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08. 1. 19. 필리핀 아포산

아~ 네모네! 2012. 10. 13. 16:37

 

 

 

 

 

 

 

 

 

 

 

 

 

 

 

<기행문>

물에 젖은 필리핀

이현숙

필리핀이라면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오던 나라 이름이다. 수도가 마닐라라는 정도 밖에 알지 못하던 내가 이번에 민다나오 섬에 있는 필리핀 최고봉 아포산(2954m)에 다녀오게 되었다.

 

문짝이 문제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한참 단잠에 빠져 있는 남편을 깨워 5시에 인천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집을 며칠씩 비우려면 남편 혼자 집을 지켜야하니 항상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방학이니 같이 가자고 해도 학교에 일이 많다고 안 간다.

해외여행 가려면 몇 달 전부터 남편 눈치를 살핀다. 가고 싶기는 하고 베룩이도 낯짝이 있지 도저히 말이 안 나올 때는 메일로 보낸다. ‘해외여행 신청서라고 제목을 쓰고는 말이 안 나와 메일로 보낸다고 하고는 날짜, 여행 장소 등을 상세히 적어 보내면 잠시 후 해외여행 허가서하고 답장이 온다.

여자가 집 나가는 거 좋아할 남편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불편을 감수하고 다녀오라고 하는 남편이 고맙다. 공항까지 버스타고 가도 되는데 데려다 준다니 못 이기는 척 하고 따라나선다.

짐을 부치고 비행기에 올라 출발을 기다리는데 도무지 출발할 생각을 안 한다. 웬일인가 불안한 마음으로 앉아 있으니 기내 방송이 나온다. 화물칸의 문이 잠기지 않아 출발하지 못하니 기다리라는 거다.

이러다 오늘 출발 못 하는 거 아닌가? 조바심하며 30분쯤 기다리니 다 고쳤다고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닐라 기온이 29라고 하여 화장실에 가서 입고 있던 내복을 벗어 배낭에 넣었다. 4시간의 비행 끝에 마닐라 공항에 도착하니 겨울이라고 하는데도 우리나라 한여름 날씨다.

필리핀은 치안이 불안한지 공항 레스토랑에 들어가는데도 X-ray 검사기를 통과한다. 국내선으로 갈아탈 때도 몇 번씩 통과하고 신발도 모두 벗어야하는데 슬리퍼도 없이 그냥 양말 바닥으로 지나가야 한다.

짐도 일일이 열어서 뒤지니 한 팀 하는데도 수십 분이 걸린다. 우리 팀 차례가 되자 박 이사님이 배고프다고 죽는 시늉을 하니 대표로 한 개만 검사했다. 겨우 짐을 부치고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한 후 국내선 쪽으로 옮겨 다바오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많이 남아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가 발마사지 20분에 300페소라고 쓰여 있기에 달러로는 얼마냐고 물으니 8달러라고 한다. 양숙씨와 둘이서 들어가니 침대라고는 달랑 4개 밖에 없고 두 명이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우리도 침대에 누우니 발을 이리 저리 꺾고 문지르고 누르고 당긴다. 주로 지압 수준이었다. 그래도 20분 동안 두 다리 쭉 뻗고 누워서 쉬니 피로가 많이 풀린다.

다바오행 비행기에 오르니 필리핀 아줌마가 자기는 다바오에 산다고 하며 어디서 왔냐? 뭐 하러 왔냐? 하며 말을 걸어온다. 짧은 영어 실력으로 하려니 몇 마디 못 해 할 말이 없어진다.

다바오에 도착해 한식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마침 이날은 박옥순님 남편 박광수님의 생일이라 케잌을 놓고 생일 축하를 했다. 노래를 마치고 샴페인을 땄는데 박이사님이 기를 쓰고 돌려도 마개가 따지지 않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열리기는 열렸는데 김이 다 빠졌는지 터지지 않는다. 그래도 맛은 좋아서 모두들 맛있게 먹고는 호텔로 향했다.

