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06. 11. 18. 발칸반도

아~ 네모네! 2012. 10. 13. 14:57

 

 

 

 

 

 

 

 

 

 

 

 

 

 

 

 

 

잡아라

이현숙(李賢淑)

 

발칸반도라면 학교 다닐 때 배워서 유럽의 남동쪽에 있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시험 보기 위해 나라 이름과 수도 정도는 외었었지만 지금은 다 잊어 버렸다. 그런데 이번에 일중산악회에서 여기를 간다는 것이다. 이런 기회가 다시 올 것 같지 않아 무조건 따라 붙었다.

 

111() 비행기는 태양을 따라 잡지 못하고

오후 235분 비행기를 타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렸다. 빈 좌석이 없어 춘향이 칼 찬 모양으로 꼼짝 못하고 비몽사몽간에 헤매다 눈을 뜨니 안내 모니터에 비행고도 비행속도 등이 나온다.

10000m가 넘는 상공에서 시속 800km가 넘게 달리고 있다. 순간 내가 무슨 깡으로 이 높은 허공에서 뱃속 편하게 낮잠을 자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여기서 비행기에 조그만 구멍이라도 난다거나 추락이라도 하는 날에는 뼈는커녕 살점 하나도 남지 못할 텐데 천하태평으로 자고 있으니 사람들의 믿음이 정말 굉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도 가도 해가 질 줄 모르고 낮이 계속 된다. 태양은 열심히 서쪽으로 가고 있지만 비행기가 죽어라고 따라가기 때문이다. 심심하여 지구는 얼마나 빨리 자전하나 비행기 속도와 비교를 해봤다. 지구 반지름이 6400km니까 지구 둘레는 2×3.14×6400=40192km 이 거리를 24시간으로 나누면 시속1675km로 달리는 셈이다. 약 비행기 속도의 2배로 달린다. 그러니까 비행기가 열심히 달려도 태양을 따라가지 못하고 기어이 해는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고 말았다.

기내식으로 비빔밥을 먹고 쓸데없이 화장실도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죽이다 보니 어느 덧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착륙이다. 내릴 때 독일 승무원이 안녕~ 하고 인사를 하니 기분이 좋았다. 공항 청사 안에는 한글로 프랑크푸르트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글도 써 놓고 TVLG 것이어서 기분이 더 좋았다.

여기 저기 면세점을 둘러보며 구경하다가 비행기를 바꿔 타고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공항에 내리니 밤 11시가 넘었다. 밖으로 나오니 루마니아 가이드 김홍렬씨가 버스가 아직 안 왔으니 청사 안에서 기다리란다. 청사라고 해야 면세점도 없고 시골 대합실 같이 엉성하게 생겼다. 심심해서 왔다 갔다 하다가 벽에 붙은 사진인지 홍보물인지 사진을 찍었더니 직원이 달려와서는 찍지 말라고 한다. 역시 사회주의 국가는 다르구나 싶었다.

루마니아에는 마땅한 여행사가 없어 체코에서 버스가 오는데 루마니아 지리를 잘 몰라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1시간이 넘게 기다리니 버스가 도착했다고 하여 모두들 짐을 끌고 우르르 밖으로 나오니 역시 체코에서 같이 온 김서경씨가 늦어서 미안하다고 생글 생글 웃으며 인사를 한다. 어찌나 예쁘고 귀엽게 생겼는지 짜증이 나려던 것도 봄눈 녹듯 다 사라졌다. 이래서 미인계가 필요한 모양이다.

날이 추워 우리는 빨리 버스에 타려고 짐을 끌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버스 쪽으로 가니 공항 직원이 오지 못하게 한다. 버스 기사는 뭘 하는지 왔다 갔다 하며 버스를 움직이지 못한다. 무슨 돈을 내러 가는 모양이었다. 드디어 버스가 움직이나 싶었는데 그쪽으로 들어오면 안 된다고 했는지 도로 뒤로 빼더니 다른 쪽으로 들어온다. 하여튼 하나에서 열까지 왜 그리도 까다로운지 이래서 후진국인가 싶기도 했다.

버스에 올라타니 자리도 넓고 춥지 않아 좋았다. 버스는 어제 아침 9시부터 여태까지 달려왔다고 하였다. 좌석이 널널하여 두 개씩 차지하고 아예 누워서 시나이아까지 1시간 반 정도 달렸다.

시나이아 호텔에 도착하니 새벽 2시 반이라 잠자리에 들 때는 4시가 다 됐다.

 

112() 루마니아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7시간의 시차 때문인지 아침 7시 반에 눈이 떠진다. 창밖을 보니 잿빛 하늘에 음산한 바람이 불고 있다. 11시에 출발이라 룸메이트 양숙씨와 산책을 나가니 윤영자님, 임경희님, 윤옥순님, 김여희씨 등 여러 명이 벌써 나와 있었다. 같이 낙엽 쌓인 거리를 걷는데 흰 눈이 날린다. 우리는 첫눈을 보았다고 즐거워하며 거리 구경을 하였는데 집들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하나하나가 마치 예술품 같았다. 모두들 감탄을 하며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집 같다고 집 앞에서 사진들을 찍었다. 정말 어찌나 고풍스럽고 아름다운지 영화 속의 히스크립과 캐시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9시에 아침 식사라 밥을 먹으러 호텔로 돌아오는데 대장님과 호선생님 내외, 김경진씨와 이수연씨 등 여러 명이 케이블카를 탄다고 나간다. 우리는 케이블카가 안 움직이는 것 같아 그냥 들어왔다.

아침 식사 후 사우나실에 가니 아무도 없다. 혼자서 뜨거운 물에 들어가 스파를 하며 즐기다가 수영장으로 가 수영을 하는데 한 여자가 아기를 데리고 들어온다. 대충 닦고 방에 와 짐을 챙겨 버스에 오르니 케이블카를 타러 간 사람들이 아직 안 왔다고 처음부터 이러면 안 된다고 벌금을 매겨야 한다고 난리다. 1달러씩 내라고 할 줄 알았더니 한 사람이 10유로씩 내라고 하잔다. 내 생각에도 좀 너무한 것 같다 생각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대장님이 오시자 냉큼 앞으로 나가시더니 10유로가 얼마나 큰돈인지 아느냐 이러면 안 된다고 하시며 받았던 돈을 돌려주셨다.

이렇게 벌금 소동은 진정이 되고 버스는 출발하여 펠레슈성으로 갔다. 이 성은 카를로스 1세의 여름 별장이었다는데 단풍에 쌓인 주변 경관과 성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한 폭의 서양화 같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공사중이라 내부는 공개하지 않아 겉모양만 보고 나왔다.

