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09. 2. 28. 대마도

아~ 네모네! 2012. 10. 14. 21:20

 

 

 

 

 

 

 

 

 

 

 

<기행문>

대마도는 우리 땅

 

기간 : 2009228~ 32

장소 : 일본 대마도

대마도는 세종 때 우리가 정벌했었다는 막연한 지식 밖에 없었는데 이번에 좋은 기회가 생겨 그 땅을 밟아보게 되었다.

 

228일 괜히 가기로 했나?

10시 반에 잠실역에서 출발하려고 깜깜한 밤에 배낭을 지고 집을 나서려니 공연히 누가 볼까봐 사방 눈치를 살피게 된다. 아침에 나올 때는 몰랐는데 오밤중에 나오려니 어째 귀찮은 생각이 들고 괜히 가기로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잠실역에서 버스에 올라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을 대하니 대마도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오른다.

 

31일 요절한 동백꽃

버스에서 한잠 자고나니 대장님이 콩나물해장국과 갈비탕 중 어떤 걸 먹을지 손들라고 한다. 새벽부터 갈비탕이 부담스러울 것 같아 콩나물해장국에 들려고 했는데 갈비탕은 7000, 콩나물은 5000원이지만 콩나물 먹어도 2000원 안 돌려준다고 갈비탕을 먹으란다. 본전 생각도 났지만 저렇게 공갈 반 협박 반 하는 걸 보면 뭔가 있다 싶어 갈비탕을 먹기로 했다.

새벽 4시에 언양 톨게이트를 빠져 나가 갈비탕 집으로 들어갔다. 아직 준비가 덜 된 관계로 방에 앉아 기다리려니 대장님이 누워서 좀 쉬라고 한다. 모두들 로봇처럼 스르르 눕는다. 평소처럼 대장님 말씀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따르게 된다. 그래서 처음 우리를 본 사람들은 대장님을 교주라고 놀린다. 사실 웬만한 교주보다 더하다.

방석을 접어 베고 누우니 호선생님이 내프킨통을 갖다 주며 베고 누우란다. 베고 누워보니 목침처럼 편안하다. 옆의 양숙씨는

이거 인간 차별하는 거요?” 하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투정이다.

갈비탕이 나왔는데 맛이 기가 막히다.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중에 단연 최고다. 다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고는 다시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 국제 여객 터미널에 도착하여 미리 부산에 와 있던 회원들과 합류하니 일중산악회만 52명에, 혜초로 직접 등록한 10여명을 합쳐 60명이 넘는 거대한 단체가 되었다.

1시간 20분 만에 대마도 히타카츠항에 도착하니 우리나라의 한 섬에 온 것 같다. 배에서 내려 입국수속을 하는데 출입국 관리소가 어찌나 협소한지 시골의 버스터미널보다 작다. 한참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과일 종류는 미리 신고를 하라고 하여 깎아가지고 간 사과를 보여주니 오케이하며 허가 딱지를 붙여준다. 일본 입국 절차는 두 손가락 지문 찍고, 얼굴 사진 찍고 하느라고 한참 걸린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여자 가이드가 버스로 가라고 알려준다. 버스에 오르니 자기 이름은 정경화라고 소개한다. 그러자 다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같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정경화씨는 이름도 예쁘고 얼굴도 예쁘고 생글생글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대마도라는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두 개의 섬으로 되어있어 두 섬이 두스마가 되고 이것이 쓰시마가 되었다는 설과, 시라다케의 두 암봉이 마치 말 두 마리가 마주 대면하고 있는 것 같아 대마(對馬)도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우리는 버스에 도시락을 싣고 한국 전망대로 갔다. 전망대에 가니 팔각정이 있고 정원에 탁자와 의자도 있어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날은 맑았는데도 안개가 있어 부산은 잘 보이지 않았다. 도시락에는 다꾸앙 두 쪽이 들어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꼭 두 쪽씩 넣는데 세 개는 신체라는 말과 발음이 같아 신체를 자를 수 없어 두 쪽만 넣는다고 한다. 다꾸앙은 다꾸앙이란 스님이 처음 만들었는데 그 스님 이름을 따서 다꾸앙이라고 했단다. 정자 앞에는 조선국 역관 위령비가 있었는데 1703년 에도로 가다가 풍랑으로 죽은 108명의 역관을 위로 하는 비라고 한다.

대마도는 세종 때 이종무가 정벌한 후 조선에 속하였으나 그 후 다시 일본으로 귀속되었다. 하지만 대마도에는 고려산, 고려문, 고려꿩(대마도새), 고려원(벼슬이름) 등이 남아있어 대마도가 과거 우리 땅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날은 시라다케(白嶽) 등반을 하였는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자 너도 나도 어찌나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없어 혼자 걷자니 산이 말을 걸어온다. 정말 잘 왔다. 너를 환영한다. 내 품에 안겨 잘 쉬었다 가라고 말하는 듯하다. 새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기니 곳곳에 삼나무 숲이 우거져 원시림을 이루고 동백꽃이 뚝뚝 떨어져있다. 동백꽃은 시들지도 않은 새빨간 꽃봉오리가 그대로 똑 떨어져 마치 요절한 젊은이를 보는 듯 가슴이 아프다.