박광수님은 몸이 불편한데도 열심히 여행하는 걸 보면 그 의지와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킬리만자로에서는 5000m 넘는 곳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호텔에 도착하여 내일 산에 가지고 올라갈 짐을 챙기고 포터에게 맡길 짐은 대장님 방으로 보냈다. 내일의 산행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징글징글한 정글 탐험

호텔을 출발하여 2시간 정도 봉고차를 타고 아포 산으로 향했다. 다바오는 길이 좁아 대형버스가 없다. 우리도 2대의 봉고차에 나누어 탔다. 산행기점인 카파티간(1100m)에서 입산 신고를 하고 얼마를 더 가다가 한 마을에 도착하여 물과 음식을 산 후 화물차로 갈아타고 비포장 길을 달렸다. 길은 험하고 바닥은 딱딱하니 아차하면 엉덩이 깨지게 생겼다. 아예 일어서서 앞의 손잡이를 잡고 달리니 바람은 시원한데 앞 차가 먼지를 날리니 흙먼지를 뒤집어쓰게 된다.

곡예를 하듯 널뛰듯 달리다가 앞 차가 진흙 구덩이에 빠졌다. 계속 헛바퀴가 돌자 우리 차가 앞으로 나가 줄을 걸고는 잡아 당겨 겨우 빠져 나왔다. 앞차는 그냥 보통 자동차 바퀴인데 우리 차는 경운기 바퀴처럼 울퉁불퉁하여 빠지지 않고 잘 달렸다.

30분 정도 달려 작은 마을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부터는 걸어야 한단다. 이날은 또 안순자님 생일이라 어떤 집 앞 탁자에 케잌을 놓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차가 하도 요동을 쳐서 케잌인지 떡인지 피자인지 하여튼 엉망이 됐다. 그래도 좋다고 잘들 먹는다. 가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박옥순님 부부와 유애자님은 다시 차를 타고 내려갔다.

한 시간 정도 오르니 집 두어 채가 나타난다. 아포 파라다이스 남부 침례교회라고 쓰여 있는데 말이 교회지 엉성한 칠판하나 달랑 매달려 있는 조그만 마루뿐이다. 여기서 우리 짐을 져줄 포터와 만났는데 포터에게 배낭을 맡기겠다는 사람이 많아 포터가 모자라자 산행 가이드가 농구하며 노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뭐라고 뭐라고 하더니 끌고 온다. 이영주씨와 양숙씨, , 이렇게 세 명만 빼고 모두 배낭을 맡겼다.

여기부터 산길을 오르는데 길이 완전 떡이다. 찰흙에 물기까지 잔뜩 머금어 미끌미끌한데 말이 다니면서 생긴 발자국이 구덩이를 만들어 깊이 50cm는 됨직한 웅덩이가 줄지어 생겼다. 빠지지 않으려고 조심했건만 아차 하는 순간에 발이 빠져 완전 진흙투성이가 됐다.

길은 갈수록 점입가경이라 곳곳에 나무들이 넘어져 길을 막으니 타고 넘어야 하는데 나무에는 이끼와 물기가 많아 곡예 하듯 해야 한다. 기어가고, 매달리고, 타고 넘다가 미끄러 떨어지고 그야말로 장애물 경기 하듯 온몸으로 몸부림을 쳤다. 정글 속을 팔, 다리, 엉덩이로 헤매다보니 정글이라면 이가 갈리고 징글징글하다.

5시간 동안 비가 오락가락 하는 중에 공중곡예 하듯 혈투를 벌이다보니 어느 덧 먼저 올라간 포터들이 텐트를 친 곳에 다다랐다. 여기가 구디구디캠프(2100m). 텐트 하나에 3명씩 들어가라고 하여 최덕희님과 양숙씨, 나 이렇게 셋이 들어갔다.

텐트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흙투성이가 된 옷을 물티슈로 대강 닦았다. 신도 완전 흙덩어리가 된지라 땅에 조금 고인 물로 대충 닦고 물티슈로 닦아 텐트 안에 들여 놓았다.

포터들이 밥을 하는 동안 대장님은 나뭇가지를 모아다가 불을 피웠는데 나무가 젖어 좀처럼 불이 붙지 않았다. 신문지도 갖다 넣고 페트병도 갖다 넣고 부채질을 해도 그것만 타고 나무에는 영~ 불이 붙지 않는다. 그래도 그 불에 바지를 말리겠다고 들고 섰으려니 연기만 잔뜩 배어 훈제 바지가 돼 버렸다.

밥이 다 되어 큰 비닐을 깔고 육개장과 북어국, 이수연표 깻잎, 배복순표 무장아찌, 김 등으로 식사를 했는데 공기가 좋아 그런지 밥도 꿀맛이고 호선생님이 사온 보드카까지 곁들이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우리는 이렇게 잔치를 벌이는데 김희옥님은 고소가 왔는지 점심 먹은 게 체했는지 식사도 못하고 계속 토한다. 수연씨가 누룽지도 갖다 주고 대장님이 약도 주고 해도 별 효험이 없다.