눈 덮인 숲 속의 카페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브란으로 이동하여 그 유명한 드라큘라성을 보러 갔다. 드라큘라는 루마니아의 왕 블라드 3세를 말하는데 그는 어렸을 때 볼모로 잡혀가 독일과 헝가리에서 성장하였다. 블라드 3세는 아버지가 죽은 후 귀국하여 왕이 되었는데 마음의 상처가 컸던 탓인지 포로를 잡으면 항문에서 입까지 꼬챙이에 꿰어 죽인다거나 한쪽 귀에서 다른 귀로 뚫어 죽인 다거나 하여튼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던 상인들이 이 소문을 유럽 각 나라에 전하자 영국 작가가 이 사실을 주제로 하여 뱀파이어 드라큘라라는 소설을 썼다고 한다.

드라큘은 블라드 2세가 헝가리에서 받은 작위 이름이고 는 자식이란 뜻, 그러니까 드라큘라는 드라큘의 자식이란 뜻이다. 이 성은 1400년대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절벽 위에 으스스하게 서 있고 내부도 어둠침침하여 어디선가 드라큘라가 달려들어 목을 깨물고 피를 빨아먹을 것 같았다. 페치카 안쪽으로 비밀통로도 있었는데 캄캄한 계단으로 올라가니 위층으로 나가게 되어있었다. 그래도 역대의 왕들과 비운의 블라드 3세가 이 성에서 살았다고 생각하니 깊은 감회에 젖었다. 이 어두운 성에서 살면 멀쩡한 사람도 우울증에 걸리고 정신분열증에 걸릴 것 같았다.

운전기사 미셸과 서경씨도 어찌나 즐거워하며 같이 사진을 찍어대는지 마치 허니문 온 신혼부부를 연상케 했다. 성에서 한국 학생도 만났는데 고대 경제학과 3학년 학생이라 하였다. 현재 우크라이나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데 혼자 여행 중이라 하였다. 이 학생도 브라쇼브까지 간다고 하여 우리 버스에 태웠는데 양숙씨는 아들 생각이 났는지 쵸콜렛을 주며 심심할 때 먹으라고 한다.

브라쇼브에 도착하니 벌써 날이 어두워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부리나케 흑색교회와 시내를 돌아보고는 부카레스트로 돌아왔다. 흑색교회는 화재로 건물이 검게 되어 흑색교회가 되었다고 하기에 건물이 새카만 줄 알았더니 그렇지는 않았다.

부카레스트 레바다 호텔에 들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어찌나 작은지 짐 들고 두 명 타면 꽉 찼다. 이거 기다리다가는 날 새겠다 싶어 양숙씨와 나는 짐이 직접 들고 올라갔다.

 

 

113() 루마니아에서 불가리아로

아침에 일어나 호숫가를 산책하려고 나가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우산을 쓰고 나가니 호선생님네와 홍균 선생님도 나오셨다. 같이 호숫가를 돌아보니 호텔이 꼭 중세의 성 같아 보였고 주변 경관도 빼어났다.

이날부터는 우리 여행을 도우려고 여행사의 황호안 사장님도 동승하였는데 나이가 지긋해 보였다. 자기소개를 하며 유통기한이 지났지만 요즘 냉동시설이 잘 되어 아직 폐기처분 단계는 아니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였다. 황사장님은 키는 작고 우중충한 베레모 모자에 거무튀튀한 외투를 걸쳐 꼭 모택동 같은 모습이었다. 차를 타고 가며 자기는 유럽에 온지 30년이 되었고 지금 프라하에 살고 있다고 하였다.

부카레스트는 드라큘라라고 하는 블라드 3세 때 수도로 건설하였는데 강이 없어 근래에 챠우체스쿠가 인공으로 강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비가 내리는 유리창으로 내다보니 운하 같기도 한 강이 시내 중심부로 흐르고 있었다. 인민 궁전은 차우체스쿠가 짓다가 다 짓지 못하고 처형당한 후에 완성을 하였다는데 10시에 문을 연다고 해서 미리 가서 기다렸다.

여기는 들어가는 사람마다 가방도 사람도 X-ray 투시기를 통과해야했고 카메라도 미리 돈을 내는 사람만 촬영이 가능했다. 검색이 어찌나 심한지 옷은 물론 입 속까지 들여다보았다. 인민궁전은 미국의 국방부 건물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 큰 건물인데 챠우체스쿠가 제 2의 파리를 만든다고 주변의 빈민들을 모두 몰아내고 파리의 상젤리제 거리 비슷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름만 인민 궁전이지 인민을 위한 궁전인지 인민을 잡는 궁전인지 구별이 안 갔다. 크기도 엄청났지만 화려하기도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가장 큰 홀 양쪽에는 커다란 돔 형태의 틀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한쪽에는 차우체스쿠의 초상화를, 다른 편에는 부인의 초상화를 걸 계획이었단다. 그런데 부인과 한바탕 부부 싸움을 한 후 건설 현장 감독에게 전화하여 자신의 초상화 반대편에는 거울을 걸라고 했단다. 그런데 초상이고 뭐고 건물도 다 짓지 못하고 쫓겨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니 그야말로 인생무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민궁전 관람을 마치고 불가리아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도 계속 눈이 내려 우리는 설원을 달리며 유럽의 겨울을 만끽했다. 점심 식사 할 곳이 마땅치 않아 미리 준비한 도시락을 차 안에서 먹으며 도나우강을 건너 불가리아로 들어갔는데 여기도 어찌나 절차가 까다로운지 약 두 시간이나 걸렸다.

가는 도중 우리들이 지루할까봐 황사장님은 자신이 지은 시를 나눠주고 낭송했는데 목소리도 아나운서 뺨치게 멋있고 감성도 풍부하여 다들 뿅~ 갔다. 젊은 애들 같으면 오빠~” 소리가 터져 나왔을 텐데 다들 나이가 지긋해서 그런지 조용히 감탄하며 들었다. 이렇게 시 낭송을 듣고 나니 공산당 서기장 같던 황사장님 얼굴이 멋있는 시인처럼 보였다. 그 내용을 일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보석처럼 귀한 순간들

여행은 젊어지는 샘물이다.

여행은 우리에게 무한한 자유를 안겨주고

그리고 아울러 겸허함을 안겨준다.

이 넓은 세상에서 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얼마나 작고 하찮은 것인가를

여행은 단시일 내에 깨닫게 해준다.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들

세계는 한 권의 책이고

여행하는 사람은 그 중에 한 페이지를 읽는다고 한다.

읽고 싶은 한 페이지, 꿈에 그리던 그 페이지를 찾아가서

오래 사모하던 연인을 만난 듯 그 가슴에 지순하게 귀를 대리라.

 

다들 감명이 깊었던지 화장실에 붙여 놓겠다는 사람, 화장대에 붙여 놓겠다는 사람, 냉장고에 붙여 놓겠다고 하는 사람 등 가지가지였다. 하지만 집에 와 생각해 보니 이걸 집에 붙였다가는 남편이 아니 얼마나 더 나가려고 이런 거까지 붙였느냐?’고 할 것 같아 그냥 책갈피 사이에 넣어 두었다.

