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이현숙(李賢淑)
롯데 등산 클럽에서 이번 주에는 화요반과 수요반이 합반을 하여 1박 2일로 진도와 해남 땅에 다녀왔다. 1박 2일은 처음으로 하는 행사라 자못 기대가 컸다.
화요일 아침 7시에 늘 만나던 너구리상 앞으로 나가 버스에 오르니 벌써 많은 회원들이 자리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요반과 합쳐져 낯 설은 얼굴이 제법 많았지만 평소대로 뒷좌석으로 가니 이규화씨가 자기 옆자리에 앉으라고 일어선다. 규화씨는 늘상 전철을 같이 타고 다니기 때문에 친근감이 들어 얼른 안쪽으로 앉았다.
7시 5분쯤 잠실을 출발하여 분당으로 향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모란장이 서는 날이라 차가 엄청 밀렸다. 분당 롯데 백화점 앞에 도착하니 이정임님을 비롯한 수요반 회원들이 한 줄로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른 태우고 고속도로로 들어서 쏜살같이 남쪽을 향해 달렸다.
가는 도중 군산 휴게소에 들러 수요반 회원이 준 떡과 커피로 요기를 하고는 계속 달려 진도대교를 건너 진도로 들어가 운림산방으로 갔다. 운림산방은 10 여 년 전에도 와 보았는데 무척 크고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었다. 여기서 남종화의 진수를 맛보고 진도 남쪽에 있는 접도로 들어섰다.
접도에는 남망산이 있었는데 남쪽을 바라본다는 뜻에서 남망산이라 했단다. 남망산은 통영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도 있었다. 3시나 되어 산행을 시작했는데 4시간은 걸어야 한다는 대장님 말씀에 랜턴을 챙겨 넣고 수품항을 출발하여 아기밴 바위로 향했다. 바위가 애 밴 여자같이 불룩해서 이런 이름이 생겼는지 아니면 어떤 여자가 여기서 애를 뱄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절경이었다.
얼른 사진 몇 장 찍고는 아홉 봉우리로 향했다. 이름은 아홉 봉우리인데 실제는 몇 개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여기서 또 남쪽 바다를 바라보고는 다시 돌아와 통신탑을 지나 쥐바위로 갔다. 쥐바위는 쥐모양이라 쥐바위인지 쥐가 많아 쥐바위인지 모르지만 조그만 돌탑이 쌓여있었다.
여기서 선두는 남망산 정상으로 향하고 후미는 그냥 거북바위로 내려갔다. 능선길을 지나 남망산 정상에 오르니 정상 같기는 한데 아무 표시가 없었다. 대장님께서 무전기로 삼각점을 찾아보라고 하셔서 여기 저기 찾아봐도 아무 표시가 없어 헤매는데 한 사람이 여기 표지석 있던 것 같은 바위가 있다고 하였다. 다가가보니 과연 바위 가운데가 움푹 파인 것이 표지석은 없어지고 받침만 남은 것 같았다. 남망산 정상에는 넓은 마당바위가 있었는데 여기 앉아 남쪽 바다를 바라보면 세상만사 다 잊을 것 같은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다시 부리나케 내려와 거북바위를 지나 솔섬바위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말똥바위에서 낙조를 보려고 했지만 거기까지 가다가는 해가 바다 속으로 푹 잠길 것 같아 대장님이 선두는 솔섬바위에서 낙조를 기다리라고 하였다. 솔섬바위는 말 그대로 바위 위에 멋진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서 보니 건너편 말똥바위에 오른 우리 회원들의 울긋불긋한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간식을 먹으며 낙조를 바라보았는데 바닷물로 꼴깍 꼴깍 잠기는 해의 모양이 익사하는 것도 같고 생을 마감하는 인간의 모습 같기도 했다.
해가 떨어지자 주위는 급속도로 어두워지고 우리는 어렴풋한 길을 찾아 부지런히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여미사거리를 지나 버스에 도착하니 사방은 먹물 속에 잠긴 듯 캄캄해졌다. 졸며 자며 비몽사몽간에 헤매다보니 어느 덧 해남 땅끝 마을에 도착하여 여기서 회로 저녁식사를 푸짐하게 먹었다. 최덕희님과 안순자님, 신정옥님, 박영희님이 한 방에 묵기로 하고 신연희, 조연옥, 이규화, 나 이렇게 넷이서 한 방을 쓰기로 했는데 마침 옆 테이블에 앉았다. 저녁을 먹으며 최덕희님이 오늘 저녁에 자기 방에 오면 실면도를 해준다고 하였다. 나는 실면도인지 칼면도인지 듣도 보도 못한 소리라 그게 뭐냐고 하니 실로 잔털을 뽑는 거란다. 여기서 방열쇠를 나눠주었는데 박영희님이 자기방 열쇠를 보여주며 105호로 오라고 하였다.
