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07. 6. 27. 동유럽 여행기

아~ 네모네! 2012. 10. 13. 15:29

 

 

 

 

 

 

 

 

 

 

 

 

 

 

<기행문>

동유럽 여행기

이현숙(李賢淑)

우리 친정은 딸 여섯에 아들이 하나다. 난생 처음으로 딸 넷이서 해외여행 길에 올랐다. 언니는 9년 전 미국에서 암으로 세상을 떴고, 막내는 일이 있어 네 자매가 부푼 가슴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서 제자 상봉하다.

남편 차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바로 밑의 동생 혜숙이가 벌써 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의정부 사는 혜숙이는 송추 뒤쪽 길이 열려 생각보다 엄청 빨리 도착했다고 하였다. 세중여행사 직원이 있는 곳으로 가보니 여행 일정표와 우리 이름이 적힌 꼬리표를 나눠준다.

둘이 앉아 수다를 떨다보니 셋째 동생 재숙이와 넷째 동생 미경이도 곧 나타난다. 145분 비행기를 타면 3시나 되어야 점심을 줄 것 같아 의자에 앉아 준비해간 간식을 먹는데 인솔자 허은정씨가 어디 있느냐고 전화를 한다. 의자에 앉아있다고 하니 몇 번 창구 앞으로 오라고 한다.

인솔자를 만나 짐을 부치고 안으로 들어가 면세점을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가 관절에 좋다는 샤크를 샀다. 같이 산에 다니는 연희씨가 상어연골로 만든 샤크가 좋다기에 여기 저기 뒤져서 두 통 샀다. 혜숙이도 무릎이 아프다고 두 병 사고는 의자에 앉아 쉬다가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 앉아 밥 주기 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스튜어데스가 내 앞에 오더니 구의중학교에 근무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나에게서 물상 수업을 들었단다. 1988년 올림픽이 있던 해에 구의중학교에 갔으니 근 20년 전 일이다. 명찰을 보니 김익경이라고 쓰여 있는데 하도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낯이 좀 익었다.

제자는 불편한 점 없느냐고 하더니 땅콩을 네 보따리나 가져와 우리에게 주고 잠 잘 때 쓰라고 귀마개도 네 개 가져다준다. 32년을 이 학교 저 학교 돌아다녔더니 도처에서 제자가 나타난다. 갑자기 제자를 만나면 어른이 된 제자에게 반말하기도 미안해서 어정쩡한 존대말이 나간다. 그러면 제자들은 좋아할라나 섭섭해하려나 모르겠다.

그래도 내 제자가 이렇게 사회 도처에서 한 가지 일을 맡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뿌듯한 게 기분이 좋았다. 어떤 때는 내 인생 아무 것도 한 일이 없고 헛살았다 싶을 때가 있는데 뭐가 남아도 남기는 남는 모양이다.

11시간 동안 비빔밥도 먹고 생선까스도 먹고 수필교실 숙제 하느라고 책도 읽으며 온 몸을 비틀다보니 어느 새 프라하 공항이다. 저녁 6시가 넘었는데도 한낮이다.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부르노로 이동하여 호텔 방에 누우니 온몸이 나른한 게 정신이 멍멍했다. 이날은 하루 24시간이 아니라 35시간이 되었으니 몸이 정신을 잃을 수밖에 없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아침 940분이나 되어야 출발한다고 하여 동생들과 아침 산책에 나섰다. 호텔 뒤로 돌아가니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그 옆으로 산책길이 있었다. 어쩌다 강아지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 조용하고 한적했다.

풀숲으로 나있는 가는 오솔길을 따라가며 사진도 찍고 수다도 떨며 가는데 한 남자가 멋있는 개를 끌고 앞에서 오다가 우리가 오자 옆으로 피해준다. 고맙다고 하며

"PHOTO?" 하면서 카메라를 들어 보이니 “O.K" 하고 포즈를 취해준다.

해외여행 다니면서 말도 안 되는 콩글리쉬로 한 마디씩 지껄여도 다 알아 듣는 걸 보면 참 신통방통하다.

