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지리산 가는 길
이현숙(현아)
몇 십 년을 별러서 지리산 종주에 나섰다. 대학교 2학년 때 대학교산악회에서 지리산 종주를 한 후 처음으로 실로 38년 만에 종주에 나섰으니 가슴은 부풀대로 부풀었다.
이번에는 자양중학교에서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들과 함께 가기로 하였다. 지난 화요일, 비는 철철 내리는데 배낭을 지고 집을 나섰다.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여 만남의 장소 의자에 앉아 있으니 애란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34번 타는 곳으로 오라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 34번 장소를 찾아가니 미자씨와 남편, 조카, 그리고 연옥씨와 애란씨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다. 진미씨는 전남 장흥에서 백무동으로 직접 온다고 하였다.
배낭을 밑에 싣고 차에 오르니 비가 내려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다. 기사 아저씨는 우리를 보고 지리산은 통제 되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아침까지도 인터넷에는 들어갈 수 있다고 나왔다고 하며 그냥 출발하였다.
우리는 애란씨가 그날 아침 직접 볶아온 땅콩을 먹으며 희희낙락 아무 걱정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남으로 남으로 향했다. 먹을 것을 다 먹고 나는 뒤의 빈 좌석으로 옮겨가 널널하게 누워 잠을 청했다.
죽암휴게소에서 두 남자는 식사 하러 가고 네 여자는 커피 한 잔씩 하고는 차에 올랐다. 내려가면서 길을 유심히 보니 마른 곳도 있고 조금씩 비가 오는 곳도 있었지만 별로 비가 많이 내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월을 거쳐 백무동으로 가는 길은 온통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내일은 괜찮겠지 하며 백무동에 도착해 황토집이라는 민박집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별로 없으니 방 하나에 3만원씩, 2개에 6만원 내라고 하더니 아예 6만원에 세 방을 다 쓰라고 하였다. 우리야 이게 웬 떡인가 하고 두 명씩 흩어져 방으로 들어갔다. 미자씨 남편과 조카가 같은 방에 들어가고 미자씨는 나와 한 방에 들었다.
얼마 후 진미씨도 노란 비옷을 입고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문으로 들어선다. 진미씨는 애란씨와 연옥씨가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다들 모이자 슈퍼에서 삼겹살을 사다가 미자씨가 가져온 소주를 한 잔씩 마시며 내일은 제발 하늘이 걷히기를 빌었다.
하지만 새벽이 되니 천둥 번개를 치며 빗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아침 일찍 밥을 해 먹고는 배낭을 지고 주차장 쪽으로 가니 8월 7일 11시부터 지리산 전구역이 통제라는 입간판이 비를 맞고 서있었다.
하루만 빨리 왔어도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을 한 끗 차이로 우리는 발길을 돌려야했다. 할 수 없이 실상사나 보고 지리산 온천에나 가자고 버스에 올랐다.
실상사에 내리니 언제 비 왔냐는 듯이 해가 번쩍 나서 눈이 부셨다. 실상사 앞 다리를 건너며 냇물을 보니 흙탕물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 내려오고 있었다. 석장승 앞을 지나 절로 가는 길에는 연꽃이 피어 있었는데 연꽃 줄기에 빨간 점 같은 것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마도 무슨 벌레 인 것 같았는데 색깔이 너무도 선명하여 섬뜩하였다.
실상사를 둘러보고 버스 정류장으로 오니 마침 남원 가는 버스가 온다. 남원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지리산 온천 가는 버스가 있기는 있는데 1시간 반은 기다려야 한단다. 버스 터미널 의자에 앉아 빵과 음료수로 요기를 하고는 비지땀을 흘리며 끈기 있게 기다렸다.
버스에 오르니 에어컨이 나와 그래도 견딜 만 하였다. 버스는 남원을 출발하여 구례를 거쳐 지리산 온천으로 향했는데 가면서 몇 번씩 지리산 국립공원에 전화를 해도 답은 여전히 출입통제였다. 세석산장은 포기 하고 내일이라도 출입통제가 해제되기를 기다리며 지리산 온천 모텔에 들었다.
여기서도 방은 3만원씩이었는데 이곳은 9만원을 다 받는다. 두 개 빌리면 4만원씩이고 세 개 빌리면 3만원씩이라니 만원 더 내고 방 세 개 쓰는 게 낫겠다 싶어 세 개를 빌렸다. 여기 투숙하면 지리산 온천 목욕료 50% 할인권도 주니 피서 철에 이 정도면 싼 편이다. 미자씨 부부는 여기 자주 온다고 하더니 주인아주머니와도 반갑게 인사를 한다.