불가리아의 옛 수도였던 벨리코투루노보를 지나 중세의 성채로 유명한 차르베르 언덕에 도착하니 날은 어둡고 눈은 쏟아지고 성문은 잠겨 밖에서만 바라보고 공방거리 구경을 했는데 여러 가지 수공예품들이 우리 눈길을 끌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졸며 자며 3시간 반을 달려 소피아에 도착하니 밤 10시 반이 되었다. 레스토랑에 가서 민속공연을 보며 양고기를 먹었는데 양고기를 보니 작년에 실크로드 갔을 때 유난히도 양고기를 좋아하며 매일 먹고 싶다던 최영주님 생각이 떠올랐다.

 

114() 불가리아에서 세르비아로

아침에 산책 나갔다가 들어오며 방에 화장지가 별로 없던 생각이 나서 프론트 직원에게 내 방 번호를 말하고 화장지 더 줄 수 있느냐고 했더니 룸메이드에게 전화해 놓겠다고 한다. 방으로 올라오니 벌써 화장지를 들고 우리 방 문 앞에 서 있었다.

소피아는 불가리아의 수도인데 소피아정교회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붙였단다. 레닌 광장에는 원래 레닌 동상이 서 있었는데 공산 정권이 무너질 때 이 동상을 철거하고 소피아 여신상을 세워 놓았다고 한다. 소피아는 지혜의 신인데 우리 가이드도 다음 달에 태어날 딸 이름을 소피아로 지었단다.

오전에 소피아 시내를 돌아보았는데 노점상들이 물건 사고파는 모습이나 전차 타고 내리는 모습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모두 대동소이 하였다. 그런데 시내 한 복판에 온천수가 솟아나와 사람들이 마시고 받아가고 하였다. 이 온천수가 좋다고 하여 너도 나도 한 모금씩 마셨다.

온천수를 마시고는 김 사장님이 전차를 태워주겠다고 하였다. 전차표를 사주어 차에 올랐는데 우리나라 옛날 전차와 비슷하였다. 자리에 앉자 뒤에 앉은 할머니가 어디서 왔냐고 하기에 한국에서 왔다고 하고는 소피아가 아름답다 그런데 날씨가 춥다고 했더니 그러나 자기들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참 지적이고 아름다운 할머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더 이상 할 줄 아는 말이 없어서 꿀 먹은 벙어리 같이 앉아 있으려니 가방 끈이 짧아 말 못 하는 것이 한이었다.

전차에서 내려 중국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나는 무수리과라 그런지 아무 거나 잘 먹는데 양숙씨는 왕비과라 그런지 조금만 냄새가 나도 못 먹는다. 그래서 내가 먼저 먹어보고 맛이 괜찮다고 하면 조금 먹어본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먹성 하나는 잘 타고 난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이번에는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로 향했다.

베오그라드까지는 5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하며 황사장님이 이번에는 세계 제 1의 소리라고 하는 불가리아 여자의 노래를 들려줬다. 과연 불가리아 여자의 노랫소리는 태고의 소리 같기도 하고 자연의 소리 같기도 하였다. 들을수록 깊은 맛이 나고 무한한 우주공간까지 퍼져 나가는 듯하였다. 한 인간이 노래 한다기 보다는 불가리아가 노래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황사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노래를 듣다보니 시인 같던 황사장님 얼굴이 시나리오 작가 같기도 하고 영화감독 같기도 하였다.

국경 가까이 가자 수많은 트럭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장님이 트럭 수를 세기 시작했다. 가도 가도 트럭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있었는데 나중에는 두 줄로 늘어서 있어 미처 셀 수가 없었다. 대충 세어보니 220대가 넘는다고 하였다. 황사장님 말로는 이것은 약과라고 어떤 때는 차에서 하루씩 기다린다고 한다. 그래도 사람이 탄 차는 화물차와 줄이 달라서 그렇게 많이 기다리지는 않았는데 출국심사대 가까이 와서 여권을 걷으려다 말고 앞에서 웅성웅성한다. 웬일인가 했더니 우리의 기사가 여권을 호텔에 두고 왔다는 것이다. ‘아뿔싸! 이걸 어떡한다?’ 하고 궁리하다가 황사장님이 불가리아 가이드에게 전화하여 빨리 호텔에 맡겼던 기사 여권을 찾아 퀵서비스로 보내라고 하였다. 벌써 두 시간은 달려왔는데 언제 여권이 오려나 하고 하염없이 기다리니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가이드가 자기차를 직접 끌고 여권을 가지고 왔다.

이래저래 국경에서 두 시간이 넘게 기다렸는데 화장실 가려면 1인당 0.5 유로였다. 두 명씩 1유로를 주고 갔는데 김여희씨는 둘이서 1달러를 주고 들어가려니 안 된다고 하여 손가락으로 조금만 누겠다고 했더니 들여보내 주더란다. 과연 바디 랭귀지는 세계 공통어가 확실하다.

기다리다 보니 국경에 면세점이 있었다. 대장님이 먼저 갔다 오시더니 술과 담배가 엄청 싸다고 하여 너도 나도 우르르 몰려갔다. 과연 프랑크푸르트에서 본 값보다 훨씬 쌌다. 우리는 술에 담배에 초콜렛 등 한 보따리씩 사가지고 들어왔다. 그런데 우리들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었다. 그 나라 사람들은 한 술 더 떠서 담배를 박스채로 사가지고는 자동차 본네트 속에도 숨기고 남자들은 종아리에 테이프로 붙이고 여자들은 아예 복대를 하고는 만삭된 여자처럼 허리에 꾸겨 넣었다. 면세점 옆에는 빈 담배 박스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내년부터는 국경도 없어진다니 앞으로는 이런 진풍경도 구경하기 힘들겠다.

세르비아쪽 국경으로 들어오니 여기서는 차의 물건을 모두 꺼내 놓고 검사를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물건을 너무 많이 사서 걸렸는지 세관 직원에게 사정하는 눈치였다. 한참 있더니 물건의 일부를 뇌물로 주자 통과시켜주었다. 하여튼 두 시간 동안 이런 저런 사람들을 보며 삶의 애환을 보는 듯도 하고 약육강식의 현장을 보는 듯도 하였다.

국경 통과 후 최후의 한 방울까지 짜고 오라는 황사장님의 명령대로 우르르 노천 화장실로 가 소변을 보고는 차에 올랐다. 이미 사방은 캄캄한데 보름달이 구름 사이로 들락날락하며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황사장님은 분위기에 맞게 정지용의 시 향수노래도 틀어주고 이라는 시도 틀어주며 우리 기분을 마냥 정취에 젖게 했다. 양숙씨가

대장님도 이렇게 하면 회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텐데…….” 하자

다른 사람이 그러면 스캔들 일으켜 안된다고 하였다.

나는 버스에 누워 달리고 달은 구름 사이로 달리기를 5시간,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도착하니 밤 10시 반이 넘었다. 호텔에 도착하여 식당으로 갔는데 호선생님은 식당에도 못 가고 소파에서 완전히 뻗어 버렸다. 버스에서 달빛에 취하고 음악에 취하고 술에 취해 계속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술을 권하더니 과음하셨나보다.

