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신안 앞바다의 다이아몬드
이현숙(李賢淑)
신안 앞바다의 비금도 도초도 하의도 태도 장산도 안좌도 팔금도 암태도를 이어보면 거대한 다이아몬드 형태를 이룬다. 이 섬들은 다이아몬드 형태를 이룰 뿐 아니라 실로 다이아몬드보다 더 아름다운 보석 중의 보석이다. 모처럼 좋은 기회가 찾아와 일중산악회 회원들과 나들이에 나섰다.
수요일 저녁 5시 여섯 명이 잠실역을 출발하여 분당에 들러 네 명을 더 태운 후 남으로 남으로 달렸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정읍까지 간 후 국도로 나와 서해안 고속도로 선운산 IC로 향했다.
밤 10시가 넘어 정읍 톨게이트를 나왔는데 대장님이 갑자기 노견에 차를 세운다. 무슨 일인가 하고 모두 밖으로 나오니 길옆에 타이어 공기압 측정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호기심 많은 대장님 이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타이어의 공기압도 측정해보고 공기를 넣었다 뺐다 한참 싱갱이를 한다. 수제자 연희씨는 후레쉬를 비추고 온도계처럼 생긴 측정기의 눈금을 들여다보며 이쪽 바퀴가 얼마다 저쪽 바퀴가 얼마다 하며 둘이 이리 저리 왔다 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삼매경에 빠졌다.
내일 모래 이틀 동안 장맛비가 내린다는데 안전 점검 하는 것도 좋겠다 싶기도 하지만 속으로는 빨리 가서 잠이나 잤으면 싶기도 했다. 한참 주무르더니 네 바퀴 압력을 다 맞췄다고 타라고 한다.
얼마를 더 달려 목포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그런데 곧바로 여관으로 들어가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여관에 우리가 도착했다고 전화를 해 놓고는 유달산으로 올라갔다. 노적봉 아래 차를 세우고 노적봉으로 오르다가 여자의 거시기를 똑 닮은 나무도 보고 새천년을 기념하여 만든 커다란 종도 보았다. 조명발을 받아 수시로 색이 변하는 유달산은 낮과는 또 다른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날은 이래저래 밤 1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에 아침을 먹고는 7시에 비금도 가는 배에 올랐다. 구름은 많았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유달산을 뒤로 하고 외달도 옆의 별섬을 바라보며 우리의 배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나아갔다. 별섬을 바라보면 항상 어린 왕자가 떠오른다. 별섬이란 이름 때문인지 별섬의 모양이 어린 왕자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그림을 닮아서 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비금도에 도착하자 대장님은 차를 모는 지 비행기를 모는 지 분간이 안 가게 바람을 가르며 질주한다. 해안선에 있는 길의 끝까지 갔다가 다시 나와 오래 된 팽나무도 보고 염전도 보고는 선왕산 밑에 당도했다.
그림산을 지나 선왕산까지 가는 길에는 패랭이꽃, 원추리, 꿩의 다리, 계요등, 산혜박나무, 돌가시나무, 타래난초, 짚신나물, 물레나물, 등골나물, 바위 채송, 참나리, 엉겅퀴, 며느리밥풀꽃,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꽃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용옥씨는 어쩌면 그렇게도 야생화 이름을 잘 아는지 절로 탄성이 나온다. 한 마디로 야생화 박사다.
야생화는 보면 볼수록 그 자태가 너무도 아름다워 살아있는 보석이란 생각이 든다. 정말 어떤 보석도 이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뒤로 발랑 제치고 몸매를 자랑하는 참나리를 보면 너무도 요염하고 섹시하여 마음이 설렌다. 어쩌면 그렇게도 자신감에 넘치고 당당한지 한 수 배우고 싶다.
엉겅퀴에 앉아 한창 사랑을 나누는 나비를 보면 남들이 들여다보는지 사진을 찍는지 모르고 독서 삼매경 아니 사랑 삼매경에 빠졌다. 인류의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더니 나비의 역사는 낮에 이루어지나보다.