짐을 풀고는 산수유로 유명한 상위 마을까지 산책을 하기로 하였다. 말이 산책이지 뙤약볕에 뜨끈뜨끈한 아스팔트길을 걸으려니 땀이 앞에서 주르르 뒤에서 주르르 마치 찜질방에 들어간 듯하였다. 그전에 승용차로 갈 때는 금방인 것 같았는데 걸어가니 그 놈의 길이 왜 그리도 먼지 가도 가도 마을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 시간이 넘게 걸어 겨우 상위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슈퍼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주인에게 만복대 등산로를 물으니 지금은 계곡에 물이 많아 못 올라간다고 하였다. 내일 올라갈꺼라고 했더니 내일은 괜찮을 것 같다고 한다. 여기까지 오는 버스 시간을 물으니 9시에 여기 도착하는 버스가 있으니 온천에서는 아마 8시 50분쯤에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순환도로를 따라 내려오는데 멋진 정자가 보인다. 저기서 보면 전망이 기막히겠다고 가까이 가보니 동네 남정네들이 웃통을 다 벗고 누워 쉬고 있다. 들어가는 것은 포기하고 정자이름을 보니 산유정이라고 현판이 붙어있고 산수유 군락지에 있는 정자라고 설명도 쓰여 있었다.
온천에 도착하여 할인권을 내고 온천탕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이라 사람도 별로 없고 한산하여 우리가 완전히 전세를 낸 것 같았다. 이 탕 저 탕으로 왔다 갔다 하고 이 사우나실 저 사우나실 맘대로 휘젓고 다니다가 노천탕으로 가니 여기는 온갖 남근석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였다.
번호를 붙이고 이름도 붙였는데 왕근석에 신근석에 변강쇠 근석에 온갖 남근석이 다 있어 눈요기를 시켰다. 우리는 이걸 보며 남자 노천탕에는 뭐가 있을까? 하며 여근석도 있나? 아니 구멍 뚫린 돌이 있나? 하며 나중에 미자씨 남편에게 물어보자고 하였다.
모텔에 돌아와 물어보니 남탕에는 달랑 여자 누드 조각상 하나 밖에 없었다고 하였다. 이날 저녁도 짐을 줄인 다는 미명하에 햇반과 카레로 저녁을 때우고 낮에 사온 포도로 입가심을 하였다.
커피까지 잘 먹고는 미자씨와 남편이 또 토닥토닥 사랑싸움을 시작했고 진미씨는 집에 가서 싸우라고 양념을 친다. 미자씨는 계속 쨍쨍거리고 남편이 뭐라고 하면 또 그걸 가지고 앵앵거린다. 산에 올라가지 못하고 땅에서만 기어 다니니 짜증이 나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이럴 때 산에 올라 끝없이 이어진 능선과 꿈결 같은 야생화 밭을 바라보면 세상만사 다 OK인데 말이다. 정말 야생화가 가득 핀 천상의 낙원을 걷다보면 세상에 부러운 놈 하나 없고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산 밑에서 지지고 볶고 티걱태걱 싸우는 사람들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고 나는 신선이라도 된 듯 세상을 초월한 사람 같이 하늘로 날아오를 듯하다.
이 날도 ‘위하여’를 외치며 내일은 제발 지리산이 우리를 받아주기를 바라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눈이 번쩍 띄게 햇빛이 찬란했다. 미자씨는 일어나자마자 관리공단에 전화하니 여전히 통제란다. 우리는 어제 올라가 본 상위 마을로 해서 만복대에 오르다 보면 통제도 풀리겠지 싶어 서둘러 아침을 해먹고는 모두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여관집 아줌마는 8시 반에 차가 있다더니 40분에 버스가 하나 왔지만 상위 마을은 안 간단다.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니 한 시간은 있어야 온다고 그냥 걸어가라고 한다. 우리는 무거운 배낭을 지고 한 시간씩 걸어갈 생각을 하니 엄두가 안 나 택시를 부를까 하다가 어제 상위마을 슈퍼 아저씨가 상위마을에 9시에 도착하는 버스가 있다고 한 것이 생각나 10분만 더 기다리기로 하였다. 과연 8시 50분이 되니 상위마을 가는 버스가 와서 구세주를 만난 기분으로 버스에 올랐다.
산행 할 마음에 기분이 부풀어 토시도 끼고 지팡이도 만들고 하다가 버스에서 내려 마을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몇 십 미터도 못 가 동네 아저씨가 계곡에 물이 많아 못 간다고 한다. 우리는 가다가 계곡을 못 건너면 되돌아오자고 그냥 올라갔다.