이 날은 딸 생일이라 엽서를 쓰려고 했는데 방에 오니 12시가 넘어 포기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115() 세르비아에서 보스니아로

아침에 일어나니 또 잔뜩 흐렸다. 유럽 날씨는 겨울에 흐리고 비가 많다더니 허구 헌 날 비 아니면 눈이다. 꼭 사흘 굶은 시어머니 상이다. 이런 꼴 안 되려면 나는 절대 굶지 말아야겠다.

아침 식사 전에 공원을 산책했는데 노란 낙엽이 깔린 길에 멋진 개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여기서는 밀란이란 현지 가이드가 우리를 안내했는데 세르비아는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하여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공화국이 되었다가 몇 달 전 세르비아공화국과 몬테네그로공화국으로 각각 독립하였다고 한다. 유고는 남쪽이란 뜻이고 슬라비아는 슬라브의 땅이란 뜻이란다. 즉 남쪽에 있는 슬라브족의 땅이란 뜻이다.

시내를 통과하며 모스크바 호텔, 국회의사당, 중앙우체국, 정부청사 등을 보고 나토에 의해 폭격을 받은 건물도 보았는데 교육적 효과를 위해서 그랬는지 민족적 각성을 위해 그랬는지 보수하지 않고 처참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시내를 지나 티토의 무덤을 보러갔는데 티토는 우리는 모두 형제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이루어 1980년 사망할 때까지 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그의 사후 유고 연방은 민족적 갈등을 거듭하다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가 차례로 독립하게 되었다.

티토의 무덤은 그의 집무실 마당에 있었는데 지금도 많은 사람이 그를 추모하는지 꽃다발이 가득 놓여있었다.

티토의 무덤에서 나와 군사박물관을 보러 갔는데 각종 무기와 갑옷, , 대포 등이 전시되어있었다. 여기에는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여 제 1차 대전을 일으키게 한 세르비아 청년의 사진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 사진을 보니 우수에 찬 눈과 강직한 인상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사상이 무엇이고 종교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서로 죽고 죽여야 하는지 안타깝기도 하고 그 부모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양고기로 점심식사를 한 후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로 향했다. 그런데 국경을 향해 가는 길에 버스가 커브를 트는 순간 버스의 트렁크가 열리며 4개의 가방이 와장창 길바닥에 쏟아졌다. 다행히 우리 뒤에서도 반대편 차선에서도 차가 오지 않아 기사가 쏜살같이 내려가 다시 차에 실었다.

황사장님은 간담이 녹았는지 버스가 출발하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어쩌구~ 저쩌구~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하고 시편을 암송하며 정말 큰일 날 뻔 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럭저럭 오후 세 시 가까이 되어 국경에 도착했는데 여기서는 기다리는 차도 없고 출입국 관리 직원이 직접 우리 버스에 올라와 여권에 도장을 찍어줬다. 호선생님이 냉장고에 붙이는 신랑 각시 인형을 주자 너무너무 기뻐하면서 사무실에 들어가 여자 직원에게 보여주며 자랑하였다.

출국심사를 마치고 보스니아 입국 절차를 밟으러 가니 여기서는 여권을 걷어 갔다. 차가 한 대도 없는데 무슨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는지 영 여권을 가져오지 않는다. 황사장님이 가보니 컴퓨터가 없어 손으로 30명분을 쓰느라고 그렇게 시간이 걸린단다. 모두들 지루하게 앉아있는데 웬 개 한 마리가 버스 밖에서 얼쩡거린다. 이 사람 저 사람 나가 빵도 주고 과자도 주니 그야말로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집어 삼킨다. 아마 몇 달은 굶었나보다.

이 개는 모르긴 하지만 어제 용꿈 꿨을 꺼다. 그런데 잠시 후 어디서 개 두 마리가 나타났다. 이 개에게 다른 사람이 빵을 주자 잡아 죽일 듯이 물어뜯어 쫓아버렸다. 사람들은 이놈이 너무 괘씸하다고 더 이상 주지 않았다. 이 국경은 사람은 없고 한 마디로 완전 개판이었다.

입국심사가 끝나고 세관 쪽으로 가니 가방을 꺼내란다. 버스에서 네 개의 가방을 꺼냈는데 권명자님과 남편, 박광수님과 김동규님의 가방이 당첨 되었다. 가방을 여는데 다들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가방에 빨래고 뭐고 마구 쑤셔 넣고 다니는데 쓰레기통 같은 내 가방이 열렸으면 그야말로 개망신 당할 뻔 했다.

사라에보에 오니 황사장님도 기사도 체코 사람이라 지리를 몰라 헤매다가 황사장님이 택시를 타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갔다.

이 날도 결국 8시간이나 걸려 밤 9시에 사라예보의 호텔에 도착하였다. 저녁을 먹고 방에 와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하려고 하니 충전기는 있는데 멀티플러그가 없다. 아뿔싸 베오그라드 호텔에 두고 왔나보다 하고 저녁 먹을 때 수연씨가 멀티플러그 가져왔단 소리 하는 걸 들었던 기억이 나서 그 방에 가서 플러그를 빌려다가 꽂아 놓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나보다.

 

116() 보스니아에서 크로아티아로

어제 쓴 엽서를 부치려고 후론트에 가서 물어보니 부쳐주지 않는다고 하여 포기하고 남편 주려고 방에 있던 1회용 면도기를 챙겨 버스에 올랐다.

구시가지를 보며 쇼핑도 하고 그 유명한 사라예보 저격 현장을 보았다. 암살 현장 건물 주춧돌에 1914628일 이곳은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도 황태자와 그의 부인 소피아가 암살된 장소라고 적혀있었다. 암살범은 보스니아 출신의 세르비아계 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였는데 소피아는 마차에서 즉사하고 페르디난도는 옆의 하천으로 뛰어내렸지만 물에서 건져보니 이미 숨져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났고 그 결과 무수한 인명이 희생되었으니 참 인간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가 싶다. 그뿐 아니라 보스니아 내전 때 죽은 사람들의 무덤에 세운 비석이 온 산을 뒤덮어 마치 산에 하얀 눈이 내린 듯하였다. 혼자 똑똑한 척 잘난 척 하는 인간이 어찌 보면 가장 미련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점심 식사 후 중세도시 모스타르로 이동하려니 또 기다려야한단다. 이번에는 황사장님이 호텔에 모자와 30년 된 명물 코트를 두고 왔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입을 만큼 입어서 버려도 되겠더구만 황사장님은 남다른 애착이 있는지 호텔에 전화하여 퀵서비스로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가져다 달라고 하였다. 얼마를 기다리니 코트가 도착하여 출발을 했다. 황사장님은 연일 주최 측에서 사고를 쳐서 미안하다고 사과 반 농담 반을 하였다. 사람들은 이번에는 서경씨 차례니 내일 가방 두고 오라고 하였다.