우리는 101호로 들어와 샤워를 하고는 105호로 갈까하다가 피곤하다고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여기는 일출이 유명한 곳이니 아침에 일출을 보러가겠느냐고 물으니 신연희씨가 같이 가자고 하여 6시에 일어나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니 사방이 어두워 나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신연희씨도 피곤하다고 안 가겠다고 하여 나도 포기하고 누워있으려니 밖에서 우리 회원들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잠들 것 같지도 않아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밖으로 나가니 사방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했다. 전망대가 있는 사자봉에 혼자 올라가기는 엄두가 안 나 바닷가를 걷다보니 사람들이 카메라를 장치하고 해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 와 보니 감사님, 이명숙님, 유애자님, 황혜정님이 벌써 나와 동쪽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찍는 동아리 사람들인지 서로 노출은 얼마에 맞추라, 셔터는 얼마에 맞추라 하면서 서로 좋은 자리를 잡느라 근처의 벤치를 끌어다 삼각대를 얹어 놓고 우리는 벤치에 올라오지도 못하게 했다. 벤치에서 내려오니 또 카메라 흔들린다고 돌아다니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우리는 주눅이 들어 가만히 서서 해뜨기를 기다리는데 드디어 바닷물이 벌겋게 물들더니 붉은 눈썹 같은 해가 머리를 내밀었다. 한 번 머리를 내밀자 밑에서 누가 밀어올리기라도 하는지 해는 순식간에 둥실둥실 떠올라 두 개의 두 바위섬 사이에서 전라(全裸)의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작가들은 일 년 중 이 바위섬 사이에서 해가 뜨는 것은 이 때 뿐이고 이렇게 아름다운 일출은 몇 년 가도 보기 힘들다고 흥분하며 셔터를 눌러댔다. 이 사람들은 일출 사진 찍기에 목숨을 걸었는지 아예 여기서 붙박이로 며칠씩 묶으며 찍는 모양이었다. 어제도 찍었는데 어제는 별 볼일 없었다고 하며 오늘 온 사람들은 정말 복 많은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나중에 포토 포인트라고 쓰인 안내판을 보니 이 섬 이름은 맴섬이라하고 10월 27일에서 30일 사이에 가장 아름답다고 되어있었다. 태양이 뜨는 위치가 이렇게 변하는 것은 지구의 공전 때문이라는 설명도 적혀있었다.
우리들은 별 기대도 안 하고 있다가 뜻밖의 장관을 보고 나니 무슨 큰 횡재라도 한 듯 기분이 들떴고 이렇게 멋있는 줄 알았으면 우리 식구들 다 깨워 데리고 나올 껄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특히 고문님 딸을 데리고 나왔으면 기막힌 작품을 찍었을 텐데 정말 아깝다고 하며 각자 방으로 향하였다.
방에 가니 다들 일어나 아침 먹으러 가자고 하여 이규화씨와 밖으로 나와 일출 보던 바위로 가니 먼저 나간 조연옥씨가 있었다. 같이 바닷가로 가 형제 바위에서 사진을 찍고 또 바위섬 사이에서 두 팔 벌리고 사진을 찍었다. 불현듯 바위섬에 올라가보고 싶어 조연옥씨에게 카메라를 주고 바위섬으로 기어오르며 바라보니 소나무마다 영양주사가 꽂혀있었다. 바위섬 꼭대기에서 또 두 팔 벌리고 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스피커에서
“거기 바위에 올라간 아주머니 빨리 내려와요.”
하고 소리를 지른다. 나는 깜짝 놀라 허겁지겁 내려오며 하긴 이 사람들이 이 바위섬 때문에 먹고 살 텐데 내가 너무 했구나 싶었다.