밥과 술로 포식을 하고는 텐트로 돌아와 양숙씨는 추위를 많이 탄다고 가운데 눕고 나는 문가에 누웠다. 저녁 식사 후 커피를 먹어서 그런지 영 잠이 오지 않는다. 텐트 밖에서는 포터들이 술을 마시는지 계속 떠들어대고 무슨 새소리인지 밤새도록 찌익 찌익 울어댄다. 최덕희님도 잠이 안 오는지 뒤척거리고 양숙씨는 잠이 들었는지 쌔액쌔액 숨소리가 고르다.

 

마음 아프도록 아름다운 아포 산

빗소리는 텐트를 때리고 바닥에서는 냉기가 올라와 핫 팩을 앞뒤로 붙여도 별 소용이 없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포터들의 말소리가 멈추고 잠시 잠이 들었는데 새벽 3시도 안 돼 또 포터들이 일어나 부스럭거린다.

4시에 일어나 누룽지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5시가 넘어 출발을 하였다. 밤새 비는 그치고 맑은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어린 아기 눈같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오르니 사방이 뿌옇게 밝아오며 아포 산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천하의 절경이 나타나자 대장님과 호선생님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사진 찍느라고 정신이 없다. 우리들은 유황증기가 올라오는 너덜지대를 빨리 통과하려고 서두르는데 몇 몇 회원들은 사진 찍느라고 자리를 뜰 줄 모른다.

유황증기가 솟구쳐 오르는 것이 멀리서 보기에는 멋있는데 그 옆을 통과하려니 목이 칼칼한 게 가슴까지 아파온다. 그랬다고 숨을 안 쉴 수도 없고 올라가려니 숨은 차고 하여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기를 쓰고 올라가니 어느 덧 유황 증기도 끝이 나고 조금 더 오르니 조그만 호수가 나타난다.

호수 밑바닥에는 돌멩이를 늘어놓아 글씨를 써 놓았는데 한국말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부터는 힘도 안 들고 경치는 기가 막혀 가슴이 저려왔다. 이런 세상에 태어난 것 하나로도 감사가 흘러넘친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전율을 느낄 만큼 아름답다. 바닥에 깔린 흰 구름과 바다, 초록도 아니고 연두색도 아닌 산, 하늘색도 아니고 푸른색도 아닌 하늘은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다. 정상에는 정상이란 표지도 없고 2954m라는 높이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후미가 오기를 기다려 단체사진을 찍고는 하산을 시작했다.

조금 내려오니 평평한 초지가 나타나고 여기서 라면으로 아침을 먹었다. 어머니 품 같은 포근한 초지에 앉아 라면을 먹으니 세상에 라면보다 더 맛난 음식은 없는 듯하다. 라면을 먹고 있는데 가이드 박상준씨가 헐레벌떡 올라온다. 우리가 텐트를 떠난 후 포터들 아침먹이고 짐 챙겨 내려 보내고 정신없이 달려 왔다는 것이다. 대장님은 정상에서 아무래도 앞 봉우리가 더 높아 보인다고 찜찜해 하시더니 가이드와 함께 온 원주민 가이드에게 다시 물어보자고 한다. 그래서 어떤 게 가장 높으냐고 했더니 우리가 올라갔던 봉우리는 big point 이고 점심 먹는 곳 위의 봉우리가 highest point 라고 한다. 얼마쯤 걸리냐고 했더니 한 30분 걸린단다.

대장님은 그러면 올라가 보자고 한다. 힘든 사람은 그냥 내려가고 9명이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여기서의 경치 또한 빼어나서 올라오기 잘 했다고 즐거워하고 있는데 대장님이 이게 아니고 옆의 봉우리가 더 높아 보인다고 한다.

다시 내려와 또 옆 봉우리로 기어 올라갔다. 봉우리에 올라 호선생님이 고도계로 측정을 하더니 여기가 2m 더 높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아마 고도 측정도 제대로 안 했나보다.

이렇게 세 봉우리를 모두 밟고는 더 이상 오를 봉우리가 없자 흡족한 마음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세 개 중에 한 개는 분명히 정상이니 누가 정상이라 한들 무슨 미련이 있으랴. 세상을 다 얻은 듯 신이 나서 발걸음을 서둘렀다.