안개에 싸인 그림산은 그림보다 아름다운데 가끔씩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는 기암괴석은 사람의 얼굴도 같고 돼지의 얼굴도 같고 별별 기기묘묘한 형상을 이루고 있다.
그림산을 내려와 나지막한 안부에서 대장님과 윤영자님은 하산하고 나머지 여덟 명은 계속 선왕산으로 향했다. 갑자기 대장님이 없어지니 자신감이 없어지고 안개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은 아닌가 더럭 겁이 난다. 그래도 용감한 연희씨가 앞장서서 길을 찾으며 계속 나아가니 어느 덧 뿌연 안개 속에 선왕산 정상 표지석이 나타난다. 여기까지 오니 안심이 되어 가져 온 과일과 물을 먹고 하산을 서둘렀다.
능선에서 하누넘해수욕장으로 내려오는 길은 잘 다니지 않아 가시나무와 거미줄이 많았다. 덤불숲을 헤치고 얼마를 내려오니 비닐하우스가 나타나고 대장님 차가 보인다. 안개와 바람 속에서 몇 시간을 헤매다가 대장님과 윤영자님을 만나니 몇 달 전에 헤어진 사람을 만난 듯 반갑기 그지없다.
하누넘해수욕장은 일명 하트해수욕장이라고도 하는데 전망대에 올라가서 보니 말 그대로 완벽한 하트모양이었다.
비금도에서 다리를 건너 도초도 시목해수욕장을 둘러본 후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는데 배 시간을 맞추느라 달리다보니 과속 방지턱이 나타날 때마다 차가 튀어 오른다. 대장님은 “엉덩이 들어요.”를 외치랴 운전하랴 입도 바쁘고 손도 바쁘고 발도 바쁘다.
점심도 못 먹고 미친 듯이 휘돌아 치다가 배에 올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따끈따끈한 전기장판 위에 누우니 잠이 솔솔 찾아온다. 배부르고 등 따시니 천하를 얻은 듯 세상에 부러운 놈 하나 없다. 자다 일어나 보니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우리의 배는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뿌연 안개 속을 달리고 있었다. 장마전선이 내려온다더니 남해까지 내려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우리가 팔금도에 도착하니 비가 뚝 그쳤다.
오늘은 북쪽 끝에 있는 자은도에서 자고 내일 두봉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그런데 대장님은 팔금도에서 북쪽으로 갈 생각을 안 하고 남쪽에 있는 안좌도로 방향을 돌린다. 우리는 안좌도는 뭐 하러 가느냐고 안자도 모르고 서도 모르는데 그냥 가자고 해도 대장님은 안좌도 남쪽 끝 복호리까지 가서 길이 바다 속으로 사라져야 되돌아온다.
올라오다가 또 우목리 방조제 끝까지 가서 내우목도 외우목도까지 다 돌아보고 길바닥에 비닐봉지를 깔고 수박을 깨먹고 나서야 북으로 기수를 돌렸다. 이번 우리 차에는 용이 네 마리(대장님, 박용옥씨, 이상화씨, 이순희씨)다. 넷이서 무슨 조화를 부리는지 배만 타면 쏟아지고 내리면 뚝 그치고, 차만 타면 쏟아지고 내리면 또 그친다.
다시 팔금도로 건너와 빗속을 달려 암태도를 지나 자은도로 향했다. 농협 주유소 아저씨가 가르쳐준 대로 자은도에 있는 대성장에 숙소를 정한 후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그런데 대성장 주인이 가르쳐준 횟집을 찾아 헤매느라 은암대교(자은도와 암태도 사이 다리)를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다가 다시 전화를 걸어 겨우 횟집을 찾아 들어갔다.