모스타르에 도착하니 사방이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치형 다리와 터키식 건물, 터키 상점을 둘러보고 국경을 넘어 크로아티아의 드브르브니크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넘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도중 김사장님이 방 열쇠를 나눠줬는데 호선생님이 배복순씨에게 열쇠를 만져 보란다. 옆의 수연씨가 웃기에 왜 그런가 쳐다보니 열쇠 모양이 꼭 남자의 거시기 같이 생겼다. 하여튼 호선생님의 장난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방에 와 화장실에 들어가니 비데가 있었는데 물 나오는 꼭지가 전후는 안 되지만 위, 아래, , 우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있었다. 꼭지가 움직이지 않는 우리나라 비데는 몸을 움직여 물에 맞춰야 하는데 이건 꼭지를 움직여 조준하니 편리했다.

방으로 오는데 서경씨가 안내를 해주기에 어제 아침 호텔에 플러그를 두고 왔다고 하니 자기 것을 빌려 준단다. 그래서 이날은 서경씨 플러그로 꽂으려고 하는데 가방 밑바닥에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플러그가 나왔다. 다음날 수연씨와 서경씨에게 플러그를 돌려주며 생각하니 머리 나쁘면 팔 다리가 고생이라는 말이 딱 맞는다.

 

117() 크로아티아 드브르니크에서 스플릿으로

아침에 일어나니 오랜만에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화창한 날이었다. 이날도 출발을 하려다 버스가 멈추기에 이번에는 뭔가 했더니 김사장님이 호텔로 다시 뛰어간다. 벨 보이 주려고 걷은 팁을 안 주고 왔다는 것이다. 해외여행을 하면 하도 신경 쓰는 일이 많아 누구나 깜빡 깜빡 하는 것 같다.

버스가 출발하여 짙푸른 아드리아해에 면한 높이 25m, 길이 2km에 달하는 드브르브니크 성으로 갔다. 여기서 플라자 거리, 오노폴리안 분수, 프란체스코 수도원을 보고 600년 된 약국도 보았다.

대장님의 제안으로 앞바다에 떠 있는 섬으로 갔는데 배 삯은 1인당 50쿠나(7유로)였다. 바다에 떠서 바라보는 드브르브니크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아름다웠다. ‘아직도 이 땅에서 천국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드브르브니크로 가라.’는 말이 있다는데 정말 에덴동산은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섬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배를 타러 오니 대장님이 벌써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시고 수건으로 닦고 계셨다. 어쩐 일로 그렇게 빨리 가시나 했더니 다 꿍꿍이속이 있었나보다. 대장님은 물만 보면 들어가고 싶어 못 견디는데 아마도 조정 선수 생활을 할 때 물에서 살아서 그런 모양이다.

섬에서 다시 돌아와 성벽을 한 바퀴 돌았다. 성벽 위에서 보는 아드리아해와 섬은 환상 그 자체였다. 하늘빛과 물빛이 어찌나 짙푸른지 꼭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내 생각에는 베니스나 피렌체보다 더 아름답고 깨끗한 것 같다.

오후에는 중부 달마시안의 꽃이라 일컫는 스플릿으로 이동하였다. 가는 도중의 길에는 하늘을 찌를 듯 한 나무들이 많았는데 이 나무 이름이 사이프러스라고 하였다. 사이프러스는 남성이란 뜻인데 척박한 땅에서 힘차게 솟아오르는 모양을 보고 지은 이름이란다. 이날은 유난히도 석양이 아름다워 왼쪽 보랴 오른쪽 보랴 위를 보랴 아래를 보랴 흔들리는 차안에서 석양을 찍느라고 난리들이었다.

모처럼 6시에 호텔에 도착하여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118() 스플릿에서 자다르로

아침에 방에서 내다보니 멀리 산 위에서 태양이 조용히 떠오르고 있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도 해는 뜨고 진다.

아침 식사를 하러 가니 어젯밤이 완전 하이라이트였다는 것이다. 뭐가 그리도 좋았나 했더니 우리가 식사 마칠 때쯤 들어온 이태리 사람들과 함께 오쏠레미오를 합창하고 같이 브루스를 추며 한바탕 놀았다는 것이다. 윤영자님도 이태리 남자들과 파트너를 바꿔가며 몇 번씩 춤을 추었다고 하였다. 어쩐지 어제까지만 해도 잇몸이 아프다고 턱을 싸잡아 쥐고 다니더니 오늘은 생생한 게 얼굴에서 반짝반짝 윤이 났다. 그런데 버스 탈 때보니 윤영자님뿐 만 아니라 어제 춤추고 논 사람들은 모두 얼굴에 빤질빤질 윤이 나는 게 우리들 하고는 때깔이 달랐다. 양숙씨는 오늘 완전 K. O 되어 침대에서 잘 일어나지도 못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어제 이태리 남자들과 한바탕 돌아치는 것인데 아무래도 크게 실수했나보다.

아침에 호텔을 나오다가 혹시나 하고 후론트 직원에게 엽서를 붙일 수 있나 물었더니 우표를 붙여 오란다. 어디서 우표를 살 수 있나 물었더니 문 밖으로 나가면 오른쪽 가게에서 판다는 것이다. 가게에 가서 우표 있느냐고 물으니 있단다. 한국까지 얼마면 되냐니까 한 장에 7쿠나씩 3장이니까 21쿠나 내란다. 잔돈이 없어 30쿠나를 냈더니 10쿠나 돌려주며 20쿠나만 내란다. 내 생전에 우표 값 깎아주는 데는 처음 봤다. 그래도 며칠씩 끌고 다니던 엽서를 부치고 나니 밀린 똥 눈 것처럼 기분이 상쾌했다.

호텔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제주도에서 보던 유도화가 눈에 띄었다. 대장님이 왜 유럽에 유도화가 많은지 아느냐고 하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대장님 설명인즉 유도화 뿌리가 쥐의 번식을 억제시키는데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한 후 사람들이 많이 심었다는 것이다. 대장님은 언제 어디서 그렇게 많은 상식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대장님 말인즉슨 돈 버는 거 하고 영어 하는 거 빼고는 못하는 게 없다고 한다.

오전에는 로마광장과 디오클레시안 궁전을 돌아보았는데 로마시대에 만든 돌계단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녔는지 둥글게 파였다. 그리고 거리에는 체중계를 놓고 돈을 받으며 체중을 달아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무슨 고기 달듯이 막대 위의 저울추를 움직여가며 달았다. 우리들은 재래시장에서 대장님이 산 석류를 돌바닥에 앉아 입술을 붉게 물들이며 맛있게 까먹었다.

궁전에서 나와 해양박물관을 보러 갔는데 바다 밑에서 건져 올린 많은 물건과 1차 대전, 2차 대전에서 쓰던 무기와 어뢰 등이 있었다.

스플릿 관광을 마치고 트로기르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은 후 관광을 하였다. 성로브르 성당, 나로드니 광장, 카메르렌고 요새 등을 보았는데 여기 가이드는 67세 된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였다. 이 할아버지는 조상 대대로 이곳에서 500년을 살았다고 하였다. 황사장님은 갈 길이 바쁘니 대충 설명하고 가자고 보채고 이 할아버지는 안 된다고 계속 설명을 하였다. 이러다가 오늘 안에 끝나려나 걱정이 되었는데 그래도 해 지기 전에 우리를 놓아주었다. 자신의 고향에 대한 한없는 애착과 긍지가 부럽기도 하였다.