위에서 경치 볼 때까지는 좋았는데 얼마를 내려오니 또 정글이 시작된다. 어제의 길은 오늘의 내려오는 길에 비하면 양반이다. 나무뿌리를 잡고 대롱대롱 매달리며 온몸으로 씨름을 해야 한다. 그래도 베나도 호수까지는 점잖게 잘 내려왔다.

호숫가에 도착하니 먼저 내려간 포터와 박이사님이 밥을 해놓고 기다린다. 하지만 밥은 식고 몸은 지쳐 입맛이 없다. 간단한 간식과 커피로 요기를 하고는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호숫가를 걷는 우리 일행의 모습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 같이 평화스러워 보인다.

조금 더 내려오니 갑자기 꽈광~ 하고 하늘이 쪼개지는 소리가 난다. 비 오기 전에 하산하려고 서둘러도 비는 금방 우리를 덮친다. 비가 많이 와 길이 끊겼다고 이리 돌고 저리 돌고 하느라 많은 시간이 흘렀다. 겨우 길을 찾아 내려오는데 계곡에 물이 많아 장난이 아니다. 일부는 신 신고 그냥 물로 뛰어들고 일부는 신발을 벗어들고 겨우겨우 건넜다.

다시 신을 신고 조금 내려오니 또 계곡이다. 박이사님이 업히라고 하여 대장님과 신을 안 적신 몇 명은 쌀자루 얹히듯이 박이사님 어깨에 걸쳐 건넜다. 더 내려오니 이번에는 통나무 두 개가 높이가 다르게 걸쳐있다. 손으로는 위의 나무를 잡고 발로는 아래 나무를 딛고 엉거주춤 바들바들 떨며 건넜다. 나무가 젖어있으니 아차 하면 계곡물에 그대로 다이빙하여 쓸려가게 생겼다.

다음 계곡에 오니 통나무 세 개가 걸쳐있는데 앞의 양숙씨를 보니 두 나무에 두 다리를 걸치고 엉덩이로 밀며 건넌다. 나도 같은 포즈로 따라 건넜다. 하여간 온갖 생 쇼를 하고 건넜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오더니 네 발로 타박타박 떨지도 않고 여유 있게 건너온다. 졸지에 개만도 못한 인간이 돼버렸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계곡 길을 내려오려니 박이사님이 농담을 한다. 세상에서 젤 무서운 사람이 누구냐고 한다. 모른다고 했더니 소방관이란다. 이유인즉 물불을 안 가리고 덤빈단다. 하지만 더 무서운 사람이 있단다. 그게 누구냐고 했더니 할머니란다. 이유인즉 볼 짱 다 봐서 그렇단다. 그러고 보니 나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 됐다.

그 후로는 계곡 건널 일이 없어 두 발로 점잖게 걸어왔는데 날이 어두워오니 더럭 겁이 났다. 어이~ 어이~ 해도 앞에서는 대답이 없고 뒤에서는 소리가 나는 듯 하더니 끊어졌다. 양숙씨와 노씨 자매, 안순자님 이렇게 다섯이서 서둘러 고개를 넘어오니 앞에 불빛이 보이고 우리 팀이 모여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는 아대를 하고 있기에 다쳤냐고 했더니 내려오다가 굴러 떨어져서 다리가 아프다고 하였다.

조금 기다리니 차가 도착하여 아포리조트로 내려오니 미리 와 있던 유애자님과 박옥순님 부부가 뛰어나오며 반긴다. 몇 십 년 만에 이산가족 상봉하듯 얼싸안고 기뻐하였다. 김희옥님은 토한다고 하지, 비는 쏟아지지, 날은 어두워지지, 걱정을 태산같이 했다는 것이다.

원래는 여기서 저녁을 먹기로 했지만 온몸이 젖은 우리는 덜덜 떨려 야외에서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시킨 음식을 싸가지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 먹기로 하였다. 기사에게 히터를 틀어달라고 했더니 히터가 없단다. 하긴 열대지방에 무슨 히터가 필요하랴.

우리 몸에서 나오는 물기로 창문은 온통 김이 서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랬다고 에어컨을 틀면 다 얼어 죽게 생겼고. 모두들 김방자님이 있으면 비누를 발랐을 텐데 하고 아쉬워하는데 노효선씨가 폼클린싱크림을 발라보자고 하였다. 우리는 안 될 줄 알았는데 앞 유리창에 바르니 신기하게도 깨끗이 지워졌다.

