루어져 있고 두바이는 그 중의 하나인데 두바이라는 말은 아랍어로 메뚜기를 뜻한다고 한다. 벌써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 어둡기 전에 시내관광을 하려고 서둘러 시내로 들어갔다. 들어가며 보니 고층 건물이 즐비하고 곳곳이 공사중이라 크레인이 엄청 많이 보였다. 두바이는 아랍국가 같지 않게 무척 깨끗하고 현대식 건물도 많았다.

두바이는 무엇이든지 세계 최고를 추구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버즈 알 아랍 호텔이다. 이 호텔은 페르시아만 바닷가에 돛단배 모양으로 지었는데 1일 숙박비가 2500만원이고 커피 한 잔에 우리 돈 10만원이란다. 객실이 220개인데 모두 복층 구조로 되어있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스카이바도 있는데 칵테일 한 잔 값이 1000만원이라니 일반인들은 근처에 얼씬도 못하겠다.

맨발로 바다에 들어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호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에미리트 쇼핑몰로 갔다. 백화점 안에는 세계 최대의 인공 스키장이 있었는데 슬로프 길이가 400m이고 4000톤의 인공눈을 부어 만들었다고 한다. 스키장 안에는 리프트는 물론이고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에 눈으로 만든 미끄럼틀, 인공 바위, 얼음조각 등 등 별천지였다. 쇼핑몰이 어찌나 크고 화려한지 우리는 시골에서 갓 상경한 촌놈처럼 어리버리하며 여기 기웃 저기 기웃했다.

여기서 30분의 자유시간을 주었는데 약속시간이 되어도 안성숙씨가 나타나지 않는다. 김사장님이 찾아나섰는데 한참 만에 나타난 안성숙씨는 길을 잃어 헤매다 늦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와 디너 크루즈를 타러 갔다. 바닷가에는 무수한 배들이 화려한 조명을 밝히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클레오파트라라는 배에 올랐다. 뷔페 음식을 먹은 후 각종 전통춤과 마술쇼를 하였는데 두 시간이 언제 지났나 모르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이 날은 오순희씨가 와인을 내서 모두들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크루즈에서 내려와 시내 야경까지 보고는 다시 두바이 공항으로 돌아와 귀국길에 올랐다.

 

128일 잘 차려진 잔칫상 (인천공항)

두바이 공항에서 면세점을 기웃거리다 새벽 3시나 되어 비행기에 오르니 빈 좌석이 한 개도 없다. 꼼짝 없이 춘향이 큰 칼 찬 모습으로 앉아 비몽사몽 간에 졸다보니 어느 덧 인천 공항에 착륙한다.

외국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깨끗하고 인심 좋고 아름다운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 자체가 축복이다.

 

이번 여행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잘 차려진 잔칫상을 받은 느낌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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