이날도 4시간 이상 버스를 탔는데 그저 가는 데마다 노상방뇨를 일삼았다. 그런데 우리가 적당한 곳을 찾아 들어가면 이미 선구자들이 다녀간 흔적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저 화장실 찾는 솜씨는 동서고금이 동일한가보다.

호선생님은 어찌나 감정이 풍부한지 눈만 뜨면

와아~ 멋있다. 야아~ 죽인다.”를 연발하며 카메라를 들이댄다. 어째 조용하다 싶어 돌아다보면 취침중이다.

버스를 타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리에 앉았다하면 간식들을 들고 다니며 먹으라고 권한다. 앞 뒤 옆에서 오는 걸 모두 받아먹다보니 위장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주인님 제발 살려주세요. 밤낮으로 이렇게 들여보내시면 저는 곧 K.O 됩 니다.”

그래도 이날은 해가 지기 전에 자다르에 도착하여 바닷가로 나가 낙조를 보았다. 하지만 해가 구름 속으로 지는 바람에 멋진 일몰 풍경은 볼 수 없었다.

낙조를 보고 호텔로 가는데 성 앞에서 보드 타는 청년들도 보이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꼬마, 돌담에 걸터앉아 책 보는 여자 등등 우리의 생활 모습과 너무도 비슷하였다. 이런 모습을 보니 사람 사는 건 다 마찬가진데 뭘 보겠다고 이렇게 세계를 들쑤시고 다니나? 나 같은 사람 때문에 이 사람들의 고요한 일상생활이 침해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처럼 일찍 식사를 하고 수영장에 내려가는데 사우나 간다던 윤영자님과 임경희님이 되돌아온다. 왜 안 하고 오시냐고 물으니 말도 말라고 남녀 혼탕인데 알몸으로 들어가야지 수영복 입고는 못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포규님이 들어갔다가 기겁을 하고 나왔다는 것이다.

나는 수영장으로 들어가 샤워실로 들어가는데 누가 뒤에서

“Hello!" 하고 다급하게 부른다.

깜짝 놀라 되돌아 나오니 거기는 남자 샤워실이니 저쪽 여자 샤워실로 가란다. 나도 본의 아니게 나체쇼 볼 뻔 했다.

샤워를 하고 수영장 물로 들어가니 여자 아이 한 명과 두 여자 밖에 없었다. 나는 혼자서 신나게 놀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여기 수영장은 실내수영장과 실외수영장이 물속에서 유리문으로 막혀있었다. 한 남자가 들어오더니 문을 열고 실외수영장으로 나갔다.

이날 들어간 방에는 응접실도 있고 스파를 할 수 있는 큰 욕조도 있어서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온몸을 푹 담갔더니 그 동안의 피로가 싹 가셨다.

 

119() 자다르에서 자그레브로

아침에 식사하러 가니 어제 호기심 많은 호선생님과 한술 더 뜨는 홍선생님이 사우나에 구경하러 갔단다. 그런데 금방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배복순씨가 왜 구경 안 하고 금방 왔냐고 물으니 아무도 없어서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하여튼 사람 취미도 가지가지다.

이날은 아침부터 플리트비체예체라 국립공원으로 이동하였다. ‘플리트비체는 지명이고 예체라는 호수라는 뜻이란다. 옛날 이 지역에 7년 가뭄이 들었는데 신부님이 간절히 기도하자 산에서 16개의 호수가 나타나고 여기서 물이 넘쳐 폭포가 생겼다는 것이다.

서너 시간을 이동하여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하여 거기 있는 호텔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트래킹을 시작하였다. 16개의 호수와 92개의 폭포로 이루어진 이 공원은 여기가 어디메뇨? 여기가 에덴이로다.’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문득 하나님은 왜 인간을 만들었을까? 인간이 없었으면 지구상의 모든 곳이 에덴동산과 같이 아름다웠을 텐데.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걸 모르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났다.

다랭이논 같이 호수 -폭포 -호수 -폭포가 이어졌는데 갈수록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어 다들 감탄사를 연발하느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낙엽 길을 내려오는데 한 캐나다 여자를 만났다. 이 할머니는 65세인데 3년 전 퇴직하여 혼자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여행을 한단다. 사라예보에서 여기까지 혼자 차를 몰고 왔단다. 이 할머니를 보니 나도 한 번 해봤으면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영어도 못 하고 운전도 못하니 다 틀려먹었다.

국립공원을 다 보고 나오며 문득 맛있다는 생각이 든다. 멋있다기 보다는 뭔가 달콤하고 맛있는 느낌이 입안에 감도는 건 너무 만족스러웠기 때문일까?

어둑어둑하여 공원을 출발한 우리는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로 또 세 시간 이상 이동하였다. 가다가 심심했는지 호선생님이 이번에 우리가 여행하는 곳은 왜 자 돌림이지? 한다. 그러고 보니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모두 자로 끝난다. 학구열이 불타는 호선생님이 냉큼 앞으로 가더니 황사장님에게 묻고 와서 이란 뜻이라고 하였다. “~ 그렇구나하더니 한 사람이 그러면 코리아도 땅인가? 한다. 그러니까 또 한 사람이 고려의 땅이니까 'kore + a' 중국은 진나라 땅이니까 'chin + a' 인디아는 인도 땅이니까 ‘indi + a' 하며 각자 설을 풀었다. 똑똑한 학생은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안다더니 우리는 셋, 넷을 아는 똘똘똘똘한 학생인가보다.

가다가 또 어쩔 수 없이 자연화장실에 들렀는데 갔다 오더니 정예옥님이 MissMrs.의 차이가 뭔지 아느냐고 묻는다. 몰라서 다들 쳐다보니 Miss는 화장실 문을 꼭 닫고 Mrs.는 화장실 문을 열어 놓고 볼일을 본단다. 우리는 할머니가 다 되어서 그런지 문도 없는 들판에서 잘도 본다.

저녁 8시쯤 호텔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1110() 크로아티아에서 슬로베니아로

아침 산책을 할까 하고 밖으로 나가니 박옥순, 김경진, 이수연, 윤영자, 임경희님이 나와서 단풍잎을 줍고 있었다. 몸은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항상 이팔청춘이라더니 예쁜 단풍을 책갈피에 말리겠다며 줍는 모습이 어린 소녀처럼 아름다웠다. 나도 단풍 주으면 소녀가 되려나 하고 몇 개 주웠다.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가니 또 엊저녁 얘기가 벌어졌다. 엊저녁에는 이 호텔에 바레인 태권도단이 묵었다는 것이다. 추리닝에는 바레인 태권도단이라고 한글로 써 붙이고 무슨 대회가 있어 참석차 왔다는 것이다. 홍선생님이 대장님을 가리키며 이분도 태권도 사범이라고 했더니 그 사범이 밥 먹다 말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경례를 하고 단원을 모두 일으켜 거수경례를 시켰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태권도가 국위 선양을 톡톡히 한다.