식당에 도착하여 가져온 돼지고기와 이 식당에서 시킨 음식으로 요기를 하는데 이번에는 대장님이 농담을 꺼낸다. 놀부가 마누라가 죽어 아주 예쁜 천하일색 미인과 결혼을 했단다. 흥부가 형수를 보려고 놀부네 집에 가서 대문을 두드리니 형수가 나오며 누구세요?” 했단다. 흥부는 당연히 흥분데요~” 했더니 형수가 다짜고짜 따귀를 때리더란다.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다 들 대답을 못한다. 그러자 대장님이 웬 남정네가 와서 자기를 보고 흥분된다고 하니 성질나서 때렸다는 것이다.

저녁까지 잘 먹고 다바오에 도착하니 12시간의 산행 피로가 일시에 몰려온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 보낸 짐이 안 왔다는 것이다. 포터들이 산에서 늦게 내려와 내일 저녁에나 호텔로 가져온다는 것이다. 짐 속에 칫솔도 있고 내일 아침 바다에 갈 때 입을 수영복도 있다고 하니 칫솔을 사다주고 짚차로 다섯 시간 걸려 밤사이에 가져오겠다고 하여 다들 방으로 흩어졌다.

 

용궁 같은 딸리굿

어제는 3000m 고지에서 놀았는데 오늘은 바다 속에서 노는 날이다. 차를 타고 부두에 내리니 팬티만 입은 아이들이 뭘 달라고 벌떼같이 달려든다. 대장님이 볼펜을 주려고 꺼내드니 밀치고 당기고 난리가 났다. 할 수 없이 현지 가이드에게 나눠 주라고 하니 얼굴을 알아서 그런지 잘 나누어준다.

배에 들어와 대장님이 동전 있는 사람 내 놓으란다. 있는 대로 내놓으니 바다에 던진다. 던지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다이빙을 하여 주워 오는데 한 마디로 귀신 잡는 해병 솜씨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좋게도 보이고 이런 애들을 우리가 가지고 노나 싶어 조금 마음에 걸리기도 하였다.

45분 정도 배를 타고 나가니 별나라에서 온 어린 왕자가 살 것 같은 섬이 나타난다. 여기에 배를 정박해 놓고 새우, , 열대과일로 요기를 하고는 섬 주위를 산책했다. 한 집에 가보니 빨래가 가지런히 널려있고 그물침대가 매어있다. 우리는 주인 허락도 없이 거기 누워 온갖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산책을 마치고 다시 배로 돌아와 산호가 많은 곳으로 이동하였다. 일부는 스노클링을 하고 5명은 스쿠버 다이빙을 하기로 했는데 사전교육을 하려니 다들 스노클링 쪽으로 가고 아무도 없다. 달랑 나 혼자서 교육을 받는데 겁이 나서 심장이 쪼그라들 판이다. 스쿠버 다이빙은 커녕 다이빙도 해본 적이 없는 생초보가 어리버리하고 있자 강사가 자기를 믿으라고 “TRUST ME. TRUST ME." 한다. 나야 별수 없으니 ”I TRUST YOU!" 하고 설마 죽지야 않겠지 하고 물로 들어갔다. 계단을 따라 반쯤 내려가자 산소통이 달린 조끼를 입혀주고 납덩어리가 붙은 벨트를 매준다.

오리발을 신고 물로 들어가니 강사가 나를 붙들고 점점 물속으로 들어간다. 처음에는 잔뜩 긴장하여 가쁘게 숨을 쉬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놓여 슬슬 주위를 바라보며 여유 있게 발을 서서히 움직였다. 그런데 무릎이 산호초에 닿자 엄청 날카롭고 딱딱하여 무릎이 살짝 긁혔다. 그 후로는 산호초 가까이 가면 무릎이 닿지 않게 조심조심했다. 강사는 노련하여 연방 괜찮으냐고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물었다. 나도 O. K 표시로 동그라미를 그리면 더 깊이 내려갔다. 바닷물 속은 그야말로 용궁 그 자체였다. 온갖 형형색색의 산호가 물결 따라 춤을 추고 화려한 열대어가 산호초 사이로 넘나들었다. 성게, 바다뱀, 큰 해삼 등등 TV에서만 보던 것이 눈앞에 펼쳐지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40분이 눈 깜짝할 사이에 후딱 지나갔다.