식당에 가니 벌써 회원들이 식탁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는데 어제 저녁과 같이 안순자님 팀과 우리 팀이 나란히 앉았다. 식사하다가 박영희님이 우리를 보고 엊저녁에 왜 맛사지 받으러 안 왔느냐고 묻는다. 내가 최덕희님 피곤할까봐 안 갔다고 하자 옆에서 이규화씨가 솔직히 말해서 어제 최덕희님이 술 취한 것 같아 몇 오라기 남지 않은 눈썹까지 다 뽑아버릴까봐 안 갔다고 하자 다들 뒤집어지게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사자봉 전망대에 못 가본 사람은 전망대로 오르고 가본 사람들은 해안 도로를 따라 땅끝탑으로 갔다. 십여 년 전에 왔을 때는 사자봉 위에도 돌 몇 개 쌓여 있을 뿐이고 땅끝에도 조그만 돌에 토말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지금은 사자봉 위에도 고래등 같은 전망대가 산을 찍어 누르고 있고 땅끝탑도 무슨 전승기념비처럼 으리으리하게 서 있었다. 그래도 주변 경관은 옛날과 다름없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땅끝탑에서 바닷가 길로 다시 땅끝 마을 쪽으로 오니 그새 물이 밀려들어 형제바위도 바위섬도 접근할 수 없게 바닷물에 가로막혀 있었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해남의 달마산으로 향하였다. 달마산은 미황사라는 절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었는데 여기도 10 여 년 전에 왔을 때보다는 절이 엄청 커지고 아직도 무슨 공사를 하고 있었다. 절 뒤의 배경이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절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보지 못했다. 10년 전에는 능선의 대밭삼거리에서 낙조대까지만 가보고 지난 4월에는 부도전에서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 갔다가 다시 미황사로 돌아내려왔는데 이번에는 관음봉까지 갔다가 송촌리로 내려오는 코스라 마음이 한껏 부풀었다.
수많은 바위를 껴안고 당기며 씨름하기를 두 시간 드디어 달마봉이라고도 하고 불썬봉이라고도 하는 정상에 올랐는데 여기는 봉화불을 올렸던 돌탑이 있었다. 왜 불썬봉인가 의아했는데 대장님 설명에 의하면 불을 써서 불썬봉이란다.
불썬봉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관음봉으로 향했다. 관음봉으로 향하는 능선에는 유난히 억새가 많았는데 억새밭 사이로 전진하는 회원들을 바라보니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같이 유연하고 아름다웠다. 억새밭을 지나 송촌리를 향해 왼쪽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이 길은 곳곳에 너덜지대가 있어 길을 찾기 힘들었지만 신연희님이 초행길임에도 노련한 솜씨로 길을 잘 찾아 송촌 저수지를 지나 우리 버스가 있는 곳까지 무사히 내려왔다.
후미까지 모두 내려오자 대장님은 이제 곧장 서울로 간다고 하였다. 대장님은 공룡 발자국 볼 시간이 없어 곧장 간다고 하였는데 회원들은 밥도 안 먹고 그냥 가는 줄 알고
“밥 안 줘요?”
하고 소리친다. 대장님은 웃으시며 밥은 먹고 간다고 하였다.
저녁식사는 뷔페로 하였는데 아침에 일출 보는 행운을 잡은 다섯 명이 맥주를 내었다. 나도 맥주 값을 냈는데 이런 일출만 볼 수 있다면 매번 맥주를 내도 아깝지 않겠다.
저녁까지 잘 먹고 모두들 꿈속을 헤매다 보니 어느 덧 분당에 도착하여 분당팀이 내리고 우리는 잠실로 향하였다. 잠실로 오는 도중 파리가 날아다니자 앞에 앉은 최덕희님이 이 파리들은 해남에서 서울까지 진출했으니 출세했다고 하였다. 한 회원은 이 파리들은 무임승차하고 서울까지 왔으니 재수도 좋다고 하였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게 잘 한 짓인지 실수한 것인지 모르겠다.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이 파리들이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서울보다는 해남이 백배 나을 텐데 말이다. 며칠 못 되어 아마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하며 노래를 부를 것이다.
이재호씨는 이 소리 겨울 내 듣기 싫으면 다시 해남에 한 번 가서 이 파리들을 내려주고 와야 할 것 같다.
이번 여행은 한 마디로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코스도 그렇고 날씨도 그렇고 회원들도 그렇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2월 마지막 주에는 고흥반도 팔영산으로 가신다는데 이 여행에도 꼭 참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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