오전에 성스테판 사원, 카타리나 교회 등을 보았는데 거리에 낙서가 많았다. 대장님이 거리 낙서의 기원이 뭐냐고 물으니 모두 묵묵부답이다. 그러자 대장님이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들이 암호로서 거리에 낙서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여튼 대장님은 모르는 거 빼고 다 아신다.(대장은 아무나 하나?)

국회의사당과 대통령궁, 시청사까지 다 보고 자유 시간을 주기에 다들 재래시장 구경을 갔다. 오늘 크로아티아를 떠나기 때문에 쿠나를 다 써야하니 최후의 한 푼까지 쓰려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다가 10쿠나가 남았길래 사과를 샀다. 10쿠나 만큼 달라고 눈짓하니 머리통만한? 사과를 한 보따리 준다. 아무거나 막 담으려고 하기에 내가

요거, 요거하며 담으니 자기도 한국말로

요거? 요거?” 하며 담아준다.

하여튼 무식한 도깨비는 부적도 안 무서워한다고 무조건 밀고 나가면 다 통한다.

2쿠나 주고 화장실까지 가 있는 돈을 탈탈 다 털어 쓰고는 버스에 올라 자그레브를 떠나 슬로베니아의 수도 루불리아나로 향했다.

루불리아나에서는 세 갈래의 물이 흐른다는 트리풀 다리와 꼭 대학로 같은 공원을 보고 거리 노점상에서 쇼핑을 했는데 이 지역은 양초 공예가 특산품이라고 하더니 과연 유리로 된 양초꽂이와 각양각색의 양초가 많았다. 모두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너도 나도 한 보따리씩 사가지고 집합 장소로 가려니 시간이 조금 남았다. 윤영자님도 가는데 마다 사들이더니 이거 다 어떻게 가지고 가느냐고 걱정이 태산이다.

윤영자님이 거리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먹어보자고 하여 시키려니 어디서 시키는 줄 몰라 우왕좌왕하다가 옆 테이블의 아가씨에게 물으니 앉아있으면 종업원이 온단다. 과연 자리에 앉아 잠시 있으니 직원이 와서 뭘 먹겠느냐고 묻는다. 커피라고 하니 양이 많은 거냐 적은 거냐 설탕 넣느냐 묻는다. 대충 양이 적은 걸로 시켰는데 어찌나 쓴지 먹기가 힘들었다. 잠시 후 임경희님이 오더니 써서 못 먹겠다고 밀크를 시켜 섞어 먹으니 한결 맛이 좋아졌다. 그런데 계산할 때 보니 밀크 값은 따로 받는다. 하여튼 세계 어디를 가 봐도 한국만큼 인심 좋은 나라는 없다.

루불리아나 관광은 쇼핑 관광으로 마치고 포스토냐로 이동하였다.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조금 있어 거리 구경을 나갔다. 슈퍼에 들렀는데 홍선생님과 호선생님은 사과 말린 걸 샀다. 조그마한 것 다섯 봉지를 들고 와 만 몇 천 톨라르를 내니 무슨 소리를 하는데 몰라서 더 가져 오라는 줄 알고 가져오려니 두 개를 뺀다. 1유로가 240톨라르라고 하더니 화폐가치가 엄청 낮은가보다.

호텔방에 와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려니 누르는 꼭지가 어찌나 뻑뻑한지 하루 세끼 밥 먹고는 못 내리게 생겼다. 두 손을 포개고 있는 힘껏 누르니 겨우 내려갔다.

비데는 물이 변기처럼 바닥으로 흘러내려 손으로 퍼서 닦아야했다. 그런데 구멍을 막고 뜨거운 물을 채워 걸터앉으니 뜨끈한 게 치질 있는 사람 엉덩이 지지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1111() 포스토냐에서 블레드로

아침 산책을 나가니 연못에서 오리들이 놀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수놈 서너 마리에 암놈 한 명씩이었다. 오리는 일부다처제가 아니고 일처다부제인가보다. 그런데 한쪽에서 수놈 한 마리와 암놈 한 마리가 열심히 목욕을 하고 있었다. 이걸 보더니 배복순님이

어머 쟤네들 신방 차리려나봐.” 한다.

첫날밤에 목욕하는 건 사람이나 오리나 똑 같은가보다.

식사를 빨리 마치고 포스토냐야마 동굴 앞으로 가니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포스토냐는 지명이고 야마는 산이란 뜻이란다. 이 동굴은 1818년 루카라는 농부가 발견하였다는데 이 동굴 속에는 눈이 없는 도룡룡같은 생물이 살고 있었다.

시간이 남아 여기서도 이 가게 저 가게들러 유리 공예품 등 기념품을 사다가 입장권을 사가지고 들어가니 한국 학생 몇 명이 보였다. 외대 세르비아어과 학생들인데 교환학생으로 왔다고 하였다. 이렇게 세계 각국과 학생 교환을 하면 서로 이해도 돕고 앞으로 외교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 코끼리열차 같은 긴 열차를 타고 2km쯤 들어가니 영어, 독일어, 슬로베니아어, 등등의 팻말이 보였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동굴이라더니 과연 가이드도 다양하였다. 우리는 영어에 가서 섰더니 한 아가씨가 와서 영어로 설명을 하였다. 태반이 못 알아듣는 말이었지만 대충 때려잡으면 흰색 돌은 순수한 석회암이고 오렌지색이나 붉은 빛을 띤 것은 철분을 함유하기 때문이란다.

1km 쯤 걸어서 이동하며 여러 가지 설명을 하였는데 chicken 이라고 하며 손전등을 비추기에 쳐다보니 정말 암탉모양의 돌이 얌전히 앉아 있었다. 동굴 속에는 수많은 종유석(천장에서 고드름 모양으로 내려온 것), 석순(바닥에서 죽순같이 자란 것), 석주(종유석과 석순이 연결되어 기둥모양으로 된 것) 등이 있었는데 그 빛이 어찌나 희고 그 모양이 어찌나 기기묘묘한지 마치 얼음궁전에 들어있는 기분이었다. 이토록 환상적인 궁전에서 걸어 다니려니 마치 내가 눈의 요정이라도 된 것 같았다.

석회동굴은 석회암이 빗물과 이산화탄소의 작용으로 탄산수소칼슘이 되어 녹으면서 뚫리고, 종유석, 석순, 석주는 탄산수소칼슘이 다시 분해되어 석회암, , 이산화탄소로 변하면서 생긴다는데 자연의 조화란 참으로 오묘하다.

넋이 나간 듯 동굴구경을 마치고 나오다가 윤영자님이

처음으로 영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드네.” 한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너무 좋은 걸 혼자만 봐서 남편에게 너무너무 미안하다는 것이다. 하긴 나도 남편에게 미안하긴 마찬가진데 나는 뭐 먹을 때 미안한 생각이 든다. 평소에도 요리를 잘 못하지만 반찬도 별로 안 해놓고 왔으니 보나마나 반은 굶고 살 남편을 생각하니 미안하기 짝이 없다. 작년 생일 때도 실크로드 가느라고 남편 생일 건너뛰었는데 올해도 여기 오느라고 또 무사통과 하려니 벼룩이도 낯짝이 있지 정말 미안하기는 엄청 미안하다.