호텔을 출발하여 아우슈비츠로 가는 길은 흰색과 붉은 색의 양귀비 밭이 끝없이 펼쳐져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을 보는 듯 했다. 푸른 초원에 노니는 말과 거니는 사람을 바라보니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후 보기에 참 좋았더라고 기록된 성경구절이 떠올랐다. 정말 내가 보기에도 너무 좋았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하니 무수한 굴뚝이 박혀있는 건물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무심히 서 있었다. 쉰들러리스트에서 본 유대인들의 처참한 광경이 떠올라 뭔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한 건물 앞에는 이스라엘 국기로 몸을 감싼 청년들이 보였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수용소의 모든 관리를 맡고 경비도 부담한다고 하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무수한 구두와 안경과 가방들이 쌓여있었는데 60년이 넘도록 잘 보존된 것도 놀랍고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머리카락은 땋은 머리, 생머리, 어른 머리 아이 머리등 색깔도 다양했다. 머리카락은 왜 모았을까 했더니 이것으로 천을 짜서 옷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어찌 이런 아이디어까지 떠올랐는지 정말 기가 막히다.

또 한 방에는 성기가 없는 아이들이 서 있는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이것은 생체 실험을 하기 위해 성기를 제거한 아이들이라고 하였다. 세 방을 돌아나오는 동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인간이 이렇게 까지 사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하나님이 나중에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다는 성경구절이 떠올랐다. 내가 그 시절에 거기에 있었으면 나도 똑같은 행동을 했을지 모른다. 과연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선악과를 따 먹어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모양이다. 선과만 따 먹었으면 좋으련만......

 

가스실과 시체를 태우는 화장터까지 다 보고 무거운 마음으로 아우슈비츠를 출발하여 크라코프로 향했다. 크라코프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도시라고 하였다. 여기서 시청사 탑과 직물회관, 마리아 성당을 보았는데 중앙광장에는 예츠키비치라는 시인의 동상이 서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동상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했을 텐데 여기 사람들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동상에 기어 올라가 사진도 찍고 놀고 있었다. 우리도 용기를 내어 동상에 올라 사진을 찍고는 자유 시간을 주기에 구 시가지를 걸었다.

걷다가 아이스크림을 사먹자고 5유로짜리를 들고 4개에 얼마냐고 물으니 웃으며 5유로라고 한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을 받으려니 뭐라고 하며 주지를 않는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 자꾸 받으려고만 하니 동생이 뒤에 있다가 그거 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아이스크림 과자 밑 부분에 작은 원추모양의 꼭지가 있는데 그걸 파는 사람이 잡고 위의 과자 부분만 잡으라는 소리였다.

“WITHOUT THIS! WITHOUT THIS! "

하는데 그게 왜 그렇게도 안 들리는지 생각할수록 한심했다.

그래도 무사히 아이스크림 네 개를 받아 한 개씩 들고 길바닥에서 먹으니 어린 아이가 된 듯 마냥 즐거웠다.

 

저녁을 먹은 후 딸이 몇 달 전에 준 맛사지 팩을 네 명이 모두 얼굴에 처덕처덕 바르고는 침대에 누워있으니 웃음이 절로 났다. 웃으면 얼굴에 주름 생긴다고 웃지 말자고 하면서도 자꾸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어 자꾸 웃으니 아마 주름살 열 개는 더 생겼을 것이다.

땅속 소금 도시

폴랜드는 폴은 평지, 랜드는 땅, 그러니까 산이 없는 평평한 땅이라는 뜻이란다. 폴랜드는 옛날에 바다였는데 이것이 융기하면서 암반과 암반 사이에 바닷물이 남아 굳어져 소금광산이 생겼다고 하였다.

소금 광산에 들어갈 때는 사진 촬영 티켓을 끊어야하는데 1인당 4유로라고 하였다. 우리는 다 끊기 아까워서 재숙이만 끊고 들어갔다. 이 광산은 지하 468m까지 파 들어갔는데 우리가 들어간 곳은 135m까지였다. 그런데 이 속에 괴테, 요한 바오로 2세 등 온갖 사람들의 소금 조각상이 있을 뿐 아니라 성당, 매점, 연회장, 쇼팽의 음악이 나오는 음악당 등 없는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완전한 하나의 도시를 보는 듯 했다.