요즘이 민어 철이라고 하여 민어를 시켰는데 회를 어찌나 두껍고 크게 썰었는지 무슨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는 것 같았다. 그래도 맛은 일품이라 모두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뚝딱 해치웠다. 매운탕까지 정신없이 다 퍼 먹고는 배 두드리며 차에 올라 다시 은암대교를 건너 대성장으로 향했다. 이날 이래저래 이 다리를 다섯 번이나 건넜다. 하지만 안개에 젖은 다리는 천상으로 이어진 듯 환상적이었다.
어제는 한 방에 다섯 명 네 명이 잤는데 오늘은 세 명씩 잤다. 내일은 늦게 일어나도 된다고 하여 마음 편히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식사를 8시에 하기로 했는데 6시에 잠이 깬다. 다시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연희씨 양숙씨와 아침 산책을 나갔다. 면사무소도 보고 남의 집 안마당에 들어가 사진도 찍고 하다가 저수지 같은 것이 보여 그리로 올라갔다. 마침 밭에서 어떤 아저씨가 밭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주변머리가 없어 아무 말도 없이 지나려는데 연희씨가
“아저씨 이 넓은 밭을 다 혼자 농사 지으세요?” 하고 말을 건다. 아저씨는
“아니 집사람하고 같이 짓지.” 하시며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서울서 왔다고 하며 저수지 쪽으로 올라가니 아저씨가 따라오며 이리 가면 초등학교가 나오고 이리 가면 절이 있다고 하면서 안내를 해준다. 조금 올라가니 저수지 옆에 등산 안내도가 나타난다.
이 아저씨는 우리가 두봉산을 어디로 올라가면 좋으냐고 물으니 등산안내도를 가리키며 이리 가면 풀이 많고 이리 가면 바위가 많고 이리 내려오면 차를 가지러 오기 힘들다고 하며 신이 나서 설명을 한다.
우리는 등산로 입구를 미리 알아 두어 잘 됐다고 하며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갔다. 식사 후 차를 타고 우리가 알아둔 초등학교 앞에 차를 세우고 두봉산 산행을 시작했다. 장마전선이 남하해 비가 많이 올 것이라는 예보와는 달리 어제 저녁까지 퍼붓더니 말끔히 개였다.
참깨꽃이 만발한 밭 사이를 지나 두봉산으로 오르는 길은 온통 앵두밭이었다. 앵두를 따 먹느라고 도무지 속도가 붙지를 않는다. 급기야 김정숙님이 앵두에 눈이 멀어 한눈을 팔다가 발라당 누워 버렸다. 어제는 고사리 꺾느라 여념이 없더니 오늘은 앵두로 품목을 바꿨다.
여기도 온갖 야생화가 눈길을 끌었는데 등골나물, 청미래덩굴, 딱지꽃, 예와 덕을 갖춘 예덕나무, 그리고 버섯이 엄청 많았다. 성제봉(성제봉에 대장님 아들은 없었음)을 지나 정상에 오르니 다도해의 아련한 섬들이 꿈결처럼 발아래 펼쳐졌다.
도명사로 내려와 대장님은 택시를 불러 차를 가지러 가고 우리는 절 마당 평상에 앉아 남은 간식을 먹었다. 스님께도 간식을 나누어 드렸더니 고맙다고 안에 갖다 두신다.
대장님이 차를 가져와 옷들을 갈아입고는 분계해수욕장을 보고 여섯 번째로 은암대교를 건너 암태도로 넘어갔다. 오도선착장에서 3시에 목포 가는 배가 있다고 하여 그야말로 차가 부서질 듯이 달려 5분 전에 도착했는데 이럴 수가? 선착장에 있는 할아버지 왈 여기서 타고 내리는 손님이 없어 배에 연락하여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우리는 멍하니 있다가 남강선착장에서 4시 20분에 떠나는 배가 있다고 하여 남강선착장으로 갔다. 이번에는 미리 표를 끊어 놓고 잠시 쉬면 어디가 덧나나 또 추포해수욕장으로 간다.