또 몇 미터를 못 가 샛길금지 표지판이 나타난다. 미자씨는 이거 어기면 1인당 50만원씩 벌금이라고 되돌아가자고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거기에 표시된 27개의 길을 제외한 샛길은 금지라는 뜻이고 우리가 가는 만복대는 금지구역이 아니었다. 다시 몇 미터를 가니 계곡이 나타났는데 아저씨 말대로 계곡물이 장난이 아니었다.
미자씨 남편은 그 위에 다른 길이 있나 찾으러 올라가고 일부는 내려가고 나는 중간에 서 있었는데 미자씨 남편이 내려오며 위에도 전혀 건널 곳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포기를 하고 내려오는데 아래 있던 사람들 말이 그 집 아줌마도 올라가지 말라고 말리더란다. 아줌마가 말리니 아저씨는
“그냥 둬! 나라에서 그렇게 말려도 아프간까지 가는데 우리가 말린다고 듣겠어?”
하며 화를 내더란다.
요즘 아프간에 갔다가 탈레반에게 인질로 잡힌 선교봉사단 때문에 전 세계가 떠들썩한데 이 산골에 사는 사람들까지 그 사실이 뇌리에 깊이 박혔나보다. 벌써 목사님 한 분과 스물아홉 살 된 청년까지 살해되고 협상은 지지부진하여 언제 또 희생자가 날 지 모르는 판국이다. 3주가 넘도록 이렇게 질질 끌고 협상은 진전이 없으니 가족들은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다시 어제의 순환도로를 따라 정자에 오니 오늘은 아무도 없어 거기에 배낭을 풀고는 미자씨 가족은 그냥 정자에 있겠다고 하여 넷이서만 저수지에 가보자고 길을 따라 내려왔다.
저수지를 보고 정자에 돌아와 아껴두었던 곶감과 잣, 코코아파이 등을 다 먹어 치우고 커피까지 끓여 마시고는 배낭을 지고 온천 마을로 향했다. 미자씨 남편과 조카가 나란히 걷는 걸 보니 부자(夫子) 같이 다정해 보였다.
내려오다가 폭포 같은 곳에서 발을 씻고 다시 온천마을로 오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비도 피할 겸 온천 마을에서 대나무통 밥을 먹으며 다시 한 번 전화해보자고 했더니 그렇지 않아도 미자씨가 다시 전화를 했는데 아저씨가 버럭 화를 냈다고 한다.
대나무 통 속에 넣어 구운 삼겹살과 조껍데기 술까지 먹고 다시 버스 정류장에 나와 마지막으로 NEW VOICE로 한 번 더 해보자고 내가 전화를 하니 통화중이다.
잠시 후 애란씨가 다시 해보니 이번에는 여자가 아주 친절하게 받더란다. 역시 통제중이다. 식당 아줌마가 1시 30분에 온다던 버스는 2시 15분이나 되어 왔고 그새 또 비가 퍼부었다. 구례 가는 버스를 타고 구례읍 버스 터미널에 내려 진미씨는 대구의 자기 집으로 향하고 여섯 명은 기차 시간이 임박해 택시를 탔다.
구례구역에 와서 내일로 예약된 기차표를 하루 앞당겨 달라니 마침 좌석이 있어 표를 준다. 표를 받고는 화장실에 들러 오늘 혹시 노고단 대피소에 들어가면 내일까지 입으려고 팬티에 붙였던 팬티라이너를 쭉 뽑아 버리고 개찰구로 나왔다.
개찰을 할 때 개찰구 앞에서 만삭이 된 철도 직원이 서서 좋은 여행 되라고 인사를 하는데 공연히 미안하고 송구스럽다. 이렇게 까지 안 해도 되는데 싶으면서도 대우를 받는 것 같아 기분은 좋았다. 기차를 기다리고 있자니 갑자기 패배자가 된 듯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였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흩어진 이름이여
그대 이름은 지리산이여
하고 어디선가 배웠던 시구가 떠오른다. 물론 그 시에서는 지리산이 아니지만 다음 구절은 잊어버렸다.
용산역에 도착하여 냉면으로 요기를 하고는 전철을 타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며 생각하니 이번 여행은 종주는 못했지만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항상 3박자가 맞아야 여행도 산행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시간 있고, 돈 있고, 건강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다. 4박자가 맞아야한다. 날씨가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산이 나를 받아주지 않는데 내가 어찌 그 품에 안길 수 있느냐 말이다. 다음에 언제 또 이런 기회가 나에게 찾아올지 모르지만 그 때는 ‘MR.지(지리산)’가 나를 꼭 받아줬으면 좋겠다.
우리네 인생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가 계획한 대로 살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이런저런 주위환경에 의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싶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다. 모든 물길은 바다로 통한다. 우리네 인생길은 어디로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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