관람을 다 마치고 지상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는 말이 엘리베이터이지 사방이 철판으로 된 화물승강기 같았다. 그 속에 콩나물시루같이 빼곡히 들어가 올라오려니 아우슈비츠의 유대인이 된 것 같았다.

크라코프를 떠나 슬로바키아의 타트라국립 공원으로 갔다. 우리가 투숙한 호텔이 호숫가에 있어 저녁 식사 후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여자들 넷이서만 해외여행 나와 신나게 놀자니 집에 있는 네 남자들 생각이 떠올랐다.

야 남편 잘 만나서 이렇게 여자들끼리 해외여행 하는 거다. 보태준 건 없어도 보내준 것만도 어디냐?” 하니 동생들도 그렇다고 맞장구를 친다.

호수 위에 붉은 구름과 호텔, 나무들이 비쳐 그야말로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하였다. 검푸른 하늘에는 상큼한 초승달과 초롱초롱한 금성이 어우러져 금상첨화를 이루고 있었다.

 

샴페인으로 축배를 들다.

아침에 호수 한 바퀴를 더 돌며 일출을 보자고 4시 반에 일어나 호텔 문을 나서려니 문이 잠겨 열리지 않는다. 로비에 있는 호텔 종업원에게 문 좀 열어달라고 하려니 의자에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좀 미안 하긴 하지만

“HELLO, HELLO" 하고 부르니 부스스 깬다. 우선

“SORRY" 한 다음

“OPEN THE DOOR." 하니까 나와서 문을 열어준다.

나오면서 생각하니 아차 내가 너무 명령조로 말했구나. 끝에다가 PLEASE를 붙여야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말하고 나면 나중에 생각이 난다.

어제는 반 시계방향으로 돌았으니 오늘은 시계방향으로 돌자고 하며 또 한 시간을 돌았다. 하지만 아침 해를 받은 호수는 어제의 신비감을 상실하고 있었다.

이날은 장장 여섯 시간이나 버스를 타며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이동했는데 인솔자 허은정씨가 가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글루미썬데이라는 영화를 틀어줬다. 주인공이 유대인이고 끝에는 결국 아우슈비츠로 끌려가는 영화 내용과 그야말로 글루미한 음악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지금도 그 음악이 귀에서 맴돈다.

헝가리 사람들은 마자르족으로 우랄산맥에서 목축을 하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4세기에 훈족들이 유럽으로 쳐들어왔을 때 훈족의 난폭함을 기억하고 있던 유럽 사람들이 혼동하여 이들도 훈족인 줄 알고 훈가리아라고 불렀고 이것이 헝가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부다페스트에서는 고깔 모양의 지붕이 인상적인 어부의 요새와 마차시 성당 등을 보고 시체니 온천으로 갔다. 온천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처럼 목욕탕인 줄 알았더니 수영장 같았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영복을 입고 들어갔는데 수영하는 사람은 없었다. 실내에는 온도별로 서너 개의 탕이 있어 여기 저기 모두 들어가 보고 사우나 실에도 들어가 보고 밖으로 나왔다.

모처럼 한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다뉴브강에 유람선을 타러 갔다. 아프리카 잠베지강 유람선, 파리의 세느강 유람선, 베트남의 메콩강 유람선 등등 해외에서는 유람선을 많이 탔는데 한강 유람선은 여태 못 타 봤으니 참 아이러니하다고나 해야 할까? 원래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건 매력이 없나보다.