60 먹은 늙은 할미가 죽지 않고 살아오니 다들 용기가 생겼는지 호선생님과 배복순씨, 대장님과 이수연씨, 박이사님 이렇게 다섯 명이 한꺼번에 하겠다고 나선다. 다른 배에 있는 장비까지 빌려 모두 물로 들어갔는데 박이사님은 강사의 도움도 없이 자기가 장비를 갖춰 입고는 그냥 물로 풍덩 뛰어든다. 나중에 들으니 박이사님은 20년 넘게 스쿠버 다이빙을 했단다. 작년에 왔을 때는 강사가 예쁜 아가씨였는데 올해는 없다고 아쉬워하며 말이다.

배에 올라와 이번에는 스노클링을 하려고 호스 달린 코마개를 하고 바다로 들어갔는데 물 표면에만 있으니 춥기도 하고 산호도 별로라서 곧 나와 물기를 닦고 옷을 갈아입었다.

시간이 없다고 다섯 명은 30분 정도만 다이빙을 하고는 올라왔다. 수연씨는 더 하고 싶었는데 산소가 없다고 하여 할 수 없이 올라왔다고 하였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다들 신나게 놀고는 배로 돌아와 다바오로 향하였다.

이날 저녁은 생일 파티 해줬다고 안순자님이 저녁을 내고 박옥순님이 술을 내서 오랜만에 포식을 하였다. 새우, , 고기튀김, 나물, 오므라이스 등등 우리 입맛에 딱 맞았다. 다음 여행에도 생일 되는 사람 많았으면 좋겠다.

 

~ 상한 팍상한 폭포?

다바오에서는 호텔방에서나 레스토랑에서나 시간이 15분 정도 빠르다. 시계가 단체로 고장 났나 했더니 그게 아니란다. 다바오는 마닐라에서 남서쪽으로 떨어져 있어 해가 조금 빨리 뜬단다. 그 큰 중국도 전체가 하나의 시간으로 통일해서 쓰는데 작은 섬나라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쓰는 게 희한했다. 민다나오 섬은 얼마 전까지 반군들이 지배하고 있어서 관광객이 들어가지 못했다더니 아직도 하나의 독립국 같은 느낌이었다.

다바오 공항에 도착하여 또 몇 번씩 X-ray 투시기를 지나는데 갑자기 뒤에서 웅성웅성한다. 박옥순님이 딸리굿섬에서 산 소라껍질이 걸렸다는 것이다. 박옥순님은 할 수 없이 그냥 포기하고 안으로 들어온다.

2시간의 비행 끝에 마닐라에 도착하니 마닐라 가이드가 나와 우리를 맞는다. 공항 밖 길바닥에 앉아 다바오에서 가져온 포멜로를 까먹고 오랜만에 전체 회원이 한 버스를 타고 팍상한으로 출발하였다.

팍상한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짐을 락카에 넣고는 배에 올랐다. 17명이라 두 명씩 타면 한 명이 남는다. 박이사님이 가벼운 사람은 세 명 타라고 이름을 부른다. 나와 양숙씨, 안순자님 이렇게 셋이 한 배에 탔다. 어제 계곡 건널 때 어깨에 걸치고 물을 건너더니 근수를 다 달아봤나보다.

배가 좁으니 까딱하면 뒤집어지게 생겼다. 그랬다고 뱃전을 잡으면 주위의 바위에 손이 부딪쳐 상처를 입는다고 한다. 가이드가 가르쳐 준 대로 양손을 배 안쪽에 대고 두 다리 쩍 벌려서 손을 누르니 안정감도 있고 편했다.

세 명이 타니 사공에게 좀 미안했다. 둘이 밀고 당기며 힘들다.” “무겁다.” 하고 엄살을 부린다. 가이드는 엄살을 부려도 1불씩만 주라고 했지만 나중에 내릴 때 셋이서 1, 1000, 70페소 이렇게 주었다. 사실 물살을 거슬러 배를 끌고 올라가려니 얼마나 힘든지 땀을 뻘뻘 흘린다.