동굴에서 나와 줄리안 알프스의 호반도시라는 블레드로 이동했다. 파크호텔에 들어가려고 하니 주차장은 좁고 차들은 많아 버스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미셸과 대장님, 남자들이 모두 내려가 주차된 승용차를 들려고 흔들어봐도 꼼짝을 안한다. 들기를 포기하고 몇 번의 전진과 후진을 거듭한 끝에 겨우겨우 호텔 앞으로 가니 다들 기뻐서 미셸에게 박수를 보내며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가이드도 잘 만났지만 특히 기사를 잘 만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차를 탔는데 기사가 어찌나 착하고 성실한지 매일 아침 차를 닦고 쓰레기 봉지도 매일 새 것으로 바꿔 의자 팔걸이에 걸어줬다. 인상도 좋은데 매일 싱글벙글이다. 양숙씨 말대로 이 기사는 인생이 즐거운 모양이었다. 자기가 여권을 안 가져와서 국경 통과를 못하는데도 싱글벙글, 차가 못 들어가 긁히게 생겼는데도 싱글벙글, 그저 눈만 뜨면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주차하느라 늦은 점심을 먹고 호텔방으로 들어가니 어찌나 전망이 좋은지 지금까지 다녀본 호텔 중에 가장 전망이 멋있었다. 방에서 호수가 내려다보이고 건너편 암벽 위에는 멋진 성이 우아하게 올라 앉아있었다.

잠시 후 로비에 모여 배를 타러 갔다. 호수 안에 작은 섬이 있었는데 작은 보트 두 대에 나눠 타고 섬으로 향했다. 배는 직접 사공이 노를 저었는데 보트를 타고 가며 바라보는 섬 안의 성당과 티토스 별장, 산 위의 성은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했다.

섬에 도착하여 성당으로 들어갔는데 성당 안에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이 줄을 잡아당겨 종을 치게 되어있었는데 이 종이 울리면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너도 나도 달라붙어 종을 치니 김사장님이 들어오며 밖에서 종소리가 엄청 크게 들린다고 하였다.

여기 보고 저기 보고 여기 찍고 저기 찍고 하다가 해가 지기에 섬의 반대편으로 오니 배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다. 더 머물고 싶었지만 사방이 어두워오니 배를 타고 호숫가로 나왔다. 나오면서 보니 다음 배에서 신랑 신부가 나온다. 우리가 손을 흔드니 신랑 신부도 손을 흔든다. 신랑이 신부를 번쩍 안더니 99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간다. 그러더니 잠시 후 소망의 종소리가 또 울려 퍼졌다. 티토스 별장에 오니 호수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고 주변 경관도 너무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호텔로 쓰고 있었다.

별장에서 나와 호숫가를 걸어 우리호텔 쪽으로 와서 일부는 쇼핑하러 가고 아홉 명은 블레드성을 향해 산을 올라갔다. 산길로 기어 올라가는데 벌써 사방이 어두워져 성에 이르니 불이 환하게 켜 있었다. 낮에는 입장료를 받는 모양인데 매표소가 닫혀 우리는 무사통과했다. 1인당 6유로씩이니까 54유로 벌었다고 좋아하며 안으로 들어가니 각종 카페 같은 것도 있고, 제일 꼭대기에는 정자가 있었다. 정자 안에는 전통 복장을 차려입은 부부가 있었는데 이 성에 산다고 하였다. 같이 사진을 찍고 얘기도 했는데 여기서 며칠 간 묵느냐고 한다. 하루만 묵는다고 하니 왜 그렇게 빨리 가느냐고 놀란다.

하산 길은 너무 어두워 산길이 위험할 것 같아 아스팔트길을 따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가며 호숫가로 내려왔다.

 

1112() 슬로베니아에서 오스트리아로

아침부터 호텔을 출발하여 슬로베니아의 블레드를 떠나 오스트리아로 향했다. 클라겐푸르트까지는 터널을 통과하면 금방이라는데 무슨 이유인지 터널이 통행금지가 되었다고 하여 다시 한 번 알프스를 넘는 행운을 맞았다. 때 맞춰 눈도 내려 알프스의 설경을 감상하며 오스트리아로 넘어갔다.

클라겐푸르트에 도착하니 길을 돌아오느라 시간이 없어 시내에 있는 분수대만 보고 다시 차에 올랐다. 무슨 분수인지는 몰라도 공룡이 한 사람을 삼킬 듯 달려들고 사람은 철퇴를 내리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의 거시기를 보니 무슨 용의 발같이 생긴 데다 발톱까지 있었다. 그게 뭔지 황사장님에게 물으니 자기도 모르겠단다.

버스에 올라 공항으로 향하며 황사장님이 마지막 인사를 한다. 다른 팀은 장소를 옮길 때마다 서울로 거는 전화번호를 물어 약간 짜증스러웠는데 이번 팀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화번호 묻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너무 좋았다고 하며 과연 여행 전문가들은 다르다고 하였다. 그리고 노천화장실로 우르르 몰려가는 게 인상적이었다고 농담을 하였다.

공항에서 황사장, 김서경씨, 미셸과 이별을 하고 큰 짐들을 끌고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 미리 준비한 햄버거로 요기를 하고는 또 시간이 남아 가게를 기웃거렸다. 청사도 좁고 가게도 두 개 밖에 없어 물건도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또 무엇들을 사가지고 나온다.

시간이 되어 보딩을 시작했는데 무슨 놈의 검색이 그리도 심한지 술도 안 된다 물도 안 된다 하여 술을 모두 모아 한 가방에 넣어 부치고 물은 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먹었는데도 남는 것은 버리고 들어가라고 하였다.

클라겐푸르트 공항을 출발하여 약 2시간 비행 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니 벌써 사방에 어둠이 깔려온다. 여기서 마지막 쇼핑들을 하고는 555분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향했다.

 

1113() 프랑크푸르트에서 인천으로

11시간 가까이 비행기 안에서 온몸을 비틀다보니 눈 붙일 사이도 없이 날이 밝아온다. 밤이 8시간 줄어들었으니 그냥 저녁에서 아침으로 직행한 것이다. 그래도 루프탄자 항공은 갈 때도 올 때도 비빔밥을 주니 먹기에 좋다.

엊저녁에 세수도 안 하고 비행기에서 고양이 잠을 잤더니 온 몸이 찌뿌드드하고 얼굴은 부석부석한 게 몰골이 흉악하다. 그래도 고향에 돌아올 때가 가장 기쁘다. 특히 공항에 내려 화장실에 가면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는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짐이 나오는 대로 작별 인사를 하고는 각자 그리운 집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은 유럽의 새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누가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잡아라!” 하고 싶다. 앞으로 이런 기회가 오면 무조건 잡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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