유람선까지 타고 호텔방으로 들어오니 동생이 우리 방에 와서 세중여행사 이재찬이란 사람이 과일 바구니를 방에 들여놓았다고 한다. 남편 고등학교 동창이 세중여행사 사장이라더니 이 사람이구나 싶어 동생 방에 모여 과일과 샴페인 파티를 벌였다. 그런데 코르크 마개를 따는 도구가 없어 재숙이가 칼과 꼬챙이로 후벼 팠다. 오직 먹겠다는 일념 하에 몇 십 분을 씨름한 결과 드디어 코르크를 병 안으로 밀어 넣고 샴페인을 따라 마시며 이제부터 매년 한 번씩 나오자고 다짐을 하였다.

 

샴페인 먹으니 똥도 잘 나온다?

아침에 일어나니 혜숙이가

샴페인 먹으니 잠도 잘 오네.” 한다.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 다녀온 나도

샴페인 먹으니 똥도 잘 나오네?” 하니 또 웃음보가 터진다.

호텔이 부다페스트 시내 한 복판에 있다 보니 아침에 마땅히 산책할 곳이 없었다. 길바닥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체리가 있어 사려고 하니 유로를 안 받는다. 기차역에 가서 미경이는 배터리를 샀는데 여기서는 유로를 받았다. 나도 딸이 우표 사다 달라던 생각이 떠올라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다가 한 가게에 들어가니 우표는 있는데 유로를 안 받는다고 하여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아침 식사하러 식당에 가니 웬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지 완전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 와중에도 먹을 것은 다 먹고 방에 와 짐을 가지고 내려가려니 두 개 밖에 없는 엘리베이터가 하나는 고장 나고 하나만 쓰려니 사람이 많아 실을 수가 없다. 결국 나만 타고 짐을 네 명분 모두 실은 후 밑에 가서 짐을 내렸다.

버스에 올라 떠나려 하는데 혜숙이가 썬크림을 방에 두고 왔다고 하여 다시 호텔로 들어가 직원을 데리고 방에 가보니 없다고 그냥 왔다. 나중에 배낭을 열더니 거기 있다고 하였다. 나도 정신이 없어 옷도 식당에 그냥 두고 왔었는데 모두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버스에 올라 오늘은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향했다. 부타페스트도 어찌나 교통체증이 심한지 거의 주차장 수준이었다. 시내를 벗어나 시원한 들판이 나타나니 속이 확 뚫리는 듯 후련했다. 들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을 보니 소가 우리를 보면 얼마나 멍청하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넓은 들판을 놔두고 굳이 굳이 머리를 쳐박으며 시내로 몰려들고 있으니 얼마나 우습냐 말이다.

매일 국경을 넘다보니 여권에 도장만 가득 찍힌다. 그래도 여기서는 출입국 직원이 도장을 들고 직접 차에 들어와 찍어주니 훨씬 수월하게 국경을 통과하였다. 오스트리아는 오스트이스트즉 동쪽이란 뜻이고 는 땅이란 뜻 즉 동쪽의 나라라는 뜻이란다.

비엔나에 도착하여 쉔부른궁전을 보았는데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아담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어 여기 저기 사진을 찍었는데 햇빛이 어찌나 강한지 살이 익어버리는 것 같았다. 쉔부른궁전은 합스부르그왕국 황제의 사냥 궁전이었는데 의 뜻은 아름다운이고 부른은 샘물이란 뜻, 즉 아름다운 샘 또는 좋은 샘물이란 뜻이라고 하였다. 하긴 사냥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먹으면 달지 않은 샘물이 어디 있으랴?

비엔나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많은 음악가들이 활동한 예술의 도시라고 하였다. 이날 일행 중 몇 명은 음악회에 가려고 저녁식사를 일찌감치 끝내고 버스를 기다렸지만 우리 버스가 늦게 오는 바람에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대신 전망대에 올라 비엔나 전경을 바라보고 일찍 호텔로 돌아왔다.

이 날도 어제 남은 과일로 후식을 잘 먹고는 얼굴에 또 덕지덕지 바르고 누워 수다를 떨다가 남편, , 아들에게 엽서를 썼다.

 

깨지 못한 징크스

아침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니 보리밭에서 토끼 두 마리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놀고 있었다. 우리도 보리밭 사이로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가 호텔에 와 어제 쓴 엽서 세 장을 부쳐달라고 하니 3.25 유로라고 한다. 외국에서 엽서를 써서 부치면 우표에 그 나라 소인까지 찍히니 더 좋다.