우리나라 같으면 터널을 뚫든지 산을 동강 내든지 해서 길을 냈을 텐데 순전히 인간의 힘으로 폭포까지 가는 것을 보니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폭포 앞에 도착하니 거기 있던 현지인이 따라 오라고 손짓한다. 따라가니 뗏목을 타라는 것이다. 얼떨결에 타고 보니 폭포 밑으로 들어간다. 물줄기가 내리치는데 위를 바라보니 하늘이 뚫린 듯 물이 쏟아져 내린다. 온 몸이 족제비 꼴이 되어 나와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다시 배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은 물결을 따라 흘러오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팍상한은 필리핀 말로 갈라졌다는 뜻이라는데 정말 산이 갈라진 듯 양쪽 계곡이 수직으로 서 있다. 팍상한 폭포는 팍~ 상한 폭포가 아니라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는 싱싱한 폭포였다.

마닐라로 돌아오는 길에 과일 가게에 들러 코코넛도 먹고 망고, 두리안도 먹었다. 두리안은 냄새가 고약해 차에 가지고 타지 말라고 한다. 그전에 먹었을 때는 냄새가 엄청 고약한 것 같았는데 이번에 먹어보니 냄새도 덜 나고 뒷맛이 고소한 게 먹을 만했다. 최덕희님은 갈치속젓 맛이 난다고 하였다.

마닐라에 돌아와 저녁에 무엇을 할까 하다가 유람선을 타기로 하였다. 마닐라 야경은 별 볼일 없고 밴드도 달랑 한 사람이 기타 치며 노래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우리 회원들의 라이브는 일품이었다. 배복순씨와 호선생님이 열창을 하고 나자 유애자님과 박이사님이 또 한 곡씩 뽑는다. 가사가 없어 노래 부르기가 어렵게 되자 춤판이 벌어졌다. 양숙씨와 노효선씨는 그 배의 직원과 한판 춤을 벌였는데 언제 춤들을 배웠는지 프로댄서는 저리 가라였다.

이렇게 광란의 밤을 보내고 센추리 파크 호텔로 돌아와 짐을 내리니 호텔 직원이 웬 개를 끌고 나온다. 가방 마다 냄새를 맡고는 별 일이 없자 들여가라고 한다. 문으로 들어오는데도 또 X-ray 투시기를 통과해야한다. 방에 들어와 안전금고에 여권을 넣으려니 잠기지 않는다. 마침 가이드가 왔기에 얘기했더니 호텔 직원에게 얘기해 주겠다고 하였다.

잠시 후 여자 직원이 와서 이리 저리 만져도 안 되자 또 기다리라고 하더니 남자 직원이 와서 문짝을 뜯어 고쳐 놓고 간다. 내일도 이 호텔에서 묵으니 여권을 두고 맘 편하게 다니려고 여권과 한국 돈을 넣었다.

 

아버지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따가이따이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1시간 반 거리에 피서지로 유명한 따가이따이가 있다. 따가이따이는 필리핀 원주민의 언어인 따갈로그어로 아버지의 엉덩이를 걷어찬다는 뜻이란다. 그리고 필리핀은 따갈로그어로 필리피나스 즉 스페인 국왕인 필립의 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곳은 호수 속에 분화구가 있고 그 분화구 속에 또 호수가 있다. 밖의 호수는 엄청 커서 배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안의 분화구 밑에 도달하고 여기서 말을 타고 산을 오르면 또 그 안에 호수가 있다. 그 호수 안에는 또 작은 섬이 있어 아주 특이한 지형을 이루고 있었다.

밖의 호수 근처까지는 우리 버스로 가서 주차장에 세워놓고 호수까지 지프니를 타고 내려갔는데 지프니는 마닐라의 대중교통 수단으로 짚차 같기도 하고 봉고차 같기도 한데 사람이 타는 문이 뒤에 있어 뒤에서 올라타면 요금을 앞 사람에게 전달해서 기사가 받는다고 한다. 사실 문은 달려 있지 않고 그냥 뒤가 뻥 뚫려 있어 맘대로 타고 내릴 수 있게 되어있다. 처음에는 신기하더니 조금 가자 엉덩이가 아프고 매연이 심해 별로였다.

호수가에 내려가니 말이 호수지 마치 바다와 같이 넓었다. 이번에도 4명이 한 배를 탔는데 근수 덜 나가는 사람은 다섯 명이 타라고 해서 다섯 명이 타고 신나게 달렸다. 모터보트라 물이 튀자 비닐을 주며 앞을 가리라고 한다.