얼마를 가니 백악신사 문이 있고 여기서 문을 통과해 한참 올라가니 갑자기 바위가 나타나고 전망이 탁 터진다. 그 위에는 거대한 암봉이 두 개 있었는데 대장님은 정상적인 등산로를 버리고 오른쪽 길도 없는 쪽으로 우리를 이끈다. 우리는 바들바들 떨며 바위에 매달려 오른쪽 봉우리에 오르니 갑자기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 되는데 다들 감탄하느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여기서 다시 엉금엉금 기어 내려와 왼쪽 봉우리에 올라 백악이란 팻말을 들고 너도 나도 사진을 찍었다.

정상에서 내려와 다시 신사문을 지나 왼쪽으로 틀어 하산을 했는데 곳곳에 고사리 숲이 우거져 아름다운 정원을 걷는 듯하다. 내려오며 혜초여행사를 통해 직접 온 회원이 일중산악회가 이렇게 큰지 몰랐다고 하며 일중이 아니라 대중이라고 대중산악회로 하란다.

폭포를 지나니 곧 포장도로가 나타났는데 우리의 작은 버스가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버스에 다 탈 수가 없어 다리 아픈 사람들만 타고 내려오는데 먼저 내려온 회원들이 곳곳에서 내려가고 있다. 이순희씨는 남편의 무릎이 안 좋다고 남편만 태우고 꿋꿋이 걸어 내려간다. 그런 모습을 보니 열녀문이라도 세워주고 싶은 심정이다.

작은 버스가 몇 번을 왕복하며 다 내려오자 큰 버스와 작은 버스에 나누어 타고 해물 바베큐를 먹으러 갔다. 식당은 바닷가에 있었는데 마침 초승달과 금성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초승달과 금성을 바라보며 먹는 회와 해물 바베큐는 그야말로 꿀맛 아니 생선맛이었다. 이렇게 대마도에서의 하룻밤을 즐기고 이즈하라로 돌아와 이즈하라에서 가장 높다는 쓰시마 호텔에 들었다.

 

32일 아이 같이 순한 아리아케

아침 5시에 일어나 아리아케 등반에 나섰다. 캄캄한 새벽에 20명 이상이 나오자 정경화씨는 대단한 체력이라고 어제 그토록 산행을 하고 오늘 또 이렇게 나오느냐고 감탄한다. 자기는 몇 명 안 나올 줄 알았단다.

정경화씨가 가르쳐 준대로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왼쪽을 보니 산길이 나타난다. 우리는 무턱대고 그리로 가려고 했더니 대장님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고 한다. 그래도 다른 길이 안 보여 그냥 올라가니 과연 얼마 안 가 길이 끊기고 기도처가 나타난다.

되돌아 나와 동네 안에서 방황하니 어떤 집에서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내다본다. 김덕호씨가 일본말을 아는지 한참 묻고 듣고 하더니 다시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조금 가니 등산로 입구 표지가 나오고 큰 길이 나타난다. 예나 지금이나 역관은 꼭 필요한 모양이다.

캄캄한 산길에 헤드랜턴을 켜고 한참 올라가니 유명산이란 팻말이 나온다. 갑자기 웬 유명산인가 했더니 김덕호씨가 아리아케가 유명산이라고 한다. 실크로드 같은 부드러운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니 갑자기 나무가 없어지고 사방이 환하다. 뒤를 돌아보니 구름 사이로 해가 떠오른다.

조금 더 오르니 드넓은 초원이 나타나고 유명산 정상 표시가 나타난다. 먼저 온 회원들은 벌써 사진을 찍고 간식을 먹는다. 모두들 가져온 곶감, , 과일 등을 나누어 먹었는데 따끈한 모닝커피를 타온 회원이 있어 나누어 먹었다. 산 정상에서 마시는 커피 맛은 먹어본 사람 아니면 죽었다 깨나도 모른다.

정상에서 바라보니 어제 올랐던 시라다케의 두 봉우리가 아련히 보인다. 먹을 걸 다 먹고 하산 길에 올랐다. 하산은 바다를 바라보며 내려오니 풍경이 더 아름답다. 얼마를 내려오다가 갈림길에서 올라왔던 길로 가려니 대장님이 왼쪽 길로 가보자고 한다. 무조건 따라가니 산성이 보이고 이즈하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쏙 들어와 앉아있는 이즈하라는 자궁 속의 아기같이 편안해 보인다.

대장님은 길 하나는 기막히게 잘 찾는다. 처음 가는 산인데도 어떻게 잘 찾아가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할 때가 많다. 우리는 머리로 기억하는데 대장님은 동물적 후각이 발달된 것 같다. 그래서 그냥 감()으로 찾아간다. 보면 볼수록 타고난 가이드다.