이날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지인 짤즈캄머굿으로 이동하였다. 짤즈는 솔트 즉 소금이란 뜻이고 캄머굿은 창고라는 뜻이란다. 가는 도중 인솔자 허은정씨가 자기는 여기 올 때마다 비가 오는데 오늘은 날씨가 엄청 좋으니 절대 비는 안 올 것이라고 큰 소리를 땅 쳤다.

정말 볼프강 호숫가의 길겐에서 배를 탈 때까지만 해도 해가 어찌나 쨍쨍한지 머리가 벗어질 지경이었다. 길겐은 알프스의 샤모니 마을 같이 마을 자체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동화 속의 나라 같았다.

배를 타고 중간쯤 오니 갑자기 먹구름이 슬슬 나타났다. 바람도 점점 거세져서 파도에 하얀 포말이 생겼다. 볼프강에서 배를 댈 때는 사방이 캄캄해지고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며 폭풍이 몰아쳤다. 겨우 배를 대고 버스까지 갈 수 없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져 우리들은 각자 상점으로 뛰어 들어갔다.

상점에서 이것저것 들여다보다가 비옷과 외손주 줄 목각인형을 샀다. 밑의 줄을 당기면 두 손 두 발 번쩍 드는 것이 퍽 재미있는 인형이었다. 이걸 보고 기뻐할 손자를 생각하니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비가 잠시 뜸한 사이 버스로 달려와 모두 버스에 올라 짤즈부르크로 향했다. 짤즈는 소금, 부르크는 성 즉 소금의 성이란 뜻이란다. 허은정씨는 오늘은 정말 징크스를 깰 줄 알았는데 또 비가 왔다면서 언제나 이 징크스를 깰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푸념을 하였다.

짤즈부르그에서는 미라벨 정원과 간판 거리, 모차르트 생가를 보고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 산책을 하며 일몰 감상을 하였다. 우리가 들판에서 일몰을 찍고 호텔로 오니 일본 투숙객들도 무지 큰 카메라를 설치하고 일몰을 찍고 있었다.

 

뒤숭숭한 꿈자리

새벽에는 남편 꿈을 꿨다. 남편이 갑자기 쓰러져 내가 무슨 힘이 넘쳤는지 남편을 들고 병원으로 뛰어 가는 꿈이었다. 집 나오면 집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는데 이렇게 흉한 꿈을 꾸고 나니 갑자기 집 걱정이 됐다. 빈 집에서 남편 혼자 자다가 뭔 일이 난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에 공중전화가 있나 하고 로비로 가니 전화가 안 보인다. 직원에게 물으니 방에서 하란다. 비싸거나 말거나 방에 와서 인솔자가 준 명단에 적힌 번호를 누르니 번호가 완성되지 못했다는 소리 같은 방송만 되풀이 된다. 결국 실패하고 나중에 인솔자에게 물으니 번호 한 개가 빠졌단다.

불길한 마음을 떨쳐버리고 버스에 올라 다시 체코로 향했다. 체코 국경에서는 운전기사만 대표로 여권 검사를 하고 우리는 그냥 통과했다. 체코에 들어와 유네스코가 지정한 중세 도시 체스키크롬로프로 이동하였다. 체스키크롬로프 성은 13세기에 지어졌다는데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있었다. 성도 아름답지만 성 밖의 집들도 어찌나 아름다운지 한 폭의 유화를 보는 듯 했다. 마치 이태리의 피렌체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체스키크롬로프를 떠나 홀라소비체라는 마을로 갔는데 조그만 마을이 영화를 찍기 위해 만들어 놓은 세트장 같았다. 집 앞에는 나무로 만든 무슨 두레박 올리는 도르래 같은 게 있었는데 허은정씨에게 뭐냐고 물으니 자기도 모르겠단다.