호수를 건너 안쪽 분화구 아래 이르자 수많은 말과 마부가 기다리고 있었고 이번에도 체중에 따라 가이드가 정해주는 대로 말을 탔다. 내가 탄 말의 마부는 10살 정도 된 소년이었는데 뭐라고 호통을 치며 말을 능숙하게 다뤘다. 내가 겁을 내자 발란스를 잘 잡으라고 연신

발란스, 발란스한다.

산길은 좁고 말은 많아 서로 부딪치기 일쑤고 교통체증이 일어나 종종 멈추기도 한다. 이러다보니 아버지 엉덩이를 걷어차기도 할 것 같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원두막 같은 집들이 여러 개 있어 과일과 음료수를 팔고 있었다. 왼쪽으로 가니 웬 나무에 물병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 무엇인가 했더니 총을 쏘는 곳이란다. 총 가진 사람이

네 발에 만원~ 네 발에 만원~” 하며 사람을 부른다.

팍상한에서도 그랬지만 여기도 한국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필리핀에 온 건지 한국에 있는지 분간이 안 간다. 오른쪽으로 가보니 시뻘건 바위틈에서 수증기가 펄펄 나오고 있다.

다 보고 내려오니 마부와 말과 관광객이 범벅이 되어 어느 것이 내 말이고 누가 내 마부인지 찾을 길이 막연하다. 하지만 계단에서 내려오니 마부 소년이 먼저 발견하고 손을 흔든다.

이번에도 손잡이를 잔뜩 쥐고 내려오는데 이놈의 말이 힘이 넘치는지 성질이 더러운지 남이 자기 앞으로 가려면 머리로 들이받고 막 밀어낸다. 그래도 떨어지지 않고 밑에까지 겨우 내려와 다시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넜다.

되돌아오는 길은 바람은 마주 하며 달리니 더 물이 세게 튄다. 그래도 우리 배에는 비닐이라도 주었는데 이수연씨가 탄 배는 비닐도 없어 그대로 물세례를 받았단다. 배에서 내리는 수연씨를 보니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호숫가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마닐라로 되돌아 왔다. 오늘 저녁에는 또 무엇을 할까 발마사지를 할까 게이들이 하는 어메이징쇼를 보러 갈까 하다가 발마사지는 한국에서도 할 수 있으니 쇼를 보러 가기로 하였다.

저녁 식사를 느긋하게 먹고 쇼를 보았는데 여자보다 더 예쁘고 날씬한 게이들이 나와 온갖 노래와 익살스런 표정으로 관객을 웃겼다.

 

많고 많은 생일잔치

아침에 식당으로 가니 박이사님이 또 케잌을 들고 온다. 또 누구 생일이냐고 했더니 오늘은 이수연씨 생일이고 내일은 노효선씨 생일이라 두 명분 생일 축하를 한단다. 이리하야 이번 여행 일주일 동안 네 명의 생일잔치를 하게 되었다. 나도 끈질기게 따라 다니다 보면 생일 될 때가 있겠지 하며 저축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이 날은 마닐라 시내관광을 하는 날이라 먼저 필리핀의 영웅 호세 리잘이 잠들어 있는 리잘 공원으로 향했다. 리잘 공원은 우리나라 국립묘지처럼 깨끗이 다듬어진 넓은 정원이 있었고 여기가 필리핀 도로의 원점이라고 하였다.

리잘은 나를 건드리지 마라는 책을 써 필리핀 국민에게 독립의지를 고취시켰는데 이로 인해 위험인물로 낙인 찍혀 32세에 이 자리에서 총살 되었고 그 유해가 기념탑 밑에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다음은 산티아고 요새를 보았는데 이수연씨가 생일 축하 턱으로 마차를 태워줘 말을 타고 요새를 돌았다. 마침 우리가 탄 마부는 한국말을 잘 해서

여기는 옛날에 감옥, 지금은 레스토랑.”

여기는 옛날에 교회, 지금은 대학교.” 하며 설명을 잘 했다.

 

마닐라 관광까지 다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니 일주일이 몇 달은 되는 듯 길게 느껴지고 이번 여행은 물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포 산 올라가는 날도 비에 젖고 내려오는 날도 비에 함빡 젖었다. 다음 날은 딸리굿섬에서 바닷물에 젖고, 그 다음 날은 팍상한 폭포 속으로 들어가 젖고, 따가이따이에서는 호수 물에 젖었다. 이번 여행은 한 마디로 물 먹은 여행이 아니고 물 맞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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