다들 점심을 굶어서 연희씨는 바지락 타령이고 양숙씨는 옥수수 타령이다. 흥부집 자식들처럼 생각나는 게 먹을 것 밖에 없나보다. 한참을 달리다가 어떤 아주머니가 짐을 잔뜩 이고 가는 것을 보고 대장님이 차를 세운다. 어디까지 가느냐고 타라고 했더니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탄다. 어디서들 왔느냐고 하여 서울서 왔다고 했더니 자기 아들도 서울 타워팰리스에 산다고 하였다.
추포도로 건너가는 다리는 밀물 때는 잠기고 썰물 때는 나타나는 잠수교였다. 마침 썰물이라 다리가 드러나 있었다. 밀물이 되어 다리가 잠기면 어쩌려고 대장님은 겁도 없이 건너간다. 건너가서 무조건 우측 끝까지 달려갔다. 가는 길에 회원들은 또 감자 삶는 냄새가 난다고 하며 감자를 사먹자고 하였다. 막다른 집 마당에는 화덕은 있었지만 불 피운지는 언제인지 불씨도 없건만 하도 배가 고파 헛것이 보인 게 아니라 헛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주인아저씨에게 혹시 감자 삶지 않았냐고 했더니 안 삶았다고 하며 왜 그러냐고 한다. 점심도 못 먹어 배고파서 그런다고 했더니 그 썬글라스와 모자만 팔아도 실컷 먹을 텐데 왜 못 먹었느냐고 한다. 우리를 아주 불쌍한 사람으로 보았나보다.
그러면 수박이라도 사먹자고 하여 주인아줌마에게 수박 없냐고 했더니 밭에 들어가 하나를 따온다. 돈을 주려니 받지 않아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과자를 주고는 다시 선착장으로 향했다. 잠수교를 놓쳐 달리다보니 반대쪽 끝까지 갔다. 다시 돌아오다 보니 아까 그 집이 또 나온다. 아저씨가 웬일인가 쳐다보기에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왔다고 하니 기가 차서 웃는다.
이번에는 주의 깊게 길을 살피며 다시 와보니 잠수교가 보인다. 다행히 아직 물이 들어오지 않아 분, 초를 다투며 선착장으로 달리는데 그야말로 무슨 007영화를 찍는 것 같았다.
엉덩이 깨지지 않게 방지턱이 나타날 때마다 엉덩이를 들며 바람같이 달려 선착장에 도착하니 아직 배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시간보다 좀 늦게 도착하여 느긋하게 배에 오르니 대장님은 피곤하다고 수박도 마다하고 쉰다고 차로 들어가시고 우리들은 배 안의 선실 바닥에 앉아 수박을 잘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오징어도 두 마리 사서 뚝딱 해치우고는 바닥에 누우니 스르르 잠이 온다.
얼마를 자다가 깨보니 우리 배는 벌써 외달도를 지나는지 눈에 익은 별섬이 보인다. 여기서 얼마를 더 오니 등대가 나타나고 목포의 유달산이 점점 커진다. 바다에서 들어오며 유달산을 보니 그저께 노적봉에 올랐던 것이 몇 달 전 일처럼 아득하고 아기가 어머니 품으로 들어오듯 포근한 느낌이 든다. 한 두 번 보고도 이런 느낌이니 목포 사람들에게 유달산은 얼마나 정겨운 존재일까? 그야말로 피안의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일 것이다.
목포에 내려서 저녁 먹자던 약속도 물거품이 되고 시간이 늦었다고 그냥 달리다가 고창휴게소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짬짬이 자며 쉬며 놀았지만 대장님은 새벽부터 오밤중까지 뛰고 달리고 운전했으니 얼마나 피곤할까 싶었다. 잠실에 도착하니 11시가 다 됐다.
이번 여행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바쁘고 힘들었지만 스릴 넘치고 재미있고 그야말로 다이아몬드 같은 귀하고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이런 기회가 오면 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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