산에서 내려와 아침 식사를 하고 시내관광에 나섰다. 청수산 성곽과 조선통신사비, 자료관 등을 보았는데 가이드 황백현씨가 어찌나 웃기는지 지루한 줄 모르고 졸졸 따라 다녔다. 황백현씨는 황색도 아니고 백색도 아니고 검은색()도 아닌 빨간 넥타이를 매고 나와 신이 나서 설명을 해댄다. 덕혜옹주 결혼 봉축비는 한 일 간의 갈등 속에서 비운의 생애를 보낸 한 여인의 아픔을 느끼게 한다.

최익현 선생 순국 기념비가 있는 수선사를 보고 다음 장소로 옮기는데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집이 나타나자 모두들 감탄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 밖이 시끄러우니 집에서 한 할머니가 나와 우리에게 뭐라고 한참 설명을 한다. 우리가 일자무식이라 멍하니 있는데 마침 정경화씨가 온다.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할머니는 이 집에서 아들과 둘이 사는데 일 년에 두 번씩 전문 정원사를 불러 손질을 한다고 한다. 이 나무는 어떻고 저 나무는 어떻고 이 나무는 너무 매끄러워 원숭이가 올라가다가 떨어지는 나무라고 신이 나서 얘기한다. 자신의 정원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 아들이 결혼을 안 해 걱정이라고 한다. 이런 소리를 들으니 모든 어머니의 고민은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는 국분사를 보았는데 여기는 많은 납골묘가 있었다. 이 중에는 이완용이 쓴 묘비도 있는데 종31등 공신의 묘였다. 묘비 왼쪽 아래에 후작 이완용 서()라고 써 있는데 이 묘비는 황백현씨 자신이 처음 발견하였다고 한다. 한 평생 살면서 아차 한 번 판단을 잘못하면 만고의 역적으로 남게 되니 크게 잘 하지는 못 해도 그저 중간은 가야겠다. 그런데 중간 가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완용이 쓴 묘비까지 보고 다시 절로 내려오니 정경화씨가 이 절에서 차 대접을 한다니 먹고 가자고 한다. 금빛 찬란한 부처님 계신 방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아담한 다다미방이 나타난다.

60명이 넘는 대식구가 모두 둘러 앉아 있으니 곧 주지 스님이 나타나 부인 소개를 하고 차 대접을 한다. 녹차는 색도 은은하고 향도 은은한 게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일본의 스님들은 거의 결혼을 하고 부모에게 절을 물려받아 대대로 스님이 된다고 한다. 국분사 주지 스님도 부모에게 물려받았는데 젊어서는 다른 일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의 뜻대로 스님이 되었다고 하며 자기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차까지 잘 먹고 골목을 빠져 나와 쇼핑센터에 가니 정경화씨가 시간이 없으니 20분 안에 쇼핑을 끝내고 2시까지 부두로 오란다. 대충 필요한 것들을 사고 가게 밖으로 나오니 비가 쏟아진다. 감사님이 비옷도 우산도 없다고 하여 내 비옷을 빌려드리고 부두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부두의 여객터미널에서 잠시 기다리니 호텔에 맡기고 온 짐이 도착한다. 각자 짐을 찾아 출국수속을 마치고 배에 오르니 어제 대마도에 온 것이 한 달 전 일처럼 까마득하다.

올 때는 1층이었는데 갈 때는 2층 좌석에 배정 받았다. 배는 정시에 이즈하라항을 출발하여 부산으로 향했는데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풍랑이 심해 서쪽 항로로 변경하여 가겠다는 방송이 나온다. 비는 별로 오지 않는데 파도가 어찌나 센지 물이 2층 창문까지 튀어 오르고 배는 요동을 친다. 뱃멀미가 날까봐 조마조마한데 여기저기서 토하는 소리가 나고 시큼한 냄새가 진동하니 나도 곧 올라올 것 같아 잔뜩 긴장이 된다.

회원들도 걱정이지만 이재호씨가 멀미하면 어쩌나 더 걱정이 된다. 멀미해서 초죽음 되면 어떻게 서울까지 운전하고 가느냐 말이다. 2시간 20분 걸릴 예정이던 배는 3시간이나 걸려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래도 땅을 밟으니 이제 살았구나 싶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니 속이 좀 가라앉는 듯하다.

시간이 늦어 저녁은 가다가 휴게소에서 먹기로 하고 버스에 올랐다. 긴장이 탁 풀린 우리는 그저 재호 오빠만 믿습니다.’ 하며 마음 푹 놓고 꿈나라로 빠져 들었고 이재호씨는 오빠 한 번 믿어봐~’ 하며 씩씩하게 운전한다.

 

대마도는 한 때 우리 땅이었던 곳이고 아열대성 기후의 원시림이 살아있는 자연의 보고이다. 앞으로 더 많은 회원들이 방문하여 우리 조상의 숨결도 느껴보고 물씬 물씬 풍기는 원시림의 맛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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