홀라소비체를 떠나 프라하에 오니 벌써 날이 저물고 있었다. 구시가지와 까를교를 보았는데 다리 난간에 무수한 조각상들이 서 있었다. 한 조각상에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도 다가가 보니 반질반질 닳았다. 이거 만지면 좋은 건가보다 하고 우리도 대충 만졌더니 곁의 사람이 거꾸로 떨어지는 신부님을 만져야한다고 가르쳐준다. 우리는 이유도 모르면서 그저 좋다니까 한 사람씩 다 만지고는 다리 끝까지 걸어갔다. 940분까지 처음 장소로 오라던 생각이 나서 달리다시피 되돌아오니 아직 다 모이지 않았다.

10시에 시계탑에서 종을 치면 예수님의 12제자 인형이 나온다고 하여 또 달음질을 해서 1분 전쯤 시계탑에 도달하니 많은 사람이 모여 목을 쳐들고 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도 목을 잔뜩 치켜들고는 바라보고 있는데 잠시 후 시계가 울린다. 그런데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하루에 한 번씩은 나오지 않는데 하필이면 우리가 간 시간에 나오지 않다니 재수 옴 붙었다.

여행 마지막 밤이라고 젊은 사람들은 밤거리로 흩어지고 늙은이들만 호텔로 돌아왔다. 미경이는 야경이 더 보고 싶은 눈치인데 세 언니가 가자고 하니 할 수 없이 따라온다. 호텔방에 돌아와 남은 과일과 간식을 모두 해치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서유럽의 장물, 동유럽의 보물

아침에 일어나 젊은 사람들에게 어제 시계탑의 인형이 나왔느냐고 물으니 11시에도 안 나와서 그냥 들어왔단다.

이 날은 아침에 프라하성을 둘러보았다. 옛날에 이 성에 살던 왕비가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하면서 넘어졌다고 했더란다. 넘어졌다는 것은 부정을 저질렀다는 뜻인데 왕이 이 소문을 듣고 신부님을 데려다가 고백을 하라고 했지만 신부님은 끝까지 비밀을 지켰고 이에 격분한 왕은 이 신부님의 목에 돌을 매달아 몰다우강에 던졌다는 것이다. 까를교에 있는 조각상에 신부님이 거꾸로 다리에서 떨어지는 모양은 이 신부님이고 이 조각상을 만지면 소원을 이룬다고 하도 만져서 그렇게 뺀질뺀질하게 닳았다는 것이다.

이날도 다시 구시가지에 와서 구경을 하였는데 한 한국아이가 팀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우리 가이드가 그 아이에게 물으니 하나투어에서 왔고 엄마 핸드폰 번호를 외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전화가 안돼 엄마 못 찾으면 우리가 공항까지 데려다 줄테니 안심하라고 타이른 후 다시 전화를 하니 엄마가 받았다. 엄마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좇아오더니 아들을 보자 어딜 갔었느냐고 버럭 화를 냈다. 얼마나 속이 탔으면 그랬을까 넉넉히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구시가지 한쪽 벽에 이름이 잔뜩 써 있고 그 앞에 꽃다발이 있기에 무엇인가 했더니 순교한 21명의 명단이고 바닥의 보도블럭에는 하얀 십자가 21개가 박혀있었다.

이 날 아침 다시 천문시계 앞에서 기다렸더니 이날은 종이 치면서 12제자 인형이 나타났는데 우리는 인형이 건물 밖으로 튀어 나올 줄 알았더니 창문만 열리고 그 안에서 빙빙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틀에 걸쳐 기다리며 기대가 컸는데 기대에는 못 미쳐 좀 실망스러웠다.

또 다시 까를교를 건넜는데 까를교는 까를 4세가 그 당시 최신 공법으로 만든 다리라고 하였다.

이렇게 프라하성과 왕궁, 까를교까지 다 보고 점심을 먹은 후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에 오르며 되돌아보니 서유럽은 도둑들이 전세계에서 훔쳐다 놓은 장물을 보는 것 같았는데 동유럽은 자연 그대로, 유물 그대로 보존되어 보물 중의 보물을 보고 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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